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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서평이라는 선교사를 알게 되었다. 그 내용에 감동을 받아 바로 뒷날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정말 감동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이 책은 ‘서서평’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사람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 독일 출신 미국인인 이 분은 1912년 32살의 나이에 처음 조선에 온 간호 선교사였다. 그 후 22년 동안 조선에 살면서 조선의 고아 14명을 입양하여 자기 집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하며 친자식처럼 돌보았고, 한센병(나병) 환자들과 과부들을 먹이고 돌보았다.
서서평 선교사가 남긴 선교 보고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 500명이 넘는 조선여성을 만났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열 명도 안 됐습니다. 조선 여성들은 ‘돼지 할머니’, ‘개똥 엄마’, ‘큰년’, ‘작은년’ 등으로 불립니다. 남편에게 노예처럼 복종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들을 못 낳는다고 소박맞고, 남편의 외도로 쫓겨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팔려 다닙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우쳐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듯 서서평 선교사는 그 당시 한국에서 제대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사는 여성들의 삶을 돌보고 그 위상을 높여주는 일들을 많이 했다.
서서평 선교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이일학교를 세워 여성들을 가르쳤고, 조선간호부협회를 세우고 일본과 별도로 세계 간호사협회에 등록하려고 애썼다. 한글 말살정책이 진행 중인 일체 치하에서 간호부협회의 소식지와 서적들은 모두 한글 전용을 고집했다. 조선사람들에겐 출애굽기를 가르치면서 독립의 확신을 심어주었다.
서서평이 조선에 왔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전, 정말 가난하고 힘들게 살던 때였다. 사람들은 무지하고 병에 시달리고, 거기다가 일제 치하에 있어 자유도 없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일하던 서양 선교사들 가운데에서는 하인을 두고 차를 몰고 다니며 편리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조선 사람들 중에서도 동족의 비참한 생활에 눈감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향락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서서평 선교사는 이들과 달랐다.
월급을 받으면 먼저 절반을 교회에 바치고, 자신이 세운 학교 운영비와 학생들의 장학금에 할애하고,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항상 가난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 당시 다른 선교사들은 하루 생활비가 3원이었는데, 서서평은 10전이 넘지 않는 돈으로 하루를 살았다. 매일 강냉이 가루 죽과 조선 된장으로 먹고, 다른 돈은 여성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남긴 유산은 일주일 품삯에 해당하는 7전의 돈, 그리고 강냉이 가루 2홉, 담요 반장뿐이었다. 엄동설한에 문둥병자 두 명이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집에 달려가 하나밖에 없는 담요를 둘로 나누어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때의 병명은 ‘영양실조’였다. 평생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았던 그의 삶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 책을 특히나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 관한 설교를 쓸 때즈음 읽어서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정말 그대로 실행한 사람이 바로 서서평 선교사인 것 같다. 이 분이 죽을 때의 일화를 읽어보면, 그렇게 작은 자에게 베풀고 돌보는 삶을 산 사람에게 허락하신 하늘나라를 이 분이 상속받았음을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오히려 더 조선사람처럼 살며 조선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며 섬겼던 이 선교사의 삶을 잊지 않고 조금이라도 본받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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