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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신학과 한국 사회 - 성석환 공공신학이란 기독교만이 아닌 세속 사회까지 합의된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신학이다.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사회를 계도하고 인도하는게 아니라 세속과 같은 입장에서 사회에 대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조금은 불편함을 느낄만한 내용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하는것이 지상명령이라 배워왔는데, 세속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입장에서 그들과 힘을 합해 사회를 변화시킨다니.. 그러다가 세속에 의해 교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미 쇠퇴하고 있는 기독교가 더 빠르게 쇠퇴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런데, 지금까지처럼 선민의식을 갖고 세속을 인도해야 한다는 접근 방법으로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다. 적어도 한국 기독교는 분명히 쇠퇴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쇠퇴를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선민의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공공신학의 매력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매력이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종교개혁 역시 그당시 신앙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칼뱅이나 루터의 신학은 공공성을 띄고 있다. 즉 공공신학의 모습을 갖고 있다. 계몽시대를 거쳐오면서 신앙이 사사회되고 성속이 분리되면서 그 공공신학적 요소가 희석되고 거의 사라지다 시피 했지만, 분명히 그 정신 속에는 공동선을 향한 정신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이 모든것을 지배하고 이끌어가던 중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공신학의 불편함을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 종교개혁 시대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믿음의 방향, 기독교의 방향이 될수 있지 않을까? 선민의식을 버리고 세속으로 뛰어들 때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이 공공신학 속에서 다시 재현될수 있지 않을까 물론 기존에도 기독교의 일부는 세속으로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속과 진정으로 함께했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기독교는 언제나 그들보다 높은 신앙이라 생각했고, 그들의 지도자로써 바르게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기독교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공공신학은 그마저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신앙의 우월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세속과 함께 할때, 기독교는 세속이 된다. 그리고 세속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비우고 온전한 인간이 되셨을 때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졌듯이 말이다.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이라면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회의 안위를 위해, 기독교의 부흥을 위해 희생보다 번영을 선택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공공신학을 통해 우리를 내려놓고 세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속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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