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간 틈나는 대로 복거일의 『소수를 위한 변명』을 읽었다. 아마 출판해인 1997년 이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게제된 글을 모은 책일 것이고, 그런 글들이 시사時事적인 부분과 관련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현재적으로도 꽤나 중요한 글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각각 독립된 글들이라 중복되는 부분도 얼마간 있었지만 책 전체를 꿰뚫는 생각은 자유주의와 합리성이었다. 모든 분야를 경제적 자유주의와 합리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일관성이 있고, 끌리기까지 했다. 교장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문제가 되어 기간제 교사가 피해자인 것이 분명한 사건임에도 죽음 앞에서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사회를 보면서 많이 답답해져 있던 터라 그런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화는 더 잘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거부감이 드는 측면도 있었다. 교육도 수능점수를 토대로한 배급제에서 완전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나, 대통령 후보로 외국인은 어떤가 하는 의견들은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부분이다. 사회의 구성원들을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인으로만 구분짓는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나쁜 면도 있었다. 아마 그의 '영어공용어화'는 그런 의미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어를 배우는데 엄청난 비용이 듦에도 그것이 국제사회에서의 통용율은 거의 0%에 가까운 상황이니 경제적인 측면만 생각하면 그것은 낭비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거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인 사고인 이상 비판할 수는 있지만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선택은 그가 제목으로 내세운 '소수'를 배제하기 쉽다는 생각은 든다. 어떤 재화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만 소비된다는 것은 그 재화가 효율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재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때문에 수익성만을 가지고 그것을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는 그렇다면 그 수요가 적은 재화는 가격을 올리면 된다고 시장의 논리를 말하겠지만, 생필품이 아닌 이상 그 재화가 가격탄력성이 적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치나 사회준거에 관계된 글들은 무척 재미있게, 탄복하면서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경제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지루하긴 했다. 그것은 내가 경제에 무관심하다기보다는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복거일의 『소수를 위한 변명』은 약간의 거부감을 인정하고서라도 좋은 책이고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하고 싶다. |
|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통하는 그지만. 제목 선택에서부터 벌써 비겁한 자세를 보인다. 소수를 위한 변명? 처음에 그의 성향을 모르고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우리 사회의 약자, 고통 받는 소수들을 위해 쓴 글이겠거니 예상했다. 물론 나의 이런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가 버렸다. 그가 옹호하고자 하는 '소수'는 보통 사람들이 의미하는 '소수'가 아니다. 여성, 장애인, 우리가 아는 모든 비주류를 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소수'는 소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개개인', 더 나아가 이 나라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저자가 믿어 마지 않는 기업 소유주, 경영자다. |
| 복거일. 그 독특한 이름만 무성히 들어보았을 뿐, 그의 글들을 읽어본 적이 없는지라 '한번 읽어봐야지'하고, 약간은 의무감까지를 지니고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먼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글모음집은 평소의 내 생각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멋진 책이었다. 해박한 지식에 바탕을 둔 예의 날카로운 통찰은 차지하더라도, 그의 색다른 시선이 때때로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는 점만은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사람, 굉장한 자유의 신봉자구나'였다. 이 글모음집에서는 자유주의 -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 양자를 다 포괄하는 - 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함께, 그것으로의 대안 제시가 일관되게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때로 갸우뚱거리기도 하며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제목이 왜 '소수를 위한 변명'인지를 알 수 있다. 교육이 공공재가 아니라고 하는 얘기, 수도와 전력 사업이 민영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들-. 얼핏 딴지 걸기로도 보이는 그의 이런 의견들이 소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길은, 그의 획일화되지 않은 다양성에의 존중부터 생각하는 것일게다. 소수의 다양성이 어떠한 획일적 가치와 관념 아래 희생당하지 않는 사회, 또 그것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함부로 '우리'라는 다수의 희망사항으로 환원되는 것에 대한 경계-. 그러한 점만으로도 그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라, 나는 평한다. |
| 소설가이자 지식이 세계의 이단아 같아 보이는 복거일.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가 그의 명작 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 원류를 찾는 의미가 있다면 이 작고 아담한 책 [소수를 위한 변명]은 마치 지식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하는 일부 소수에 대한 비판과 같은 이미지를 받게 된다. 그만의 새로운 독설과 그만의 언어는 문학계와 지식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삐딱한 지식에 대한 딴지 걸기는 지식과 해당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런 논의의 관심은 우리 생활과 사회 일반에 대한 사항에 대한 문제제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쓰레기 종량제 문제부터 금융개혁의 문제게 다다르는 크고 작은 부분의 사회문제에 논의의 제시를 통해 문제 제시를 통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복거일 식의 관심사를 만들어 낸다. 책의 크기는 작지만, 그 내용만큼은 결코 작지 않은 이 책은 복거일 문체의 맛을 변함없이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