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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디자인과 전집이라는 것에 책욕심많은 저는 소장하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먼저 했던 책입니다.
이혼하고 연하의 연인과 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
처음 시작은 저도 그 남자와 함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인가 몰래본다는 흥미로움이 있었지만
굳이 제목에서 말하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재밌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밀란 쿤데라 이름만으로도 회피하시는 분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밀란 쿤데라 전집, 정체성,동유럽소설등 어렵고 난해할 것 같은 단어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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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가 프랑스어로 쓴 소설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는 순간, 내가 믿어온 나의 모습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 짧고 단순한 이야기 속에 사랑과 불안,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를 섬세하게 담아낸 쿤데라의 매력이 돋보인다. |
| 흥미진진한 스토리인데 심오한 뭔가가 있다. 한 연인의 관계 속에서 ‘나’와 ‘너’를 구분 짓는 경계, 그리고 그 경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변질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쿤데라는 특유의 철학적 문체로, 사랑이란 상대를 절대적으로 이해하려는 욕망과 동시에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폭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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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 로랑과 프랑수아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간 존재와 사랑, 그리고 ‘나’라는 정체성의 복잡함을 탐구한다. 소설은 로랑과 프랑수아즈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혼란을 섬세하게 그린다. 특히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욕망과 불안,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의해 형성되는 정체성의 불안정함을 깊이 파고든다.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면, 로랑과 프랑수아즈는 서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변화에 당황하며 관계의 균열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유동적이고 다층적인지를 보여 준다. 감상평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로 풀어낸 작품이다. 읽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고정된 게 아니라 계속 변하고 흔들린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로랑과 프랑수아즈처럼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존재라는 걸 깨닫게 만든다. 쿤데라 특유의 철학적 사유와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느껴져서, 책을 덮고 나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인간관계와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힘 있는 작품이다. 이게 바로 『정체성』이 가진 매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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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이 과연 있는가? 어떤 존재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여러 의문이 떠올라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가운데 정신분석 용어로서의 ‘정체성’의 의미는 설득력이 있다. “상당 기간 동안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의 자기에 대한 경험” 철학이나 심리학에서나 쓰일 법한 단어를 문학에서 제목으로 내걸었다면 독자는 읽기 전부터 골치 아플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예비독자들을 위해 내용을 스포하기 원치 않으므로 아무도 관심 없을 내 개인적인 감상만 남기고자 한다. 사실혼 관계의 두 남녀의 이야기는 소재 자체만으로 긴장감이 고조된다. ‘정체성’과 직접 결부되는 철학적 과제는 ‘나는 누구인가?’일 것이다. 나의 정체성은 오롯이 나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서술될 수 있다. ‘독립적’이라는 수식어는 그래서 취약하다. ‘바라보는 자’가 있어야 ‘나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실종자’는 사라진 존재이지만 잊혀지지 않은 존재이며, 타인의 관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 즉 절대적 죽음을 원한다면 매장이 아니라 ‘화장’당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화자조차 ‘정체’를 알 수 없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면서 동시에 ‘존재하는 이’의 편지 몇 통에 파토스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완전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편지를 쓴 주체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자신보다 먼저 잃은 어머니라면 그 정체성이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으며, 의도는 했지만 원치는 않았던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떠나야 하고, 또 따라야 한다. 그리고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는 듯한 뒤죽박죽의 이야기 끝에는 삶인지 죽음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이 기다리고 있다. 현실 속 삶과 뻔뻔한 환상의 경계선의 구분은 이제 주인공들도, 독자들도 불가능하다. ‘밀란 쿤데라’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실감한 독서 시간이었다. 결국 나의 정체성도 확신할 수 없기에 타인의 정체성은 더욱 가늠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불을 켜고 상대를 바라보는 일일 뿐일지도 모른다. 너를 바라보는 나. 이 순간에 이보다 더 확실한 정체성은 없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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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 '향수'를 읽었을 때 만큼의 충격은 아니지만, 이 작품도 제목에서 주는 무게처럼 결코 가볍지 않다. 아마도 제목이 달랐다면 훨씬 더 맥빠지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이 고전인 이유는 제목에 숨겨진 고도의 심리가 아닌가 싶다. 어린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이혼한 샹탈은 네 살 연하인 장마르크와 우연한 사랑으로 맺어져 같이 살지만, 어느 날 자신이 늙어간다는 생각에 우울해 한다. 그러다 장마르크가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해 주려고 몰래 보낸 편지를 받으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누가 자신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편지를 보낸다고 생각한 샹탈은 외모에 무척 신경 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쟝마르크는 자신이 만든 가공의 인물에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편지의 주인공이 쟝마르크인 것을 눈치챈 샹탈은 허탈감과 배신감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쟝마르크는 그녀의 변화에 당황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꿈을 꾸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서 현실과 꿈을 오가는 전개로 작가는 독자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현대를 살고 있다. 내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나 자신의 정체성도 수시로 바꾸며 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정체성에 비교적 일관성이 있는 사람도 있고, 전혀 다른 모습의 정체성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 각자의 정체성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예를들어, 샹탈을 바라보는 쟝마르크의 눈에 그녀의 여러 얼굴이 번갈아 나타나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그런 예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이 어려워서 여러 번 읽었다고 하는데, 나 역시도 한 번 읽은 것으로는 작품의 겉만 살짝 훑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 보고 싶다. 새로운 깨달음을 기대하며... |
| 양복위에 얼굴은 없고 모자만 둥둥떠있는 표지가 참 인상적이였다. 처음엔 오 저런 사진을 표지로 했지? 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이해가 갔다.어린아들이 죽은후 이혼한 샹탈은 연하남 상마르크와 같이 살면서도 늙어감에 한탄한다. 상마르크는 샹탈을 위로하기위해 시라노란 이름으로 익명의 편지를 보내는데.. 그 편지가 오는걸 내심 즐기는 샹탈을 보며 존재하지 않는 시라노라는 존재에게 질투감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진짜 모습이 무엇일까에 대한 혼란을 쿤데라가 특유의 철학적인 필체로 잘 살려낸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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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하기 위해서 구입한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같이 비교해서 읽으라고 추천 받은 안정효의 낭만파 남편의 편지와 상당히 유사해서 옆에 나란히 두고 읽었는데 정말 신기했네요. 어째서 제목을 정체성이라고 지었을지 가늠해보는 일도 재밌었고 후반부에 꿈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이 기억에 남네요. 쉽게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읽는 재미가 있던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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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이 책의 소재를 다른 tv 드라마나 인터넷의 단편소설에서도 차용했었나보다. 제목부터 이 책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진짜 나와 내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다른 인물 중 누가 나에게 더 가까운 것일까? 작가의 다른 단편작 히치하이킹에서 같은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한창 tv에서 연예인들의 부캐 설정이 인기를 얻었었는데, 이 책의 장마르크는 시라노가 본인의 부캐라는 것을 대놓고 못 드러내니 답답했을 것이다. 누가 주도권을 가질지 긴장하면서 책을 읽었다. 나라면 또 어떤 선택을 했을지,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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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재미있게 읽고 구매한 책 결국 노문상은 받지 못하고 작고한 멜란쿤데라 할배를 추모하며 읽은 소설이다 비슷한 집 비슷한 행동 이런 인간군상들 속애서 결국 나의 정체성은 남으로부터 찾는게 아니라 내가 타인을 열정적우로 바라보는 그 순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글귀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시작은 연애소설이었지만 나에대해 다사금 생각해보는 좋은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