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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라는 이름의 파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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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세 가지 경우로 귀결된다. 첫째는 나무 옆에 서서 멀리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친구(木+立+見=親)이고 둘째는 서로 다른 땅의 사람이 되는 타인(亻+地=他)이며 셋째는 상대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울부짖기만 하는 새처럼 서로 원수(隹+隹+言=讐)가 되는 경우이다. 문명을 가지고 있는 유럽인들과 자연과 동화되어 사람인지 땅인지 알 수 없는 야만인(?)들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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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세 가지 경우로 귀결된다. 첫째는 나무 옆에 서서 멀리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친구(木+立+見=親)이고 둘째는 서로 다른 땅의 사람이 되는 타인(亻+地=他)이며 셋째는 상대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울부짖기만 하는 새처럼 서로 원수(隹+隹+言=讐)가 되는 경우이다. 문명을 가지고 있는 유럽인들과 자연과 동화되어 사람인지 땅인지 알 수 없는 야만인(?)들과의 만남은 위의 세 가지 경우 중 어디에 해당될까? 여기에 대한 답을 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문명을 쉽게 받아들인 쪽에서는 친구가 되었을 테지만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경우는 타인이 되거나 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선(善)인지 확언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발전과 진보, 정착과 개발, 안락함과 자본주의, 기독교와 텔레비전 등 이 모든 것들이 올바름과 정의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을까? 원시적인 삶과 도처에 널려 있는 기아, 그리고 생존을 위한 식인 같은 것들을 과연 현대 문명인들의 관점에서 용인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원시 부족들과 이누이트들의 삶의 방식을 문명화시켜 그들의 자살률을 높여 가면서 자본주의와 기독교를 이식해야 할 것인가?

 

이런 도덕적인 질문들에 답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기독교도이자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더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근본주의 기독교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만연한 사회이다. 그렇기에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기는커녕 이런 질문들이 용인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옥스퍼드 출신의 제이 그리피스는 어렸을 때부터 야생의 삶을 동경해 왔고 그녀가 도시의 문명 속에서 걸린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저 멀리 남아메리카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을 때 이제 그녀는 온갖 위선과 욕망으로 휩싸인 문명과는 양립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옥스퍼드에서 배웠을 문학과 심리학은 그녀의 우울증의 근본을 치유할 수 없었지만 아마존에서 아야와스카(주술사의 약으로 아마존에서 가장 강력한, 특히 우울증을 치료할 때 쓰는 약)를 마시고서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며 결국 그녀는 자신의 우울증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그녀가 마신 아야와스카 때문에 그녀의 우울증이 치료되었기보다는 아마존의 자연이 그리고 정글의 야생이 그녀의 모든 마음의 병을 치유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존에서 투쟁하고 있는 원주민들과 만난다. 수많은 선교사들과 벌목업자들이 그들의 삶을 파괴한다.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방식은 문명의 이기(利器) 퍼뜨리기(利器와 利己가 발음이 똑같은 것이 오히려 역설적이다), 합리성으로 무장한 과학기술이 그네들의 정신을 치료해주는 주술사 몰아내기, 주술사의 빈자리를 기독교 선교사가 차지하기 등이 있는데 이 모든 방법의 근본원인은 단 한 가지다. 바로 그들의 땅을 빼앗는 것인데 지금 전 세계의 모든 원시성과 야생성을 가지고 있는 부족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 가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이유이다. 문화의 접촉은 모든 인류가 발전하는데 자양분이 되지만 그것이 약탈의 형태로 변하면 단지 한 쪽만이 살아남는다. 지금까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대부분이 사라진 이유는 문화접촉이 약탈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을 가진 유럽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염병이나 그보다 더 무서운 오만과 독선을 퍼뜨린다. 수많은 유럽의 탐험가들은 원주민의 평화로운 정신(원시 부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을 가진 자연 앞에서는 분노를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분노를 억제한 상태로 새로운 백인들을 대했지만 백인들은 생존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로 원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을 악용하여 그들의 욕망을 채웠다. 이제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수많은 원주민들은 그들의 원래의 생존방식을 잃은 채로 백인들의 온갖 나쁜 쓰레기들로 자신의 야생성을 죽이고 있다.

 

이 모든 억압과 약탈의 현장을 저자는 직접 체험하는데 과연 이 조그만 몸부림이 거대한 석유채굴업자와 벌목업자들을 이길 수 있을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식인종 추장이 유럽에 가서 수많은 유럽의 사람들에게 그 야만성에 대해 비난을 받고서 했던 말은 왜 먹지도 않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냐는 반문이었다. 생존의 이유로 자신의 종족을 죽이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생존과는 전혀 상관없는 욕망과 아집으로 자신의 종족을 멸살하는 일은 더 문제일 것이다. 심지어 일부의 사람들은 그 야만인들을 자신의 종족으로 여기지도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삶의 방식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문명인이라 불리는 인간의 추악한 위선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m*****a 2011.04.15. 신고 공감 9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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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적인 글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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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여성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수업에서 제가 기대했던 것은 현재 여성인권과 또 개선 가능성과 혹은 여성운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한 타당성 같은 미래적인 것들을 기대하고 갔는데 교수님은 고려시대의 여성인권과 남성의 잘못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혀 개선사항도 없었고 발전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지에 다가 여자가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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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다닐 때 여성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수업에서 제가 기대했던 것은 현재 여성인권과 또 개선 가능성과 혹은 여성운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한 타당성 같은 미래적인 것들을 기대하고 갔는데 교수님은 고려시대의 여성인권과 남성의 잘못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혀 개선사항도 없었고 발전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지에 다가 여자가 바뀌어야 남성도 바뀐다. 이런 취지의 글을 썼었습니다. 그렇게 쓰면 학점은 날아간다는 걸 알았지만...교수님 수업내용이 너무 엉망이었고 설득력도 가지지 못했고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계속 질문을 통해 유도해나가는 것이 너무 억지스러워서 그렇게 썼었죠. 물론 학점은 바닥이었고 저도 평가내용에 아주 뭐 이런 수업이 다있냐고 썼었습니다. 참 지금 대학교 교양수업을 돌아보면 은근히 수준미달이었던 과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사회학쪽의 교양은 정말 수박 겉핧기 수준입니다. 아프리카가 못사는 이유가 국민성과 인종갈등, 기후 탓이라니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얼마나 많이 활발히 활동해 주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사회생활에 부정적입니다. 이기적이니 일을 안하려고 한다느니 이런 걸 이야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제가 말해봐야 모두 남성의 시각에서 말한 거 밖에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작가가 사막 북극 수상도시 같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닌 자연과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같이 지내면서 느낀 점을 쓴 책입니다. 처음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책의 작가 소개에 이 작가는 페미니즘적인 글을 쓴다라고 써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 내내 많은 자연들을 굳이 성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성에 대해 주체적이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페미니즘의 한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만 그 부분만이 페미니즘적인 글의 전부는 아닐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군대에서 봤던 야시시한 잡지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는 여전 전용 포르노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창 여성운동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어떤 여성사업가는 포르노가 너무 남성의 취향에 맞추어져있다고 생각해서 여성의 취향에 맞는 포르노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포르노하면 떠오르는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며 가끔은 동물같은 화면이 아니라 노골적이지만 은근하고 분위기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절정의 순간에 몸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표정이나 소리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말이죠. 예상하셨다시피 이 포르노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이 것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성에 대한 이해부족일까요? 여자가 만들었는데도 부족 한가요? 제가 남자다보니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지도 못했구요.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성을 위한다고 한 행동이 모두 다 여성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운동이라는 것은 모두의 공감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득력이 과해서 반감을 일으키게 되면 아무리 좋은 취지이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결국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보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생각했습니다. 진정으로 여성을 위하는 것이 정말 여성학자들이 이끄는 그 길인지 이미 여성운동은 활기를 잃고 여성조차도 호응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더 힘들어지고 있고 지하로 들어가사 음성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여성도 좋고 진취적인 여성도 좋습니다. 하지만 개인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를 바꾸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생각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사막의 뜨거운 그림도 빙하의 냉정한 느낌도 바다의 포근한 촉감도 느낄 수 없었지만 주체적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으로 감동을 느끼지 못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생각의 스펙트럼은 약간 넓어질 수 있지 않았나하고 생각합니다.



d****7 2011.06.16.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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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야생 자연의 통과의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나는 아직 야생 자연의 통과의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내용보기
어느새 ‘친환경·유기농’ ‘저탄소·녹색산업’이라는 말에 익숙하리만치 자연 환경, 환경 문제가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웰빙(Well-being) 혹은 참살이, 슬로우 푸드(slow food)와 슬로우 시티(slow city), 올레길·둘레길과 같은 느리게 걷기 등 자연친화적인 삶을 지향하거나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를 한편으로는 더 풍족하고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나는 아직 야생 자연의 통과의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내용보기

어느새 ‘친환경·유기농’ ‘저탄소·녹색산업’이라는 말에 익숙하리만치 자연 환경, 환경 문제가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웰빙(Well-being) 혹은 참살이, 슬로우 푸드(slow food)와 슬로우 시티(slow city), 올레길·둘레길과 같은 느리게 걷기 등 자연친화적인 삶을 지향하거나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를 한편으로는 더 풍족하고 나은 삶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개발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현실 인정 속에서 발현되는,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마음의 안정과 여유로움을 만끽하고픈 욕구(!)는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제이 그리피스(Jay Griffiths)는 유목민의 야생적 자유의 매력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며 그것은 우리의 폐 속의 자유로운 호흡, 지평선을 갈망하는 눈, 끝없이 뻗은 길을 밟고 싶은 근질근질한 발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인가를 향해 전력질주를 해서 도착했는데 막상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랄까. 무언가를 놓치거나 잃어버렸다는 느낌, 목표나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느낌. 아마 그런 것들인듯 싶다.

 

문득 인생의 나침반의 자침이 떨림을 멈춰버린 채 줄곧 한 방향만 가리킨다는 느낌이 들었다. 파르르한 그 떨림을 멈춰버린 나침반은 더 이상 소용이 없는 것인데 말이다. 나이 먹어가는 것이라 애써 합리화시켜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치미는 묘한 반발심은 그냥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만 품은 채 일상을 보내고 있다. 주말이면 가끔 자전거를 타고 도시의 외곽까지 나갔다가 돌아오곤 한다.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항상 새로운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벌여놓은 일들을 때려치울 것을, 익숙해진 사람들과 일상에서 벗어날 것을 말이다.

 

나는 아직 야생 자연의 통과의례 의식을 거치지 않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제이 그리피스는 떠났다. 그도 길고 어두운 우울, 정신의 황무지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했다. 곧고 부드럽던 머리카락은 기름이 덕지덕지 낀 볼썽 사나운 모양이 되었고, 글을 쓸 수도 없었던 상황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길을 나섰다.

 

그는 우리의 세상이 학교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유년기부터 잘 훈련되고 길들이는, 젊은이들에게 세속적 만족을 지향하는 조심스러운 삶을 가르치는 훈련 과정에 지나지 않는 클로로포름의 세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야생성이 이미 길들여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인간의 영혼은 야생성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형태라고 결론짓고, 스스로를 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불처럼 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동경해 왔던 야생의 의지를 찾아 나섰고, 그 의지가 야성적인 아름다움 속에, 자연력의 생기 속에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마존의 숲, 북극의 빙하, 바다 집시의 마을과 심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웨스트파푸아의 산, 외몽골의 사원을 방랑하고 이 책을 집필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영혼의 황무지에서 길을 잃은 젊은이에게 유일한 약은 땅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 원주민들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송라인(songline), 땅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음악의 형태로 마음속에 땅을 간직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아마존의 주술사에게서 정신의 황무지, 그 어두운 우울함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배웠고, 북극 지방의 이누이트에게서 복잡한 얼음의 세계에 대해서, 고래와 돌고래로부터는 인간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배웠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는 사물의 근원성에 대해서 그리고 땅이 얼마나 심오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지를,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웨스트파푸아인에게는 인간의 영혼에 자유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외몽골의 불교 승려에게는 얼음 위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떨어져도 웃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생각과 문화를 무시한 채 그곳을 황야나 황무지라고 쓴 많은 19세기 유럽­미국계 작가들과 원주민들을 질병에 감염시켜 몰살시킬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접촉하려는 탐험가들에게 분개해 한다. 원주민들의 문화와 정신을 악마화하고 그들을 충실하고 순종적인 패배자로 길들이려는 기독교 근본주의 선교사들과 목재를 얻기 위해 숲을 훼손하고 자원을 캐기 위해 땅을 파헤치는 대기업과 관련 국가들의 행태에 분노를 표한다. 그리고 야생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곳에서 대대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쫒아내는 열혈 자연보호주의자, 환경주의자들의 자기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제이 그리피스, 그가 친환경 치수정책이라는 ‘4대강 살리기 사업’, 350만 마리의 소·돼지 예방적 살처분과 630만 마리의 닭·오리를 매몰시킨 대한민국에 왔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모든 인간의 정신은 자유롭고 야생적이며, 현실의 대상물로서 야생의 땅을 필요로 한다. 정신을 땅으로부터 떼어내고 시계와 울타리와 일상으로 정신을 가두며, 지루한 복사의 세계에서 종이로 궤변을 늘어놓는 사회는 치매와 불행을 만들어내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야생의 자연 속에서 발달했고 여전히 야생의 자연을 필요로 한다.❞

 

❝야생성 또는 야생의 자연에 이끌리는 내 감정은 무언가에 대한 반발인 동시에 그것을 향한 충동이기도 했다. 해방을 향한 충동이었으며, 그 순수하고 생생한 세계를 향한 충동이었다. 이러한 감정은 정치적이다. 자유의 관념과 자유가 구현되는 현실의 장소는 둘 다 자연이 자유로울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진정 자유로우려면 자연은 도로 건설, 벌채, 채굴에 의해 막히거나 길들여지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원주민들이 세운 법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자연 세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현대의 유럽과 미국의 법에서는 지구상의 생명을 멸종시키는 것이 합법이다. 대량 학살은 공식적으로 법에 의해 금지되지만, 다른 생물을 죽이거나 멸종시킬 수 있는 행동 또는 지구의 기후를 파괴하는 행위는 전혀 범죄로 취급되지 않는다.❞

 

❝다른 방식의 앎, 다른 방식의 말하기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작이다. 숲은 씨 꼬투리, 강둑, 바람, 카이만 악어들의 거칠고 야생적인 민주주의의 모형이며, 꽃가루의 의견이 중요하고 딱정벌레에게 투표권이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발언권이 있는 궁극적인 국회라고 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서는 단순히 투표만이 아니라 대화와 토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웨스트파푸아 자야푸라에서 와메나로 가는 화물기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선교사를 통해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m***5 2011.04.15.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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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기록이 담겨져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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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참고문헌 목록까지 포함해서 670여 페이지가 되는 적지않은 분량의 책이다. 또한 책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과 메시지가 그리 가벼운 책은 아니기에 아마 쉽게쉽게 읽혀나가지는 않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 한마디로 킬링 타임용의 가벼운 책은 아니란 얘기다.저자는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인 흙, 공기, 불, 물에 얼음을 추가해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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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참고문헌 목록까지 포함해서 670여 페이지가 되는 적지않은 분량의 책이다. 또한 책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과 메시지가 그리 가벼운 책은 아니기에 아마 쉽게쉽게 읽혀나가지는 않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 한마디로 킬링 타임용의 가벼운 책은 아니란 얘기다.

저자는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인 흙, 공기, 불, 물에 얼음을 추가해 전체적인 뼈대를 만들고 뒤이어 자신이 찾아 떠난 7년간의 원시 세계의 모습들을 하나 둘 덧붙여서 이야기를 풀어내게 된다. 광활한 원시림이 존재하는 아마존, 에스키모라 불리는 이누이트들이 살고 있는 북극, 인도네시아의 바다 집시인 바조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등등. 저자의 시야와 경험은 이렇듯 한 곳에 쏠려 있는 게 아니고 전 세계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그러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원주민들은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만 여겨진다. 이는 각종 교육을 통해 우리의 뇌속에 자리잡은 선입견 때문이기도 한데, 저자는 이런 생각조차 우리들이 만든 잘못된 인식틀임을 언급하고 있다. 또 저자는 백인들로 인해서 유입된 시계, 성경, 술, 마약 등으로 인해서 이들 원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고 피폐되고 있는지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여기에 문명을 깨우치는 '학교'가 치명적인 위험 요인일 수 있다는 점도 충격적이었다.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내용 전체를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가는 저자의 글 힘이 느껴지는 책이었으며, 또 방대한 기록과 저자의 폭넓은 지식, 원주민들의 구술 등등을 한편으로 잘 버무려 놓은 책이지 싶다. 진정 어떤 것이 자연적인 것인지, 또 야생, 야성, 황무지의 제대로 된 의미를 느껴보고자 하는 독자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아도 유익할 책이지 싶다. 





w***y 2011.04.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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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땅물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제이 그리피스
"[서평] 땅물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제이 그리피스" 내용보기
생명의 약동  <땅,물,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라는 조금 긴 제목의 이 책은 '생명'이 요동치는 내용으로 가득찬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눈으로 좇을 수 없는 그곳에 직접 두발로 들어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을 체험하고 '생명'을 확인하고 그것을 부둥켜 안음으로서 자신의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작가의 모습은 자유와 야생 그 자체인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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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약동

  <땅,물,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라는 조금 긴 제목의 이 책은 '생명'이 요동치는 내용으로 가득찬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눈으로 좇을 수 없는 그곳에 직접 두발로 들어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을 체험하고 '생명'을 확인하고 그것을 부둥켜 안음으로서 자신의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작가의 모습은 자유와 야생 그 자체인듯 보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마음껏 드러내고 생명의 살아 있음을 체험하고 돌아온 저자의 보고서는 독자에게 야생성과 생명을 일깨우는 생명의 외침이자 자유를 말합니다.

7년간의 기록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원시의 자연을 찾아 지도밖으로 떠난 여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마존과 북극 안데스 산맥과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등 지구상 야생의 현장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다닌 저자의 기록은 7년이라는 세월을 걸쳐 한권으로 묶여져서 독자들에게 전해집니다.
  때로는 혹독함을 때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우리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은 원시적인 아름다움과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어릴때부터 자연을 향한 동경과 자연 속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것을 내던지고 떠난 7년간의 기록을 통해 독자는 생명의 본질을 깨닫고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여행자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숲, 빙하, 바다, 사막과 자유를 테마로 각각의 장소에서 체험한 기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혹독함을 말하면서 동시에 평화를 말하는 독자의 글은 때때로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정치적인 느낌을 줄때도 있지만 대체로 현장을 직면한 그 순간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독자에게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한 몸부림과 그리고 탐미하는 모습을 느끼면서 동시에 저자의 질문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저자가 던지는 선택지 '정복자'로 남을 것인가? '보존자'로 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지도 밖에서 만난 대 자연과 야생성을 방문하면서 그곳에 들어온 문명의 이기주의와 폐해를 전하는 작가의 글은 자연을 여행하는 여행자이자 수호자라는 느낌이 듭니다. 

희극의 무대에서 당신은 주연인가? 조연인가? 관객인가?

  '야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무대이며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들은 '야생'이라는 무대에서 살아 움직이는 배우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모두의 마음 속 '무대'에서 더 넓은 공간 '자연'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자연'의 무대에서 자신의 모습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무대위로 올라올것을 초청합니다. '야생성'은 우리 모두의 내면 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잊고 지내고 있을뿐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우리의 내면입니다.
  생명의 약동하는 모습을 보고도 집에만 있는 독자들을 향한 저자의 일갈은 고통과 어두움 그리고 삭막함에 굴하지 말고 집 밖으로 나와 무대에 올라서라고 말합니다.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사시의 주인공인 저자는 영웅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처음 부터 끝까지 여행자로서 그리고 안내자로서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며 그곳을 독자들에게 체험할 수 있도록 생생한 현장감을 살려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무대위에 초대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까요? 주연으로 ? 조연으로? 관객으로? 어떠한 형태로든지 무대위로 이끌려서 올라온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선택의 양자택일앞에서 정복자와 수호자로의 갈림길을 택하게 될 것입니다.



s******a 2011.03.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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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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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의 가치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땅, 물, 불, 바람, 그리고 얼음,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소지만 우린 이들의 가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어느덧 땅과 물은 오염이 되었고 불과 바람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조만간 인류는 물 부족을 호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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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의 가치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땅, 물, 불, 바람, 그리고 얼음,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소지만 우린 이들의 가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어느덧 땅과 물은 오염이 되었고 불과 바람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조만간 인류는 물 부족을 호소하며 전례 없던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인간의 편익을 위해 사용했던 과학적 이기가 인류를 구렁으로 빠뜨렸다. 자연을 버린 대가는 혹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의 힘에 나약함을 느낀 인류는 자연에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류가 용서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자연은 이용해야할 수단이고 정복해야할 대상일 뿐이다. 땅, 물, 불, 바람, 얼음은 야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연의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린 왜 야성적 선택을 버려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 결과 우리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제이 그리피스의 야생적 사고와 생활은 도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행복하기 위해선 야생의 노래를 불러라. 날것 그대로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가슴 깊은 곳의 감정을 포효하라. 야생은 있는 그대로 모습을 전해줄 뿐이다. 우린 오염되고 조작되었고 모방되었다. 어느 것 하나 진실 되지 않지만 마치 진실 된 세상이라 여기며 자신과 자연을 속이며 살아간다. 행복은 결코 우리 마음에 있지 않다. 원래 있었던 가치를 되찾는 순간 자신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피스는 야생의 자연을 무의식의 세계라 말한다. 원시시대, 태초의 시대, 마치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될 것 같은 무의식의 세계엔 우리의 원초적인 야생의 모습이 가득하다. 이를 찾는 것이 삶의 목적이요 생존의 의미다.

 

그녀의 선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야생을 선택한다는 것은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다. ‘야생은 팔수도 살수도 없고 빌리거나 복제할 수도 없다. 그 것은 다만 존재할 뿐이다.’ 인류는 그동안 모든 것을 분해하고 해체하려 힘써왔다. 하지만 야생은 그 어떤 것으로도 분해되지 않은 순수 그 자체다. 원시생명력이 넘치는 야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진정성이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자연의 노래를 음미하고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또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알게 된다. 인류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야생은 진정한 시작을 보여줄 것이다.

 

그녀는 빙하에 사로잡힌 겨울바다를 침묵의 공간이라 말한다. 파도가 일지 않는 곳, 얼음은 모든 것을 정지시켜버린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의 비밀을 간직한다. 혹 우리의 모든 기억이 빙하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해빙이 되면 천둥과 같은 소리를 지르며 깨달음의 진동을 울린다. 바다는 생명의 탄생지다. 인류가 아직 완벽하게 보지 못한 곳이 심연의 세계다. 바다는 마치 거대한 틀 속에서 지구의 탄생과 신비를 관리한다. 우리의 기억이 빙하에 갇혀있다면 심연의 세계엔 삶과 죽음이 이어진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 바다는 언제나 시작으로 넘친다.

 

인간의 마음은 콘크리트 벽속에 갇혔다. 꺼내고 싶어도 꺼낼 수가 없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본래 야성적인 존재였다. 모든 것은 자연과 더불어 호흡이 가능했으며 자연을 통해 삶의 모든 것을 습득했다. 우리의 영혼은 야생을 떠났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다. 아니 무조건적인 생명을 주었지만 인간의 반응은 철저히 조건적이었다. 제이 그리피스의 야생적 선택은 높이 솟은 나무의 뿌리만큼이나 순수하다. 땅을 밟고 숲을 뒤지며 아마존을 달리던 그리피스의 발걸음을 통해 꺼지지 않는 야생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이달의 사락 k****4 2012.01.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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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성을 찾아 떠난 7년의 기록
"야생성을 찾아 떠난 7년의 기록" 내용보기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가 인문 서적인 줄은 알았지만 책 자체의 느낌만큼이나 무겁고 힘들다. 양장판으로 잘 제본된 책의 모습과 600 페이지를 넘어 700 페이지 가까운 두께만큼이나 여러 날을 함께 한 책이다. 500 페이지, 600 페이지를 넘어도 가뿐하게 넘겨지던 소설책과는 엄청 다른 감(感)을 느끼게 해준다. 문장이 어렵거나 딱딱하지는 않다. 그래도 저자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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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가 인문 서적인 줄은 알았지만 책 자체의 느낌만큼이나 무겁고 힘들다.
양장판으로 잘 제본된 책의 모습과 600 페이지를 넘어 700 페이지 가까운 두께만큼이나 여러 날을 함께 한 책이다.


500 페이지, 600 페이지를 넘어도 가뿐하게 넘겨지던 소설책과는 엄청 다른 감(感)을 느끼게 해준다.
문장이 어렵거나 딱딱하지는 않다. 그래도 저자인 제이 그리피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들이고, 그 이야기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하던 땅의 네가지 원소인 흙, 공기, 불, 물, 그리고 여기에 얼음이 추가되어서 설명되는 것이다.
설명? 이 책의 내용은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리피스의 논리적 사고가 들어있기에 설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녀의 탐험에 가까운 이야기들도 함께 들어 있다.
저자인 그리피스는 어려서부터 책을 접하는 생활을 했고, 특히 세계 여러나라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곳들 (시베리아, 만달레이, 외몽고 )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흥분할 정도였다.
그래서 18살에는 전국을 돌아다니고, 티베트를 가려다가 인도까지 간 경험이 있다.
24살에는 태국의 미얀만 국경지대의 카렌 고산족과 6개월 이상을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킬리만자로, 라디크 등도 가보게된다.
그런 그녀가 자유와 물, 불, 얼음, 흙, 공기를 찾아서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책의 목차 》

야생의 땅 숲
야생의 얼음 빙하
야생의 물 바다
야생의 불 사막
야생의 공기 자유
야생의 정신 희극


마치 한비야의 오지 여행을 생각한다면 이 책을 내려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한비야의 오지 여행처럼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니까. 인문서적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어야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그의 여행은 단순한 호기심의 여행이 아닌 야생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녀는 야생성에는 고 속에서 일관되게 고조되는 울음이 있으며, 그 속성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나는 야생의 의지를 찾아 나섰다. 그 의지가 야성적인 아름다움 속에, 자연력(...)의 생기 속에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고 싶었다. 야생성은 생명에 대해 단호하다. 포획되어 갇힌 야생성은 죽어 버리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순수한 자유나 순수한 열정, 순수한 갈망처럼 근원적이다. 야생성은 그 자신의 선언문이다. (p12)


 

이 여행은 7 년간의 세월이 걸리게 되고, 그것이 이 책이 완성되는데 걸린 7년의 세월인 것이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오지정도가 아닌 원시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반딧불을 등 삼아 글을 쓰기도 했고 나방의 유충을 먹기도 했으며, 웨스트 파푸아의 혁명 전사, 아마존의 주술사, 북극지방의 이누이트, 불교의 승려. 그리고 식인종까지 만나 보게 되는 것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입문 과정이며, 영혼이 황무지에서 길을 잃는 젊은이에게 유일한 약은 땅이라는 사실을 나는 전 세계 원주민들로 부터 배웠다." (p15)


 

 여행의 시작인 페루. 아마존의 여행자로 그녀는 언어가 의미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아마존 사람들은 숲에 대해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하고 의사를 교환할 줄 아는, 말하는 세계로 본다." (p54)


 

아마존은 서구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미개지이고 식물들의 무차별적인 초록 덩어리이지만 원주민들은 각 식물들의 노래를 통해 이 야생의 숲을 지나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은 야생성이 응고되어 광기로 변해 버린 곳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접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편안함은 문명인들의 편안함일뿐이지, 아마존을 비롯한 야생성이 있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그들만의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피스는 아마존에서 야생의 자연, 그것을 깊숙이 날 것 그대로 마셨고, 그 잊을 수 없는 원시의 포효를 들었다. 야생적인 것은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고 빌리거나 복제 할 수도 없는 것.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 야생성은 언어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그리 쉽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  야생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기에 그리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피스는 자신의 여행지에 대한 생생한 체험의 이야기와 그가 접한 야생의 곳에 대한 자연환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그곳의 생활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그가 설명하는 논리들은 어렵고 또 어렵게 느껴진다.
그녀는 북극을 음향의 세계로 표현한다.
얼음이 생기면서 들리는 소리.
얼음이두꺼워 질때 들리는 소리.
얼음이 얼지 않은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
그 소리는 각각 다양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누이트는 시각보다 청각으로 공간을 정의하는 것이다.
또한 양극에는 죽음, 겨울, 탄생, 얼음 등 모두가 절대적인 존재이기도 한다.
그리피스는 북극을 철저이 아무 색도 없는 곳으로 정의한다. 얼음은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조각인 것이다.


"남극을 찍은 사진으로 유명한 허버트 폰팅은 남극을  '얼음과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신에게 버림받은 황무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독하게 고독한 곳'이라고 했다.
북극 초기 탐험가 중 한 사람도 '고독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적었다. " (p251)


 

이 책을 마무리할 무렵에 그리피스는 외몽골에 가려고 한다. 친구의 피로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온 세상과 다름 없었던 사람과의 헤어짐을 겪게 된다.
연인, 친구, 파트너와의 헤어짐.
그 이별은 정신의 황무지로 그녀를 내몰았다.


"나는 그 끝없는 돌의 땅, 고비 사막의 모든 돌이었다. (...) 돌에는 끝이 있지만 황폐함에는 끝이 없다. 먼지와 자갈, 자갈과 먼지, 먼지와 재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것이 바로 나였다.
먼지와 재에는 끝이 있을까? 끝은 있다. 먼지와 재 다음에는 침묵이 찾아온다.
(...) 나는 침묵하는 황무지였다. (p629)


 

친구의 피로연때문에 찾은 외몽골. 그러나 실연과 슬픔에 빠져 결혼식에 간다는 것은.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선택. 잔치의 지혜는 바로 희극의 지혜
이런 말로 희극의 야생성을 이야기한다.
발췌된 글들만으로도 많이 난해한 내용들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는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 다니엘 에버렛>을 추천하고 싶다.
아마존 정글에 선교사로 다니엘이 들어가지만, 그곳의 피다한 족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그가 언어학를 전공하였기에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여 가는 과정을 담은 언어학의 지적 탐구가 흥미롭게 전개되는 책이다.

우리들은 읽기 쉬운 책들을 언젠가부터 찾게 되다보니, 시각적인 면을 고려한 책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한 번쯤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인문 서적도 접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달의 사락 n******5 2011.04.14.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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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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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환경과 생태주의, 서구유럽 문명 우월주의에 대한 고발, 종교와 인종, 계급 차별에 대한 노골적 반발, 지나치게 솔직하고 자의식이 강한, 은유적이고 감성이 넘치는 문장들, 게다가 수없이 나열되는 어근과 낱말, 인용되어지는 지식의 방대함 등,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다. 미래의 관광객을 위한 흔한 여행기가 아닌 독특한 시간과 공간인 야생wild이 살아있는, 문명의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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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환경과 생태주의, 서구유럽 문명 우월주의에 대한 고발, 종교와 인종, 계급 차별에 대한 노골적 반발, 지나치게 솔직하고 자의식이 강한, 은유적이고 감성이 넘치는 문장들, 게다가 수없이 나열되는 어근과 낱말, 인용되어지는 지식의 방대함 등,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다. 미래의 관광객을 위한 흔한 여행기가 아닌 독특한 시간과 공간인 야생wild이 살아있는, 문명의 끝에 존재하는 장소에 대한 거침없고 신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는 영혼의 가장 민감한 부분으로 삶에 부딪고 싶었다.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 손톱에 낀 딱딱한 진흙 부스러기, 맨살에 내리쬐는 태양, 입술을 찢는 얼음, 몸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빠져 나가는 조수를 느끼고 싶었다. 완전히 잠기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라고 생각했던 땅, 물, 불, 바람에 얼음을 덧붙여 여행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여행은 그리스 철학이 기원이라는 서구 문명과 가장 멀리 떨어진 야생wild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첫 장은 페루에서 가까운 아마존 지역이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저자는 아마존에서 원주민 주술사를 찾아가 아야와스카를 마시고 환각에 빠진다.


“주술사들은 아야와스카가 길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정해진'길이 아닌, 당신 자신의 길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것은 일종의 송라인이다. 이 송라인은 땅의 지도가 아니라 인생의 지도다. 당신을 질식시키는 불가해한 수수께끼를 풀어줄 수 있으며 햇빛처럼 단순하면서도 결국 여행길에 오른 영혼의 동기와도 공명하는, 숲의 초록 심장 깊숙한 곳에 구불구불 나있는 길을 보여줄 수 있다. <songline - 땅의 경계표지와 길을 찾아가는 미묘한 기준을 제시하는, 구절이 연속되는 형태의 구전노래 - 옮긴이>

... 아야Aya는 케추아족의 언어로 영혼이나 조상 또는 죽은 사람을 의미하며, 와스카huasca는 덩굴이나 밧줄을 의미한다. 따라서 '죽은이의 덩굴'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실제로 주술사들은 아야와스카를 마시면 조상과 만날 수 있고 영혼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야와스카와 아마존 탐험은 영적인 은유와 깊이로 영혼에 평온을 안겨주지만 현실은 파괴적이다. 아마존이 점점 황무지로 변하고 있고 원주민들이 그들의 생활 터전을 잃고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선교사와 기업, 국가권력의 횡포는 영화 ‘미션’이 여전히 상영 중임을 보여준다. 이는 아마존만이 아니라 북극,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웨스트파푸아라는 인도네시아의 침략과 지배에 시달리는 원주민 부족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 뿐이다.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땅이 없는 원주민들은 슬픔에 잠기고 언어를 잃기 시작한다. 그들은 백인들로부터 빌려온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자기부족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땅이 없으면 ... 그들은 죽기 시작한다."


북극은 문명인에게 황무지로 보일 뿐이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 부족에겐 눈과 얼음조차도 표정이 있다. 눈을 지칭하는 말이 100가지도 넘고 얼음을 표현하는 것도 30여 가지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생존을 위한 지식이라고 한다. 눈과 얼음에도 다양한 모양과 특성, 질이 있어서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지식이 생사를 가를 수 있다고 한다.


“북극에 사는 부족들에게 이 땅은 생명과 의미로 충만하다. 물론 삶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땅은 결코 황무지가 아니다. 그들과 유럽인의 관점이 다른 가장 큰 이유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지식이다. 이 땅은 무지한 사람들에게만 황무지일 뿐이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조차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그것도 수 만 년 전부터 살아왔기에 야생wild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도 포함된다. 하지만 문명은 야생에 포함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오늘날 진정한 야생의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저자가 찾아간 모든 지역에 선교사와 문명이 발을 들이고 있으며 이들 원주민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떠났던 여행은 우리 문명인에게 너무도 멀어서 거의 도달할 수 없는 곳들이지만 그래서 그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슬프고 잔혹한 풍경들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문명화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 안에는 야생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는 걸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커다란 위험은 인간이 먹는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글루리크의 한 나이든 주술사”

z***a 2011.03.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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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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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개념은 복잡한 역사를 거쳐왔다. 야생에는 안전한 인류 사회의 벽 너머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하고 지독한 본성을 품은 야만인 같은 혼란의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야생의 자연은 지상의 낙원을 암시하기도 했다. ’야생의 자연’은 낙원이자 뱀이었으며, 그 둘을 가르는 벽의 양편에 존재해왔다."<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브루스 윌리스와 밀라 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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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개념은 복잡한 역사를 거쳐왔다. 야생에는 안전한 인류 사회의 벽 너머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하고 지독한 본성을 품은 야만인 같은 혼란의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야생의 자연은 지상의 낙원을 암시하기도 했다. ’야생의 자연’은 낙원이자 뱀이었으며, 그 둘을 가르는 벽의 양편에 존재해왔다."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브루스 윌리스와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영화 <제5원소>가 생각나는 책제목이다. 저자인 제이 그리피스는 아마존과 안데스 산맥, 웨스트 파푸아, 북극, 호주의 모래 사막 등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과 야생의 삶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늘 분주하게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이를 역마살이 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에너지가 넘쳐나기에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모양으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7년간을 한 곳도 아니고 다양한 세계를 쏘다니기 좋아하는 저자가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는 가만히 책을 통해 대리만족 혹은 경험을 하곤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에 발을 구르고 지도라도 펴고 손가락으로 짚어 보게 된다. 
 
 아야와스카(남미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환각성 약물} 이카로(주술사가 연장자나 영혼으로부터 배운 노래)를 들으며 환상적이고 신비한 체험 덕분이었는지 우울증이 사라져 버린 그리피스의 경험은 특이했다. 현대의학이라는 범주로는 설명하기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신대륙 탐험이나 제국주의 시대의 선교사나 무역상들은 새로운 땅을 개척하고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원주민의 모든 것들을 말살하고자 했다. 자유로운 바람처럼 어디든지 다닐 수 있었던 땅을 개간하고 줄을 그어 ’내 땅’을 만들어 맘대로 이동하지 못하게 했으며 원래 살던 사람들의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북극 에스키모의 삶에서도 자연에 대해 이해하고 물고기를 어떻게 잡을지, 계절에 따른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 등 고유의 지혜를 구닥다리라 여기고 게임기나 만지작 거리는 아이가 늘어났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야생의 불 편에서는 사막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유치환의 시 <생명의 서>가 생각나기도 했다. 중앙 사막에서 사망한 남자는 "내 눈은 멀고 혀는 타들어간다"고 적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중부 바위들 중에는 20억 년이나 된 것들도 있는데 모래와 바람 속에서 자비로움이나 추억을 생각할 겨를 없는 영원의 세계로 빠져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야생의 자연이라는 날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65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사진 한장 없는 점은 아쉽지만 풍부한 내용이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c******o 2011.03.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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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물,불,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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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알마 刊 이 책은 원시자연 회귀 기록이다. 그 흔한 신기한 것을 쫓아 다니는 다큐멘타리가 아닌 지구를 이루고 있는 베이직한 구성인자인 공기, 땅, 물, 불과 바람, 얼음, 그리고 자연에 귀의하려는 애틋한 오딧세이다.  저자 그리피스는 나약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태고적 원시의 절대적 부름을 받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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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알마 刊


이 책은 원시자연 회귀 기록이다. 그 흔한 신기한 것을 쫓아 다니는 다큐멘타리가 아닌
지구를 이루고 있는 베이직한 구성인자인 공기, 땅, 물, 불과 바람, 얼음, 그리고 자연에
귀의하려는 애틋한 오딧세이다.  저자 그리피스는 나약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태고적
원시의 절대적 부름을 받고 지구의 오지란 오지는 모조리 섭렵하며 자유 (자연)를 찾아
수시로 떠난 7년간의 대기록이며 대자연의 대서사시 그 자체다.


최근 일본 도호쿠 지방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후쿠지마 원전폭발 사고는 자연의 재
해 앞에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적나라함을 드러내 보였다, 땅 물 불 바람의 습격에 문명
사회는 일시에 초토화 돼 버린다, 인간의 편리함을 추구하던 원자력 발전은 재앙으로 재
공격을 하는 차에, 생태주의적 논픽션 여성 작가가 으례 그렇하듯 유려한 문장력으로 패
미니즘을 구가하며 이끄는 대로 자연에 귀의해보는 수밖에 달리 해법이 없다. 디톡스 측
면에서라도.


저자 그리피스는 야생을 보는 문명의 시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문명세계가 척박하다고
여기는 아마존의 밀림과 온통 하얗게 얼어붙은 북극 얼음땅, 뜨거운 호주의 사막과 파푸
아 뉴기니의 밀림에서 식인종과 노래를 부르고 대왕고래의 비상을 바라보다가 가끔씩이
나마 귀국하면서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돌아올 때마다 숨막혀 한다. 그녀의 대자연을 닮
은 서사시적 문장력은, 영어와 우리말의 이질적 언어가 주는 체감적 차이를 막론하고 가
슴에 출렁이며 와닿는다. 대자연에 대해 글 잘 쓰고 번역도 매끄러워 감동도 큰 책이겠다.


그녀가 현대 사회를 복도로 구획 정리된 세계라고 규정하며 그 미로 같은 복도를 벗어나
는 탈문명의 방편으로 인적이 드문 야생지를 방랑하며 반드시 기록으로 남긴다. 자연을
이루는 땅/물/불/바람/얼음 다섯가지만으로 오우가를 만들 수 있는 그리피스는 야생의 자
연을 깊숙히 날것 그대로 마시며 원시의 포효를 원음 그대로 들으며 문명 밖의 존엄한 생
명의 야생성에 몰입하고 들(憑)려서 사는 인생이 무척이나 부럽다, 그렇게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얼마나 좋으랴.

d****o 2011.03.2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