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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었다. 내가 크로마뇽에 이렇게 빠질 줄 몰랐다. 그저 예전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외에는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나마도 시험에 나와서 열심히 외웠던 기억뿐이다. 그런데 무심코 읽기 시작한 이 책 때문에 타임머신을 타고 저 먼 시간의 저편으로 날아갔다온 기분이다. 그 기분이 꽤 상쾌하다. 한 번도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이 어떻게 만났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정말 서로 다른 그들이 만났을 때 어떠한 느낌이었을까. 이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크로마뇽인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이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우위에 선 사람들로 여겼을까? 조용하고 우직한 네안데르탈인들은 자신들보다 꽤 영리했던 크로마뇽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지금은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는 바늘귀가 크로마뇽인들이 추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위대한 발명품이었음을,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차는 것으로 생각했던 벨트가 그 시작은 보온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크로마뇽의 시작은 아프리카였음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주르륵 펼쳐졌다. 이쪽 분야에 대해 그동안 너무 무지했던 것인지, 고고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분야인지 처음 알았다. 모든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나의 시작은 무엇인가, 인류의 기원은?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언제부터 여기였을까? 여기엔 누가 제일 먼저 살기 시작했을까. 그들은 누구일까. 궁금하고 또 궁금해진다. 아직 그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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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가는 줄 모르는 소설이나 영화는 삶의 작은 휴식을 안겨 주듯, 이 책 역시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것 같은 작은 쉼표같은 책이었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들로 생각했던 크로마뇽이 나와는 전혀 무관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걸 느끼면서 크로마뇽과 나와의 시간의 간극만큼 또 흘렀을 때 후세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말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크로마뇽의 모습은 빙하기 못지않은 변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간은 흘렀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 오래전부터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존'은 언제나 우리 모두의 화두였던 것이다. 내용을 읽다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현대 아웃도어 장비를 파는 곳에서는 겹겹으로 된 보호 장비를 마치 놀라운 발명품인 것처럼 판매하고 있다." 이 말은 아무리 현대의 우리가 최고의 인류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우리도 역사의 한 부분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저 지나가듯 써놓은 저자의 이 문장이 나는 읽으면서 계속 마음에 남았다. 옛것을 파헤치고 탐구하는 과정이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고고학, 참 매력적인 학문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 속에서 끊임없이 크로마뇽인들의 모습을 찾아가는 저자의 노력을 보면서, 부단히 탐구하고 노력하는 학문의 매력 특히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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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마뇽
인류의 진화단계에선 Homo Sapiens Sapiens 에 속하는그들의 이름, ‘크로마뇽 Cro-Magnon’의 명칭은 1868년 프랑스 남서쪽에 위치한 레제지 라는 마을에 철로가 놓이고 새로운 역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던 중, 바위 근처에 묻혀있던 ‘거대한 동굴’ 이란 뜻의 크로마뇽 이라는 석굴에서 석기, 동물 뼈와 태아 유골1구, 성인유골 4구의 총 5구의 유골을 발굴하면서 명명되었다.
그들은 그림과 조각 등의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남긴 우리의 먼 조상이며, 얼어붙은대지에서 끝끝내 살아남은 현생인류, 우리가 오늘날 이처럼 화려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게 하였던 우리들의아주 먼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며, 후기구석기 문화를 이룩한 현생 인류의 직계조상이다.
이 책에서는 그들이 현생인류의 사촌격인 ‘네안데르탈인’ Homo Sapiens 과 어떻게 다른지, 네안데르탈인이 이 지구상에서사라지는 동안 어떻게 살아남아 인류의 생명을 이어가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상상력과 방대한 자료 등을 이용해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자료들 또한 찾아보았는데,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교류를 했었는지, 어떤 이유로네안데르탈인은 멸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많은 논문들과 주장들이 있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 두 집단들은 교류하지 않았을 것이고 각자의 생활 방식에 따라 조용히 스쳐지나갔다는 것을 줄기로 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보다 키가 작았지만 튼튼한 팔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아직도 짐승털을 뒤집어 쓴 유인원과 별 다를 게 없는 거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인지능력과 훌륭한 사냥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 또한 간단한 의사표현 능력과,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돌로만든 무기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안타깝게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생활방식을 끝까지 고수 했다. 그래서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은 운명을 달리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크로마뇽인이 현대까지 유전자를 이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생활 습관과 관습을 과감히 바꾸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혁신능력에 있었다.
추위가 거듭되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면 우선 집단 구성원의 감정의 유대와 협력, 나아가 힘든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것을위해서는 언어가 발달하여야 하고, 집단 내부에서나 집단 대 집단간의 교류를 통한 정보의 공유가 필요하다. 그들은 척박한 현실을 넘어선 구심점으로 예술과 종교를 가졌다. 뼈나동굴 벽에 새긴 아름다운 그림이나 조각작품,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노래나 영적인 체험들, 그것들은 지금도 여러 형태의 유적으로 남아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또 한가지의 혁신은 바늘이다. 뾰족하게 다듬은 동물 뼈에 구멍을 뚫은별 것 아닌 이 도구는 그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 바늘귀에 가죽 끈을 연결해 그들은 몸에 알맞은의복을 만들어 입은 것이다. 추운 날 보온을 위해 입은 맞춤 털옷과 부츠는 그들을 다른 종들과 완전히구별하게 하였을 것이다. 추위도 막아주지만 아름다움을 위해 장식을 만들고 거래를 하는 등의 또 다른혁신의 연쇄작용이 일어날 것 또한 자명한 일이다.
이에 관련해 예전에 읽은 ‘지나 사피엔스 Gyna Sapiens’ –레너드 쉴레인- 라는 책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겠다. Gyna 는 남성을 뜻하는 접두어 Homo를여성을 뜻하는 지나 Gyna 로 바꾼 것으로, 그 책에서는인류를 발전시킨 축을 여성으로 보았다. 인류의 어머니는 어느 날 달이 기울고 차는 것에 따라 생리주기가반복되는 것을 깨달으며 ‘시간’의 개념을 터득하게 됨으로써폭발적인 지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들에게 그것은 바로 삶과 죽음,시간 등의 관념 즉 철학적 사고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그들의 삶을 이어간다. 무리중의이야기꾼 하나가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 모닥불에 둘러 앉은 그들의 고단한 삶을 즐겁게 하였을 것이고, 그가죽으면 또 다른 구성원이 자신만의 살을 덧붙인 이야기들을 또 나누며 그렇게 그들의 삶의 역사를 자손들에게 물려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들에게 신화가 되고 지금 우리는 그들이 남긴 작품들과 흔적들을 통해 그들을 추억한다.
이 책은 많은 부분을 상상에 두고 있다. 아무리 나날이 기술이 발달하고있지만 단편적인 유적이나 자료들에서 상상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고, 아무것도 얻어낼것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고고학자는 우리들 중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까지 하면서 우리가 과거의 인류를 알아가는 것이 왜 중요할까. 그것은우리가 ‘왜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가’ 라는 질문과도일맥 상통할 것이다.
만일 고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조금은 머리 아플 수도 있겠다.그러나 그것은 ‘이 책이 얼마나 쉽게 쓰여졌는가’ 보다는고고학이라는 학문의 특징일 것이다. 많거나 적은 유적들을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의미 있는 것과 그렇지않은 것을 분리하고, 과학의 힘을 빌려야 하고, 거기서 상상하고, 유추하고 가설을 세우고 다른 유적이나 확정적인 이론이 나타날 때까지의 한정적인 결론을 내는 아주 힘겨운 작업이기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었던 시간 동안 나는 우리 조상들이 걸었을 머나먼 여정을,그들이 모닥불 가에 둘러앉아 함께 듣던 용감한 사냥꾼의 이야기를, 이름 모를 어느 한 예술가가아마도 평생을 거쳐 작업했을 지도 모르는 커다란 소떼의 그림과도 함께 했다. 참으로 의미 있고 신비로운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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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꽤 커다랗게 실린 기사를 보고 구입했다. 기사 중에 실린 그림 가운데 뒷짐을 지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조각상이 꽤 인상적이었다. 책을 구입해서 손에 받아보고는 화보부터 뒤적거렸다. 우아. 인류가 만든 최초의 조각상이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머나. 꽤 디테일하게 묘사되었다. 부...부...부끄러워 디테일한 묘사는 생략한다.ㅋ 이 책을 읽다보면 눈에 띄는 질문 하나. 우리와 크로마뇽은 닮아있단다. 뭐가? 너무나도 빨리 변해버리는 우리 세상과 크로마뇽인들이 살았던 세상. 이 둘이 다를 게 뭐 있겠느냐며. 크로마뇽이 생존한 가장 큰 이유는 털복숭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없었던 변화와 혁신을 위한 사고능력이 이 둘을 가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조용한 네안데르탈인, 수다스러운 크로마뇽인. 크로마뇽의 수다스러움에는 생존을 위한 여러 가지 정보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책을 다 읽고 사전을 찾아보니 구강 구조 자체도 다르단다. 음성을 내는 구조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사실,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 얘기에는 무관심하다. 특히나 원시인이라 생각한 이들의 이야기는 더더군다나 그랬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인류에 대한 이야기는, 원시인이라 치부해버린 내 생각을 부끄럽게 느끼게 해준 좋은 책이었다. 이렇게 창조적이고 멋진 조상들이 있었다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또 다른 장점을 찾자면, 작가가 교수님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쓰신 덕에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왜 교수님들 책은 지루하다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는지;; 중고등학교 시절, 무심코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유적지를 발굴하고 발표하고. 어린 맘에 참 멋져보였다. 현실적인 아부지 덕분에 꿈은 접어야 했지만.^^ 이 책에 실린 다양한 화보와 그림, 지도 등은 어리 시절 꿈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해준 아주 감사한 자료였다. 이 책.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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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크로마뇽인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라는 카피 문구와, 소설 같은 도입부때문에 첫 장만 읽고 잠시 미뤄 두었던 책이다. 그런데, 한동안 이 분야의 다른 책을을 읽다가 이 책을 다시 보니, 어머나, 저자가 브라이언 페이건 선생 아닌가? 다시 들고 읽기 시작하니,,, 오, 담겨 있는 지식은 물론 풀어나가는 방식이 대단하다. 내가 경솔하고 무식해서 이 책의 진가를 몰라봤던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사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이시다. 이 분의 <세계 선사 문화의 이해>는 대학 전공 교과서 같지만 (그래서 아직 리뷰 못 쓰고 있음 ) <위대한 공존>이나 <크로마뇽>은 술술 읽힌다. 대중적이면서도 깊이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다 빈치 코드 같은 소설식 추적과 추리과정을 보여 주어 갈수록 몰입하게 된다.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지식이 남는다! 멋지다!
내용은 이렇다. 현대인의 직계 조상인 크로마뇽인은 네안데르탈인들과 공존했다. 그런데 그후 네안데르탈인은 자취를 감췄다. 같은 혹독한 환경을 겪으면서 크로마뇽인은 살아 남았다. 그 차이는 기숧혁신과 변화 능력에서 왔다.
속도와 이동성, 지속적인 혁신 계획 그리고 독창성이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근동 지역으로 집단 이주를 하는 동안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할 수 있게 해준 자질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놀라운 속도로 장거리를 이동했다, - 184쪽에서 인용
위와같이 결론을 요약해 놓으니 별 내용 없어 보이지만, 읽어보면 내용이 굉장히 풍부하다. 특히, 이 결론을 증명하는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했다고 보는 이유는 4년 전 이후로는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어 사용했던 방식의 화석 석기가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석기는,,, 그 석기와 크로마뇽인들의 석기 차이는,,, 이런 식으로 저자는 이 분야 문외한인 독자를 구체적으로 이해시켜준다. 대개 세계사 통사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은 만들지 않았던 뼈바늘을 크로마뇽인들은 만들었다', 이 정도만 서술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작은 뼈바늘이 갖는 큰 의미를 다 알려 주고 있다. 바늘이 발견되었다는 건, 그들이 옷을 재봉해서 몸에 맞게 만들어 입었다는 것이고, 추위를 더 효과적으로 막아 거주 지역을 더 넓혀갈 수 있었단 말이고, 환경 변화에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건 단순히 유물 중 하나인 바늘 이야기가 아니라 크로마뇽,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무진장 재미있다. (그런데, 이 분야에 관심없는 사람들은 좀 지겨울 수도 있을 것 같다. )
선사시대 책 보다보면 어느 학자나 다 4만년 전 인류에게 지적인 빅뱅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석기의 혁신은 물론, 동굴 벽화나 조각품들로 보아 인류의 지적 능력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다고들 입을 모은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혁신이 생기게 된 원인을 4만년전 화산 폭발에서 찾는다. 현재 나폴리 근처 캄파니아 화산 대폭발로 4만5천년 전, 유럽의 호모 사피엔스 인구가 줄어들게 되는데, 고작 수백 명에서 수천 명 정도가 고립된 작은 무리로 존재하던 이 시기에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결정적 변화가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라고.
그후 화산폭발과 그 뒤에 이어진 추위가 인간의 활동을 바꾸어 놓았다. 식량 부족과 추위로 인해 다른 무리들과 중대한 사안들을 상의하기 위해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했기 때문에 크로마뇽인들이 더 제한된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생겼다. 고립된 삶이 깨졌고, 지능이 높아지고, 다른 무리와의 연락이 빈번해졌으며, 기술적 혁신이 꽃을 피웠다. 이윽고 기술혁신은 사회적 종교적 삶, 미술과 음악, 냉혹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를 규정하는 복잡한 믿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본문 - 192쪽에서 인용
이 점이 크로마뇽인과 그 시대를 다루는 다른 책들에는 없는 내용이어서 흥미로웠다. 지도도 유물 유적 사진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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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추리소설 <제노사이드; http://blog.yes24.com/document/6589029>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내란으로 어수선한 콩고에 출현한 신인류를 제거하려는 미국정부의 음모를 뛰어난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신인류가 일본의 민간기구를 움직여 저지하고 생존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줄거리입니다. 미국 정부의 이와 같은 음모는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출현. 이 생물이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제노사이드, 11쪽)”는 내용을 담은 정보보고를 토대로 현생인류의 멸망을 우려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현생인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인류가 출현하게 되면 지구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모든 자원을 공유해야 할 것이므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경쟁에서 밀려난 현생인류가 시나브로 멸망의 길로 들어서거나, 더 나쁜 상황을 상정한다면 신인류의 공격을 받아 더 빠르게 멸망하는 수순을 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래상황을 예견한 미국 정부의 고위층은 신인류를 제거한다는 극단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신인류는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관심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이브’가 인류의 조상으로 지목되는 것처럼 가즈아키는 아프리카에 사는 현생인류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신인류가 출현할 것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의 소설 <어느 섬의 가능성; http://blog.yes24.com/document/2267637>에서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하여 현생인류는 순식간에 멸망의 길에 들어서고, 살아남은 소수의 현생인류는 그때까지 쌓은 문명도 같이 사라지면서 동물처럼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우엘벡은 이처럼 황폐해진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신인류가 체세포복제기술을 통하여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견하였습니다. 현생인류의 시선으로 인공으로 조성된 환경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신인류의 삶을 과연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인류가 과연 현생인류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등장했던 구인류를 현생인류가 대체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초기 현생인류는 물론 고인류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면확하게 재구성하는 것 자체가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고고학, 문화인류학, 고기상학, 지질학 등등 다양한 학문영역의 발전에 힘입어 퍼즐놀이를 짜 맞추는 작업에 조금씩 진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의 <크로마뇽>은 바로 네안데르탈인이라고 하는 고인류와 크로마뇽이라고 하는 현생인류가 공존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네안데르탈인은 “강력한 힘과 용기를 가졌으며 가장 단순한 옷차림에 무기를 소지한 원시적인 인류로, 그들은 말로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지적능력에 한계가 있었다.”고 추측하였습니다. 반면 크로마뇽인은 “최초의 해부학적 현대 유럽인으로, 그들은 잘 발달된 뇌와 언어능력, 혁신적인 성향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가진 모든 놀라운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었다.(5쪽)”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관계를 아프리카에서 서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고인류와 관련된 고고학적 흔적이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은 탓으로 보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시조라고 할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6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하여 40만~50만년 전에 서아시아 루트를 타고 유럽으로 이주하였는데, 아마도 기후변화로 인하여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게 된 것이 이유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20만년 전경에는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번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7만년전 무렵에는 첫 현생인류가 역시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였고, 이들은 12~13만년 전의 간빙기 동안에 번성하게 되는데, 7만3천5백년 전에 일어난 토바산의 화산폭발로 많은 인류가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5만5천년전을 기점으로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4만5천년 전무렵에 서유럽에 크로마뇽인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3만년에 걸쳐 이어진 맹추위가 끝난 15만년 전부터 숫자가 늘어나 영국의 남부와 대서양에서부터 벨기에와 프랑스까지,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중앙유럽을 거쳐 흑해의 먼 동쪽에서부터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또는 그 너머 중앙아시아 깊숙한 곳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른 방대한 지역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만 9천년 전에는 이탈리아의 캄파니아 화산이 폭발하여 역시 많은 생명체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3만년전 무렵부터 네안데르탈인이 멸종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공존한 시기는 4만5천년 전부터 약 1만 5천년 이상이 되는데 그들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저자는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크로마뇽인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을 바로 공격하여 학살했거나 그들의 사냥터를 빼앗고 외각으로 내쫓아 서서히 멸망으로 내몰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저자가 상상하는 것처럼 두 집단이 서로 거래를 하고 사냥법을 비롯한 기술,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결혼까지 했을까요?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에서 식인풍습을 증거하는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크로마뇽유적에서는 식인풍습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크로마뇽인들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도구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고 있는 반면에 네안데르탈인은 그들이 생존했던 오랜 세월을 두고 기술의 발전을 시사하는 증거가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또한 그들 간에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발전된 언어가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인류는 영장류로부터 한 단계 발전하여 도구와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만, 현생인류처럼 이런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인지능력은 갖추어지지 못한 존재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용한 사람들인 네안데르탈인들은 일상에서 놀랍도록 인간다운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인류가 수십만 년 전 유럽에서 사냥하던 때부터 거의 변한 것이 없는 원시적인 방식을 따랐다. 그들은 짐승을 사냥했고, 그들의 사냥감과 동일한 환경적 영향을 받았으며, 때때로 포식자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그들이 목가적인 평화로운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131쪽)”
저자는 현생인류가 고인류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공격적이었을 가능성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원활용에 있어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점과 현생인류가 고인류에 비하여 유리한 입장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대인류와 현생인류는 대부분 비슷한 사냥감을 사냥했는데 현생인류가 사용하는 무기가 더 가볍고 관통력도 더 좋았다. (…) 이 두 인류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오리냐크기 사람들에게는 완전한 표현이 가능한 언어능력이 있었고 호모 사피엔스가 가지는 모든 인지능력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몸이 구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의사소통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현생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상상력과 자아인식능력이 부족했다.(206쪽)”
저자는 엄청난 규모의 화산폭발에 따르는 환경재앙으로 식량이 급감하여 생존환경이 급변하였을 뿐 아니라 이어서 닥친 극심한 한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복제작기술의 차이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생존가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인류학의 연구성과를 깊이 이해하지는 못합니다만, 고인류가 갑자기 닥친 환경변화를 고스란히 앉아서 당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생존에 관한 생물체의 반응은 본능적인 것이라 할 수 있어, 사냥감이 부족하면 사냥감을 따라, 추위가 닥치면 따듯한 남쪽으로 이주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 말입니다. 저자는 지나치게 유럽이라는 제한된 장소에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을 집어넣고 생존에 관한 문제를 풀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 출현했던 아프리카에 남아있던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유럽 이외에 서남아시아를 경유해서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은 없었겠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현생인류가 급속하게 많아지면서 생활영역이 확대됨에 따라서 지구상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멸종되는 과정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인류의 쇠망 역시 이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수적으로 우세하던 구인류가 현생인류에게 밀리게 되는 과정에는 두 인류의 능력의 차이에 더하여 기후변화도 기여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생인류에 의한 제노사이드가 커다란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배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노사이드는 다양한 이유로 지구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념, 종교 문제로도 제노사이드가 벌어지고 있는데, 생존에 관련된 자원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치열하게 대립하였을 것 같습니다. 태즈메니아 원주민이 멸망하는 과정을 통하여 현생인류의 제노사이드 성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교수의 <제3의 침팬지>에서 인간에 숨어 있는 제노사이드 본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교수는 “인간의 모든 본성 중에서도 동물의 선조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제노사이드 본성이다.”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크로마뇽인의 유적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먹었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크로마뇽인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집단학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포리스터 카터의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 http://blog.yes24.com/document/2281298>에서는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일찍이 터득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현명한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란 말이지...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이런 지혜는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동물세계의 포식자들이 허기를 느낄 때만 필요한 만큼 사냥에 나서는 것을 보고 배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크로마뇽인들은 필요한 만큼만 사냥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냥감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기 때문에 사냥과정에서 수확을 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냥과정에서 부상을 당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이상의 동물을 죽이기 위하여 사냥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비용효과적이었겠는가 싶습니다. “매년 사냥꾼들은 짧은 마구잡이식 살육기간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했다. (…) 많은 들에서 마치 사냥꾼들이 즉석에서 바로 먹거나 말릴 수 있는 부위만 취한 다음에 수십 마리의 죽은 말들을 그냥 석게 버려둔 것처럼, 돌칼을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336쪽)”
브라이언 페이건교수의 <크로마뇽>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인류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가늠할 수 있고 도판으로 소개하고 있는 현생인류의 초기 예술작품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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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처음의 조상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난다. 언어도 생겨나지 않은 그 시대에 몸짓으로 혹은, 이상한 의식을 행하며 단순하게 살았을 것 같은 먼 조상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의 우리 지구는 지금과는 다른 기후를 가졌을 것이고 매우 추운 겨울이 유난히 길었을 것이다. 그 추위를 피할 방법을 충분히 알아냈을까? 그리고 새로운 능력들과 식량을 비축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크로마뇽인의 시대에는 지혜를 가진 인간스럽기 보다는 훨씬 동물에 가깝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노리는 다른 포식자들로부터 당당하게 살아남는 법을 익힌다. 이 책은 크로마뇽인의 모습을 영상을 보는 것처럼 읽을 수 있어서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었다. 이어서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의 세계에 대해 들려주었다.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는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이 최초의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이 번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이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면도만 한다면 뉴욕에서 지하철을 탄다고 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 것이다”고 자자는 말한다. 그 만큼 현생인류와 근접하게 닮은꼴이 네안데르탈인이다. 그에 비해 네안데르탈인을 ‘조용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것은 그들이 덩치는 큰데 조심스럽고, 후기 빙하기의 나무 사이에서 그림자처럼 지냈다는 표현에서 그들이 얼마나 긴강감을 갖고 생활하였는지 느낄 수가 있었다. 크로마뇽인에 대한 내용 중 사자인간에 대해 나온다. 오리냐크기의 사회에 대해 말하는데 주술적이고 초자연적인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크로마뇽인이 매머드의 뿔을 깎아 만들었다는 사자인간을 보면 그들의 상상 속을 같이 거닐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동굴 벽화라든가. 미술책에서 보았음직한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상은 지금의 사람들 신체와 비교해 보면 그 모습이 조금 우스꽝 스럽다. 이렇듯 지금의 현생 인류가 되기까지의 조상들을 이 책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지만, 저자의 재치 있는 글이 훨씬 즐거운 조상을 상상하게 하였다. 이 책은 아프리카의 기후, 환경, 동물의 생존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마치 소설 속의 배경처럼 설명하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그 곳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 그들의 예술인 벽화라든가 조각들을 보면서 인간의 창의력이 어떤 적응력을 갖고 발달해 왔는지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때도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 사람도 적응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발달을 거듭해 왔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세상은 급속하게 변하고 있고 우리는 변화에 발맞추어 크로마뇽인의 후손답게 잘 살아가고 있다. |
![]() 이 책은 최초의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에 대한 교양서다. 프랑스 남서쪽에서 크로마뇽인의 유골이 발견된 이후, 축적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그들의 삶과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인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는 학술서와 교양서 모두를 쓸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사람 중 하나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최근 저작은 대중들을 위한 쉽고 간결한 교양서에 집중되어 있다. The Little Ice Age(번역서 :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와 같은 교양서나, Archaeology : a brief introduction(번역서 : 고고학 세계로의 초대)와 같은 교과서처럼. 후자는 경북대 고고학과 이희준 교수님에 의해서 번역되고 있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위 책들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브라이언 페이건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작은 감상을 남기자면, 비교적 쉽지만 자기계발서처럼 떠먹여주는 책은 아니다. 특히, 고고학이 다루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면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심있는 이들에겐 추천한다. 이 분야의 책들이 대개 어렵거나 고리타분하거나,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책들은 그저 단순하게 지식을 나열하여 읽기는 편하지만, 남는게 없는 잡학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브라이언 페이건의 책이 귀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크로마뇽인에 집중하고 있다. 보통 역사 교과서에서는 1줄로 설명이 끝나거나, 길어야 1단락정도를 할애하는 대상을 400p가 넘게 설명하고 있다. 12개의 챕터제목을 보면, 책의 내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과의 접촉/환경에의 대응법/겨울잠/식인풍습까지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이야기 , 최초의 인류(이브)/이동/종교와 상징/겨울나기(의복 등)/무기/사냥기술/예술/온난화와 농경사회 등의 이야기가 있다. 문장은 간결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크로마뇽인은 현대 인류와 생김새가 상당히 흡사한 인간이다. 이 명칭의 기원은 1868년 프랑스 남서쪽에 위치한 레제지(Les Eyzies)라는 조용한 마을에 철로가 놓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역을 짓기 위해 토지 정지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바위 근처에서 완전히 파묻혀 있던 작은 석굴과 석기,동물 뼈를 발견했는데 이 바위의 이름이 '거대한 구멍'이라는 뜻의 크로마뇽이었다. 26p 학술적 글쓰기에서 복잡한 개념들과, 산만한 인용을 제거해서 논리를 간략화한 글을 떠올리면 된다. 저자는 이것을 '문학적'인 글쓰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책을 주욱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루했다. 책의 내용이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변주하는 것에 그친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가지는 문화적 거부감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대개 고고학과 관계가 좋지 않은데,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천지창조'와의 충돌 때문이다. 양의 관계는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멀다. 어쨋든, 이것은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낸 사람들이라면, 고고학 분야의 탐독가가 될 재능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이들에겐,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의 다른 책들을 추천한다. 국내에도 남경태 등이 번역한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책을 다 읽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솔직히 교양서치고는 조금 어렵다. 이런 저런 연구등을 소개하는 전문적 내용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그냥 스킵하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고고학 서적이 대개 그러하지만, 이 책도 과거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별 재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던, 브라이언 페이건의 신작이 바로 번역된 건 기쁜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전문적이면서 쉬운 책이 자주 번역되길 바라며, 잡문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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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추울 거라 하였다. 지난여름, 더위 탓에 잠 못 이루던 밤이 생각난다. 요동치는 날씨에 적응에는 누구나 애를 먹었을 터. 인간이 지구에 범한 누가 부메랑이 되어 지금의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숨이 막힌다. 지금의 변호는 인위적이다. 하지만 손가락, 발가락을 모조리 사용해도 헤아릴 수 없는 엉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도 변화와의 만남은 가능하다. 당시의 인류는 가진 힘이 미약했고, 자연 위에 주인인 양 군림하기 보다는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것들 중 대다수가 불과 몇 십 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거슬러 올라감의 거의 한계점에 도달할 무렵이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진리와 만나게 된다. 생김새는 우리와 흡사한데, 아니 거의 같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그들이 향유한 건 그리 많지 않았다. 풍성하다 못해 넘치는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 시절에 태어난 이들의 삶은 아직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끊임없이 먹을거리를 찾아 이동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식량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이 추위를 피해 움직였으니, 자연에 의존적인 인간에게도 달리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현생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크로마뇽인은 그 치열한 변화로부터 살아남았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행운을 모두가 누린 것은 아니었다. ‘네안데르탈인’이라 명명된 집단은 생의 마지막 단계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야 말았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네안데르탈인과 만난다거나 크로마뇽인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경험을 했을 리 없다. 따라서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뛰어난 상상력에 기대어 서술 되었을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갔던 대목은 바로 책의 도입부였다. 과거의 일정 시점까지 우리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서로 다른 시대에, 동떨어진 장소에서 생활했으리라고 믿었다. 그 둘이 서로의 존재를 알았을 리 없다는 식의 가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둘의 공존에 대해 언급한다. 상대 집단을 위협적이라고 여겼을까? 생김새가 다른 만큼 친근감을 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상대를 해치는 모험을 감행했거나. 어느 쪽이 좀더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집단이 공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부분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서술 역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낳았다. 언어를 전혀 구사치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인육을 먹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언제나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법이고, 역사의 선택을 받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서술은 다소 관대치 못할 수도 있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은 생존을 위한 진보를 이룩해냈다. 투박했을지라도 그들은 분명 도구를 사용했고, 사냥의 과정에서 협력할 줄도 알았다. 하나의 생 단위로 이를 바라본다면 무기력하기 짝이 없어 보이겠지만, 경험은 세대를 거듭하며 매끈하게 다듬어졌고 후대의 생존을 가능케 해주었다. 그렇기에 직접적인 인류의 조상으로 여겨지지 않을지라도, 네안데르탈인의 살아가는 방식 역시 오늘날 인류의 생존에 어느 정도는 공헌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가 이야기했듯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이 알게 모르게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갔다면 말이다. 현대의 시각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바늘이 빙하기 인간의 체온을 유지케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었고, 다시금 따스해진 날씨는 유랑하던 인류를 특정 장소에 머물도록 만들면서 농경의 시작을 촉진시켰다. 무한할 것만 같아 보이는 인간의 능력도 알고 보면 지극히 미약한 수준이면서도 동시에 스스로의 발에 떨어진 불똥 정도는 꺼트릴 수 있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능력을 맹신하며 오만하게 굴지 않을 정도만의 능력을 신이 혹시 우리에게 허락한 것은 아닐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신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과거 못지않게 모든 게 불확실한 오늘날이다. 오래전 인류가 그래왔듯 오늘날의 인류 역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운명을 떠안을지, 아니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크로마뇽인의 편에 서게 될지, 현재의 시선에서는 어떠한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한다. 도박과도 같은 생, 그래서 인류가 아직도 삶에 질리지 않은 것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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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몇몇 종교인들이 난리다. 시조새와 관련된 글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라고 들고 일어선 것이다. 창조론에 근거한 그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는 않지만 현재 밝혀진 과학적인 근거를 뒤집으려는 그들의 과학적인 논리는 무엇일까 좀 궁금해지기는 하다. 그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시조새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인류의 탄생에 대해서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고고학자도 과학자도 아니니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크로마뇽인에 대한 이야기나 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