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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 시오노 나나미 <김석희 옮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일본 출신으로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는 1992년에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15년 동안 매년 한 권씩 집필하여 2006년 마침내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으로 끝을 냈다. 제1권인 이 책에서는 로마 건국부터 시작하여 제1차 포에니 전쟁 직전까지의 500년을 다루고 있다.
시작은 튀르키예(터키)의 트로이 전쟁에서부터이다. 트로이가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그리스 군에게 함락당했을 때 유일하게 탈출했던 트로이 왕의 사위인 아이네아스(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인간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가 신들이 이끄는 대로 이탈리아 서해안을 북상하여 로마 근처의 해안에 이르렀다. 그 땅의 왕이 아이네아스에게 반하여 딸을 아내로 주어 정착을 하기 시작했고 아이네스가 죽은 뒤에는 그와 함께 탈출한 아들 아스카니오스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스카니오스는 3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알바롱가라고 이름 지은 새 도시를 건설했다. 이것이 뒷날 로마의 모체가 된 도시였다.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한 것은 로물루스이고, 그 로물루스는 트로이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네아스의 자손이라고 로마인들은 믿었다. 여러 해가 지났고 전해져 오는 전설에 의하면 알바롱가의 왕이 죽자 동생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조카인 왕녀를 처녀인 채 신을 섬기는 무녀로 만들어 버렸다. 왕녀가 아들을 낳으면 숙부가 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왕녀한테 전쟁의 신 마르스가 한눈에 반하여 왕녀가 잠든 사이에 사랑을 나누었고 이리하여 쌍둥이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쌍둥이가 로물루스와 레무스이다. 숙부는 격분하여 왕녀는 감옥에 가두고 쌍둥이는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 강에 버렸다. 마침내 지나던 늑대가 바구니 안에서 나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두 아기에게 젖을 물려 굶주림에서 구해주었고 그 후 양치기가 쌍둥이를 발견하여 길렀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성장하여 그 일대의 양치기들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형제는 자신들의 출생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형제는 부하들을 이끌고 알바롱가로 쳐들어가 왕(숙부)를 죽이고 그들이 자란 테베레강 하류에 도시를 세우기로 했다. 공동의 적을 무너뜨린 뒤, 누가 왕이 될 것인지 결정하기 어려웠고 둘은 사이가 나빠졌다. 형제는 분할통치를 하기로 했지만 세력권의 경계를 넘어온 레무스를 로물루스는 죽였다. 기원전 753년 4월. 로물루스는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715년 로물루스가 갑자기 사라지고(암살 가능성) 제2대 왕으로 누마가 즉위했다. 누마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 같은 사람이었고 시민들의 삼고초려로 왕이 된 것이다. 누마는 윤리 도덕과 질서 확립에 힘을 썼고 정치를 신(종교)와 연관시키지 않았다. 남의 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남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누마는 43년 동안 평화롭게 통치를 했다. 제3대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공격형이었다. 전쟁을 하여 영토를 확장했고 적의 주민들은 노예가 아닌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주었으며 군사력을 늘렸다. 툴루스는 32년 동안 통치를 했다. 제4대 왕 안쿠스 마르티우스는 평화적인 왕 누마의 외손자였다. 그는 외할아버지처럼 평화적인 왕은 아니었지만 소금이 생산되는 오스티아를 정복함으로써 경제력을 확보했다. 타국에서 입주한 이방인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로마인 사회로 들어와 재력과 능력으로 안쿠스 왕의 유언 집행자로 지명될 만큼 출세를 했다. 타르퀴니우스는 왕이 죽자 스스로 입후보를 했고 왕이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최초로 한 로마인이기도 했다. 안쿠스 는 25년 동안 통치를 했다.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로마의 세력권을 더욱 확장시켰고 간척 사업으로 언덕에 자리 잡은 도시들이 왕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로마는 하나로 통합되고 있었다. 37년의 통치를 하면서 참으로 유능한 왕임을 보여 주었다. 타르퀴니스우스 왕이 우연히 출신이 확실하지 않은 한 소년(세르비우스)를 만났는데 이 소년이 마음에 들어 친아들과 함께 키웠고 타르퀴니우스는 세르비우스를 사위로 삼았다. 후계자의 자리를 노리고 있던 두 아들은 아버지가 사위를 후계자로 결정할까 봐 아버지를 암살을 하였다. 타르퀴니스의 아내가 남편의 변고를 알자마자 세르비우스를 불러 재빨리 왕위를 차지하라고 권하여 세르비우스는 제6대 왕이 되었다. 제6대 왕이 된 세르비우스는 선왕 타르퀴니우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고 선왕이 착수한 사업을 마무리 짓고 로마 전체를 지키는 성벽을 완성했다. 전투력을 파악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했고 병법을 확립했다. 세르비우스는 44년 동안 통치를 했다. 제7대 왕이 된 타르퀴니우스는 세르비우스의 조카이자 사위였는데 아내와 합작하여 세르비우스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독재적 전제군주 타르퀴니우스는 군사적 재능은 뛰어났다. 하지만 아들 섹스투스가 친구(콜라티누스)의 아내(루크레티아)를 겁탈하는 일이 벌어졌고 루크레티아는 섹스투스의 복수를 부탁하고 자결을 하였다. 이때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콜라티누스의 친구였데 루크레티아의 유해를 '포로 로마노'의 연설대 위에 안치하고 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타르퀴니스 왕이 선왕 세르비아를 죽이고 왕위를 뺏은 자임을 상기시켰다. 그러고는 왕과 그의 일가를 로마에서 추방하자고 제안했다.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선동을 시작으로 타르퀴니우스의 통치는 25만에 끝이 났고 로마 왕정도 끝이 났다. 로물루스가 건국한 기원전 753년부터 244년째인 기원전 509년의 일이었다. 그 후 로마는 공화정 시대로 들어갔다. 사적인 추문을 교묘히 이용하여 왕정 타도로까지 끌고 간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로마 공화국의 창시자가 되었다. 종신제인 왕의 시대가 끝나고 임기가 1년밖에 안 되는 2명의 집정관이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집정관은 재선이 가능했고 위급할 때는 독재관을 뽑아 독단적으로 위기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 기간은 6개월이었다. 로마는 해마다 선거를 통해 뽑히는 자들에 의해 다스려졌고 개인보다는 법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 왕정시대에도 왕을 민회에서 선출했으며 공화정으로 이행한 뒤에도 원로원을 비롯한 각종 공직은 선거제도를 통해 구성되었다. 초대 집정관으로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자결한 루크레티아의 남편 콜라티누스가 선출되었다. 왕정복고를 결의하는 국가반역죄로 고발된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두 명은 브루투스의 아들이었다. 브루투스는 냉정하게 사형으로 처리를 하면서 신뢰를 얻은 반면, 눈물을 보인 콜라티누스는 이 사건으로 집정관에서 물러났고 이웃 나라로 망명을 하였다. 공석이 된 집정관 자리에는 발레리우스가 선출되었다. 왕위를 복귀하겠다는 야심을 포기하지 않은 타르퀴니우스는 맏아들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이 싸움에서 브루투스는 죽는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기에 생겨난 여러 가지 문제는 조금씩 해결되었지만 주변 부족들과는 계속 싸워야 했다. 기원전 390년 켈트족의 로마 점령으로 위기를 겪었지만 현명한 독재관과 집정관들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패배하면 반드시 무언가를 배웠고 그것을 개량하여 다시 일어서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켈트족에게 패배했지만 잘 모면했고 이후 로마는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귀족과 평민의 차별을 없애 평민들도 능력이 있으면 등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전쟁의 패자들을 동화시켜 시민권을 주어 군사력을 키웠다. 신생 로마는 북쪽으로는 에트루이아인들을 상대하고 남쪽으로는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을 하나씩 제패하면서 동맹국을 만들면서 세력권을 넓혀나갔다. 기원전 270년 무렵 로마는 북쪽으로는 루비콘 강에서 남쪽으로는 메시나 해협에 이르는 이탈리아반도의 통일을 완성했다. 기원전 753년 건국 이후 500년의 시간이 걸렸다. 지성에서는 르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으로는 카르타고 인보다 뒤떨어진 로마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들만이 번영할 수 있고 마침내 지중해 세계의 패자(覇者)가 되어 천 년 제국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집정관 제도를 통해 왕정의 장점을 살렸고 점령 부족에 대해서는 시민권을 개방하고 그 대표자를 원로원에 흡수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에 성공했다. 종교 생활에서도 그들은 신을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인간을 수호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로 받아들였다. 로마의 정신은 오픈 마인드였고 포용력으로 적국의 시민들을 품었고 종교적인 이념이 없었기에 가능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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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저자는 일본 출신 현재 이탈리아 거주중인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대하 역사평설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작가의 비평과 해설을 동시에 진행한 로마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처럼 재미 있고 수필처럼 써 내려간 문체로 이 책을 한번 읽게 되면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마력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로마인 이야기 제 1권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에서는 B.C. 753년의 건국으로부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B.C. 270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로마인들이 나라의 초석을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그 조그만 땅에서 점점 영토를 확장해 가는 과정과 그 결과 늘어나는 인구를 어떻게 수용해 가는지, 또 그 정치기구 확립과정을 통해 결국 대로마 문명권을 어떻게 이루어나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제1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출간된 것은 1992년, 이후 2005년까지 해마다 한권씩 발표 전 15권으로 완결되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릐 작품을 발표한 대작가로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대형 서점이 그의 작품들을 따로 모은 특별 코너를 마련해 놓고 있으며, 그의 책들은 발간 되는 날 곧 바로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를 정도다
이 작품의 장르적 성격을 역사평설이라고 표현했다. 이 작품은 사료에 바탕을 두었으되 역사적 기술로부터 벗어나 있고, 사료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발휘 했으되 픽션에 빠지지도 않았다. 역사는 역사이되 소설같은 역사? 이 독특한 형식의 저작물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
작가는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입장에서 접근방식을 찾고 있다. 작가의 입장에서 서면, 왜 로마를 쓰는가, 작가는 묻고 있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안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진 로마인 이었음에도, 왜 그들만이 번영하고, 마침내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되어 천년 제국을 경영할 수 이었는가. 로마인 이야기는 이 같은 의문을 풀어 나가는 시오노 나나미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내세운 가설이 바로 우리가 오늘 로마를 다시 읽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로마가 융성한 원인은 그들의 윤리나 정신보다 법과 제도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로마는 왕정 시대에도 왕을 민회에서 선출했으며, 공화정으로 이행한 뒤에도 원로원을 비롯한 각급 공직은 선거제도를 통해 구성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점령 부족에 대해서는 시민권을 개방하고 그 대표자를 원로원에 흡수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에 성공했다. 또한 종교 생활에서도 그들은 다신교 체제를 택함으로써, 신들을 인간위에 군림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인간을 수호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로 받아 들였다.
이처럼 로마 융성의 원천은 추상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한 데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이오노의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제국의 유적이 아니라 제도와 개방성을 통한 사회질서 확립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종교적 자의성과 이념적 횡포와 민족적 배타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그 배후에는 아마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이방인이자 이교도로 살면서 경험한 문화적 충격이 작용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로마 해석은 신선한 즐거움이고, 로마인의 후예인 동시에 로마를 멸망시킨 기독교 신앙의 주체인 유럽인들로서는 좀처럼 찾아내기 힘든 발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로마인 이야기는 작가의 비평과 해설을 동시에 진행한 로마사라고 할 수 있는 역사평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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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이 1992년에 발간되고, 이후 매년 한 권씩, 총15권에 이르는 로마인 이야기는 2006년에 그 시리즈의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이 로마 역사 평설은 2002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국가훈장을 수여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다. 1권에서는 로마의 건국부터 제1차 포에니 전쟁 직전까지 500여년에 걸친 로마 정치인들과 그 정치 체제, 주변국들의 상황 들에 대해 술술 이야기하듯 전개해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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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본 도서를 완독하고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평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구매 후 리뷰를 참고해주세요.또한, 작중 배경과 설정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 및 지명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종이책으로 다 소장하고 있는데 편하게 이동증에도 보고싶어서 이북으로 재구입했습니다 시오나나미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많이 엇갈리는 걸로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로마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쯤은 모두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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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길사 출판사에서 2022년 10월에 출간된 시오노 나나미 작가님의 로마인 이야기 01권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부득이하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니 읽기 전에 이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에 종이책으로 읽고 다시 읽고 싶어 전자책 출간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출간이 되었네요. 로마 역사소설로 이러저러한 비평을 많이 듣는 책이지만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다음권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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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기원전 8세기께 로마 건국기에서부터 멸망까지 1천여 년에 이르는 로마사의 교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안목과 손에 잡힐 듯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90년대 역사 분야의 최고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연대기적 역사서술방식을 피하고 로마의 흥망사를 이야기하듯 풀어썼다. |
| 역시 명작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거 같아요~!! 투자공부하다가 서재형님의 추천으로 다시 읽기시작했는데...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오네요. 시간이 지나 저의 딸들이 읽어도 좋을거 같아요. 진리와 인간의 욕망과 군상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거 같아요. 투자아이디어를 위해서든, 재미를 위해서든 그 어떤 목적으로든 읽어도 좋을거 같습니다. 남녀노소 좌파우파 모두에게 강력추천~!! |
| 역시 명작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거 같아요~!! 투자공부하다가 서재형님의 추천으로 다시 읽기시작했는데...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오네요. 시간이 지나 저의 딸들이 읽어도 좋을거 같아요. 진리와 인간의 욕망과 군상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거 같아요. 투자아이디어를 위해서든, 재미를 위해서든 그 어떤 목적으로든 읽어도 좋을거 같습니다. 남녀노소 좌파우파 모두에게 강력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