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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수십 년을 다녔지만 『話頭(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김용옥, 통나무, 1998년9월 1판)에서 김용옥씨가 『碧巖錄(벽암록)』에 대해 말한 것을 들어보기까지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원래 『벽암록』은 北宋(북송)초기의 설두중현(980-1052)의 편저인 『설두송고』중의 本則(본칙)과 頌(송)에 대해 北宋(북송)晩期(만기)의 원오극근(1063-1135이 垂示(수시)(법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일종의 문제제기)·著語(착어)(한두 마디로 상대를 격발시키는 간단한 평가)·評唱(평창)(본칙과 송에 대한 설명)을 붙인 것을 일컫는다.
이 책은 『벽암록』에 대한 번역으로 海印寺(해인사) 白蓮庵(백련암)에서 성철 큰 스님의 뜻을 받들어 禪(선)을 올바로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든 禪林古鏡叢書(선림고경총서)의 한 권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번역자가 누군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白蓮禪書刊行會(백련선서간행회)라는 두루뭉실한 이름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話頭(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라는 책에 보면 이 책의 번역자는 김용옥씨의 동경대학 중국철학과 직계후배인 연세대교수 신규탁씨라고 한다.(p. 41) 『벽암록』이 전부 100가지 이야기인데 김용옥씨의 책에는 6가지 이야기의 해석에만 그치고 있어 전체를 읽기 위해 구입해 보았다.
그런데 김용옥씨의 글이 적극적으로 『벽암록』을 해석한데 비하여 신규탁씨의 글은 단순히 번역만 해놓아서 많이 공부를 하여 『벽암록』을 잘 이해한 사람이 보면 모를까 나같은 초심자는 한글로 번역된 문장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 것이 아마도 1993년 초판인 상·중·하 세 권 중에서 상권만 조금 팔리고 하권은 초판인 채로 1998년도에 내가 살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한문원문이 나오고 어려운 한자에 토를 달고 해석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그냥 한글로 죽 번역만 해놓아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禪家(선가)에 '줄탁동시'(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깨고 나오려고 쪼는 힘과 어미 닭이 알을 깨기 위해 쪼는 순간이 같아야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다)란 말이 있는데 밖에서 깨기 위한 노력은 있는데(신규탁씨의 번역) 안에서 깨기 위한 노력(나의 수준)이 안되어서 깨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만일 이 책을 널리 읽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독자가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해도 안되는 사람은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출판권수만 채우면 되니까 '볼려면 보고 말려면 마라'식의 출판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미리 공부한 先學(선학)으로서 책을 읽고 느낀 所懷(소회)를 이야기해야 보고 느낄 것이 아닌가.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던지.
제발 아는 것 숨겨두지 말고 속시원히 털어놓아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한자로 된 법전을 읽기 쉽게 한글로 고쳐놓았다고 해서 법률내용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법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내용을 알아야 읽히지. 한문을 단지 한글로 글자만 옮기지 말고 뜻을 옮겨주었으면 한다. [인상깊은구절] 말이란 도를 담는 그릇일 뿐인데, 옛사람의 뜻을 전혀 모르고 단지 말만 따지니 어찌 핵심이 있겠는가? 듣지 못하였는가? 옛사람의 "도란 말이 아니나 말로 말미암아 도가 나타나는 것이니, 도를 깨닫고 나서는 곧 말을 잊어야 한다"는 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