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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책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자꾸 발목을 잡는 소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거지 소녀>로 이름이 향긋한 로즈와 플로가 등장한다. 언뜻 보면 새엄마와 딸의 애증 관계 같지만 딸의 유년에 알게 모르게 드리운 그림자이자 세상을 인지하는 기틀을 제공한 원점으로 존재한다.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계속해 고향집을 지킨 분으로써 멀리 떠나서도 한번쯤은 들여다봐야 할 사이인 것이다.
이 책을 펼치기 전 망설였던 시간이 아깝다. 내가 편견과 개인적인 취향으로 똘똘 뭉친 사람임을 여실히 확인했다. 사십년 전 집필된 이야기.. 제인 에어를 연상시키는 제목.. 거기에 지금 식으로 하자면 연재소설.. 원서 이북으로 두 편 읽고 마저 읽어야 하나(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일까 봐) 계속 의심하다 번역서로 끝까지 읽고 확신이 들어 다시 종이책 원서로 읽었다. 그리고 왜 앨리스 먼로를 단편소설의 어머니라고 하는지 알겠다며 호들갑스러운 증언을 이어가는 중이다. 잘 만들어진 체홉의 글을 연상시키고, 괴기하고 병적이진 않으나 에드거 앨렌 포의 단편소설의 원칙, 즉 단 하나의 강렬한 효과를 내기 위해 모든 것이 조력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아이가 매를 맞기 전 돌아서는 주방용품이나 악덕 주인과의 재회에 앞서 코피를 쏟아내는 몸의 기억이 긴 서술을 대신한다.
<거지 소녀>는 꽉꽉 눌러쓴 뒤 접어놓은 부채 같은 소설이다. 또 언제 다시 읽느냐며 읽고 있으면서도 아쉬웠다.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번역서(의 숙명)와 달리 끝까지 단정하고 버릴 게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궤가 딱딱 맞고 이거이면서 저거인 이중주가 곳곳에 넘쳐난다. 너는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문장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감싼다. 도드라져서도 반대로 모자라서도 안 되는 세상의 예리한 기준을 대입했다. 비유는 어쩜 이리 정확하게 뇌리에 박히는지, 그리고 심리묘사나 내적 고백은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깊었다. 지난 이십년 동안 만난 남자의 반밖에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심장을 비틀었다. 애써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는데도 인간의 외로움이나 저면 저 끝을 관통한다. 우려와 달리 기시감이 들거나 통속적이거나 하지 않았다.
왜 이리 이 소설에 녹아드는지 이유를 헤아려봤다. 우선 여러 주제를 절도 있게 담았다. 오십을 향해가는 중년 여자의 삶을 진부하게 다루지 않는다. 시간 순으로 썼다면 수기처럼 느껴져 매력적인 서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사람의 일생을 교차하는 출신과 배경, 시골 마을과 지방색. 재혼가정, 대공황과 전쟁 이후의 삶, 성에 따른 사회진출의 유리벽, 노년과 사회 시설(home)의 문제까지 두루 내다본다.
게다가 한 인물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렵게 어른이 되고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노년까지, 우리의 삶이 어떤 사람을 모방하고 흠모하다 결과적으로 자기다움에 이르는 그 좌충우돌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애초에 무대 위 배우가 꿈이었던 소녀가 마침내 그 꿈 어딘가에 이르는 여정을 완전한 환호 없이, 긴 열차 여행처럼 그린다.
초기작이라 문장이 난해하지 않고 디테일이 오감을 장악한다. 그렇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만약에(would)에 해당하는 가정과 추측, 사유가 많아진다. 내가 내 소신대로 사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그녀가 결혼생활로부터 이탈해 겪는 자발적인 수난이나 커리어에 대한 고민, 딸의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정, 서투르긴 하나 새엄마와 고향을 다시금 돌아보는 장면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로 들렸다.
원래 소설은 허구와 가공의 세계로 현실에서 놓친 부분을 새로이 상상으로 지어 가능세계로 꾸리는 장소라고 생각했었다. 앨리스 먼로가 작품을 쓸 당시에는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여자의 외도나 객기로 여겨졌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는(?) 로즈의 고민과 고군분투를 내 것으로 수용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남자와 여자를, 가진 자와 없는 자를 둘러싼 차별의 벽을 은밀하고 세련되게 고발한다. 로즈와 비슷한 출신이지만 엄마처럼 자신을 살피는 조슬린을 만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도 결혼생활도 그르치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도 많은 걸 시사하고, 같은 교직에 있으면서도 추문과 시기 질타의 수준이 다른 상황도 당시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 시절 막 일어나기 시작했을 감정을 일찌감치 그린 탓일까 읽는 내내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 힘이 실리고 로즈가 전사처럼 보였다. 무장하지 못한 채 전방에서 날아드는 총알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그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 여성이 개인으로서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걸어가다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하고, 때론 버스와 기차를 타고, 이어 자가용을 몰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 그 이동성이 나를 매료시켰다. 너무 많은 생각 뒤에 숨어 한발 떼기조차 두려워하는 나와 달리, 자유인이면서도 스스로를 구속하는 변명과 구실로 뒤범벅인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계속 전진한다. 옆 뒤 보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절박함이 그녀의 삶에 줄곧 따라붙는다. 우리네 삶도 좀 멀리서 잡으면 하루하루가 치열한 모습일까. 과연 그럴까.
<거지 소녀>의 압권은 이야기가 앞으로 확 질주하지 못하고 겨우 겨우 한 역씩 거쳐나가는 기차 같다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내 자신이 되기 위해 모든 것과 멀어져야 하는 내림의 시간도 있다. 남의 눈에는 자기만 생각하는 연극적인 과도함으로 비춰지지만 한번뿐인 삶에서 고유한 나로 존재하고 내가 누군지 알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아가는 한복판에 로즈는 홀로 서 있다. 어떤 앞사람도, 곁사람도 롤모델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걸어가 보는 것.. 그전까지 누군가를 막연히 갈구하던 것에서 벗어나 가닿는 고지, 그것은 남의 눈에는 황량한 절벽일 수 있으나 그녀의 삶에선 온전한 자유이자 자기됨을 구현하는 짜릿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비록 찰나라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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