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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옛날 사상가 이름에는 거의 ‘자’가 들어간다. 이 ‘자子’는 선생이라는 말이란다. 장자는 장 선생이라 하면 될까. 노자, 공자도. 이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니구나. 얼마전에 철학 웹툰을 보고 앞으로 철학책을 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 제목을 보니 동양철학이라는 것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거의 중국 사람이 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종교는 철학과 아주 상관없을까. 종교철학이 있다는 말 들은 듯도 하다. 철학은 우리와 그리 멀지 않고 서양 동양 다 있다. 그런 걸 다 공부하기 어렵겠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도 둘 다에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공부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면 뭔가 깨닫게 될까. 그럴 수도 있고 그저 지식만 쌓을 수도 있을 듯하다.
내가 철학을 알면 좋겠다 생각한 건 왤까.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웠으면 하는 것도 있지만, 철학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알면 있어 보일 듯한 마음도 있어서다. 장자 하면 ‘호접몽’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이름만 아는 사람이다. 이 책 한번 봤다고 다 알아듣지도 못하고 내 마음이 자유로워질 것 같지도 않다.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나비가 자신인지 자신이 나비인지 한다. 이건 꿈과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말로 알았던 것 같다. 나비와 장자는 겉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한다. 껍데기보다 그 안에 있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을 조금이라도 알면 괜찮아 보일 듯하다는 생각도 껍데기를 보는 거겠지. 철학을 알고 그걸 내 안에 녹여내면 훨씬 좋을 거다. 그러고 싶은데.
지금까지 자기 신념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살기 어렵게 된 사람을 보고 대단하다거나 좋게 여겼다. 장자는 그걸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자기 생각에 빠진 거다 여겼다. 장자는 삶과 죽음, 옮고 그름이 다르지 않고 이어졌다고 한다. 세상에는 흑과 백으로 분명하게 나눌 수 없는 게 아주 많다. 거의 모든 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나누려고 한다. 자신과 다르면 틀리다고 한다. 그건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인데. 틀에 박힌 생각도 안 좋겠지. 틀에 박힌 생각을 해서 흑과 백으로 나누려 하는 건지도. 나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구나. 내가 싫은 건 받아들이지 못하니 말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안 좋다는 것도 안다. 이 책을 보면서 조금 알쏭달쏭 무슨 말인가 했는데 아주 모르는 건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알아도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일 뿐이겠지. 자기 안에 있는 여러 가지에 얽매여서.
어떤 경지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훈련을 하고 그걸 잊어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을 잊는 거다. 물아일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잘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되어 본 적이 없어서겠지. 자신을 잊고 소통하기. 자기 생각이나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게 아니고 물체나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와 내가 하나다 생각하기. 남은 바꿀 수 없고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도 생각하고 하기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 괴로워한다. 아이는 아이 본성이 있는데 그걸 보지 않다니. 있는 그대로 보면 좋겠지. 자기 자신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과 견주지 않고.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사람도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쓸모없음에서 쓸모있음 찾기. 그런 거 못 찾으면 어때 하는 마음도 있다.
이 책을 보니 장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건 진짜가 아니다 말한다. 청렴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은 깨끗한 것만 옳다 여기고 다른 사람도 그래야 한다 여긴다. 그건 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겠지. 세상은 업적 같은 게 있는 사람을 칭송한다. 그런 데 장자도 들어가지 않을까. 장자는 자신이 한 말이 오래 남은 걸 알면 싫어할 듯하다. 장자는 드러나기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을 바랐다. 이름이 남지 않은 많은 사람 삶이 헛될까. 그런 사람이 있어서 지금이 있다. 그걸 역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 드러나는 것에 마음 쓰지 않아야겠다. 겉이 아닌 마음속이 중요하다. 그걸 알아볼 수도 있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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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찌보면 간단할 수도 있는 이 물음은 몇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수 많은 사유를 낳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렵다면 한껏 어렵고 아리송한 주제이며 반대로 간결하게 생각해본다면 이 또한 복잡할 것이 무엇이냐는 일갈을 받을 수도 있는 인간의 오랜 숙제와도 같은 물음, 하지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이 어렵다면, 유쾌할 정도로 간단하다면 이것은 어쩌면 나의 마음이 반영된 답일 수도 있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내가 느끼는 기분에 따라 이것에 대한 물음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심오하고도 복잡한 사유를 이끌어내지 않더라도 그저 내 마음만 들여다보면 일단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한결 수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편견으로부터의 자유, 이것으로부터 진정 자유롭기란 어렵다. 타인이 재단한 것에 휘둘리지 않고 타인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신념대로 살아가기란 사실 너무 어렵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은 진정한 자유를 원하지만 길들여진대로,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서, 무리에 휩쓸리기 위해 나도 모르는 사이 자유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버린 것은 아닌지 물어볼 일이다. 많은 심리서에서 볼 수 있듯 장자 또한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고 이야기한다. 중국의 여러 인물의 유명한 일화 속에서 내 몸을 휘어감고 있는 껍데기에서 탈피해 진정한 내 모습을 찾는 것을 강조하는 장자의 가르침.
물질만능의 시대, 생각할 여유 없이 다람쥐 챗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현재 내가 채우고 있는 것이, 내가 바라보는 것이 내 안의 내가 아닌 외부적인 것이라면 과감히 버려내야할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새처럼 나를 둘러싼 단단한 막을 걷어내고 지금까지의 내 삶을, 내 자신을 깨버려야함을 이야기한 <장자인문학>, 단단한 울림을 주는 고전이라 책장에 꽂아 두고두고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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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장자인문학 책들이 많이 있지만 이번에 출간된 안희진 작가의「장자 인문학」의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읽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인문학 고전이면 어렵고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런 편협된 사고방식을 깨게 해주는 장자인문학. 처음 고전을 접하는 분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장자인문학 속박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조언. 책의 제목처럼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물 흐르듯 쉽게 읽히지만 많은 교훈이 있는 책이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가치관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외부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정한 자아와 자유를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열심히 사는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딱 나의 경우다. 왜 이렇게 이것을 열심히 하는지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남의 시선, 남의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에 와 닿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다.
아직은 미성숙한 나이기에 외부로부터 주입되거나 요구된 ‘껍데기의 나’를 깨버리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방법.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젤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새긴다. 나보다는 타인의 시선, 타인의 요구대로 맞추려고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물음표를 던져본다. 이 책은 외부의 잣대에 기대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하는 고마운 책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 기준에 맞추고 남의 것과 비교한다. 비교하여 자신과 다른 모습의 사람을 보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외양뿐 아니라 다른 성품,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을 얼마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지는 그 사람의 인품의 크기를 보여준다. 장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연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자연스러운 모습만 추구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자연스러운 성품도 있는 그대로 놓아둬야 한다. 바로잡겠다거나 올바르게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대칭이 아닌 소의 뿔을 ‘잘못된 것’이라고 하며 대칭이 되게 하려고 뒤트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제3장 있는 그대로 둠」 p.168
이 책을 덮으며 다짐해 본다. 사소한 일에도 휘둘리는 삶을 살아가지 않겠노라. 외부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책을 통해서 배우고 있다. 진정한 나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자인문학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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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수업시간에 교과서 한 귀퉁이에서 잠시 언급하고 그저 외우기에만 급급했던 장자였다. 춘추전국시대 때 여러 사상이 뒤얽혀 있던 시절 도가 사상을 전파하는 많은 사상가 중 하나, 그저 이름만 알고 있던 장자에 대해 이번에 자세히 알아볼 기회가 생겼다. 많이들 들어서 익숙한 도가의 철학 중 하나인 무위자연이 장자가 생각하는 주된 삶의 방식인 것 같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치, 즉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가치를 버리고 자연 그대로의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런 가치들은 상대적일 뿐만 아니라 영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올바름에 관한 판단이 다르게 내려질 수밖에 없다. 한때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이론이나 사상들이 지금 보면 어리석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느껴진다. 만고의 진리란 없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고 나아가게 되면 다른 사람의 가치를 용인하지 못하게 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편협한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신의 사고를 관철하려는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장자는 배우고 들어서 생긴 관념이 아닌 자기 본연의 마음으로 세상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겉모습에 휘둘리지 말고 그 안의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인식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스스로 얽매고 있던 굴레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요즘같이 지독한 경쟁사회에 지진 현대인들에게 옹달샘같이 잠시 목을 축일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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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 장자나 노자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과목에서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지만, 도교가 그다지 비중있게 다뤄진 적이 없어서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러던 중 자주 듣곤하는 철학 팟캐스트에서 도교 관련 에피소드를 듣고 도교에 대한, 노자와 장자에 대한 관심이 생겼었다. '틀에 박힌 생각과 편견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의 삶을 사는 길을 말한다.'는 책의 뒤편에 써진 문구들도 너무 좋았다. 속박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인인 장자에게서 배우는 삶의 자세라니. 요즘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등장하는 내용들인데, 아주 오래전, 교과서에 등장한 인물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니 흥미가 더욱 많이 생겼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내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싶은 내용들이 상당히 많다. 사소한 일에 멁매이고, 방향이 없이 사람들이 이끄는대로 끌려가는 인생을 살고있는 나로써는 확실히 이런 자세가 좀 필요했다. 이 책은,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고전의 느낌은 아니다. 게다가 장자라는 인물에 대해서만 다룬 책도 아니었다. 물론 장자의 말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생각과 해석을 많이 녹여서 쓴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워낙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인상깊은 구절들도 많았다. 내가 앞으로 가질 삶의 자세와 내가 억제했던 나의 자유에 귀기울이는 방법을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장자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생기게 되었다. |
![]() 이 글을 읽기 전 당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자유란 무엇인가. 흔히들 갈망하는 그 자유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리 원하는가. 그게 뭔지도 모르는데 왜 이를 원하는 거지? 이런 의문의 출발에는 속박되어 있는 삶이 깔려있다고 생각된다. '속박'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느낌이 더 많은데 장자 인문학을 읽으면서 이 경향은 줄어만 갔다. '속박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라는 부제에 이 책을 통해 속박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겠구나 싶었지만 이와 달랐다. 장자는 절대적 가치란 없다고 하며 모든 건 상대적이며 무언가를 옳고 그르다고 정할 수 없고 이를 논할 시간에 본질에 더 집중하라고 했다. 즉 그는 속박에 저항하는 힘을 주는 게 아닌 속박, 그 자체를 느낄 수 없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 법을 가르쳐준 셈이다. 새로웠다. 그의 모든 말들이. 생각들이. 장자라는 사람 그 자체가. 거짓이 되기 쉬운 가치관이라는 목차에 눈을 떴고 이제껏 꿈꿔오고 그를 동력으로 사용했던 나의 본질이 문득 허황되었다는 생각을 작년에 품었기에 부정을 반복하다 고민으로 한 단계 넘겼지만 정작 그 해답은 얻지 못했었다. 그래서 1장으론 어느 부분이 비었는지 지적받고, 2장에서는 적극적인 솔루션을 통한 '희망'을 얻어 가고자 했다. 이처럼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의 생각은 장자를 만나고 정확히는 안희진 선생님의 장자 인문학을 만남으로써 동해를 볼 수 있는, 내 생각 안에 스스로 갇히지 않는 개구리로 도약해보려는 바람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한껏 움츠렸던 지난날에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행하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가 참으로 나약한 나를 비쳤음을 알지 못했었다. 그래도 이젠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사실과 주어진 틀에, 정형화된 것에 누군가를 끼어 맞추려고도 내가 그 안에 꾸겨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을 예정이기에 더 나은 나를 꿈꿀 수 있다. 위 두 문단엔 과연 추천하고 또 추천할 수 있는 장자 인문학이 내게 준 감명들이 담겨있다. 책을 읽고 이 글을 보기 전까진 어느 부분일지 알 수 없지만 장자 인문학이 이끄는 데로 이를 손에 쥐고 한적한 도로를 걸어 공기 좋은 산에 올라 책을 읽어 내려가면 필자가 감명받은 부분을 알 수 있을 게다. 장자 인문학은 내게 생각의 확장을, 행동의 불씨를 지펴준 책이자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싶은 벗이다. * 출판사로부터 서평단 자격으로 장자 인문학을 제공받아 벗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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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껏 장자를 연령에 따라 읽은 듯 하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어릴 적 장자는 우화가 가득한 이야기 책이었다. 20대에 읽어본 장자는 이상주의자가 쓴 문장이라고 느껴졌다. 그 시기에는 사회를 겪어보며 때가 많이 타고 물질만능주의가 내 온몸을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30대의 중반에 가까운 시기에 만난 장자는 내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 느낌은 속이 시원하면서도 때가 닦이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 과 인간의 천성은 선하다는 장자의 말은 더 이상 이상적인 말이 아닌 추구하고 싶은 이상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일단 일반 '장자' 책과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장자의 글을 우선 보여준 뒤 그것을 해석하면서 진행되지 않는다. 장자를 깊게 읽은 저자가 얻은 그의 말과 정신을 정리한 뒤 그것을 세분화시켜 나눠서 이야기 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장자 자체에 대해 아려는 사람에게는 단점이 있을지는 모르나. 장자의 핵심개념을 아려는 이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나는 만족한 채로 이 책을 읽었는데 그 이유는 장자를 어느정도 읽어본 경험이 있기에 가능했다. 물론, 그렇지 아니하고 처음 장자를 접하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충분히 장자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명분과 신념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우월한 가치라고 하는 판단의 결과다. 우월하다고 여겨지면 열등하게 보이는 것을 멸시하게 마련이다. P28 말은 발굽이 있어서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고, 털이 있으므로 바람이나 추위를 막을 수 있다. 마음대로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뛰논다. 이 것이 말의 천성이다. 높은 건물과 화려한 궁전 등은 말에게 필요없다. P56 남의 기준이나 남이 내어놓은 의견에 맞춰가며 만족하는 그것을 장자는 돼지의 몸에 붙어사는 기생충인 '이'와 다름없다고 한다. P61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일종의 우리의 사고에 프레임을 씌워서 세상을 보지말 것과 남의 기준에 얽매여 살지말자는 그의 가르침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 본질에서 벗어난 것들에 의해 흔들리며 살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어떤 것인가? 라는 생각과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됐다. 30대 중반에 읽은 장자는 그 동안 잃어버릴뻔한 마음을 다시 재정비 하게 해준 좋은 책이었고 그렇게 기억될 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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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다음에 언젠가 도가에 대해 읽을 것이라 생각해 오다 이번 기회에 접하게 된 책이다. 장자의 인문학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용의 골자는 장자의 저서에서 발췌한 주요 문장에서 도가의 중심사상을 추출하여 선양하는 것이지만 유교나 불교, 다른 사상들과 비교하여 드러내는 방식을 주로 쓰고 있다. 따라서 본문에는 장자의 글 뿐 아니라 노자, 열자, 공자, 불가의 조사, 장자 이후의 중국에서의 많은 일화와 고사가 나오며 심지어는 현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직장생활과 스포츠 관련 이야기들도 나온다. 이는 독자들에게 보다 이해하기 쉽게 다가가려는 일환이겠고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나열로 산만한 느낌도 든다. 아마도 장자의 중심사상에서 각 테마마다 해설하려는 저자의 의욕이 많다보니 제목이 장자인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저자의 목소리가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한다. 책은 많은 부분을 공자의 이야기와 대별하거나 비슷한 맥락임을 보여주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초반에는 공자 하면 떠오르는 가치라고 할 만한 청렴함과 충절이 도가적 입장에서는 깨끗함과 더러움에 대한 양단간의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구분에 불과하여 현실 정치에 도움 안 되고 그런 구분도 없는 순수한 본연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뒤에 가서는 오히려 공자가 말한 도의 경지(극기복례)나 도가의 도의 경지(맑은 영혼의 회복), 여기에 더불의 불가의 경지(불성)이 다 같은 맥락으로 수렴되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다양한 예시와 전거를 통해 장자의 사상에 대해 입체적으로 읽는 맛은 있었다. 다만 책 한 권에 여러 가지를 망라하고픈 저자의 의욕이 다소 있지 않았나 한다. 공자의 '극기복례'가 장자의 '순수한 영혼의 회복'과 같은 경지라는 점에서 신선했는데 차라리 유가와 도가가 사실은 같은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 집중하여 책의 내용을 응축했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