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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젊어서 슬픈 아프리카!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젊어서 슬픈 아프리카!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내용보기
이번에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란 책을 읽었다. 부제가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였는데, 지금껏 읽은 아프리카 관련 책으로서는 내용이 가장 알찼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념은 세링게티 초원의 동물들이다. 그리고 일렁이는 일출과 석양. 나에게 아프리카는 이렇게 살아있음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인간의 삶이란 관점에서 바라보
"젊어서 슬픈 아프리카!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내용보기

이번에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란 책을 읽었다. 부제가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였는데, 지금껏 읽은 아프리카 관련 책으로서는 내용이 가장 알찼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념은 세링게티 초원의 동물들이다. 그리고 일렁이는 일출과 석양. 나에게 아프리카는 이렇게 살아있음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인간의 삶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면 항상 아픔으로 다가온다. 매스컴에 소개되는 아프리카는 부족간 대립으로 인한 폭력과 내전, 그 여파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 에이즈, 소말리아의 해적 등등 불편한 고통만이 전해질 뿐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소득, 건강, 교육을 3대 지표로 하여 계량화한 2011년 '삶의 질' 보고서에 의하면 노르웨이의 삶의 질이 1위, DR콩고가 최하위로 나타난다. 또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45개국 중 36개 국가가 최하위 그룹에 속해 있으며, 가봉, 나미비아, 보츠와나, 남아공 등 9개 국가만이 중간 그룹에 겨우 이름을 올리고 있다(106쪽. 한국은 15위). 절대 빈곤은 건강을 위협하여 이 지역의 평균수명은 50세 전후로 OECD국가 국민들의 평균수명에 비해 30년이나 짧다고 하니, 이래서 극단적 비관론자들은 아프리카를 '4D의 대륙'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죽음(Death), 질병(Disease), 재난(Disaster), 절망(Despair)을 뜻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대부분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지구의 흉터'라고도 하는 아프리카의 상처를 내밀히 들여다보면 딱히 아프리카만의 책임이라고 하기 힘들어진다. 500년간 착취했던 백인을 몰아내고 흑인에 의한 자치를 얻었지만 경제는 오히려 피폐해지고 폭력과 빈곤은 심해져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위협하게 된다. 이런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해 아프리카주의자들은 '검은 폭력, 흰색 뿌리'라 하면서 유럽의 책임을 묻는다. 유럽은 부족의 정체성이나 분포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마음대로 아프리카의 국경선을 그었고, 이로 인해 아프리카부족들은 원칙도 없이 하나의 국민으로 묶여버리거나, 멀쩡한 단일 부족이 갈라졌다. 이 과정에서 국민적 소속감이나 정체성은 싹틀 리가 없었고, 이는 훗날 종족 분쟁의 씨앗(217쪽)이 되었기 때문이다. 2006년 한 해에만 전세계 유혈 분쟁의 40%가 아프리카에서 일어났으며, 11개 아프리카 국민들이 전란 상태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프리카는 독립이후 내홍을 겪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폭력과 유혈이 낭자한 곳이다. 저자는 이 즈음에서 조심스레 묻는다. 아프리카의 빈곤과 저개발이 누구의 책임이냐고. 그러고선 다시 '아프리카는 어떻게 아프리카를 저개발시켰는지'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독재와 에고노미(Egonimy)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노예무역! 아프리카의 고통에는 '노예'라는 인간사의 허물이 숨어있다. 아프리카에서는 7세기 이래 적어도 3,000만명 이상이 노예로 팔려갔고, 유럽국가들이 본격적으로 가담한 18세기 부터는 300년간 1500만명의 흑인이 대서양 너머로 끌려갔다. 인류사에 있어 이와같은 규모의 노예사냥은 아프리카 지역 외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80쪽)고 한다. '흑인=아프리카인=노예'라는 인식에는 고·중세 유대인의 선민의식이 깔려있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모두 함의 자손이며, 원래는 백인이었지만 죄를 짓고 흑인이 되어 아프리카로 건너가 노예로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한 것이라는 믿음이 문제다.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린다는 것. 그러고 보면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간의 오만이 역겹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흔히 우리가 아는 바와 달리 아프리카에서 대규모로 노예를 생포하고 거래하기 시작한 것은 아랍인들이다(54,88쪽)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세헤라자데에 흑인노예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또한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미국으로 끌려간 노예는 약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90% 정도는 신대륙의 포르투칼, 스페인, 프랑스의 식민지, 즉, 남미와 카리브 지역에 정착하였는데, 특히 브라질은 거의절반에 가까운 흑인 노예들을 흡수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16세기 이후 선민의식에 가득찬 유럽인과 미국 대륙의 개신교들은 구약의 내용을 곡해하여 아프리카인들을 저주받은 족속으로 묘사하였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헤겔이 그의 저서 <역사철학강의>에 아프리카를 유아기의 인류, 고차원적 사고능력이 없는 흑인들의 땅이자 어두운 밤의 장막에 둘러쳐 있는 대륙으로 묘사한다. 그들(유럽)은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의 어둠을 쫓아내고 문명의 빛으로 밝혀야 할 의무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정당화 시킨다(41쪽). 이로 인해 인류사상 가장 비참하고 잔인한 비극인 대서양 노예무역이 정당화되었고, 아프리카 최악의 인종청소였던 르완다 학살이 가능(50쪽)해지기도 했다. 모호한 성경구절을 인간의 자의적인 상상력으로 해석하고, 거기에 시대적 가치관이 교묘히 결합하여 변질되었건만 언제나 자기들만이 옳고 자신들의 잣대만이 항상 바르다는 생각. 예나 지금이나 야만적인 비극은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그들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이 책의 하반부엔 중국과 아프리카의 우호관계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이런 관계가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중국정부가 서방 여론에 뭇매를 받고 있을 때,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은 그들 역시 당시 서방의 강압적인 신자유주의 외교에 저항하고 있었기에 중국 정부를 옹호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아프리카를 재발견하고, 이후 무기를 수출하고 군사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아프리카를 친중국화에 나서기 시작한다(352쪽). 또한 중국식 개발 모델도 _ 빈곤퇴치와 경제발전에 있어서 이념과 윤리를 고려하지 않는 중국의 사고방식 _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빈곤과 저개발의 늪에서 국민경제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시장경제원리에 반하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에 아프리카 엘리트들은 감동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의 권한과 규제를 늘려 막강해진 정치·경제적 권력을 누리고픈 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이지리아와 케냐인의 70% 이상이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을 긍정적으로 여긴다하니 서구의 고민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하겠다.


프롤로그를 읽으면 이 책이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보인다. 누가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리카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또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도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관심임을 미리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기대와 희망은 퇴색되고 무력감에 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읽어보면, 최근의 아프리카는 내전과 유혈사태가 감소하고 국민의 신망을 얻지 못한 일부 지도자들이 선거를 통해 정권에서 물러나는 등 미약하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일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소중한 새싹'을 함께 지키고 길러내길 원하는 저자의 바램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해와 애정'이리라. 언제부터 우리가 서구의 시각으로 역사를 봐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제대로 된 안목으로 아프리카의 진짜 얼굴을 보자는 것일꺼다. 그래서 아프리카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걸꺼다. 아무튼 검은 아프리카에 밝은 웃음이 가득하길  기대한다. 읽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훌륭한 책이다.

리뷰의 줄거리와 안맞아 빼버렸지만,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었다. 아프리카식 모바일 혁명을 다루는 부분인데 공부할 꺼리가 되어 기록해 둔다.
319쪽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휴대전화 보유 인구는 이미 미국 인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아이와 청소년을 제외한 성인 인구의 절대 다수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수정 검토해야 할 부분>
153쪽 : 로스토와 로스토우를 혼용
350쪽 : 모택동의 흑묘백묘론 (이건 등소평의 경제정책인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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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덧붙임 하나. 그리고 수정검토해야할 부분.)

 

리뷰 총점 종이책
아프리카의 모든 것..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아프리카의 모든 것..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내용보기
지금도 지구촌 한 곳에서는 전쟁, 기아, 환경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아프리카가 떠오른다. 끊임없는 내전과 기아 난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땅으로 연상되곤 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프리카와 연관된 영화나 다큐는 처참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아프리카를 구원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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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지구촌 한 곳에서는 전쟁, 기아, 환경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아프리카가 떠오른다. 끊임없는 내전과 기아 난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땅으로 연상되곤 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프리카와 연관된 영화나 다큐는 처참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아프리카를 구원하기 위한 천문학적 원조를 아끼지 않음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이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는 현재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땅에서 직접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아프리카의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 

 

오랜 세월 노예로 살아온 흑인들, 최근 여러 방면에서 우수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 흑인들이  백인의 지배를 받아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백인 우월주의 , 선민주의에 입각한 아프리카 정체성 왜곡부터 시작된 것이다. 세계사 개론은 항상 아프리카 개론에서 시작한다. 인류의 어머니인 호모 사피엔스 루시의 해골과 그녀가 발견된 동부 아프리카 지도가 항상 첫 장을 장식한다. 그러나 이후 아프리카의 이야기는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다루는 대목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아프리카에 문자가 없었던 탓에 과거를 기록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기록된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야만적이고 비문명적 활동으로 보고 세계사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아프리카를 야만과 암흑의 세계로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진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아프리카에 문자사용이 있다는 기록을 발견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인들은 대체적으로 문자화된 기록보다는 구술에 의한 직접적 전달을 선호하기 때문에  문자 기록을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야만과 암흑의 세계로 각인되어진 흑인의 이미지는 헤겔에 의해서 세계사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제외시킴으로서 아프리카를 부정적인 이미지를 정형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세계사에서 아프리카를 배제하는 것은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헤겔이 아프리카를 방문한 적이 없으며, 아프리카를 다녀온 탐험가, 선교사들로부터 간접적인 지식을 얻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유럽인의 이미지와 지배욕을 학문적 수준으로 고착시킨 것이다. 이후 아프리카인을 성경의 족보에서 지워 유럽의 인종적 종교적 순수성과 우월성을 지키려 했던 인류의 다중기원설과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의 지능지수IQ 결과가 더해져, 흑인들은 저능하고, 미개하며 야만적이라는 인식은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렇게 잘못 심어진 선민사상에 입각한 흑인의 왜곡된 정체성은 노예무역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역사학자 올라돈 페터슨의 표현대로 노예 생산 과정은 '사회적 죽음'의 생산 과정이었다. 아프리카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사람들을 유럽인들에게 팔기 시작하며 대가로 칼과 창 같은 무기류를 얻었다. 아프리카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며 여러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부족과 마을들은 과거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을을 습격했다. 17세기 신대륙개발로 노예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던 차에 흑인 노예가 어떻게 어디서 잡혀왔는지 따질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잡어먹는 ' 시대를 도래하였고 인근 부족과 이웃 마을 사람들 간 불신과 증오의 기억을 남기게 된다. 저자는 이런 증오의 기억이 훗날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었던 요인이라고 말한다.

 

아프리카는 절대 빈곤 국가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는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지질학적으로 대륙자체가 가장 오래전에 형성되었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아프리카는 축복받은 신의 땅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동안 아프리카에 천문학적인 원조가 있었으며, 독립이후에도 많은 자본이 투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성장과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현실은 저자의 말대로 의문과 모순덩어리다. 그리고 그 의문과 모순덩어리 이면에는 부패한 권력층들인 자본주의 엘리트들이 존재하고 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는 1999년 시에라 리온에서 벌어진 내전,  다이아몬드 지역 지배를 두고 벌어진 혈투를 다루고 있다. 수천명이 죽고, 수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다이아몬드를 보지 못했다.

 

국가란 어쩌면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기에 평소에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가가 무너져 제 구실을 못하는 아프리카에서 어린아이들은 총알받이와 성 노예가, 어민들은 목숨을 건 채 일확첨금을 노리는 해적이 된다. 아프리카 정부들의 무능력은 곧 비극의 씨앗이다. 유능하고 힘 있는 정부,적어도 국민들의 생명만큼은 지켜줄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서지 않는 한, 아프리카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p259

 

이 책은 아프리카의 모든 것이다. 사회 경제와 정치, 더불어  인류 기원에서 방대한 역사까지도 다루고 있다. 어떤 한 대상을 볼 때 주관적입장만으로 서술할 수 있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음에도 저자는 아프리카를 무척 객관적시각으로 서술하였다. 영국 학자 킷칭이 아프리카 연구에 인생을 바쳤으나 30년만에 그만둔 이유가 아프리카가 절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문제를 외부적인 요인으로 보고 변화를 기대하였지만, 정작 아프리카의 문제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몰지각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저자는 현재 아프리카는 미약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국제 사회에서 아프리카와 함께 가기 위해서라도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중간에 백인에 의해서 자행된 흑인의 학대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분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아프리카의 오늘과 내일, 이 책 안에 다 있다.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2.04.09. 신고 공감 13 댓글 30
리뷰 총점 종이책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 그들 스스로 만든 아프리카를 위하여..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 그들 스스로 만든 아프리카를 위하여.." 내용보기
아프리카 하면 우리는 무엇을 떠 올릴까? 우선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유명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떠오르고, 더불어 유난히도 많은 독재자들, 그리고 인종청소가 벌어졌던 르완다나 콩고내전이 떠 오를 것이다. 그런 아프리카를 색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어쩌면 이런 이미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이미 서구의 인종주의적 시각에 물들어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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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하면 우리는 무엇을 떠 올릴까? 우선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유명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떠오르고, 더불어 유난히도 많은 독재자들, 그리고 인종청소가 벌어졌던 르완다나 콩고내전이 떠 오를 것이다. 그런 아프리카를 색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어쩌면 이런 이미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는 이미 서구의 인종주의적 시각에 물들어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표현해 보자면 일반화된 명사는 검은 대륙이지만, 실상은 핏빛으로 물든 붉은 대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아프리카는 푸른 대륙일 뿐이다. 내셔날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나 동물의 왕국에서 보여주는 대륙은 언제나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새로운 이미지가 더해졌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다채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부정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마케팅과 투자관점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탐욕의 눈을 번뜩이는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자원의 보고, 아니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서구가 제공하는 영화나 드라마, 뉴스를 통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접근은 대부분 민속학, 또는 인류학적 접근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19세기 식민지시대 흑인들의 열등함을 정당화 하기 위한 유럽의 시각에서 비롯되었다. 흑아프리카란 아프리카 흑인들의 검은 피부 빛을 일반화한 표현이지만, 근대에 이르러 검은색은 어둠을 상징하고, 이는 흑인들의 무지와 야만, 문명의 부재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아프리카를 방문해 본적이 없는 역사철학자 헤겔의 묘사로 정형화 되었고, 근대 들어서는 유럽인들이 다중기원설을 제기하면서 인종분리를 당연시하는 바람에 확대재생산 되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 개론은 항상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지만, 인류의 기원이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명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아프리카가 다시 세계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은 15세기 대항해시기가 되면서지만, 그것마저도 노예와 희망봉을 돌아가는 교역로 발견이라는 간단한 언급에 그칠 뿐이다.

 

이 책은 외교관이 쓴 아프리카의 역사다. 그들 하나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이 겪어온 고통과 모순을 서구의 시각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시각, 아니 제3자의 시각으로 쓴 것이다. 왜곡되고 일그러진 눈으로는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밖에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를 제대로 된 눈으로 볼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이런 아프리카를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빈곤과 저개발, 그리고 그들 국가의 독재와 폭력이 어디서 연유되었으며, 그것들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각과 아프리카 인들의 시각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있다. 아프리카는 사하라사막 이남을 뜻한다. 지리적으로는 사하라 북부도 포함되지만 이집트, 알제리, 리비아 등은 그들 자신들이 아랍연합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인들의 평균수명은 50세라고 한다. 그래서 타대륙에 비해 젊은 대륙이라 불리지만, 그것은 이들이 일찍 죽기 때문이다. 병으로 죽고, 굶어서 죽고, 내전으로 죽고.. 그래서 젊은 대륙이라는 말이 슬프기만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프리카가 빈곤과 저개발에 시달리는 이유는 가난해서 무지하고, 무지해서 가난한 악순환의 연속이다. 거기에 자연에 순종적인 농업은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주장한 덫에 빠지게 만든다. 또한 끊임없는 내전과 전쟁은 이들의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겉으로 들어난 현상일 뿐이다. 아프리카 빈곤 고착화의 주범은 부패한 정부들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석유의 저주, 원조의 저주에 걸렸다고 한다. 석유를 비롯한 무한한 천연자원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게 해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산업은 그나마 있던 것도 사라진다. 서방세계에서 오는 원조는 이제 중독이 되어있다. 병이 나면 당연히 의약품이 오고, 기근이 나면 당연히 식량이 올 줄로 안다. 그나마 이런 원조나, 천연자원으로 벌어들이는 돈도 대부분이 중간에서 사라진다. 약하고 배고픈 자가 많을수록 힘을 가진 이들은 더욱 잔인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은 절대적 빈곤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와 같은 존재들 인 것이다.

 

아프리카에는 2000개 이상의 부족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19세기말, 소위 베를린회의에서 결정된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이들 부족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편의에 의해 자를 대고 그었다. 부족내 혹은 국민적 정체성을 반영하기 보다는, 유럽열강의 정치적 이해와 경제적 계산에 따라 자의적으로 그어졌다. 그리고 식민지시대를 거쳐 독립 후,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에 의해 이 국경선의 변경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고착화 되었다.

 

사하라 이남 45개국에서 10년 이상 집권하고 있는 지도자는 20123월 기준 16명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9개국은 20년 넘게 집권하고 있다. 이것은 아프리카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인 일인, 일당통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프리카 일당제는 부족내 집단적 가치를 중시하는 전통과 식민지 지배의 잔재가 낳은 부산물이다. 집권한 지도자는 자신의 부족의 이익을 대변하며, 다른 다양한 부족의 요구는 폭력으로 해결한다. 결국 일당독재-폭력-반군쿠데타-일당독재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의 전쟁은 대부분이 내전이다. 부족간의 증오심은 최악의 폭력인 인종학살의 양상으로 발전하기 일쑤이다. 르완다, 수단, 콩고의 예에서 보듯이.. 결국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다양한 부족은 평화시에는 문화적 다원성의 원천이 되지만, 내전이 일어나면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는 호전성으로 발전했다

 

1990년대 들어 냉전이 끝나면서 서구는 원조의 대가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그에 따라 복수정당제도와 선거제도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각종 선거는 폭력과 부정으로 얼룩지는 것은 예전과 동일했다. 결국 남아공, 세네갈 등 소수 국가를 제외하고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국가는 국민을 방치하고, 국민은 국가를 포기했다. 아프리카의 소년병, 소말리아의 해적, 이것은 국가가 무너져 제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아프리카의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프리카 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여전히 혈연적 공동체와 그 역사를 삶의 둥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들이 이렇게 파편화 된 까닭의 시초는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찾을 수 있다. 노예상들은 전쟁포로를 얻기 위해 값싼 공예품을 미끼로 부족간 전쟁을 부채질하였다. 나중에는 전쟁포로가 적어지자 부족장들은 이웃 마을을 공격하여 포로로 잡아 노예로 팔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는 부족, 씨족, 가족 단위로 좁혀지면서 파편화 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식민지시대 유럽인들은 부족간 적대심을 이용한 식민지 통치를 하였고, 그들이 독립한 후에도 천연자원과 같은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독재정권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 하였다. 내전이 일어나면 이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것도 그들이었다. 이것이 유럽이 아프리카의 비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엘리트들 역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사하라 이북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의 불길이 사하라 이남으로 번지지 못한 이유는 중산층이 약하고, 그 동안의 억압정치로 인한 공포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부족간 연대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최근 들어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아프리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아프리카를, 우리는 이제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프리카에 만들어진 아프리카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든 아프리카가 되는 그 날까지..



k*****1 2012.05.14. 신고 공감 12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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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아프리카의 눈물을 알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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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게 기아로 인한 아이들의 앙상한 모습이다. 몸에 달라붙은 파리를 쫓을 힘도 없어 그 모습 그대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고작 스물한두 살의 어린 엄마와 역시나 에이즈에 걸린 열 살이 채 안된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 아프리카 내전으로 인한 소년 병사들이 자기 키보다 더 큰 총을 메고 있는 모습들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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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게 기아로 인한 아이들의 앙상한 모습이다. 몸에 달라붙은 파리를 쫓을 힘도 없어 그 모습 그대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고작 스물한두 살의 어린 엄마와 역시나 에이즈에 걸린 열 살이 채 안된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 아프리카 내전으로 인한 소년 병사들이 자기 키보다 더 큰 총을 메고 있는 모습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많은 아프리카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블러드 다이아몬드' 또한. 오로지 남성들을 위한 아프리카 여성들의 할례는 중국의 전족 보다 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왜 그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처럼 기아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가는지, 아프리카의 눈물을 우리에게 보여준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아프리카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 먹을 게 없어 기아에 허덕이는 곳. 늘 지구촌 다른 이들의 원조를 기다리는 곳. 에이즈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런 검은 대륙으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언론매체에서 나오는 것들만 보았을 것이다.

 

 

서양사를 전공하고, 공정정책학을 공부하고, FTA에서도 일하면서 아프리카 경제 사회 개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저자 윤상욱은 주세네갈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아프리카의 역사, 왜곡되거나 가려져 있던 아프리카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아프리카가 갖고 있는 고통과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책이다.  

 

 

얼마전에 소말리아 해적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가난 때문에 해적이 될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실상을 말하고, 그렇게 자원이 풍부한데도 그들이 가난하고 굶주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아프리카 국민들은 굶주리는데 비해 정치인들의 권력은 부강하다는 사실. 더 많은 권력을 갖기 위해 국민에 대한 봉사엔 아예 개념이 없고 악명높은 독재자가 판을 친다.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유혈사태가 생겨 내전이 일어나고 아프리카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중국이 계속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중국의 아프리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오래전에 유럽이 아프리카를 쟁탈했듯 신 아프리카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중국이 선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아프리카 쟁탈전에서 아프리카 지도자 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슬기롭게 쟁탈전을 이용하기를 바랬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바라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을 담은 글이었다.

 

 

저자가 바랬던 것처럼 우리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아프리카를 바라볼 것이다.

아프리카의 눈물 또한 기억할 것이고.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04.26. 신고 공감 8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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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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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검은 피부, 가난, 에이즈, 많은 자원, 내전, 그리고 미개하다? 정도 아닐까? 아프리카 대륙이 넓지만 우리는 그곳을 여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긴 하지만... 우리가 돈을 주고 그곳에 가서 즐기고(?) 싶다거나 유적지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쩜 우리 의식 속에는 그들에게 문화유산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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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검은 피부, 가난, 에이즈, 많은 자원, 내전, 그리고 미개하다? 정도 아닐까? 아프리카 대륙이 넓지만 우리는 그곳을 여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긴 하지만... 우리가 돈을 주고 그곳에 가서 즐기고(?) 싶다거나 유적지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쩜 우리 의식 속에는 그들에게 문화유산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역사가 무엇이고, 그들이 믿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의 대륙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 쉬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유니세프나 굿네이버스의 동영상을 보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죄다 가난하고, 죄다 아픈 사람이고, 죄다 도움을 줘야하는 것처럼 비춰질 때가 있다. 물론 우리보다 가난하고, 돈이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기부 문화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본질은 싹 다 무시하고, 그들의 어렵고 불쌍한 모습만을 강조하는 영상은 자칫 우리가 도움을 줬으니 그들을 무시해도 되는 것처럼 비춰질 위험이 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못살게 된 것인지, 그들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기에 지금 저렇게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발전은 바라볼 수 없는 것인지... 아프리카를 바로 알아야 바른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아프리카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세계지도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실제보다 훨씬 축소 시켜 그린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들이 스스로를 아프리카 인이라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아프리카에도 문자가 존재했고,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이들은 대부분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리카 인을 미개하다고 표현하는데 실제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책에서는 이들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역사란 그 누구도 아닌 당사자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문자 기록의 존재나 인류 문명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타국의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오만한 사고방식이다. 아프리카인들 역시 자신들의 호흡과 흐름이 담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를 기억하고 또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47)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그들의 어떤 말도 듣지 않고 단지 서구 사람들의 시선으로 미개하고 무식하다 생각했던 흑인들.. 그들이 지난 시간동안 치러야 했던 고통의 대가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그들은 살고, 생활하고 또 그렇게 죽어간다.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베일에 가려진 아랍 국가들의 노예무역은 안타깝다. 철저히 짓밟혀진 역사로 점철된 그들이 그나마 이만큼 살았고, 이만큼 자손을 낳아 생활한 게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땅에서 조차 자신들이 먹을 곡식을 재배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원 역시 모두의 재산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그들이 그래서 아프다. 막강한 독재자들은 우상화 되어 점점 부자가 되지만 그 밑에 있는 국민들은 가난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서방 국가의 원조를 당연하듯 받아 챙기는 그들을 보면서 총체적 난국이 바로 이 나라들이 이구나 싶었다. 그 어떤 사회적 인프라와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가난하고 다른 나라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와 종족들과 상관없이 서구 열강들은 자로 긋듯 국경선을 만들어 끊임없이 내전을 일으키게 만들었고, 통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난하기에 도둑질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변화될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럼에도 많은 서방 국가들은 아프리카에서 떠나지 못한다. 그들의 땅에 매장되어 있는 엄청난 자원들을 다른 나라에 빼앗길 수 없으므로. 그런 상황에서 중국의 행보는 특이하면서도 무섭다. 지난 10년간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확장 속도는 놀랍고 또 위협적이라고 한다.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유전과 광물 개발 계약을 잇달아 따냈고, 고속도로, 철도, 항만, 발전소, 병원과 스타디움을 짓고 있다고 한다. 서방 국가들이 실패했던 아프리카 정책을 왜 중국은 성공하는 것일까? 중국은 국가 주도형 중상주의로 서구 국가들이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국부펀드로 무장한 중국의 확장.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서구식 가치가 지금의 아프리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중국. 즉 먹고 살수도 없는 아프리카 인들에게 서구인들이 주장하는 인권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방식과 중국의 방식. 과연 누구의 것이 맞는지는 아직 모른다. 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프리카인을 돕는 것이지, 만약 그들에게 자원이나 광물이 없다면... 웃으면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직도 많은 아프리카 인들이 그들의 땅에서 고통 받고, 먹지도 못한 채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굶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상황이라 무시하지 말고 왜 그들이 가난하고, 병들고 싸우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나와 피부색이 다르고, 나보다 미개한 사람들이 아닌, 나와 더불어 이 지구에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나라를 바라보면 좋겠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4.04.09.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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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변화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어온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폐해가 극에 달해 곳곳에서 파열의 신호가 감지되던 2011년 1월.  그 파열을 거대한 크레바스만큼이나 열어젖힐 거센 변화의 바람이 설마 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불어올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23년동안 튀니지를 독재했던 밴 앨런 정권을 무너뜨렸던 재스민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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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변화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어온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폐해가 극에 달해 곳곳에서 파열의 신호가 감지되던 2011년 1월.

 그 파열을 거대한 크레바스만큼이나 열어젖힐 거센 변화의 바람이 설마 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불어올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23년동안 튀니지를 독재했던 밴 앨런 정권을 무너뜨렸던 재스민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건 마치 사막을 뒤덮는 거대한 모래바람처럼 철옹성 같았던 구시대의 독재 정권들을 하나하나 삼켜갔다. 이집트의 독재 정권 무라바크가 무너졌고 42년간이나 리비아를 좌지우지했던 가다피마저 쓰러뜨렸다.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그리고 환호했다. 그 변화의 바람이 비단 아프리카에게만 자유를 가져다줄 희망의 바람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 세계의 사람들은 그런 변화의 바람을 염원하고 있었다. 부자들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세상. 약하고 가난한 자들은 예외없이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이 세상. 이렇게 된 근본 이유가 바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 때문임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곳곳에서 폐해가 드러나는 난파선 처럼 침몰해 가고 있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 다른 배로 갈아타고 싶은 마음들이 커져갔다. 뭔가 자신들에게 보다 안정된 삶을 가져다 주고 떳떳하게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살아가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재스민 혁명은 바로 그러한 소망에 불을 지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랐다. 그건 이제까지 그들이 알고 있는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그들은 미개하고 너무도 가난해서 그저 굶주림에 늘 고통받는 땅일 뿐이었다. 소말리아 내전을 다룬 영화 '블랙호크다운'에서 보듯 그들은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평화의 쟁취가 불가능한 존재들이었고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다룬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보듯 문명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어린아이들마저 무참히 사람들을 살육하는 그런 무자비하고 잔혹한 대지일 뿐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뭔가를 이루어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것이 바로 전 세계가 아프리카를 보던 눈이었다. 하지만 재스민 혁명은 거기에서 사람이 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자유와 해방을 위해 용기를 가지고 떨치고 일어나 싸울 수 있는,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임을 똑똑히 보여준 것이다.

 

 그랬다. 재스민 혁명은 단적으로 아프리카가 그동안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원래 얼굴을 우리들에게 보여준 것이나 같았다. 사람들은 마치 이제 아프리카를 처음 보듯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아프리카는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현재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 윤상욱의 책 제목인 '아프리카엔 아프리카가 없다'는 바로 이러한 것을 뜻한다.

 

 

 그는 부제에다 당당히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라고 달았는데 바로 이 말이 왜 저자 윤상욱이 이 책을 저술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 마디로 그는 우리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이 자연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편견에 불과한 것임을 밝히고 이제 새로이 맨 얼굴을 드러내는 아프리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 편견들만 덧씌우는 외부에서의 시각이 아니라 아프리카 내부에서 그들의 가치관과 문화로 바라보아야 함을 이로써 나타내는 것이다.

 

 이 책은 총 5장에 걸쳐 우리들에게 가장 객관적인 그래서 가장 진실된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 장들은 현재 아프리카의 모습을 경제, 정치 문화 각 방면에서 다 조망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선 1장 '왜곡된 정체성'에서는 제목 그대로 그동안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이 모두 서구중심주의에 의해서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조작된 것임을 밝힌다. 무려 그 왜곡의 연원은 제국주의가 한창 팽창되던 18세기까기 거슬러 올라간다. 윤상욱은 당시의 대철학자 헤겔을 거론하며 서구중심주의가 그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얼마나 의도적으로 아프리카를 부정적으로 의미화 작업을 했는지 대표적으로 밝힌다. 수전 벅모스의 저서 '헤겔, 아이티, 보편사' 역시도 여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니 같이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들은 오로지 서구가 문명화를 통한 야만의 계몽이라는 미명하에 제국주의적 수탈을 스스로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기만적 술책에 의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제 아프리카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들은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안되며 그 내부로 들어가 그들 고유의 시각으로서 조망할 필요가 있음을 저자는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2장 빈곤과 저개발에서는 그 내분의 시각에서 아프리카의 현재 경제 상황을 살피고 3장 독재와 폭력에서는 아프리카의 현실 정치를 그리고 4장 심성과 편견에서는 그 내부의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바라본 그들의 문화를 얘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프리카의 경제, 정치 그리고 문화를 살펴본 뒤 현재 아프리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내전의 빈발, 경제적 궁핍, 관료와 엘리트들의 부패, 장기 집권등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전망을 마지막 장 '아프리카의 봄'에서 탐색한다.

 

 이렇게 이 책은 현재 아프리카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반적으로 훑어준다. 무엇보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면서 겪었던 체험에서 나온 내용들이라 보다 더 직접적으로 아프리카를 보듬게 하는게 커다란 장점이다. 그렇게 다시금 새롭게 보듬게 되는 아프리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아프리카와는 물론 다르다. 물론 가진 문제점도 여전히 크고 많지만 그것을 개혁하려는 그 내부의 움직임도 그 못지 않게 적극적이고 커다랗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대로 오로지 외부의 원조에만 기대려 하는 아프리카는 아닌 것이다. 아예 그들 스스로 보다 자립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원조를 거부하자는 주장까지 내부에선 제기될 정도였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왜곡에서 비롯된 편견인줄도 모르고 진실로만 생각해서 그 대상이 지니고 있을 변화의 가능성마저 미리 배제해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원조'라는 것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도 TV를 보면 아프리카를 도와주자는 내용의 프로그램들을 더러 되는데 솔직히 이 책을 읽고나니 TV에서까지 저렇게 아프리카에 도움을 운운하는 것은 별로 좋지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원조의 정당성을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아프리카의 모습만 강조하면 우리가 가진 왜곡된 아프리카에 대한 인상들은 앞으로도 더욱 더 굳어질 것임이 틀림없을테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진정한 원조란 단시 그들에게 빵을 주고 돈을 줘서 굶주림을 덜어주고 경제적 궁핍만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원조라기 보다는 적선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원조와 적선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원조는 동등한 차원에서의 배려라 할 수 있지만 적선은 오직 주는 자의 우월함만 드러내는 계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원조는 그들이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진 자를 위해 내 어깨를 빌려주듯 그렇게 같이 동등한 자로서 어려움을 나눠 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원조를 함에 있어서는 그 원조를 받는 타자를 보는 시선 역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그 타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하냐에 따라 원조의 성격 역시 규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원조의 방법 역시 결정하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엔 비단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정치적 어려움들도 존재한다. 문제는 이것이 분리되지 않고 단단히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솔직히 지금 외국의 원조한 것들 중 대부분은 지도자와 관료 그리고 엘리트들 수중으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정치적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은 전혀 도움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무턱대로 도와주는 것에 앞서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며 그 지향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아프리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한국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도움만 추구한다. 혹시 이것이 우리가 이제까지 가져온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 때문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 '아프리카의 봄'은 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고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장애물들을 극복해 보려는 내부의 움직임들을 보여준다. 비록 우리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미약하고 존재하는 해악들 앞에선 바람 앞의 촛불처럼 속절없을지라도 속단은 금물이다. 재스민 혁명은 바로 그 미약한 가능성들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것이니까 말이다. 아마도 진정한 원조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 촛불 같은 가능성들이 꺼지지 않고 그대로 밝은 여명이 될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바로 그것을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아프리카를 그 고유의 시각으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그 첫 발걸음으로 이 책 '아프리카엔 아프리카가 없다'는 참으로 유용해 보인다.

 





l****1 2012.04.09. 신고 공감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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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게 낯선 세상이 찾아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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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지금,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것에 관한 가장 쉬운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며칠 아프리카에 빠져 지내며(또다른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 중) 오랜시간 이어져 내려온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여기고 있는데, 뉴스에서 진보당에 터진 비교적 더 가까운 일들을 보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살게 해줄 이 나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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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지금,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것에 관한 가장 쉬운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며칠 아프리카에 빠져 지내며(또다른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 중) 오랜시간 이어져 내려온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여기고 있는데, 뉴스에서 진보당에 터진 비교적 더 가까운 일들을 보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살게 해줄 이 나라 정치인들이 난리인데, 아무리 아프리카 사정을 잘 알게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회의마저 들었다. 국내사정은 모르겠다. 원래 '국제' 관련 일을 하고 싶었고 언어도 되도록 많이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싶었다. 내 영역이 그곳까지 미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의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프리카는 단 한 번도 꿈꾸지 못한 대륙인 줄로만 알았다. 기후는 원래 무덥고 건조하며, 먹을 것을 재배하기는 어렵고, 운도 없게 그곳에서 태어난 아프리카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들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조금 더 커서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당연히 그곳의 실상황에 대해서나 일련의 역사적 부조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곳인 줄 알았다. 반성한다.

 

아프리카의 기후가 저주 받은 건 틀림없다. 사하라 사막이 횡단으로 가르는 아프리카는 자연스럽게 남과 북의 지리적 상황을 감수해왔다. 지금의 아프리카는 뭉뚱그려 아프리카로 일반화하기에 사정이 좀 다르다. 남아공, 에피오피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 등의 북아프리카로 나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상황으로 접하는 절대적 빈곤, 에이즈, 말라리아, 낙후된 여건 등 언론 속 모습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블랙 아프리카)의 일들이다. 사하라 사막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나타난 지리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유럽 식민지배에 의해 인위적으로 쪼개져 분할된 이후로 나타나게 된 역사적 현상이기도 하다. 원래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부족의 지배자 혹은 지도자를 선출하여 다스려온 아프리카의 민족 특성상, 유럽과 서구가 제멋대로 통합 혹은 분리를 실용노선으로 정한 다음부터는 내전과 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부족 개념의 여러 집단을 임의적으로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아무렇게나 국경선을 그으면서 부족의 역사, 인종, 종교, 특성 등을 간과하고 국가로 만들었다. 어제까지는 옆 동네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하나의 국가로 거듭났으니,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전이 있는 나라는 특히 심한데, 서구와 선진국들의 점유전쟁으로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는 돈을 벌 수 있다. 이 돈으로 한 번 지배자 위치에 오른 이들이 부정선거와 내전을 치를 무기를 구입하고 외국은행으로 개인재산 불리기를 시도하면서 끊없는 정쟁이 계속된다. 세계 각국과 UN이 원조하는 상당수 구호품들도 이런 식으로 독재자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지키는 자와 뺏으려는 자는 인종/종교/혈족 등 여러가지 요인을 시발점으로 내전을 벌이는데, 이럴 경우 피해는 가난한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되풀이되는 악순환. 실제로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날마다 당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곳이 바로 오늘날 바다에서 공공의 적이 되는 해적의 나라 소말리아다.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이며, 아주 어린 소년들이 먹고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바다를 누비는 범죄를 막을 아무런 국가적 장치를 기대할 수 없다.

 

가난, 에이즈, 말라리아, 식수 등은 사소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최소한의 것들로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부패이며, 국제사회가 아무리 모기장과 식량, 물을 보내도 소수 지도자들과 공무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아프리카인들은 자력으로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희망 자체를 잃어버렸다. 말라리아는 모기장만 제대로 쳐도 죽음을 막을 수 있는데 모기장 공수는 물론,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마을까지 운반할 도로,교통 인프라가 없다는 것, 모기장을 만드는 공장과 식용으로 쓸 우물을 파는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공사를 진행하는 국가가 발을 뺄 경우 중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던 다른 국가들도 점점 아프리카인들의 무대책과 무대응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외국에 팔기만 하면 돈을 버는 유전과 광물자원을 팔며 돈을 벌지만 자기 배불리기와 권력유지에만 신경쓸 뿐이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불거진 재스민 혁명(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벤 알리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일어난 민중혁명으로 후에 이집트 무라바크와 리비아 카다피 축출 등으로 이어지는 아프리카와 아랍 민주화 혁명의 발단이 됨)은 조금씩 사회적 의식수준이 높아진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갈망이 표출된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아프리카 및 중동 곳곳에서 진행중이며, 내전으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고 있다.

 

왜 이래야만 하는가. 앞서 얘기한 빈곤, 독재, 기후, 내전 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정치적 제도마련이 필요한 것일까. 지금까지 서술한 것만으로도 이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급격히 나빠진 게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부패, 자국의 가난을 유럽 식민주의의 잘못으로 전가하는 점, 곳곳에 만연한 종교분쟁(크게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지만 역사적으로 부족적 전통을 가진 만큼 셀 수 없는 숫자만큼의 전통 종교들이 부딪침), 도움의 손길을 가장한 선진국들의 유전/광물/시장 쟁탈전, 시민들의 질낮은 교육수준, 기후변화, 한없이 부족한 인프라와 기술, 무엇보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구조 등 총체적 난국이란 걸 알 수 있다. 아프리카를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들의 권력과 재물에의 집착이 오히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을 병들게 한다. 이들은 무조건 역사 탓, 서구 탓, 그렇지 않으면 자국의 자원을 내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한 치 고민도 없이, 자원을 더 내다 팔거나 원조를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국들 입장에서 영원토록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물론, 아프리카의 결단력이 필요한 때이다.

 

독재자를 축출하는 것만으로 민주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잎만 떨어져 나갔지, 뿌리는 그대로라서 다음 지도자가 다시 독재와 부패를 답습할 수도 있고, 군부독재가 시작될 경우 권위주의는 뿌리 뽑히기 힘들다. 실제로 재스민 혁명이 성공했으나 해당국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선거제도 역시 부정부패가 만연해 여론조사에서는 늘 당선을 예견했던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 진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다. 선거철만 되면 내전에 불이 붙고, 국내문제불간섭 원칙을 어겨서라도 UN이나 선진국이 아프리카의 선거에 관여해야 했다. 실제로도 원조 규모나 시기 등을 협상카드로 제시하며 아프리카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런 궁여지책이 얼마나 통하겠는가. 아프리카에 묻힌 자원이 유한한 것만도 아니고, 1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유럽 식민주의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한 이 대륙이 자연스럽게 민주와 풍요의 탈을 쓸 리도 없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대륙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제 전 지구촌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대륙의 크기 또한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포기하거나 내려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서구의 아프리카 쟁탈전을 염려한다. 과거 미국과 유럽이 닦아놓은 길은 유용했으나 간섭이 심했기에 아프리카로서는 마다할 제안이었다. 현재 중국은 서구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아프리카의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국영 기업들은 아프리카에 정착해 유전과 광물을 캐고 자원을 탐낸다. 값싼 생필품을 만들어 팔고, 아프리카인들은 일시적 유용을 누린다. 그들은 당장의 먹거리가 너무나도 급하기에 현재 낭비되고 있는 자국의 지하자원 같은 것들을 지킬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틈새시장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자국의 투자와 국가와 기업의 윤리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서구는 배불리기에 급급한 중국을 비난하지만 이들 또한 가능하다면 중국처럼 하지 않을 리 없다. 아프리카는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실타래는 하나씩 또 총체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국가정체성이나 국민을 지키는 마음이 아쉬운 이유다.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지금으로선 지나친 낙관론 또한 비극으로 여겨진다. 이대로라면 아프리카의 침몰에 울어줄 국가는 없을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는 있어도 아프리카 대륙을 위해 슬퍼할 진정한 친구는 없을 것이다.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아프리카 대륙에도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우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깨끗한 정치를 맡아줄 지도자가 더 많이 나타나 전통과 문화를 오롯이 지켜낼 날은 언제일까.


 

s*****d 2012.05.0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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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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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하면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 보는 다양한 동물들이 사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 혹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서 본 아름다운 풍광이 가득한 낭만적인 땅으로 기억되는 부분과 반면 미국 흑인들의 선조들이 노예로 붙잡혀 끌려온 땅 혹은 슈바이처박사가 인술을 베풀었던 곳, 그래서 개발되어 있지 않고 주민들이 기아에 고통받는 저주의 땅으로 기억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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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하면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 보는 다양한 동물들이 사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 혹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서 본 아름다운 풍광이 가득한 낭만적인 땅으로 기억되는 부분과 반면 미국 흑인들의 선조들이 노예로 붙잡혀 끌려온 땅 혹은 슈바이처박사가 인술을 베풀었던 곳, 그래서 개발되어 있지 않고 주민들이 기아에 고통받는 저주의 땅으로 기억되는 부분이 단편적으로 교차하곤 합니다. 특히 언론을 통하여 지루하게 전해지는 내란에 관한 뉴스에다가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주민들의 모습에 이어 최근 들어 늘고 있는 봉사단체들의 활동모습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현생인류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아직 가볼 기회도 없었을 뿐 아니라 얻어들을 수 있는 정보도 신문기사나 간혹 대하는 여행기 등 단편적인 것이라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올려다보이는 동전잎만한 하늘이 세상의 전부로 생각하는 버릇이 굳어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물밖 세상에 관심이 없는 탓인지 우물밖 세상을 소개하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가 우리 사회와 얽힌 이해가 별로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텍스트는 별로 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북위 10에 걸쳐있는 지역에서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을 분석하고 있는 <위도 10도; http://blog.yes24.com/document/5600465>와 같이 아프리카 문제를 깊이 파헤치는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는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윤상욱 참사관님께서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다루는 책이 별로 없음을 안타까워하다가 시작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주재국 관련 외교업무에만 머물지 않고 주재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신데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저자가 서양사를 전공한 배경도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흔히 생각하기 쉬운 아프리카의 자원과 시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리카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또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도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9쪽)”이 저자의 주 관심사가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먼저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루시(Lucy)의 발견으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시작한 땅으로 믿어지고 있는 곳 아프리카는 세계사가 시작되는 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세계사에서 아프리카는 용두사미 그 자체다.(35쪽5)”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가 세계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4대문명지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 문명도 아프리카땅을 흐르는 나일강변에서 꽃피웠던 것인데, 그저 나일강변만 단장하고서 스러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사에 다시 등장한 아프리카는 그 땅이 품고 있는 풍부한 자원들 때문에 열강의 침략을 불러들이고 이들이 입맛대로 찢기고 나뉘는 바람에 오늘날까지도 갈등이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근세 무렵부터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에 매달린 조그만 반도땅 역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니 해방 후 혼란했던 사회분위기가 정리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운명이 아프리카의 그것도 다를 게 없었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게 된 아프리카 국가들은 흩어져 있는 수많은 부족사회들을 인위적으로 갈라 국경을 긋게 된 것이 아프리카 국가들이 오늘날까지 내전으로 고통받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유럽책임론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사회가 배태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기여한 바는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서 분단의 아픔과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도 아프리카 국가의 현실에서 배워야 할 점이 적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아프리카를 조망하는데 있어 그들의 불행한 과거 그리고 그들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짚는데서 그치지 않고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저개발국가와 접촉할 때 시혜를 주는 입장이라는 우월감 같은 생각을 가지거나 무언가 얻어낼 필요 때문에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데 필요한 생각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얻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y*****2 2012.04.06.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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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의 가슴아프지만 희망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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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읽다보니 아프리카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특히 과거와 현재에 대해 지독하리만큼 사실적, 분석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아프리카를 "토로"한다. 너무나 사실적이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저자는 몸속의 뿌리깊은 종기를 피를 철철 흘리며 결국 그 뿌리까지 도달한다. 그렇게 해야만 근원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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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읽다보니 아프리카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특히 과거와 현재에 대해 지독하리만큼 사실적, 분석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아프리카를 "토로"한다. 너무나 사실적이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저자는 몸속의 뿌리깊은 종기를 피를 철철 흘리며 결국 그 뿌리까지 도달한다. 그렇게 해야만 근원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지식과 깊은 성찰로 아프리카의 노예제도, 아프리카인의 정체성, 부정부례의 근원, 환경파괴, 할례의 문제까지 민감한 주제들을 과감하게 하나하나씩 다루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다소 피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들을 일깨워주며 책의 끝을 향해 갈수록 결과를 궁금하게 한다. 마지막은 저자의 의견으로 미래를 예건할거라는기대와는 달리 아프리카 연구에 일생을 바치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허무함으로 연구를 그만둔 영국 학자를 인용하며 "미약하지만 의미있는 변화"의 중요성과 희망으로 맺는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이자 힘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 아프리카 역사책을 두 권 읽었다. 각각 한국교수, 네덜란드 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책들이었다. 이 책들에서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이 유럽 열강들이 침입하면서가 아닌 오래전부터 아랍인, 아프리카 지도자들에 의해 뿌리깊은 아프리카의 주요산업(?)이었음에 충격을 받았고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를 통해선 아랍인들이 행한 잔인한 노예무역의 참상에 충격을 받았다. 보통 역사책에선 전혀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이었다. 그뿐 아니다. "흑인은 저능한가?" 라는 문장을 서슴치 않으면서 저자는 우리안에 내재된, 그리고 흑인 자신들조차 쇄놰된 흑인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편견과 관념을 파고들기도 한다. 아직도 미국에선 '자고 일어났을 때 피부가 하얘지기를 꿈꾸는, 자신의 피부색을 평생 증오하는' 흑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이해를 못한적이 있었는데 이제 좀 이해가 간다. 이 책은 수백년간 지속되어온 백인들의 지배논리의 실체를 파해친다.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 호기심으로 첫 장을 넘기기 시작한 독자라면 이 책은 너무나 가혹한 하드코어다. 그만큼 아프리카의 슬픔, 절망적인 상황을 여과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부터 보는 습관이 있는 나는 저자의 "감사의 말"을 읽고,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하기도 전에 울어버렸다. IT업종에서 해외영업을 하며 아프리카 10여개국을 단 며칠씩 출장을 가곤 했지만 저자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써 나갔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아프리카에 대한 책이 아니다. 아프리카를 넘어 서양, 아시아 등 세계 전체의 역학 관계를

다루며 독자 개개인에게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숙제를 던져 주는 것 같다.

 

이제 3주후면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서 나이지리아에 적을 두고 일을 하기 위해 떠난다. 물론 일을 넘어서 "미약하지만 의미이는 변화"를 위해 작게나마 내 열정을 아프리카에서 발현하고 싶은 꿈이 있다. 물론 원조, 자선 사업이 아닌 아프리카를 위한 올바른 사업을 통해서이다.  

아프리카로 떠나기전 이 책을 만난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한국인으로서 저자가 참 자랑스럽다.

앙골라 출장 시 방문한 앙골라 대사관에서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오히려 나를 격려해준 외교관 분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그리고 아프리카는 희망으로 가득찬 것 같다.

 

y***y 2012.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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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비극에서 한국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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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느리다. 요즘 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시류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책을 골랐다면, 당신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다. 책이 느린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쓰기가 어렵다. 주제를 정하기가 어렵고 구성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뿐만 아니라 출판 후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여러모로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다. 책이 무거운 이유는 쪽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이 모든 책임과 의무가 한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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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느리다. 요즘 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시류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책을 골랐다면, 당신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다. 책이 느린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쓰기가 어렵다. 주제를 정하기가 어렵고 구성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뿐만 아니라 출판 후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여러모로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다. 책이 무거운 이유는 쪽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이 모든 책임과 의무가 한 쪽 한 쪽 켜켜이 쌓여 단단한 무게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럼 왜 책을 봐야 하는가? 책에는 시류를 초월하는 깊이가 있다. 신문은 하루살이 인생이고 잡지는 한달 짜리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책은 백년을 간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자식에서 또 그 자식으로 누누히 읽혀 내려지는 건 책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이 시류를 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발빠른 신간이라면 중요한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책이 많이 나올수록 사회는 더 똑똑해진다. 속도와 깊이를 겸비한 책 만큼 인간의 지성을 살찌우는 건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아프리카가 없다'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 책이 2011년의 가다피 축출(리비아의 독재자)을 다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릿적 얘기가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2011년이라면 엄연히 과거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좀 봐주시게 그래도 아직 4월이지 않은가.


이 책은 불행한 노예 무역이 시작됐던 15세기 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 역사의 요점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쪽은 현재이며, 역사를 정치와 문화로 나눌 수 있다면 방점이 찍히는 쪽은 정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아프리카의 기아, 폭력, 독재가 모두 현재의 일이며 그 모든 것들이 저급한 정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정치는 실로 암울하다. 아니 암울하다는 말조차 과분하다. 국제 원조는 매년 수십조가 투입되지만 부패한 국가 지도자들은 그 돈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열중한다. 그들이 탐하는건 원조금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초거대 다국적 기업과 신흥 경제 대국들은 아프리카의 석유, 다이아몬드, 철광석 등 양질의 천연 자원을 노리고 부패한 지도자에게 검은 돈을 뿌린다. 아주 싼 값에 자원 채굴권을 넘긴 지도자들은 그 돈으로 무기를 산다. 그리고 그 무기는 독재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살해하는 군대를 무장시킨다.


우리가 이 책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끔찍한 아프리카의 현실이 대한민국 근대 역사와 쌍둥이처럼 닮아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와 내전, 수십 년간의 독재, 군대를 동원한 국민의 학살.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곰곰히 살펴 볼 때 마다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극복한 듯 보이는 대한민국이 실제로는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현정권의 인천공항, KTX 매각 건이나 최근의 지하철 9호선 사건만 봐도 이는 분명해진다. 공권력을 이용한 폭력은 물대포 진압과 쌍용 자동차 파업 해산을 보면 확실해 진다. 정치 검찰을 동원한 야권 탄압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국민은 여당을 숭배하고 있으며 그 마음을 선거를 통해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현재는 또 다시 과거를 향해 질주한다. 저자는 '아프리카 비극의 출발점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치 문화에 있다'(176p)고 했는데 과연 여기서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대한민국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나는 정말로 자신이 없다. 


물론 이 책이 한국의 정치를 비판하기 위해 씌인 책은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아프리카의 불우한 현실과 그 원인을 냉정하게 짚어볼 뿐 그것을 한국의 현대사와 무리하게 연결해 독자를 정치적 가치 판단의 혼란 속으로 몰아 넣지 않는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아마도 그 자신이 아프리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쭉 보고 있으면 그런 애정이 곳곳에서 드러나 책을 읽는 내내 진지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 우리가 아프리카를 주목하는 이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경제적 미개척지로서의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거나 그 대륙을 남의 도움 없이는 도무지 회생 불가한 낙오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프리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가진 오래된 역사를 떠올리지 않는다. 고대 문명의 어머니 아프리카는 그렇게 기아와 내전과 부패와 가난에 압사해 버렸다. 


이 책의 부제인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는 결코 과장된 언어가 아니다. 저자는 상기되어 있되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애정어린 손길로 해체한다. 아마도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해체된 잔해 속에서, 우리는 아주 밝게 빛나고 있는 아프리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s*******r 2012.04.2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