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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타계 50주년을 기념하여 펴 낸 평전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로 파악하면, 이 책은 한 사람의 인간적인 평가와 함께 역사성을 조감한다는 무게감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런 훌륭한 시인을 나는 솔직히 이 책을 읽어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다만, 언제 누구에게 들었는지도 확실치 않지만 ‘껍데기는 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시인을 이렇게 총평했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만주사변 1년 전이기도 하다. 그는 태평양 전쟁 때 배고픈 학생 시절을 보내고, 한국전쟁 때는 군인의 신분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지루한 식민지 시 절과 두 번의 전쟁, 혁명을 겪으면서 그는 역사의 흉측한 내장을 들여다보았다. 시인 신동엽은 세계사의 거센 파도와 곡절 많은 현대사 속에서 역사적 존재로 거듭났다(10페이지)’
저자는 시인의 부친과 아내로부터 잘 보관된 시인의 귀한 자료를 받아서 이 책을 정리했습니다. 시인의 초등학교 때 반장 임명장이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등의 사진까지 꼼꼼하게 이 책에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또 시인이 대학교 1학년 때 직접 작성한 강의안을 보면, 시인의 꼼꼼한 성격이나 학구열 등을 엿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문학 뿐 아니라 고고학이나 법률학, 경제학 등을 수학한 것을 보면, 시인의 관심의 스펙트럼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선재가 하는 책방 일을 돕고 있을 때, 이화 여고생인 부인이 철학에 관한 책을 사러 책방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운명적인 만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실례로, 그의 작품, [금강]에 나오는 인진아가 바로 사랑하는 아내가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주고받은 친필 편지나 소소한 일상의 사진들까지 두 사람의 따스한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훈훈한 글들이 진한 감동을 줍니다.
시인은 등산을 참 좋아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과 나들이를 좋아하는 가정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짧은 시, 긴 서사시, 극시, 오페라까지 다방면의 실험적인 예술가였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9살이라는 짧은 나이에 타계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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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세대라면 신동엽 시인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텐데 요즘 대학생 중에 신동엽 시인의 시를 읽어본 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세상에 따라 문학도 변하고 관심에 따라서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세상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동엽 시인의 시에대해서 알고 있는 거라곤 그의 유명한 작품 <껍데기는 가라> 와 장편 대서사시 <금강>이라는 작품 정도이다. 더구나 <금강>이라는 작품은 시집을 만지작 거렸지 제대로 완독을 해보지 않은 터라 그의 작품도 제대로 안 읽고 그의 평전을 읽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전을 읽고 그의 생애를 조금씩 알면서 그의 시가 무엇을 담고자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신동엽 시인의 작품만 읽었지 그의 사진을 이렇게 많이 만날 줄은 몰랐다. 39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그의 인생을 어느만큼이나 엿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에 대한 자료가 상당히 많이 실려있었다. 그이 어린 시절 사진이나 연애사진은 물론 어린시절의 성적표까지 담겨 있을 줄이야. 단국대학교를 나와서 명성여고의 교사로 재직한 이력까지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에게도 불같은 사랑은 있었다. 그의 부인 인병선을 그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작품의 뮤즈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경이나 <금강>의 여주인공 역시 그의 부인이 모델이었다고 하니 그의 사랑과 믿음은 각별했나 보다. 그의 부인과 나눴던 편지 역시 함께 엿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때 긴급조치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신동엽 시 전집>은 판매금지가 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 갈래를 볼 때 참여시로 분류하고 우리는 어딘지 참여시라고 하면 선동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삶의 현장을 담고 침묵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지가 강한 시어로 탄생한 것 같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우리가 사는 시대에 진정한 알맹이가 무엇인가 문든 생각해보게 된다.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삶과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그의 작품의 절정은 역시 <금강>이라는 작품이라고 평한다. 동학운동을 담고 있는 26장 4800행의 대작이라고 한다. 부분적으로 접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신동엽의 <금강>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금강>은 가극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환호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지금 시대에서 이런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거 같다. 신동엽 시인의 가족은 그의 생가와 작품집을 모두 부여군에 기증하고 지금은 신동엽 문학관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한번쯤 들러보면 좋겠다.
작가의 작품과 그의 삶이 일치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시대에도 그런 일을 적잖이 겪는 요즘이다. 문학가의 삶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평전을 통해서 생을 엿보는 것은 작가의 문학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번 기회에 신동엽 시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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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요즘, 신동엽 평전 [좋은 언어로]를 펼치며 감사한 요즘을 보냈다. 시를 전공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만나보았던 신동엽 시인의 시는 종종 학습적인 부분으로 다가가야했기에 무언가 자꾸 찾으려 애쓰고 익히려 애썼기 때문이다.
부여에서 신동엽 시인의 시비를 보며 그의 발자취를 하나 둘 찾으며 참 설레고 좋았던 기억이 스르르 스쳐갔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책장마다 차오르는 햇살이 좋아서 두고두고 책장을 쓰다듬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너무 좋았다. 옆에 오래 두고 펼치고 싶은 책이 또 한 권 생겨서, 책 한 권에 그의 일생이 그의 삶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에 아이처럼 신났다.
문학을 좋아하고, 그 중 시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 책을 꼭 보았으면 좋겠다. 시를 시로써만 대할 것이 아니라, 시 한 편에 담긴 시인의 생을 생각해보고 한 행 한 행에 담긴 그 시대를 떠올려보면서 발자취를 느껴보면서 좋은 언어를 꿈꾼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들이 [좋은 언어로] 가득 차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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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이 좀 더 오래 교사생활을 했으면 어땠을까. 비록 "겨우 교사가 됐느냐"며 시인의 아버지는 섭섭했다고 하지만, 그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학생들과 시간을 좀 더 보냈더라면 부여를 대표하는 시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꿈을 꾸면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가다보이면 꿈을 놓지 않게 된다고 한다. 아픔이 지속되는 그 순간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시인처럼, 나도 어느 한 순간에도 글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음 부여 여행 때에는 [좋은 언어로]를 품고 떠나야겠다. 시비 옆에 놓아두고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생각만으로도 벅차오른다. 많은 이들이 그의 숨결을 이 책을 통해 느꼈으면 좋겠다.
**문화충전200% 소개로 책을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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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앞에 인용한 시 구절은 1989년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신동엽의 시 ‘산에 언덕에’의 일부입니다. ‘껍데기는 가라’나 ‘금강’ 등의 시로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신동엽이 이제는 사실상 제도권 시인으로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시인이 되는 시대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시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특히 올해 2019년은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39살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던 신동엽의 5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와 작품집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도 50주기를 기념해서 이미 2005년 발간된 김응교 작가의 '시인 신동엽'의 내용을 수정 보완해 새롭게 출간한 책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시는 1960년대에 주로 발표됐으나 1970, 80년대에 널리 읽혔습니다. ‘저항’ ‘혁명’ ‘민족’을 노래한 그의 시는 김수영, 신동문, 한용운, 심훈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엄혹한 시절 대학가의 정신을 지배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그의 39년 인생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시인의 어릴 적 시절의 통지표, 입학허가서부터 결혼식 사진, 가족 사진, 등산하는 모습, 시인으로서의 생활과 다른 문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 등 사실상 그의 개인적인 면모까지 거의 모든 것이 실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책 소개에도 신동엽 시인의 부인 인병선 씨가 제공한 유물을 공개하고 고증한 실증적인 평전이라는 내용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장남으로 태어나 그는 일제치하의 말기의 어린 시절 굶주림이 일상이던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소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늘 상을 타는 착실한 우등생이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 당시에는 순식간에 밀려들어온 북한군에 의해 점령당한 부여에서 부여군인민위원회 선전선동부에 속해 활동을 하게 되었고 수복 뒤에는 국민방위군에 징집되기도 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인민위원회 동료들과 함께 지리산으로 가던 중 대열에서 이탈한 사실이 알려지는 등의 이념 시비로 인해 '신동엽 전집'은 1975년 간행됐지만 두 달도 못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판매금지 조치 당했고 긴급조치가 풀린 1980년 증보판을 냈지만 다시 판금되기도 했습니다.
신동엽은 충남 보령의 주산농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1959년 폐결핵을 앓기 시작했고, 교편에서 물러난 후 처와 자식들을 서울 돈암동 처가로 돌려보냈고 자신은 부여에서 요양하며 글에 집중합니다.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며 1960년부턴 병세가 좋아져 서울로 올라가 교육평론사에 입사합니다.
그리고 1960년 4월, <학생혁명시집>을 집필하며 4.19혁명에 뛰어들고 이 때의 경험을 살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를 창작했습니다. 1961년 그는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직장을 옮겨 숨질 때까지 8년 동안 교단에 서게 됩니다. 이후 1963년에는 시집 <아사녀>를, 1967년에 장편 서사시 <금강>을 발표합니다.
신동엽은 총 26장으로 구성된 "금강"을 통해서 농민들의 분노와 저항으로 불타오른 1894년 동학혁명을 이야기합니다. 이 시에는 실존 인물인 전봉준과 최제우, 최해월 등은 물론 시인 자신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가상 인물 신하늬를 등장시켜서 시적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인은 1969년 간 디스토마가 간암으로 악화되어 아내와 2남 1녀의 자식을 남겨둔 채, 4월 7일에 3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합니다.
이 책에는 부인에게 보낸 러브레터와 가족들과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들을 통해 로맨틱한 남편의 모습과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동엽 시인도 대단하지만, 그의 부인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인 인병선씨는 신동엽이 죽고 나자, 혼자 2남 1녀를 키우기 위해 출판사에 다니며 생활하면서도 신동엽의 육필 원고를 모아 책을 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는 출판되자마자 금지됐지만 운동권을 중심으로 필독서가 되면서 이제 교과서에 수록되는 등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신동엽 시인의 시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동엽 시인의 생애나 그 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신동엽 시인의 시의 세계는 물론 시인의 삶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전기이자 자료집으로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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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의 고민이 늘 미래로 열려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열쇠로 그가 살아온 삶의 문을 열면, 그의 작품을 보는 눈이 새로워진다. _13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하면 떠오르는 시입니다. 오래전 학교에서 배웠어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굉장히 중요했던 시 중 하나였었나봅니다. 이 책은 '시'보다 '신동엽'이라는 사람의 삶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기에 읽고 나면 신동엽의 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풍부한 사진 자료들이 있어 시대적 배경도 살펴볼 수 있으니 재미있을 것 같았지요.
1930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시대, 4.19 혁명의 시기까지 신동엽의 생애는 참으로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느껴지겠지만 어릴적부터, 학생 그 후의 모습에서 단단함으로 뭉쳐져있는 기상이 글과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듯 합니다. 근대사를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에 위대한 정신을 소유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 분들의 덕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라는 생각을 갖곤 하는데 신동엽 시인 역시 그런 인물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나라 문학의 중요한 인물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신동엽 시인이 거쳐간 시대와 그의 삶을 보면서 글이 이렇게 강하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유명했던 시만 기억하고 (그 시를 좋아했기에 더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 좋은 시를 책을 통해 보고 싶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시대의 아픔속에서 함께 괴로워하고 정신을 바로 세운 신동엽의 의식에 몰입하게 됩니다. 6.25 전쟁속에서 죽을고비를 넘기며 앓았던 병이 후에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뒤로하게된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참으로 서글픕니다. 근현대사의 아픔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을 키워가며 가정을 가꾸고 교육에 힘썼던 부분들을 알고나니 풍부한 자료와 기사, 사진들로 그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어 그의 시들이 더욱 생생하가 다가옵니다. 진달래 산천, 금강, 산에 언덕에 들을 읽으며 그냥 시만 알고 읽었을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연속적인 현실로 이해하게 한다.(김주열) _197 식민지의 배고픔과 참담한 6.25 전쟁속에서 살아남아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의 언어로 형상화 하였다_225 "소월의 정조와 육사의 절규가 함께 있다"(시인 김수영) _243 라는 본문중의 평들에도 많은 공감을 하게 되구요.
24살의 신동엽과 19세의 인병선(아내)의 만남으로 부터 시작된 편지들도 하나씩 읽어보았을때 이런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나누며 연애를 했을까,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에 넋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도 감동적이고 그의 전 생의 모든 자료들을 소중하게 보관하며 자료로 남겨 온 인병선(아내)님과 신동엽의 부친의 정성이 있었기에 신동엽의 문학적인 업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 할 수 있고 후세에 더욱 존경과 사랑을 받는 민족문학가로 세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신동엽을 연구하고 자료를 모아 아내 인병선씨에게 인정을 받고 이토록 소중한 사진자료집 형식의 신동엽 평전을 낸 저자의 노력도 대단합니다. 문학적인 작품분석보다는 신동엽의 삶에 초점을 맞춘 신동엽 평전, "좋은 언어로" 많은 분들께 추천하고 있어요.(특히 역사를 좋아하는 친구와 48년생 아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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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여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였는데 <좋은 언어로 - 신동엽 평전>을 읽으니 문득 길을 걷다 발견한 '신동엽 문학관'을 지나쳤던 기억이 나더군요. 아내인 임병선 씨 결혼 전·후 나들이하러 온 부소산성 백화정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남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문학가의 삶을 담은 책을 읽으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습니다. 백제의 찬란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금강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요?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유독 눈빛만은 또렷하게 살아있고 남다른 문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학업을 이어나가 결국 1953년 전시연합대학 중 하나인 단국대를 졸업하게 되죠. 그의 문학에서 한국전쟁은 평생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가르쳐 주었고 역사의식을 형성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후 현실 저항의식을 문학으로 표현합니다. 책방에서 마주친 임병선과의 만남 이후 사랑을 맺으면서 모든 시에 녹아들었다고 합니다. 둘이 주고받은 편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낭만적이면서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당시 고학력이었던 둘이라 편지에 쓴 글도 남다르더군요. 결혼을 하게 되면서 서울대 철학과 3학년에 중퇴한 임병선 씨와 사이가 좋았던 신동엽은 가족과 함께 자주 나들이를 하러 간 자상한 아빠였다고 기억합니다. 평소 깔끔하고 정확한 성격이었던 듯 그가 노트에 쓴 시가 모두 온전하게 남아있죠. 예전에 습작 시를 쓰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는데 그가 쓴 대표 시를 읊어보기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시인이었는지 싯구 하나하나에 전해져옵니다. 수명을 다했다면 우리 문학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을까요? 6.25 전쟁이 발발한 뒤 소집된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었는데 보급품이 열악해서 굶고 병들어서 죽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1951년 4월 30일 국민방위군이 해제했는데 그보다 이른 2월쯤, 대구 수용소를 빠져나와 동료 방위군과 함께 부산으로 갑니다. 구걸도 하고 산에 나서 걸 먹으며 허기진 배를 잡고 가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민물 게인 갈게를 날로 먹은 것이 훗날 그의 병을 악화시킨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지나친 과로로 간암을 키우게 되죠. 지금처럼 의료기술이 발전되지 않은 때라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그의 문학을 기리는 사람들로 인해 '신동엽 문학관'이 건립되고 '신동엽 창작 기금'이 제정되는 등 그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뜻있는 후배 동인들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다수의 사진과 편지, 육필 원고, 보도자료, 애장품 등이 수록되어서 신동엽 시인의 생애를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그의 대표 서사시인 <금강>을 음악극 형태로 승화한 작품이 평양 봉화 극장에서 공연하는 등 그는 떠나고 없지만 우리들의 삶 가까이 살아 있습니다. 이 책으로 '시인 신동엽'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어 잘못 전해진 사실들이 바로 잡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며 접근할 때 우리는 새로운 시 읽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순수했던 문학의 시절로 돌아간 듯 신동엽 시인을 알게 된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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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평전 좋은 언어로 2019년 4월, 50주기를 맞이하여 나온 이 책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모든 것을 다룬 평전이다. 시인의 탄생부터 시작 모두 6부로 저자는 시인의 부친과 아내로부터 잘 보관된 시인의 귀한 자료를 받아 신동엽 시인 부인 인병선 여사가 고증한 실증적인 평전이며, 그의 육필 원고, 사진, 편지 등 여러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 당시 오래된 자료를 볼 수 있었는데 작은것 모두 세심하게 모아놓은 자료들은 대단하다 시인의 초등학교 때 반장 임명장이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등의 사진까지 어릴 적 시절의 통지표, 입학허가서부터 결혼식 사진, 가족 사진, 직장에서의 모습, 시인으로서의 생활과 다른 문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 등 다양한 부분의 육필 원고, 사진, 편지의 자료로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시인의 귀한 자료 하나하나 모든것을 수집해 보관했다는 점이 가슴이 뭉클했다. 부인 인병선에게 보낸 러브레터와 가족들과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들을 통해 로맨틱한 남편의 모습과 자상한 아버지로서 그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비판 정신으로만 시를 쓴 시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줘 새로운 시각으로 신동엽을 볼 수 있다 부인 안병선 여사는 신문,잡지기사를 모두 스크랩해 놓았고사진은 모두 슬라이드로 만들고 평생의 걸친 작업이었으며 신동엽 문학상을 제정 신동업생가를 부여군에 기증 신동엽 문학관까지 기획 추진했다고 하니 존경스럽다 저자는 독자에게 세 가지를 눈여겨 보라고 한다 첫째 신동엽의 현실 참여인식이 4.19이후 구체된게 아니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라고 한다 둘째 그의 시는 배타적민주주의가 아니라 모든 나라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라고 한다 세째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인간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예언자적 지성을 펼쳐보인 '미래의 시인' 사실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신동엽(1930~1969) 시인은 대표작 중 하나인 '껍데기는 가라'로 사회비판적인 성향인 짙은 민족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들, 남편, 아버지, 친구로서의 모습을 이책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유작시 부제로 씌어진 '좋은언어' 마지막 구절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하지만그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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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과거 백제의 수도 부여에 방문했다. 그 때 신동엽선생님의 생가도 지났었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들르지 못한 게 후회됬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누구신지도 잘 모르는' 신동엽 선생님의 생가를 들렸다면, 지금같은 감정으로 찬찬히 살피고 나오지 못 했을 것 같다. 이 책을 만난 후에 신동엽선생님의 생가에 방문할 생각을 하니 두근거린다. 시인 신동엽선생님의 인생을 통해 바라보는 일제식민지 시절의 우리나라의 모습, 그리고 해방후에도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 가슴 아픈 역사이야기에 몇번이나 울컥했다. 이 평전에는 사진자료가 굉장히 많다. 신동엽선생님의 인생을 사진만으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말이다. 특히 선생님의 작품의 초고들이 삽입되어있다는 것도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데 한 몫 한다. 올 여름에 다시 부여에 방문할 때는 이 책을 들고 신동엽선생님의 생가에 방문할 것이다.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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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씨를 물으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아마 다들 알 거라 생각됩니다. 이 시에서의 '껍데기'의 의미와 '알맹이'의 의미. 그리고 이 시가 전하고자하는 의미는 동학 혁명의 아우성과 4.19 혁명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대한 표현으로 민주 · 자유를 지향한, 저항시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그를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로 형상화한 시인으로만 한정하여 이해하려 한다. 이는 그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시에 대한 이해를 편협하게 했다. 지금 여기에 그의 육필 원고와 사진, 편지 등을 공개하는 것은 '시인 신동엽'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돌려주기 위함이다. 그간에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ㅈ고 시인에 대한 직접적이고 입체적인 접근을 통해새로운 시읽기의 전형을 제시한다. '시인 신동엽 읽기',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좋은 언어로』
그는 시에서 표현하는 것만큼 그의 삶은 세계사의 거센 파도와 곡절 많은 현대사 속에서 역사적 존재로 거듭났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1930년 일제강점기였고 만주사변 1년 전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태평양 전쟁 때 배고픈 학생 시절을 보내고, 한국전쟁 때는 군인의 신분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등 그의 인생은 우리의 역사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의 시는 조선과 고구려를 넘어 상고시대의 옛날까지 펼쳐내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아주 먼 과거를 '그 옛날'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생활 이야기와 함께 극적으로 살려낸다는 점이다. 그의 '옛날 이야기'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회고주의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여는 옛날'이다. 그의 시는 '과거의 읽을거리'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잠언'이다. - page 10 최근에도 그의 시가 거론된 이유.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 속엔 그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습니다. 한 남자로써의 모습, 가족을 향한 한 아버지로써, 남편으로써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었습니다. 신동엽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다니는 자상한 아빠였다. - page 151 역시나 그의 이야기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역사가 등장하였습니다. 1960년대. 경상남도 마산에서 시작한 시위가 전국으로 퍼진, 마침내 10만 명이 넘는 서울 시민이 시청 앞과 서울역 광장에 모여 거리를 행진하여 자유를 외쳤던 그 사건, '4.19 혁명'. 이 시대의 아픔을 담은 문학 작품을 모아 손수 제작한 『학생혁명시집』속에 담긴 그의 시 「아사녀」는 참으로 가슴이 아리게 다가왔었습니다. 온갖 영광은 햇빛과 함께, 소리치다 쓰러져 간 어린 전사의 아름다운 손등 위에 퍼부어지어라. - 「아사녀」끝 부분, 1963 그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마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몸소 가지고 그렇게 자신의 몸뚱아리는 가고 그 정신만을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특히나 그의 맏딸 정섭의 글을 읽노라면 유난히도 파랗고 맑은 그날의 하늘이 무심하기만 하였습니다. 어느 저녁인가 식탁에 둘러 앉은 우리에게, 아버지는 6.25사변 때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출한 이야기를 웃으며 들려 주셨다. 어른들이 깜쪽같이 사실을 숨겼기 때문에, 또 그때까지도 가까운 이의 죽음이란 실지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으므로 아버지의 임종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뜻밖이었다. 하늘이 낮게 드리워진 날이었다. 봄 냄새가 짙어지기 시작한 4월 초이레, 그날의 일로 하여 그해 일 년은 온통 하늘 낮은 쟂빛 날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 신정섭, 앞의 글, 223면 그리고 그의 장례씩날 그의 제자가 읽은 『금강』의 7장. 여행을 떠나듯 우리들은 인생을 떠난다. 이미 끝난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비판적 사유를 요구한다. 우리 마음 속에 어두운 구름을 "닦아라"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가진 무거운 고정관념의 쇠항아리를 "찢어라"라고 권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새로운 눈으로 내일을 볼 것을 신동엽은 요구하고 있다. - page 245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중에서 지난 우리의 투쟁과 희생. 그리고 우리의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다가오는 5.18 민주화운동과 6월의 항쟁의 의미를 되새겨보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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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의 시들…회고주의가 아닌 내일을 위한 잠언 [서평]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김응교, 인병선 저, 소명출판, 2019. 03.20)
누군가를 깊이 알면 사랑하게 된다. 사람 자체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는 시인 신동엽의 생애와 인간적인 면면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책을 읽으며 시심을 키웠는지, 어떤 분들과 가깝게 지냈는지, 가족 관계는 어땠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신동엽 문학상’은 문인들이라며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는 신동엽 시인의 문학과 문학정신을 기리고, 역량 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1982년 공동으로 ‘신동엽 창작 기금’을 제정한 것이 시작이었다. 신동엽 시인은 식민지의 배고픔과 참담한 6.25전쟁 속에서 살아남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의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또한 짧은 시뿐 아니라 긴 서사시, 극시, 오페라까지 만든 실험적인 형식들을 여럿 선보였다.
시 창작에 영향을 준 어린 시절과 아내
신동엽의 시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회고주의가 아니다. 내일을 위한 잠언이다. 어린 시절 신동엽은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병으로 결석이 잦았고 크게 건강하지도 않았다. 이는 훗날 신동엽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는 하나의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매일 싸움을 했다. 이 사건은 신동엽이 체험한 최초의 분단이었는데 당시 신동엽은 중립을 바라며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어느 날 신동엽은 소집 영장을 쥔 채 국민방위군으로 대구에 수용 당하게 된다. 1951년 4월 30일 국민방위군이 해체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집한 군인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낙동강변을 지나던 신동엽은 배고픔을 참다못해 딱딱한 게를 잡아 날로 먹고 말았다. 그런데 이는 신동엽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디스토마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봄이 지나고 여름도 거의 지날 무렵이 되어서야 신동엽은 겨우 기력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신동엽에게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적인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한국전쟁 시기 그가 썼던 메모와 일기문, 습작시를 볼 때, 그의 역사의식은 이미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즈음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던 그에게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훗날 아내가 되고 이후 그의 작품 해석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두 사람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 인류애에 이르렀다. 신동엽은 인병선에게 편지뿐 아니라 시를 써서 보내기도 했으며, 군에 가서도 틈만 나면 편지를 보냈고 부대 밖으로 나와서도 항상 인병선을 찾았다.
28세가 되던 1957년 신동엽은 인병선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29세가 되던 1958년 가을에 충청남도 보령에 있는 주산 농업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했던 그는 1년 이상 교사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막 안정된 생활을 하려 할 즈음 그에게 병환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동엽에게 깊은 시를 쓰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신동엽은 한 달 이상 정성을 다해 시를 썼고 30세가 되던 1959년 1월 3일 드디어 지면에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그의 장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신춘문예 입선 작품으로 실리게 되었다.
『껍데기는 가라』그리고 한민족의『금강』
신동엽의 시에는 6.25 때 일어난 슬픈 장면이 많았다. 그의 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제2화를 보면 <내 동리 불사른 사람들의 훈장(勳章)을 용서하기 위하여. 코스모스 뒤안길 보리사발 안은 채 죽어 있던 누나의 사람을 위하여.>는 구절이 있다. 어느 동네에서 벌어진 비참한 광경을 묘사한 내용이었다. 시에는 동네를 불사르고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 훈장을 받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담겼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무서워 깊은 산으로 도망갔다가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있었다. 시는 코스모스 길에서 죽어 있던 나무처럼, 전쟁 때 죽어간 동네 사람들을 위로하는 슬픈 노래였던 것이다 .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다. 신동엽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의 아픔을 더는 속으로만 담아둘 수 없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모아 책으로 냈다. 1960년 7월, 신동엽은 4.19 혁명을 노래한 학생과 시민, 작가들이 쓴 시를 모아 엮은『학생혁명시집』을 펴냈다. 이후 수많은 작품 활동을 했는데「껍데기는 가라」를 통해 그는 관념의 절정을 밟았고, 1967년 12월부터는 전주사범 시절부터 거의 20년 동안 구상해 온 이야기인『금강』을 쓰기 시작했다.
신동엽의 독서 노트와 일기장을 보면 그는 엄청난 양의 세계문학 작품을 두루 읽고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집필을 위하여 방학 때면 호남을 여러 번 답사했고 설악산과 속리산 등을 찾아가 동학의 유적을 추적했다. 온 정신을 기울여, 밥 먹을 시간도 잊고 원고지에 쓴 글을 읽으며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나중에는 아예 여관방을 하나 빌려서 원고지와 씨름했다. 그렇게 하여 1968년 초 장편서사시『금강』을 발표했다. 모두 26장으로 이루어진 4,800행의 대작이었다.
옛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이 시에 담겨있었다. 과거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과거는 미래를 위한 거울이라는 사실을 그는 사람들에게 알렸다. 하지만『금강』을 쓸 때 잠도 안자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탓인지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임진강』을 쓰기 위해 문산 지역을 취재하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 받아 군부대에 잡혀 하룻밤을 지내고 온 후 그의 병은 더욱 나빠졌고 결국 간암 판정을 받았다. 1969년 4월 7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서 향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생전 신동엽은 주말마다 산행을 즐겼다. 산봉우리를 디디고 지팡이를 짚은 채 먼 곳을 바라보는 사진이 많았다. 신동엽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내일을 상상하고, 산 아래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은 한국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정부의 인정을 받은 상태다. 그는 시작을 위해 뼈를 깎는 산고 과정을 겪었고 그러면서 치밀하게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오늘날 시에 담겨 전해지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가족들을 보면 고진감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부인 인병선은 남편과 사별한 뒤 출판사 일과 번역 일을 하는 등 어려운 살림을 일으켰고, 자식들도 모두 대학을 나와 평안하게 살고 있다. 자식세대로 이어진 아버지의 정신과 노력 덕분이었다. 이는 신동엽이 살았던 이후의 모든 자식세대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까지 적용되는 사실일 것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정신이 보인 오늘날 모습은 감히 고개가 수그러질 정도이다. 그러한 정신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한민족을 일으킨 시인 신동엽의 삶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