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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옛추억의 무협지
"아련한 옛추억의 무협지" 내용보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강물 흐르는 소리만이 꿈결처럼 아련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이렇게만 시작하면 일단 오래 전 이야기를 담은 소설 같기도 하다."망사 사이로 내비치는 그녀의 눈빛은 예전과 변함이 없건만" 진산월은 사매와 좁은 마차 안의 한없이 넓어 보이는 공간처럼 옆에 있어도 가까이 하기 힘들었다. 힘이 없어 무력하기만 했던 삼년 전, 한 문파의 장문인을 맡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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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강물 흐르는 소리만이 꿈결처럼 아련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이렇게만 시작하면 일단 오래 전 이야기를 담은 소설 같기도 하다.


"망사 사이로 내비치는 그녀의 눈빛은 예전과 변함이 없건만" 진산월은 사매와 좁은 마차 안의 한없이 넓어 보이는 공간처럼 옆에 있어도 가까이 하기 힘들었다. 힘이 없어 무력하기만 했던 삼년 전, 한 문파의 장문인을 맡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온갖 짐을 짊어지고 결국 사랑하는 연인이지 오래된 지기인 사매에 대한 보호조차도 다른 무인의 손에 넘겨주고 와야했던 진산월의 아픔이 처음 "복수불수(한번 엎지른 물은 담을 수 없다)장"에 묻어난다.

 

무협지라 함은 예전 만화방에서 만화책과 같이 진열되어 있던 경우가 많다. 만화와 비슷한 류로 취급되었고 심심할 때 별 생각없이 보는 책이기도 했다. 그렇게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류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한번쯤은 무협지를 읽고 꿈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루지 못하는 경지, 그런 경지를 이룬 무림인들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대하고 대리 만족을 느꼈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긴긴 밤 만화방에서 밤을 세면서 꿈의 나래를 펼쳤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만화와 마찬가지로 무협지를 읽고 있으면 왠지 다른 책들을 읽는 모습에 비해서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거나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소설이나 시 같은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서는 왠지 소외된 듯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무협지를 읽어본 것은 잡히는 대로 몇 권 본 것이 전부라 지금까지 읽어본 무협지는 많지 않아 기억나는 것은 전동조의 "묵향"과 검류혼의 "비뢰도"이다. 이 시리즈는 아직도 출간되고 있는데 그만큼 연식도 오래되었다. "묵향"같은 경우 이미 30권이 넘었고 PC통신 시대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니 말은 다한 셈이다. 솔직히 아직까지 출간되고 있는 것이 질릴 법도 하고 개인적으로 "묵향"같은 경우는 이제 그만 마무리 지으면 어떨까 할 정도가 되었다. 처음 초반부 4권까지 스피디하게 전개되던 진행과 달리 판타지와 무림을 넘나들면서 이야기가 점점 질질 끄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검류혼의 "비뢰도"는 재치 넘치는 입담이 재미있고 권위에 결코 굴하지 않는 비류연의 거침없는 행동에 통쾌해할 만하며 가끔 등장하는 철학적인 이야기에 감탄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도 너무 오래간다. "묵향"을 군대에서 처음 접한 후 동네 도서관에서 다시 섭렵하고 "비뢰도"의 재미에 웃고 웃을 무렵, 이제는 그런 분위기의 무협지에 질릴 만한 때 만난 것이 용대운의 "군림천하"였다.

 

무너져가는 종남파. 한 때 당당한 문파의 간판을 내걸었지만 이제는 치욕적인 대결의 패배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문파. 여기에 이제는 건질 것도 없는 사람들만 남은 상타에서 장문인에 오른 진산월. 무공도 그리 높지 않고 몇 개 안남은 주류마저 빼앗기고 그래도 희망을 품고 중원으로 향하는 일행을 위해 장문인인 진산월은 만찬을 준비한다. 만찬은 이후에도 사매를 잃고 허망하게 돌아와 한번 행해지고, 이후 절정고수가 되어 돌아와 다른 사제들을 모아놓고 다시 이루어지는데 만찬이 이루어질때마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종남파에 진산월과 같이 남은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어릴 때 고아가 되어 떠돌던 진산월을 그 전대의 장문인의 데리고 왔듯이 다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강해지겠다는 일념으로 종남파에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개인의 개성도 강하고 아픈 기억도 많다. 그렇기에 다들 가족처럼 뭉쳐있다.

이런 문파가 이제는 "초가보"라는 신흥 문파의 위협아래 멸문의 위기에 처해있을 무렵 장문인이 된 진산월은 과거 문파의 숨겨진 절학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고 마침내 삼년 동안의 고된 수련 끝에 그 절학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여 절정 고수가 되어 돌아온다. 그 사이에 문파의 남은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숨어지내고 있었고, 진산월은 이들을 다시 모아 "초가보"와의 힘든 싸움을 이겨내고 다시 문파를 재건하는 데 성공한다. 이어 문파의 재건을 알리기 위해, 이년 전에 두고 온 사매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 21권 이전까지의 줄거리이다.


21권은 맨 처음 소개한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강물 흐르는 소리만이 꿈결처럼 아련하게 들려올 뿐이었다."라는 시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년지약(2년 후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삼년 만에 만난 진산월과 사매 임영옥의 만남은 아련하기만 하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청의방을 비롯한 군소방파와의 비무행, 천룡궤 운반을 맡은 진산월 일행과 그를 둘러싼 대립. 쾌의당의 계속된 음모와 공격 등이 21권의 줄거리이다.

 

다른 무협지와 달리 "군림천하"의 뛰어난 점은 우선 절제된 문장에 있다.


보통의 무협지들은 여러 방파를 나열하고 서로간의 무의 대결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재미만을 추구한 나머지 문장이 날림인 경우가 종종 생긴다. 혹은 여기저기 등장한 무림 용어들을 읽느라 정신없게 만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재미만을 추구한 나머지 문장의 구성이 허술하여 끝마무리가 어설프거나 심지어 줄거리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군림천하"같은 경우는 문장 하나하나가 깔끔하다. 어설프게 재미를 추구하는 경우도 없다. 너무 무겁지 않게 "손풍"같은 조연이나 혹은 "낙일방"과 "엄쌍쌍"의 어린 사랑 같은 이야기를 살짝 집어 넣어 재미의 조미료를 넣는다.


또다른 장점은 치밀한 구성이다.


10년 넘게 책이 이어져 오면서도 그 진행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군데군데 등장하는 복선은 어색함이 없다. 전체적으로는 약간 무거운 느낌이나 그 구성의 치밀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권에서부터 살짝살짝 등장하는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모아지면서 21권 이후 진행에 있어서 복선이 된다. 가령, "석가장"의 "철혈홍안"의 등장은 그 이전에 종남파의 "종남오선"이었던 매종도와 정립병의 연인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그 실마리가 보이고 뒤이어 "낙일방"이 만난 "우일기"가 쫓기던 이야기에서도 살짝 복선이 비친다. 한번에 죽 설명하듯이 전지적 작가가 개입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면 독자에서 머리를 쓰는 재미를 주지 못한다. 군림천하 1권에서부터 이번 권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이야기를 짜 내면서 군데군데 단서를 등장시켜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진행이 과거의 끈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아가게끔 만들고 있다.


좀 더 사실적인 묘사도 괜찮다.


무협지라 함은 솔직히 뻥이 심하다. 하늘을 나르고 바위를 부수고 손 한번 휘두르면 여러 사람이 날아간다. 어릴 적 타고난 기재로, 주인공은 손쉽게 절정고수의 대열에 이르고 그 주인공 홀로 온 무림을 주름잡는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조금은 통쾌할지는 모르지만 왠지 읽고 나면 허전하기 마련이다. "군림천하"도 무협지이기에 보통 일반 사람이 보일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무협지에 비해서는 좀 더 사실적이다. 가령 진산월이 절정 고수의 대열에 이르기까지 문파의 절학들을 찾아다니는 대목이나 홀로 동굴에 쳐박혀 수련하는 모습이 - 물론 그것 자체도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일이지만 - 조금은 뻥이 덜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주변의 "낙일방""전흠"등의 사제들, 제자들의 이야기도 주인공의 이야기에 비해 너무 덜하지 않게 엮어지면서 영웅 혼자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매 "임영옥"과 "이년지약"을 지키지 못한 진산월은 사매와 헤어지고 다시 문파의 재건을 위한 비무행을 이어나가면서 석가장의 장주인 "석곤"이 부탁한 "천룡궤"를 운반하는 일을 계속하는 데, 이것이 앞서 언급했듯 21권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다시 "천룡궤"를 둘러싼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진산월과 그 사람들의 꿈인 종남파의 "군림천하"가 이루어질지 하는 것이 앞으로 이야기 전개의 핵심이다. 다만, 21권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는 작가의 말은, 앞으로 남은 이야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힘이 들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유돈이 있다면 소장하고 싶은 무협지이지만 21권에 이어 30권을 넘어가는 세월은 너무 버겁다^^;;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옮겨 적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수정에서 가져오면 좋은 데 그게 쉽지 않아서 이렇게 다시 적어보려고 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g 2019.12.29. 신고 공감 6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