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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서사의 만남, 그 운명적 균열(龜裂). 헤어지기 위해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히면 반드시 파열음이 날 수 밖에 없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였던 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는 류의 아버지는 잃어버린 길을 걷다가, 사랑에 빠진 여인에게 매혹되어 결혼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혼 이후의 세계는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더 이상 매혹을 던지지 않는 차디찬 현실의 세계, 서사의 세계였기에 류의 어머니와는 달리 자신이 먼저 공부하는 것이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서사의 세계를 선택한 류의 어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녀의 딸인 류에게 “류, 사랑하는 사람은 동등해야 해. 빚이 있는 관계에서는 아무리 사랑을 품고 있어도 그것을 나눠가질 수 없어. 한쪽이 빚을 진 상황에서 사랑은 회복되지 않는 거야. 그럼 빚을 갚으면? 류의 질문에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빚을 갚은 뒤에는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 (p. 9) 라고 말했다. 그녀는 류의 아버지의 빚 갚음과 사랑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류의 아버지는 빚을 갚지 않았다. 이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그에게 있어 빚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달려오는 기차처럼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이혼이라는 이름의 균열(龜裂)은 예고된 것처럼 찾아왔다. 매혹이라는 색안경을 벗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부모의 나라에 이방인으로 온 류에게 요셉은 첫 번째로 사랑을 고백해온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 너머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깊이 오열하던 류가 눈물을 멈췄을 때 요셉은 불현듯 옆에 서 있었다.” (p. 239) 류의 부모가 만난 것처럼, 류와 요셉도 이렇게 만났다. 이미지 세계에서의 매혹이란 그런 것일까? “세상 끝까지 가보자는 요셉의 약속은 류에게 축제의 해방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요셉은 매혹된 자의 맹목으로 류를 자주 행복의 충동 속으로 빠뜨렸다. 젊은 예술가의 재능과 열정을 동원하여 발길이 닿는 곳 어디에서든 사랑에 빠진 자들만의 완벽한 독립기지를 건설해냈다. (하지만) 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세상의 끝은 S시가 아니었다. 열정이 끝나는 지점이었다. 매혹은 지속되지 않으며 열정에는 일정한 분량이 있다. 그 한시성이 그들을 더욱 열렬하게 만든 것이었다. 류는 그들에게 주어진 매혹과 열정의 시간이 끝나버리는 날 자신이 혼자 비행기에 실려 돌아오리라는 걸 예감했다. 둘 다 뜨거웠지만 류는 요셉과 달리 자신을 속이지 못했다. 매혹이 사라진 이후의 사랑은 어머니처럼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세계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pp. 240~241)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행길을 걸어가면서, 다른 남자와 통화하는 류의 어머니를 보며 사랑에 빠졌던 류의 아버지처럼, 매혹으로 비롯된 이미지의 세계에 뿌리를 둔 요셉이었기에 류와의 만남이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록 요셉 스스로는 인정하지 못할지라도. 그렇기에 매혹이라는 색안경을 벗게 된 류가 요셉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그들이 만나는 순간 예정되었을 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