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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석영을 좋아한다. 그에 대한 나의 사모는 거의 맹신 수준이다. 오래전부터 그의 활자는 내게 문학을 읽는 시금석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임을 알려준 최초의 잠언이었으며, 현재적 삶의 고찰과 미래의 생명수를 소원하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데리다의 말처럼 텍스트 바깥은 없다. 텍스트 바깥도 안이어서 안팍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다. 황석영의 텍스트는 황석영 자신의 존재가 안과 밖의 경계를 오롯이 허물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응당 작가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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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작가 황석영의 가장 대단한 점은 바로 그의 문학적인 힘이다. 작가들은 그게 상상력이든 삶이든 철학적 사고든 세상에 대한 분석과 고찰이든 모두 어느 정도는 자신들이 살아온 삶, 겪은 경험, 쌓아온 지식 등에 기대기 마련이다. 그게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순전히 작가들의 문학적인 힘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뛰어난 문학적 힘은 황석영에게 있다고 한 것이다. 그에게 주어지는 어느 소재, 어느 주제든 그가 만들어내는 문학은 모두 성공작이다.
이 소설은 영원한 문학청년, 황석영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주는 소설이다.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앙드레 지드는 이제 책을 던져 버리고 젊은이들에게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미지의 세상도 좀 보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지상의 양식’은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세상 속에 있다고. 이제 21세기 한국에서 황석영이 외친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공부만 잘 해야 하는 우리 사회, 의사, 판/검사가 되어야 출세를 했다고 하고, 머니가 최고인 이 세상에서 정답은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그 정답에서 비껴가는 수많은 젊은이들, 삶이 훨씬 더 많은데, 이 사회는 우리에게 그 정답만을 강요한다. 그 정답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겐 얼마든지 각자에 맞는 해답이 있는데 말이다. 각자의 형편이나 적성, 능력,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고 각자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소설은 이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다.
이 소설을 읽는데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청소년기를 한참 지난 나도 이럴진대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은 오죽하랴. 하지만 이 책에서는 길을 떠나고 많은 경험을 직접 하라는 하나의 제시만 있는 게 아니다. 등장하는 여러 명의 청소년들의 모습이나 생각을 통해 각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청소년들이, 부모들이, 선생님들이 그리고 이 사회가 이 책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고 글씨만 쓰구.” 그러게. 간혹은 글씨만 쓰지 말구 별도 좀 보자구.
“뭘 하러 흐리멍텅하게 살겄냐? 죽지 못해 일하고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며 살 바엔, 고생두 신나게 해야 사는 보람이 있잖어.” 그렇다. 뭘 하든 흐리멍텅하게 하지 말고, 고생이 되더라도 신나게 해보자.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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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 별』은 어쩐지 쓸쓸하고 예쁘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그렇다. 『개밥바라기 별』 잘 자나가는 서울 번듯한 빌딩들 속의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 않고 삶을 , 하루를 지내는 좋은 사람들 혹은 그 사이에 경계인들을 그리고 있다. 때로는 헛헛한 웃음을, 때로는 가슴 속부터 돋아올랐음직한 진한 소름을 자아낸다. 그래. 살면서 누구나 그런 고민 한번쯤은 해봤으리다...... 준이, 인호, 선이, 미아, 정수, 상진...... 『개밥바라기 별』 속 인물들을 면면히 보자하면 그 곳에 내가 있고 이 곳에 그들이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명확하게 답을 찾지 못할 것 같은 삶의 근원적 질문, 회의, 꼭 열정 만큼의 허망.
올해 2월부터 시작한 연재였으니까 꼬박 5개월간의 연재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제 집보다 더 자주 드나드는 네이버에 둥지를 튼, 연재였다. 포털과 문학과의 만남을 걱정하던 사람들의 말은 기우였으리라. 황 작가님의 용기와 끈기가 젊은이들이 문학에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다.
그나저나 '나무를 키울거야. 쓸데없이 많이 배웠다고'말하던 인호는 어찌됐는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는 동안 꽤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말이다. 바람 피해 오시는 이처럼 문득, 소식을 전해 줄라나?
"내 사랑의 꿈도 영원히 사라지는가 모든 것이 떠나가고 절망 속에 나는 죽어가네 내 생애 전부만큼 나는 사랑하지 못하였네" -95p '별이 빛나는 밤에' 중
"왜 그렇죠?"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인연이 없어서요" -272p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내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기리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276p
더하기. 매일 매일 꾸준히 블로그를 통해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즐겨찾기를 해두고 아무리 블로그 방문을 용이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놨어도 네이버 대문은 황 선생님 블로그로 직행하기에 너무 화려했다;;. 단, 한 회 다 보면 끝무렵에 '다음 회 보러가기' 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몇 분 때론 몇 시간을 함께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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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의 개인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감동적이고 꿈틀대는 영혼을 만날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시대는 군부정권이 들어오는 시기,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대항하며 열정을 불사르던 시기다. 책에도 나와있듯이 고등학생도 무시받지 않고 어른들과 함께 정치와 경제를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보니 좀 우울하긴 했다. 그런 시대의 책들이 말하듯, 늘 소위 말하는 운동권 학생들의 모습과 이후 피폐해진 삶, 당시의 삶을 버리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그런 류의 소설일거라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류의 소설이라기보단 정말 성장소설로 그 나이또래라면 한번쯤 겪어봤음직한 10대의 감성을 잘 드러냈다.
난 그런 격정적인 시대에 10대를 보내지도 않았고, 물질이 풍부해 삶을 즐기고 노는데 집착하는 지금의 10대를 보내지도 않은 아주 어정쩡한 시기에 10대를 보냈다. 소위 말하는 모범생 스타일로 고등학교에서 최고의 목표는 좀더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것, 평준화된 고등학교에 학생운동이나 정치에 아무도 관심없는 아이들, 그런 10대를 보냈다.
이 소설에서의 유준이가 방황기를 고등학교에 와서 겪었다면 난 대학에 가서 겪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내 미래가 책처럼 눈에 보여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난 허무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학에 왜 들어왔는지, 내 목표가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대학의 몇년을 내 본질과 싸우느라 다른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지금의 10대들은 아마 그럴 여유도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 바로 취직을 위한 준비, 자기개발을 위한 준비를 끊임없이 해야하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의 10대들은 이 소설을 보며 유준이와 그 친구들처럼 젊은날의 방황과 격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어쩌면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열정과 격정은 결국 시간이 가며 잊혀지거나 사그러진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를 하고 난 후로는 준이는 어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니 소설을 읽으며 반쯤 부럽기도 하고 반쯤 질투가 나기도 한다. 나를 벗어나고 나를 찾기위한 몸부림을 고등학교 때 할 수 있었던 것, 현재의 젊은이들보단 좀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기에 나를 찾아 떠날 수 있었던 열정과 결단이 부럽다. 그리고 엘리트 집단속의 그와 친구들의 행보, 좋아하는 만큼 자신의 장기를 알아볼 수 있었던 그리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능력이 질투나기도 한다.
다시 과거로 간다해도 나는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그런 모범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책을 보며 반항하고 싶고 날 찾고 싶은 마음을 대리 만족으로 해결하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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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리한 가운데 작가를 만나게 됐다 내 주변을보면 대체로 남는 여유를 부려놓을 곳이 없어 이리저리 방황하는 40대 혹은 50대가 많았는데 그들은 나름대로 골프를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문화센터를 들락거리며 여유를 소비하고 있었다 간혹 어떤이는 뒤늦은 자괴감에 빠져 그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온몸 가득 그늘을 뒤집어 쓰고 자신을 갉아먹는 병에 걸려있기도 하였다 팽팽한 활시위 같았던 젊은날의 열정이 툭 툭 끊어지고 창 밖 풍경이 어느날 시선을 사로잡을 때 왜 그렇게도 하늘빛이 시리고 바람끝이 울컹덜컹 하던지 그렇게 세월은 나를 불러세우고 있었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이란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오래전에 활자나 영상으로 그분이 이북에 가고 망명을하고 귀국후 수감되고 다시 사면된 이야기들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나는 그때 시대를 아파하는 사람으로서 그분의 독자로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었다 지금도 그분께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름 석자만 들어도 그냥 마음이 울컹해진다
개밥바라기별은 중년의 나에게 다시 열정을 점화해 주었다 젊은날에 마음으로 간절하게 저질러보고 싶었던 열망을 거침없이 살았던 준이와 그의 친구들은 이 첨단의 시대에서도 손색없는 아방가르드이다 모든 예술가는 당대의 수많은 재능의 시체위에 서있다-는 글에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설픈건 싫다 확실한 자기세계를 가져야한다는 칼날에 가슴이 베였다 사소한것에도 마음을 드러내놓고 함께 기뻐해주고 슬퍼해줄줄 아는 이 시대의 거장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이미 세월을 많이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앞으로 세월을 살아갈 사람들에게도 변하지않는 물기어린 별이되어 우리의 삶을 끌어안아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이 살아있는 별을 나누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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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자 이미 신간이 아니였던 책... 매일매일 쪽글처럼 올라오는 연재글을 보면서도 그 가슴떨림이 멈추질 않았는데 나는 의식과도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개밥바라기별을 만나던 즈음의 나는 어제와 오늘에 조금의 다름이 없던 그저 하루를 살아지던 날들속에 있었다.
사실 이 책의 배경은 나의 청춘과는 시간적 거리가 있다.. 나를 옴싹달싹 어쩌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이책의 매력은 같은 세대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제한적 공감과는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책상이나 오래된 앨범을 정리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쪽지 한장, 사진 한장이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향수와 추억을 한번 쯤은 경험했을것이다. 당시의 '죽고 싶다'는 짧은 메모 하나가 오랜 시간이 흐르뒤엔 그저 짧은 미소 하나로... 너무나 사랑한다는 글이 쓰여진 오래된 사진 속의 주인공은 어느 새 이름조차 희미해져 지금은 무얼하고 살까? 하는 건조한 호기심만을 남겨놓게 된다...
당시의 그 아픔, 슬픔, 막연함, 불안감, 이유없는 분노 같은 것들조차 지금은 한없이 그립고 아름다운 청춘으로 기억되어지니...
내게 개밥바라기별은 그랬다... 수많은 <만약...>들을 순식간에 <그럼에도...>로 바꾸어 주고 말았다..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만약...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그때 해보았더라면" 과 같은 마지막 남은 나의 미련과 후회들을 "그럼에도... 아름답고," "그럼에도...그리워하게되는" 나의 <미열의 나날들>로 떳떳이 받아들여 줄수있게, 이제와 돌아봄에 아쉬움이 없게 만들어주었다..
언제나 실수 투성이 였던, 조금은 이유없이 반항적이였던, 다시 돌아보기에 창피스럽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그저 두눈 질끈 감아 봉인하듯 묶어버렸던 나의 그 미숙과 미완의 시간들을 준이와 함께 다시 곱씹어보며 기억을 추억으로 바꿀수 있었으리라..
하루하루 기다리며 쪽글로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다시 오르는 미열을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이제 이 책을 펼침에 있어 나는 또 한번 긴 호흡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만나러 간다... 많이 서툴고, 많이 어렸던 하지만 그 마저 나밖에 안아 줄 수없는 어린 날의 나를...
"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p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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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소설가들 중에서 ‘장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두 명이 있다.
이 장인이 돌아오셨다. 꼬나물던 담배를 끄고 책장을 열었다.
어느 커다란 문을 연 것 같은 느낌. 그 앞에 있는 것은.. 광활한 세계, 아름다운 우주. 아, 역시 장인의 솜씨다!
미친 듯이 뜨겁고, 화려하게 격정적이고, 가슴 쓰리게 애절한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
밤새 읽는 동안 내 몸은 소설처럼 뜨거웠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기를 여러 번. 나는 또한 생각하게 되었다. 청춘이 성장한다는 것은 뭐지?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뭐지? 살아가는 사람들을 빛내주는 저 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주인공 준. 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지 황석영 소설의 주인공 때문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를 흔들었던 문학 속의 주인공들, 즉 홀든 콜필드(호밀밭의 파수꾼), 자크(티보가의 사람들)처럼 인간적인 것을, 살아가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황석영의 ‘준’,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구나.
우주를 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이 그럴 수 있겠는가 싶겠지만 황석영의 소설은 정말 그리했다. 우주를 품은 ‘개밥바라기별’! 그 아름다움에 심장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흥분하는 것,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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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은 지금도 학교와 학원을 다람쥐 쳇바퀴 돌며 살고 있다. 황석영님의 젊은 시절은 자유와 낭만 일탈과 불안이 교차하지만 그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놓치 않는 책임감을 엿볼 수 있다. 나 역시 그 시절을 범생이로 살아 왔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온다. 젊은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내면의 비밀스런 일들도 거침없이 써내려간 황석영님의 애정어린 글땀들이 시나브로 뜨거운 이 여름을 속 시원히 읽어내려 가게 해준다. 아직 청년의 시절을 방황하는 어린 조카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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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만 리뷰를 쓰다보니, 색다른공간에서 글을 쓰는데 한참이나 애둘러서 찾아온 리뷰쓰기공간이다. Yes24에서도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고 나서야 글을 쓸수 있넹!
3월중순부터 5개월을 찾아다닌 소설이니 누구보다 멋지게 글을 꿰고 있을듯한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지금의 내 속에는 편린들의 보석들만 의식과 마음의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고, 어지러운 내면의 불퉁대는 소리들이 흡사 난타공연을 보는듯이 흥겨운 기분만 남겨준다.
소설의 연재분을 매일, 혹은 일주일, 또는 보름을 주기로 따라가며 느끼게된 큰 줄기의 감상이라면, 나의 10대의 고민/우정/연애/학교생활 등이 겹쳐 떠오르곤 한다. 이 글을 쓰기위해 Yes24의 또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어본다. 많은 분들이 바른생활을 하면서 주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살아 추억할것이 없다는 하소연과 분루를 삼키는 모습등을 본다. 누구나 젊음을 그리워하지만, 단언하건데, 난 그 시절로 돌아갈수 있는 타임머신이 생긴다해도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것이다. 그만큼 10대후반과 20대는 나에겐 중심을 찾지 못하고 부유했던 시간들이었고, 소중할 것 없는 아픔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작가와 소소한 인물을 비교할 수 있느냐하는 비평이 있다해도 나의 그때도 학교는 교육의장이 아닌 업압의장이라 기억되기에...
그 어지러운 시기에 나를 지탱해주고 고민을 함께한 우정어린 친구들은 지금 일상의 추적자들과 목적물들로 바쁘게살면서 하나 둘 나의 주변을 떠났고, 추억해야할 학창생활이라야 몇몇의 말을 섞었던 급우를 제외하고는 학교를 시계추처럼 다녔었다는 아픔만 남아있다. 그런점에서 준과 나의 레벨차이가 보일테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살고 오늘을 산다는데...
주마간산격이지만, 준이의 아픔에 동고를 하고 대위와 같은 주변인을 떠올리며 막장에서 일하던 추억이며 '아름다운년'을 찾아 떠나는 준이를 볼때는 나의 내면에서 이성을 바르게 볼 수 없는 아픈기억때문에 누누이 실패했던 연애사도 아스라하다. 초반에 등장했던 두 극단의 선생모습에선 내 은사라 부를만한 선생님들과 월급을받는 직업선생들이 떠올라 애틋하기도 했고, 두 주먹 불끈 쥐기도 한다.
평생 잊을수 없는 소설. 개밥바라기별. 그래서 평생을 함께 가고픈 친구들에게도 몇권 준비해 선물을 한다. 연재물이 아닌 본서를 정독하면서는 분명히 감동의 눈물이 흐르겠지! 하는 감상을 뒤로하고, 블로그 개설에 맞춘 첫 테이프를 간단히 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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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그의 이름을 떼어낸다고해도 과연..이렇게 별들의 잔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황석영의 이번 작품은... 읽기에는 그나마 술술 잘넘어갔지만 허접했던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만도 못했던것 같다.
황석영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싶을 정도로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이다.
그렇지만..지난번 바리데기나, 이번 작품처럼... 뭐랄까..작가의 도가 지나치다 못해 뭔가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드는 이런 소설을...참,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난감하다.
글을 읽는 사람마다 살아오면서... 처한 상황도 다르고, 배운 것도, 보고, 듣고 , 느낀 것도 다르기 때문에...한 책을 두고 여러가지 리뷰가 나올 수 있겠다,는 것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나서, 무척 홀가분해졌다. 준이고 영길이고...마음에 들어 앉지 못했으니, 떠나보낼 일도 없었지만... 지겨운 숙제를 마친 듯한..뭐 그런 느낌이랄까.
만원도 안되는 책값도 아까웠고, 주말을 고스란히 이 책 한 권을 정독하느라 쏟은 시간도 아까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영 맘에 들지 않아서... 조금은 쓸쓸한 주말이였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