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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을 그렸다는 윤흥길의 [문신]은 전 5권으로 되어있다. 산서의 천석꾼 최명배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1,2권에서 최명배는 재산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최부용은 사회와 가족 모두를 냉소하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최순금은 신지식을 배웠지만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으로, 그리고 최귀용은 이종사촌형 배낙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설픈 사회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다.)
부용과 연실의 거처가 샛내 교회로 옮겨졌다. 연실은 지극정성으로 부용의 병간호에 매달리지만 부용은 자꾸 엇나가기만 한다. 연실이 모친에게 졸라 얻어낸 편지 한 통은 두 관촌댁과 진용으로 하여금 구치소에 수감된 이들을 면회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사실이 최명배를 고무하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고작 면사무소 서기나 주재소 순사, 분견대 헌병 따위 하잘것 없는 벼슬아치나 그 밑에 딸린 구실아치는 이제부터 자신의 적수가 못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야마니시 영감은 사돈댁 막강지세 등에 업은 김에 그까짓 알량꼴량한 산간벽지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넘을 작정이었다. 군수영감 또는 경찰서장 나리와 더불어 맞상대하고 맞담배질 하려는 꿈에 잔뜩 고부라져 있었다.’(136쪽) 그래서 그랬을거다. 귀용이 풀려난 다음날부터 면소재지 신사 앞에서 고맙다고 굿판을 벌이고 천황폐하 만세삼창을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게다. 소문이 어떻든,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쳐다보든 이제 자신은 최명배가 아닌 명실상부한 야마니시 아끼라라고 믿는 것이다. 귀용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자매지간인 두 관촌댁의 사이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경성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오암리 관촌댁이 울고 불며 세상에 대한 저주를 퍼붓자 상곡리 관촌댁이 발끈한다. 동생의 애먼 소리가 낙철과 귀용의 문제에까지 이르자 그만 그동안의 인내가 끝이 난 것이다. 자매사이의 정보다 아들에 대한 정이 더 깊은 것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인 것을.. 귀용이 돌아온 날 저녁, 최명배를 귀용을 데리고 재각으로 간다. 그리고 칼을 주며 자진하라고 한다. 귀용이 순순히 자진하려 하자 놀란 최명배는 자신이 먼저 할 테니 뒤따라오라고 칼을 빼았는다. 그리고 자진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귀용이 말리지도 않고 뒤따라 가겠다고만 한다. 어쩔줄을 몰라 하는 사이 순금의 부탁으로 이들을 뒤따라온 진용이 달려들어 말리면서 최명배는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것도 잠시, 이제 부용과 순금 두 놈도 모자라 세 놈이 자신의 억장을 무너지게 할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까마득해진다. 그래서 다음날 신사 앞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서장과 군수를 만나 금일봉을 전달하고 했는지도 모른다. 백상암으로 거처를 옮긴 귀용, 그는 그 옛날 부용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부용이 폐병으로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자신을 비관하여 그랬다면, 귀용은 순간의 고통에 굴복하여 낙철과 동지들을 배반했다는 굴욕감에 스스로를 고통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연실의 간호로 이제 생기를 찾아가는 부용은 귀용의 그런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그럼에도 그 끝은 낙철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며 혼자 고소를 금치 못한다. 귀용은 귀용대로 그런 부용에 대해 냉소한다. 최명배는 이제 막내 덕용에게 희망을 건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그동안 내팽개쳐 둔 것을 가르치고 다듬으면 지 형들이 못한 것을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를 건다. 과연 이들 최씨 부자들이 가고자 하는 길은 어디일지, 그리고 그 끝은 무엇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작가가 이들을 어디로 데려 갈지는 4권과 5권이 그 답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이라는 애초의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최명배의 삶에는 분명 작가의 의도가 나타나지만 그의 아들들의 삶에서는 절박함이나 당위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직 소설은 끝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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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의 글은 사람의 존재와 사람의 생활, 그 양쪽을 끌어안으면서 이 끌어안기에서 분출하는 언어의 활력을 보여준다. 인간의 비루함이나 시대의 야만성에 대해서 쓸 때도 그의 글은 언어의 활기에 가득차 있다. 이 활기는 생활의 구체성에서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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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의 명맥이 끊길것이란 우려속에 집필된 소설이라하는데 당초 5권으로 출간예정이었으나 우선 3권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따라서 이 3권이 마지막은 아니다. 문신이란 제목은 우리 민족의 풍습인 부병자자에 유래된 것으로 전쟁통에 나가 죽을경우 본인을 알아보게 하기 위하여 몸에 자신의 특징을 새기는 것이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름없는 일개 백성들 또한 자신의 삶의 방식이 나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일제시대건 6.25건 최근의 국제적인 전쟁통이건 간에 징용되서 죽는 사람은 힘없고 돈없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다. 군ㅇ린들조차도 정예병은 전ㅇ방에 동원되지 않는다. 전쟁통에 동원되는 병사는 늙고 병들고 어린 병사들아었다.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그 상황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이 소설은 고통의 민중 역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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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3[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399쪽]을 읽고
밀당이다. 연실과 부용은 밀고 당기기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연실은 샛내교회로 거처를 옮김으로써 본격 터를 잡는다. 예배당 바로 뒤, 사택 한쪽에 참새처럼 둥지 틀어 딴살림을 시작한다. 목사관과 사택 사이를 진종일 오가면서 연실은 이마에 뿔 돋친 남자, 부용쯤은 전혀 겁나지 않는다. 머리맡 고수한 채 철부지 눈빛으로 남자 얼굴 말똥말똥 들여다본다. 학창 시절, 칠월 귀뚜라미처럼 똑똑하던 연실 군이 언제부터 그저 매사에 누님만 죽자 살자 읊어대냐며 부용은 다그치지만, 평생 부용 씨 곁에 있기로 작정한 순간부터라며, 연실은 여전히 조신하게 약사발을 들어 올릴 뿐이다. 그렇다, 둘은 밀당 중이다. 그래서 부용은 지난 기억의 골골샅샅을 더듬고 따져본다. 연실의 아버지 입장에서 부용은 주제넘은 조선인 청년이니, 연실을 만나는 어리석은 실수는 죽어도 범하지 않을 것이라, 모지락스럽게 부용은 선언했었다. 그리고 이제 곁에 있는 연실에게 당시 얘기를 듣는다. 어머니한테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단다. 야심만만한 조선인 고보생이 권력을 이용해서 뭔가를 얻을 목적으로 경찰 간부 딸한테 접근했었더라, 하는 식의. 연실도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단다. 그러다가 약을 삼켰고, 손목을 긋고, 두 번의 자결 소동으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혼담이 오가던 무렵이었단다. 연실과 부용의 심사를 잘 짚고 있는 누님 순금의 훈수가 통하는 중이다. ”우리 부용이가 되나 못되나 함부로 내뱉는 말들을 죄다 반대로 알아듣고 반대로 해석해라. 그러면 그 맞은편 짝에 숨어있는 진심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라고 누님께서 신신당부해서다. 영감은 순금을 앞세워 연실을 찾아 나선다. 영감은 며늘아기에게, 각별허니 조심을 해야 한다고, 아들이야 내일모레 죽거나말거나 전혀 상관없다는 투로, 그저 몸조심할 것만 거듭 당부한다. 그런 시아버지를 배경으로 두게 되었으니 연실은 진지하다. 연실은 이제부터 우리 문제를 놓고도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냐며, 접때 아버님께서 혼인 날짜 받으신다던...... 그 말이 한 문장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부용은 기탄없이 홍소를 터뜨린다. “그 냥반 의뭉헌 속내를 연실씨가 몰라서 허는 소리요. 시방 탐욕으로 눈이 멀어, 상곡 어른 자신이 주인공 되는 정략혼을 획책하는 술수란 말이요.” 그렇다고 해도 “아기를 갖고 싶어요.” 작고 낮은 소리로 연실이 중얼거린다. “방금 뭣이라 혔소?” “아기를 갖고 싶다고요.” 방에서 썩 나가라며 부용은 당황한다. 연실이 몇 달 사이에 생판 딴사람으로 바꿔놓은 첫 번째 대상은 부용, 바로 제 남정이었다. 새 잎사귀 돋아나는 기적 같은 변화가 시방 부용에게 일어나고 있다. 또 밀당이다. 두 관촌댁이 밀고 당기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런다. 특수강도죄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배낙철과 최귀용은 종로경찰서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어 있었다. 면화를 거절당한 동생 관촌댁 처지가 워낙 기박한지라 차마 대놓고 모진 소리 건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말본새가 관촌댁 비위에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경부 나리를 사돈으로 뫼신 우리 성님이 겁나게 부럽다고, 사둔 뒷심 덕분에 죄라는 죄는 몽땅 똘똘 몰아 낙철이한테 덤터기 씌우고, 성님 아들 빼돌릴 구녁은 뻥 뚫어 놓았지않냐며 동생은 표독스럽게 노려본다. 피를 나누고 살을 쪼갠 친동기간에 이 무신 불목이고, 이 무신 추접인고! 그것은 시국, 바로 그 시국이란 놈 탓이었다. 경성 행보에 팔소매 걷어붙이고 부조의 손길 자청한 귀인은 이연실, 바로 그 며느리였다. 연실은 딸 만나려는 일념으로 먼 길 마다 않고 산서 땅 밟곤 하는 친정어머니 붙들고 읍소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종로경찰서에 잘 아는 경찰관이 있어, 장문의 소개장을 써주었고, 그 연줄 덕분에 형무소까지 선이 닿아 귀용에게 편의를 봐주게끔 조처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밀당이다. 이젠 영감과 그의 둘째 아들 귀용이다. 목숨을 걸고 심각한 밀고 당기기를 한다. 징역 일 년 육 개월에 집행유예 삼 년을 언도 받고, 천하에 둘도 없는 패륜 자식 귀용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소자가 고만 죽을 죄를 졌습니다. 아버님!“ 땅바닥에 이맛전 퍽퍽 찧어대면서 귀용은 약간 어눌한 입놀림이다. 잠시 잠간 정신 가닥 놓치고 기함해 있던 영감은 죄 많은 소자 운운하던 귀용을 데리고 재각으로 간다. 가문에다 똥칠하고 조상 신위 욕 뵌 대역무도를 니놈이 용서받는 질은 딱 자진이라며 영감은 담배칼을 던진다. 재각 마룻바닥에 툭 떨어지는 담배칼을 든 귀용은 ”아버님, 자진 행위는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아버님은 악착같이, 모쪼록 본때 있게 살아남으셔서 부귀영화 양껏 다 누리십시오.“ 그리 유언 비슷한 악담을 퍼붓는다. 마침내 맨살이 뽀얗게 드러나는 순간, 정말 실행에 옮길까 두려워 영감은 칼을 뺏는다. 그리고 영감이 칼자루 움켜쥐고 칼끝을 자신에게 겨눈다. 온몸을 사무 부들부들 떨며, 불효자 눈치를 살핀다. 귀용은 귀용대로, 아버님 소원대로 조상 신위 지켜보시는 요 자리에서 당장 죽어드리겠다며 칼을 뺏으려 위태하게 대든다. 못된 버르장머리 개조할 요량으로 심사숙고 끝에 실행을 서두른 거사였지만 진용이 나타나 담배칼을 잽싸게 채간다. 천우신조로 볼썽사나운 불상사 없이 일장 활극은 징 치고 막을 내린다. 옳거니! 본사 나한테는 두 아들이 아니라 세 아들이 있었지. 아직은 중학생에 불과 하지만 덕용이란 보화가 남아 있었구나, 영감에게는. [뒷이야기] 감나무골. 산서가 아닌, 전주 감나무골은 아파트 분양으로 떠들썩하다. 분양권 전매제한이 없어서 불법 거래 등의 우려가 크다는 뉴스다. 소설의 배경 감나무골도 여전히 떠들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감나무골일까? 감나뭇골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이-시옷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순우리말 또는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 가운데 앞말이 모음으로 끝날 때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따위에 받치어 적는다고 하니 감나무골이 맞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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