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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대형 스포츠 경기 따위의 유치로 경기를 부양하는 전략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 지역에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지은 경기장은 철저히 외부에서 들어온 자본을 위한 것이요, 유치한 대회가 종료되면 그때부터는 경기장과 그 부대시설을 관리하는 비용이 적잖이 들어가 오히려 손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와 같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열린 2002년 월드컵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시아에서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데다가 한국팀으로서는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팀의 빨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광화문 한복판을 가득 메운 모습에 몇몇 이들은 ‘레드 콤플렉스의 극복’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으며, 남성들의 군대 축구 이야기가 가장 듣기 싫다던 여성들이 축구장에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한데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4년에 한 번씩 대륙이 들썩이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그 시절과 같은 환호를 다시 한 번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을지 싶다. 기적과도 같았던 월드컵. 그에 얽힌 이야기에서부터 저자는 책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수려한 용모로 주목을 받아온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영웅으로까지 불리게 된다. 미국전과 이탈리아 전에서 연달아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한국팀을 이끌었기 때문인데, 16강을 뛰어넘어 8강으로 이끈 당시의 축구공은 행방이 묘연했다고 한다. 당시 주심을 맡았던 바이런 모레노 심판이 이를 소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저자는 직접 에콰도르까지 날아가 공을 환수하기에 이른다. 그의 활약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홍명보가 마지막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시키며 환호했던 스페인과의 경기를 다들 뚜렷하게 기억할 것이다. 이 경기의 공도 경기 직후 사라졌으니, 저자는 8강볼 환수 이후 칭찬을 받기는커녕 4강볼도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독촉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에도 해당 경기의 주심이었던 이집트의 간두르가 이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돈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들여 이집트로 날아간 저자는 4강볼을 한국으로 가져 오는 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큰일을 해낸 저자는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축구와 관련 있는 다양한 물건들을 수집해온 축구 수집가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는 그는 축구 전문 월간지인 ‘베스트 일레븐’에서 이사를 맡고 있다고도 한다. 말 그대로 축생축사,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여태까지 모아온 많은 물건에는 저마다 깃든 이야기가 있었다. 당연히 이에 얽힌 이야기도 많았다. 현재 최고의 선수로 여겨지고 있는 메시는 물론 펠레, 에우제비오, 라이언 긱스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쩍쩍 벌어지는 선수들과의 만남이 그저 부러울 다름이었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가 만나온 대부분의 선수들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했다. 선수들만이 아니라 주심도 마찬가지였으니, 자신에게도 한없이 소중할 물건들을 오로지 축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어놓는데 참으로 신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서글픈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었다. 지금도 의아하게 여겨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월드컵에서의 북한의 선전이다. 항상 최고의 실력을 겸비해온 이탈리아 팀을 너무도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당시 북한팀에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은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에서 북한을 만났을 때 필승을 하고자 조급히 꾸린 양지 팀의 이야기는 경직되어 있던 남북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105일 간의 해외전지훈련도 북한팀 더 나아가 북한 정권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스포츠는 정치였다. 전쟁 직후 열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관한 이야기는 서글프기 짝이 없다. 월드컵에 참여한 선수들은 천신만고 끝에 대회 개막 바로 전날 겨우겨우 스위스에 도착했고,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던 헝가리와의 첫 경기에서 무려 0:9라는 참패를 당하고야 말았다. 경기를 치르기 위한 이동과정과 스코어도 서글펐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분노케 만드는 것은 바로 스위스 월드컵의 공식 팸플릿 표지다. 본선에 진출한 16개국의 국기가 그려진 팸플릿에는 우리나라의 태극기가 없다. 전쟁에서 갓 벗어났고 내세울 건 가난 밖에 없어 보이는 약소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 바로 이 팸플릿이다. 모두가 무시했던 변방의 국가가 반세기만에 월드컵에서 4강에 들 것이라고 어느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도 월드컵 실력이 별 볼 일없거늘.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 호 승무원들에 의해 처음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축구다. 1910년대에 이미 반도풋볼제조소라는 곳에서 축구공을 만들어 특별염가에 판매했다는 사실이 홍보물을 통해 입증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축구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미 잘 알고 있다. 축구는 단순히 공을 발로 차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소통의 또 한 방법이다.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축구 용품을 수집하는 저자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통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축구 역사와 관련 있는 물품들이 그렇게 우리나라로 하나둘씩 되돌아오고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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