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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추적자에 빠져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치만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한 내용들이 더욱 많아서 그런것도 있을것이다. 지난 일요일 몰아보기로 추척자를 1회-12회까지 보고 든 생각은 "권력이 무엇일까" 와 가난때문에 사람들은 성공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성공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중 강동윤, 신헤라,서회장등 모두들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 권정생 님은 가난을 외친다. " 모두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가난을 지켜야 한다. 가난만이 평화와 행복을 기약한다. 가난이란 바로 함께사는 하늘의 뜻이다." 민주주의도 가난한 삶에서 시작되고, 종교도 예술도 운동도 가난하지 않고는 말짱 거짓거리밖에 안됩니다." 라고 책중에서 말하고 있다.
태어나면서 부터 가난과 함께 살아온 그의 삶을 보면 도저히 가난 예찬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난때문에 형제와 이별하고 , 병들고, 주위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공에 목숨걸거나 자신의 위안을 먼저 돌보게 되는데.... 더군다나 어린이를 위한 동화작가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그의 글을 읽게 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분은 왜? 이렇게 가난예찬론을 이야기 하신 걸까 라고 ...
(몽실언니), (강아지똥) 이 국민문학의 반열에 올라와 있다는 이력말고도 그의 에세이집을 대하게 되면 인간이 지켜야할 정신과 마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인간은 이렇게 살아돼 저렇게 살아돼가 아닌 본인이 느낀 체험담을 통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고구마 가게 종업원으로 있으면서 고구마 무게를 속이고 팔라는 주인의 강압으로 장사를 하면서 그도 조금씩 사람들에게 대한 죄책감이 없어진다. 어느날 그가게에 어머니가 고구마를 사러 오신거다. 고구마를 가을 운동회에 팔아보려고 말이다. 그때 무심코 다른 손님에게 하듯이 무게를 속이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순간 자기가 숨겨왔던 죄책감이 들면서 어린시절 동화속에서 보았던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구마 가게를 그만두게 된다. 나같으면 그만두게 될까? 아니다 . 우리식구에게는 제대로 정량으로 주고 계속 사람들을 속였을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한다. 나쁜일을 하면서 계속 그일을 할 수 있는것은 내자신에게 체면을 걸거나 , 그순간에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잠시 접어둔다. 얼마전 육식동물의 고통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공장형 가축에서 동물들의 학대가 가장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 다니는 사람들이 악한 사람일까? 아니다 . 평범한 사람이다. 그들의 지역사회에서 다닐수 있는 공장은 그곳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장소가 아닌 그곳으로 갈수 밖에 없는 장소며 일터이며 생계이다.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그공장으로 갈때 동물에 대한 연민 동정심등을 억누르고 일하게 된다. 그러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억압받는 감정의 반 작용으로 동정심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더잔인하고 무서워진다고 심리학자는 말했다. 그래서 더욱 동물을 학대하게 된다고 말이다. 이처럼 환경의 선택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 지배를 받는 동물인 우리 인간이 이곳에서 벗어나면 가난하게 살것을 아는 순간 환경에서 못벗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권정생 작가님의 삶은 가난을 알고 가난하게 살아왔으면서도 인간의 양심은 지키려고 평생 노력하셨다. 인간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마 가난한 생활에서 이렇게 따스한 글들이 나왔을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이 떳떳하다고 말할때 우리는 허세를 부리거나, 자신이 성공할수 없기 때문이라고 조롷하게 된다. 이분을 글들을 읽게 된다면 가난한 그보다 내자신이 더 가난함을 정신적으로 느끼게 된다. 조그마한 언덕에 조그마한 집에서 살면서 큰 마음과 사랑으로 남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한 그의 책을 만나 너무나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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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마다 리뷰를 남기는 것은 아니지만 리뷰를 써야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이 드는 책이 있다. 그것도 책에서 느꼈던 감동이 일상에 희석되지 않도록 서둘러 써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런 느낌은 책을 공짜로 제공받았기 때문에 정해진 기한내에 써야만 하는 의무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리뷰를 채 쓰기도 전에 책에서 느꼈던 진한 감동이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나 스스로를 재촉하는지도 모른다.
내게 <빌뱅이 언덕>은 그런 책이었다.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이다.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작가라고 하면 '아, 그 분!'하고 무릎을 칠 사람들이 대다수일 듯싶다. 그만큼 선생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이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아이가 있는 집에서 선생의 책 한두 권쯤 갖고 있지 않은 집도 드물 것이다. 우리집에도 아들녀석이 어릴 적에 읽었던 선생의 작품이 족히 서너 권은 넘을 듯싶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선생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잘 나가는 동화작가려니 생각했었다. 그게 다였다.
빈약한 정보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선생의 삶을 조금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삶을 몇 마디 단어로 집약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느꼈던 선생의 삶은 가난과 질병, 지구 환경에 대한 염려와 조국 통일의 염원, 그리고 유년기에 만난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물론 선생으로부터 동화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죽음도 그렇지만 가난이나 질병도 매한가지로 보편적 가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닝 커피를 마시면서 가벼운 대홧거리로 나눌 수 있는 보편적 가난은 실존에서는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가볍게 치부할 수 있는 대화의 소재도 아니다. 오히려 개별적 가난은 질긴 목숨을 원망해야 하는 천형이자 오직 생명으로만 집중되는 삶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선생보다는 못하지만 나도 유년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 선생은 일본에서 가난한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나 경북 안동 조탑리 빌뱅이 언덕 토담집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독한 가난과 질병을 안고 살았다. 나는 선생의 실존에 목이 메었다.
자신의 병이 동생의 혼인에 방해될까봐 행려병자로 떠돌던 한 때, 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던 시절,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소문과 추측으로만 헤아릴 수 있었던 둘째 형님에 대한 그리움 등 이 책의 1부에 실린 자전적 산문을 읽노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려왔다. 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 선생이 겪었던 두 번의 전쟁을 전후세대인 나는 알 길이 없다. 절대적 궁핍을 벗어나던 시기에 태어났으니 내가 겪은 가난은 선생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저리도록 아팠다.
어릴 적 신었던 짝짝이 장화 때문에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은 일로 장화만 보면 사고 싶었다던, 이름값만으로도 춥고 배고프지 않아도 될 때도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던 선생에게 당신의 하느님은 언제나 깨끗하고 넓은 예배당에서 대접받는 하느님이 아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머무는 하느님이었다. 당산나무와 조화롭게 사는 그런 하느님이었다. 결핍이 지속되면 물욕이 강해지는 것이 우리와 같은 범인에게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인데 선생의 삶은 가난할수록 영혼마저 가난해졌다. 선생이 믿던 하느님이 선생에게 내린 가장 찬란한 축복이 아니었을까?
선생에게 통일은 이념과 이데올로기의 통합이 아니다. 비록 나라는 작고 가난해도 평화롭게 한마음이 되어 사이좋게 사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소망했다. 한마음으로 뭉쳐 살면서 보고 싶은 사람을 언제든 볼 수 있는 나라, 나라가 갈라졌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겨레가 고통없이 살 수 있는 그런 조국을 꿈꾸었다. 자연이 아닌 인간에 의해 우리 겨레가 남북으로 갈라졌듯 문화생활이라는 도시적 삶은 자연을 병들게 하고 결국 인간의 생명마저 파괴한다고 선생은 말한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보면 지극히 단순하고 부드러워지는 삶이 등나무 덩굴처럼 억세고 복잡하게 변한 까닭은 분명 우리의 욕심이 사납게 자란 탓일 게다. 내가 바라는 삶은, 내가 희망하는 삶의 모습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나는 누군가의 생명을 취하여 내 삶을 윤택하게 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되짚어 본다. 선생이 가신 지 이제 5년, 내가 죽어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꽃은 피고 새가 지저귈 것이라고 어찌 믿을 수 있을까?
"우리의 무기는 괭이와 호미와 낫이지 장갑차나 미사일, 핵폭탄이 절대 아닙니다. 가난하고 어질고,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겼던 우리였습니다. 너무 순해서 어리석어 보일 때도 있지만 분명 자기 주인만은 알아볼 수 있는 우리였습니다. 김 목사님, 제가 거듭 부탁하고 싶은 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리석고 순하기만 하면서도 제 주인의 모습을 똑똑히 구분해서 따라갈 줄 아는 똥개는 될지라도 들쥐 같은 백성은 절대 되지 말라고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P.306)
세상의 가난을 모두 모아 인구수 대로 나눈다 한들 그것을 보편적 가난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세상에 그런 가난이나 아픔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개별적 아픔과 실존을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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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동화를 찾아서 소담한 글이 품은 강한 힘과 울림 등단 이후 발표한 산문과 시를 추리고 한 편의 동화를 더한 故권정생의 산문집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에게 덴마크의 한 소녀가 편지를 보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동화 작가가 될 수 있겠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쇼는 답장에 이렇게 썼다. “첫째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둘째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셋째 역시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질 것” *본문에도 나오는 구절(p.200)*
어린 내게 동화는 귀한 것이었다. 도서관도 책대여점도 없었다. 부자든 가난하든 어미의 마음은 같아서 자식에게 책을 주려고 어머니는 부단히 발품을 팔았다. 남의 집 잔치에 요리를 해주고 품삯 대신 그 집 아이들의 책을 빌려오고, 이웃네 친구네 놀러갈 때 나를 데리고 가 책을 읽혔다. 나는 어머니랑 보물 찾는 날이 참 좋았는데 폐지 버린 더미에서 책을 주워와 깨끗이 닦는 걸 우린 그렇게 불렀다. 사정을 들은 친척들이 책을 물려주기도 했다. 속이 없어 집안일과 부업에 지친 어머니가 목이 쉬고 입이 부르트도록 밤마다 책을 읽어 달라했고 한권 두권 외우다보니 글씨를 알게 되었다. 까막눈이었을 때부터 책을 볼 수 있을 땐 무조건, 빨리, 많이 보는 게 습관이 된 탓에 유치원에 입학해선 그곳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아무 친구도 안 사귀다가 선생님의 요주의인물이 되기도 하였다.
나는 동화를 읽으면서 글과 세상을 알았고 동화 삽화를 베끼며 미술을 익혔다. 7살쯤부터는 읽을 책이 없으면 동네 애들을 앉혀놓고 되도 않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어떠냐고 묻고 다녔다. 나는 말을 안 들으면 발목이 잘리고, 아이들이 할머니를 삶아 죽이고, 못된 계모를 젓갈로 만드는 전래 동화들보다 고운 말로 지금 우리의 얘길 하는 창작동화들을 좋아했다. 이상교, 권정생, 이오덕 등의 동화를 읽으며 그들처럼 누군가를 위해 재미지고 예쁜 글을 쓰는 어른이 되길 꿈꿨다. 그런데 나를 키운 그 많던 동화들이, 꿈을 꾸며 부풀었던 마음이 지금은 어딜 갔을까. 휘발되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잃어버렸다. 별것 없는 잡문의 모음인데 <빌뱅이 언덕>은 끊임없이 기억을 두드리고 가슴을 울리며 나의 상실과 생채기를 일깨워주었다.
권정생의 동화와 소설 몇 권을 읽었지만 그의 생애를 관심 있게 찾아본 적은 없었다. 올해는 그의 귀천 5주기이다. 선생은 천상병 시인과 함께 귀천이란 말이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수많은 베스트셀러 동화를 썼지만 한 번도 풍족한 적이 없었다. 마을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다가 30년 전에야 강아지 같은 빌배산의 강아지 꼬리 같은 빌뱅이 언덕 아래에 강아지 똥 같은 작은 제집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유언은 인세를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는 것이었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때를 놓친 치료로, 스무 살에 얻은 폐렴과 늑막염으로 망가진 몸은 영영 회복되지 않았다. 남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취 없이 죽을 생각을 했던 젊은이는 세월이 지나 사람의 삶은 수많은 타인에게 신세를 지며 이루어짐을 깨닫지만 그 때의 마음을 모두 잊진 않았던 건지 끝내 가정을 이루지는 않았다.
머리말을 읽다가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발상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여러 출판사가 함께 먹고 살아야 하며 당신의 전집이 나오는 것을 반대했다는 얘기였다. 선생의 뜻을 지키겠다는 재단(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엄밀히 말하면 그의 뜻이 아님에도 굳이 엮어낸 이 책은 어떨지 궁금해져 재빨리 본문으로 책장을 넘겼다. 생전 선생은 산문집을 낼 생각이 없었지만, 여러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묶어 남의 뜻으로 낸 산문집이 두번 있었고 모두 절판되었다. 세 번째 <빌뱅이 언덕>도 남의 뜻이다. 절판된 두 산문집을 추리고 1975년부터 2006년까지 잡지에 발표했으나 단행본화된 적 없는 글을 재단과 출판사가 새로 찾아 43편의 산문을 담았다. 또 단행본으로 내기엔 분량이 애매했던 시 7편과 동화 1편도 담아 한 권의 책을 꾸렸다. 그래도 채 담지 못하고 남긴 글은 다음을 기약하며.
산문은 총 3부로 나누어 1부엔 선생의 자전적 산문들을, 현재의 세태에 대한 성찰을 담은 산문들을 1990년대~2000년대의 산문은 2부에 1970년대~1980년대의 산문은 3부에 담았다. 시와 동화는 부록으로 처리했고, 머리말은 재단 사무처장이자 시인인 안상학이, 책 끝의 발문은 문학평론가 염무웅 교수가 맡았다. 또렷한 기억의 편린이지만 곳곳의 구멍으로 부정확한 사실들은(ex.연도) 각주를 통해 차이를 밝히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겼다. 지배국에 사는 식민지인이 받는 처우와 그들의 생활, 가족을 갈라놓고 인도를 잃게 하고 몹쓸 병을 퍼뜨리는 전쟁과 가난, 어제처럼 추억이 생생해 더욱 그리운 친구와 사랑했던 이, 어여뻐 하는 아이들과의 웃고 우는 일, 그리 순한 성품에도 역성을 들며 비판하는 것들, 쌓이는 인생의 나날만큼 깊어지고 늘어지는 수많은 상념들. 두런두런 선생을 닮은 글에서 선생의 삶과 철학이, 그리고 우리들이 살던 수십 년이 뚝뚝 묻어난다.
슬프지만 절망이 없는 이야기, 우리가 겪은 고난이기에 세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누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인간이 인간답고 아이가 아이답길 바라며 쓴 이야기. <빌뱅이 언덕>을 읽으며 나름대로 선생의 동화론을 정리해보면서 무척 공감하였다. 어린 날 이런 동화를 읽다가 할매는, 아저씨는 이랬어하고 물으면 무뚝뚝하고 말주변이 없던 어른들마저 술술 입을 열며 꼬마와 수십 년을 허는 친구가 되었다.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이 안주거리 추억이 되고 더 큰 상처도 이겨낼 수 있음은 물론 한마저 사라지는 것에서 나이 듦의 장점, 슬프지 않은 슬픔을 알았다. 아무리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해도 선생의 동화는 역시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빌뱅이 언덕>은 아이를 지나 시간의 켜들을 맞으며 다 커버린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아이인 적이 있었기에, 귀천한 선생이 산 궤적을 밟으며 매일 늙어가고 있기에 더욱 파고들고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방끈이 긴 자는 자신이 배운 지식으로 이성과 논리에 입각해 사리를 따진다. 이런 이들에게 선생이 전쟁이나 통일 등 시사적인 주제에 대해 쓴 글은 비판할 구석이 여럿 보인다. 그러나 경험과 감정에 입각한 이 주장들을 수준 낮고 그르다고 과연 단언할 수 있을까, 오히려 아는 만큼 눈이 머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한편 새삼 신선했던 점은 20대에 개신교에 귀의한 이래 평생 교회 일을 했던 선생이 경향이나 생활성서 같은 천주교 잡지에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나 담임목사부터 개신교 전체까지 조목조목 통렬히 꾸짖는 것이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그 동안 책으로 안 나온 것이 원통할 정도로 빼어난 문학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교가 있는 문장도 아니다. 권정생이란 이름을 지우고 보면 옆집 할아버지가 쓴 것도 같다. 그만큼 평범하고 수수하다. 하지만 염무웅의 표현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내는 가장 맑은 목소리’가 무엇인지 통감하고 읽는 이의 가슴을 알캉이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우리 아동출판의 황금기는 1990년대였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표현은 더욱 자유로워졌고 끝없는 호황으로 더욱 여유로워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더 많고 질 좋은 아동서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만큼 많이 사고 많이 읽었다. 그 혜택을 받은 90년대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거짓말처럼 나라가 파산한다. 돈의 무서움을 온몸에 아로새긴 그들은 신자유주의에 동물처럼 반응하고 수많은 가치를 버리며 살아남기 위해 처절히 경쟁했지만 돌아온 건 88세대니, 3포세대니 하는 낙인이었다. 재산과 경력이 보잘것없고 힘든 것은 20대에 당연한 것인데, 절망에 휘감기며 자라다 벌써 지친 건지 패기도 적고 정말 3포의 유혹을 느끼기도 하고 누가 조금만 위로해줘도 동요한다. 어떤 어른보다 어린 시절 좋은 책을 읽었지만 자라면서 독서가 사치가 되어버린 90년대의 아이들, 하지만 이전 세대가 그랬듯 그들도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며 동화를 다시 찾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멈출 수 없고 희망을 믿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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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을 읽기 전에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어서 검색을 해 보았다. 1990년 9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토요일, 일요일 8시에 방영되던 <몽실언니>이다. 오래전의 기억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인기리에 방영되었기에 많은 시청자들의이 많이 기억하는 드라마일 것이다. 6.25 전쟁이 시대적 배경인데, 가난하고 힘든 삶 속에서도, 신체적 어려움 속에서도 동생들을 돌보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몽실이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물을 많이도 흘리게 했던 드라마인데, 권정생의 <몽실언니>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창작동화가 원작인 것이다. 그리고 권정생이 쓴 동화인 <강아지 똥>도 생각이 나는데, 이 그림동화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강아지 똥을 더럽다고 비웃고 천대하지만, 결국에는 강아지 똥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내용의 동화인데, 이 세상에서 보잘 것 없고 천대 받는 것들도 다 쓸모가 있음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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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작가의 <몽실언니>, <강아지 똥>은 모두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이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져다 주는 희망의 이야기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이야기들이 작품으로 쓰여질 수 있었던 것은 권정생의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빌뱅이 언덕>을 통해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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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을 고국에 남겨 둔 채로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에서 권정생을 낳게 되고, 해방이후에 화물열차의 구석에 앉아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청소부였는데, 쓰레기 더미 속에서 헌 책들을 골라서 아들에게 읽히게 되고, 그것이 훗날 권정생이 작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너무도 가난하여 집을 떠나 거지 생활을 하면서 떠돌아 다니다가 안동의 어떤 마을의 교회 종지기가 된다. 전쟁과 가난, 부모의 죽음과 작가 자신의 오랜 병고.... 심지어 거지로 떠돌다가는 죽을 결심까지도 하였던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가난하고 병들고, 쓸쓸하고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언제나 희망이 살아 있는 것이다.
<빌뱅이 언덕>은 2007년 세상을 떠난 권정생의 산문집으로 이런 작가의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표현되고 있다.
책의 1부가 작가의 자전적 산문들이라면, 2부와 3부는 1970년부터 2000년대에 걸쳐서 우리들의 삶과 사회를 성찰한 산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인 빌뱅이 언덕은 작가가 1983년에 <몽실언니>를 쓰게 되어 계약금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작은 오두막집을 짓게 되는데, 그 언덕이기도 하고, 5년전에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서 유해를 뿌린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빌뱅이 언덕은 작가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 하는 그의 안식처인 곳이다. 이 책 속의 산문들은 이미 절판된 책 속에 담겨 있던 글들이 상당수에 달하기에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던 글들이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 가족 이야기, 6.25 전쟁 이야기, 오늘날의 교육, 종교, 통일, 평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글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작가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서 썼기에 그 산문들을 통해서 작가의 삶의 모습을 좀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의 부록으로는 몇 편의 시와 함께 아주 짧은 동화 <30억 잔치>라는 글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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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무려 8년만에 읽었다. 대학 졸업반 때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 두 번째 작품이다. yes24의 블로그 이벤트에 당첨(http://blog.yes24.com/document/6576828)되어 받은 책인데, 어느 책이 올 줄 모르고 있다가 권정생 선생님의 신간을 받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예전에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었을 때, 나는 양가감정을 느꼈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공감되면서도 전혀 이해가 안되기도 한. 그걸 이렇게 리뷰로 써놨더라.
시간이 갈수록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반론을 제기하기 보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것은 '어른들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옛말이 내게도 점점 통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박을 해보아야 서로 마음 상함만 느끼기에 소통을 포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2004년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 쓴 리뷰 중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 중 개신교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주옥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귀하고 귀하다. 이 분이 이야기하는 우리나라의 개신교에 대한 비판에 나는 200%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신앙인이였던 그분과 달리, 교회와도 멀어지고 날라리같이 사는 나는 그야말로 몇 수 아래지만. 신앙인으로서 그분의 삶은 참말 예수를 닮기 위해 노력한 삶이었고, 그래서 배우고 싶기만 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많은 부분이 1980년대에 쓰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어쩜 지금도 적용될 유효한 일침이 많은지. TV에 대한 것이며, 개신교에 대한 것이며,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것들도ㅡ 세상은 생각만큼 쉽게 변하지 않고, 그래서 '어른'들의 말씀에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모처럼 읽은 묵직한 글을 통해 내 마음을 살짝 새롭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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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18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어른들에게도 읽히는 것은 아마 한국인이면 누구나 체험한 고난을 주제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동화에다 무리한 설교조의 교훈을 담은 것이 있는데, 과연 그런 동화가 우리 인간에게 얼마만큼 유익한지 알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은 훈시나 설교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 속의 인간보다 잘 보존된 자연 속의 인간이 훨씬 인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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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자의 문간에서 얻어먹는 부자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선생은 40대 중반에서야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얼마나 춥게 살았으면 우선 따뜻한 것이 가장 좋다 하였을까. 빌뱅이 언덕 두 칸 오두막집. 마을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세우는 곳집보다 더 구석진 곳에 있는 집. 하천부지여서 번지도 없는 집, 번지 대신 '빌뱅이 언덕'이라고 해도 집배원이 알아서 편지를 전해 주던 집. 두 번의 전쟁이 필연적으로 안겨 준 가난과 병든 몸으로 철저히 외톨이가 되었던 선생과 꼭 빼닮은 집, 그렇게 선생에게는 아동 문학이 삶의 위로가 되었다.
P45 몇 해 전에 이곳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온 목사님이 돌아가신 뒤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권 선생님의 생활이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꼭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일고 여태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과연 그렇다. 나는 부자의 문간에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다. 나는 그때부터 나사로와 입장을 함께하며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기로 했다. 개들에게 헌데를 핥이면서 부자가 먹던 찌꺼기를 얻어먹던 나사로였지만 그는 하늘나라를 볼 줄 알았다. 그래, 그것이면 족한 것이다. 나는 거지 나사로를 알고부터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했다. 천국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여태까지와는 거꾸로 보게 된 것이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추구한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정신을 맑게 고양시키려는 작업에 몰입한다.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한다. 일종의 도를 닦는 행위의 반복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배의 살을 제거한다. 뱃살의 찌끼들을 없애기 위한 일련의 작업에 빠져서 산다. 후회 없는 삶이란 별게 아니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다 가면 된다. 하고 싶은 것은 누가 정하는가? 본능이 정하는 대로, 끌리는 대로 길을 찾아 만들어 나가도록 한다.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가난한 인생을 살아도 좋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것 입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잘못된 향락은 더 큰 고통이 따른다는 것.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푸른 하늘 밑에서 여덟 시간 일하고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부처도 그렇게 가르쳤고 예수도 그리고 앞서 간 성현들이 모두 그렇게 살며 우리에게 권했다.
불교신자이면서 누이동생이 믿었던 가톨릭의 하느님을 섬겼던 일본의 농민 시인 이야자와 겐지는 그렇게 살다가 서른일곱의 나이로 일찍 죽었다.
비에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이 절대 화내지 말고 언제나 조용히 웃는 얼굴로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고 모든 것을 자기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듣고 보고 알아서 그리고 잊어버리지 말고 들판 소나무 숲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쪽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쪽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고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겨울엔 허둥지둥 걸으며 모두한테서 멍텅구리라 들으며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빌뱅이 언덕(권정생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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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농부로 자연에 깃들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저자는 젊은 시절 3개월 남짓 거지로 살은 적이 있다고 한다. 거지로 산다는 것은 가난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살아있음에 몸의 허기를 채워줄 먹거리를 확보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화폐 경제에서 돈을 포기했다는 말은 참말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가 없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도 돈 공부를 해야 한다. 돈을 알고 가지고 놀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수행 정진하면서 돈 공부를 하도록 하자. 지금부터. 처음으로 내 손으로 지게를 만들겠다고 온 산을 누비며 지겟감이 될 만한 소나무를 찾아다녔다. 지겟감이 되는 소나무는 꼭 양지 쪽 소나무여야 하고 껍질이 검은 것보다 붉은 소나무가 더 좋다고 했다. 물론 옹이도 적고 곧은 나무여야 한다. 이렇게 자연에서 생산 수단을 얻던 시절이 고작해야 오십여 년 전이다. 세상이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고 인정마저 메말라가는 상황으로 바뀔지 예전에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조용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것 입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잘못된 향락은 더 큰 고통이 따른다는 것,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푸른 하늘 밑에서 여덟 시간 일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P87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부들은 다음 해 농사지을 씨앗을 갈무리해야 한다. 나락씨는 봉태기에 담아 시렁에 얹어 두고 조와 수수는 이삭째 엮어 방안 보꾹에 매달아 놓는다. 참깨씨, 팥씨, 녹두씨 같은 자잘한 것은 무명 주머니에 담아 역시 보꾹 서까래에 달아 놓는다. 목화씨는 박두구미에 담아 바깥 처마 밑에 매달아 두고 삼(대마초)씨는 짚으로 촘촘하게 엮은 오쟁이에 담아 역시 서까래에 매단다. 어떻게 해서라도 쥐한테 먹히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해 씨앗이 썩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감자씨와 토란씨는 무를 묻은 땅속에 함께 묻어 놓는다. 농부가 여름에 농사를 지어 추수를 끝냈다고 그것이 끝이 아니다. 다음 해에 또 심고 가꿀 씨앗까지 갈무리를 하고 난 다음에야 마음 놓고 겨울을 난다. 토종 씨앗은 오랜 세월 우리 기후화 토질에 맞게 진화되어 웬만한 질병에도 면역이 생겨 있다. 그래서 농약이 없어도 깨끗하게 자라고 열매를 맺어 탈 없이 먹고살았다.
P123 『오체 불만족」의 지은이 오토다케는 오체 멀쩡한 사람보다 더 씩씩하다. 체념할 것을 그만큼 빨리 체념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되도록 속히 포기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쉽게 하도록 만든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 그러니 절대 앞서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뒤처져 있다고 불행하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 작은 꽃다지가 노랗게 피어 있는 곳에도 나비가 날아든다. 작은 세상은 작은 대로 아름답다.
드넓은 밤하늘을 보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알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는 데 아직 돈 내라 소리 없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에게도 우주는 그만큼 너그럽다. 작은 것으로, 느리게 꼴찌로 뒤처져 살아도 자유로운 삶이 있다. 자유로운 골찌는 그만큼 떳떳하다.
오래전부터 여름 뒷산에 뻐꾸기도 울지 않고 꾀꼬리 소리도 듣기 어려워졌다. 산에는 새가 날아오지 않고 강물엔 물고기가 없고 아이들이 없는 농촌은 죽은 농촌이 되었다. 노인들만 남아서 도시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를 뿌려 가꾼 쌀과 고추와 양파와 온갖 해소를 만들어 낸다.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죽을 날짜를 세면서 살고 있는 곳이 지금의 농촌이다. 똑같은 것을 흉내만 내는 인간이 되어 일생을 시체로 살게 버려두는 건 죄악이다.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같은 농약을 버리고 두엄을 만들고 김을 매고 지게를 지는 튼튼한 농사꾼으로 크면 강물도 살아나고 들판도 살아날 것이다. 물고기가 살고 새들이 날아오고 온갖 벌레들이 살아나면 도덕도 함께 살아난다.
《빌뱅이 언덕(권정생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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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저자 권정생/출판 창비/발매 2012.05.25.
가난이 사람의 인생 방향을 쥐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온 사람은 죽은 뒤에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는다. 궁핍으로 인한 생활고로 인생의 방향이 바뀌어간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 일이 관건이다.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다.
P45 몇 해 전에 이곳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온 목사님이 돌아가신 뒤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권 선생님의 생활이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꼭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읽고 여태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과연 그렇다. 나는 부자의 문간에 앉아서 얻어먹는 거지다.
나는 그때부터 나사로와 입장을 함께하며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기로 했다. 개들에게 헌데를 핥이면서 부자가 먹던 찌꺼기를 얻어먹던 나사로였지만, 그는 하늘나라를 볼 줄 알았다.
그래, 그것이면 족한 것이다. 나는 거지 나사로를 알고부터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했다. 천국이라는 것,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여태까지와는 거꾸로 보게 된 것이다.
P74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가난한 인생을 살고자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것 입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잘못된 향락은 더 큰 고통이 따른다는 것,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푸른 하늘 밑에서 여덟 시간 일하고 이웃과 더불어 가난하게 사는 것이다. 부처도 그렇게 가르쳤고, 예수도, 그리고 앞서 간 성현들이 모두 그렇게 살며 우리에게 권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먹고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필연적으로 몰입해서 해야 할 평생의 과업 말이다. 그것이 돈이 되어도, 자연이 되어도 상관은 없다. 삶에서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의미를 누릴 수 있을 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생기게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재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오늘 하루 잘 보내는 것이 참된 삶이다. 멀리 있는 미래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지나간 과거에는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단지, 오늘만 바라보고 오늘을 즐기면서 현재에 충실하려는 삶의 시간들을 이어갈 때 시원한 행복 바람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말자. 너무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하지도 말자. 그저 자연에 깃들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자. 아버지 없이 사생아로 태어난 예수는 가장 밑바닥의 인생을 체험한다. 40일간의 굶주림 끝에 그는 인간의 속성인 물질, 권력, 명예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극한의 주림 속에서 세 가지 유혹과의 싸움은 처절한 것이었다.
P265 텔레비전에 나오는 스포츠 중계는 거의가 전쟁 용어를 사용한다. 피를 흘리며 치고받는 권투 시합이 과연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유익한 구경거리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거의 벌거벗다시피 하고 흔들며 부르는 가수들의 노래는 한결같이 진실이 없는 가사로 되어 있다.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광고는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 마시는 것, 바르는 것뿐이다.
그것들이 모두 인간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면 참으로 비참한 인생이다. 아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소비 지향의 도시문명일 것이다. 꼭두각시처럼 주는 대로 먹고, 주는 대로 마시고, 주는 대로 입고 그리고 시키는 대로 따라 웃고 울고, 바보 멍텅구리가 다 되었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게 도시문명인이다. 언덕배기 흙담 오두막집은 도시의 수천만 원짜리 콘크리트 집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그러나 언덕배기 오두막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마치 권투 선수의 주먹과 농사꾼 주먹의 차이만큼 그 값어치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권투 선수의 주먹은 어디까지나 승부와 돈과 명예가 뭉쳐진, 목적에 따라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손이지만, 농사꾼의 손은 일하면서 다듬어진 자연의 손이다. 그 손은 식구들과 다른 이웃들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 주고, 입을 것을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손이다. 슬픈 것은 인간이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빌뱅이 언덕(권정생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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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출하게 제목과 권정생 산문집이라는 글씨 외에는 그 어떤 화려한 그림하나 없이 흰색과 민트색이 어우러진 바탕에 민들레씨가 폴폴 날아다니는 표지를 보면서 권정생 선생님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 ‘권정생’이라는 조금은 낯선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이어 몇 가지를 붙인다면 금세 이야기는 달라지리라고 예상된다. 동화 이야기 <강아지 똥>이 그의 대표작이고 <몽실 언니>도 마찬가지로 대표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순수함과 동심이 가득 베어 나와 한번 읽으면 쉽사리 잊히지 않는 자랑스러운 우리 동화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동화 이야기의 대부분이 사랑스럽고 오밀조밀한 느낌을 주지만, 그 중에서도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들은 조금 더 특별하다. 여타 동화이야기보다 더욱 사랑스럽고 더욱 포근한 느낌이 넘쳐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소박한 배경에다가 특별하지 않은, 어찌 보면 조금은 눈에 띄지 않는 사물 혹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빌뱅이 언덕>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산문집을 읽으면서 이렇게 가슴이 아프거나 또는 먹먹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동화가 소박하니 선생님도 그렇게 삶을 보내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하고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왔고 또 그러한 나날들을 계속 보내셨으리라는. 그러나 내 생각이 참 부끄러울 만큼 선생님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행복한 나날들이 가득하지만도 않았으며 또 어떤 시간들은 죽기보다 괴로웠다라고 표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따스한 이야기 나왔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타인을 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나온 것이리라 생각된다. 동화가 전해주는 것처럼.
1부로 들어가기 전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나는 왜 동화를 쓰게 되었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언제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런 걸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누구나 가슴에 맺힌 이야기가 있으면 누구에겐가 들려주고 싶듯이 그렇게 동화를 썼는지도 모른다.
권정생 선생님을 잘 몰랐던 나는 책을 읽으면 읽어갈수록 새롭게 그를 알아가고 새로운 사실들에 놀라면서 읽어 내렸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잊히지 않는 것은 첫 문장이다. 머리말을 읽고 본격적으로 읽어보겠다며 자세를 고치고 나서 가장 처음 본 문장이 ‘나는 왜 동화를 쓰게 되었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여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권정생 선생님이 곁에 계셨던 시간 들 중 1975년부터 2006년까지 잡지 및 산문집, 절판된 책들 속에서 엮어낸 글들은 선생님의 동화만큼이나 따뜻하기도 하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유 없는 먹먹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확히 언제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 한 구석에 읽었던 동화 <강아지풀>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주인공의 착한 일로 갑작스럽게 높은 신분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을 괴롭히던 누군가가 벌을 받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만큼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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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다섯 해가 지났다. 선생님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참석한 뒤로 해마다 빌뱅이 언덕 밑 선생님이 살던 작은 집을 찾아간다. 고향땅 아버지 산소에 가는 것보다 더 자주 가는 셈이다. 아버지 산소에는, 벌초를 고향 사람에게 맡기면서, 가지 못하는 해가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살던 두 칸짜리 집에 들러 선생님을 아끼는 사람들을 만나고 선생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정화되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가끔 선생님이 쓴 책을 읽으며 새로운 긍정적인 기운을 얻기도 하니 선생님은 유전적인 아버지보다 지금 내게 영향을 더 미치고 있다 할 것이다. 선생님은 손수 산문집을 내지 않았고 낼 뜻도 없었다고 한다. 이미 두 권이 나왔지만 모두 남의 손을 거쳤고 남의 뜻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왜 산문집을 낼 뜻이 없었는지는 모른다. 짐작하건데 시나 동화보다는 산문이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나 동화는 문학적 장치를 거치기 때문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거니와 설사 그대로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변명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산문은 시나 동화처럼 문학적 장치를 거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여지가 거의 없다. 선생님이 이오덕 선생님과 나눈 편지를 출판한 것을 극구 인정하지 않은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43편의 산문과 부록(시 7편, 동화 1편)이 실려 있다. “1부는 자전적인 산문이고, 2부와 3부는 1970-2000년대 우리들의 삶과 현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산문들이다. 1부와 3부의 절반 정도는 절판된 책에 실렸던 글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과 창비에서 새로 찾아낸 글”(안상학, 「머리말을 대신하여」)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다른 지면에서 읽었던 글들이다. 묻혔던 글을 새로 찾아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새로운 면모를 담지는 않았다. 새로운 해석을 낳을 만한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선생님 삶과 사상의 핵심을 다시 되새길 만한 글들이다. 가장 핵심은 아무래도 삶으로 실천하며 벼린 가난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가난한 삶이란 곧 떳떳한 삶일 것입니다. 항시 남의 겉치장만 따라가다 보면 사람 구실 절대 못 합니다. 민주주의도 가난한 삶에서 시작되고, 종교도 예술도 운동도 가난하지 않고는 말짱 거짓거리밖에 안 됩니다. 자연보호도 가난한 삶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최대의 순종도, 인간에 대한 최대의 겸손도 가난한 삶이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결국 정신적 힘 외의 모든 힘이 이 세상에서 추방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03쪽, 「다시 김 목사님께 1」) 선생님은 평생 자연 속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선생님의 글이 진정으로 독자에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유전적인 아버지보다 더 자주 찾아가는 선생님이다. 그러나 그런 까닭으로 선생님은 범접하기 어려운 존경하는 인물로만 자꾸 그려진다.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도 잘 하고 시나 동화에 유머와 해학이 깃들어 있는데도 말이다. 이번 산문집도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아쉽다. 제목부터 기존의 선생님에 대한 평가에 닿아 있고 실린 글들도 그렇다. 권정생 선생님을 새롭게 볼 만한 글을 배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당신의 뜻과 무관하게 선생님 산문집을 출간할 때는 기존의 산문집과는 다른 차원의 편집 방향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