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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이야기이고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책의 그림과 문장이 좋아요. 초1인 아이도 처음 책장을 펼쳤을 때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집중해서 잘 보았어요. 처음 알게된 작가분인데 연세도 많으시고 많은 책을 내셨네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책도 찾아서 보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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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출판사에서 재밌는 전래동화 한편이 나왔다. 글/그림 홍성찬선생님의 작품이다. 원로작가이시고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선생님의 작품은 가슴을 찐하게 만져주는 그림이 있다. 그림책 작가 류재수선생님의 말씀처럼 지난날의 엄격하고 치밀한 묘사는 무뎌졌고, 드문드문 반복된 덧칠과 불안정함으로 예리함이 느슨해졌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장까지의 견고한 구도의 공간감, 선생특유의 투박한 온기 있는 서정은 예나지금과 같다는 그 말이 공감이 간다. 토끼의 재판은 많이 읽었던 작품이다. 지난가던 선비가 구덩이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주니 호랑이는 구해준 은혜를 모르고 잡아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옳고 그른지를 나무나 곰, 여우등에게 묻는다. 사람들한테 당한게 많아서 모두 다 선비를 잡아먹으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토끼에 물으니 호랑이에게 원래의 상황을 보여줘야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는 다시 구덩이에 들어가고 선비는 다행이 원래의 길을 가게 된다. 울아들도 너무 좋아하고. 여러출판사의 책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봤지만. 처음에 호랑이가 빠진 구덩이를 빠는 이야기를 앞부분에 한 책은 처음이었다. 허방다리를 놓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다른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의 풍부함을 볼 수 있었다. 감칠맛나는 문장은 아이에게 큰 소리로 읽어줬을때 더 빛을 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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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딱 어울리는 옛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다. 유독 우리 옛이야기에는 호랑이가 많이 나오는데 죽을 때까지 인간 가족(이라고 믿는)에게 고기를 갖다 주는 착한 호랑이부터 엄마를 잡아먹고 그 아이들까지 잡아먹으려는 못된 호랑이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 이야기의 호랑이는 후자에 속한다. 구덩이에 빠졌기에 기껏 구해줬더니 배고프다며 잡아먹어야 한다나. 아니, 나그네도 그렇다. 이왕 물어보려면 인간에게 유리한 동물에게 물어볼 것이지, 왜 하필 모두 인간에게 유감이 많은 것들에게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러고 보니 인간에게 우호적인 동물이 얼마나 될까.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면 나그네 편을 들어줄만한 동물은 없어보이긴 한다.
이렇게 옛이야기는 긴장을 유지한다. 반 정도까지는 나머지 동물들이 호랑이가 잘못했다고 하면 나그네가 살아날 가망이 있으니 기대를 하지만 반이 넘어가면 이젠 나그네가 죽었구나 싶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토끼를 만나기 전까지 모두 인간이 나쁘다고만 하니 이제 위기에서 빠져나오려면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 누군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그네는 처음부터 별로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다. 장끼가 아무리 말려도 약속은 지켜야한다며 구해주더니 호랑이가 잡아먹겠다고 할 때에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하니 언젠가는 선이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이 호랑이는 원래부터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등 못된 짓을 일삼던 호랑이라서 다시 구덩이에 빠져도 전혀 불쌍하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호랑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줬나 보다. 만약 그 모습이 없었다면 약간의 측은함을 가질 수도 있을 테니까.
노구의 저자가 가까스로 작업한 책이라고 한다. 시력이 점점 안 좋아지는 과정에서 작업한 책이라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땅속나라 도둑괴물>보다 선이 거칠어진 듯하다. 그러나 거친 선도 나름대로 괜찮다. 아니, 원래부터 이런 의도를 가지고 그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는 세상을 배우는 통로라고 한다. 선과 악이 있고 살아가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이야기를 하나씩 만나는 과정이 재미있으면서 의미있다. 그래서 보림의 까지호랑이 시리즈가 여전히 사랑받고 꾸준히 재창작되어 나오는 것일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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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과 현명함 사이에서 우리는 망설일 때가 많다. 극적으로 살아난 나그네를 보자면 덕행에도 지혜와 현명함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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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른 넷인 나는 "우리 방"에 처음으로 책장이 들어오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이었다. 어쩌면 2학년이었는 지도 모른다. 책꽂이엔 우리가 이미 아주 어릴 때부터 보던 새학습대백과라는 어린이 백과사전(이 책을 통해 나는 한글을 떼었다)과 외국의 화려한 일러스트가 담긴 세계명작동화전집, 신동우 화백의 그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국전래동화전집이 꽂혀있었고,
그리고 책장과 함께 한국창작동화집과 위인전집이 새로 들어왔다.
나는 이 위인전집에서 처음으로 홍성찬 선생님의 그림을 만났다.
그것들은 당시 내가 좋아했던 외국 동화책의 그림처럼 아름답거나 화사하지도, 또 귀엽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단단하고 정교하면서도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는 면모가 있는 그림이었다.
지금 나에게 그 느낌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라면 "독자적인 개성"이라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서른 넷이 되어 선생님의 신간 "토끼의 재판"을 본다. 이 책을 보며 나는 눈을 의심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마음에 담았던 선생님의 그림이 아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마음으로 책 읽기를 마치고 맨 뒤에 류재수 작가님의 덧붙이는 글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그 까닭을 알았다.
지금 생각해도 코끝이 찡하다. 홍성찬 선생님은 사물을 겨우 분간할 정도의 시력을 갖고 이 책을 그려나갔다고 하신다. 이것은 어떤 면모로 보나 나에게는 감동이다. 열살의 내가 그 분이 막 그려낸 책을 읽었고, 또 서른 네살의 내가 그 분이 막 그려낸 책을 읽었다. 한참 그림이 곁들여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한 어린 나와, 이제는 책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내가 똑같은 선생님이 한창 작업한 책을 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
그림을 그리기 힘든 신체적 조건을 이겨낸 선생님의 노력과 혼으로 이런 기적같은 경험을 나는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뭉클함을 맛볼 수 있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형태가 다소 어눌하고 묘사가 허술하다 해도 인물의 동작에 깃든 자연스러움과 경쾌함, 또 표현의 유머러스함은
그 어떤 젊고 한창인 작가보다도 더욱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이것이 아마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온 거장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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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명확하게 기억하는 <토끼의 재판>은 '배추도사 무도사 옛날옛적에'에 나온 버전이다. 토끼가 자신을 놓아준 사람에게 은혜도 갚을 겸 명재판을 한다는 이야기.
이번 보림에서 출간된 홍성찬의 <토끼의 재판>은 이야기의 기본 골조는 같지만 세세한 과정은 좀 다르다. 일단, 토끼와 사람 간의 이해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 그리고 꿩을 내세워 직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미리 전한다는 점, 또 모든 동식물이 호랑이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소와 사슴은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판결의 다양성이 보인다는 점이 가장 큰 내용상의 차이점이다.
이번 책에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은 굉장히 섬세하다는 것이다. 앞서 만화 시리즈물에서 볼 수 없었던 면들이 그림책에서는 매우 섬세하게 다뤄져 있는 것을 비롯하여 처음 도입을 드라마 첫 회 방송 보여주듯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다음 제목이 나와 본격적으로 시작되도록 구성한 점이 효과적이고, 이 도입으로 인해 긴장감을 처음부터 가지고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림 이야기를 해 보면, 홍성찬 작가는 우리 나라 그림책 1세대로서 많은 전래 동화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매우 한국적이면서 군더더기 없는 느낌이랄까 그런 면들이 어떻게 보면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는 흥미롭지 않아보이기도 하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어른까지 읽어도 전혀 유치하다거나 어린이용만으로 보인다거나 하지 않아 오히려 오래 두고 보기엔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가 끝난 후 에필로그처럼 쓰여진 그림책 작가 류재수 씨의 글에 따르면 이 책의 그림은 홍성찬 작가의 제대로된 그림은 아니라고 한다. 취향의 문제를 배제하고 보더라도 아주 잘 그린 그림은 아니라고 하니 아쉬울 만도 하고 속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류재수 씨의 글을 읽고 나니 이 그림책이 더욱 소중하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림책 자체에 담긴 이야기보다 작가의 삶과 버무려진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기 때문인가 보다. <토끼의 재판>이 어떤 내용인지, 그것의 교훈은 무엇인지에 대해 새삼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그림책이 우리 나라 그림책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지, 모두가 다 아는 뻔한 내요임이 분명한 데에도 노작가가 말년의 작품 속에서도 치열하게 고민한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인지에 대하여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 책이 한 권의 책으로 섬세하고 견고하게 묶인 것을 감사하고 축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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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찬 글, 그림 '토끼의 재판' - 보림 까치 호랑이;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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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라면 당연히 '옛날 옛적에~'라고 시작해야겠지만,
요즘 들어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일이 부쩍 늘었어...(중략) 그래서마을 사람들이 훈장 집에 모여 밤이 이슥하도록 이런 저런 궁리를 한 끝에 허방다리를 파기로 했어.
'요즘 들어'라고 시작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고 있는 모습에서 이야기는 마치 현재에도 호랑이가 살아 움직이는 듯 시작하는 것이 매우 톡특하게 느껴졌습니다. 홍성찬 선생님의 현실감 넘치는 그림과 이야기가 입말이 살아있어 구수한 옛 이야기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어요. '허방다리'는 '함정'을 뜻하는 말인데 사라져가는 단어를 만날 수 있어 좋았어요.
나그네가 호랑이를 만나기 전, 그러니까 호랑이가 허방다리에 빠지기 전... 가을 걷이가 끝난 마을 사람들이 함께 허방다리를 만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듯 타이틀 페이지가 이야기 왼편에 작게 등장하고, 나그네가 주막을 떠나는 장면에서 옛 이야기가 다시 시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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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비슷합니다. 홍성찬 선생님은 옛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은 <토끼의 재판>을 글과 그림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나이가 많아서 겨우 사물을 분간할 정도의 흐릿한 시력에 의지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해요. 어쩌면 설정이 아니라 그래서 그림이 어두운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투박하면서도 꼼꼼하고, 동물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어서 놀라웠어요.
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재판관이 등장합니다. 장끼, 나무, 멧돼지, 닭, 소, 염소, 곰, 여우, 사슴, 그리고 지혜로운 재판관 토끼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인간들의 불만이 새삼 먼 옛날 이야기같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요즘 들어~'라고 시작했던 서두때문인 것 같아요. 여러 재판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이 생각났어요. 금수회의록은 화자가 동물들의 회의에 참여하여 듣는 형식으로 인간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풍자한 우화소설이에요.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물들이 말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참으로 심판받아 마땅하더라구요.
하지만 자신을 살려 준 나그네의 은혜를 모르는 호랑이도 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지요. 선량한 나그네의 구원의 손길이 인간에 대한 복수극으로 끝나면 얼마나 억울해요. 지혜로운 토끼의 재판으로 호랑이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호랑이 스스로 허방다리로 들어가는 꼴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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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던 옛이야기와 성인이 되어 읽는 옛이야기의 즐거움이 다릅니다. 어릴 때는 '권선징악'의 즐거움과 교훈을 새겼다면 성인이 되어 읽는 옛이야기는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의 연령대를 낮추어 이야기를 읽히다 보니 이야기의 대강의 줄거리요약 형태의 전래(세계전래 포함)가 많은데 많은 동물들을 등장시켜 새롭게 쓴 작가의 재해석이 시사하는 바가 컸어요. 인생의 선배로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그런가요. 내 허물은 모르고, 남 탓만 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네요.
또한 호랑이가 어리석게도 허방다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쾌감을 느끼는 건 어쩌면 그 옛날 선조들이 호랑이로 상징되는 부패관리로부터 받았던 설움에 대한 복수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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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 [토끼의 재판]이 홍성찬 할아버지의 새로워진 토끼의 재판으로 거듭났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큰줄거리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가장 눈에 띄게 다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토끼의 재판에 재판관과 새로워진 토끼의 재판에 재판관수가 다르답니다. 기존 토끼의 재판에서는 재판관이 고작 나무, 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끼에게 묻는거였다면 홍성찬 할아버지의 토끼의 재판은 나무, 멧돼지, 닭, 소, 염소, 곰, 여우, 사슴 재판관들로 불어났답니다. 나무, 멧돼지, 닭, 소, 염소, 곰, 여우, 사슴 재판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마지막으로 토끼에게 묻게 된답니다.
더 많은 동물이 나와 판결을 내리고 그들이 판결을 내리게 된 까닭을 들려주며 사람이 자연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하는지 이야기 속 나그네처럼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답니다. 나무를 함부로 베고, 농작물만 생각해서 덫을 놓아 멧돼지의 목숨을 앗아 가고, 곰의 쓸개와 가죽을 얻으려고 함부로 죽이고, 보약이라고 사슴의 뿔을 자르고 통째 잡아 살점과 피를 먹는 등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고 얼마나 자연을 함부로 대했는지 자연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해주셨던 옛날이야기처럼 이제는 제가 제 딸에게 옛날 이야기를 그림책을 통해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를 전해주었답니다... 더 이상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고 자연과 동물을 헤치는게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 읽고 또 읽었답니다.
내 딸이 그리고 내 딸이 결혼해 그 후손까지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살길 바라며 어렸을때부터 인식을 바르게 심어주는게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옛이야기를 통해서..
흙 냄새나는 투박함과 꼼꼼함이 어우러진 그림에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진 토끼의 재판 홍성찬 할아버지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들었던 옛이야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토끼의 재판》을 골라,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덧붙여 새로 쓰고 그렸답니다.
나무와 동물들은 어떻게 재판을 했을까요? 그리고 마지막 재판을 맡은 토끼는 누구 편을 들어줬을까요?
나무와 동물들의 사연이 담긴 흥미진진한 재판과 토끼의 명쾌한 재판을 이야기 속에서 만나 보세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제가 해주셨던 이야기처럼 저도 옛이야기를 맛깔나고 기억에 남을수 있게 읽어주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