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진리란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질기게 달라붙는 질문...진리...이 진리를 찾아 자유함을 얻으려고 현각스님은 기독교에서 불교로의 개종을 하였을까? 난 누구인가? 그는 그의 진솔한 글에서 자신의 삶 가운데 늘 찾아 헤매었던 그 진리에 대한 추구를 위해 머리 깍고 스님이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지난 여름 한국에 방문하였을때 구입해 온 여러 책 중의 두 권이 그의 글이었다. 난 기독교인이었기에 금기시되었던 불교에 관한한 어떠한 글이라도 읽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최근 1년 사이의 나의 신앙의 변화는 아무런 테두리없이 자유 그 자체를 구가하고 있다. 그의 글은 나의 이러한 시야가 전혀 틀리지 않다는 확인을 해 주고 있는 듯 했다. 그의 기독교 배경의 성장배경이나 진리를 향한 그의 갈망, 젠센터에서의 선불교와의 만남, 그리고 숭산스님과의 만남... 불교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의 행로를 결정한 사실들이 내게 어떤 사인과 같았다. 무엇인가 이 기독교 안만 아니라 밖에서도 진리를 추구하는 많은 인류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난 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늘 밖에서 찾아왔던 진리의 형체를 안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글은 이런 사고에 까지 이르도록 도왔다. 이렇게도 도를 추구하는 구도자가 많은 이 세상에 감사하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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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예일대학, 하버드 대학등 미국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먼 나라 한국에 와서 스님이 된 현각스님이 이해가 안되었다.
그러나 전생에 독립군이였다는 말과 그로 인해서 미국에서 절을 찾을 때도 일본 참선센타에는 발길이 가다가 멈춰지다고 나중에 한국 참선센타 오게 되었다는 것을 보고 한국과 처음부터 인연이 있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전생에 관하여 다시 생각 해보게 되었고 전생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환생이 있는 것인지 천국이 있는것인지 아무것도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쓸때는 아직 보통 스님이었지만 지금은 현각스님은 한 절의 주지가 되었다. 이국땅에서......
현각 스님은 정말 세속에 욕심이 없는 것 같았다 왠하면 명문대를 나와서 좋은 직장을 보장받았지만 그것을 뿌리치고 스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말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책인것 같다 정말 보람있는 독서가 된 좋은 책 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전생에 스님은 일본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은 한국인이었다. 이 말입니다. 스님은 한국이 일본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을때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전쟁에 나가 열심히 싸워 일본군을 많이 무찔렀징. 그런데 어느날 일본군인의 총탄에 맞아 죽게 된 것입니다.죽을 때 스님은 너무 한이 맺혀'아, 나는 다음 생에는 아주 강한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조국을 위해 살겠다'고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미국에서 태어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겁니다. 스님은 한국과 아주 강한 업을 갖고 있습니다. 거기다 전생에 나라를 찾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 독립군이었습니다. 그러니 보통 한국 사람들보다 애국가를 들을때 더 강한 느낌을 갖는게 당연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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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에 관심이 많다. 단지 어머니가 열성적으로 절에 다니시고 교회보다 은은한 풍경소리가 나는 절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써 나고 죽음에 관한 큰 깨달음에 관해 탐구해나가는 진리의 고행이라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교의 학문적 입장을 매우 매력적으로 생각해오고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 불교의 커다란 가르침에 관해 매우 무지한 상태이다. 그러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이 책은 서구인으로써 우리나라의 불교에 출가하여 서양 종교의 큰 뿌리라고 할수 있는 기독교와 동양의 불교을 아우르며 우리가 아니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왔던 책이었다.
1편에서는 한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촉망받던 대학생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불교의 깨달음에 매료되어가는 지에 대해 설명했다면 2편에서는 그가 수행해나가는 깨달음의 과정과 같이 하는 도반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 그가 모시는 큰 스님인 숭산스님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개되어 있다. 여러 불교서적 중에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쉬운 해설과 불교에 관해서 이타적이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양인으로써 서로 비슷한 과정을 통해 불교을 접하게 되고 수행해 나가는 과정을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더욱이 매력적인 것은 바깥, 즉 서구에서 보는 한국의 불교모습과, 우리들의 종교적 현실이 냉정한 비판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고 기독교와 불교라는 세계의 양대 종교를 편파적이지 않고 범우주적인 사고관으로 아우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흥미롭고도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주었다. 불교에 관해서 깊이 알고 싶었으나 쉬운 입문서 조차 어렵게만 느껴지던 나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어 주었다. [인상깊은구절] 하버드와 예일에서 공부할 때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들로부터 배웠다.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의 꿈이란 바로 그런 교수님들처럼 사는 것이엇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사회를 움직이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삶이란 피곤과 스트레스의 속이었다. 스물네 시간 온통 일, 일, 일에 휩싸였고 항상 무언가를 좇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내놓을까봐 두려워했고 그드르이 질투때문에 괴로워했다. 혹 실수라도 할까봐 두려워했으며 자기 잘못이 드러나면 자존심의 상처 때문에 견딜 수 없어했다. |
| 진리와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은 벽안(碧眼)의 스님인 현각이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던 중 숭산(崇山) 스님의 강연을 듣고 불교에 입문하기까지의 사연을 담고 있다. 외국인 스님이 쓴 글이란 사실만으로 충분히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하지만, 무엇보다도 깨달음에 대한 화두 앞에서 끊임없이 번뇌하는 모습이 더없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오직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학교와 교회를 오갔다. 예일대에 입학하면서부터는 플라톤, 니체, 하이데거 등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공부했고, 아예 철학을 본격적으로 파보자는 생각에 독일에서 1년 동안 쇼펜하우어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숭산 스님을 만나면서 그 동안의 갈증을 조금씩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가족들의 반대와 사랑하는 여인의 간절한 눈빛, 그리고 사회적 명예와 부가 보장된 삶 등 출가를 포기하게 만드는 숱한 유혹들을 과감히 떨치고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행의 세계. 하지만 그는 속세의 인연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구도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선(禪)수행에 정진할수록 차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번뇌와 싸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깨달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며 비로소 작은 우주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동시에 세속의 영욕에 눈 먼 사람들에게 뜨끔한 일침을 가한다. 걷고 마시고 친구와 얘기하며 '순간 순간 마음을 열어주는 모든 것들이 곧 만행(萬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만행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조용한 산사라도 찾고 싶지만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읽으면 잠시동안만이라도 '텅 빈 충만'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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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발달하면서 어떻게 된 건지 사람은 물질에 집착하게 되었다.
자본주의라는 사상도 시작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생긴 것일텐데도
더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더 몸부림치며 괴로워 하게 되었다.
인간의 어느 시대든 경쟁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자연계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경쟁은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의 인간은 생존을 위한 경쟁보다는 남들을 밟고 그 위에 군림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들의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이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진정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물질의 한계로 인해 고민에 휩싸이게 되면
누구나 철학적인 해결 방법을 찾을 것이고
결국은 종교로 귀결되는 것 같다.
불교는 해탈을 향한 종교라고 생각된다.
기존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가족, 사회에서의 해탈...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여겼던 성공에서의 해탈...
결국은 마음을 비워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전에, 고등학교 때... 미국인 선교사가 집에 온 적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종교는 생각이 아니라고 했다) 삶을 위해 한국에 왔고
그 행복한 삶을 자기 혼자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포교활동에 전념한다고 했다.
불교든 천주교든 기독교든 해탈을 지향하는 것은 같은 것 같다.
피부색도 인종도 그전에 무엇을 믿었는지도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목표는 동일하지 않은가?
현각 스님이 관심을 끄는 것은 낯선 외모에서 나오는
너무나 친근한, 진솔한 삶의 모습에서가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나는 부처님 때문에만 출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출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찾고 싶다면 부모와 형제 자매를 떠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이 말은 내 잠재의식 속에 깊이 남아 떠나질 않았다. 나는 예수님 말씀대로 가족이라는 둥지 안에서는 절대로 진리를 찾을 수 없음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신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생명이 음식보다 더 중요하고 몸이 옷보다 더 중요하지 않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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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예전에 일요스페셜에서 만행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 후 학교 불교대 게시판에서 일요일마다 영어로 무료 불전강의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후에 다시 만난 현각 스님.. 1권을 순식간에 읽고 다시 2권을 읽기까지는 1주일의 시간의 필요했다.. 너무 아까와서 아낀다고 할까..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불교로 개종해서 스님의 길을 가는 현각은 어쩌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불교가 교양 필수이고, 스님들의 많아서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요즘엔 불교에 더 마음이 끌린다..
신앙과 철학의 조화.. 나는 이정도에서 멈출려교 한다.. 사실 나는 현각처럼 모든것을 버리고 다시 태어날 용기는 없다.. 버리는게 얻는것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천못하는 중생들..진리에 대한 갈망.. 그것이 결국은 불교에 귀의하는 것일까? 하긴 우리들한데 책을 통해서 메세지를 주니 성공한 것일게다.. 치열한 세계에서 한번쯤은 물러서서 살아 볼 수도 잇을것이다.. 나에대한 고민을 새삼 일깨워준 책인 듯 싶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은 또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티벳 불교도 있고 중국 불교도 있고 일본 불교도 있는데 왜 한국 불교를 선택했느냐, 그리고 나를 아는 분들은 어쩌면 그렇게 한국 생활에 적응을 잘하느냐고 감탄을 한다. 사실 그분들은 외국인인 내가 한국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에서 그런 말들을 하시지만, 실제로 나는 이곳 한국에 살면서 한번도 '외국'에 나와 있다거나 '고향'을 떠나 있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미국에서 김치와 된장찌개를 처음 맛보았을 때, 케임브리지 젠센터에서 가야금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법수스님 방에서 한국 사찰 사진이 실린 달력을 처음 보았을 때, 그때마다 나는 내 안에서 하눅의 모든 것을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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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서도 아니고 누구한테 좋다고 권유를 받아서 읽은것도 아니고 다만 서점에서 책 표지를 봤을때 왠지 끌리는 맘에 벼르다가 보게 됐다.
글쎄, 읽으면서 우선은 내가 천주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어릴적부터 집안의 영향으로 인해서 종교의 선택권이 없었던 나는 물론 내 종교에 관해서 한때 성직자를 생각할 정도로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 종교를 접해본후에 선택한게 아니라는 점이 걸릴때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함부로 접해볼만한 기회가 없었는데 다른것도 아니고 내가 맘에 두고 있었던 책에서 내가 가장 기피하던 불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간접경험을 하게 돼서 너무 좋다... 오늘 집에 가서 부모님과 이 책에 대해서 한번 토론을 해보고 싶다.
다 만족스러운데 흠이라면 책의 방향이 마지막에 가서는 약간 흐트러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군데군데에서 읽을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짧은글들을 보는 행복감이 그 정도는 보충해주지 않았나 싶다.
다양한 지식을 접해보고 싶거나 특히 철학쪽으로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책 속으로="">에 써놓은 부분은 이 책에서 제일 맘에 들고 싶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특히 참선수행이라는게 뭔지는 모르지만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될수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조금 든다. [인상깊은구절] 「선이란 특별한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 생각, 행동이 하나가 되는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만히 보면 마음과 몸이 따로 놉니다. 먹을때, 잘 때, 걸을 때 우리 몸은 먹고 자고 걸을지 몰라도 마음은 끊임없이 따로 움직입니다. 참선수행을 하면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미 세계 평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났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을 붙잡고 '오직 모를 뿐...' 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집착이 사라집니다. 생각 이전의 본성으로 돌아 올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조화이고 평화입니다.」책> |
| 그가 말하는 불교는 부분적으로 기독교의 어떠한 부분과 비슷해 보인다. 일례로 참선수행은 침묵 내지 묵상기도와 외적인 형태에 있어 비슷하다. 물론 전자는 자신의 생각 속에 깊이 빠져들어가는 말 그대로의 수행이지만 후자는 하나님이라는 대상이 있는 깊이 있는 만남이라는 점이 크게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육을 부인하고 영을 추구하는 이원론적 사고는 초대교회 시절 교회를 공격하였던 이단사상인 영지주의와 유사해 보인다. 이러한 부분적 유사성을 토대로 그의 다원주의적 색채가 더 짙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서두부터 인용되어 있는 성경말씀은 책의 마지막까지 그의 사고의 한 자리에 계속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의 해석은 부분적으로 성경을 취해 자신의 주관으로 그 해석에 접근해 들어가는 방식, 즉 자의적 해석으로 보인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하나의 중요한 구절(text)에 집중하고 철학적 방식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의 각 구절은 그것이 속한 맥락(context) 속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더글라스 스튜어트와 고든 디·피가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에서 말하듯, 지금 여기에(here & now) 사는 나에게 주는 성경의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때 거기에(there & then) 살았던 당시로 들어가서 정확하게 석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현각의 경우에 있어서는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이 하나의 위대한 철학책이나 일종의 법문이었고, 예수님이 쇼펜하우어나 숭산 스님 내지는 석가모니 정도의 훌륭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 역시 예수님과 성경의 가치를 긍정하고는 있지만 절대적 구원의 길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반감을 가졌던 것처럼 성경 외의 모든 것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가장 근본되는 진리-특히 구원에 관해서는-임은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그는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즉 그가 인정하는 예수님은 진리를 통달한 성인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인생 여정을 보면서 답답했던 것 중의 하나는, 권위에 대한 도전을 물리치고 스스로를 변호하기에 급급했던 수녀와 신부였다. 그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성경을 바로 아는 참다운 목자를 만났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는 말씀(벧전3:15)처럼 나 역시 하나님에 대한 앎의 깊이를 더 풍성히 하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가 찾는 진리를 향해 가졌던 타는 목마름, 그리고 자기가 믿는 진리를 향해 다 버리고 달려가는 구도자의 열정… 현각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나는 어떠한가? 부끄러움이 든다. 물론 성경말씀 액면 그대로 가족을 버리고 학위를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이 표현했던 타는 목마름, 수로보니게 여인의 가난한 심령, 불의한 재판관이 하도 귀찮아서 들어줄 정도였던 과부의 간청을 내 안에 가지고 싶다. 진리 되신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묵상해본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下-38)" |
| 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서 여러모로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황이 괜찮으면 이민을 가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부러워하는 선진국에서 산 현각스님은 이 책 내내 우리나라의 좋은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음식과 사찰과 사람들 모두에 대해서 친숙하고 적응을 잘 하니 아마도 전생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불교가 신부님이건 목사님이건 선입견없이 참선도 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아주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의 종교문화에 대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또 나는 가정을 꾸리는데 별로 주인의식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깨달음에 대한 열정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한 것 같다. 모든 순간과 눈 앞에 보이는 현실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
| 진리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고통이란 무엇인가?.왜 사람들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가?..난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할때면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그냥 머리속을 깨끗이 비워버리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지은이는 이런 고민들을 살아가면서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 해답을 갈구해왔다.그리고 그 해답을 바로 작은 나라 한국의 숭산스님에 찾았다고 한다.그가 숭산스님에게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위해 출가하여 먼 미국에서 낯선나라인 한국까지 온 것은 정말 대단한 결심이 아닐수없다.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속세의 연을 끝고 출가를 한 것이니 말이다. 그것도 아무 아는 이도 없는 낯선 땅에서의 생활이니 정말 완전한 출가라고 볼 수 있겠다. 난 불교에 관심이 없던 터라 이 책을 보기전까지 숭산스님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이 책을 다 읽은 후인 지금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 책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토록 미국을 비롯한 서양국가들이 불교..숭산스님의 설법..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그래서 숭산스님이 쓰신 책을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책을 보면서 많이 부럽기도 하면서 부끄러웠 점이 있었다. 그것은 지은이인 "현각"스님은 한국인인 나보다 한국에 대해 더 잘 알고 한국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쩔때는 그가 미국인이라는 것이 의심이 날 정도이다. 책에 나온 말대로 "현각"스님은 전생에 독립군인 듯하다. 생각해보면 한국인들은 과도하게 우리자신을 비하하고 과소평가하는 듯 하다. 우린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한국문화..동양문화..를 사랑하고 높이 평가해주는 "현각"스님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또 세계를 열광시키는 우리의 불교사상에 자긍심을 느낀다. 이 책에 마지막에 현각 스님은 이런말을 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평화 통일을 앞당기는 데도 기여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그는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표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