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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인문학 공부가 대세였던 적이 있었다.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고, 그래야 미래를 책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만드는 일련의 상황들이라고 할까.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고문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잡스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었으나, 그를 잇는 사람은 아직 없다. 그리고 그의 업적도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존재하였지만 이러한 가운데에도 우리의 기독교인들은 인문학이란, 그저 우리와는 상관없고, 오히려 배척해야하는 학문쯤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역사학이나 혹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여기에 더하여서 신학을 공부했던 많은 목사님들도 그렇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본서를 들추어 읽으면, 본인들이 배웠던 신학교의 시간들이 돌아옴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배운 학문은 신에 관한 학문으로써 아래에서 위를 향하여 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학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을 알아야 하고,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 회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좋은 안내를 해 줄 짧지만 참 좋은 안내서가 오늘 소개할 책이다. 매우 작은 사이즈의 120페이지 가량의 분량, 참으로 편하다. 간략하게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시작점인 정통신학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까지의 흐름을 훑어주며, 다시금 돌아보며 현재 지금 이 곳에서의 신학은 삶은 신앙은 어떠해야할지를 밝혀주는 저서라고 소개해야겠다.
우리의 신앙과 신학은 홀로 존재하여 왔던 그분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야 했기에, 계속적으로 부단히도 노력해온 산물인 것이다. 그 흔적들의 역사를 살펴보며, 각기 나타났던 순기능적인 부분과 역기능적이었던 부분을 논하여 준다는 것이 편한 운전을 도와주는 내비게이션 같았다. 이러한 지식의 향연을 도와주는 것은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성찰의 덕이 아닐까. 평신도가 보기에도 어렵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글이기에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강의로 행해졌던 내용을 조금 더 다듬어서 글로 펴냈다고 하지만, 참 어렵지 않게 해주심을 느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소확행 혹은 욜로와 같은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큰 이야기보다 작은 이야기들로 둘러싸여 있는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이야기들이 중요하지만, 큰 이야기들로 흘러왔던 시대의 흐름이 깨져버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작은 것들이 큰 것을 대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기에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이다. 지식은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쌓아가며 더욱 커다란 거목으로 자라나게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필자에게 좋은 표현이 하나 있다.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다. 속담을 변경하여 친구가 해준 말이었지만, 참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티끌을 모으는 것이 아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앞을 바라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기에, 본서를 읽으시길 추천하는 바이다. 신앙인으로서 인문학을 왜 알아야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되시리라 믿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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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사를 쉽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면서 역사의 변화속에서 더불어 상생해온 신학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다소 다가가기 어려운 철학사의 흐름을 간단히 도표로 정리해주어 한눈에 보고 이해하기 쉬웠다.무엇이 옳은가.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고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다.신학과 인문학 관계에 대해서 이토록 훌륭한 책을 또 만날수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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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인문학은 지향점과 방법론이 다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상호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인 이론들을 준비하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학은 이렇듯 히브리 계시와 그리스 철학이 만나 이루어 진 것이다. 초기 기독교 신학은 플라톤주의 철학을 기반으로해서 이뤄진 것!
이것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으로,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설명하면서 수시로 변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교훈할 수 있는 것으로 시대를 초월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의미를 보여준다.
또한 중세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주의가 그 역할을 했으며, 뒤 이어 스콜라 주의 전성시대가 도래한다. 그래서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신학이 곧 철학이고 철학이 곧 신학이 되는 것이다.
이후 인문주의가 등장하지만, 이것 역시도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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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 김용규 인문학은 결코 쉬운 학문이 아니다.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두 학문 모두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아니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 어려운 두 학문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어려운 내용을 저자는 쉽게 설명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문학과 신학의 역사 및 서로의 연관성이 머리속에 자동으로 정리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초기 교부시대부터 중세, 종교개혁과 근대, 그리고 포스트모던 사회까지 인문학과 신학을 연결지어 설명한다. 신학이 인문학을 이끌던 모습을 살펴보고 종교개혁 이후 인문학이 신학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홀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쉽게 설명한다. 특히 기독교의 신학은 새로운 인문학 사조를 받아들임으로써 계속 발전해간다. 그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본다. 저자는 과거를 살펴보는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나아가 현대 사회속에서 신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믿음에 대해 고민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한다. 인본주의 사회의 빈부 격차속에서 역설적으로 붕괴해가는 인간성을 지적하고 그의 해결책이 신학이 됨을 주장한다. 그런 모순 속에서 기독교가 모순을 해결하는 길임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성육신과 죽음, 부활의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는 계속해서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에 그러하고, 역사 속에서 계속 새로운 인문사조를 흡수해가며 발전해왔기에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저자는 보수적인 신앙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의 보수적인 신앙관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보수적인데 머무르지 않고 보수와 진보 사이의 길을 찾으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설득력이 있고 쉽게 느껴진다. 모순으로 보여지는 이야기를 설득하는 저자의 능력은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과 표현에서 나오는듯 하다. 기독교인은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래서 소통할 수 있고 우리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는다. 세속과 유리된 신앙이 아닌 세속을 끌어 안고 함께 가는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나님의 능력 아래에서 불가능은 없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 풍성하게 느끼고, 세상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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