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일대를 거쳐 하버드까지 졸업한 수재 미국인이 한국으로 건너와 스님이 되기까지 (현각스님) 총 2권으로 묶인 책이다. 오늘로 1권을 읽었는데, 금방 읽을 정도로 평이하고 재밌는 수필형식이다. 다소 대필의 흔적이..(아니면....작가가 영어로쓴것을 누군가가 한글로 번역한듯하다..) 보이는게 좀... -특히 앞부분에 자기가족에 대한 자랑(?)이 좀...눈에 거슬린다 ^^ -그래도 애교로 볼수있다- 나는 어릴때 3년여간을 꾸준히 교회를 다닌적이 있었는데, 어린마음에도 성경이며 목사님..그리고 주일학교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그 무언가에 상당히 거부감이 있었던것 같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공부 한다는 핑계로 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않았었는데... 이후...우연히 들어간 사찰(아주 조그만 시골 암자다..)의 불경소리와 목탁소리가 너무도 마음이 편안해진 경험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난 불교신자가 아니다..- 저자는 전통 카톨릭교집안에서 자라나 신학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신부가 되기로 했었으나, 정작 신에 대한 진리와 서양철학에 대한 회의감에 고민하던중 하버드에서 우연히 만난 숭산스님(이분은 현재 생존하는 생불중 한분이시다)의 큰 가르침에 감명을 받고 불교에 귀의하는 과정을 쓰고있다.. 중간중간.... 현각스님이 학교생활중 고민하고 번뇌한 일부 글귀들이 한때 대학시절에 막연하나마 내가 궁금했던 그런 부분들과 많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흥분하면서 읽기도 했다..또한 현재 기독교에 존재하고 있는 무조건적이 믿음(특히 이생에서 은총받아 천국을 가야하는등..)에 대한 거부감이..나만 있었던게 아니란 사실...특히 기독교를 직접 체험한 사람으로부터 확인한 사실에도 공감했으며, 이건"신과 나눈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인것 같다. 저자가 빠져들었던, 쇼펜하우어와 숭산스님의 저작물도 곧읽어볼 생각이다..물론 나에게는 많이 어려운 철학서이지만...최근들어 이런 절대진리및 신에 대한 갈증이 점점더 강해진다.. 그리고..실제..현각스님의 참선수행을....단기로나마 경험해 보고싶은 강한 충동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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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속깊은 얘기를 나누는 것 만큼이나 가슴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책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런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책 표지가 너무나 눈길을 끌어서 베스트셀러라는 거부감을 무릅쓰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오랜만에 이런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우선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다. 편집이 짧은 단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쉼 없이 호흡 고르지 않고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 소위 자전적 인생소설이나 유년기적 성장소설이 범하기 쉬운 자기함몰적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마치 남 얘기 하듯이 아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고 필요한 구절에선 솔직한 감정과 생각의 토로가 담겨있다.
평소 불교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고 남들이 종교를 물을 때 막연히 불교라고 대답해 왔던 나에게 있어 이 책은 또 다른 의미의 불교서적을 읽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왜냐하면 현각스님 역시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라 처음엔 의심하는 마음으로 서서히 불교에 다가갔고, 범인들이 불교에 대해 갖는 의구심을 안고 접근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이 나같은 범인에겐 또 다른 의미의 해석적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가지 놀라웠던 점은 현각스님의 단어선택과 문장력이었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배운 한국어이건만 우리글로 쓴 그의 책 수준은 이 땅에서 나고 자라 최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의 그것과 같았다. 하버드, 예일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의 이런 점이 날 놀라게 했다.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와 불교가 서로 다른 갈래길을 향해 달려가는 마차가 아닌 같은 목표점을 향해 가고 있는 마차임을 부드럽게 설명해 준 대목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신이 스님이 된 후에 오히려 예수의 덕행을 더 실천하게 되었다는 그의 태도를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인들이 배울 수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마저도 든다.
너무나 조목조목, 언성 높이지 않고 마치 곁에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조용히 얘기해주는 것 같은 이 책은 종교에 관계없이 인생을 조용히 반추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냐? 과연 세속적인 행복이 인생의 전부인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나 자신에겐 어떻게 비춰질까?를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류의 고민에 대해 인생을 걸었던 현각스님의 인생이 많은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도 친한 친구 두명에게 이 책들을 선물해 주었다. [인상깊은구절] 참선수행을 하고 경전을 읽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내 자신이 놀라곤 한다. |
| 2002년 이 책이 나왔을 때 아주 신선함 충격이었기에 꼭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볼 수 있었다. 글쓰기에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지은이가 밝혔지만 번역서가 아닌 서양인이 우리 글로 쓴 책이기에 군더더기도 있고 불필요한 부분 및 맴끄럽지 못한 내용들이 눈에 띄었지만 현각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금새 읽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타인에게는 새로운 것을 비춰진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외국인으로 그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니 내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인이든 동양인이든 세속의 삶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한때 수도자들은 자신만 구원받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수도를 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위해 많은 것을 버리고 매진한단는 점에서는 세속이든 아니든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아야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 시간이 흘러 현각이 다른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속세의 이름으로 다시 돌아갈지 모르지만 구도자의 길을 걷는 지금의 그를 위해서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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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외국인 현각 스님의 이야기다. 이 책의 부제는 하버드에서 화엄사까지이다. 제목부터 눈을 확 끌어당긴다. 그리고 표지에는 매우 지적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현각 스님의 모습이다.
현각은 과연 누구일까? 그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에 앞서 내가 오래 전에 경험했던 꿈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금 기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에 5~6년 정도 되지 않았나 추축한다. 어느날 꿈 속에서 한 외국인을 만났다. 승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둥근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가 파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 라고 물었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외국인 그것도 승려가 내 꿈에 나타서 선문답을 하다니… 하도 이상해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꿈이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꿈에 나타났던 그 외국 승려가 현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시처럼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티브이나 신문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보거나 읽었음이 분명하다. 어찌되었건 아무 특이한 꿈이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하고 있다.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스님의 자서전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자신이 왜 출가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성장배경은 지극히 평범한 미국 중산층의 삶이었다. 그의 부모는 독일계 미국인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찾아온 조상들이 열심히 살았고 그 자손들이 땀 흘리며 노력한 덕에 부족할 것 없는 가정에서 성장하게 된다. 현각 스님의 출가 전 이름은 폴이다. (폴은 잘 알다시피 바울의 영어식 이름이다. 참고로 피터는 베드로다.) 이 폴이라는 이름도 천주교 세례명이다. 그의 집안은 매우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다. 큰 아버지도 신부가 되었고, 그 외에도 많은 가족들이 신부 또는 수녀가 되었다고 한다. 종교적인 신심이 깊은 집안이다. 그도 처음엔 신부나 수도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신부의 꿈을 품었다. 부모님은 그에게 영적으로 깊은 가능성을 보았다. 그랬던 폴이 어떻게 한국으로 와 현각이라는 이름으로 출가하게 되었을까? 폴은 9남매 중에 7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박사 학위가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부모의 영향으로 그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사회의 상류층(?) 진입에 성공한다. 다들 머리가 좋아서 학교 성적이 매우 우수했다고 한다. 대부분 유명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을 얻고 고액 연봉을 받아가면서 산다고 한다. 폴도 다른 형제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정신적으로 조숙했던 그는 공립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미국의 교육시스템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우리의 초중고 교육은 국공립이 주가 되고 사립은 그 수가 많지 않다. 그 수준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수준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공립은 무상 교육이고, 사립은 학비가 매우 비싸다고 한다. 사립은 비싼 학비만큼 교육의 질이 높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종교단체가 만든 사립학교는 다른 사립학교에 비해서 학비도 비쌌고 수준도 높았다고 한다. 가르치는 선생들도 열심히 였고 배우는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공립학교는 주에서 필수교육 이수를 위해서 운영하는 수준이라 한다. 선생도, 학생도 큰 열의 없이 주어진 범주 안에서 활동할 뿐이다. 또래에 비해서 정신적으로 조숙했던 폴은 공립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후에 그의 형제들이 다녔던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에 들어간다. 그 곳에서 만난 수녀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다. 종교와 신에 대한 합리적인 질문조차 허용되지 않는 그런 분위기에 반발을 품게 된다. 수많은 철학가들의 고향인 독일에서도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모여있다는 예일에서도 그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의 대학시절은 데모의 나날들이었다고 한다. 그가 다니고 있던 예일대에서 학교 기금을 아프리카에 투자를 하고 그 돈이 아프리카 현지인에게 고통을 제공하는 원인이 된다는 생각에 그는 분노하게 된다. 자신이 마시고 있는 코카콜라 한잔에도 수많은 3세계 국가 주민들의 피와 땀이 들어 있다고 느낀다.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고 싶어하는 혁명가의 기질을 갖게 된다. 맹목적인 진리탐구는 결국 그를 맹렬한 투사로 만들고 말았다. 투사들이 리더가 되어서 학생들을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극도의 분노 상태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분노하고 있으며 나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인생의 대전환을 맞이한다. 그 이후 투쟁의 길에서 벗어나 진리 탐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쇼펜하워를 알게 된다. 진리와 종교를 하나의 범주로 생각하던 폴은 이 둘을 같이 보지 않고 분리한 쇼펜하워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미국 철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애머슨을 접하게 된다. 애머슨은 진리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이 둘은 전혀 무관한 사람이 아니다. 애머슨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쇼펜하워라 한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쇼펜하워-애머슨-폴이라고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진리를 위한 갈구 속에서 만난 두 사람의 철학자는 폴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인 줄 알고 매진했지만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아쉬움이 남았다. 과연 진리란 무엇일까?에 대해 늘 고민하고 답을 찾았지만 깊이 들어 갈수록 그 답은 멀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쇼펜하워와 애머슨 두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매우 높은 경지라 말한 부분을 찾게 된다. 불교, 우리네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불교는 한국인들의 생활에 아주 깊이 들어와 있다. 오죽하면 석가탄신일을 국가에서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서양사람들에겐 매우 낯선 개념이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게 진리란 성경 말씀이다. 예수의 삶과 말씀을 따르는 것이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산다. (이 부분은 우리네랑 많이 다르다. 서양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암흑기다. 권력화된 집단이 성경의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그것을 통해 민중을 다스렸다.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면죄부 판매 등등….) 어찌되었건 폴은 불교의 존재를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세상이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진리를 향한 긴 여정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서양의 지식이라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그가 처해 있는 환경도 다르지만 결국 사람들의 고민거리는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수없이 고민했던 선과 악의 문제,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은 하버드를 나온 수재나 나 같은 범인이나 모두나 하는 고민이다. 하긴 부처님도 생로병사에 대한 고민으로 단박에 출가를 하지 않았던가? 2019년 연초부터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책이다. 좋은 책을 잘 읽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현각 스님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나 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세상에나… 몇 년 전에 한국 불교에 염증을 느끼고 지금은 한국에 있질 않으시단다…
한번 뵙고 법문을 들어도 좋으련만… 아쉽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신원사에서도 계셨고, 차로 10분 거리인 동학사 쪽에도 계셨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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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톨릭 신자이다. 현각 스님도 처음에는 절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물론 그의 가족들도...그는 진에에 대한 탐구를 자신에게서 해결하려 하였다. 그가 좋아했다는 쇼펜하우어나 에머슨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들이다. 어느날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선불교에 푹 빠져 든 그는 현재 한국에서 구도자로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책에는 그의 어릴 적 이야기 , 대학 시절, 그가 스님이 되기 까지 겪은 경험과 그의 생각이 차례로 담겨있다. 2권이나 되는 내용인데 별 지루함 없이 금방 다 읽었다. 내용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딱히 재미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책에는 흡입력이 있었다. 그가 한국의 선불교에 끌렸던 것과 마찬가지의 것일지 모른다. 나도 가끔 물론 그만큼은 안 해봤지만 그가 가졌던 생각과 유사한 것을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신부님이 되어야겠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생각에만 그쳤지만... 삶 대한 성찰과 진리에 대한 탐구..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비슷한 내용이 줄줄이 나온다. 그도 이런데 빠져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마전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던 적이 있다. 동양의 정신세계가 특히 한국의 정신이 크게 평가받는 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읽는 이에게 무엇인가를 강력히 전달해주는 말씀이 들어있는 듯 한 책이다. |
| 현각을 처음 본건 내가 다니던 학교에 그분이 강연을 왔을때다. 좀처럼 강연을 하지 않으신다던 그가 무슨연유로 이 지방(영남대)까지 내려 왔을까... 그런 생각보다는 그분을 실제로 뵐 수 있다는데 더 큰 기쁨이 있었다. 그분의 강연을 보기전에 이미 책을 통해 그분의 삶과 생각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한 그의 삶이 나의 삶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사소한 것부터 큰것까지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가 오직 모를뿐이란 한마디에 모두 사라진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쓸데없이 신경써오던 여러가지것에서 나의 마음을 어느정도 비울 수 가 있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empty mind다 싶기도 하다. 과연 오직 모를뿐이란 어떤것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강연에서 그는 객석을 매운 수많은 학생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지시했다. 시끄러워서 조용하라고 하는것이 아니었다. 입을 다물라고 말로 하지 않고 입모양으로 보여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갸우뚱 하는 분위기였다. 입을 다무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결국은 입을 다무는것이 오직 모를뿐이란 마음이란 말인가? 이런식의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접근 방식으로 장중의 분위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집착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도 그는 설명대신 그 질문을 던진 이에게 가지고 있는 돈 모두를 요구했다. 그러자 그 질문자의 주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그보다 집착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질문에 대한 설명을 던져주기 보다는 보다 의미있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는 그 강연에서도 말을 아끼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는 그러한 강연이 오직 모를뿐이란 마음으로 가는길과 상반된길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볼때 여기다 독자 리뷰를 하고 있는 나역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
| 티비에서 현각스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책을 구입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파란 눈의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고학력에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스님이 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비상한 머리를 가진 그가 세계 여러나라중에서도 하필(?) 아시아의 아주 작은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깊은 산중에 왔는지 이상하기도 하고 좀 안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렇게 관심을 보인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정말 토종 한국인 못지 않게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자신의 길을 불평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제 자신을 한번더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질적 행복을 포기하는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여기에 온 그가 참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아마 제가 그 상황이였으면 분명 그렇게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와 불교 모두를 좋아합니다. 타종교간 비방을 끊임없이 일삼는 요즘의 종교단체들...그처럼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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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이 책을 읽으면서 '진리'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졌다.내가 알고 있는 진리란 무었이었지? 나 자신에게 물었지만 결국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관심한 것에 대해 어떤이는 자신의 모든것을 버릴 수 있다니...
이 책은 단순히 불교도의 책이 아니다 종파간의 벽을 넘어 진리를 찾아 헤매는 긴 여정이다. 난 사실 여지껏 종교를 가진 적이 없다. 종교라 하면 교회와 목탁소리 정도 밖에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 나는 절대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존재에 의지하는 것은 나약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최후에 남는 것은 나 자신이므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충격이었다. 폴은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진리를 찾지 못해 괴로워 한다. 빈곤한 베트남 아이들이 부모가 돈을 벌러 나간 사이에 불이 나서 타 죽은 일이 발생했을 때 난 그저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근원적이 질문을 던지고 괴로워 한것이다.
그렇게 폴은 늘 진리에 목말라 했고 예일 대학, 하버드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계속 그 답을 찾지만 진리에 대한 갈증은 깊어만 갔다. 그러다 폴은 숭산 큰스님을 만나서 진리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모든것을 버리고 한국으로 와 머리를 깍고 현각 스님이 된다.
나에게 현각 스님은 정말 충격이었다. 예일과 하버드. 그 이름만으로도 보장된 안락은 물론이거니와 사랑하는 사람들도 버리고 오직 진리 탐구만을 위하여 한국까지 와서 스님이 되다니 말이다. 종파와 공간을 초월한 진리에의 강한 열정과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은 나에게 짜릿한 자극을 주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가슴에 박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돌아 보게 되었다. 어느새 그저 살기에 바뻐진 나의 모습 말이다. 나도 내가 추구하는 것,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정진하리라 마음 먹었다.
너무 감동적으로 읽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두루 권해준 책이다. 여러분도 꼭 한번 읽어 보길 바라며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 "나도 나의 진리를 찾고 싶다!!"고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진리를 찾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성당과 교회를 오갔다. 대학에 입학 하면서부터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니체, 하이데거 등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과 생애를 공부했다. 아예 독일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생각에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1년 동안 독일어를 배우면서 쇼펜하우어를 탐독하기도 했다. 뉴욕과 파리의 카페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논쟁하고 고민했던 그 숱한 나날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위대한 음악가인 베토벤과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오직 마음 한가운데는 음표로 표현한 그들의 진리 추구를 향한 열정과 감동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궁극적인 나의 고민에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늘 밤길을 혼자 걷는 나그네처럼 외로웠고 힘들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념처럼 껴안고 살아온 날들.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인가. 과연 있기나 하는 건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
| 처음엔 책표지에 이끌려 책을 집어들었다. 한 외국인의 평온해 보이는 표정이 날 붙잡았던 것이다. 그때 부터 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밤을 새서 읽을 정도로... 2권까지 읽고나서는 책을 덮고 한 동안 책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으로 내 눈은 아마 반짝반짝 빛나고 표정은 마냥 행복했으니까... 한 때 내게도 현각스님과 같은 방황아닌 고민을 한 기억이 난다. 그 땐 모든것이 의문투성이었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였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에 맞춰살다보니 지금은 잊은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중에 하난 종교적 선입관없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불교라는 종교를 이 책에서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스님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방황속에서의 답을 내어준 것이 불교라는 종교일 뿐이고 이 책은 그런 스님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 불교에 대해 모르던 난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고 무신론자인 난 앞으로도 종교는 없게되겠지만 이렇듯 무언가를 통해 내가 성장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그 믿음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리고 현각스님을 통해 나 또한 많은 걸 배우게되었다. |
| 나는 누구라는 질문을 어릴적 부터 스스로 묻던 기억이난다. 내가 죽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될까하며 울먹이던 기억도 난다. 그리곤 가끔씩은 데자뷰의 경험속에서 나의 전생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의문들은 삶의 수레바퀴속에서 희미해져 갔고 내 일상의 굴레에 벗어나 있는 것이 된지 오래이다. 누구나 가졌을 법한 이러한 유년기의 의문들을 마음속에 끝까지 잡고 결국의 그 해결의 실마리를 잡게된 현각스님의 구도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어릴적 '나'의 의문을 다시한번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 내준 것에 감사드린다. 더불어 비록 현각스님처럼 육신의 번뇌를 끊고 수도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현각스님의 수행기록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게된 좋은 경험을 하였다. 어릴적 '나'의 존재이유에 대해 고민을 한 번쯤이라도 해본 독자는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비록 질문에 해결은 주지 않는 책이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잊었던 의문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은 갖을 수 있을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