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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식 「소크라테스적 성찰」 (메이트북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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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시절부터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명언 몇 개를 알고 있었다. 그 중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 그리고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나의 노트와 일기장에 영어로 기록해 놓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주제파악하고 생각하며 살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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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시절부터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명언 몇 개를 알고 있었다. 그 중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 그리고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나의 노트와 일기장에 영어로 기록해 놓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주제파악하고 생각하며 살자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한 이런 말들의 진의(眞意)를 알게 되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에우데에모스의 대화에서 델포이 신전 벽에 쓰인 이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본다. 에우데에모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재차 묻는다. “자신을 안다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아는 사람인가? 자기 능력을 아는 사람인가?”(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추억). 그러고 보니 내가 에우데에모스와 같은 사람이다. 이 유명한 구절을 노트에까지 기록해 놓았지만, 소크라테스가 어떤 의도에서 이 말을 인용했는지, 자신을 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자기 성찰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은 안다고 말했다는데, 나는 모르면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 같이 스스로 깊이 생각하거나 질문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소위 산파술이라는 대화법을 사용했단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은 대화의 기술을 넘어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의 대화법을 따른다면, ‘너 자신을 알라는 다음 세 질문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은 나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에 관한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갈 때, 올바른 태도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 책 제목처럼 지금이야 말로 소크라테스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의 저자 엄정식 교수는 소크라테스가 살던 고대 아테네와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너무나 유사하다고 말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구도나 남북한의 대치 상황이 그렇다. 페리클레스의 지도력 아래서 아테네의 경제적 급성장과 개인주의적 민주화의 진전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이다. 이런 번영이 개인의 욕구 분출, 사회적 갈등, 부정부패, 향락과 퇴폐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도 똑같다. 이럴 때 일수록 소크라테스적 성찰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올바른 대화의 정신을 통해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잡다한 지식과 정보의 확장보다 우리의 무지를 자각해야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정신 속에서 진리를 찾아갈 수 있다. 삶의 고통을 회피하기보다 고통에 직면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뇌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소크라테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생각 없이 분주하게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대한민국 사회의 실상은 어떤지, 이런 사회에서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도록 도전한다. 삶의 중요한 주제들, 진리, 고통, 사랑, 웃음, 삶과 죽음, 행복 등을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강추한다.

 

l******y 2019.04.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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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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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회사에서 업무를 보느라 집에서 아이를 보느라 많은 관계 속에서 눈치를 보느라 그 순간순간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이번에 읽은 <소크라테스적 성찰>은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마음이 더 힘든 요즘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머릿속은 온통 걱정거리와 그로 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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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회사에서 업무를 보느라 집에서 아이를 보느라 많은 관계 속에서 눈치를 보느라 그 순간순간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이번에 읽은 <소크라테스적 성찰>은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마음이 더 힘든 요즘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머릿속은 온통 걱정거리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었던 며칠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도 더 많이 하고 스스로에 대해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성찰과 반성으로 스스로를 더 강하게 단련하라는 말이 모든 것을 모른 채 내팽개치고 포기하고 싶은 내 마음을 다시 잡게 했다. '소크라테스'하면 바로 떠오르는 문구가 "너 자신을 알라"이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 이름? 내가 사는 곳? 내가 좋아하는 음식, 활동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확신하지만 스스로를 안다는 것이 마냥 외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나라는 자아가 원하는 욕구와 내제된 능력, 그것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 것인데, 책에서는 자아를 '나의 욕구와 능력과 의무라는 세 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삼각형'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평소보다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 윤곽이 뚜렷해져서 내가 진실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것의 원인이 내 능력 부족인지 내가 처한 상황에서 허용되지 않은 것인지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욕구),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능력),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의무)로 나누어서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봄으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 그 답을 생각 해볼 수 있다.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가를 고민하다보면 반성과 성찰이 반복되고 더 나은 나 자신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가 바랐던 것이 현실에 안주하여 스스로를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오늘 조금 더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에 대해서만 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보며 상대방을 배려하고, 더 넓고 깊게 생각하고 대화하여 이 세상 모두가 현인이 되는 것을 바란것이 아닐까. 소크라테스가 가르쳐 주지 않은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서 내 생각을 정리해 본 후 또 다시 질문을 하면서 내 생각이 모순되거나 잘못된 것이 없는지 찾아가는 것 같다. 꼬리를 무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고 그 답변을 마련하기까지 모두가 우리 자신들의 몫으로 남겨 둔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비판정신을 본받아야겠다.

YES마니아 : 로얄 a******d 2019.04.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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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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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그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의 '인성'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과학적 진보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연구를 시도하는 이 때에......인성은 좋게봐야 제자리 걸음 수준이라니......!!!더군다나 고대 아테네와 우리 사회의 여러 유사한 측면을 고려해보고 있노라면 무턱대고 소크라테스의 외침을 무시하기란 더더욱 어렵다!!!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외침 중 하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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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그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의 '인성'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과학적 진보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연구를 시도하는 이 때에......

인성은 좋게봐야 제자리 걸음 수준이라니......!!!

더군다나 고대 아테네와 우리 사회의 여러 유사한 측면을 고려해보고 있노라면

무턱대고 소크라테스의 외침을 무시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외침 중 하나인 '너 자신을 알라'는 무엇을 알라는 소리일까?

내 욕구? 능력? 의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하나?)

죽음? 영혼? 고통?

하지만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 소크라테스!

어쩌면 이것이 그의 가장 큰  특별함이기도 하지만

한단계 더 오르지 못한 아킬레스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지극히 평범한 나는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보다!

그럼에도 나를 알기 위해 대화를 시도해 보고 싶어진다.

동등한 대화를..... 합의를 위한 성실한 대화를 누군가와 하고싶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콕 집어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내가 아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것인지도 헷갈리지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소크라테스의 여러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지니려 한다.

그러려면 의미 있는 바른 질문을 생각하고 정성스럽게 곱씹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지...... 가능할까?

비록 정답을 찾을 수 는 없겠지만 더 많은 올바른 질문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삶을 살고싶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거론한 석가, 공자, 예수는 각각 종교로 남았다.

본인이 무교라면 소크라테스의 지침을 마음에 담아두면 어떨까?(절대 강요는 아니다!)

현재 내가 무교이기에 다른 누군가도 그러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뿐...... 

그러고 보니 위의 4명 보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성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지만 특히나 죽음을 초월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죽음의 초월은 어렵겠지만...... 

기껏해야 삶의 고통조차 당당히 이겨내지 못하는 부류지만......

그럼에도 삶과 죽음에 대해 항상 생각하는 사람이 되야겠다 싶다.

그리고 더 많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질문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주고 싶다.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그럼에도'를 남발했지만!

소크라테스적 성찰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해주었기에 그걸로 충분하다. 

f******7 2019.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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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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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소크라테스가 남긴 책은 없습니다.그가 남긴 것은 말이고 그가 남긴 것은 그의 추종자입니다.그의 저술로 남은 것은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말을 글로서 엮은 것들입니다.   말을 글로 쓰는 경우. 특히 글로 쓰라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했던 말을 글로 쓰는 경우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가장 큰 문제는 왜곡입니다. 성실한 추종자나 제자, 지인, 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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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소크라테스가 남긴 책은 없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말이고 그가 남긴 것은 그의 추종자입니다.

그의 저술로 남은 것은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말을 글로서 엮은 것들입니다.

 

말을 글로 쓰는 경우. 특히 글로 쓰라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했던 말을 글로 쓰는 경우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가장 큰 문제는 왜곡입니다. 성실한 추종자나 제자, 지인, 친인이라면 객관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여러 이유로 왜곡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는 신약을 봐도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여러 제자들이 쓴 글들을 모으다보니 일관성이 없어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덕에 그 책에 상당한 진실이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한명의 편집자가 써 낸 책이라면 한 인물의 한 관점만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고 왜곡도 많았을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저술또한 그의 말을 여러 사람들이 쓴 글이라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 생각대로 쓰여진것지 완전히 장담할 순 없다고 보지만 전체 내용을 보면 핵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책. 소크라테스적 성찰은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일곱 개로 요약합니다.

첫째.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서구에서 기독교가 근간이 된 이래 중세와 근세까지 절대적인 진리, 절대적인 믿음이 존재했고 이것은 세계에 큰 폐해를 가져왔습니다.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큰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지혜와 진리의 차원에서, 그리고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나 아메리카 대학살의 이유중의 하나가 그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절대 진리라는 것이죠.

뉴튼의 자연법칙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자연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믿음에 의한 것이었죠. 한때 큰 진리로서 역할을 했지만 그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확률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일 뿐 실제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소크라테스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모를수도 있습니다.

 

둘째,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렇게 하나요? 뭔가 지시하면 그대로 따르고 무슨 일이건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이런 태도가 더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대로 따르는 것은 기계가 대체할 수 있지만 생각하고 또 궁리해서 무언가를 바꿔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셋째, 답변보다 질문을 찾는 데 더 열중하라.

둘째얘기와 합치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언가의 해답을 찾는것보단 다른것에 대해 질문하고 왜 그런가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진리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 책은 이렇게 소크라테스의 얘기를 근간으로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엮은 책들을 몇 달전에 읽었는데.. 은근히 지루해서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라고 염려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첫 장은 다소 따분해 보였지만 뒤쪽으로 넘어갈수록 지금. 이 시점과 관련하여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 것인가에 대해 관심있는 분이라면 이 책이 참고가 될 것입니다. 생각보다 지겹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시도해보세요.

u***z 2019.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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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식 저의 『소크라테스적 성찰』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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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식 저의 『소크라테스적 성찰』 을 읽고여러 학문 분야가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철학은 많이 낯설게 느껴진다.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평소에도 다가서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학교 다닐 때 가졌던 기본 상식정도 지식이다. 아무래도 사회활동 하는데도 관심을 갖고 대하지 않다보면 멀어지다 보면 솔직히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허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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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식 저의 『소크라테스적 성찰을 읽고

여러 학문 분야가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철학은 많이 낯설게 느껴진다.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평소에도 다가서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학교 다닐 때 가졌던 기본 상식정도 지식이다.

아무래도 사회활동 하는데도 관심을 갖고 대하지 않다보면 멀어지다 보면 솔직히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허나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철학적인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해본다.

따라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차분하게 철학자들의 삶이나 저술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마음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으며, 어떤 흐름과 변천을 거쳐 왔는지, 그 당시 모습과 오늘 날의 모습들을 비교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내 자신에게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저자가 들려주는 철학관련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달콤한 내용이어서 너무너무 좋았다.

특히 서양철학의 원조인 소크라테스를 통해서 본 그의 일생의 모습에서 그의 관점을 가져보고,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 생존 당시 아테네의 상황이 현재의 살아가는 우리 한국 사회의 본질의 모습이 본질적으로 닮아 있는 데 착안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소크라테스 철학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당당한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명성이나 재산, 부 등 외적인 가치를 추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타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영혼이 혼탁하게 되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남들과 지나친 경쟁을 일삼게 되면 자연스럽게 여유를 갖지 못하면서 정신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모습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정신적으로 타락하지 않으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그 나로서 먼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 유명한 말인 "너 자신을 알라" 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즉 자기성찰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원한다면 언제라도 무엇이든지 알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그러한 것들은 항상 변하는 유동적인 정보이거나 요령을 가르치는 도구일 뿐 참다운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식의 출발점인 동시에 진리로 향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출발은 반드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번째 가르침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좀 더 깊고 넓게, 그리고 멀리 생각함으로써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위험에 더 잘 대처하며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배려할 수도 있게 된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삶의 무기가 꼭 필요하다. 그것은 철학이라 할 수 있으며 성찰과 반성이 나 스스로를 가장 강력하게 단련시켜주는 무기라 할 수 있다.

자기 삶의 당당한 주역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죽을 때 죽음으로 당당하게 떠난 소크라테스와의 만남과 성찰을 통해서 자신만의 멋진 삶의 주인공으로 탄생했으면 한다.

m***3 2019.04.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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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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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분류하는 소크라테스, 그에 대한 모든것은 말에서 비롯되지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 역시 무언가를 안다는, 알아야 함을 강조한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뒤집어 보면 모르기에 안다고, 알아야 한다고 하는것임을 알 수 있다.소크라테스적 성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의 성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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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분류하는 소크라테스, 그에 대한 모든것은 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 역시 무언가를 안다는, 알아야 함을 강조한것
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뒤집어 보면 모르기에 안다고, 알아야 한다고 하는것임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적 성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의 성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되기에 우리의
삶, 인생을 통해 적용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 "소크라테스적 성찰" 은 철학자적 관점을 가진 존재로서의 삶, 사상을 살펴볼 수 있고
대화, 진리, 지식, 삶, 교육, 과학, 사랑, 웃음, 삶과죽음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소크라테스적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철학은 삶의 무기가 된다.
방탕한 삶을 산다든지 또는 시키는대로만 산다든지 혹은 순응자로의 자세로 사는 삶은 삶의
주체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끌려가는 노예적인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 철학은 오늘의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으로 삶, 인생을 일깨워 준다.
자기 성찰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아는것에서 시작하는 자기성찰의 삶을 요구하는
소크라테스적 성찰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 인간은 무지하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무언가 알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하며 진실이라는
사실을, 즉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삶으로 편리성만 추구하는 세상이다보니 생각조차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고 있지만 어쩌면 생각없이 사는것은 인간에게는 불행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한대로 사는 존재, 그것만이 변화를 직접 느끼고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삶의 존재가 될
것임을 판단해 본다.
셋째, 답변보다 질문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인간의 삶이나 자연에는 답이라고는 없다. 아니 맞지도 않는 답을 가지고 삶을 고민하고
걱정하기 보다 올바른 질문, 삶의 궁극적 목적을 깨달을 수 있는 질문이 오히려 필요
함을 깨달아 본다.


이 책은 사고와 행동 측면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며 그의 유명한 격언 '너 자신을 알라'를
곱씹어 보며 새로운 지식, 새로운 삶을 향한 자기성찰을 꿈꿔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n********1 2019.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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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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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는 말은 단순히 내 이름이 무엇이고 몇살인지 몸무게는 몇인지 따위가 아닌, 나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가 무엇인지 아는 것. 동시에 그 아는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그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을 함께 강조한 말이다. 내 자신을 알기 위해 스스로에게 할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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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는 말은 단순히 내 이름이 무엇이고 몇살인지 몸무게는 몇인지 따위가 아닌, 나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가 무엇인지 아는 것. 동시에 그 아는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그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을 함께 강조한 말이다. 내 자신을 알기 위해 스스로에게 할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느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세가지 질문을 던져 나의 욕구, 능력, 의무의 모습이 어떤것인지 그 크기는 어떠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자아의 인식이다. 이러한 것들은 고난이나 역경에 처했을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며 원하는것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때 정작 무엇을 원했었던 것인지 윤곽이 명확해 진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답변을 마련하는 대신 스스로 확신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계속 회의의 시선만을 보냈으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응답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라고 강조하였고 반드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것을 다시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깊게 생각하는 것과 넓게 생각한다는 것, 멀리 생각한다는 것의 구분을 명확하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깊게 생각한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나 사건 뒤에 어떠한 실체나 원인이 깔려 있는지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넓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다른 현상이나 사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규명하는 능력을 말한다. '멀리 생각한다는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현재의 현상이나 사건의 심층적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예측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공감대를 넓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시키며 자신의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즉 행복의 의미이다. 여기서 대화에 대한 성찰을 엿볼수 있었는데 지금까진 서로 생각이 잘 맞아 공감대 넘치는 상대와의 대화가 만족감을 주어 좋은것이라고 생각했었다면 완전 반대로 나와의 생각이 전혀 같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가 오히려 생각의 확장에 도움을 준다는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너무 당연한 일인건데 지금껏 공감넘치는 대화만 선호했다는 것이 왜그랬나 싶다. 대화를 할때 늘 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고 절대적 진리는 아닐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러한 태도는 정말 백번 맞는 말 같다.


'만약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같다면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더 무의미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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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 2019.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크라테스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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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가 고대 아테네와 유사하다고 말하는 엄정식 교수는 정신적이고 지성적인 가치보다는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도구적 가치에 열을 올리는 우리 사회가 기원전 4세기경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아테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윤리적, 도덕적인 가치를 등한시하는 당시 사람들을 깨우치려 했던 소크라테스는 신을 모독했다는 것과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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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가 고대 아테네와 유사하다고 말하는 엄정식 교수는 정신적이고 지성적인 가치보다는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도구적 가치에 열을 올리는 우리 사회가 기원전 4세기경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아테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윤리적, 도덕적인 가치를 등한시하는 당시 사람들을 깨우치려 했던 소크라테스는 신을 모독했다는 것과 청년들을 현혹시켰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되고 결국 사형을 당한다. 최초의 근대적 인간이었던 소크라테스는 최초의 철학적 순교자가 된다. 석가, 공자, 예수,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흔히 인류가 낳은 4대 성현으로 꼽는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서도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소크라테스적 성찰은 아래의 일곱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라.

둘째,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셋째, 답변보다 질문을 찾는 데 더 열중하라.

넷째,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라.

다섯째,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겨라.

여섯째,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행복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일곱째, 살아 온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하라.

 

소크라테스가 남긴 유산은 무엇이며, 이 시대에 걸맞은 교육과 과학, 사랑에 대한 감정, 웃음의 중요성과 바람직한 삶과 죽음, 끝으로 진정한 행복과 자아의 인식에 대해 다룬다. 소크라테스는 산파술로 유명하다. "대화의 정신"만이 우리를 정치적인 권위나 도덕적 권위, 지적인 권위나 종교적인 권위, 그 밖의 모든 권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문답법은 진리에 가까이 가기 위한 변증술로 발전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가령 "용기란 무엇인가", "절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상대가 용기나 절제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고 한다. 예전에 읽었던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이 떠올랐다. 명절만 되면 돌아오는 친척들의 온갖 "오지랖적인 참견"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질문던지기 기법"을 보고 통쾌한 웃음을 지었었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상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소크라테스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우리가 아는 한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이 소크라테스이며, 이 개념은 그 후로 유럽인들의 사고를 계속 지배해 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영혼이 진정한 자아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경우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이 영혼을 돌봄으로써 물질적이고 외면적이며 세속적인 삶을 초월하라는 것을 의미했다.

-테일러 [소크라테스] 중에서-

 

무지의 자각을 통해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세속적인 가치보다 영혼을 돌보면서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그 "나"로서 나답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바람직한 삶을 살고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하여 삶을 완성하는 것.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대로 육체적이고 관능적이며 순간적인 쾌락 보다는 정신적이고 지성적이며 지속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좀 더 고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야 겠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무엇이 적합한지 스스로 알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분별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 아는 바를 해냄으로써 필요한 것을 얻고, 또한 모르는 것을 삼감으로써 비난받지 않고 또 불운을 피한다.

- 크세노폰 <소크라테스의 추억> 중에서-

 

YES마니아 : 플래티넘 t****6 2019.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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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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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남긴 성인에는 석가, 예수, 공자와 더불어 소크라테스도 많이 회자 된다.하지만 우리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 외에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그 이유는 다른 현자들과 달리 이른바 구체적인 ‘진리’를 설파한 적이 없고 특별한 제자들을 거느린 적이 없으므로 독단적인 종파를 만들거나 배타적인 파벌을 조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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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남긴 성인에는 석가, 예수, 공자와 더불어 소크라테스도 많이 회자 된다.

하지만 우리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 외에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 이유는 다른 현자들과 달리 이른바 구체적인 진리를 설파한 적이 없고 특별한 제자들을 거느린 적이 없으므로 독단적인 종파를 만들거나 배타적인 파벌을 조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만을 계속 던짐으로써 사람들 스스로 진리에 가까워지도록 도왔을 뿐이다.

현존하는 소크라테스의 진리는 대부분이 플라톤의 저술을 통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가려내는 데 어려운 점이 많이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그러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연구의미가 있고, 더 흥미롭게 보여진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에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묶으면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답변보다 질문을 찾는 데 더 열중하라.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라.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더 소중히 해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행복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살아온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하라.

소크라테스는 이런 사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전파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다가 그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소크라테스의 진리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다. 델포이 신전의 벽 어디엔가 쓰여 있는 말이다.

소크라테스와 에우데에모스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너 자신을 알라의 참 의미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무엇이 적합한지 스스로 알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분별하며, 또한 어떻게 할 것인지 아는 바를 해냄으로써 필요한 것을 얻고, 그러고는 모르는 것을 삼감으로써 비난받지 않고 살아가며 또 불운을 피하게 된다네.

그는 나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가 무엇인지 알며 동시에 그 아는 바를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입장을 통찰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소크라테스를 다른 성현들보다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이해관계에 얽매여서가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윤리적 성찰의 훌륭한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비록 그 결단이 자신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아가더라도 과연 그것이 옳다면 과감히 그것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어떤 경우에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고, 분명하더라도 실수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합리적이고도 자율적으로 최선을 다해 옳다고 믿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착하다라던가, ‘도덕적이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게 된지가 오래되었다. 이런 말들은 바보 같다무능하다의 또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냉소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윤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를 통해 다시한번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정이 사뭇 오늘날의 재판과 닮아 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전통적인 질서를 파괴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와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소중히 여겼기에 500명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 앞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자신의 사명을 설파할 수 있는 사법체계를 확립했다. 판결의 결과가 비록 유죄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 내용이 280200이었다는 것은 아테네인들이 얼마나 성숙한 민주시민들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혼란스러운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올바른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비판의 목소리라고 보여진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생각난다.

자신은 능력이 있어 얼마던지 개인의 이익을 편린하며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태일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했다. 엄연한 노동법이 있음에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여 지켜지지 않는 노동법이 무슨 소용이냐라며 노동법 책과 함께 자신의 몸을 태웠다.

자신의 죽음으로 무지한 노동자들을 자각시키고 일깨우려 했던 전태일의 모습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일깨우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는 영혼psyche'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사고 체계에 전면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그 이전과 이후의 도덕적 사고에 굵은 선을 그었으며, 인간의 삶을 외면적 출세와 영달이 아니라 내면적 양심과 존엄성에 근거해서 정립할 것을 가르친 인류 최초의 철학자였다.

이제 제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양심을 팔아 영혼을 병들게 하는 일은 그만두고 진정한 자신의 욕구와 능력과 의무가 무엇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s*****9 2019.04.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