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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리뷰를 달아주신 분에 대한 답변입니다. 너무 길어져서 리뷰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사투리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1. 쓰가루 사투리를 표준어로 번역한다. - 이것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기존 국내 번역본 가운데서는 '참새새끼'처럼 완전히 사투리로 쓰여진 작품을 모두 표준어로 번역한 작품도 있었지만, 다자이의 저작 의도와 그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작품 가운데도 문맥 중간중간에 다른 지방 출신들이라면 이해도 할 수 없는 사투리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표준어로 번역하는 것은 원작자의 뜻에 위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2. 쓰가루 사투리를 국내 많은 번역본이 그러하듯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한다. - 이것은 제가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부분이었습니다. 제 출신도 그러하고, 다른 번역본들에서도 대부분 사투리는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음... 역시 경상도가 무난할까...? 그러나 저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앞으로 나올 다자이 전집 속에 오사카 사투리도 있을 것이고 하카타 사투리도 있을 것이고 그 다양한 사투리들을 모두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한다...? 다자이의 출신 상 쓰가루 사투리가 가장 많겠지만, 어쩐지 제 느낌으로는 황량하고 쓸쓸한 쓰가루를 생각할 때 전라도가 더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전라도 지방이 황량하고 쓸쓸하다는 건 아니지만요. 함께 공부하던 일본 친구들도 '어쩐지 그런 제 느낌'에 동의하여 주었습니다.
결국 전라도 사투리를 쓴 것은 '어쩐지 그런 제 느낌'에 의한 것이니 황당무계하지 않다는 말씀도 못 드리겠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저는 이러한 제 소신과 느낌에 따라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매우 신중하고 겸허하게 그러나 다자이 아저씨처럼 위트를 잃지 않고 번역할 거라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차곡차곡, 한발한발이요. 나머지 권들도 무척 재미있어요. 그러니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번역을 하면서 큭큭 웃기도 하고 훌쩍훌쩍 울기도 하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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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孤立無援이란 대패질은 얼마나 쓸쓸한 행복인가!
제 살과 영혼을 깍아 누군지 모를 나의 분신을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행위 내 심장과 정통으로 마주한 반사경이 그대가 창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의 통로를 지나 지난한 빛으로 손 내밀 때, 그 때 나는 목 놓아 울었느니... 이제 비로소, 내 심신을 휘감았던 농연濃煙의 메시지를 통곡痛哭으로 껴안는다 오, 기쁘도다!
연거푸 흘러대는 이 감상의 맥박이 실은 그대의 간절한 메아리였음에야 무디고 무딘 세상, 그대의 진통이 수차례 고문拷問당하고 산산이 부서진 암석가루로 덮히어 깊디깊은 무덤에 매장돼 버릴 때, 그때 나는 두 손 모아 기도할지니... 설령 질곡桎梏의 늪이라도 우짖는 전설처럼 그대의 혼령에 뿌리내리게 해 주소서!
2
온갖 긴장緊張을 뚫고 나온 폭포수의 전쟁은 얼마나 애달픈가!
파기破棄의 질긴 욕망에 낙엽처럼 나동그라지고 퇴폐頹廢의 달콤한 향연에 슬픈 미소를 지으며 비상하는 날개 짓 세속의 전철前哲에 온몸을 싣고 바라보는 한낮의 태양은 추억을 사그라뜨리고, 다시금 시린 빛을 쏘아 희나리 위에 제 몸을 뉘인다 코를 찌르는 부패腐敗, 그리고 밟히는 시체의 눈물
옹송거리며 청한 등걸잠은 길몽의 연주에 둔감하고 철옹성鐵甕成에 매달려 거풀거리는 야생의 족쇄 시종일관 반짝이는 명줄의 파편은 추락을 환영하고 곧바로 손을 흔드는 마파람의 기대에 내쳐 백기白旗를 휘날린다 급소急所를 찌르는 할복割腹, 그리고 폐쇄된 낙원
3
달밤에 게가 바싹 마르는 것은 모래사장 위에 드리워진 흉측한 자신의 달빛 그림자를 보고 놀라,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기 때문입니다(p328).
부디 용서하소서! 다자이 오사무 당신처럼 삶에 신겨진 멍에란 버선은 여기저기 부식돼 바스라진 고통의 편린을 수도 없이 땜질하는 것 언제까지나 서투른 초보로 살다 역시 그런 채로 끝나버릴 생이란 걸 잊혀 져도 괜.찮.아.요. 부디 잊어주세요 라고 속 시원히 말할 수 있는 기쁨을 눈치채버린 걸 군중의 껍데기가 저인 것을 알아버린 다음에야 관계의 동냥질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설령, 아직도 어설프고 서럽기만 한 초탈超脫일지라도
부서지기 쉬운 등딱지의 불면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날 재간이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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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하다. 이렇게 스스로를 뻔히 보이는 악덕 속에 밀어넣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하나같이 데카당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데카당이 아니다. 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하다 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들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표현하지 않아서 데카당이 아니고, 표현했기 때문에 데카당이다. 자기변호에 서투르기 때문에 데카당인 것이다. 말하자면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자신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괴로움에 신음하는 거다. 그에게 있어 승부를 양보하는 것은 오만함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라고 봐도 좋다. 몹시 답답할 정도로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외려 절실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양반다리로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글 몇 줄인가를 써놓고 내심 기뻐하고 있을 따름이다. 얼마나 초라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nevermore'라고 담담히 외치고 '엉망진창'이라고 명랑하게 외친다. 어슬렁어슬렁, 내일을 알 수 없는 스스로의 생명을 바라볼밖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군, 하는 기분이 드는 작품도 몇몇 있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나는 그냥 다자이 씨에게 샘이 났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중독 상태의 글을 쓸 수는 없다, 무자비한 생활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고 생각했다. 또 나에게는 언젠가 틀림없이 개에게 물릴 것이라는 믿음조차도 없다.(「개 이야기」) 물론 나 또한 개를 싫어하여 그처럼 총으로 탕탕 쏴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은 있지만 저만치 개가 나타나면 지레 겁을 먹고 슬슬 피해다니기 때문에 물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구나 항상 자살을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가 없는 상태다. 이래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어떤가. 당당히, 보란 듯이 죽음에 성공했다. 나는 영원히 이상주의자는 되지 못할 위인인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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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과 "사양"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한 일까? 만년은 낯설고 딱딱한 책이였다. 잘 읽히는 부분은 한 없이 넘어가다 안 읽히는 부분은 꽉 막혀버리고 말았다. 어째든 한권을 겨우 완독할 수 있었다. 기쁘다가도 새해에 계획했던 독서의 량을 못채워 슬피기도 했다. 2017년의 책들을 채우려면 더 부지런해야 겠다.
안락한 삶을 살 때는 절망의 시를 짓고, 메마른 삶을 살 때는 생의 기쁨을 쓰고 또 쓴다. 25.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렇듯, 그들도 진지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서로 상대방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마음도 소중히 보호한다. 139.
평범한 남자에게 억지로 의미를 갖다 붙이고 꿈을 덮어 씌워서, 그걸 지켜보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용구는 없는가. 기린아는 없는가. 이제 그런 기대 따위 진짜 그만둘래. 그는 그저 옛날과 같은 그이며, 그날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일 뿐이다. 269.
이젠 날 연구하려고? 내가 화를 좀 내고 싶어졌거든. 뭐라도 좋으니까, 미친 듯 고함을 지르고 싶어졌을 뿐이야. 376.
등용문이란, 사람을 바로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외면을 보살처럼 꾸미는 지옥문이죠. 하지만 나는 포장된 딸기의 슬픔을 잘 알아. 요즘 들어 그걸 훌륭하다 생각하기 시작했지. 377.
책읽기가 힘들었지만, 좋은 부분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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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가 쓴 창작집 <만년(晩年)>이다. 갑자기 제목의 '만년'의 뜻이 궁금해져 찾아보니 인간의 생애의 노년시절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사실 다자이 오사무의 초기작들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다자이가 자신의 유작으로 생각하고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읽는 내내 조용한 느낌이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뛴다. 이야기마다 가벼움 속에 무거움이 담겨 있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솔직히 그 작가의 생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이 책은 굉장히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역시나 자기 고백적인 내용이 담긴 <추억>이 제일 인상 깊었다. 그에게는 늘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담긴 글이 있다.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지만 당당하거나 내세우는 모습이 아닌 자기 자신의 태생과 본질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치스러워하며 그것을 자신의 글로 고백한다. 죽기 전에 그가 왜 이 글들을 '만년'이라고 표현하고 남겼는지 알 것 같다. 꼭 죽기 전에 더 솔직해지는 그의 모습은 짧았던 그 생애만큼이나 뜨겁고도 차가우며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마지막에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훌륭해질 수 있을가? 그즈음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늘 공허하게 발버둥을 쳤다. 얼굴에 열 겹 스무 겹의 가면이 달라붙어 있어서, 어느 것이 얼마나 더 슬픈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어떤 쓸쓸한 배출구를 발견했다. 창작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다들 나처럼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전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가 되자, 작가가 되자, 남몰래 다짐했다.
-55, 56p <추억>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자이를 떠올리면 바로 <인간실격>을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오바 요조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그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 고백과 같은 소설이다. 그렇지만 이 만년에도 오바 요조가 등장한다. 바로 <어릿광대의 꽃>이라는 이야기에서인데, 바로 연인과 자살을 시도한 후에 혼자 살아남은 오바 요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대체 무엇을 상상했던 것일까? 대체 왜 이런 글을 썼던 것일까. 많이들 알겠지만 그는 <인간실격>을 쓰고 나서 자살을 했다. 연인과 함께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그 이후를 쓴 그의 이 글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했다.
<교겐의 신>을 보고는 이 작가에 대해 내가 그 많은 나름의 조사를 하고 읽었음에도 도저히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목을 매서 자살하려던 자신의 일화를 또 글로 표현해냈다. 자신의 삶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참 기가 막히게 잘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앞서 언급했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찌보면 지독한 이야기도 이렇게 덤덤하면서 감성을 건들면서 써내려가니 약이 오른다. 솔직히 책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보면서 고서당 점장 시노카와가 이 책에 왜 그리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왠지 알 것 같다. 이 책은 집착할만하다. 뭔가 빠져들게 하는 그런 면이 있다. 이 작가 자체가 그렇다. 실제로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예민하고 자기 혐오성이 짙어 피곤할 타입이지만 그의 글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 그의 글이 자기 얘기를 한다는 것 부터가 사람들이 빠져들 수 있는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어려웠다. 작가를 이해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어서 몇몇 단편은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그가 뭘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는지 왜 수치심과 자기혐오에 빠져 그렇게 자신의 재능인 글로 자신을 유린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의 유언이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던데. 그렇게 그를 죄송하게 만든 이유가 뭘까? 섬세하지만 그냥 둘 수 없는 인간 같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런 그의 초창기 소설과 어린 시절, 청년, 자살 시도 후를 상상한 내용... 등을 잔뜩 이야기하고 있는 이 <만년>은 그를 이해하고 싶다면 무조건 읽어봐야 할 것 같다. 특히나 <인간 실격>을 읽었다면... 오바 요조라는 인물에 연민을 느꼈다면, 오바 요조의 실제 인물인 저자 다자이 오사무가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대신 몇 번 읽어도 불편한 느낌이 들고 왠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가 그런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내가 체크해둔 몇 개 목차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이 출판사에서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출간한다고 하던데 기대된다. 숨겨져있던 그의 많은 글들을 다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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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뒤편을 보니 배우 신하균이 추천사를 써주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전집이 출간되는 것을 축하하고 있다. 좋아하는 배우와 같은 책을 읽게 된 것 같아서 기쁘다. 또 가수 요조의 의미가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에서 따 온 것이라니 신기하다. 오바 요조는 나에게 답답하고 짜증나지만 가엽고 연민을 느끼는 인물. 그래서 인상 깊다. 가수 요조가 왜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봤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유명인들과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새삼 색다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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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고 있는 중입니다. 출판사쪽에 문의하려고했지만 마땅히 글을 적어 올릴 곳도 없더군요. 정말 황당한 번역에 다소 화도나고, 당황스러워 읽기를 멈추고 싶었지만 다자이 우사무의 글이기에 참고 읽고 있습니다. 다른부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몇몇 단편들에 대화체에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되어 있네요.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일본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 부분을 우리의 사투리로 표현했어야 했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정말 황당무계한 사고방식의 번역가이신듯. 나머지 시리즈들도 꼭 읽고싶은데 이런식이라면 망설일 수 밖에 없겠어요. 독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