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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그림책을 읽을때도 행복한데, 동시집을 읽으니 마음이 너무 따뜻해진다.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동시들은 어떤 느낌일까?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이다. 효진이랑 번갈아 가면서 詩를 읽었다. 시인은 아이들의 감성과 생각을 어릴적 추억 속에서 꺼집어낸다. 삶 속에서 마주치는 세상 이야기들.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바라보고, 따뜻하게도 바라보고,.... 자연친화적인 감성들도 돋보였고, 아이의 정서가 오롯이 들어있었다. 늘 느끼지만 詩는 관찰이다. 얼마만큼 자세히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그 감성들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함축적이며 간결함 속에 그 의미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詩다. 동시라 해서 그저 긁적거림이 아니다. 얼마만큼 아이들의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동시가 날개를 달게 된다. 아이가 생각하는 것과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 이런 아이의 가엾은 마음을 바라보지 못하고 아이가 하루종일 텔레비젼만 보았다고 타박하는 엄마.. 아이 입장에선 억울하다. 이런 사소한 감정들이 잘 스며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이다. 아이 입장에서 바라다보고 소통하는 동시집이다. 그래서 더욱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시선의 따뜻함이다. 그 어느 책보다 더 소중한 한 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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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무것도 모를까? 아님 모든 걸 알고 있을까
월트 디즈니에서 나온 라푼젤 애니메이션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생일을 맞은 라푼젤은 마녀엄마에게 성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단번에 엄마는 안 된다고 거절하며, 이런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다 안단다. 엄마 말을 들으렴~” 물론 그 순간 라푼젤은 마녀엄마의 말을 수긍하지만, 결국에 아이들이 그렇듯이 엄마 모르게 다른 작전을 펼친다. 이번 신경림의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를 만나자마자 라푼젤의 장면이 함께 떠오르면서 픽하고 웃음이 터졌다. 아이에 대해 모든 걸 아는 듯이 당당하게 어깨를 으쓱대는 엄마를 향해, 유쾌한 한방을 날리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번 동시집에는 바쁜 어른들의 시선에는 잘 잡히지 않는, 잘 모르는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서울 하늘 아래 꽁꽁 숨어버린 별을 기다리는 아이, 베트남 아오자이를 입은 이모를 가진 친구가 부러운 아이, 스마트폰과 친구가 되어 혼자 집을 보는 아이, 우리말로 떳떳하게 노래하고픈 아이들이다. 아이라고, 어리다고만 생각하지만 우주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정서를 지닌 존재들이다. 그 아이들이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곳,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 품속 옛이야기 세상이 또한 동시집에는 잘 그려져 있다. 개구리가 끝내 왕자가 되지 못한 사연을 찾는 것도 이번 동시집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이번 동시집을 읽으면서,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이 시대에,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이들도 참 외로운 존재다 라는 느낌이 드는 이번 동시집이, 아이들에게 해맑기만은 기대하는 나의 못된 모습을 보며 이런 말을 던지는 기분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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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면서도 꾸준히 어린이책을 짝사랑해온 나지만, 내 마음속에 동시가 차지한 공간은 터무니없이 좁았음을 고백한다. '동시는 그냥 애들을 위한 시지, 아이들하고 같이 읽으면 뭐 좋겠지. 그런데 별 여운은 안 남네. 아무래도 어른이니까 그럴거야.' 동시에 대한 내 생각은 이게 다였다. 간결한 문체와 표현 안에 맑은 동심을 담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어른인 나한테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장르.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신경림 시인의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를 접하고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읽는 내내 신경림 시인과 함께 작은 기차를 타고 그분이 그려낸 깊고 넓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부 '달라서 좋은 내 짝꿍'에서는 아이의 친구와 가족들 이야기, 주변의 일상적인 생활을 돌아보고, 2부 '자전거를 타고'에서부터는 좀 더 넓은 세상 밖 이야기가 펼쳐진다. 3부 '추운별' 과 4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까지 이어지는 여행을 즐기면서 어느새 내 주변의 정다운 동무에게 머물던 눈길이 우리의 소외받은 이웃에게로, 한겨울 추위를 피할 곳 없는 노숙자 아저씨에게로 이름모를 어느 별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대해 잘 모르던 내가 문득 한 생각, 좋은 동시란 무엇일까. 우선 아이들의 마음을 콕 집어 대변해주는 시일 것이다. 이 동시집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비밀> , <저 별에도 또 저별에도>와 같은 시에서처럼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즘, 아이들이 집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을, 다툰 친구와 화해하며 받은 꽃씨를 심고 남몰래 친구와의 우정을 간직한 아이의 비밀을, 휴일이면 쿨쿨 잠만 자는 아빠, 잔소리만 하는 엄마와 밤낮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누나를 가진 아이들의 공허한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것.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삭막한 교육현실에 내몰려 어린나이에 고군분투하며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따뜻한 심성을 일깨우는 것.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동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에 실린 <달라서 좋은 내 짝꿍>, <어른들은 싫은가봐>, <어른들은 싸우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셔서> 등 많은 시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어른인 나를 뜨끔하게 하는 시들. 일흔을 훌쩍 넘기셨다는 노장시인의 삶의 연륜이 고스란히 담긴 이 메세지들을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또박또박 읽어갔다. 그중에 특히 내 마음을 울린 시 한편,
할머니의 손
"안녕하세요 할머니" 인사하면 윗집 할머니 "우리 집에 데려다 줘" 엉뚱한 소리를 하신다
모시고 다니는 아주머니 "할머니가 정신이 없으셔" 설명에 나는 마음이 아프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인사 대신 할머니 손을 가만히 잡았더니, "오, 너 아래층 사는 빛나로구나"
뼈만 남은 앙상한 할머니 손이 바로 나를 알아보신다
이 시를 이제 세상에 나온지 2년도 안 된 우리아이에게 나는 큰소리로 읽어주었다.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내가 시를 읽고 느끼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아이랑 공유하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알아챈 걸까? 시인아저씨의 마음을 알아챈 걸까? 아이는 큰 목소리로 옹알이를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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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이 둘과 하루를 보냈다. 내 딸과 조카였다. 아이들과 노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난 오늘 동시를 읽어줬다. 나이 차이가 무려.. 4살이나 나는 두 아이에게 말이다. 어쩜 동시의 매력이 그런 것이 아닐까. 각자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줄 뿐 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 말이다.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신경림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를 읽다보면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 동시를 만나게 된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참으로 좋았던 부분이다. 동시를 읽어주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된다. <서울 하늘>을 지나 <가엾은 강물>을 만나고, <달려라 꼬마>를 지나,<아기 다람쥐의 모험>을 듣고, <아기 노루>를 만나면.... 환경과 나 사이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를 지나 <겨울밤>을 만나고, <닮아서>를 보고, <소리>를 듣고, <추운 별>을 상상해 보면... 아이와 어른 사이 그리고 동심을 느끼게 해준다.
<옛날 옛날 아주 옛날>과 <저기 저기 저 눈깔>이 들려주는 동시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다. 주인공은 모두 게으르지만 행복하다. 어쩜 너무 바쁜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쉼표가 되어 주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도 나에게 가장 좋았던 동시는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였다. 읽다보면 '그렇지, 그래.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는 삶을 담은 이야기다.
좋은 동시를 아이와 함께 앉아 도란도란, 소리내어 읽어주면 아이의 마음도 쑥쑥 자라고, 읽어주는 엄마의 마음도 말랑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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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이야기를 우리 할아버지가 읽어주는 듯 하다.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사고와 용기를 심어준다. 신경림 시인은 현대의 이야기를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옛이야기처럼 편안하게 들려준다. 특히 다문화나 맞벌이 가정의 요즘 세태를 아이들의 눈으로 정확하게 읽어냈다. 바쁘고 힘들게 사는 요즘 시대에 아이들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지만 이 책을 통해 부모나 자녀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한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기분좋은 나날이 될 수 있기를......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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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4 철이 들 때에 비로소 어른 ―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경림 글 이은희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 2012.5.18.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얼마 앞서까지 나처럼 조그마한 아이였어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얼마 앞서까지 나처럼 자그마한 아이인 줄 까맣게 잊었거든요. 어른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녁도 얼마 앞서까지 아이로 지낸 줄 늘 떠올리면서 되새겨서 오늘 하루 씩씩하고 즐겁게 산다면 모든 것을 알아요. 철이 든 어른이지요. 이와 달리, 어른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녁도 얼마 앞서까지 아이로 무럭무럭 큰 줄 잊거나 잃으면 오늘 하루를 재미있거나 새롭게 맞이하지 못해요. 이때에는 아무것도 모를 뿐 아니라, 철도 안 들어요. ..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저씨 / 얼굴이 검다 / 어느 먼 나라에서 왔나 보다 .. (공사장 아저씨와) 철이 드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철이 안 든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기에 어른이 아니에요. 나이가 많은 그냥 ‘나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나이가 어리면 그냥 ‘나이 어린 사람’이에요. 나이가 어려도 철이 든 사람이 있고, 나이가 어리지만 똑똑하고 생각이 밝은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서로 마주하면서 ‘나이’가 아닌 ‘마음’을 헤아리면서, 저마다 어느 만큼 ‘철’이 들어서 ‘셈’이 밝거나 또렷한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제 철과 셈을 모른다면 아름답지 않아요. 제 철과 셈을 놓친다면 사랑스럽지 못해요. 그러니, 철을 모르고 셈을 모르는 ‘몸만 어른 같아 보이는 사람’은 재미없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 우리는 / 우리말로 공부를 하는데 // 어른들은 / 그것이 싫은가 봐 // 미국 말로 얘기하고 / 미국 말로 노래하라니 .. (어른들은 싫은가 봐) 신경림 님이 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실천문학사,2012)를 읽습니다. 신경림 님이 처음으로 내놓은 동시집이라고 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신경림 님이 처음부터 ‘어른시’ 아닌 ‘동시’를 썼다면 어떠했을까요? 어린이와 함께 읽을 시를 쓴 신경림 님은 이 책에서 한자를 하나도 안 씁니다. 아이들 앞에서 한자를 쓸 수 없을 테지요. 아이들한테 한자를 가르칠 뜻으로 시를 쓸 수 없을 테지요. 그러나, 신경림 님은 이녁 첫 시집을 ‘농무’도 아닌 ‘農舞’라는 한자를 써서 냈어요. 신경림 님은 우리네 ‘삶노래(민요)’를 구수하게 녹여서 시를 썼다고 하지만, 막상 신경림 님이 쓴 시는 ‘삶노래를 손수 지은 여느 사람’은 읽을 수 없었어요. 한글도 잘 모르는 시골지기는 한자로 쓴 시를 읽을 수 없으니까요. .. 평양에 가선 평양 아이들을 만나고 / 몽골에 가선 몽골 아이들을 만나서 / 동무가 되어 달리고 싶다 .. (자전거를 타고) 어느 ‘민요’도 한자로 안 적습니다. 모든 ‘민요’는 오롯이 한국말입니다. 중국말도 중국 한자말도 일본 한자말도 아닌 ‘한국말’로 이루는 삶노래인 민요예요. 그러니까, ‘민요’라는 이름도 ‘민요를 부르는 사람’은 안 써요. 참말 ‘민요’란 무엇일까요? ‘사람(民) + 노래(謠)’를 학자들이 ‘민요’라는 낱말로 적는데, 왜 ‘사람노래’나 ‘삶노래’ 같은 낱말로는 학문을 안 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노래를 부른 여느 사람들은 그저 ‘노래’라고만 했어요. 이를 학자와 시인과 예술과와 작가는 ‘民謠’라고 하는 그럴듯하다고 하는 한자로 내세우면서 말했습니다. .. 빌딩을 지나면 또 빌딩 / 아파트 옆에는 또 아파트 // 엄마, 섭섭해하지 마 / 내 눈에는 지금도 // 만두 가게 지마녀 / 잡화점 // 학교 앞에는 / 큰 은행나무 .. (학교 앞에는 큰 은행나무)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에서 삽니다. 시골에서 사는 아이조차 ‘도시 문화’와 ‘도시 문명’을 누릴 뿐 아니라, 하루 빨리 도시로 가려고 합니다. 시골 이버이도 아이들을 하루 빨리 도시로 보낼 생각으로 ‘더 높은 학교’ 있는 도시바라기를 합니다. 이리하여, 신경림 님이 처음 선보인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에도 도시 아이들 이야기가 가득해요. 어쩔 수 없어요. 신경림 님도 도시 문화로 살고, 이 동시집을 읽을 아이도 거의 다 도시에 사니까요. 그러니까, 신경림 님이 시골을 두루 돌아다닐 무렵, 아직 시골에 아이들이 제법 많았을 지난날에, 신경림 님이 ‘어른시’ 아닌 ‘동시’를 썼다면, 참말로 ‘말을 살리는 노래’를 불렀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식인이나 학자가 즐기는 민요가 아니라, 흙을 밟고 노래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신경림 님 싯말로 새롭게 태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 꼬부랑 할머니가 /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 일곱 밤을 자고서 / 일곱 손주 만나러 // 한 고개 넘어섰다 / 두부 한 모 놓고 / 길 잃고 밤새 헤맬 / 아기 노루 먹으라고 .. (꼬부랑 할머니가) 아이들은 도시에도 살고 시골에도 삽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살더라도 ‘삶’을 꿈꿉니다. 아이들은 시골에서 살면서 ‘꿈’을 짓고 싶습니다. 이 대목을 우리 어른들이 잘 짚고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철이 들 때에 비로소 어른인 줄 알기를 바라요. 서로서로 즐겁게 철이 들면서 아름답게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요.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니, 이 봄볕을 함께 쬐요. 겨울은 어디에서나 겨울이니, 겨울바람을 함께 마셔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곳 지구별도 별이고, 멀고 깊은 온별누리도 별이에요. 다 다른 별이 함께 있는 누리이고, 다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지구별입니다. 이 별에서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따사로이 사랑하는 하루를 짓는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빌어요.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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