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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는 우리나라에서 칠레라는 나라가 가지는 이미지와 비슷하게, 아리엘 도르프만이 “잘 알려졌다고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지점에 놓여 있는” 작가라고 하고 있지만, 나는 이 이름이 낯설다(그런데 아리엘 도르프만이라는 작가는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 낯선 이름의 작가가 쓴 회고록을 펴든 이유의 팔 할은 이 책의 부제 때문이다. “칠레와 미국, 두 번의 9.11 사이에서”. 미국의 9.11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고, 다른 9.11은 무엇일까? 칠레의 9.11. 바로 1973년 9월 11일. 그보다 3년 전 칠레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자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로부터 3년 후 아옌데 대통령에 의해 참모총장으로 임명된 피노체트 장군은 미국 CIA의 후원(사주?)을 받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총을 들고 싸우다 폭격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바로 9월 11일의 일이다. 저자는 바로 그 9.11 이후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던, ‘아메리카의 망명자’인 것이다. 망명자의 회고록이 재미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다시 찾은 칠레의 민주화 이후에 망명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다시 미국의 9.11을 얘기하고 있을까? 그런 게 궁금했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그 칠레의 9.11 당시 대통령의 문화 담당 보좌관이었다. 그는 그 날 대통령궁에 있질 않았다. 덕분에 살아남았고, 당(이미 지하로 숨어든)의 명령에 따라 해외로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된다. 우선 아르헨티나로. 그곳에서 암살 추적자를 피해 파리로.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그리로 미국으로(멕시코로의 망명을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망명 생활은 이어진다. 미국으로의 정착은 그에겐 아이러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민의 물결과 함께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그래서 아리엘 도르프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자랐다). 당시 미국은 메카시즘의 나라였기에 명백히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미국을 떠나야 했다. 그래서 정착한 곳이 바로 칠레였다. 도르프만은 그래서 칠레인이 되었다. 아옌데 혁명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쿠데타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떠나서 결국 정착하고, 그리고 시민권까지 얻은 곳이 그 쿠데타를 사주한 미국이었던 것이다.
이 지난해 보이지만, 어쩌면 단순해 보이는 여정만으로 이 책 한 권을 채우고 있지는 않다. 물론 파리와 암스테르담에서의 암울하고 비루한 망명객의 생활도 있지만, 주는 피노체트가 실각한 후 1990년 칠레로 돌아온 후의 일기이고, 또 현재 시점(2010년)의 회고다. 1990년 그는 칠레에 정착할 것을 마음먹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6, 7개월 간 써 내려간 일기에는 칠레에 대한 애정과 함께, 칠레에 대한 실망감이 함께 한다. 그리고 가족. 가족들은 떠나기를 바랬고, 그도 떠난다. 망명을 떠나면서, 망명 중에도 하루라도 빨리,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 칠레였으나,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시점에서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 그리고 현재를 다시 바라본다. 온갖 기억들과 함께 떠오르는 상념들. 그건 이데올로기가 아니었고, 혁명의 대의도 아니었다.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중 언어자의 온갖 생각들.
그런데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가 미국의 품으로 돌아간 것은 아이러니다. 그 나라가 레이건과 부시의 나라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의 나라였지만(지금은 다시 트럼프의 나라가 되었지만), 어쨌든 쿠데타의 배후에 있던 국가의 국민이 되기 위해 충성 맹세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회고록은 반성문 같기도 하고, 변명 같기도 하고, 혹은 선언문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이 망명자의 삶과 생각에 대한 공감 때문인지 착잡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라면 좋은 책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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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자신을 고국인 칠레으로부터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던 파리로 도망치게 만들었던, 칠레를 깊고 긴 독재 국가로 변하게 한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의심되던 망명지 국가에 정착하게 된 아리엘 도르프만은 어떤 기분일까. 민주화된 칠레 대신 미국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정착하게 되는 칠레. 그러나 민중을 위한 희망을 안고 하나둘 칠레를 일으켜세우던 아옌데 대통령은, 이를 방해하는 미국과 글로벌 대기업의 모략 앞에서 힘겨워 하다(아옌데 대통령 집권 이후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칠레 경제는 악화된다) 결국 그들의 지원에 힘입은 삐노체트와 그의 군대가 일으킨 쿠데타에 저항하다가 끝내 자살을 선택하게 되고, 그를 지지하고 도왔던 젊은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은 정치적 박해와 살해 위험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칠레에서 떠나게 된다. 이 책, <<아메리카의 망명자>>에서 아리엘 도르프만은 그 어쩔 수 없었던 도피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하며, 망명지에서의 만남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 사이 칠레에서 벌어진 일들을 언급하며 자신의 희망, 문학, 가족, 동료과의 기억을 회고하며 끝내 미국에 정착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되새긴다. 시간과 망명에 관한 메모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일평생 나라를 세번이나 잃었으므로, 인간이란 존재에 으레 동반되는 자기성찰의 노력이 내 경우에는 숱한 도착과 귀환과 출발이라는 분절을 통해 자라나고 성숙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모든 기억하는 행위, 모든 회고록이 맞닥뜨리기 마련인 자연적인 복잡함이 한층 가중되었다. 육체로만 보면, 그리고 출생, 결혼, 사망, 비자, 세금환급, 추방, 신분증 같은 것을 기록하는 관료에게는, 삶이 연대순으로 펼쳐질지 모르지만, 기억은 그런 식으로 게임을 하지 않고 말끔함을 향한 욕망을 늘 어떻게든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기억의 미궁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길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싸움을 따라가느라 혼란을 느낄 독자를 위해 마지막에 주요 사건들을 얼추 순서대로 맞추어 놓은 연표를 덧붙였다. (9쪽) 책을 펼치면 마주하는 <시간과 망명에 관한 메모>에서부터 문장은 무겁고 신중하며 표현 하나하나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그만큼 그 시절을 회고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고 어려웠던 일이었을 게다. 그 자신은 운 좋게 살아남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가 되었으며, 자신의 두 아들도 잘 성장하였고 자신의 고국, 한때 독재 치하의 고통스러웠던 칠레도 이제 평화로워 보이니, 그 회고가 조금은 편하지 않았을까. 그의 희망대로 칠레에 정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칠레에 정착하지 못하고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칠레 역사 상 최초 여성대통령이며, 39대, 41대 두 번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했던 미첼 바첼레트가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 책은 망명자의 어떤 아픈 회고를 담게 된다. 오랜 세월 타국을 떠돌았던 망명자가 고향에 대해 꿈 꾸는 것과 고향이 변해가는 건 전혀 다를 것이니, 그리고 이미 그의 세대는 지나고 이제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아리엘 도르프만은 칠레 대신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을 지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왜 아리엘 도르프만이 미국에 남게 되었는가를 한 번 묻는 것도 흥미로운 접근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쓰는 일이 내 치유과정이었고 내 삶이 어떤 모습이 되었는가에 대한 미 울띠마 빨라브라, 내 마지막 말이다. 이 페이지들은 이제 그만 되돌아보기 위해 되돌아보는 시도이고, 말로 만들어진 묘지에서 마침내 누워 안식하려는 시도다. 내 안에 있는 서글픈 어떤 것이 편히 잠들기 위해서는 과거에 제대로 된 장례를 지내주어야 한다. 나와 더불어, 그리고 서로와 더불어 평안해진 내 두 언어처럼. 비록 매번의 화해가 힘든 순간을 동반하고 무엇을 바라야 할지 조심해야 하지만. (464쪽)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지 않지만, 이 책이 정치적 박해로 인해 떠나게 되는 망명객의 삶, 그리고 그들의 희망에 대해 조금은 더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또한 아리엘 도르프만,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20세기 후반 라틴 아메리카가 낳은 최고의 작가를 알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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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아름답다. 칠레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 우리의 과거도 조명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화는 순탄하지 못했고 또한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는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는것을 자각하게 한다. 망명자의 고독과 고뇌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리얼하게 표현되어있는것이 또하나의 특징이다. 다만, 한가지 흠이 있다면 번역이 부드럽지가 못하다. 옥석의 티라고나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