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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나 싶다. [동물농장]이나 [1984]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에 자신이 살았던 시대 광부들의 삶과 사회상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르포르타주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양차대전 기간 중 당시 사회를 위협하던 전체주의 풍토를 비판한 [동물농장]과 [1984]를 다시 읽었다. 그리곤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것은 얼마 전에 읽은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을 통해서였다. 저널리스트로써 오웰이 작성한 기사와 칼럼, 기고문 등을 묶어 엮었던 그 책을 읽으면서 오웰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웰이 살았던 시대는 파시즘과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뒤섞여 요동치던 시대였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조국인 영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산문 7편을 묶은 [코끼리를 쏘다], 식민지 인도에서 경험한 경찰간부생활을 토대로 제국주의를 비판한 [버마시절]을 읽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멈추어야 했지 싶다.
이 책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살았던 오웰이 쓴 수많은 글 중에서 29편의 산문을 선별하여 엮은 책이다. 특히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통찰을 주었던 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외의 산문들 또한 오웰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오웰의 작품들을 읽기 전에 이 산문집을 먼저 읽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기 전에 멈추어야 좋았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에 나온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를 먼저 읽어서이지 싶다. 이 책에 실려 있는 29편의 산문 중 5편이 그 책에 실려 있다. 그래서인지 산문들을 읽어가면서도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느낌은 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물론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을 다시금 읽는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밋밋하게 이 책을 읽었다.
오웰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허영심과 같은 순전한 이기심,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미학적 열정, 후대를 위해 현재를 기록한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라는 네 가지로 구분한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목적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글의 주제는 작가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며, 그래서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정치적 태도를 갖게 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예비학교에서 맛보았던 상류층아이들과의 차별, 이튼스쿨에서 실감한 계급차이,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등을 통해 갖게 된 제국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오웰로 하여금 정치적 목적을 가진 글쓰기를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294쪽)라고 말하는 그는, ‘내 작업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300쪽)라고 고백한다. 이는 그가 저널리스트였을 때 기사나 기고문을 쓰는 이유가 ‘어딘가 존재하는 거짓말을 폭로하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해’서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불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읽힌다. 오웰은 자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무조건적으로 좌파를 옹호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다.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믿었기에, 당시 지식인 계급이 지지했던 러시아식 공산주의에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오웰의 글을 읽다보면 흔히 비평가들이 말하는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지지했다’는 그의 사상을 찾으려는 생각이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때때로 강박관념이 되어 책읽기를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평가들의 말은 어떤 작품을 읽고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오웰이 살아온 시대와 그의 삶을 이해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한 이해가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오웰의 자전적인 산문들을 모아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오웰읽기를 멈추어야겠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기 싶다는 말처럼 한 번에 많은 것을 알려하다가 흥미 자체를 잃을 것 같아서이다.
같은 산문을 두고서 역자들마다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비교하며 읽어가는 것은, 역자를 달리해서 책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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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여행길에 산토리니섬을 배로 왕복하는 총 14시간을 들여 읽고 또 독후감까지 써 냈습니다. 조지 오웰하면 <동물농장> 그리고 <1984>의 두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카탈로니아 찬가>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 뒤로도 <더 저널리스트 조지오웰>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나 사상 등에 대하여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그런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는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처럼 그가 쓴 수백 편의 에세이들 가운데 골라 뽑은 29편을 묶어낸 것입니다. 유년기로부터 청년기,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생의 다양한 시기의 삶에 대하여 진솔하게 고백한 내용들입니다. 유년기에 야뇨증으로 사립학교에서 고통 받던 이야기는 물론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 피부로 느낀 제국주의의 민낯, 젊은 시절 추종하던 좌파이념에 따라 스페인내전에 공화파군으로 지원하여 참전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쓴 에세이들이 뒷날 소설 작품의 토대가 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의 참전기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이 풀렸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그가 추구한 좌파적 사상의 근저에는 애국심이 깔린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에 관련된 두 꼭지의 에세이에서는 얻은 바가 많습니다. 먼저 ‘어느 서평자의 고백’에서는 전문서평가의 말 그대로 형식적인 서평쓰기의 실체를 고백합니다. 서평을 의뢰받은 책을 모두 읽지 않고도 그럴 듯한 서평을 써내는 신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읽지 않고 쓴 독후감은 없지만 독후감이 점점 틀에 박혀가는 느낌이 들고 있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 할 이유는 없다고 했습니다. 즉 중용하다고 생각되는 소수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생계 때문에 글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합니다.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풍, 3. 여가적 충동, 4. 정치적 목적, 등입니다. 개정판을 하나로 간주한다면 모두 4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저의 경우는 문학분야의 책은 없으니 2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2번에 관한 책도 세상에 내놓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조지 오웰의 글에서 보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것들이 이미 일어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은 진실한 내용만을 글로 써두라는 것입니다. 오웰의 에세이들을 읽고 난 소감은 저도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진실한 내용만을 중심으로 해야겠지요. 에세이를 어떻게 쓰는지 먼저 공부를 충분하게 한 다음에는 한 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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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장르: 에세이 선집(칼럼 모음) 출판: 한겨레출판 저자: 조지 오웰(영국의 작가, 1903~1950) 옮김: 이한중 초판: 2010년 9월 (구입책: 2018년 3월 - 초판 15쇄) 분량: 478쪽 가격: 18,000원
▶ 이 책 한마디로
칼럼쓰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고전 에세이집'이 아닐까요? 비록 일반 독자에게는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한 독서가 되겠지만요.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수많은 칼럼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이라고 여긴 에세이(칼럼) 29편 정도를 선별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칼럼 쓰기를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 둘 필요가 있는 책이라 여깁니다.
▶ 솔직하게 고백을 하자면
나는 이 책을 완독하지 못했다. 정독, 숙독은 커녕, 완독 자체를 하지 못했다. 3월에 <책만들기> 동우회를 야심차게 결성한 후. 나름 글쓰기를 공부해 볼까 하는 취지로 구입을 했는데. 저자가 살았던 시절에 대한 배경지식,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 보니. 글은 글이요, 나는 나요, 글의 내용이 내 안에 스며들지를 못했다.
▶ 다만, 지난 5월에 이런 글(포스트)을 남긴 적은 있다.
나(조지 오웰)는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적어도 산문을 쓰는데 있어서는 말이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마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 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 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293-294쪽)에서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글 '포스트'를 왜 쓰는가? 위의 1번과 4번의 적절한 혼합? ^^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글을 쓰십니까?
▶ 그래도 다시,
꼼꼼하게 읽은 부분들은 있어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추천하는 바이다.
221쪽 <문학예방 The Prevention of Literature, 1946년 1월> 255쪽 <정치와 영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년 4월> 289쪽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1946년 여름> 449쪽 <간디에 대한 소견 Reflections on Gandhi 1948년 가을>
꼭 읽어 보시라 비록 나는 이 책의 완독에 실패했지만. 다른 많은 이들은 이 책에서 유익한 정보를 얻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비유. 새로 만들어내는 비유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킴으로써 생각을 돕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 기법상으로 '죽어버린 비유(예를 들어 '철석같은 결의 iron resolution')는 사실상 일상어의 지위로 되돌아가되 생기는 잃지 않으면서 널리 쓰일 수가 있다. (259쪽)
이런 식으로 저널리스트, 또는 일반 칼럼리스트에게 필요한 조언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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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 번에 완독하자고 다시 한 번 약속해본다. 서평에 불필요한 사족을 먼저 언급하자면 『나는 왜 쓰는가』는 2년 전 리더동기모임의 토론도서였다. 완독을 못한 채 전반부 수록작품에서 논제를 만들었는데 그날 나온 논제 대부분이 약속이나 한 듯 앞부분에서만 나왔다. 다음 달에 후반부 토론을 하기로 하고는 아직 모이지 못한 채 2년이 되어간다. 책을 보면 2022년 12월 5일 <문학 예방> 말미에 ‘대단하다!’라는 메모가 있다. 지난 6월에 다음 이야기인 <행락지> 부터 펼쳤고 마지막 페이지 이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재독을 시작했다. 읽기를 중단한 사이에 특별한 변화라면 『1984』를 읽고(서평쓰기까지 포함) 토론했다는 차이가 있겠다. 『1984』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언어를 조작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지옥도와 그 안의 함의들을 직접적으로, 동시에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그 후 다시 보는 오웰의 문장은 낱말 하나, 문장부호 하나도 허투루 읽을 수 없게 만든다. 다시 편 <행락지>부터 감탄은 계속되었다.
『나는 왜 쓰는가(이한중 옮김, 한겨레 출판, 2010, 480면 분량)』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선집으로 전체 스물아홉 편의 글이 담겨있다. 쓴 순서대로 묶인 에세이들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관찰자이자 행동가였으며 진실을 추구하고 타협하지 않았던 정신의 증거이자 정직한 자화상이다. 영국령 인도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의 대표작은 <동물 농장(1945)>과 <1984(1948)>를 꼽지만 책으로 출간한 소설, 르포, 에세이집 11권과 수 백편의 에세이가 있다. 그는 계급의식을 풍자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탁월하였으며 정치적 글쓰기로 20세기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지 오웰은 필명으로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이다. 첫 작품 『파리와 런던의 부랑자』(1933)부터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였다.
작가가 제일 처음으로 발표한 1931년 글 <스파이크>는 부랑자를 위한 숙소에서의 체험을, 1948년 마지막으로 집필한 <간디에 대한 소견>은 인간됨의 본질과 성인됨을 거론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눈을 맞추었던 오웰은 그 시간에 정성을 들였고 반론이 있을지언정 대중이 우러르는 위치에 있는 자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글을 맺은 게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그를 정치인으로만 볼 때, 그리고 우리 시대의 다른 유력 정치인들과 비교해볼 때, 그가 남긴 향기는 얼마나 맑은가!”(p.460)로 책은 끝난다. 이 마지막 문장이 작가에게 돌아간다. 오웰이 남긴 향기는 얼마나 맑은지. 동시에 짙으면서 필요한지, 몸을 사리지 않고 세상과 그 안에서 부대끼는 인간을 꿰뚫어보았던 실천적 지식인에게로 이 문장은 기꺼이 돌아간다. 에세이들은 분량도 주제도 다채로워서 ‘전부 겨우 6페니를 주고 산’ 장미에 대한 단상격인 <나 좋을 대로>부터 자신이 통과한 유년을 역설적인 제목 아래 사실적으로 기록한 <정말, 정말 좋았지>까지 다양하다. 후자는 작가 사후에 지면에 발표되었으며 여덟 살부터 육년간, 유년의 시기에 세상이 얼마나 비정할 수 있나를 학습하는 장이었음을 고백한다.
모든 글에서 작가의 주장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치와 영어>에서는 이와 같은 선명함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글은 선명해지는지, 선명하지 않은 글의 문제점과 폐해를 조목조목 분석한다. 단어사용의 엄격함과 민감함은 역시 <1984>의 작가라는 걸 확인케 만든다. 문제점을 지적할 때의 진지한 분위기에도 위트는 사라지지 않고 독자는 주목하게 된다. 또한 지적에서 끝나지 않고 유용한 처방을 내린다. 최고의 글쓰기 강의를 지면을 통해 듣는 셈이다. “나는 왜 쓰는가”와 “어떻게 쓸 것인가”는 날기 위한 양 날개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에서 말하는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는 스스로를 재어보게 하기에 주기적으로 떠올린다. 특히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p.300)로 시작하는 말미의 명문장은 숨을 고르게 만든다.
그 중에서 <어느 서평가의 고백>은 무척 흥미진진하면서 눈앞에 오웰의 방, 그의 책상, 종이더미들이 저절로 그려졌다. 나도 모르게 왜 내가 행복해지지, 자문하면서 읽은 후에는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도착하는 책들, 책배의 압박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가운차림으로 고문당하는 사람의 일이자 사명을 유머러스하게 포착한다. <물속의 달>은 반전에 놀랐던 사랑스러운 글이었다.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평론과 셰익스피어의 명성에 반기를 들었던 톨스토이에게 대응하는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는 문학비평이자 심리학적 분석으로도 읽힌다.
조지 오웰은 어렵고 곁을 내주지 않고 심각하고 마냥 진지할 것 같았다. 그러나 대여섯 살 때부터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던 오웰은 “차분히 앉아 책을 쓰는 일”(p.289)에 전 생애를 바친다. 오웰에게 차분히 앉아 있는 장소는 총탄의 한가운데, 냉기 가득한 거리, 식민지의 근무처나 터무니없이 열악한 병원을 의미했고 어쩌면 기숙사의 젖은 침대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테다. 읽을수록 작가의 시선은 명치 언저리까지 아릿하게 만든다. <코끼리를 쏘다>에서, 시를 쓰게 만든 이탈리아 민병대원을 기억하는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에서, 장작더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인간과 너무 많은 짐을 진 당나귀로부터 사실을 상기하고 지적하는 <마라케시>에서.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는 기록하고 질문하고 입장을 밝힌다. 독자는 대답해보려 애쓰면서 책장을 넘기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견주어본다. 간결하고 또렷한 문체는 건조하고 힘있게 파고들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이나 고귀함을 서정적으로 스며들게 만든다. 그는 진지한데 위트도 넘친다. 읽어야하는 책이면서 공부해야 하는 책이다. 눈으로 한번 스치고 말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작가의 한 문장이 농축하고 있는 하루, 일상, 투신, 참여와 거리두기, 필연의 선택과 결정을 따라가 보는 일에는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떤 글을 다시 찾아 읽게 될 테고 그때마다 감동은 여전할 것이다. 말미에 실린 <조지 오웰 연보>가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또 숙연케 한다. 활자는 작가가 살아낸 궤적으로 인해 식지 않는 온기를 후대에 남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던데 서두르지 않고 오웰을 읽어나갈 수 있겠다. 남아있는 오웰의 작품들을 헤아려보며 이게 무슨 복인가 생각한다. 치열한 글쓰기의 표본, 좋은 문장의 릴레이, 간곡한 기록인 『나는 왜 쓰는가』를 추천한다. ![]() 책 속에서>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주 동안 매일 언제나 같은 시간에 노년의 여성들이 장작을 지고서 줄지어 집 앞을 절뚝절뚝 지나갔건만, 그리고 그 모습이 내 눈에 분명히 비치었건만, 나는 사실 그들을 봤다고 할 수가 없다. 내가 본 건 장작이 지나가는 행렬이었다. 내가 우연히 행렬을 뒤따라가다가 묘하게 들썩거리는 장작더미에 시선이 끌려 그 아래에 있는 인간을 주목하게 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그 가련한 흙빛의 육신들이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반으로 접혀버린, 뼈와 가죽만 남다시피 오그라든 육신들 말이다.(p.14)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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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작가 조지오웰의 에세이들 29편을 묶은 책이다. 조지 오웰 디에센셜을 살지 이 책을 살지 고민하다가 우선 이 책을 사서 보았다. 영국, 당신의 영국 당신과 원자탄 나는 왜 쓰는가 에세이들의 제목 마저 모두 인상 깊다. 조지오웰이 다양한 상황과 장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역시 인상깊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실천하며, 글을 쓴 조지 오웰! 존경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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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한동안 어두침침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세상이 있다면.. 이란 상상을 하다 숨이 턱 막혔기 때문이다. 그러다 조지 오웰이 쓴 책. 어찌보면 에세이 같기도 하다. '나는 왜 쓰는가' 를 구매했다. 평소의 그의 생각과 글쓰기에 대한 그의 태도가 궁금해서 였다. 난 책읽는 방법이나 글쓰는 방법등의 책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아닌 타인은 어떤식으로 그것들을 접하는지가 무척 궁금하기 때문이다. 29편의 에세이를 통해 조지 오웰 작가에 대해 손바닥 만큼은 알지 않았을까 생각 해 본다. 작가가 쓴 다른 책들도 빨리 읽어보고 싶다. 다만 또 1984처럼 우울해질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큼 임팩트가 강했던 책으로.. 읽은 걸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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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또는 에릭 아서 블레어 『1984』와 『동물농장』으로 문명을 날린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로, 1903년 인도 벵골 지방에서 영국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 칼리지를 졸업했으나, 집안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버마(현 미얀마)에서 제국 경찰로 복무하기도 했다. 경찰 생활을 통해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끼고 사직한 뒤, 총을 내려놓고 펜을 들기로 결심한다. 이후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를 떠돌며 접시닦이와 노숙 생활을 자처했고, 밑바닥 생활의 처참함을 기록한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36년에는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의용군으로 참전했으나, 이 과정에서 목에 관통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 중 공화파 내부의 권력 투쟁과 스탈린주의자들의 배신을 목격하며, 전체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와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 경험은 그의 문학적 분기점이 되었으며, 그는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을 작가로서의 소명으로 삼는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BBC 프로듀서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칼럼과 에세이를 다수 집필하기도 했다. 이윽고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독재를 풍자한 우화 소설 『동물 농장』과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를 그린 『1984』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평생 지병인 폐결핵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지만, 1950년 47세의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로서 걸어온 길을 회고하며, 작가가 글을 쓰는 근원적인 동기와 목적을 규명한 글이다. 이 글은 단순히 개인적인 회고록을 넘어, 문학이 사회와 역사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오웰의 문학적 선언문처럼 읽히기도 한다. 작가의 태동: '순수한 말'에 대한 애착 오웰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작가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 유년 시절을 고독하고 불쾌했다고 회상하며, 현실 감각이 부족했던 소년이 자신만의 사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고백한다. 초기에는 호랑이의 이빨처럼 단단한 돌과 같은 문장처럼, 낱말 그 자체가 주는 소리와 느낌, 즉 언어의 미학적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겪은 버마 경찰로서의 경험, 빈곤 체험, 그리고 결정적으로 히틀러의 부상과 스페인 내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이 그를 '순수 문학'의 세계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글을 쓰는 4가지 거대한 동기 오웰은 생계 수단을 제외하고, 작가가 글을 쓰게 만드는 4가지의 근원적인 동기를 제시한다. 모든 작가는 이 4가지 동기의 비율이 다를 뿐,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4가지 동기는 후대 작가들이 창작론을 거론할 때 필수적으로 거론하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1) 순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욕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은 허영심,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욕망이다. 오웰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인 존재이며, 유년 시절 자신을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이나 낱말의 배열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지각이다. 어떤 소리, 어떤 색채, 혹은 훌륭한 산문이 주는 리듬감에 대한 욕망이다. 오웰은 아무리 정치적인 글을 쓰는 작가라 할지라도 글의 미학적 완결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어 그것을 후대를 위해 보존하려는 욕망이다. 왜곡된 선전 선동에 맞서 '팩트'를 기록하고 진실을 증언하려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어떤 사회가 더 나은 사회인지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욕구다. 오웰은 이렇게 단언한다. "정치와 무관한 책은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그 자체가 정치적 태도다." 글쓰기의 고통과 진실 오웰은 자신의 본성이 앞의 세 가지(이기심, 미학, 역사)에 가까웠다고 밝힌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그는 화려하고 묘사적인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모든 글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덤덤히 말한다. 이때부터 오웰의 가장 큰 과제는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 되었다. 정치적 목적과 미학적 열정을 결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솔직하게 토로한다. 정치적인 주장을 담으면 글이 딱딱해지고 팸플릿처럼 변질되기 쉽고, 반대로 미학에만 치중하면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기 십상이다. 오웰은 이 두 가지 모순되는 욕망을 융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웰은 글쓰기를 "끔찍하고 힘겨운 투쟁"이라고 묘사한다. "마치 고통스러운 병을 앓는 것처럼" 글을 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악마에게 쫓기지 않는다면 아무도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창작의 고통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오웰은 본인인의 글에서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었을 때, 글은 생기를 잃고 '화려한 쓰레기'가 되어버린다고 가차없이 비판한다. 즉, 영혼 없는 문장, 진실이 없는 기교를 가장 경계한 것이다. 조지 오웰에게 좋은 산문이란, 창유리처럼 투명하여 작가의 자의식이 드러나지 않고 오직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만이 선명하게 보이는 글이었다. 시대를 증언하는 의무 『나는 왜 쓰는가』는 단순히 "나는 이런 이유로 썼다"는 회고를 넘어, 동시대의 지식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호소이다. 전체주의와 거짓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에 작가는 침묵하거나 도피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이기심과 미학적 욕구를 시대적 소명(정치적 목적)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 오웰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명확히 함으로써,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쓰는가? 당신이 보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 에세이는 글쓰기가 단순한 취미나 자기표현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진실을 보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배우는 글쓰기 팁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특히「정치와 영어」)는 현대인, 특히 논픽션이나 에세이를 쓰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실용적이고 강력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Tip 1. '왜 쓰는가'에 대한 당신만의 비율을 찾아라 (동기 점검) 오웰은 4가지 동기(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를 제시했다. 글을 쓰기 전,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나를 드러내고 싶은가? (이기심): 그렇다면 당신의 경험을 더 솔직하고 매력적으로 포장하라. 독자는 당신의 개성에 반응한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은가? (미학):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리듬감이 있는지, 단어의 어감이 적절한지 살피라. 사실을 기록하고 싶은가? (역사/정치): 내가 쓰려는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이 글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라. 물론 가장 좋은 글은 이 4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나온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글(이기심 과잉)이나, 재미없고 딱딱한 주장만 있는 글(정치 과잉)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당신의 글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것이 수정의 첫 단계다. Tip 2. 글은 '창유리'처럼 투명해야 한다 (명료성) 오웰 글쓰기의 제1원칙은 명료함이다. 그의 말처럼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 같다." 유리창에 먼지가 끼어 있으면(화려한 미사여구, 어려운 전문 용어) 밖의 풍경(작가의 생각)이 보이지 않는다. 독자가 사전을 찾게 만들지 말라. 현학적인 표현으로 무식을 감추려 하지 말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스스로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쓰기 시작하면 문장은 복잡해진다.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가장 쉬운 단어로 표현하라. Tip 3. 죽은 언어를 피하고 '이미지'로 승부하라 (구체성) 오웰은 상투적인 문구를 "죽은 언어"라고 불렀다. '눈부신 발전', '피 땀 어린 노력', '다사다난했던 한 해' 같은 표현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나만의 이미지를 만들라. 추상적인 단어 대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구체적인 묘사를 사용하라. 오웰은 "정통성은 무의식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마치 뱃속의 튜브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감각을 동원하라. '가난이 힘들었다'라고 쓰는 대신, 오웰처럼 '더러운 냄새', '썩은 빵 조각', '미끌거리는 설거지물'을 묘사하라. 독자는 설명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설득된다. Tip 4. 불쾌한 사실을 직면하는 용기를 가져라 (진실성) 오웰은 "자유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라고 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유행하는 의견에 편승하는 글은 생명력이 짧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라. 내가 진짜로 그렇게 느끼는가, 아니면 남들이 그렇게 느끼니까 나도 흉내 내는 것인가? 불편한 진실을 쓰라. 나의 부끄러운 과거, 우리 사회의 모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이기심을 드러낼 때 글은 강력한 힘을 얻는다. 독자는 작가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에 가장 큰 신뢰를 보낸다. Tip 5. 오웰의 6가지 작문 원칙을 실천하라 오웰이 「정치와 영어」에서 제시한 6가지 원칙은 글을 퇴고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체크리스트다. 책상 앞에 붙여두고 적용해 보라.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떄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통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결론적으로, 오웰에게 글쓰기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세상을 명확하게 보고(관찰), 정직하게 생각하며(사유), 가장 쉬운 말로 전달하려는(표현) 치열한 노력이 바로 오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글쓰기의 정수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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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1984로 유명한 조지오웰작가가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가 있음을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했다. 무라카미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소설가 같은 책인 줄 알았다. 근데 이 책은 29편의 짧은 에세이 모음집이었다. 정작 원 제목인 나는왜쓰는가편은 10페이지밖에 안되어 아쉬웠다. |
| 이 책을 통해 조지 오웰의 다양한 여러 에세이들을 읽어볼 수 있었다.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도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교수형」이 인상적이었다. 식민지 버마의 경찰 간부로 있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살아있는 한 인간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를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
| <책 한 번 써봅시다>를 읽고 추천하는 책이라 주문해서 읽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묘사와 심경의 변화를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써진 글입니다. 따라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그의 문장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또한 번역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이해가 아주 잘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