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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타자기 글씨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 ‘불안 속의 영혼들에게’
왠지 나한테 하는 소리 같지 않나? 왜인지 모르지만, 나는 늘 불안했다. 아무리 장밋빛 미래를 상상해도, 가슴 한 편에서는 불안감이 존재했다. 사랑하는 순간에도, 잠을 자려고 눕는 순간에도 늘 무엇인지 모를 불안이 나의 청춘을 눌러왔다. 왜 그런지 물어도 답을 얻지 못한 채 나이만 들어가던 중 불안한 영혼들에게 바치는 책이라니! 이거 횡재한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첫 페이지를 연다. 제목이 현대예술이라는 점을 까마득하게 잊고.
이 책을 다 읽은 것은 몇 해 전이지만, 읽고 이해하는 것과 써서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의 언어로, 이 책에 대해 적어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다시 읽고, 같이 읽고, 책 속에 언급된 다른 책들을 읽고, 몇 번을 반복해 읽은 후에서야 비로서 이제야 무언가 한 마디 끄적일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 위안을 받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첫장에서부터, 그리고 서문에서부터 위안을 받기 시작했다.
‘모든 시대가 자기 시대의 이해를 어려워한다.’ - 젠장, 그래서 현대가 어려운건가? 현대인들의 생각을 이해한다는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어려운건가? 그래서, 세상이 망할것 같은 불안을 느끼는건가 ‘누군가는 수동적 삶의 무의미와 덧없음을 거부한다. 이때 그는 세계의 포괄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혼란과 동요가 그러한 영혼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 맞아.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내 주위, 나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몇 십년 동안 흔들렸었다. ‘20세기의 새로운 언어학이나 분석철학이 현대를 설명하기보다는 현대가 오히려 새로운 학문들을 해명한다. 현대예술은 언어학이나 기호학과 병존한다.’ - 뭔가 새로운 설명이다. 왠지 동의하게 되고 말 것 같은 설명. ‘형이상학적 이해없는 예술 감상은 스스로를 답보 상태에 가져다 놓는다. 이것은 심미적 즐거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단지 누군가가 자신의 심미적 즐거움의 근거를 알기 원하고, 정돈되고 차원높은 심미적 즐거움을 누리기를 원할때의 얘기다.’ - 바로, 이거였다. 내가 예술사를 공부하고 싶은 건. ‘현대의 세계관이 과거의 세계관보다 열등하거나 우월하지 않다.’ - 이것은 비단, 세계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타인보다, 타인은 나보다 열등하거나 우월하지 않다. 그냥, 그 자리에, 각자의 자리에 있는 개개인이다. ‘필연성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오만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 나에게 이젠 그 자유를 선택할 용기만 필요할 뿐이다.
본문은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 형성된 과정과 회화, 문학, 건축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예술에 어떻게 이 사고방식들이 스며있는지를 차례대로 설명해준다. 이 책이 다른 예술사와 다른 점은 예술사라는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부제(형이상학적 해명)처럼 나의 모든 면을 형이상학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는데 있다. 아마도 내가 예술관련 전공자가 아니기에 내가 이 책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러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바닥까지 나의 양심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결국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마음을 비우는 경험을 했다.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이해하고야 말겠어 라는 다짐들의 허무맹랑함을 마침내 나는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교육에 의해 나에게 주입되었던 생각이었건, 내가 타고난 기질이 그러하건, 그 모든 것이 근거없는 희망이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러한 나의 인식 변화가 흔히 우리가 말하는 ‘목표상실’, 혹은 ‘자포자기’, ‘포기’와는 결코 다르다는 점이다. 실재하지 않는 많은 것을 내려 놓음으로서 나의 어깨는 가벼워졌고, 자유로와졌다. 그리고, 오히려 강인해지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사고방식이 바뀐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권의 책과 그로 인한 수많은 생각들이 결국 나를 그리 만들었다. 나를 인도했다, 현대로.
내 비록 전공자는 아니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일반인도 예술사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이 책의 위대함이라고 본다. 기존에 내가 알던 철학책에서 나열되는 어려운 단어들을 이리도 쉽게, 외국어가 아닌 한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드문 것 같다. 일반인들에게도 예술사와 철학을 넘나들 수 있는 안목을 주는 책이니,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눈을 뜨게 해 주는 큰 선물이다.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예술사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 첫 시도라는 점, 그리고 본문의 내용이 탁월하다는 점 뿐만은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문장 자체에서 어떤 아름다움이 울린다. 간단히 나열된 단어들에서 발견되는 미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위에서 예를 든 서문의 문장처럼.
현존의 이해라는 절박한 요구에 의해 현대예술을 먼저 집필한다고 밝혔다. 그랬다. 나는 내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시대를. 이 모든 궁금함을 위해 현대를 먼저 출간해 준 저자에 감사드린다. 현대라는 세계관을 만나고 나서, 혼란스럽기만하던 것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냥 복잡한거야, 어려운거야 라고 여겨지던 현대물리를 현대과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시작했다. 이제 이 평화가 유지될 것인지, 계속 흔들릴 것인지는 오롯이 내 선택의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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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다음 서평을 쓰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 대한 소개 대신 무조건 '읽어라'라고 하는 편이 낫고, 몇 문장의 인용은 도리오 책에 대한 누(累)가 되어 인용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서평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글이란 서문 일부의 인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언어학, 인류학, 기호학 등의 연구에 매달렸던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통찰에 준해 현대의 형성에 공헌했다. 그러나 이것들이 현대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것들 역시도 현대의 한 현상일 따름이다. 이 책은 이러한 성취의 이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탐구의 탐구이며, 설명의 설명이다. 독특하고 때때로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낯선 현대 예술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포괄적으로 설명된다. 궁극적인 도전에 의해서만 현대예술과 그 예술가들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20세기의 새로운 언어학이나 분석철학이 현대를 설명하기보다는 현대가 오히려 새로운 학문들을 해명한다. 현대의 저변을 형성하는 형이상학에 대한 고찰만이 언어학이나 기호학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현대예술은 언어학이나 기호학과 병존한다. 모두가 현대의 형이상학 위에 기초한다. 모든 것은 물결 위의 포말이다. 하상엔 굴곡진 형이상학이 있다. 현대에 시도된 다채로운 예술적 성취들은 당혹과 분노, 경멸과 외면의 대상이기도 했다. 현대예술은 감상자들을 소외시키며 발생했다. 사람들은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이익에보다는 손해와 결여와 책임에 훨씬 민감하다. 과거는 금의 시대이고 현대는 타락한 시대이다. 현대는 그러나 모든 시대가 그렇듯이 가치중립적이다. 다른 어떤 시대, 다른 어떤 생활 양식이 현대에 비해 더 많은 가치와 미덕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현대에 이르러 더 많은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한 만큼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공평한 인식이 현대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이다. 혐오는 때때로 몰이해와 무지가 동기이다. 파라켈수스가 말한 바 "지식이 사랑을 부른다" 현대예술은 야유와 냉소를 동반한다. 진정한 예술은 감상적 위안을 거부한다. 깊이와 진실은 언제나 자기 부정을 전제하듯이 현대의 유의미한 성취는 전통과의 완전한 단절에서 출발한다. 전현대성에 젖은 시대착오적 센티멘탈리스트들이 현대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은 그러므로 이들의 자기부정의 부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자기만족과 자기위안보다 더 역겨운 것도 없다. (8쪽 - 10쪽) 아마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경험하게 되는 바, 어렵고 난해하게 여겨지는 문장들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감동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현대예술을 알게 되고, 철학 전반에 대해서, 나 자신과 우리 시대에 대한 깊이있는 공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독서의 놀라움을 전해준다. 고작 책 한 권인데... 하지만 어떤 책 한 권은 어떤 이에게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기도 한다. 바로 이 책,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처럼.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실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 특히 서사문학에서의 사례들 - 리처드 브라우티건, 움베르토 에코, 존 파울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도널드 바셀미, 저지 코진스키, 마르케스 등에 이르는 문학작품들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한국어로 씌여진 바 최고의 책이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 일독을 권한다. 아마 책을 펼치는 순간, 덮지 못할 것이며, 자연스럽게 두 세 번 읽게 되겠지만.
책의 속 표지에 적힌 문구. '불안 속의 영혼들에게'. ... 어쩌면 이 책만큼 절망에 빠진 현대의 우리들에게 위안이 될만한 책이 또 어디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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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있어서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이책 저책마다 먼가를 얘기하는데 복잡해서 정리가 안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거 같다. 제1원인, 의미, 대상으로서 세계에 대한 획득의 불가능에 대한 인식 거기서 오는 개념이나 재현으로서의 그림이나 서사의 포기한다. 모더니즘은 부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바라봄 속에서의 견고함을 스스로의 원리로 삼아 가언적 세계를 만든다, 그러기에 분석철학이나 언어학으로만 이야기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재현을 보여주나 지워질것을 전제한 재현으로 유희와 조롱을 위한 재현으로 지워진 세계를 말한다.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 한다. 개념이나 의미를 가진 세계는 근대의 영역이고 현대는 실존이 먼저와서 세계를 만든다는 세계의 무의미성을 가지고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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