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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쉽다는 게 아니라 쉽게 읽히는 시가 있다. 내 마음, 내 눈이다. 시는 어려운데 쉽게 읽히는 시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쉬워 보이는데 쉽게 읽히지 않는 시도 있다. 이런 때가 약오른다. 한번 보고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게 또 좋은 건지 아닌지도 함부로 말 못하겠다. 한번만 봐도 좋은 시가 있고 여러 번 봐야 좋은 시도 있게 마련이니. 이번 시집은 쉽지 않다. 이제까지 이 작가의 시들을 쉽게 읽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래서 편하게 넘기자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 편 한 편, 한 줄 한 줄, 줄다리기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대부분 내 쪽에서 끌려 가며 쓰러지다가 끝났다. 옮겨 적지도 못했다. 얼마나 더 찾아 보아야 할까. 무엇보다 시인의 호흡이 길어졌다. 게다가 해설의 제목에도 있다시피 은유로 울타리를 세워 놓은 탓에 들어서도 들어선 줄 모른 채로 떠다녔다. 하지만 좋은 느낌만은 유지하게 된다. 한 줄 읽고 모호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괜찮은데? 빨려 들어가는 느낌인데? 나도 이 말 안에 잠기고 싶은데? 아프고 화나고 부질없어지는데? 거듭 끄덕였다. 울고 싶을 때 읽으면 더 잘 울 수 있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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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안도현작가의 연어 특별판 (한/영판)을 소장본으로 구입하였는데, 그 이전에 백석평전도 구입하였습니다. 좋아하게 만드는 작가인 듯 합니다.
- 북항 :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이 해안 도시는 따뜻해서 싫어 싫어야 돌아누울 북항/ 탕아의 눈 밑의 그늘 같은 북항...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였다. - 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 : ... 열몇 살 때 그 집 뒤뜰에/ 내가 당신을 심어놓고 떠났다는 것 모르고 살았네/ 당신한테서 해마다 주렁주렁 물방울 아가들이 열렸다 했네/ 누군가 물방울에 동그랗게 새겼을 잇자국을 떠올리며/ 미어지는 것을 내려놓으라 한동안 아팠네... - 파종의 힘 : ... 나는 누군가 나에게 흔들리는 옥수수 그림자를 경작하는/ 사람이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간신히 이를 가지런히 내보이며 파종의 힘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젖은 길과 마른 지붕... 쓰러지는 나무와 일어서는 눈보라/ 취하는 술과 취하지 않은 비탈/ 납작한 빵과 두꺼운 가난/ 아픈 동생과 아프지 않은 약... 산 너머/ 아버지를 넘어, 가는 소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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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직도
많지 않은 몇개의 글자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시인의 재주에 박수가 나온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해놓고 벌써 5년이나 지난 시집을 신간처럼 받아서 펼쳐 보았다.
꾹꾹 함축해 눌러쓴 단어에서 차마 말하지 못한 혹은 보태지 못한 마음들이 보였다.
시집을 읽는 내내 좋았다. 책꽂이에 꽂아넣기까지의 시간이 훌쩍이었다.
오늘 비가 와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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