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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을 그렸다는 윤흥길의 [문신]은 전 5권으로 되어있다. 산서의 천석꾼 최명배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1권에서 최명배는 재산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최부용은 사회와 가족 모두를 냉소하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최순금은 신지식을 배웠지만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으로, 그리고 최귀용은 이종사촌형 배낙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설픈 사회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다.)
산서 최명배의 집에 총검을 휴대한 제복들이 들이 닥친다. 집안에 있는 남정들을 모두 한곳으로 끌고 온다. 야마니시 아끼라, 아니 최명배도 패대기 처진 개구리 마냥 널 부러진다. 배낙철과 최귀용이 숨은 곳을 실토하라고 하지만 알 까닭이 없다. 부용이 환자라 제외되고 모든 남정들이 읍내 서로 연행된다. 철야로 취조를 받은 남정들은 최명배를 제외하곤 다음날 아침 모두 풀려났다. 화적에게 강도당한 일이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대주기 위한 자작극으로 생각하는 고등계순사들은 최명배를 고문하지만 최명배는 알 길이 없다. 부용은 사촌형 진용에게 만원을 임시변통하여 아버지 구명운동에 쓰자고 하고, 순금은 동척농장 관리인 기꾸찌를 찾아가지만 때 마침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교회로 달려간다.
최명배가 풀려났다. 사회주의자라는 조카와 아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그를, 폭행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건한 그를, 고등계 순사인들 별도리가 없었기에 자신이 풀려난다고 믿는 최명배이다. 큰아들과 장조카가 돈 만원을 뿌렸다고 하자 입에 게거품을 문다. 취조과정에서 화적질 두목이 낙철이고, 귀용이도 한패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최명배, 유치장에서 풀려나고 시간이 흘렀지만 큰아들, 둘째아들, 장조카까지 한통으로 묶어 증오와 저주를 퍼붓는 일은 끝날 줄을 모른다. 순금은 순금대로 부용을 간호하랴, 자신이 믿는 야소신에게 기도하랴 정신이 없다.
최명배의 저주와 순금의 기도가 지리하게 이어진다. 최명배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라 하지만 최명배와 순금만이 등장한다. 부용이 등장하지만 매사에 냉소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욕망이 무엇인지 신념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최명배의 증오와 저주는 욕 콘테스트를 방불케 하고, 순금의 기도와 신앙은 그녀의 욕망과 신념대신 가족을 건사하려는 봉건시대 여인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지리하게 이어지던 서사가 낙철이와 귀용이 지리산에 입산하려다 잡혀 경성으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에 고비를 맞는다. 낙철엄니인 오암리 관촌댁은 그나마 있던 전답을 헐값에 처분하여 경성으로 가지만, 최명배는 귀용의 구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돈이다. 재산을 불리고 위세를 부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자식도 그에게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부용이 사랑채 대들보에 목을 맨다. 마침 전주에서 찾아온 이연실과 같이 있던 순금이 부용이 방안에 없는 것을 보고 찾다가 발견한다. 부용이 목숨을 건진다.
순금은 부용이 전주에서 공부할 때 알았다는 연실에게 매달린다. 부용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연실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부용은 연실에게 냉담하다. 그렇게 감나뭇골에 머무는 연실을 그의 어머니가 찾아온다. 부용의 애를 임신했다고 연극하며 돌아가지 않겠다는 연실, 그런 연극에 맞장구치는 순금. 그러나 부용의 냉소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 더불어 도경 경부라는 연실의 아버지와 부용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려지고, 연실의 고집을 이길 수 없었던 연실 어머니는 순금에게 연실을 부탁하며 홀로 돌아간다. 한편 연실의 아버지가 도경 경부라는 사실에 흥분을 한 최명배는 그것을 어떻게 자신에게 이용할지 고민에 빠진다. 갑자기 낙철과 귀용의 구명 방법을 알아보라며 진용을 한양으로 보낸다.
이제 2권이 끝났다. 전5권이라 하니 아직 얘기는 많이 남았다. 그렇지만 서사는 오직 최명배와 순금의 얘기만 이어진다. 그나마 부용의 얘기는 단편적으로나마 이어지지만 낙철과 귀용의 얘기는 오직 들리는 소문에 의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이 어쩌다 쫓기는 몸이 되었는지, 어떻게 지리산 입구에서 잡혔는지 소문에 들려오니 알 뿐이다. 더 읽을까 말까 망설이게 만든다. 일단 3권은 있으니 마저 읽겠지만 4,5권은 출간된다 해도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 부용이 진용에게 부병자자 했는지를 물어본다. 진용이 왼쪽 어깨 부위에 생귀(生歸)라 입묵한 것을 보여준다. 부용은 낙철과 귀용도 도피하기 전 입묵을 했는지 걱정한다. 제목이 [문신]이기에 문신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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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2[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408쪽]을 읽고
걱정이다. 서럽도록 곱디고운,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운 놀빛을, 사랑채 마루 끝에 오도카니 앉아 눈을 함빡 빼앗기고 있는 순금의 처지가 그렇다. 치렁치렁 펼쳐진 저녁놀 자락에 휘휘친친 감겨 있는 하늘을 일삼아 우러르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앞으로 제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서만 싶어서다. 경성 하숙집에서 행방을 감추었다는 낙철과 귀용이가 시방 어디로 숨었을 것 같냐는 얘기를 부용과 나누면서는 걱정만 앞선다. 관촌댁도 걱정이다. 제 동생 살릴 방도 찾기 위해 보리깜부기같이 쇠잔해진 몸을 이끌고 밤마을 나서기로 작정한 맏아들이 가상하면서도 걱정이다. 아니더라. 최명배 영감은, 산송장맨치로 깔딱깔딱 연명허느니 차라리 일찌가니 칵 자진 허라는 모진 말을, 어찌 그리 모질게 하는지. 그러나 호각 소리와 고함 소리와 구둣발 소리와 함께 고등계 형사들이 들이닥치고, 낙철과 귀용을 어디 숨겼는지 자백하라고 다그친다. 각혈하는 부용을 빼고 모든 남정들 손과 손에 포승을 지워 끌고 간다. 고등계 취조실에서 최명배 영감이 맨 처음 맞닥뜨린 날벼락은 낙철과 귀용의 은신처를 이실직고하라는 엄포였다. 두 번째 날벼락은 배낙철 일당에게 건네준 금품의 액수와 물목을 소상히 토설하라는 겁박이었다. 핏줄이다. 그 천륜은 부용에게 어르신을 빼낼 궁리를 하게 한다. 쌈짓돈 헐어서는 어림도 없는 일, 사촌형에게 현찰 만 원을 만들자고 한다. 부용은 아버지 신체 일부와도 같은 그 피눈물 나는 돈을 뚝 떼어, 왜놈들 아가리에 갖다 바칠 생각을 하다니, 다른 한편으론 통쾌한 기분이 든다. 영감은 초주검 되어 달구지 위에 얹힌 채 닷새 만에 집에 돌아온다. 퍼붓는 욕지거리 대상은 폭행과 고문을 자행한 고등계 형사들이 아니다. 소유권도 없는 주제에 주인하고 사전에 일언반사 상의도 없이 남의 재물 멋대로 저당 잡히고 거금 만 원을 끌어다 제멋대로 처지른 노점 귀신 큰아들이다. 그야말로 행악질을 서슴없이 저질러 버린 큰아들은 가장 괘씸한 원수다. 달라진다. 달라진 순금의 위상은 아버지가 유치장에서 풀려나 귀가한 뒤로도 여전하다. 어찌 된 셈판인지 누님은 상처 입은 호랑이 꼴로 성질이 더욱 광포해져 돌아온 아버지한테 겁먹는 기색을 전연 안 보인다.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아버지 앞에 고개 빳빳이 쳐든 채 낱낱이 입바른 소리만 골라 또박또박 주워섬긴다. 놀라운 변화는 신앙생활에도 나타난다. 목사 부인을 비롯한 신자들과 함께 수시로 집회를 갖는 눈치다. 꿈같다. 부용이 눈을 감자마자 전주역 근처 오거리에 자리한 책방 풍경이 펼쳐진다. 똘스또이의 부활復活을 겨냥하고 팔을 길게 뻗는 순간, 거의 동시에 같은 목표물을 향해 다른 각도에서 다가드는 누군가의 손이 얼핏 눈에 들어온다. 명문 여고보 교복 차림이다. 책을 얼른 뽑아 들어서는 ”똘스또이 선생 복활을 찾고 계셨습니까?“라는 부용의 말은 여학생 입에서 웃음소리가 쿡쿡 새어 나오게 한다. 그때의 여학생 연실이 등장한다. 감나뭇골로 부용을 찾아와서는 집으로 가자는 순금에게, 연실은 다만 그 분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단지 그것만 알고 싶다고, 그러고 곧바로 전주로 돌아갈 작정으로 왔다고 한다. ”위중허다마다요. 폐결핵 삼기를 지나고 있어요.“라는 순금의 말에 연실의 입에서 또다시 외마디 부르짖음이 터져 나온다. 최부용이란 인간을 잘 알기 때문에, 편지를 받고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이제는 저를 더 괴롭히지 말라고, 큰 울음을 왁작 터뜨리기 시작한다. 또 달라진다. 연실을 부용이 머리맡에 가차이 앉혀두고 병구완을 맽기기로 피차간에 합의가 있었다는 순금의 말에, 영감은, ”전주 시악시를 당장 쫓아내거라! 산서에서 내 눈에 안 띄게코롬 멀찌막이 내쫓아뿔란 말이여!“ 라고 호령한다. 하지만 요번 일만은 아버님 말씀에 불복할 작정이라고, 요번 일만은 제 생각대로 그냥 밀고 나갈 작정이라고, 저 혼자 끝까장 다 책임을 지겠다는 순금의 말이 맞선다. 긴 담뱃대 높이 추켜들고 딸년 시선하고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순간, 영감은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운을 느끼면서 온몸을 흠칫 떤다. 더구나 최명배 영감도 전주 시악시 부친 되시는 분이 도경에서 경부 나리로 근무한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연실양 아버님 직업 문제로 두 사람 틈새가 벌어지는 바람에 부용이가 절교를 선언했다고 들었고만요.“라는 순금의 말에 ”내 집에 찾어 오신 귀한 손님을, 당장 이씨 집안 규수를, 우리 집으로 뫼셔 들이거라.“ 그리 태도가 달라진다. 이제 부용은, 아니 이연실은 영감한테는 제풀에 굴러든 복덩어리다. 부자지간 천륜마저 거지반 끊기다시피 했던 큰아들 아니던가. 바로 그놈이 두엄자리 앉았다 꿩 줍듯 시악시 하나 방짜로 낚아챔으로써 전혀 예기치 못한 대목에서 기상천외의 효행을 아비 면전에 불쑥 들이대는 게 아닌가. 인연이다. 이연실 모친이 가네무라 순사를 앞세워 감나뭇골에 온다. 아이를 가졌다는 연실의 연극은 부용의 고함 한 마디로 금세 무너진다. 부용은 고보생 시절에 경부 나리하고 주고받았던 약속,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말을 잘 전해 달라면서 어서 따님 잡아끌고 떠나시라 채근한다. 속이고 농간 부린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 연실은 격렬하게 오열한다. 순금이 나선다. ”잉태허지도 않은 얘기를 가졌다고 생판 거짓을 고헌 따님이나, 당장 델꼬 떠나라고 행패를 부린 제 동생이나 말은 달라도 뜻은 같을 것입니다. 둘이서 절대로 갈러설 수 없다는, 갈러서지 않겄다는 생각이 틀림없을 겁니다.“ 그리 간절하게 나선다. 순금의 말을 들은 연실의 모친도, ”이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인데, 부모된 입장으로 더 고집을 피워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제가 좋아서 선택한 제 인생이니 저 가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두는 편이 모두에게 낫겠다.“며 허위허위 길을 잡아 나선다. [뒷이야기] 무엇보다도 관촌댁이 이해하기 지난한 점은, 산서 제일 대지주를 아버지로 둔 아들이 사회주의 둠벙 속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리는, 바로 그 대목이었다. 세상에 지천으로 널리고 깔린 사상들 가운데 하필이면 왜 사회주의를 골라잡았단 말인가. 관촌댁 안에 들어앉은 사상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으로 못다 꼽을 지경이었다. 본존불사상에 미륵불사상, 동학사상에 서학사상, 한울님사상에 옥황상제사상, 공맹사상에 노장사상, 주역사상에 토정비결사상, 풍수지리사상에 정감록사상 등속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