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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세계에서 총명 받는 불교 스님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도서를 만났다. 나는 불심깊은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의 철학과 불자의 길을 선택하고, 그의 순리를 공부하며 살아가는 스승들의 행보가 존경스러워 그들의 삶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그들의 철학을 공부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따라하고자 하고픈 마음이 드는 위인들이 몇 분 계신데, 그 중 한분이 틱낫한 스님이다. 예전에 타 출판사에서 출간한 틱낫한 선생님 관련 도서를 읽은 것이 기억이 나는데, 그 책과 비교하자면 이번 불광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조금 더 소설 형식에 가깝고 감성적인 느낌이라 편하게 읽혔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경건해지고 맑아지며 이 작은 평화로움에 감사함이 절로 느껴진다.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이 들 때마다 꺼내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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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At Home in the World
저자/역자 : 틱 낫 한/이현주
틱 낫 한 스님은 책의 첫 머리에서, 4살 때 어머니가 장에 다녀오실 적마다 들고 오신 과자를 먹었던 추억부터 끄집어내신다. 최대한 천천히 과자를 먹으며 하늘, 땅, 대숲, 개, 고양이, 꽃들... 모든 것들을 즐겼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러 있었던 기억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러한 기억이 있으며 진심으로 원한다면 그것을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하신다. 94세 노스님의 90년 전 그 얘기에 미소가 지어진다.
1926년 출생하시어 16세에 출가하신 스님은 참으로 험난한 시대를 살아오셨음을 알 수 있다. 불교에 귀의하신 시기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중으로 고국인 베트남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프랑스와 ‘독립전쟁 (1946~1954)’을 치러야만 했으며, 독립 이후엔 남북으로 갈라져 결국 16년간의 ‘베트남전쟁(1960~1975)’이 있었다. 스님은 불교사상을 근간으로 반전 평화운동에 전념하였는데 베트남 정부가 1964년에 입국을 불허함에 따라 무국적자 신세로 망명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50세 즈음에 전쟁이 끝났지만 고국은 여전히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배생활 40년만인 2004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스님의 생애와 삶에 대한 가르침을 기술한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1. 베트남에서의 삶 평화롭고 여유로웠던 고향에서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 여기에서 즐겁게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고향에 온 것임을 말씀 하신다. 과자 먹기, 변소청소, 만화경, 벚꽃과 벗들 초청, 나손산(山)의 샘물, 설겆이 등 주변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과 대상 속에서 내면의 평화와 사랑과 깨달음을 누렸다.
또한, 16세 사미승 시절에 스승으로부터 받은 ‘일용할 게송(시 50수)’과 구족계(具足戒)을 받는 스님을 위해 밤늦도록 스승이 손수 바느질 하여 수선하고 건네준 갈색 법의(法衣)를 받으며 느낀 크나 큰 사랑과 존경심과 행복감이 제자의 가슴속 깊이 평생토록 중생을 구제하리라는 서원으로 충만토록 하였다.
특히, 사이공 불교학원의 개혁파였던 스님은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음 챙김이 구현된 상태에서 정치, 경제, 교육, 인도주의 행동 분야에 불교의 가르침을 적용하여 가르치는 등 사회 참여를 겸한 수행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2. 전쟁과 망명 전쟁 중 상대국 병사들이 절에 남은 마지막 쌀자루를 가져가고, 마을을 파괴하며, 서로 경계하며 죽이지만 본디 적이 아니고, 단지 전쟁이 우리를 적으로 만든 것이며, 모두가 똑같은 희생자들이다. 적이란 머리와 가슴의 분노, 증오, 차별일 뿐이라며 역설하시는 스님은 전쟁을 철저히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신다.
참여불교는 보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병행하는 것이며, 세계의 진정한 문제들에 깨어 있어야 한다. 수많은 위기상황에서 문제를 똑바로 보아야 하며, 침착히 깨어 있으면 잠재위험과 치명적 상황을 가라앉힐 수 있다. 스님은 전투현장에서 중상자들 외부 이송이 절실할 때 적십자기 대신 오색불교깃발을 걸고, 양쪽을 설득해 가면서 행동하였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며 용기, 사랑, 자비를 구현한 비폭력 수련이었다.
총알과 탄피로 종을 만들고, 대통령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고양이와 쥐가 함께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간 ‘코코넛스님’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꿈속에서 스님은 보트피플 소녀를 강간한 해적이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아무 교육도 못 받고 자란다면 나 역시 해적으로 되는 걸 피할 수 없었으리라. 나는 그들이 해적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무한 사랑을 지닌 자비의 화신, 보살의 기운이 내 속에서 꿈틀거렸다.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겁탈당한 열두 살 소녀의 아픔뿐 아니라 해적의 아픔도 껴안을 수 있었다.” ‘그 모두가 나’라는 진실을 깨치면 내 속의 증오는 사라지고 전쟁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서,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3. 꽃피는 자두마을 바람에 어질러진 오두막에 도착해서 처음 하는 일은 문과 창문을 닫는 일이다. 그런 다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방 안을 정돈한다. 재수가 없고 도무지 되는 일이 없는 그런 날들이 있다. 그때가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피난처로 돌아와 출입문과 창문을 닫는 거다. 닫아야 할 여섯 개의 문은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마음이다. 우리의 여섯 감각이 마음으로 통하는 문이다. 거센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그것들을 모두 닫아라. 그런 다음 마음 챙겨 숨 쉬면서 따뜻하고 아늑한 감정을 살리고, 느낌 생각 감정 등 모든 것을 다시 정돈하라.
다른 많은 에피소드도 그러하지만, 특히 ‘숨바꼭질’ 이야기는 중요하고 흥미로워 별도로 적어본다. (148쪽) 우리는 무엇을 사랑할 때 그 꼴에 집착한 나머지 그것이 변하고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국화를 사랑할 때 우리는 태어남과 머무름과 변화와 죽음 너머의 국화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저를 드러낼 때 우리는 웃으며 그것을 즐긴다. 그것이 자취를 감출 때 우리는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말한다. “내년에 다시 보자” 붓다의 가르침, ‘조건이 갖춰지면 사물이 나타난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숨는다. 그래서 다시 나타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토록 간단하다.”
4. 세상의 고향집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존재물이 아니다. 맞은편에서 오는 아이와의 달콤한 인사가 서로 안에 있는 선(善)과 평화를 안다. 종소리 들을 때마다 자기한테로 돌아가 호흡을 즐겨라. 우리의 참 고향은 지금 이 순간이다. 자주 몸으로 돌아와서 몸을 돌보자. 마음이 몸과 함께 있을 때에만 참으로 사는 것이다. 종은 언제 어디서나 종이다. 그것을 울리는 데가 천주교든 개신교든 정교회든 불교든 상관없이 종은 그냥 종이다. 프라하 예배당의 종소리에서 고대 유럽의 영혼을 듣는다.
꿈속에서 장터 구석의 마굿간에 갔다. 그곳엔 가난, 화재, 홍수, 굶주림, 인종 차별, 무지, 증오, 두려움, 절망, 정치적 억압, 불의, 전쟁 그리고 죽음 등 거의 모든 고통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슬픔과 연민으로 다가왔고, 그곳으로 데리고 간 남자는 “너는 이 모든 것들을 다시 겪어야 한다!”라고 엄숙하게 말한다. 처음에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기꺼이 받아들였다. 꿈에서 깬 새벽에 지금도 커다란 고통 속에 있는 베트남, 캄보디아. 소말리아, 유고슬라비아. 남아메리카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 모든 시련을 다시 또다시 겪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꼈다.
1997년 인도 부통령이자 국회의장인 K. R. 나라야난 씨와의 대화는 당장 우리 국회에도 적용했으면 하는 소중한 조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국회의원들이 마음챙김 수련으로 상대의 말을 깊이 듣고 다정한 말투로 토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모든 회의를 마음 챙겨 숨 쉬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모든 사람 마음에 깨우침을 주기 위하여 몇 줄의 글을 읽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중략) 나는 그에게, 토론의 열기가 지나치게 뜨겁거나 의원들이 서로 비방, 비난하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벨을 울리고 모두에게 토론을 중단하고 1, 2분쯤 침묵할 것을 요구할 권리를 주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 짧은 순간에 무두가 마음 챙겨 숨 쉬며 자기를 진정시키자는 것이다.’(165쪽)
2008년 <타임스 오브 인디아>의 1일 객원 편집자로 초청받아 인도 방문한 간디 기념일에 뭄바이에 폭탄테러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뭘 해야 하냐는 물음에 스님은 마음 챙겨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말했다. “이해와 자비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보도해야 합니다.” “무엇이 테러리스트들로 하여금 그런 짓을 하게 만드는가? 어떤 생각과 인식이 그들 속에 축척되어 있어서 자국민을 대상으로 저토록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한 것인가?” 우리는 폭력행위와 그 뒤의 동기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 어떤 통찰을 얻었을 때 우리가 보도하는 뉴스에서 우리의 이해와 자비가 구현될 것이다. 많은 뉴스들이 폭력, 두려움, 증오, 차별의식, 절망을 속에 담고 있다. 언론인은 사건을 진실 되게 보도해야 한다. 동시에 독자와 청취자들 속에 있는 이해와 자비의 씨에 물을 주어야 한다.
5. 나는 이르렀다 육십 나이 줄에 꿈속에서 21살 대학생이 되어 음악발표에 도전하였다. 꿈에서 깬 후 과거의 나는 뒤에 남겨두고 성장함으로써 특정 견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견해들이 있고 우리는 그것들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들에 붙들려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잡지 못한다. 내 길을 가기 위하여 나 자신을 뒤에 남겨 두어야 한다.
상추를 심고서 우리는 그것이 자라지 않는다고 상추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게 왜 잘 자라지 않는지 그 이유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친구나 가족들과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보살필 줄 알면 그들도 상추처럼 잘 자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추다.
땅에 떨어진 가을 낙엽을 보며 붓다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조건들이 갖추어지면 몸이 저를 나타내 보여 주는데 우리는 몸이 있다고 말한다.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몸이 저를 보여 주지 않는데 우리는 몸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날은 우리가 다른 모양들로 이어지는 날이다.
삶이 우리의 진짜 고향집이다. 우리의 진짜 고향집은 지금 이 순간이다. 분별이 없고 미움이 없는 곳이다. 더 무엇을 추구하지 않고, 더 무엇을 갈망하지 않고, 더 무엇을 후회하지 않는 곳이다. 붓다께서 이르셨다. “지금 이 순간을 네 생애의 더없이 경이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스님의 마지막 가르침, ‘나는 여기 안에 있지 않다’ (210쪽) 나 죽으면 좁은 구덩이에 넣지 말고 재를 뿌려서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게. 묘비를 세우고 싶다면 이렇게 쓰게. “나는 여기 안에 있지 않다.” “나는 저기 밖에도 있지 않다,” “당신들이 숨 쉬고 걷는 데서 나를 볼 수 있으리라” 내 몸은 해체되지만 내 행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연속된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 시대의 실천하는 스승이신 틱 낫 한 스님은 그 흔하디흔한 불교교리나 경전을 하나도 인용하지 않으시면서 모든 가르침을 이 책에 옮겨 놓으셨다. 책을 읽는 내내 저절로 마음이 챙겨지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명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이 진정한 고향이란 큰 가르침이 세포 하나하나로 스며든다.
이웃나라 일본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서로 미움이 커져가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는 스님이 설하신 평화, 자비, 사랑, 비분별(非分別), 깊은 이해, 열정, 동기, 선한 의지 그리고 진정한 고향으로 행하는 마음 챙김과 명상의 메시지를 마음 속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