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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 열광했다. 과거시제가 되었다. 지금은 열광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신간에 눈이 간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떨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사람』을 통해 접했던 이방인의 삶, 차별된 시선, 그리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삶의 기척들에 마음에 오래 새겨졌었다.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녀가 새로운 언어를 접하고 그것으로 인해 글을 쓰는 도전은 무척 감동적이다. 아니, 놀랍고 대단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그런 도전보다는 이전에 느꼈던 소설의 문장, 그 안에 담긴 위로, 혹은 어떤 감정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이 소설 전에 발표했던 두 권의 산문집에서 실망이라 표현할 수 없지만 그것과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짧은 단문, 짧은 호흡이 아닌 조금 더 길고 섬세한 호흡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집이 아주 나빴다는 건 아니다. 차오르고 있다고 하면 맞을까. 그녀의 사유는 여전히 깊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소설 『내가 있는 곳』에서 화자가 느끼는 외로움이나 고독은 분명 줌파 라히리의 그것이라 할 수 있으니까.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일과 그것으로 글을 쓴다는 건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그저 평범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기록이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한 일정이나 일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46개의 장소에서 화자가 마주하는 인물과 사물에 대한 생각을 통해 그녀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정확한 이름이 없는 그녀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때 사랑했던 남자는 친구의 남편이 되었다.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새로운 도전을 갈망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혼자 살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바라보는 공간, 그 안에서 발견하는 그리움의 흔적은 때로 쓸쓸하다.
이따금 내가 사는 동네 길거리에서 함께 어떤 이야기, 어쩌면 인생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도 있었을 한 남자를 만난다. (「길에서」)
최대한 감정을 접어두고 있는 사실, 그 자체만을 기록했는데도 우리는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숨 쉬고 자라는 감성을 읽는다. 줌파 라히리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가만히 그녀의 문장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할까. 서점에서, 다리에서, 친구의 집에서, 문구점에서, 수영장에서...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고 머무는 곳곳에서 삶은 이어진다. 그녀의 공간은 나의 공간이며 그녀의 생각은 때때로 나의 그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쩌면 그곳을 떠나 이곳에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고 익히고 그것을 말하는 삶,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생각하게도 만든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이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말이다.
나는 외국어를 할 줄 모른다. 그러니 외국어가 주는 생경한 감각을 알 수 없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이 소설을 썼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저 그녀의 일기 같은 글을 읽으면서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떤지 묻게 된다. 거기서 만나는 이들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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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책은 무조건 구매입니다^^ 아직 <축복받은 집>과 <책이 입은 옷> 두 권 밖에 안 읽었지만... 줌파 라히리의 책은 너무 너무 좋아요. 표지 디자인도 너무 예쁘구요.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게 아니라 소장하려고 구매합니다. 책 사이에 끼워져있는 엽서? 같은 것도 너무 맘에 들어요^^ 표지와 똑같은 그림이 엽서처럼 되어 있어서 냉장고에 딱 붙여놓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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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라는 낯선 곳에 와서 낯선 말을 배우며 공부를 하고 있다. 생전 배우보지 못한 말을 배우는 게 어려워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쓰였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찾고 있었고, 몇 권 찾은 것 중 하나가 줌파 라히리가 쓴 “내가 있는 곳”이란 책이다.
줌파라히리는 인도계 사람이지만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해 미국인으로 살았고, 글도 영어로 썼다. 그가 모국어인 영어를 포기하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게 된 건, 작가로서 어떤 한계를 느껴서라고 했던 것 같다. 뿌리는 인도계이지만 미국인으로 살았고,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나라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쓰면서 단순히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한 작가가 겪어온 삶의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이 말에서 저 말로, 몸도 정신도 영혼도 이동하며 한 사람이 비로소 작가로 태어나는 그 여정에 함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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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었고, 살아온 시간만큼 나의 삶에 대한 주관이 생겼고, 그 주관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금전적 여유도 있는데 문체가 담담해서인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약간 쓸쓸했나보다. 자신의 일상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 써내려간 책으로 읽다보면 제3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의 삶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 안에서 느끼는 느낌과 생각은 독자의 삶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나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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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첫 번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영어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영어로 먼저 쓰고 그것을 일본어로 옮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문체를 만들고자 하였다. 끝까지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면서 완성시켰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일본의 작가가 영어로 먼저 쓰고 그 다음 일본어로 바꿔 쓴 작품을, 그것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읽은 셈이다.
“봄이 나는 힘들다. 이 계절은 설렘은커녕 기진맥진케 한다. 새 빛은 어지럽고 그 번쩍임은 괴로우며 꽃가루에 눈이 따갑다. 알레르기를 완화시키려면 매일 아침 알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약을 먹으면 졸음이 온다... 내 인생의 모든 쓰라린 고랑은 봄과 관련돼 있다. 하나같이 아픈 상처다. 이것 때문에 짙푸른 녹음, 시장에 처음 나온 햇복숭아, 동네 여인들이 입는 살랑거리는 플레어스커트가 괴롭다. 상실, 배신, 실망만을 떠오르게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지못해 앞으로 떠밀려가야 하는 느낌이 싫다...” (pp.28~29)
그런가하면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문맹》이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어떻게 잃었고, 아예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기까지의 시간 동안 어떻게 문맹의 시간을 보냈는지를 토로하였다. 헝가리어로 이미 작가였던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고 위대한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썼다. 비슷한 예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들 수도 있겠다. 그는 러시아어로 소설을 썼고, 《롤리타》는 영어로 쓴 소설이다.
“8월에 내가 사는 동네는 텅텅 빈다. 대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잠깐 눈부신 아름다움을 발하는 노부인처럼 동네가 시들시들해진다. 일부러 동네에 남아 즐거이 집에 처박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그 맥 빠진 시기, 격한 폐쇄를 참지 못한다. 그런 이들은 기분이 우울해 밖으로 나간다. 나는 8월을 특별히 사랑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다.” (p.93)
벵골 출신 이민자 가족에서 태어난 줌파 라히리는 집에서는 완벽한 벵골어를 사용하기 위해 애썼고, 학교에서는 물론 영어를 공부했다. 영어 사용자로 유명 소설가의 지위에 올랐으니 영어라는 언어는 충분히 마스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녀는 더 이상 영어로 글을 쓰지 않고 있다, 아니 영어로 글을 쓰는지 쓰지 않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영어로 된 책을 내지는 않고 있다.
“미혼남인 내 친구는 자기 집에서 조촐한 저녁을 준비하는 걸 좋아한다... 이 집은 어쩐지 장난감 같다. 모서리가 좁고, 짙은 색 대들보가 노출돼 있다. 방들은 작고, 방과 방이 이어져 복도가 없다. 거의 모든 방에 침대가 하나씩 있고 쿠션이 바닥에 쌓여 있으며 책들은 주변에 놓여 있다. 결국 어느 방에서나 언제든 책을 읽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다. 아이에게는 재미있을 거다. 하지만 내 친구는 칠십 대 우아한 신사, 가족 없는 교양 있는 남자다.” (p.107)
대신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낸 세 번째 책이다. 앞의 두 권이 산문집이었기에 《내가 있는 곳》은 그녀가 이탈리아어로 쓴 첫 번째 소설이 되었다. 영어로 쓴 소설과는 다르다. 온전히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된 소설의 외양 대신 짧은 에세이가 모여진 형태의 소설이다. 이것을 하나의 스타일로 삼을지, 아니면 아직 완벽하지 않은 이탈리아어 실력 때문에 선택한 자구책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닮은꼴 여인은 나에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나이면서 그렇지 않아요. 떠나지만 늘 이곳에 남아 있어요. 이 두 문장은 휙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나뭇잎을 떨게 하듯 잠시 내 우울한 마음을 어지럽힌다.” (p.187)
소설은 마흔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챕터는 어떤 장소를 주로 제목으로 삼고 있다. 보도, 길, 사무실, 식당, 광장, 대기실, 서점, 박물관, 심리상담사의 집, 발코니, 수영장 등의 장소가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실질적인 장소가 아닌 것들도 하나의 장소처럼 지칭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음속에서라는 챕터가 그렇다. 그런가하면 언제라고 할 만한 봄에, 겨울에, 햇살 좋은 날에, 잠에서 깨어, 와 같은 챕터들도 있다.
“결국 환경 곧 물리적 공간, 빛, 벽은 아무 상관이 없다... 머물기보다 나는 늘 도착하기를, 아니면 다시 들어가기를, 아니면 떠나기를 기다리며 언제나 움직인다... 방향 잃은, 길 잃은, 당황한, 어긋난, 표류하는, 혼란스러운, 어지러운, 허둥지둥 대는, 뿌리 뽑힌, 갈팡질팡하는...” (p.189)
주로 고정된 장소를 작은 제목들로 삼고 있지만 소설은 결국 떠나감을 선택하는 중년의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어서 아이러니하다. ‘머물기보다 나는 늘 도착하기를’이라는 표현에 오래 붙잡힐 수 있었다. 머물기와 도착하기, 그 사이에 생략된 많은 장소들이 바로 소설들의 장소였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기차에서’인데, 소설이 끝나고 나서야, 끝날 쯤이 되어서야 드디어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줌파 라히리 Jhumpa Lahiri / 이승수 역 / 내가 있는 곳 (Dove Mi Trovo) / 마음산책 / 199쪽 / 20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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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팬입니다. 신간이 나오면 그때그때 사서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신간에는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작가가 최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탈리아어로 써서 일까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특유의 정갈하고 깊이 있는 문장의 맛이 좀 덜 느껴지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그 사이 작가의 가치관과 상태도 조금 달라진 것이 느껴지고요. 어쨌든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