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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 시대에 다양한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AI 인공지능이 뜨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로봇들이 있습니다. 로봇은 사람과 다르게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매뉴얼 대로 따르는 것 뿐입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과 역할을 대행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인간처럼 학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분야에 사람들을 대체 할 만한 곳에 투입을 시키고 있습니다. 비용 면에서도 상당히 저렴할 뿐만 아니라 정확하기까지 합니다. 그예로 요즘 최저인금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무인기계들이 많은 업종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것또한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단순히 로봇은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맡은 임무만을 다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감정을 가지고 사람들과 학습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냥 고철덩어리가 아닌 상대방에게 실재감을 준다는 느낌을 주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느낌은 단순히 파트너 쪽의 심리적 투영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관계의 시작이 대면관계에서 실제 일어나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사회적 실제감은 대화 내용을 알아듣고 반응하거나 상대를 식별 또는 인지하는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이를 위해선 기존의 인공지능 컴퓨터들이 수행 할 수 있는 정보처리보다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이 요구됩니다. 몸짓,눈빛,신체접촉 같은 다양한 종류의 상호작용들도 연구하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감정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은 소셜 로봇의 성공 유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즉, 정서, 감정, 공감 을 지닌 로봇을 만드는 것 오늘날의 소셜공학의 핵심 과제 입니다. 그렇게 진행만 된다고 하면 영화 her처럼 인간이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에게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처럼 다양한 변화들이 발생할 수 있을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로봇과 함께 공존하면서 공생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전 아직까지 로봇의 세계는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접근하면 언젠가는 사회적 파트너를 만들어 낼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로봇에 대한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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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함께 살기
첨단과학과 지도자 윤리, 로봇철학과 윤리를 가르치는 두 명의 교수가 이 책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과 공존하게 될 미래 사회를 통찰하며 인류는 어떻게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살수 있는지에 대헤서 말해준다. 지금 유튜브에 인공지능 로봇을 치면 구글 로봇과 함께 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하여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고 달리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의 감각과 정서, 감정은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아무리 로봇이 뛰어나도 현재 영혼의 증거도 밝혀내고 있는 요즘 로봇은 로봇일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자 미래에 닥칠 일들이다. 때문에 지금부터 인간사용설명서를 매뉴얼 해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두 명의 저자는 로봇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다양한 미래 로봇들을 그려주고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으로 마음, 감정 그리고 만들어진 공감에 대한 통찰들을 보여 주어 우리 인간들에게 로봇과 공존하는데 있어 지경을 넓게 해주는 역할을 만들어준다. 미래엔 노동은 사라지고 인공지능을 사용한 기계들의 시대는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러나 인간 본연의 상실을 어떻게 진보시켜 나갈 것이며,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소득 불평등은 더할 것이고,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들이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로봇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나가야 한다. 이것은 철학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매우 중요한 도서라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어쩌면 로봇의 등장으로 세상은 인간의 생명에 다시 초점이 맞추어질지도 모른다. 어차피 로봇이라는 것도 인간의 마음을 본따 로봇을 만들수 밖에 없기에 미리 준비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로봇과 공존하여 새로운 문명의 역사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어디로 향하는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저자들의 생각속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4차산업혁에서 인공지능의 현재와 인공지능 로봇의 미래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기에 인간과 기계의 공존속에서 인간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법들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로봇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선 인공지능의 미래속에서 인간만의 특성을 발견하고 살려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정말 센세이션 한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봐도 십년전에 찍은 영화임에도 마치 미래에 만든 영화처럼 줄거리 또한 예언적인 영화였다. 이 책은 다른 인공지능 로봇 도서와 다른 철학과 윤리로 접근하는 실제적인 요소들이 담겨져 있어 로봇이 아니더라도 우리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탐구할 수 있는 귀한 독서다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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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로봇과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고 한다. 가족과 살 수 없는 독거노인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도 하지만 반려로봇과도 생활하는 노인들이 수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과 오랜시간 함께 보낸 반려로봇이 수명이 다했을 때는 장례까지 치러주기도 하는데 실제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렇게 로봇은 이미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예전엔 로봇이라고 하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은 오히려 그 크기가 작아지고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앞으로 더욱 로봇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로봇과 함께 살기>는 인간의 삶을 차지하고 있는 로봇에 관한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인공지능 AI를 가진 로봇을 대리로봇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대리로봇들은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진다. 로봇 스스로 판단해 방안의 온도를 올리고 내리는 등 스스로 측정하고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권한은 미리 만들어지고 정해져 있는 메뉴얼과 같다. 그리고 요즘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로봇들이 많다. 이런 대화가 가능하려면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로봇에 인간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로봇이 태어나면서부터 해 온 질문일 것이다. 로봇이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제작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프로세스 된 결과가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이런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엔 로봇이 가족의 일원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가정의 개념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로봇이 인간화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인간에게 도덕이 있고 규칙이 있듯 로봇들과의 생활에서도 '로봇 윤리'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로봇 윤리는 로봇에게 선과 악의 차이를 가르쳐 도덕적인 기계로 만드는 것이다. 아직은 로봇 윤리학자들의 의견도 나뉘지만 윤리적 규칙을 만들고 도덕적 인공행위자들을 위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인간이 만드는 로봇은 인간을 이롭게 할 수도 있고 해롭게 할 수도 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지는데 로봇이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시대가 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범죄나 부작용을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것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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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4월 29일은 미국 공상과학영화인 마블스튜디오에서 만든 '어벤져스-엔드 게임 (Avengers: Endgame)' 이 개봉하고 5백만 관객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정말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많은 상상력의 세계를 현실적 감각으로 보여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화려한 그래픽 기술들의 발달로 남녀노소 누구나 초인적 힘을 지닌 히어로물에 열정을 보내고, 나와는 다른 세계를 꿈꾸며 대리만족과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 가운데 기존 영웅들과는 다른 차원을 보여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속칭 금수저다. 뛰어난 머리와 자본, 기술력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남들 앞에서 당당한 활동을 펼쳤다. 이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토니 스타크의 가슴에 있는 아크 원자로를 이용한 아이언맨 슈트. 사실 이 슈트는 로봇에 가깝다. 동력을 별도에서 얻는 것 빼고는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거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역시 슈트의 힘이 아닐까 싶다. 아이언맨 슈트는 외골격 로봇에 가깝다. 일본에서도 개발되고 있는 외골격 로봇은 인간의 신체적 운동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쉽게 탈착용으로 제작되어 거부감이 적고, 직접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힘을 적용해 이미 미국 군대에서 보병 이동장비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언맨 슈트는 초창기 탑승형 로봇형태에서 시작해, 점점 슈트는 변화를 거듭해 왔다. 외골격 근육강화에서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거나, 각종 무기를 장착해 나쁜 이들을 혼내주고, 이제는 나노분자 수준으로 진화해 우주까지 날아다닌다. 현실로 돌아와서 이렇게 진화된 로봇과 관련된 흥미로운 책이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로봇과 함께 살기'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희담에서 펴냈다. 저자는 로봇철학, 로봇윤리 철학자인 폴 뒤무셸(Paul Dumouchel) 교수와 루이자 다미아노(Luisa Damiano) 교수가 공동 저술에 참여했다. 책의 중심 내용은 앞으로 개발되는 인공지능이 갖춰진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다양한 시점에서 분석하고 예견하는 책이다. 좀 사회적 관점차원에서 바라보는 로봇이야기는 좀 난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폴 뒤무셸 교수는 캐나다 퀘벡 대학 철학과 교수로, 현재 일본 교토의 리쓰메이칸 대학교의 ‘첨단과학과 지도자 윤리’ 과정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홉스 철학과 인류학적 측면에서의 인간 감정 연구가 주 전공이라고 한다. 루이자 다미아노 교수는 이탈리아 베르가모 대학에서 로봇 철학과 윤리를 연구하고 있다. 영국 소셜 로봇 연구소, 일본 로봇공학 연구소에서 인공감정이입 분야의 연구를 했다.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로봇, 어쩌면 사람만의 상상력의 산물인 공상과학적 산물이 현실화되면 어떻게 될까를 수 년간 연구한 이들의 연구적 저술서답게 일반인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통찰의 날카로운 분석들이 담겨져 있다. 사실, 기술적 진보의 발자국은 성큼성큼 이뤄지는 까닭에 벌써 인공태양을 논의하고, 이를 에너지로 하는 인공행성까지 구상하는 과학적 발전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로봇분야 역시 만화영화에서 보듯 단순한 깡통로봇으로 여겨지던 단순 로봇에서 발전해서 지구를 지키는 아톰, 철인28호, 마징가, 태권V, 건담을 거쳐 우주적 힘을 빌린 변신로봇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속 다양한 로봇군단, 터미네이터와 같은 영화들을 소재로 삼아 기술개발에 몰두했다. 이후 실제 현실로 나타난 아시모, 아이보, 휴보를 비롯한 다양한 현실로봇들은 이제 인간의 감정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인공지능으로까지 발전하기 시작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자율수행로봇들이 바로 그런 앞날을 현실로 다가오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감정과 유사한 로봇들은 인간인가 로봇인가? 사실, 난 로봇에 관심은 있지만 감정이란 부분이 꽤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책에서 역시 로봇공학 가운데서도 인간과 교감하는 정서와 감정, 공감능력을 지닌 소셜 로봇(social robots)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터미네이터와 같은 인간파괴 로봇과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처럼 완벽한 인간화를 갖춘 로봇을 우린 휴머로이드로 구분할 것인가? 사람과 로봇의 차이를 외면하게 만드는 외적인 공감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미 아키라와 같은 만화영화속 로봇형사들은 인조인간과의 사투를 담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수 많은 영화속 로봇들은 자신이 로봇인지 인간인지를 두고 스스로 고뇌하기도 한다. 먼 미래같지만 어느새 다가온 현실이 아닐까? 인간의‘마음’을 로봇이 어디까지 따라할 수 있을까?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로봇이 나왔지만. 생각해보니 난 지금까지 사람과 동일한 로봇에 관한 문제를 철학적으로 고찰해 본 적이 없다. 과학자들은 이미 마음과 생각, 상상력 등 사람의 감각에 관한 부분을 과학적으로 로봇이 따라할 수 있을까를 증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은 전체 5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물론 시작에 앞서 들어가는 말처럼 로봇이란 무엇인지, 왜 로봇인지, 어떤 로봇인지, 자율성과 사람, 로봇의 구분과, 소셜 로봇 또는 로봇과 함께 살기에 관한 설명을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소셜로봇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감성적 교류가 가능한 감성 중심의 로봇이다. 기존 로봇들이 사람들이 하는 단순 반복적 육체작업을 돕는 수준이라면, 앞으로의 로봇은 인간의 감정과 호흡하며 함께 생활하는 동반자적인 로봇을 의미한다. 점점 기술을 발달하고 이제는 사람의 감정과 의도를 파악하는 수준에 이르러,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제1장 대리로봇편에서는 대리로봇의 본질적 특징을 설명한다. 상황인지, 사회적 실재감, 능동적 활동, 사회적 자율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불쾌한 골짜기' 효과부분이 인상적이다. 불쾌한 골짜기는 인간과의 유사성과 인간이 느끼는 호감도 그래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uncanny valley라고 불리며 이는 '거의 인간에 가까운' 로봇에 대해 호감도가 떨어지는 영역을 나타낸다고 한다. 왜 호감도가 떨어질까? 어떤 이는 '인간과 흡사한' 로봇과 '인간과 거의 똑같은' 로봇 사이에 존재하는 로봇의 모습과 행동에 의해 느껴지는 거부감이 존재하는 영역이라고도 말한다. 따라서 불쾌한 골짜기 내에 존재하는 로봇들은 더 이상 인간과 흡사하게 행동하는 로봇으로 판단되지 않고 정상적인 사람과 닮은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종의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들을 보게되면 시체나 좀비, 의수와 같은 느낌의 불쾌감들이 로봇들에게 보이는 일종의 불쾌감을 말한다고 한다. 제2장은 인지시스템의 다양성과 인간의 마음에 따른 사회성에 관한 이야기다. 인공 동물행동학, 동물 심리에 관한 경험철학 , 인지 다원론 또는 마음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 등등 좀 심리적 측면이 강한 파트다. 제3장은 인간의 마음과 사회성,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은 인간만의 특성인가? 앞으로의 로봇들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활동하며,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는 정서회로를 지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4장에서는 소셜 로봇공학으로 만들어진 감정과 정서공조라는 현상을 설명하고, 해설한다. 감정의 고리와 인간-로봇 공조 메커니즘, 본질적 체화와 감정을 지닌 소셜 로봇의 미래 등에 관한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마지막인 제5장에서는 윤리적 살상무기에서 인공적 윤리까지를 짚어본다. 사실 이미 가장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 연구활동과 실전배치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군대, 무기체제시스템이다. 사실, 드론개발이 늦어진 이유중에 하나도 로봇 윤리에 관한 부분이다. 자살드론이라고, 소수의 피해를 위한 드론체계는 또 다른 테러공격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군사용 로봇들이 자율적 무기사용과 스스로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공행위를 감행한다면? 터미네이터에서 처럼 인간은 없어져야할 암적인 존재로, 인간과 로봇의 대결을 다룬 암울한 미래가 현실이 될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읽어 가면서도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상당한 이해력을 필요로 한다. 철학이 그러하듯, 사람의 마음에 관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심리철학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신경과학 등의 인지과학분야의 연구라니, 참 어렵다. 이 책에서 논의되던 소셜 로봇들의 역할과 감정(?), 사회적 역할과 작동원리, 구성들에 관해서는 정말 다양한 논의가 필요할 듯 싶다. 좀 무식한 생각으로는 왜 이리 복잡하고 어렵게 해야만 하는지 싶은 의구심이 된다. 그냥 기계는 기계로만 한정하면 안될까? 굳이 기계를 인간의 영역으로 불러들어와서 윤리적 문제를 만들어야 하나 싶다. 저자가 서두에 말했듯, 로봇으로 불리지는 않지만 믹서기 역시 로봇처럼 버튼을 누르면 동작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이렇듯 인간의 영역이 필요한 반자동화가 좋은게 아닐까? 차라리 사람을 만들어 내는 기계라면 정말 윤리적으로 다뤄야하겠지만 말이다. 군대로봇들에게 왜 인공지능적인 가치판단을 구현하려하는가? 명령만 따르면 되는게 아닐까? 드론으로 공격하는 것은 원격조정하는 사람이 맡으면 되는데, 자율적으로 판단하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되는건 아닐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어쩌면 조정시기를 거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평생 죽지 않는 로봇의 의미는 또 다른 인류의 탄생을 예고하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들이 단연코, 감정을 포함한 가치판단에서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결과를 낸다면 지구상에 인류는 왜 필요할까? 타노스의 건틀렛처럼 절반이 사라져야 균형점을 갖춰나가는 행성시스템이 아닐까?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속에서 한 번 쯤 의문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과학기술과 심리철학, 로봇과 소셜네트워크에 관한 흥미로운 책들을 찾는 다면 이 책이 그 정답이 아닐까 싶다. 사실 단순한 생각에서, 편한 시스템에서 생겨난 로봇들은 이제 인간의 영역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좀 더 윤리적으로 논의하고 생각할 문제를 다룬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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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큰 아이의 꿈은 5살부터 로봇 공학자이다. 꿈이라는 게 쉽게 바뀌는 속성을 지닌 것이라 생각한 나는 어떤 시기가 오면 꿈이 바뀔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TV속 만화로만 보던 로봇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막연한 희열이 아니라, 로봇 디자이너로서의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진로를 설정한 아이를 보니 대견하기도 하다. 덕분에 기계에 무지한 나는 우리집 로봇박사를 통해 적잖은 로봇 관련 지식들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봇 제 3의 원칙 (제 1원칙: 로봇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헤쳐서는 안 된다. 또한 인간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구조해야 한다. 제 2 원칙 : 제 1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 3 원칙 :제 원칙과 제 2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이라던가, 로보틱 챌린지대회에서 카이스트 휴보가 1위를 하다는 소식 그리고 아시모의 은퇴소식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 편이다.
이제 로봇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만 보는 신기한 기계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다. 비단 과학관에 전시된 휴머노이드 로봇 뿐 아니라, 산업용 로봇과 드론, 주방로봇이 인간을 돕고 대신하고 있다. 로봇들의 모습이나 용도는 제각각이며, 이 로봇들은 원래의 목적과 전혀 다른 용도로도 사용 될 수 있다고 한다. [로봇과 함께 살기]는 그간 아이의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보여주었던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보통 로봇 관련 책에서는 기계적, 기술적 특성이나 로봇의 발전과 종류와 기능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리 인간이 로봇이라는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철학적 통찰과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나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첨단 과학의 산물인 로봇을 철학적 관점에서 보아내는 일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가졌다. 그저 기계에 국한된 로봇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 함께 살아나가야 할 위대한 존재로서의 깊은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놀라웠다.
이 책에서는 “소셜(social) 로봇 공학”을 다루는데, 이들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인공 행위자들’로 본다. 그래서 이 책은 로봇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사람의 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기계인 로봇과 인간을 구분 짓는 일은 우리 인간의 본질을 잘 알 때만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닮은 무언가를 창조해 내고픈 욕망이 인간이 로봇을 만들게 한 원동력일 테지만, 인간은 로봇이 인간을 닮을수록 불쾌해진다. 일본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이러한 것을 “불쾌한 골짜기 이론”이라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과 매우 닮았으면서도 뭔가 다른 존재는 갑자기 낯설고 불쾌한 것이 되고 만다.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여러 이유 중에 가장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로봇을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엄밀히 말해 그것이 우리와는 다른 이유에서이다. 우리는 인간보다 우수한 기계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보다 우월하지 않기를 바라며, 타인간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제 가능하고 내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예측 가능하기를 바란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과 로봇이 닮을수록 불쾌한 마음은 극에 달하고, 인간과 로봇이 완전히 같아지거나 그 수준을 뛰어 넘을 때야 다시 로봇에 대한 친밀감은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이 이론을 통해 인간은 우리가 만든 로봇에게 현실너머의 추월적 창조물을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닮은 로봇이 불쾌한 존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선 존재로 친밀함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까? 소셜 로봇공학에서의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로봇의 상호작용, 감정 로봇 공학, 인지 로봇공학, 발달 로봇공학, 등 여러 학제간의 융합 연구의 목적은“ 어떻게 소셜 로봇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행위자들을 인간들의 사회망에 편입시킬까 ?”에 쏠려 있다. 소셜 로봇을 엄연히 인간 행위자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인공행위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의 ‘마음’을 로봇에게 불어 넣을 수는 없을까?”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이 질문이 그들이 이러한 철학적 연구를 하는 근원임을 깨닫는다.
아이들과 몇 년 전 포항 로봇 뮤지엄에 간 적이 있다. 당시 3살이던 둘째 공주는 아기 바다표범인형 로봇을 끌어안고 한동안 쓰다듬고 안아주고 얼굴을 비벼 댔다. 바로 이 책에도 언급된 “파로”라는 로봇이다. 그저 옆에서 살짝 꼬리만 흔들고 몸을 조금씩 움직여 주는 게 다였어도 이미 아이와 파로는 친구가 되었다. 비록 “마음”이 존재 할리 없는 한 낱 로봇이고 아직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기계일지라도 로봇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사람을 닮은 그 무언가를 꿈꾸고 이제 제법 우리를 닮은 로봇이 상용화 될 시기가 가까워진 것처럼, 언젠가 마음을 가진 로봇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기를 당기기 위해 고민하고, 또 그때가 되었을 때 우리가 인간으로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야 할 진짜 인간 속성을 깊이 연구한다. 내가 생각해오던 로봇 공학은 이것과 거리가 멀었다. 화려한 기계적 원리와 세련된 기술적 기법들이 전부였다. 전혀 새로운 시각을 깨닫게 되었다. 새삼 한 분야의 발전이 비단 한 분야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졌다. 인문학적인 진지한 고찰과 과학의 객관성이 적절히 고민되고 조화되어야만 우리는 미래에 수많은 기계들과 슬기롭게 잘 살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로봇과의 조화를 위해 철학적 사고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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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아늑한 색감에 예뻐서 로봇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벼운 인문학에세이 또는 과학에세이 정도를 예상하고 읽었는데, 철학책이었다.;;; 로봇과 함께 살아갈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시대에 인공지능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금 시대에 로봇을 정의하려면 로봇의 윤리를 정의하려면 로봇의 마음을 정의하려면 그 전에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봐야 한다는 책이었다.
저자는 두명 다 철학을 전공하고 한명은 일본의 대학에서 강의중이고 한명은 일본에서 연구를 수년간 진행한 경험이 있는 학자들이다. 철학중에서도 로봇철학 혹은 과학철학을 주요 분야로 연구하고 계신 분들인것 같다. 우리나라는 철학의 학문적 기반이 약한 편인데, 미래철학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 순간 궁금증이 일었지만 알수 없다. 기술적 발전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동반되야 할텐데 일본의 철학적 기반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하고 그렇다. 책은 기정사실처럼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로봇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도와주는 기계는 진작부터 사용되어져 왔다. 하다못해 주방의 믹서기도 로봇이라 할 수 있는 기계지만 우리는 로봇이라 부르지 않는다.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자동화 도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정의부터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AI 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을 가진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율적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진 것을 로봇이라 하는가? 하지만 우리는 로봇에게 결여되길 바라는 특성들이 바로 인간과 유사한 자율성 이라는 측면이다. 인간의 전유물 같은 자율성을 로봇이 가진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로봇이 알아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 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다시말해 우리는 로봇이 자율적이길 바라면서 동시에 자율적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고 책은 주장한다. 소셜 로봇의 연구가 우리는 누구이며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무엇을 가려줄지를, 진짜 자율성이나 의식을 지니고 사고가 가능한 로봇의 탄생이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보다, 인공의 소셜 로봇을 탄생시키려는 우리의 계획이 당장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줄지를, 로봇들에게 공감능력을 심어주려는 노력이 인간의 감정 자체와 감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줄지를, 그리고 마음의 사회적 차원이 마음 자체나 다른 인지시스템과의 관계에 무엇을 가르쳐줄지를. 다시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간이 로봇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 무엇이며, 인간의 정서나 감정 혹은 마음이 무엇인지를 다시말해 인간에 대해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책은 주장한다. 우리는 인공의 존재에게 인간과 닮았으면서도 인간과 다른, 인간보다 못하지만 인간보다 우월한 이상적인 모습을 바라고 있다. 인간이 만드는 로봇을 통해 인간에게 없는 완전성에 다가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로봇과 인간이 흡사하게 여겨질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뇌를 일종의 기호처리장치로 보았던 고전 패러다임이 오랫동안 외면했던 감정이 인지과학 분야의 주요 연구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지능은 이제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지능이 아닌 감정의 문제로 관심이 옮겨져 왔고 로봇에게 그러한 정서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까지 요구할지 혹은 어느정도 까지 가능할지 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소셜 로봇공학은 세상을 변화시킴으로써 인간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주고 인간에 대해 이해하게 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지과학은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다름'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은 이론상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원론적 요소인 '다름'을 강조한다. 소셜로봇에 대한 연구는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이 좀처럼 인정하지 못했던 인간과 여타 지능체의 차이를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만들어주었다. 로봇과 인간은 다르지만 로봇은 인간처럼 만들어져가고 있고, 몸과 정신은 하나이지만 몸과 정신은 분리되어 연구되어 진다. 어쨌든 인간은 자연이나 인공의 여러 인지시스템들로 이루어진 집단 속의 한 인식론적 행위자이다. 소셜로봇공학의 목적은 인간에게 익숙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타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가를 배우고이해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한다. 로봇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공감과 감정이 필수적이다. 로봇과 인간은 어느정도 사회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가? 정서는 무엇이고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인간연구가 먼저일 수밖에 없다. 타자의 마음은 이론상 존재하는 실체이고 나의 마음은 세상의 한 객체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무대가 된다. 이렇게 볼때 현대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이 유아론이나 관념론과 단절됐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마음을 행위자의 뇌나 물질적 메커니즘에 체화하려 하면서도 유아론과 관념론의 기본 개념들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출현하는 지점이면서 정신철학과 인지과학이 외면했던 '사회환경'이란 측면을 연구하는 로봇공학은 '정서'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다. 물질 일원론의 치장 뒤에서 마음과 물질의 이원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감정을 지닌 로봇에 대한 연구는 마음을 비물질적인 실체도 아니요 그렇다고 공간적으로 확장된 무엇도 아닌 하나의 네트워크나 생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상호작용에서 감정에 관한 진실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속해 있다. 로봇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로봇은 의도 자체를 가지지 않는다. 로봇을 조종하는 인간행위자가 안보이는 상태에서 로봇을 치료용일지라도 인간처럼 대하게되는 환자들의 감정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가짜감정이라고 거짓되다고 해야할까? 군사로봇에 대해 어느 정도의 결정권까지 로봇에게 설정해야 할까?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로봇윤리에 대한 문제는, 로봇이 문제가 아니라 로봇을 대하는 사람과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날 로봇윤리는 선과 악의 차이를 가르침으로써 도덕적 기계를 만들고자 한다고 한다. 도덕규범을 장착한 인공행위자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로봇의 자율성 문제를 고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도덕적이고 자율적 인공행위자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들의 자율적 행위가 도덕문제를 야기하기에 인공행위자들에게 윤리적 규범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율적 행위를 제한하여 도덕적인 인공행위자들을 만들자는건 다시말하면 진정한 도덕적 행위자가 될 수 없도록 이들의 행위를 제한하자는 얘기이기도 한 것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의 질문처럼 혼돈 그자체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자율적 시스템에게 선택권을 양도하는 행위 속에 소수의 인간행위자들에게 결정권을 몰아줌으로써 정치적 도덕적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혁신이 소수에 의한 권력 집중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 사실 이 문제가 로봇보다 더 무서운 것인데... 오늘날 자율적 행위자들에게 결정권을 위임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은 엄밀히 말해 윤리적이라기 보다 법적, 정치적 문제들이다. 로봇윤리를 말하고자 했으나 결국 다시 인간윤리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책은 인공윤리가 현재 진행중인 발전에 주목하고 깊이 생각함으로써 새로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윤리에도 혁신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인공윤리는 로봇들의 사회로의 진입을 종말의 시작이 아닌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한 전진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것은 인공의 사회적 파트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 대한 도덕적 성찰이자 탐구가 될 것이라고. 쉽지 않은 책이었다. 자세히 알지 못하는 철학자의 개념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바로 인용될 때도 그렇고 문장이 길어서 맥락잡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최근에 읽은 AI나 로봇윤리 관련 책들이 떠오르면서 당장 적용시켜야 할 근시안적 윤리규범도 필요하겠지만, 이 책처럼 근본적인 관점도 필요하겠구나 싶다. 로봇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인간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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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함께 살기 VIVRE AVEC LES ROBOTS 루이자 다미아노, 폴 뒤무셸 / 희담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과 공존하게 될 미래의 사회 문제를 깊게 통찰하다! ( 서점사 홍보문구 ) 미래를 함께 할 로봇이야기라 ~~ 책 표지를 보면은 로봇과 함께 하는 삶이 그리 싫지않게 다가옵니다. 요즘은 혼자서 사는 사람들도 많고 나이들어서 혼자 있기보다는 로봇이 이웃이나 동료들처럼 인생의 파트너가 되어 줄수 있다면은 로봇과 함께 살기를 반기게 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다면 로봇과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아가는 방법과 우리가 어떻게 변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책으로 한번 만나보죠.. 예전에 읽은 책 < 로봇의 부상 >에라는 책에서 본격적인 로봇의 등장으로 좋은 일들도 많지만 또 파괴적인 동향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기술 진보와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으로 경제, 법률, 의학 분야 등등에 일어날 많은 일들을 설명하고 보여주는데 살짝 겁이 나기도 했고 저자가 그런 미래를 향한 몇가지 방안들을 제시해 주고 있지만 실상 방안은 거의 없다고 볼수 있었죠. 오늘날 우리 문명의 여러 곳에서 로봇들에 대한 거부와 불안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봇들이 등장하는 가상의 기계문명 세계에선 늘 싸움이 지배하고 인류의 생존이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죠. 이런 거부와 불안감은 희곡이나 영화, 책에서 보여주는 허구적이고 집단적 상상일 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면서 대부분의 인간 노동자들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훨씬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점차 실업자가 생겨나고 양극화로 불평등과 갈등이 심화되는 데다가 근로자 대부분이 소득이 제자리이거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점차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자는 말합니다. 로봇과 기계문명에 지나친 염려의 시선을 보내기보다는 이들을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죠. 더불어 쇼설 로봇 또는 로봇과 함게 일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말이죠.
'대리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인 '대리로봇'은 AI인공지능 가진 로봇입니다. 책에서는' 대리로봇'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우리 주변의 기계들과 어떻게 다른지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대리로봇들은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그것을 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깐 일정 수준의 사회적 자율성을 지녀서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자기 행위를 지배하는 규칙을 제한적으로 수정할 줄 아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권한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리로봇들은 가장 매력적이지만 가장 두렵고 골치 아픈 존재들이기도 하답니다. 왜냐 ~~ 대리로봇들은 인간세계의 이웃이나 동료들처럼 협력자인 동시에 적이 될 수 있기때문이라고 하네요 . 로봇 윤리나 로봇공학 윤리, 기계 윤리 등에서 윤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문해 보아야 할 시점에 온 것 같습니다. 로봇들을 단순하게 인간 대신 여러 가지 일을 해 주는 존재들이 아니라 친구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정신적 심리적 위한을 주는 동반자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는 '사회적 자율성'을 지닌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봇들이 단순한 기계 노예에 머물지 않으르면 윤리적 감수성을 인간과 로봇 모두 에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가 마치 우리가 반려동물을 대하듯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수준까지 올라야 한다고 말이죠.. 생각보다 어려운 책이였고 로봇윤리와 윤리적 감수성에 대해 또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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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근래 읽어본 로봇/인공지능 저서 중 페이지가 가장 느리게 넘어갔던 책이었다. 크게 인공지능 저서는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너무나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책과 다른 하나는 너무나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책이다. <로봇과 함께 살기>는 후자에 속하는데 말 그대로 로봇이 우리 삶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심플한 제목에 비해 무척이나 근원적인 내용을 자랑했고 거기다 각종 연구 사례나 주장이 인용되기까지 해 - 여담이지만 각주가 전부 미尾주로 처리돼 책 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게 무척 성가셨다.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확실히 전달됐다.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달라고 하면 난감하지만. 인공지능이란 테마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 - 아톰의 한 에피소드를 리메이크한 작품 - 를 보고 나서인데 그 작품에선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어쩔 때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로봇이 등장한다. 작중의 인공지능의 발전 양상은 허구답게 현재 기술을 아득히 초월했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이었던 건 로봇이 인간들로부터 받는 차별을 받는 양상이었다. 로봇이 너무나 인간과 닮아졌다는 이유로 인간들의 차별은 더 극심해진 것이다. 아마 이 작품에서의 윤리적 논란이 우리들 사이에서 오가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여야 하겠지만 차별과 관용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점에서 아주 유익하고 심오한 작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로봇과 함께 살기>에선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현대의 인공지능 분야에서 권위를 떨치는 학자까지 언급하며 새로운 차원의 윤리의 필요성을 아주 디테일하게 풀어낸다. 인공지능을 지닌 존재는 시작은 인간의 필요로 인해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그에 적합하며 더욱 진보한 윤리관이 필요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로봇이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에서 비롯된 것처럼 로봇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했으나 인공지능의 발전은 도리어 인간을 지배하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만연한 지금 시점에서도 역시 새로운 윤리관이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윤리관이란, 로봇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우리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일임을 알아감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것일 터다. 이는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왜 두려워하는가, 로봇이 왜 우리와 닮을수록 불편함을 느끼는가 하는 질문은 단순히 개개인의 기호로만 치부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애초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발전시킨 것임에도 너무 발전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영역에 가까워지자 불안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으니까. 우리는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또 무엇인가. 로봇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마주치는 내면의 질문들은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어렴풋이 느꼈거나 자문자답했던 문제들을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파고들어 반가운 한편으로 지겨운 감도 있었다. 하지만 지겹고 또 어렵게 읽힌다는 것은 곧 이 책이 가치 있는 책이라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한 번에 쓱 읽고 잊혀질 책이 아니라 몇 번씩 들여다봐야 하는 책의 특성상 내용이 뒤로 갈수록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나름 본받을 만하니까. 그래도 조금은 더 쉽게 써졌더라면 어땠을까 싶다만...
인상 깊은 구절
다시 말해 우리는 로봇이 자율적이길 바라면서 동시에 자율적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10p 우리가 로봇을 가장 두려워하는 때는 차이가 사라지고 로봇과 인간이 다른 존재라는 걸 확신하지 못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 38p 공상과학이 보여주느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예측과 달리, 인공 윤리는 로봇들의 사회로의 진입을 종말의 시작이 아닌 우리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한 전진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는 인공의 사회적 파트너(대리로봇)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 대한 도덕적 성찰이자 탐구가 될 것이다. - 23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