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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 에라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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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에라스무스에 대한 생소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는 [우신예찬]이라는 책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인문주의자로만 알려져 있으니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은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동일한 출판사의 [에라스무스 아동교육론]을 읽었던 적이 있기에 그 낯선 정도는 덜하겠지만, 오히려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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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에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에라스무스에 대한 생소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는 [우신예찬]이라는 책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인문주의자로만 알려져 있으니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은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동일한 출판사의 [에라스무스 아동교육론]을 읽었던 적이 있기에 그 낯선 정도는 덜하겠지만, 오히려 이 책을 통하여 그의 인문주의자적인 부분에 더하여 교육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 역시 기대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에라스무스가 권하는 고전공부법'이라는 부제를 통하여 대략 어떤 내용인지는 유추할 수 있겠지만, 그를 다룬 책을 그리 많이 만나지 못하였으며 더구나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우신예찬]에 가려져 있던 책이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에라스무스는 기독교 문화와 고대 문명의 관계라는 중요한 문제에 직면했는데, 이는 그 시대의 야만에 맞서 과거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인문주의자의 사명에 충실함으로 보여준다. (중략) 그러나, 기독교 독자의 입장에서는 고대 이교도 문학에 내재한 커다란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 12 中에서 -

 낯선 작품이다보니 서문에도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실제 이 서문은 에라스무스가 아닌 브라이언 맥그리거라는 사람이 쓴 내용이다. 에라스무스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적어도 20세기 이후의 인물로 추측되는데, 인용한 서문에서 '그러나'의 전후 문장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책의 제목과 부제를 마주한다면 에라스무스라는 한 인문주의자의 교육법에 대한 책으로만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서문은 오히려 이 책이 당시의 상황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등장하는 에라스무스의 생애(1466~1536)를 유심히 들여다본다면 그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주의자로서의 입지에는 의심의 여지를 찾을 수 없다. 더구나 그가 영국의 토머스 모어를 비롯한 인문주의자와 친분을 맺었다는 점과 더불어 영국의 절대왕정의 정점에 달한 헨리 8세의 치세에 활약한 점을 감안한다면 그는 중세 막바지의 상황에서 큰 변화를 맞이한 시기에 활약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위의 서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글을 원형 그대로 해석하여 인문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오늘날 이 책을 읽을 기독교 독자의 입장을 고려한 부분만 놓고 보더라도 당시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에라스무스의 존재와 글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게 된다. 그의 인문주의자적인 활동이 기독교 중심의 교회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라스무스의 처신은 교육방법론에 대한 그의 서술에서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교사가 명민한 사람이라면) 어린 아이들을 타락시킬만한 구절이 나타나도 그들의 주의를 그것에 대한 주석과 올곧은 생각으로 환기시키면서 도덕적으로 해로운 것을 이로운 것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 베르길리우스의 두 번째 [전원시]를 강독한다면, 교사는 그 작품을 읽기에 앞서 독자들의 마음을 (중략) 미리 다잡고 보호해야 한다.

 - p. 57 ~ 58 中에서 -

 고전의 강독 사이에서 언급된 이 부분은 이교도 문학이 기독교에게 주는 도덕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경구들을 통하여 학생들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서문과 마찬가지로 당시 여전히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기독교를 의식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가 베르길리우스를 꼭 읽어야 할 고전의 작가로 추켜세웠다는 점을 본다면 결국 에라스무스는 당시 사회에서 중용 내지는 절충의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훗날 그가 성경을 그리스어로 새롭게 번역하여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에도 큰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협조를 구하는 루터의 제안을 거절하였다는 사실은 그러한 그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그를 존경하던 루터가 나중에는 에라스무스에 대하여 서슴없이 비판을 가한 이유도 그러한 에라스무스의 자세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에라스무스는 종교에 대한 강력한 개혁보다는 내부적인 정화에 더 관심을 둔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이러한 부분은 이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에 대한 그의 교육 방법을 읽다보면 생기는 의문들이 확장되어 알게 된 부분이기에 이 책이 단순히 그의 고전에 대한 교육 방법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물론 이 책은 그의 교육에 대한 신념이 잘 묻어나고 있으며, 그가 말하는 교육 방법 역시 오늘날 우리의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히 관심을 가져볼 수 있다. 특히 그의 교육 방법은 그가 당시의 교육 체계에 대한 불만스러웠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거꾸로 당시의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는 헤르만 헤세가 직접 자신이 경험했던 당시 교육에 대한 불만을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점과 통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헤르만 헤세는 그것을 문학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의미하고 있지만, 에라스무스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더구나 에라스무스의 교육 방법의 그 시작 부분은 오늘날 '기호학' 또는 '언어학'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물에 대한 학습은 우리가 그 사람을 부여하는 말소리(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언어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은 사물에 대한 판단력도 근시안적이고, 부정확하고,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중략) 따라서 말과 사물을 동시에 배우고, 그것도 가장 뛰어난 교사로부터 배운 사람만이 두 지식 모두에서 탁월함을 보인다.

 - p. 27 中에서 -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대한 배움을 강조하는 이 부분은 당시의 고전이 로마와 그리스 시대의 것이기에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교육의 단계는 바로 언어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오늘날 기호학(언어학)에서 말하는 기호(언어)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그의 사상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실제 그가 말하는 교육 방법에서는 곳곳에서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에 이는 언어가 사상의 형성에 어떻게 동작하고 있는지를 동시에 이해하게 된다. 당시 성경이 고대 헬라어 또는 라틴어로 쓰여져 있었기에 사상과 지식이 특정한 계층만이 누릴 수 있다는 점과 왜 에라스무스가 성경을 그리스어로,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De ratione instituendi discipulos)

 - 박식한 교사를 구하라.

 - 문법은 꼭 필요한 것만 공부하라.

 - 어려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시작하라.

 - 좋은 글을 읽으며 올바른 언어 습관을 형성하라.

 - 고전 강독 사이사이 언어 학습을 병행하라.

 -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배워라.

 이 책에서 말하는 에라스무스의 고전을 통한 교육방법론은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확실히 언어에 대하 배움 자체가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느껴진다. 이 부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어가 곧 당시 지식에 대한 독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기에 결국 언어를 익히라는 것은 지식을 연마하라는 말과 크게 달리 보이지 않는다. 그 스스로도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익숙해지면서 고전에 대한 눈을 떴으니 말이다.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다양한 고전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그 내용이 어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이 간결하게 그의 교육방법론에 대한 세세한 방법을 먼저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만 알아도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별다른 무리는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그 부분에 대한 해제 역시 이 책에 수록되어 있으니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에서 에라스무스의 교육에 대한 내용은 그리 분량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그가 토마스 그레이 및 콜레트를 비롯한 다양한 편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내는 부분까지 감안한다면 그의 교육에 대한 생각은 이 책에서 꽤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책은 고전에 대하여 왜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에라스무스의 저서 역시 고전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말하는 교육 방법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의 곳곳에서는 낯선 에라스무스의 생에 대한 모습은 물론 당시의 상황을 거꾸로 유추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얇은 책이지만, 오히려 이 책을 읽기 위하여 다양한 내용을 찾다보면 책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그의 낯선 모습들이 상당 부분 희석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인문학과 고전의 열풍에 편승하여 이 책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에라스무스 및 르네상스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그래서 좋은 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g*******7 2019.03.18. 신고 공감 12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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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어느 특별한 날을 위해 (파블 2019-3월-리뷰 05)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어느 특별한 날을 위해 (파블 2019-3월-리뷰 05)" 내용보기
1.기억력이 "장소"와 "형상"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최고의 기억력은 무엇보다도 다음이 세 가지 요소, 즉 이성, 방법, 주의에 의존한다. 우선 기억력은 어떤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달려 있다. 다음으로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은 것을 매우 주의 깊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만 한다.- pp.33~34 지금은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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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력이 "장소"와 "형상"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최고의 기억력은 무엇보다도 다음이 세 가지 요소, 즉 이성, 방법, 주의에 의존한다. 우선 기억력은 어떤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달려 있다. 다음으로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은 것을 매우 주의 깊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만 한다.

- pp.33~34

 

지금은 운전도 못하고, 면허증도 나의 증명에서 사라졌지만 (물론 차도 없다), 한때는 나도 운전을 "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억울하게 남아 있는 한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차선위반 딱지가 내게 날아왔다. 항변을 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는데, 거기 있는 어떤 여형사가 나보고 이렇게 물어본다. 이 운전자가 내가 맞느냐고. 내가 뭐라고 다른 말을 하려 하자, 그 형사는 내게 "맞느냐, 안 맞느냐" 그것만 말해라, 라고 강압적인 태도로 몰아부친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벌금을 내고 말았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운전한 건 내가 맞지만, 내가 차선을 위반한 건, 앞에 사고가 나서, 옆으로 비켜가느라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다. 그걸로 딱지를 떼면 안 되지 않느냐. 앞에 사고 차량이 있어서, 다른 길로 가라고 유도해놓고 이제 와서 딱지를 왜 떼느냐. 그때 못했던 말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지금까지도 억울함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그때 사고 난 척 유도해놓고 일부러 딱지를 뗐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그러지 못할 거다. 그렇게 했다간 난리가 날 테니까.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 일부러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함정을 파놓고 딱지를 끊는 경우. 그 말도 그 당시에는 말 못하다가 이제 와서야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언젠간 말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나는 여전히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은 그런 나의 기억을 환기시켰다.  그때 그 여형사의 태도를 이해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그 당시의 분위기, 상황들이 그런 것들이었음을 이해하니까. 때로 나는 진짜 민주주의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억압, 폐쇄, 강압적인 시대들이 여태껏 이어져 왔던 것은 아닐까.

 

 

2.

레무스와 로물루스도, 하나는 성품이 음침하고 근엄했지만, 다른 하나는 느긋한 성질이어서 서로 마주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이름도 로무스에서 로물투스로 바뀌었다. 카인과 아벨도 상이한 형태의 삶을 영위하였기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고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무릇 사랑이 깊어지려면 서로 닮은 점이 많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시인들도 많이 노래했다. 보기를 들면, 나르키소스는 세상의 모든 사랑에 일절 무심하다가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매료되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에 비친 그림자만큼 우리 자신과 닮은 것이 또 있겠는가? 따라서 배움이 있는 사람은 배움이 있는 사람에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멀쩡한 사람에게, 다소곳한 사람은 다소곳한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은 정직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기 마련인데, 각자가 타인에게서 자기 자신의 성품을 보기 때문이다. 다른 몸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에 끌리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비슷함이 영혼의 선량함, 즉 경건, 정의, 절제와 같은 참된 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로부터 나오는 우에도 그런 덕목을 장려하려는 특질들인 정직, 진실, 진심, 견실, 영원에 바탕을 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슷함이 덧없는 세상이나 심지어 조악한 품성에 의한 것이라면, 교사는 어떤 올바른, 유쾌한, 변치 않는 우애도 가능하지 않음을 일러주어야 할 것이다.

- pp.60~61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의 본문은 짧다. 전체 책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 대신, 편지 글이 나머지 반을 차지한다. 그래서 에라스무스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 교육방법도 그와 비슷하다. 자신이 하려는 공부와 비슷한 방법에 끌린다.

 

교사는 단순히 수업의 전체 개요만 짚고 넘어가지 말고,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논점들을 확인해야 한다.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정확히 재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중간에 힘들고 어렵다고 그만두지 말고 심지어 한 달이 걸려도 끝까지 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종이에 옮겨 적는 아이들의 행태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을 통해 기억력은 오히려 감퇴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것에 관해 몇 자 짧게 적어두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기억력이 뛰어나다면 굳이 글자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 p.68

 

핵심은 이거다. 중요한 논점들을 짚고 넘어가는 것.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의 본문이 짧은 것이리라. 때론, 걸어가는 길 위에서 내가 파악해야 할 핵심이 무엇일까,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은 아동에 대한 교육방법이 아니라, 우리의 전반적인 교육에 대한 의미를 한번 짚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교육의 보편적인 고전적 방법론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이 방법론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누구나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방법론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전이 괜히 고전은 아니다. 누구나 다 알지만, 다시 한번 새겨보고 싶은 이야기, 다시 한번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 고전이 아닐까.

 

 

3.

그곳에 나는 있었다. 여전히 포도밭 사이를 걸으며 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 혼자뿐이었다. 사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 p.101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든,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있을 뿐이다. 그 길에 서 어느 곳을 갈지는 선택할 수 있어도, 그 길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무슨 기회가 길 위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그 길 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걸을 수 있다면 걸을 것이고, 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나무를 심을 것이고, 집을 만들 수 있다면 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하늘만 바라보고만 있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어느 길에서는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어느 길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하기도 하고, 어느 길에서는 멈춰서 책을 보기도 하겠지. 우리는 같이 길을 가긴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가는 인생이다. 혼자서 가는 인생에 좀더 의미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함께여도 혼자고 혼자여도 함께인 어느 특별한 날을 위해, 에라스무스가 함께 하길 바라며.

 

- 이 리뷰는 인간사랑에서 증정받은 도서로 작성하였습니다. -

 

h******o 2019.03.17. 신고 공감 11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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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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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에라스무스/김성훈 인간사랑/2019.3.15.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의 인문학자로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수도원에서 자랐다. 스무 살 무렵 수도사로서 서원하였고,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예 연구에 몰두하여 ‘보다 인간적인 학문과 예술’을 추구하는 인문주의 운동을 주장하였다. 그가 살았던 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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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에라스무스/김성훈

인간사랑/2019.3.15.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의 인문학자로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수도원에서 자랐다. 스무 살 무렵 수도사로서 서원하였고,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예 연구에 몰두하여 보다 인간적인 학문과 예술을 추구하는 인문주의 운동을 주장하였다. 그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일이 바로 교육이었다.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아이들이 어떻게 고전을 읽어야 하고 교사들이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저서로 격언집>, <우산예찬>, <자유의 지론등이 있다.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에라스무스가 파리 가정교사 시절에 토마스 그레이에게 쓴 편지이다. 두 번째는 에라스무스가 콜레트에게 송부한 편지 형식의 글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이다. 에라스무스는 콜레트의 부탁을 받고 고대의 저작들을 올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그의 논고를 저술하였지만, 그는 이미 파리 가정교사 시절부터 이 주제를 가지고 노르트호프의 아이들은 물론 영국인 학생들과도 서신 교환을 하였다. 이 책에서는 헌사, 개요, 본문으로 구분해 놓았다.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모두 가르쳐야 한다.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거의 모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여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언어는 뿌리가 같아서 따로 배우는 것보다 함께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p.28)” 최소한 라틴어는 그리스어와 함께 배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한 올바르게 말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들과 즐겨 대화하고 문체가 훌륭한 사람들의 글을 자주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내 말은 자주 보고 익혀야 기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록 이런 방법들 각각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을 함께 사용하면 지식 축적에 대단히 유익하다.(p35)” 반복해서 공부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설명하면서 반복하라는 말을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다른 사람을 가르쳐보면 확실하게 익힐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그것을 가르쳐 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르치면서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된다. 현대 교육이론에서도 이 방법에 동의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사람은 처음부터 가장 좋은 것만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정통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각 교과의 핵심적인 내용들이라도 숙지하고 있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지리학은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지리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 역사는 매우 광범위하게 쓰인다. 시인들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 작가치고 문체가 매우 뛰어났던 프루텐티우스를 이해하려면 성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야 한다.(p.41)” 간단히 말해 군사, 농업, 음악, 건축을 망라하여 지식의 어느 한 영역도 고대의 시인들과 웅변가들을 이해하는데 유용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저서가 고전이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1. 박식한 교사를 구하라. 2. 문법은 꼭 필요한 것만 공부하라. 3. 어려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시작하라. 4. 좋은 글을 읽으며 올바른 언어 습관을 형성하라. 5. 고전 강독 사이사이 언어 학습을 병행하라. 6.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배워라.’ 등의 여섯 가지를 강조 한다. 교사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잘 가르칠 수 있어야 어린이가 일찍부터 두 언어를 바르게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언어는 사물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지만 언어에 대한 지식인 기본문법을 먼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기본적인 문법을 공부한 뒤에 말하기 연습을 할 때는 대화와 독서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또한 문체가 뛰어난 사람들의 글을 자주 접하고 스스로 글을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 한다. 언어학습을 마무리하고 나서는 고전 강독 단계로 넘어가는데 현재의 구절을 읽고 해석하는데 적합한 것들만을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강독의 즐거움을 위하여 가끔씩 여담을 섞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에라스무스는 고전을 읽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저자를 간단히 소개한 뒤에 그의 주장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 좋고 유익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만약 작품 해석을 둘러싼 이견이 있다면, 교사는 아이들에게 그것들 각각을 설명하고 서로 간의 차이를 일러주어야 한다.(p.163)” 또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문학 작품의 장르별 특성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경구는 수사적 감탄을 자아내는 재미가 있고, 비극의 본질은 감정의 분출에 있으며, 희극의 묘미는 인물 묘사에 있다는 식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고전공부 방법을 제시 하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에 적용해도 무리 없는 방법이기에 효율적인 고전교육방법을 구하는 이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적극 추천한다.

 

이달의 사락 k******4 2023.03.23. 신고 공감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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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가 권하는 고전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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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이름만 들어보았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 또한 교육방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지라 망설여졌다. 일전에 [에라스무스 아동교육론]을 읽은 적이 있지만 정리를 하지 못한 기억도 한 몫을 했다. 헌데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방법’이라는 원제가 마음을 끈다. 고전이라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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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이름만 들어보았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 또한 교육방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지라 망설여졌다. 일전에 [에라스무스 아동교육론]을 읽은 적이 있지만 정리를 하지 못한 기억도 한 몫을 했다. 헌데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방법이라는 원제가 마음을 끈다. 고전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하는 책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서양고전에 대해서는 선뜻 다가가지를 못하기에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에라스무스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기의 교육이란 바로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고전이란 그리스, 로마시대의 저작들을 말한다. 책은 헌사, 개요, 본문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헌사는 에라스무스가 자신이 가정교사로 가르쳤던 토마스 그레이에게 쓴 편지로 인문학을 공부할 때는 계획과 순서가 중요함과 기왕의 시작한 일은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로 되어 있다. 개요는 세인트 폴 스쿨의 설립자인 콜레트에게 보낸 편지형식의 글로 지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쓰고 있다. 세상에는 사물에 대한 지식과 언어에 대한 지식 두 종류가 있으며, 언어에 대한 올바른 능력을 기르고 나서 사물에 대한 이해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언어란 라틴어와 그리스어이다. 본문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에 대한 글이다. 말 그대로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교육방법론인 셈이다.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가 있다. 제목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이지만 내용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법이라 할 수가 있다.

- 박식한 교사를 구하라

- 문법은 꼭 필요한 것만 공부하라

- 어려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시작하라

- 좋은 글을 읽으며 올바른 언어습관을 형성하라

- 고전 강독 사이사이 언어학습을 병행하라

-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배워라

 

이렇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첫 문장에서 말했듯이 뛰어난 교사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닐 것 같다.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대로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자질을 읽다 보면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교사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올바로 배우고 배운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일단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정통해야 하고 고전을 원전으로 읽고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교육에 대한 정의와 방법이 다른 지금, 에라스무스가 살았던 시대의 교육방법이 옳은지 혹은 지금도 필요한지는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교육현실에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로 치부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헌사에 나오는 한구절의 말을 머리에 담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서양고전을 한 권 한 권 찾아서 읽기로 마음먹었지만 점점 그 시간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본다. 또 에라스무스는 글쓰기에 대해서 가장 좋은 문체는 자신의 펜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이는 글쓰기가 부단한 연습의 산물임을 말하는 것 일 게다.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최선을 다하라 평범한 한마디, 어쩌면 진부하기조차 한 이 한마디가 마음에 남는 이유는 고전을 공부하는 일은 에라스무스가 살았던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그 필요성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지 싶다.

k*****1 2019.03.25. 신고 공감 1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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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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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에라스무스/김성훈인간사랑/2019.3.15.sanbaram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의 인문학자로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수도원에서 자랐다. 스무 살 무렵 수도사로서 서원하였고,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예 연구에 몰두하여 ‘보다 인간적인 학문과 예술’을 추구하는 인문주의 운동을 주장하였다. 그가 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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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에라스무스/김성훈

인간사랑/2019.3.15.

sanbaram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의 인문학자로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수도원에서 자랐다. 스무 살 무렵 수도사로서 서원하였고,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예 연구에 몰두하여 보다 인간적인 학문과 예술을 추구하는 인문주의 운동을 주장하였다. 그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일이 바로 교육이었다.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아이들이 어떻게 고전을 읽어야 하고 교사들이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저서로 격언집>, <우산예찬>, <자유의 지론등이 있다.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에라스무스가 파리 가정교사 시절에 토마스 그레이에게 쓴 편지이다. 두 번째는 에라스무스가 콜레트에게 송부한 편지 형식의 글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이다. 에라스무스는 콜레트의 부탁을 받고 고대의 저작들을 올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그의 논고를 저술하였지만, 그는 이미 파리 가정교사 시절부터 이 주제를 가지고 노르트호프의 아이들은 물론 영국인 학생들과도 서신 교환을 하였다. 이 책에서는 헌사, 개요, 본문으로 구분해 놓았다.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모두 가르쳐야 한다.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거의 모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여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언어는 뿌리가 같아서 따로 배우는 것보다 함께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p.28)” 최소한 라틴어는 그리스어와 함께 배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한 올바르게 말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들과 즐겨 대화하고 문체가 훌륭한 사람들의 글을 자주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내 말은 자주 보고 익혀야 기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록 이런 방법들 각각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을 함께 사용하면 지식 축적에 대단히 유익하다.(p35)” 반복해서 공부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설명하면서 반복하라는 말을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다른 사람을 가르쳐보면 확실하게 익힐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그것을 가르쳐 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르치면서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된다. 현대 교육이론에서도 이 방법에 동의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사람은 처음부터 가장 좋은 것만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정통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각 교과의 핵심적인 내용들이라도 숙지하고 있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지리학은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지리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 역사는 매우 광범위하게 쓰인다. 시인들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 작가치고 문체가 매우 뛰어났던 프루텐티우스를 이해하려면 성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야 한다.(p.41)” 간단히 말해 군사, 농업, 음악, 건축을 망라하여 지식의 어느 한 영역도 고대의 시인들과 웅변가들을 이해하는데 유용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저서가 고전이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1. 박식한 교사를 구하라. 2. 문법은 꼭 필요한 것만 공부하라. 3. 어려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시작하라. 4. 좋은 글을 읽으며 올바른 언어 습관을 형성하라. 5. 고전 강독 사이사이 언어 학습을 병행하라. 6.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배워라.’ 등의 여섯 가지를 강조 한다. 교사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잘 가르칠 수 있어야 어린이가 일찍부터 두 언어를 바르게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언어는 사물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지만 언어에 대한 지식인 기본문법을 먼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기본적인 문법을 공부한 뒤에 말하기 연습을 할 때는 대화와 독서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또한 문체가 뛰어난 사람들의 글을 자주 접하고 스스로 글을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 한다. 언어학습을 마무리하고 나서는 고전 강독 단계로 넘어가는데 현재의 구절을 읽고 해석하는데 적합한 것들만을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강독의 즐거움을 위하여 가끔씩 여담을 섞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에라스무스는 고전을 읽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저자를 간단히 소개한 뒤에 그의 주장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 좋고 유익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만약 작품 해석을 둘러싼 이견이 있다면, 교사는 아이들에게 그것들 각각을 설명하고 서로 간의 차이를 일러주어야 한다.(p.163)” 또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문학 작품의 장르별 특성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경구는 수사적 감탄을 자아내는 재미가 있고, 비극의 본질은 감정의 분출에 있으며, 희극의 묘미는 인물 묘사에 있다는 식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고전공부 방법을 제시 하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에 적용해도 무리 없는 방법이기에 효율적인 고전교육방법을 구하는 이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적극 추천한다.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달의 사락 k******4 2019.03.25. 신고 공감 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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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학생들을 가르칠 준비가 된 선생이 먼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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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교사의 일과'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공교육에서도 그렇지만 사교육도 매한가지다. 어렵사리 임용고시를 패스하고 첫 학교로 부임한 선생님들을 맞이하는 공교육현장은 살벌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니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좋아 '두 번째 담임선생님'이 되고자 학원강사든 공부방선생이든 방문교사든 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두 번째'가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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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교사의 일과'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공교육에서도 그렇지만 사교육도 매한가지다. 어렵사리 임용고시를 패스하고 첫 학교로 부임한 선생님들을 맞이하는 공교육현장은 살벌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니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좋아 '두 번째 담임선생님'이 되고자 학원강사든 공부방선생이든 방문교사든 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두 번째'가 아니라 '열두 번째' 선생이 되고 마는게 사교육'시장'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낭만은 둘째치고 아이들을 바르고 유능한 인재로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보탬이 될만한 지식을 자신이 먼저 배우고 익혀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선생님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이란 직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선생들에게 '수업'은 기본이다. 학교현장에서 벌어지는 '행정실무'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담임이라도 맡으면 '제자들'이란 이름의 '혹'들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말 잘 듣는 학생들만 예뻐하는 속 좁은 선생이라고 욕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초능력이라도 생기지 않으면 해낼 수 없을 것처럼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웬수들과 1년을 보내는 건 지옥훈련이 따로 없을 것이다.

 

  사교육선생도 마찬가지다. 방과후에 일과가 시작된다는 점만 다를 뿐, 이들도 밤샘을 하며 수업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부담은 셈셈이다. 공선생들이 '행정실무'에 들볶인다면 사선생들은 '학부모상담'과 '학원장미팅'에 들들 볶여야 한다. 사선생들은 '학생수'가 곧 자신의 월급이자 수입의 전부이기 때문에 학부모상담을 하다 삐끗해서 놓치기라도 하면 밥줄이 간당간당해진다. 거기다 수업이 재미없다거나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라도 받을라치면 상사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해야 상책이다. 거기다 '홍보'를 대신 해주는 담당부서가 없다면 그 몫도 고스란히 사교육선생의 몫이다. 학교앞에서 매번 돌리는 사탕과 마이쮸,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 같은 홍보물품비용도 전부 선생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탕만 빼먹고 버려지고 발자국이 선명한 전단지를 보면서, 또 학교관리자들이 고래고래 내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청소를 할 때면 선생이라는 자존심마저 꺾어야 견딜 수 있다.

 

  그럼에도 공선생이나 사선생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행복 하나로 버틴다. 교사로서의 자존심보다 아이들이 "선생니임~"이라고 저멀리서부터 뛰어오는 모습을 보며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한다. 그리고 다시 다짐을 한다.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선생들 나름대로 열심인 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열심히 하는 '방법'이란 것이 '아이들 성적만 올려주면 돼'라는 식이어서 조금 곤란하다. 정말로 아이들의 성적관리만 잘 하면 만사 오케이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물론 좋은 성적을 받아야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좋은 성적으로 끌어올리는 몫은 선생이 아니라 학생 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선생이 아무리 유능해도 끝내 해내지 못하는 것이 '물가까지 끌고 온 말에게 물을 억지로 먹이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결과는 학생 자신의 몫이다. 그런데 많은 공선생과 사선생들이 자신 덕분에 아이들 성적이 올랐다면서 착각을 하고 있다. 설령 '시험에 나오는 것만 쏙쏙 가르쳐서 족집게처럼 잘 찍어내는 용한 선생'이라 하더라도 학생 스스로 싫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선생은 언제나 '스스로 하려는 학생'을 도와줄 수 있는 준비를 해놔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방법론>이란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에라스무스는 15~16세기에 살던 유럽사람이라서 책내용은 '고전철학'과 '신학'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러함에도 에라스무스가 지적하는 <교육방법>은 오늘날에도 귀기울여 들을 만 하다. 첫째, 박식한 교사가 되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잘 배우려면 선생이 똑똑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선생이 먼저 '시험에 나올 건만' 미리 공부하고서 그것만 달달 외우도록 가르치는 선생을 똑똑하다 할 수는 없을테니 잘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에라스무스가 박식한 교사를 운운한 까닭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적절하게 가르칠 수 있는 유능한 교사를 말한다.

 

  둘째, 언어를 공부하라. 당시에는 라틴어가 학문을 하는 언어였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어를,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어를 썼다. 그렇기에 언어를 공부하라는 에라스무스의 조언은 '학문할 수 있는 언어'를 배우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당시 많은 학자들이 오직 라틴어만 공부하는데 반해서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동시에 공부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는 그 당시의 많은 서적이 라틴어로 쓰여져 있으나 '고대서적' 같은 경우에는 '그리스어'로 적혀 있는 것이 더 많으니 학문을 연구하는데 '언어'로 어려움을 겪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더 나아가 '암흑시대'라 불렸던 중세에는 그리스어로 된 고대문서도 상당부분 잃어버리고 '이슬람세력'이 팽창했을 때 이슬람으로 흘러들어갔다 뒤늦게 유럽으로 되돌아온 책들 중에는 '아랍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해놓은 문서들이 많으니 그리스어를 배워두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라틴어'를 배우기에 앞서 '그리스어'를 먼저 익히면 더욱 수월하기 때문에 그리하라고 조언하였다.

 

  셋째, 문법만 공부하지 말고 말하기 연습에 더욱 정진하라. 언어를 공부하면서 문법을 배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려운 문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다고 지루할 정도로 문법 공부에만 매진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경고이자, 언어를 공부하면서 '말하기'에 유창하지 못한다면 배우나 마나한 것과 마찬가지일테니 꾸준히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의 어학공부에도 참으로 유용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넷째, 언어를 유창하게 배웠다면 훌륭한 '문학'을 읽어라. 문학은 언어공부의 마침표에 해당한다. 또 좋은 문학으로 언어를 갈고 닦으면 '유창함'에 '세련미'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란 바로 이를 일컫는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어학공부와 더불어 문학읽기를 병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외국어교육이 종종 실패하는 까닭은 바로 이를 실천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어공부에 숙달되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면 <고전>을 읽어라. '화룡점정'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서울대학에서 인문학고전을 선정해서 읽으라고 권한 것은 매우 유명하다. 그러나 이를 실천한 학생들은 거의 드물다. 왜냐면 <고전>이란 책이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도 <고전>읽기를 학생들 스스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라도 선생들이 먼저 읽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고전>의 깊이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학생들 스스로 <고전>을 읽어낼 수 있는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숨이 막혔다. 교사가 준비할 것이 너무나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박식해야 하고, 언어에도 능통해야 하며, 학생들이 막히는 부분을 술술 풀어줄 '눈높이 교사'여야 하기 때문에 '문학'과 '고전'에도 해박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교사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도 너무나 방대하고 버거운 일이 아니냔 말이다. 그럼에도 교사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에라스무스는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제자가 훌륭하기만을 바라지 말고 먼저 훌륭한 교사가 되어서 훌륭하게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반면에 나의 노력이, 또 나의 고생이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이 짊어질 '무거움'을 덜게 해줄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선생이라면 말이다.

 

예스24를 통해 인간사랑 서평단의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9.04.05. 신고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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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와 글쓰기를 강조한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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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출신의 인문주의자로, <신약성서>를 최초로 편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문학이 발달한 이탈리아 학자들이 개척한 문헌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신학 연구를 통해 비판적 방법론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당시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형식에 치우친 교육방식을 지양하고 인간성을 중시하고 고전 읽기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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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출신의 인문주의자로, <신약성서를 최초로 편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인문학이 발달한 이탈리아 학자들이 개척한 문헌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신학 연구를 통해 비판적 방법론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당시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는데형식에 치우친 교육방식을 지양하고 인간성을 중시하고 고전 읽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등 인문주의적인 교육과정을 강조했다그는 문예부흥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학자로서당시의 교육이란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일로 여겨졌다때문에 당시의 중요한 고전들을 읽기 위해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했다

 

이 책의 라틴어 원제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방법’이며, 대체로 교육방법론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자신이 쓴 이 책의 초고를 세인트 폴 스쿨의 존 콜레트에게 보냈고,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파리에서 불완전한 형태로 출간이 되었다이후 에라스무스의 손길을 거쳐 약 1년 후 파리에서 정식으로 이 책이 재출간되었다번역자에 의하면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첫 번째는 가정교사로 가르쳤던 토마스 그레이에게 쓴 편지이며두 번째는 콜레트에게 쓴 편지이고마지막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교육방법론의 본문에 해당한다번역자는 편의상 각각의 부분을 헌사와 개요그리고 본문으로 구분해서 편집했다고 한다. 나아가 책의 앞 부분에 에라스무스의 생애를 덧붙이고부록으로 그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제시해 놓았다특히 부록으로 덧붙여진 편지들을 통해서, <교육방법론의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에라스무스는 개요에서 두 종류의 지식에 대해 논하면서그것이 사물에 대한 지식과 언어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리고 순서로는 언어에 대한 지식이 앞서고중요하기로는 사물에 대한 지시기 앞선다고 주장한다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말과 사물을 동시에 배우고그것도 가장 뛰어난 교사로부터 배운 사람만이 두 지식 모두에서 탁월함을 보인다고 하였다즉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 이해된다또한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이는 고전 읽기를 중시한 그의 교육방법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다양한 학자들의 저술을 읽을 것을 권하고이와 함께 올바르게 말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말쏨씨가 뛰어난 사람들과 즐겨 대화하고 문체가 훌륭한 사람들의 글을 자주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실상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논하고 있는 본문 역시 이러한 방법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다양한 학습 방식에 대해서 소개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오늘날과 달리 당시의 교육이란 좋은 고전들을 찾아서 폭넓은 지식을 소화하고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서 자신이 가진 학문적 지식을 펼치는 것이 요체였던 것이다에라스무스는 어떤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그것을 가르쳐 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으며, ‘실제로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하고가르치면서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이러한 그의 주장은 지금의 교육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본문은 분량상으로도 그리 길지 않지만부모들이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으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고전 읽기를 강조했던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은 당시의 교육 현장에 큰 영향을 미쳐수사학과 논리학을 중시하는 등 이전까지의 형식적인 교과과정을 변화시키는데 일조를 했다에라스무스는 다양한 사상이 만개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서신학과 인문학 등에 끼친 영향을 고려할 때 유럽 문화의 자유주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비록 세분화된 오늘날의 학문분야에 그대로 적용시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방법으로 채택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즉 말하기와 글쓰기를 강조하는 그의 교육방법은 인문학적 지식의 함양과 고전 읽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차니)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19.03.22.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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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교육과 교육관을 위해 도움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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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때부터 현재까지-이제는 그 친구를 알고 지낸 세월이 더 많아진- 오래 됐으면서도 가장 친한 친구가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덕분에 위대한 교육철학자들을 꽤 많이 알게 됐다. 페스탈로치, 루소, 에라스무스까지...또 친구의 와이프가 지나친 독서광이라 이런 책을 많이 읽고 이야기를 한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이라는 명저를 통해 고등학교 윤리책에도 등장하니, 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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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때부터 현재까지-이제는 그 친구를 알고 지낸 세월이 더 많아진- 오래 됐으면서도 가장 친한 친구가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덕분에 위대한 교육철학자들을 꽤 많이 알게 됐다. 페스탈로치, 루소, 에라스무스까지...

또 친구의 와이프가 지나친 독서광이라 이런 책을 많이 읽고 이야기를 한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이라는 명저를 통해 고등학교 윤리책에도 등장하니, 나같은 문과생으로 한 때 철학을 전공할 뻔 했던 바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다였다. 에라스무스가 교육방법론을 저술한 것 까지만 알았지만

_사실 이정도도 일반인에게는 높은 수준이지 않을까, 나름 한국의 똘똘한 사람들을 모아놓았다고 하는 직장에서 이 책이 책상위에 올려져 있자, 에라 뭐?? 이건 누군데? 이런 책을 왜 보냐? 등등 많은 질문과 질타를 받았다_

이 책을 통해 그의 진면목에 대해, 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의 인문학자다. 수도원에서 자라면서 1495년(조선 연산군시대다. 엄청 오래전 인물이다)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했고, 1499년부터는 영국에 머물며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비평판을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그는 당대 가톨릭교회에 비판적이었고, 향후에 벌어질 종교개혁에 불을 지필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지만, 끝내 가톨릭을 저버리지는 않아서 구교와 신교 양측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그는 스위스 바젤에서 학문적 저술작업을 많이 했다. 실제 개혁 운동보다는 자신은 저술과 연구를 통해서 진정한 교리에 도달해야겠다고 생각한 듯 하다.

저서에는 <격언집>, 명저라고 불리는 <우신예찬>, <자유의지론> 등이 있다.

 

나는 이런 책을 볼 때 역자를 중시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자가 외국에서 공부해서 언어에 능통하되, 이 책의 전문분야에 종사해서 서양철학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학자가 이런 책을 번역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학을 잘해도 전공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미묘한 학문적 뉘앙스나, 놓칠 수 있는 부분, 또는 오류가 적을 것 같은 믿음 때문인데, 역자인 김성훈 교수님은 강원대를 졸업하고,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 교수로 서양교육사 연구와 서양교육고전 번역에 많으 노력을 하시는 분이다. OK, 일단 저자는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탁월한 것 같다. (물론 내가 원문을 알 수 없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은 중역본 인 것 같다. 원문을 번역한 것이 가장 좋지만, 믿을만한 중역본 또한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어설픈 원문 지식보다는 여러 번역본이 나와있는 영어 중역본이 좋을 수도 있다. 이 책은 브라이언 맥그리거가 영역한 것을 다시 번역했다.

이 <교육방법론>은 에라스무스가 일필휘지로 다른 교육 논고들처럼 단숨에 써내려가면서도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그가 가진 교육적 철학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초반부는 에라스무스의 생애에 대해 역자가 알려주고, 교육 방법론에 대해서 알려준다. 먼저 말과 언어를 제대로 배우고, 좋은 글을 자주 접하라고 일러주는 부분이다.

이는 저자가 직접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운 것처럼 언어야말로 학문에 있어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역서를 볼 때 굳이 역자를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언어로 작성된 글은 다른 생각과 관점이 있기 마련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다 풀 수 없는 전공자가 알 수 있는 그 뉘앙스가 분명 있다.

 

이 저자도 옛날 고인(古人)이지만, 이 고인이 더 고인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주옥같은 말이 많이 있고, 많은 그리스, 로마, 중세 철학자들이 나온다.

일례로

 

 "우리 시대에는 사람을 돈이 아닌 인품을 보고 고르는 일이 이미 옛 풍습이 되었다." 맙소사, 1500년에도 이렇다니!!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유사하다.

소크라테스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을 진중히 훈계 했고, 카토도 미각이 지성을 앞서는 자를 크게 나무랐다." ---45P

  

저자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저서 무려 여덟권 분량의 <잠언집>을 냈을 정도로 과거의 고사와 명언, 교리에 밝은 사람이다. 이는 마치 동양에서도 여러 흩어져 있던 역사를 편찬한 사마천의 사기나 사마광의 자치통감처럼 주옥같이 흩어져 있는 사실, 말, 격언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또 그것을 후대에 물려주는 진정한 위인의 책무라고 생각했다.

최근 원전으로 번역된 책을 많이 보는데, 그 위대한 작업을 해준 선인들에게 먼저 감사하고, 그를 또 오늘날 한국어로 번역을 많이 해주시는 <인간사랑> 출판사와 관계된 많은 역자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에라스무스는 말을 익히고, 문법을 익혀서 고전을 강독하라고 한다. 오늘날의 인문학 수업과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솔직히 이 책을 일반인이 읽어나가다보면 "아,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또는 "왜 이렇게 어렵지?" 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것은 비록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런 것은 이런 것대로 흘려 보내면 되고, 그 안에 있는 정수, 진리만 제대로 내 것으로 가져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에라스무스가 살았던 시대는 바로 르네상스 시기다. 다시 사람을 향해 돌아간다는 그 르네상스 시기에 성직자로, 배운 사람으로 에라스무스는 그의 교육철학을 남기고자 했다.

 '말을 익히고, 문법을 만들어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일’이 바로 교육이었다. 에라스무스의 이 <교육방법론>은 학생들이 어떻게 고전을 읽어야 하고 교사들이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오늘날에게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De ratione instituendi discipulos)은 아래 6문장으로 정리 할 수 있다.

 - 박식한 교사를 구하라.

 : 에라스무스는 교사가 성실하고 박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비록 많은 악명

은 교사들한테 배울지라도, 자신이 제안한 방법으로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을 펼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68P
 - 문법은 꼭 필요한 것만 공부하라.

 : 문법을 익히라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이것을 장황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참된 스승같다. 내가 예전에 다닌 대학교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법

서는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유달리 어려운 책이 있다. 교수님은 그런 책은 본인이 

모르기 때문에 어렵게 쓴다고 했다. 본인이 잘 알면 누구보다 쉽게 술술 익히는 책

이 나온다는 것이다. 절절히 동의한다.
 - 어려서부터 말하기 연습을 시작하라.

 : 말하기가 가장 먼저라고 에라스무스는 말하고 있다. 
 - 좋은 글을 읽으며 올바른 언어 습관을 형성하라.
 - 고전 강독 사이사이 언어 학습을 병행하라.
 -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배워라.

 

아래는 가장 감명깊게 읽은 구절이고, 절친인 교사 친구에게 알려주고 싶은 말이다.

 

 비록 모든 것을 언제나 완벽하게 전달할 수는 없지만, 교사는 학생들의 마음을 처음부터 가장 좋을 것들로 길들이면서 그곳에 무료함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교사는 중요하다 싶은 것이 나오면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교사는 또한 어떤 것을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제대로 학생들의 마음에 심어주었는지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이것은 교사에게 참으로 귀찮고 힘든 일이지만, 학생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일이다. 교사는 단순히 수업의 전체 개요만 짚고 넘어가지 말고,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논점들을 확인해야 한다.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정확히 재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중간에 힘들고 어렵다고 그만두지 말고 심지어 한 달이 걸려도 끝까지 해야 한다. ---67 ~ 68P

 

친구에게 내일 바로 카톡을 보낼 것이다.

공교육이 무너지는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말 같다.

학생을 탓하기 전에 선생님 먼저 노력해야 하고, 현명한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물론 학생도 어렵고 힘들더라도 근성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은 뒷부분은 에라스무스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나온다.

 

재밌는 부분이 있어 마지막으로 남긴다. 정말 위트있는 표현이었다.

 

 추신 : 내 펜의 새로운 잉크색에 놀라지 마라. 원래 연인들간에는 '피'로 글을 쓰는 법이란다! 잉크가 떨어져서 오디 즙을 썼더니 이 모양이다.

---친구 토마스 그레이에게 보내는 편지 中 ---118P

  

연암 박지원도, 다산 정약용도 이러한 편지 글에서 그의 진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에라스무스도 다양한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에서 그의 참모습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참 비슷하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에라스무스가 낯설 수 있다. 또 왜 이런 책을 오늘날 읽어야 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바로 위에 답이 있다.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비슷하고, 그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역사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많다.

비록 시대가 바뀌고, 에라스무스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 속에는 사람이 있다.

 

아직은 알파고 그림보다는 피카소의 그림이 더 멋있게 보이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전에서 지혜를 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회사 택배실의 착오로 책을 조금 늦게 받았고, 또 읽는 내내 어려움이 있었지만 의미있는 독서였다.

이런 고전이 책을 판매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일에는 어려울텐데 매번 어려운 작업을 해주시는 <인간사랑>과 많은 학자님들에게 감탄을 보낸다.

 

* 인간사랑 출판사의 책을 제공받아 성실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d*****2 2019.03.31.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르네상스 학자 에라스무스에게 배우는 인문고전 읽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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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1466~1536)는 케임브리지에 머물면서 세인트 폴 스쿨의 설립자인 존 콜레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교육방법론 초고를 동봉했다. 이때가 1511년 9월이었다. 정식본은 1512년 7월 파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콜레트의 부탁을 받고 고대의 저작들을 올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나는 가르칠 내용이 한 줄에 불과한 사람에게도 오랫동안 전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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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1466~1536)는 케임브리지에 머물면서 세인트 폴 스쿨의 설립자인 존 콜레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교육방법론 초고를 동봉했다. 이때가 1511년 9월이었다. 정식본은 1512년 7월 파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콜레트의 부탁을 받고 고대의 저작들을 올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나는 가르칠 내용이 한 줄에 불과한 사람에게도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백과사전적 지식을 폭넓게 공부할 것을 권한다. 당장 작가들의 목록을 쭉 펼쳐놓고 최고로 손꼽히는 것들을 찾아 읽어라. 그러나 평범해 보인다고 어느 하나 빠트려서도 안 된다. 이러한 연습의 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해 미리 연습장을 준비하여 적어둘만한 것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적당한 지면에 옮겨 놓으면 좋다. 시간이나 책이 부족한 사람에게 플리니우스는 그야말로 정보의 원천이다. 그밖에도 마크로비우스와 아테나이오스가 많은 양의 정보를, 그리고 겔리우스가 다양한 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먼저 읽을 것은 언제나 고대인들, 그 중에서도 그리스인들의 원전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최고의 철학 교사들이며, 플로티노스는 이들 양대 학파를 하나로 결합한 인물이다. 종교적인 저술가들 중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오리게네스만큼 능숙하게, 크리소스토무스만큼 매혹적으로, 바실리우스만큼 독실하게 글을 쓴 사람도 없다. 암브로시우스는 은유의 명인이었고, 히에로니무스는 성서 지식이 해박했다. 이들을 개별적으로 다룰 시간이 없다면, 전체적인 풍미라도 음미하라. 그렇다고 내가 지금 완벽한 독서목록을 작성하려는 것은 아니다.” - 37~38쪽

 

안재원 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에 따르면 에라스무스가 르네상스(1300~1600년) 중흥기 때 뿌린 고전문헌학의 씨앗은 17세기 프랑스에서 리샤르 시몬(1638~1712)과 장 마빌론(1632~1707)에 의해 찬란하게 꽃피게 된다.

리샤르 시몬은 1689년 신약성경의 사본전승사 연구를 착수, 문헌전승사에 대한 학문적인 체계를 선보였다. 이렇게 시작된 문헌 연구는 그로부터 300년이 지나 파울 마스의 문헌계보도론으로 발전한다.

장 마빌론은 생 제르망 출판사에서 43년 동안 근무한 출판인으로, 이 기간 중에 ‘고문헌에 대하여(De re diplomatica)’를 저술한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한 것으로 고문서학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서양고전문헌학은 파리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 무렵 영국의 리차드 벤틀리(1662~1742)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학제간 연구를 펼쳤다. 그는 호메로스 에 관한 문헌학, 언어학과 운율을 연구하는 한편, 보일, 로크, 뉴턴 같은 학자들과 매주 한 차례 콜로퀴움을 열었다.

 

 왼쪽부터 빙켈만, 하이네, 훔볼트

 

독일에서 빙켈만(1717~1768), 하이네(1729~1812)와 훔볼트(1769~1859)로 이어지는 ‘교육과 연구의 결합’은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이 완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하이네는 연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괴팅겐대에서 도서관장으로 재임하면서 장서 20만 권을 수집했다. 하버드대기 도서관을 건립할 때 괴팅겐대 도서관을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괴팅겐대는 이후 4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연구와 교육의 결합이 어떠한 결실을 안겨주었는지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자 여기까지 왔다면 에라스무스에서 하이네까지 이어져 온 지적 전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수도원에서 자라면서 학문을 연마해온 에라스무스에게 수도원식 독해와 암기 중심의 강의와 교육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비록 에라스무스는 3학(문법·논리·수사)과 4과(산술·기하·천문·음악) 등 7자유학예에 큰 방점을 두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한 차원 높은 인간 정신의 고양을 원했다.

이에 인문주의의 부흥을 위한 방편의 하나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통해 인간과 자유정신을 배울 것을 제창했다. 에라스무스의 지적 전통은 하이네에 와서 교육과 연구의 통합 정신으로 이어져 학문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오늘날 자못 큰 의의를 지닌다. 그는 파리에서 뤼벡의 상인 노르트호프의 두 아들과 영국인 두 학생의 가정교사로 활동하면서 생계도 유지하는 한편, 자신의 교육철학과 방법론을 실천할 수 있었다.

 

라틴어 원서 ‘De ratione studii ac legendi interpretandiqi auctores’

 

에라스무스는 당시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라틴어를 구사한 것으로 유명했다. 부록에 첨부된 15통의 편지(10통은 자신이 가르치던 세 학생들, 나머지 5통은 존 콜레트)를 보면 자신의 교육철학 뿐만 아니라 편지글의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애썼다. 비록 영역본을 우리말로 옮긴 중역이어서 에라스무스의 라틴어(라틴어로 쓰인 이 책의 원제는 ‘De ratione studii ac legendi interpretandiqi auctores’) 솜씨를 엿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참고로 라틴어 원문은 구글에서 검색해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라스무스가 강조한 교사의 자세에 대해서도 귀담아 들으면 좋겠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음과 같이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다. 비록 모든 것을 언제나 완벽하게 전달할 수는 없지만, 교사는 학생들의 마음을 처음부터 가장 좋을 것들로 길들이면서 그곳에 무료함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교사는 중요하다 싶은 것이 나오면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교사는 또한 어떤 것을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제대로 학생들의 마음에 심어주었는지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이것은 교사에게 참으로 귀찮고 힘든 일이지만, 학생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일이다. 교사는 단순히 수업의 전체 개요만 짚고 넘어가지 말고,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논점들을 확인해야 한다.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정확히 재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중간에 힘들고 어렵다고 그만두지 말고 심지어 한 달이 걸려도 끝까지 해야 한다.” - 67~68쪽

 

오늘날에도 기꺼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금과옥조가 아닐 수 없다. 르네상스 시대 고전을 어떻게 읽고 무엇을 배워야할지 세세하게 언급한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론은 오늘날 인문학 고전 강독을 위해서도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믿는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9.03.26.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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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므스가 권하는 고전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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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기의 교육법이 어쩌면 시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학습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엄밀히 말하면 공부법이란 교수법이겠지만 21세기 요즘에도 학부 커리큘럼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학습법처럼 순수하게 고전만을 읽고 연구하는 것만으로 평가하는 정규 학부가 학교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존재하고 있다.원 제목이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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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기의 교육법이 어쩌면 시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학습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엄밀히 말하면 공부법이란 교수법이겠지만 21세기 요즘에도 학부 커리큘럼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학습법처럼 순수하게 고전만을 읽고 연구하는 것만으로 평가하는 정규 학부가 학교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존재하고 있다.


원 제목이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방법""에라스무스가 권하는 고전공부법"

은 에라스무스와 토마스 그래이와의 첫번째 서신과 콜래트와의 두번째 서신, 마지막으로는 고대의 저작물들에대해 저자만의 교수법 정도를 연구한 서신을 공식적으로 출판함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저자가 주장한 중요한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학습과정과 단계, 논쟁과 설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본문을 읽어보면 전체적인 문장과 표현문구가 지극히 저자만의 생각, 사유함을 그대로 글로 나타내 마치 선생님이나 형이 옆에서 자르치는것같은 느낌이 든다는것을 알수 있다. 인문학적으로 인류의 황금기였던 르네상스, 루터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질만 하다고 생각했던 에라스무스는 아마도 자유주의자였듯 싶다.


의미있는 파트인 에라스무스의 고전공부론에서는 다섯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1. 훌륭하고 성실하며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교사로부터 올바른 교육울 받게하라.

2. 언어와 사물에 대한 지식(문법)을 공부하라.

3. 대화와 독서 등 말하기 연습을 해야한다.(선생님과의 눈을마주한 대화가 중요) 

4. 말을 할 수 있다면 고대의 문학작품 등 좋은 글을 읽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시킨다. 

5.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르쳐라. 

    즉 글에대한 저자의 주장, 가설, 좋은 점, 유익한 점을 가르친다.


고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현대사회속에 아마도 장래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에서는 교양과목으로 기본학점까지는 안되겠지만 1학점 짜리정도는 되지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부법 측면에서도 교수법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꺼리가 큰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추억이지만 오래 전, 운칠기삼이란 단어를보며 인간에게 어떤 선택이나 행동, 미래로의 여정에 있어서 신이든 운이든 자신이든 그 결과에 과연 얼만큼의 결정적인 의지와 책임을 가지는가에대한 궁금증으로 매력적인 단어였던 자유의지에 반해 관심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영원히 해석하기 나름인 논쟁거리지만 그 와중에 뼈속까지 종교주의자였던 루터와 논쟁 상대로 에라스므스라는 이름을 접했고 그때의 개인적인 평가로 루터의 주장도 조금 이해가 가지않는 면이 있었지만 그를 고집이 상당한 이기적인 노학자로 평가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후, 고집과 이기심이 결코 예의, 겸손, 배려, 사랑 등에 비추어 밀리는 덕목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인간이 끝까지 가져야 하는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작년에 출간된 에라스무스의 아동교육론과 더불어 선생님이나 교대를 지망하는 장래 선생님이라면 한번쯤은 연계해서 꼭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공부하는 방법에대한 소회를 에라스무스가 친구 틸레에게 보내며]

마음에 들면 따라해보고 그렇치않으면내가 들인 수고라도 혜아려주기 바란다.

기왕 시작한 일이니 최선을 다하라.

당신의 고귀한 태생에 뛰어난 학문의 빛을 더하라. [3월15일 런던에서]


c**********y 2019.03.3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