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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템은 참 오랜 세월 동안 초기 자켓 디자인을 끈덕지게 유지한 채(컨텐츠는 물론이고), 단지 판권업자의 이름만 바뀐 채로 계속 진열되어 왔다. 얼마나 팔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영화를 알 만한 사람들이라면 적당히 나이를 먹은 세대이거나 어느 정도 구매력도 갖춘 층일 테고 보면, 한국에서도 정품 구매가 그나마 꽤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 사실은 이제 이렇게나마 리패키징이 이루어져 신상(...)으로 다시 선뵈었다는 걸로도 짐작 가능하다(물론 올해 2월에 있은 뮤지컬 공연의 효과도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만약 그렇다고치면 너무 늦은 셈).
린은 공정한 사람이다. 만약 그가 영국 귀족 유한계층의 정서와 세계관만을 대변하는 인사였다면, 영화 초반부 러시아 군대에서 벌어진 뮤티니(내부반란) 씬에서, 귀족 장교를 거름통에 빠뜨린다거나 하는 우화적 클리셰를 삽입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누가 옛날 사람 아니랄까봐 '콰이강의 다리'에서도 아주 고리타분하다 싶은 상투적 영상언어를 애용하는데, 그것도 결정적 장면에서 참 대담하다 싶을 만큼 구사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초반부에 잠시 나올 뿐이므로 너그럽게, 아니 공감하면서 , 넘어가 줄 수 있다). 반면,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는 깊은 회의를 넘어 거의 반감에 가까운 내러티브로, 혁명이라는 탈을 쓴 위선과 가증스러운 무질서, 폭력에 대한, 차분하면서도 준열한 단죄를 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도 비록 오리엔탈리즘의 프레임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그 정치적 메시지만 추출하고 보아도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건전하고 합리적인 신사층의 시선을 충분히 건강하게 견지하고 있다(그 영화에서 첫째 꼽을 미덕과 감상 포인트는 '화면'이지 다른 부대사항이 아니겠지만).
이 영화가 제작될 무렵 줄리 크리스티는 헐리웃에서 가장 높은 주가를 올리던 배우였다. 대작의 크랭크인이 마련된다면 히로인에 그녀가 캐스팅된다는 건 당연한 수순에 가까웠으며, 라라의 테마는 곧 줄리의 테마로 보아 어색하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시인 지바고 역의 오마 샤리프나, 채플린의 딸 제랄딘(당시로서 부당하게 간과되었다 뿐 지금 보면 참 현대적인 마스크이다)을 진한 잔상으로 기억하는 이는 있어도, 줄리 크리스티는 그저 극중 라라 정도로만 떠올려지지 않을까? 그만큼 영화 속의 배역에 잘 녹아 들어간 결과라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당대의 다른 스타들이 여러 필모그래피의 연속상에서, 모종의 이어지는 이미지,스토리로도 떠오르는 것과는 대비되는, 그냥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었던 통속 배우 이상의 어떤 생명력 있는 연상, 영감을, 현대 관객에게 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내 생각은 그렇다. 이와 정반대의 위상이라면 바로 오드리 헵번인데, 출연작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녀의 강한 '브랜드'만은 머리 속에 담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알고보면 몹시 더운 나라 출신인데도 꽁꽁 껴입은 겨울 코트가 잘어울리는, 캐릭터가 아닌 영화 그 자체의 압축이라고 해도 좋을 오마 샤리프, 열혈 청년 혁명가이자 이후 휴머니티를 망각하며 차라리 혁명까지 배신하고 마는 파샤 역에 톰 코트니(비슷한 시기 'V2로켓작전'에도 나왔다), 러시아 통사적 생명력의 화신, 혹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생존과 탐욕의 결정체 코마로프스키 역에 불멸의 대배우 로드 스타이거(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기자 중 하나), 악기 발랄라이카와 겨울 궁전 등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노벨영화상이라도 만들어서 안겼어야 할, 장엄단아한 영상 교과서이자 신파극 저리가라일 티어저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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