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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해본 적은 없다. 정확하게는 첫눈에 반한다는 걸 믿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 1~2초 사이, 순간의 마주침에 반한다는 건 먼 나라 이야기 같기만 하다. 한편으론 가능하리라 생각은 되면서도 왠지 내가 그 당사자가 되기에는 따라오는 위험성이 크다는 생각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눈빛의 마주침 이전에, 대화 상대로서의 이끌림이 있고 반하는 건 그 뒤의 일이다. 많은 작가가 그러하겠지만 더글라스 케네디는 첫눈에 반하는, 단 몇 초간의 운명적 이끌림에 몰두하는 작가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했으니까. 『행복의 추구』도 그 전철을 비켜가지 않는다. 이 작품은 과거를 살았던 여인과 현재를 사는 두 여인 사이에서 각기 사랑을 중심으로 삶=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사람은 운명적 사랑에 빠져 평생을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아오고 있고 한 사람은 실패한 결혼 생활과 엄마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늙은 여인과 나이 들어가는 여인 사이에서 그들이 무엇으로부터 행복을 찾고자 하는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깨달아가는 여정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술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데 케이트와 새러, 이 두 여인 사이에는 한 남자로 이어지는 상관성이 있다. 늙은 여인 새러에게는 평생 사랑했던 단 한 남자로, 케이트에게는 많은 기억은 없지만 자상했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두 여인의 만남은 공교롭게도 케이트의 엄마가 죽으면서 이루어진다. 평행선을 걷듯 아슬아슬한 대척점에 있는 두 여인의 삶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지향점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현재, 한 여자, 케이트.
그녀는 엄마가 없는 엄마의 집에서 잠을 잤다. 엄마는 이제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왜 그녀는 엄마가 부재한 곳에서 잠들길 바랐을까? 일상처럼 존재했을 때는 스쳐지나 버리고 말았던 소중함의 망각이란 것이 부재했을 때에야 비로소 고요히 떠오른다. 진.정.소.중.했.노.라.고. 어린 시절, 엄마는 나의 친구고 상담자고 조언자였다. 지금도 그건 변함없지만, 철없던 시절만큼 스스럼없이 모든 주제의 대화를 하기에는 꺼리게 된 건 사실이다. 때론 감춰두고 싶은 비밀이 늘어간다. 그러면서 관계는 소원해지기도 한다. 어린 자식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것에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남을 뛰어오르려 하는 모습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는 모습에 더는 친구도 조언자도 상담자도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자각에 슬펐을 것이다. 엄마의 삶, 부모의 삶이란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먼 강이다. 그 강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는 돌다리를 건너고 또 건너야 한다. 그만큼 어렵고 인내를 요구하기에 부모는 자식을 이해해도 자식은 부모를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가까이 지내던 누군가가 망자가 되어도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계속된다. 때때로 그것이 현실화 될 때 슬픔이 차오른다. 예기치 않은 큰 슬픔이 목구멍을 점령하는 건, 내 삶이 끝나면, 내 주변도 그처럼 나를 잊고 그대로 이어질 거라는 현실 앞에 부딪히는 나의 상실감 때문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하나 둘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할 때, 우리는 영원한 소멸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흔적이, 내가 사랑했던 이들의 흔적이... 바람에 꽃잎이 날리듯, 그렇게 대기 속으로 날아가 땅으로 땅으로... 떨어지고, 잊히고... 완전한 '나'로부터의 소멸이 찾아오는 것일 테다. 지금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나는 얼마나 많은 나의 과거를 삭제하고 잊고 살아갈는지 모르겠다. 잊힌 기억 속에서 소중했던 순간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 슬픔이 차오르는 건 너무 잊고 살아서일 것이다. 내 지난날, 나를 살게 했던 모든 것들을.
케이트의 삶에 대한 회의 속에는 엄마를 잃은 상실과 함께 결혼 생활에 대한 실패도 한몫한다.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겉으로는 비슷한 관심사에 이상적인 커플이 되어 결혼하게 된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들은 보여주기에 급급한 일종의 자기기만과 합리화 속에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애썼기 때문이다. 케이트의 결혼이 실패한 원인이다. 너무 사랑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던, 우리가 '불륜'이라 부르는 사랑은 남자의 배신으로 한여름밤의 꿈처럼 끝나버렸고 더는 사랑의 가치를 찾기 어려웠던 케이트는 주위의 시선에 부합하는 적당히 괜찮은 남자와 결혼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전제되지 못한 결혼 생활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그런 케이트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밀며 새러가 다가온다. 이 두 여인은 한 남자로의 이어짐 이전에 사랑 앞에서도 비슷한 행로를 걸었기에 더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거, 한 여자, 새러.
운명적인 만남은 항상 우연에서 기인한다. 처음 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9개월 동안을 기다린다 말한 여자는 자신을 '바보'라 지칭한다. 사랑은 그렇듯 불시에 찾아와서 우리를 맥도 못 추게 만들어버린다. 사랑에 빠지면 상식, 이성, 논리 같은 것들과는 별개인 감정이 생성된다. 물론 머리로 하는 계산적인 사랑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딱 하룻밤을 함께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해서 누가 감히 그 사랑을 어리석다 말할 자격이 있는가. 현실적, 이성적으로 보자면 하룻밤의 불장난일지는 몰라도 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새러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그녀를 '어리석은 사랑'에 빠진 여자로 몰아가지만 자신만은 사랑에 부끄럽지 않으려 행동한다. 내가 바라보기에도 그녀의 사랑은 무모하다 싶을 만큼 위험했다. 최소한 감정에 솔직한 모습만이 봐줄 만 했다. 남의 사랑을 하찮게 여길 자격은 나에게는 없다. 그렇기에 그녀의 사랑에 귀 기울인 것이리라. 새러의 머리는 잊으라 말하는데 심장은 계속해서 잭을 찾는다. 그리고 그녀는 상실감을 덜어내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잭과 처음 만난 이야기, 사실임과 동시에 허구의 이야기를...
"누구나 사랑을 하면 열다섯 살로 돌아가지. 그런 까닭에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근사하면서도 위험한 일이야. 근사하다는 건 사람에게 사랑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위험하다는 건 사랑에 눈이 멀 경우 엄청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 수도 있다는 뜻이야."-165쪽
그냥 단순하게 생각 하다보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해. 글을 쓰고 싶으면 쓰고, 사랑을 하고 싶으면 연애상대를 찾아봐. 나이를 몇살이라도 더 먹은 연장자로서 말하는데 사랑을 해보겠다고 작심하고 나서는 건 곤란해. 그런 식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 십중팔구 싸구려 멜로드라마로 끝나게 되지. 사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머리를 탁 치는 느낌을 주는 거라 생각해.-128~129쪽
사랑에 빠지면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상태가 지속한다. 어제는 웃었다가 오늘은 울었다가, 사소한 것에서 오는 서운함이 배가 되기도 하고 반면에 기쁨도 배로 충만해진다. 그런 감정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노출되는 게 사랑이 우리에게 전하는 감정의 요동이다, 살아있다는 증거. 사랑 앞에서 순풍만 불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위험이 따라서 스릴있는 사랑을 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은 욕망한다. 위험한 사랑에 빠지길 주저하지 않는다. 감정이 따라가는 대로 가다 보면 주체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몹쓸 놈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성으로 하는 게 아니다. 논리로 하는 것 또한 아니다. 감성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심장이 향하는 대로, 감성이 흐르는 대로, 그렇기에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다.
... 1편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소설은 두 여자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2편을 펼쳐 읽자마자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소설은 한 여자, 정확히는 한 사람의 삶, 사랑을 통해 그 주변(케이트를 포함)에 미치는 파장-사랑, 상실, 이별, 배신, 치유 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었다. 운명적인 사랑? 누구나 살아가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고 실현되길 바랄 것이다. 나 또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을 믿지 못한다 말하면서 은연중에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 주길, 내 일생을 걸어도 좋을 사람이 실체로 존재해주길, 그렇게 바라고 있는 걸지도... 한 여자의 운명적인 사랑을 말함과 동시에 그 내막에는 1950년대 미국 풍경을 그리고 있다. 흔히 나와 같기를 선동하고 나와 다르다면 배척하는 전쟁 후 시대상을 이 작품은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전후의 사회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움 투성이이다. 그 속에서는 나 외에 누구도 믿기 어려워진다. 설사 가족이라 하더라도 의심의 촉각을 곤두세우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매카시즘 열풍이 불어닥친 지극히 개인주의적 미국 사회,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한 여자의 운명론적 사랑을 통해 투명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사랑에 빠졌고 두 번의 배신을 당하고, 배신의 이유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면 결국 남는 건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믿음은 산산이 깨어져 버리고 탓할 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자신의 운명뿐이라고 받아들이게 될까? 자신의 사랑 때문에 가족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배후에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 관여돼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누구라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흔히 그 사람에게 주체할 수 없이 빠지다 보면 전후 사정 잴 것 없이 모든 것을 거는 게 사랑이기에... 이 소설은 정확히 바라보자면 행복보다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도 그건 사랑이 행복으로 가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동시에 마음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구절 '사랑해야 한다' 가 사무치도록 머릿속을 부유하게 하는 그런 소설인 한편 마음의 스산함을 지울 수 없다. 사랑했을 뿐인데 너무도 큰 고통을 떠안고 살았던 새러에 대한 연민이 커서였으리라. 그래도 소설은 우리의 인생과 다르게 해피엔딩이다. 평생을 사랑했던 남자의 자식을 두 번의 크나큰 배신 앞에서도 껴안았으니 그렇다 해도 무방하리라.
생의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
이 두 여인 모두, 선택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케이트는 전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어도 됐었고 엄마와 좀 더 심적으로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새러 역시 잭을 하룻밤 연애 상대라 치부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한 여자는 현실적인 무게를 다른 한 여자는 현실보다는 감정을 따랐다. 선택이 반복되는 인생 안에서 어떤 선택이 최상의 삶을 영위하게 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선이라 믿었는데 최악이 될 수도, 차선이라 선택한 것이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신기하고도 재미난 아이러니지 않던가. 새러 역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충동적인 선택으로 인생의 허리케인 속으로 강력히 빨려 들어간다. 여기서 이 작품의 매력이 돋보인다. 사랑 이야기도 좋지만 그저 그런 비탄에 잠긴 여성의 시시껄렁한 소설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건 새러의 비상이 톡톡히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적 사랑, 무책임한 결혼에 따른 실패, 유산 같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아픔을 통해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한 여성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기에 '불륜'보다는 '사랑'과 '삶' '행복' 같은 것에 무게를 둘 수 있는 것이다.
"내 행복을 누군가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행복해지려는 욕구를 빼면 뭐가 남죠? 결국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거죠."-146쪽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질 나이, 성인이 되었다. 내 인생을 감당해야 할 책임감 앞에서 나는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항상 우리의 뇌를 점령한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다들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사회에, 주변 사람들에게 내 행복을 저당 잡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몰아친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회가 바라는 대로 따라가면서 주위 시선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결국 내 만족을, 행복을 깎아 먹는 하나의 저울질에 지나지 않는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건데, 행복도 그렇게 찾아가는 건데, 부수적인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보니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고 신경 써야 할 것만 가득하다. 그렇게 하나 둘 나를 옭아매는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행복과는 다시 한 걸음 멀어지기 시작한다.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행복을 추구하며 삶의 길을 걸어간다. 그렇다 해서 '행복하니?'라 물어서 선뜻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는 게 아닌 것처럼 '불행하니?'라 물어서 선뜻 대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불행과 행복은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먼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먼 곳에서 찾으려 하니 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맞지 않은 큰 옷을 입은듯한 어색함을 지울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내 심장 가까이에 있다. 너무 먼 곳만 바라보지 말자. 지금이 내 인생의 한창때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먼 허공만 바라보다 내 화려한 시절은 안녕을 고하며 저물지도 모른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삶은, 안주하지 않고 도태되지 않았다는 자기만족은 줄 수 있겠으나 그도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합리화일 뿐이다. 멈춰있느냐 나아가느냐도 내가 결정할 일이고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것도 나의 만족이다. 보여주는 이상에 급급해 내 안의 행복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나의 행복, 내 행복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삶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남들을 의식해서 내 안에 든 행복을 놓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나는 되지 말아야 한다. 내 행복이 충족된 후 주변의 행복에도 자양분을 뻗어줄 수 있다. 사람들이 행복하다 한마디 뱉어내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보다는 남의 행복을 먼저 보려 하기 때문에... 이기적이라 해도 좋다.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야 한다. 자신은 불행한데 남들은 행복하길 바라는 것도 참 우스운 일 아니던가. 세상의 현실에, 사랑의 실패에 무너져 있을 때는 현재의 슬픔만이 내 것이 된다. 의욕은 온데간데없고 살아있음의 기쁨도 환희도 없다. 나와 차단된 닫힌 문만 덩그러니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은 언젠가는 열린다. 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열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랑도 행복도 그렇게 찾아가는 것이다. 나의 내면, 마음속을 향한 귀 기울임에서부터 세상 밖으로의 도약과 사랑의 쟁취는 존재한다. 두 여인의 대조적인 삶의 귀결은 결국 '사랑'으로 이어진다.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따뜻한 위로를 통해 치유를 받고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과 행복을 배척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 가는 것, 삶은 언제나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그마저도 즐긴다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잊지 말기를, 행복은 내 심장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걸...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을 접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가 얼마나 자국에 대해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시각을 가진 작가인지. 한때는 그런 점이 불편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나는 그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사람은 간절히 변화를 바라고자 할 때 더 냉정해지게 된다.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보고자 할 때, 깨어나고 달라지길 바랄 때 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각 뒤에 운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의 글은 가슴이 아릴 만큼 절절하다. 이 남자가 참 섬세하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그의 글을 제대로 보는 거 같다.
하루하루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세상에서 사라지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나의 이야기지만 사는 동안은 열심히 끼적거리며 쓰고 또 쓰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생이 주는 선물이다.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할 끔찍한 일이라도 한 발 물러서 보면 달라진다. 왜냐면, 이생은 두 번 오는 게 아니니까. 단 한 번뿐이니까 말이다. 행복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지금이 지나면 이 순간의 행복은 없을 테니까, 놓치지 말고 깨달아야 한다.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1, 2권 통합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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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1』은 사랑과 희망, 좌절과 분노, 결혼과 이혼, 역경과 성공 그리고 애증의 삶을 행복으로 승화시킨 한 여인의 삶을 비춘 60년의 대서사시이다. 잭의 딸인 케이트 말론이 현재의 이야기를 꾸려가고, 새러 스마이스는 케이트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준다.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액자처럼 끼어들어 있는 액자소설이며,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이므로 인물과 서술의 초점이 일치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0년대의 보수적인 미국 사회를 조명한 것이다. 우선, 성정체성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시대였다. 새러의 오빠 에릭은 동성애자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없었고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었다. 또한, 여성의 가치관이 우리나라의 과거 사고방식과 흡사한 부분이다. 직장을 다녔던 여성이라도 일단 결혼이 시작되면 당장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그랬고 사회활동에 지친 여성들은 쉽게 결혼의 무덤으로 들어갔다. 당시의 미국은, 본질적으로 청교도 국가이며 미혼모가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상황을 보여준다. 혼전 임신은 취업도 힘들었고, 임대 조건 항목에서조차 도덕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른 세입자를 임의로 내보낼 수 있다는 점은 퇴거 명령도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혼전 임신이 질서와 예의, 사회규범을 해친 범법자로 취급된다는 것인데, 그러한 인습에 맞선다는 건 사회적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존재라는 의미였다. 지금의 자유주의국가 미국을 생각하면 가히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 당시 남성들이 여성들을 상대로 얍잡아 보고 비아냥거린 발언들은, 지금 시대엔 성희롱 처벌에 해당되는 수위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드는 입방아를 찧어대는 주민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복잡하고 시끌벅쩍한 뉴욕은 우리의 농촌과 도시를 연상하게 한다. 국적은 달라도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문화적인 면에서 명확하게 선을 긋게 되는 것 같다. 인구, 교육환경, 소득격차 등의 지역불균형 현상은 날로 심화되는 추세인데다가, 도시로 진입을 노리는 대량의 잠재적 농촌과잉인구는 농업저소득에서 오는 불균형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언제부턴가 농가소득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농촌관광을 활성화 시키고는 있지만, 그 또한 계절의 영향을 받는터라 지속가능한 대안이 필요할 것 같다.
공산당이었던 에릭의 정치성향은 민주화를 염원했던 제5공화국 시절의 급진주의자 내지는 지식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저항 정신과 비판은, 그 시대의 국민들 대다수가 정치와 언론의 진실로부터 소외될 수 밖에 없었기에 이러한 지식인들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머리가 알고 가슴이 시켰으며, 책임을 의식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내에서 사회의 부조리에 앞장선 자들인게다. 그리고, 자식들을 끔찍히 사랑하지만 서툰 애정표현과 드러내지 않는 감정을 지닌 엄격한 새러의 부모님 역시 과거의 우리 부모님들을 연상하게 하고, '아버지는 곧 하늘'이었던 고정관념은 가장인 남자가 생계를 해결해야만 했던 우리의 보수적인 80년대의 시대상과 많이 닮아있다. 또한, 전쟁은 끝났어도 전쟁의 참상을 알려준 <다카우> 마을 포로수용소 이면에, 정의와 생존의 딜레마에 빠졌던 한 남자의 참회는 참 많은 것을 담아낸다. '이히 하베 니히츠 다폰 게부쓰트(난 몰랐습니다).'
우는 게 정답은 아니란다. 우는 건 자기 연민일 뿐이지. 자기 연민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해. -P116
누구나 사랑을 하면 열다섯 살로 돌아가지. 그런 까닭에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근사하면서도 위험한 일이야. 근사하다는 건 사람에게 사랑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위험하다는 건 사랑에 눈이 멀 경우 엄청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 수도 있다는 뜻이야. -P166
확실성은 경험적인 개념이야. 경험론은 사실에 근거하지.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건 확실한 개념이야. 물이 섭씨 0도 이하에서 언다는 것도 확실한 개념이지. 창밖으로 몸을 던지면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것 역시 확실한 개념이지만 반드시 죽는다는 건 불확실한 개념이지. 다만 죽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야. 바로 그것처럼 사랑도 확실한 개념이기보다는 가능성이 있을 뿐인 거야. -P166~7
보수적인 부모님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새러 스마이스는 중산층 자녀로써,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에 있는 잡지사에 취직한다. 전후에 처음 맞는 1945년 추수감사절 전야제, 1초의 강렬한 시선으로 잭 말론과 스마이스 새러는 순식간에 사랑에 휩싸인다. 그후, 유럽 특파원으로 파견된 잭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지만 연락은 단절되고, 그리움과 애증의 시간을 지나온 새러는 이별 이후 4년만에 잭과 조우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격정적인 사랑의 주인공 새러, 그의 연인 잭 말론, 뛰어난 천재성과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새러의 오빠 에릭, 마마보이 조지 그레이, 인정머리라곤 없는 시어머니, 바람둥이 편집부장 맥과이어 등이다. 특히, 새러가 위기와 파탄,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맞을 때마다 늘 곁에서 안위를 살피던 에릭을 보면 마음이 따스해져 온다. 그는 적어도 여동생 새러에게만큼은 지구에서 인내심이 가장 많은 사람일게다. 굴곡이 많았던 1편의 막바지는, "이것저것 재지 말고 자연스럽게 써보는" 시도를 통해 두 남매에게 작가적 명성과 함께 해피엔딩에 밀어넣는다. 그리고 현실과의 괴리감을 떨치지 못한 새러는 잭과 함께 불륜의 늪으로 빠져든다.
이 책의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는, 전작 『위험한 관계』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임신우울증과 더불어 아이에 대한 엄마의 입장까지 잘 구사해서 놀라움을 주었던 작가이다. 이번 작품 역시 같은 여성보다도 더 여성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남자 작가임을 증명함과 동시에, 6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미국의 역사가 소설의 전반에 녹아 있어 작가의 지식과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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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길게 쓰여진 그의 책이고, 단박에 1권을 읽었다.
케이트 부분은 그냥 그랬는데, 새러 부분에서 더욱 술렁 술렁 읽히는게..역시 더글라스 케네디,의 힘은...쭉쭉 뽑아내는 글빨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아직까지는 새러에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여자는 좀 밥맛이다. 이게 소설이라서 그렇지... 너무 경솔하게 관계를 갖거나 결혼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신경숙의 소설에 등장하는 '언니'들처럼...항상 지지해주는 새러의 '오빠'가 차라리, 조금 더 진득하고 괜찮아 보인다. 아마 그래서..오빠가 주인공이 아니라, 여동생이 주인공인가??
더글라스 케네디 작품속의 주인공들은...그냥 그런 약간의 결점과 아쉬움을 겸비한..그냥 우리 주변의 불특정 다수 중의 한 명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모든 소설에는 항상 바람피우는 남자나 여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나라에선 놀라울 일도 아니겠지만.
2권으로 넘어가면... 어쨌거나, 온갖 산전수전 다 겪다가 그녀의 long and lasting Love에 대한, 결말이 나오겠지만...나는 이 책의 결말이 조금 엉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그 누군가에게도 발생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그게 항상 해피 or 새드 엔딩일 수는 없을테니.
덧붙임. 요만큼 쓰고 다시 읽어보니...또 웃긴 리뷰가 되어 있다. 나는 그냥 그저 그런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에 더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무슨 심보인지...이번엔 마구 마구 꼬여서, '인생이 그렇게 만만치 않단다.' '너같은 주인공년도 때로는 황당한 엔딩을 맞아야 한다.'...뭐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날이 너무 더운거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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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로 유명한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 그의 작품은 처음인데, 이 책 참 재밌다. 책을 잡으면 놓기 싫을 정도로 빠져 든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새러 스마이스' 와 기독교의 이념을 충실하게 이행하려 애쓰는 '잭 말론' 그들의 사랑이야기다. 새러와 잭은 한 파티장에서 처음 만나 첫 눈에 반해 하루밤을 함께 보낸다. 대화도 잘 통하고 유머러스한 둘은 누가 봐도 참 잘 어울리는 연인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서로는 언젠가는 만나야 할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여긴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그들에게 심하게 태클을 건다. 그 다음날 잭이 종군기자 신분으로 유럽으로 파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난지 24시간이 채 안되었지만 그들은 헤어져야 하는 현실과 마주한다. 9개월 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겨 둔 채 잠정적인 이별에 들어간다.
짧았기 때문에,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걸까? 남겨진 새러는 잭이 매 순간 보고싶다. 매일 편지를 하겠다던 잭은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새러가 보낸 여러 통의 편지를 분명 받았을 텐데 답장도 없다. 어찌 된 일일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처음엔 안부를 걱정하던 새러. 시간이 지날수록 배신감이 느껴진다. 하룻밤 엔조이로 나를 이용했던 걸까! 그 즈음 잭으로 부터 한 통의 엽서가 도착한다. 그가 떠나고 몇 달 만의 일이었다. 그 엽서에는 충격적인 한마디만 있을 뿐이었다.
"미안해요" -잭-
그토록 기다리던 편지였건만, 이게 무슨 뜻일까. 앞, 뒤 내용도 하나 없고 단지 미안하다는 말만 덩그러니 들어있다. 잭을 향한 그리움은 이제 분노와 증오로 바뀌었다.
잭의 배신, 이어지는 새로운 사랑, 결혼 그리고 다시 시련... 한 여인이 겪어야 했던 젊은 날의 한 때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녀의 행보와 감정상태에 이입해서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책 끝장에 와 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2권을 찾고 있다.
한 번 펼치면 절대 책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이 짱!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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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대로 보이는 노부인이 엄마의 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잿빛 머리에 키가 크고 몸집이 호리호리한 노부인이었다. 내가 그 연배쯤 되었을 때 되길 바라는 모습. 굽지 않고 꼿꼿한 등, 균형 잡힌 골격, 하얀 피부... p.7
이야기의 시작은 칠십 대로 보이는 노부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부인? 스무살엔 칠십이라는 나이가 나와는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내 엄마의 나이가 칠십가까이 되고 나서야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란것을 알아버렸지만 말이다. 여전히 사랑을 아는 그런 나이.. 아니, 어쩌면 여자는 평생을 사랑받고 살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는다면 평생 누군가와 사랑을 하던지. 책방사이트에 <행복의 추구>가 몇 주째 걸려있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글이니 이 글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읽은 그의 책중 두권으로 된 유일한 책이다. 꽤나 읽어야 할 양이 많은 장편의 글임에는 확실한데, 1권을 읽고 2권을 내리 읽었다. 중간에 멈출수가 없었다. <위험한 관계>를 읽었을 때, 첫 1/3이 어찌나 지루하던지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 부분을 넘어서면서 느꼈던 롤러코스터를 이 글에선 느낄수가 없었다. 그냥 잔잔함. 그런데 멈출수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랑때문에 웃고 사랑으로 울고, 또 사랑에 답답함. 어떤것이 행복의 추구일까? 작가는, 왜 그녀들에게 <행복의 추구>를 이야기 하려 했을까? 그녀들이 추구했던 행복. 행복하긴 한걸까?
주부들이 모이는 사이트에서 가장 욕을 얻어 먹는 사람은 단연코 새러와 잭같은 인물이다. 자신들의 사랑으로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들. 자신들은 사랑이라 이야기 하지만, 통상적으로 그 사랑은 불륜이 되어버리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은 고귀한 사랑이라 외쳐되지만 완벽한 불륜의 대상이다. 내 주변에 이들이 있었다면 등 돌리고 외면해 버렸을텐데, 그들의 사랑, 아니 그녀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있다. 어느새, 나에게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친구가 되어 버려 그녀를 옹호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장래식장에서 노부인을 본 것은 케이트였다. 잭 말론과 도로시의 딸. 오빠 찰리가 있지만 연락이 안된지는 오래되었고, 메그 고모의 표현으로는 '우라질 놈'이라는 전 남편 사이에서 난 사랑스러운 에단을 키우고 있는 케이트. 엄마가 돌아가시고 노부인이 계속 그녀 주위를 멤돌기 시작한다. 케이트에게 보내진 우편물. 그속에 들어있는 아빠와 노부인의 젊은 시절 사진. 케이트와 찰리. 그리고 에단의 사진까지. 스토킹이라고 생각이 들어도, 궁금했다. 무슨 이유로, 노부인이 케이트의 주변을 멤도는지. 어째서 노부인이 그녀를 만나고 싶어하는지...
"잭 말론, 즉 케이트의 아버지는 내가 평생 사랑한 남자였어요. "p.95
처음 본 노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대책없이 죽어버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엄마의 표현으로 아빠는 남성다운 멋진 사람이었다. 케이트가 몰랐던 아빠의 연인. 그 사람이 부모가 다 돌아가시고 이제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 나타나 사랑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케이트로 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새러로 넘어간다. 새러 스마이스. 새러와 스마이스에 s가 들어가 오빠 에릭 스마이스가 에스라고 부르는 스마이스는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의 보수적인 부모밑에서 자란 아가씨다. 한때 공산주의에 빠졌었던 오빠가 있지만, 이제는 탈퇴해서 뉴육에서 생활을 하고있다. 결혼을 이야기하는 부모의 뜻을 버리고 대학 졸업과 함께 뉴육의 잡지사<라이프>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새러. 그리고 부모의 죽음. 이제 그녀에게 남은 사람은 오빠 에릭 스마이스 밖에는 없다. 희곡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에릭. 에릭의 주변은 언제나 정신이 없을만큼 북적되었고, 그곳에서 새러는 잭 말론을 만난다. 첫눈에 사랑에 빠질 수 없으리라고 새러는 생각을 했었다. 잭을 만나기 전까진...
첫눈에 빠진 사랑. 하룻밤에 인연. 그가 반드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무수한 편지에 대한 답은 '미안해요'라는 단 한줄의 엽서 뿐이었다. 이런 무책임한 사람이 있을까? 하룻밤에 인연은 새러를 바꿔놓는다. 그와의 만남을 글로 쓰기 시작하고, 그것으로 인해 일을하기 시작하는 새러. 사랑이 다시 찾아올수 있을까? 그녀에게 다가온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결혼으로 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안주는 그녀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시월드'라는 표현이 있다. '시월드'가 미국이란 나라, 1940년대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얼마나 강하게 불었던지, 읽는 내내 눈살을 찌뿌리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 새러에게 남은건 오직 오빠 에릭뿐인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새러의 유산. '시월드'의 탈출과 함께 새러는 안정을 찾는 것 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자유뿐 아니라 경제적인 면까지 해결이 되었으니까. <새터데이 나이트/선데이 모닝>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는 새러와 잘나가는 <마티 매닝 쇼>의 코미디 작가로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에릭. 가끔 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윈첼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는다.
'내가 바라는 건 완전한 독립이었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될 말큼 홀로 서는 것. 내 행복과 운명을 남자에게 맡기는 상황은 더 이상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p.335) 스마이스 남매의 승승장구로 이야기가 끝이났다면 행복했을까? 완전한 독립을 이야기 하지만 28살의 이혼녀라는 사실도 함께 강조하는 새러. "믿을 수 있겠니?" "믿을 수 없어. 사실은 우리에게 찾아온 행운도 믿기지 않아."(p.361). 이렇게 두 남매는 행복한것 처럼 보였다. 희곡작가는 아니더라도 코미디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에릭과 수많은 독자를 지니고 있는 새러. 경제적인 것이 성공의 척도라면 당연히 그렇게 보였다. 잭 말론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러에게 잭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다. 부인과 아이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그 모습 그대로. 어쩜 이렇게 파렴치 할수 있을까? 사랑은 오직 새러뿐이라고 어떻게 이야기 할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새러.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1권은 마무리 된다. 1940년대의 미국 사회를 나는 모른다. 책을 통해서 만나고 있지만, 그 사회가 이랬는지 확신도 없다. 우리 사회와 비슷하구나 하는 정도.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2012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날법한 이야기들이 1940년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들려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새러의 인생. 아니, 현대판 여자의 일생? 아니면 삶은 알수 없는 것?
생을 결정하는 아주 중대한 기로에 섰을 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란 그리 쉽지 않아요. 흔히 본능에 기대거나 즉흥적으로, 혹은 두려움에 굴복해 결정을 내리게 되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생이 원치 않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p.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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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읽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중 난 개인적으로 이번 <행복의 추구>가 가장 마음에 들고, 아마 읽는 속도도 가장 빨랐던 것 같다. 1~2권으로 되어있는데, 처음 이 책의 흐름에 정착하기까지는 약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어느순간 속도감이 붙어 2권은 거의 1권을 읽을때에 비해 시간이 반정도 줄어있었다. 책표지는 약간 유치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로맨스소설에 등장함직한 그림이지만 나름 어울린다 싶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이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인생’이라는 이야기에는 해피엔딩도 비극적인 결말도 없다라는 문구가 아니었나 싶다. 책의 주인공은 아마도 새러 스마이스 일것이다. 그녀의 일생을 통해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를 통해 그시간의 정치와 문화와 사랑과 사회적여건에 대해 알수 있다. 사랑은 정말 국경도, 피부색도, 정치사상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했듯이 새러와 잭 역시 아주 찰나와 같은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을 통한 사랑때문에 그들의 일생을 다 소모했고, 또 열렬히 사랑했지만 헤어질수밖에 없었음도 보여줬고, 서로를 끝내 사랑했기에 더 용서하기 힘들었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하게 해주었다. 남편에게 사랑하는, 절대적인 여자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아들때문에 묵인할수밖에 없었던 잭의 아내 도로시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아마 지금의 상황이라면 불륜이라며 악다구니 쓰며 위자료청구에, 법정소송까지 불사할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때 당시는 이혼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들을 사랑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안위도 생각했기에 잭을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을지도. 그리고 다른사람의 이름을 밀고해야만 자신의 안위가 보장되는 사회였으니, 그당시에는 정의를 위해 침묵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것이다. 다른사람을 배신하지 않기위해 입을 닫았던 새러의 오빠 에릭이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은 내가 최근에 실망했던 <파리5구의 여인>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 같은 작가가 썼나 싶을 정도로 내용 자체가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어 너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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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가정(假定)을 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랬더라면.." 등등...사는 게 무난하면 그렇게 했던 것에 대해 안도를 하고 힘겨울 때에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싯점이 여러번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삶은 크던 작던 선택의 연속이라는 생각이다. 그 선택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고.. 더글러스 케네디의 <행복의 추구>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소설속의 인물들의 삶이 만약에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아쉬움과 후회를 갖게 하는 경우도 있고 한 순간 별 일 아닌 것으로 어긋나 영원히 인연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 처럼..
뉴욕을 배경으로 1940년대 후반을 살았던 남녀의 이야기이다. 우연히 들르게 된 오빠의 파티에서 만나 첫 눈에 사랑을 느끼게 된 새러와 잭.. 그들은 꿈 같은 하룻밤을 보낸 후 긴 이별을 하게 되었지만 그것을 이별이라 생각하지 않고 9개월 이후의 행복한 삶을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첫 눈에 반해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그 이후의 삶 속에 자리 잡아 그 삶을 흔들어버리는 그런 운명 같은 사랑..그 운명 같은 사랑이 새러와 잭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과연 행복이었을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1권에서는 두 여인이 등장한다. 캐이트와 새러.. 각각의 시점에서 쓰여진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이 된다. 캐이트는 현재를 살고 있는 이혼녀이다. 뉴욕에서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방송기자인 매트를 만나 결혼을 하고 에단을 낳았지만 결국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며 이혼을 요구한다. 일, 사랑, 결혼 , 이혼 그리고 아들의 양육. . 그렇게 정신 없이 시간은 흘렀고 결국 돌아보니 초라한 이혼녀의 모습만 거울에 비춰질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지를 보내주던 엄마가 돌아가신다..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제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그야말로 자신의 삶에는 아들 에단뿐이라는 생각. 그리고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도 않았던 오빠와의 화해등으로 위안을 삼고 또 다시.. 라는 맘을 먹는 케이트.. 그런 그녀에세 한 여인이 찾아온다 새러 마이어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70대의 노부인.. 계속 신경이 쓰였지만 그저 부모님과 알고 지내시던 분이겠지.. 라는 생각이었지만 새러가 그녀에게 보여준 것들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그녀를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새러는 1940년대를 살아온 과거의 인물이라할 수 있겠다. 아직 2권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1권은 이 새러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살았던 그 시절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회적인 배경 그리고 뉴욕커들의 생활들을 함께 엿볼 수 있다. 아무리 뉴욕이라해도 그 당시는 지금과는 다른 보수적인 1940년대이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여러 상황들이 새러와 잭의 사랑을 생각치도 못했던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고 결국 새러는 잭과의 이별, 조지와의 새로운 만남, 원만치 못했던 시댁과의 관계, 이혼 그리고 작가로서의 성공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반전을 맞게 되는 잭과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더글러스 케네디의 작품은중 <빅 픽쳐> 이후에 두번째로 읽게 된 이야기였다. 그의 글은 일단 잘 읽히다는 장점이 있다. 술술 읽다보면 어느덧 이야기는 끝이나고 있다. 1권은 잭과 재회를 하게 되는 새러의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고 2권에서 계속을 약속한다.
우리는 행복하기을 원한다. 그 행복에는 누구누구와.. 라는 전제가 붙기도 한다. 그렇기에 행복의 전제 조건에는 사랑이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누구가 이성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가까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그들과 더불어 함께 행복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그래서 하게 되는 선택들.. 그러나 그것이 종착역은 항상 행복하기만은 하지 않다는 것..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지 않았던. 바라지 않았던 방향으로 어느새 내가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새러, 그녀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행복하고 싶었고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 행복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던 여인이었다. 소설속의 인물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그 여정속에서 함께 안고 가야하는 아픔, 고통. 배신등을 함께 느껴본다.. 2권은 케이트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바라본 새러와 자신의 아버지 잭의 사랑.. 어떤 결말로 달려가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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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중 읽기를 미루어 두었던 [행복의 추구]를 마주했다. 60년의 긴 세월을 통한 여자의 일생이 그려진 삶을 액자 구조로 케이트와 새러 2대에 걸쳐 안내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상황의 미국을 배경으로 좀 더 보수적인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환경과 개인의 삶의 연관성을 보는 재미도 있다. 1권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케이트 말론, 새러 스마이스라는 의문점이 있는 여성을 발견한다. 메그 고모의 소개로 찾게 된 그 여인 새러 스마이스를 만나며 본격적인 말론가와 스마이스가의 얽힌 이야기를 글을 통해 알게 된다. 보수적인 가정을 벗어나 <라이프>지의 인턴으로 맨해튼생활을 시작한 새러. 어느 날 오빠 에릭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잭 말론이란 운명적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군인 생활의 마무리를 위해 다음날 바로 떠나고, 그 뒤로 감감한 그의 무소식에 깊은 상처를 안고 그를 잊으려 새로운 남자 조지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건 열정 없는 그저 안정적인 결혼생활의 선택이었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새러에게 조지와의 결혼은 마치 영혼을 가두는 감옥 같은 결혼생활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모든 것을 컨트롤 하려는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말을 무작정 따르기만 하는 마마보이 남편 조지. 너무나 보수적인 가치관을 요구하는 조지의 집안과 그녀는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새러는 소중한 생명으로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신은 이도 허락지 않았는지 유산과 함께 영원한 불임을 선고 받게 된다. 상실감과 무기력이 찾아든 그녀의 삶에서 오빠만이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오빠의 도움으로 힘겹게 상황을 정리하고 안정을 찾는가 싶게 운명적 잭과의 재회가 이루어지는데... 인생에서 매번 주어지는 선택, 그 선택에 대한 과정이 그 사람 인생의 다리가 되고 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어 슬픈 결과를 가져다주더라도 그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것이 열정적 삶을 산 사람에게는 더 극단적이고 가혹하게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새러의 인생이 그랬으니까. “모든 건 너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었다 하더라도 넌 그 잘못된 판단때문에 벌어진 일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 거야. 늘 아픔이 따라 다니겠지. 그런 점에서 인생은 불합리해. 작고 커다란 슬픔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게 바로 인생이 되는 것이지. 사람들은 그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거야. 생에서 슬픔은 필수적이야. 슬픔이 우리에게 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지. 신이 술을 인간에게 부여해준 건 생의 필연적인 비극성 때문일지도 몰라.” - 55p(1권)
삶을 관통하는 다양한 희노애락으로 안내하는 이 작품은 배신을 주제로 이어지고 있다. 진정한 사랑보다 아이를 가진 여인에 대한 책임감을 선택했던 운명적 배신,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소신을 지키기 위해 거슬러야했던 역사의 배신, 연인의 배신으로 인한 사랑의 배신, 그것이 힘든 결정이었고 결과 또한 비극적이었지만 결코 삶 전체가 비극적이지만은 않음을 이 작품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죽음은 다툼을 멈추게 한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문득 사사로운 갈등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게 된다. 갈등은 지나친 감정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시간의 무상함을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언쟁을 벌이고, 원한을 품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후회한다. 세상에서 분출되는 온갖 갈등이 인간 존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결국 모든 게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될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싸우며 살아간다. 모든 일에 마지막이 있는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포기할 줄 모른다. 우리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에 분노한다. 분노는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분노는 우리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잊게 한다. -168p(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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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참 신기하다. 읽기 전에는 '이전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별 것 있겠어?' 싶고, 막상 읽어봐도 뻔한데, 도무지 그만 읽을 수가 없다. <빅 픽처>, <위험한 관계>, <리빙 더 월드>에 이어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2012년 작 <행복의 추구>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무대는 미국의 장례식장. 이혼 후 혼자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케이트라는 여성이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이튿날, 그녀의 앞에 새러라는 이름의 노부인이 찾아와 부모님의 오랜 친구이며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봐왔다고 말한다. 이 노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노부인과 케이트의 부모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새러의 이야기는 케이트를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매카시즘 광풍이 불기 직전의 혼란스런 미국 동부로 데려놓는다.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을 택한 이 소설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소설들과 비슷한 듯 다르다. 독신 여성이 원나잇 스탠드로 인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힘들게 이혼을 하고 삶을 되찾는다는 줄거리는 <위험한 관계>와 비슷하고, 역시 똑똑한 독신 여성이 유부남과 사랑을 하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다가 극적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는 <리빙 더 월드>와 흡사하다. 한 여자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이 불행해지다가 파경을 맞는다는 이야기는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 외에도 수많이 변주 되었지만, 이만큼 줄거리가 비슷비슷하고, 거기에 중산층의 몰락, 금지된 사랑, 파산 또는 돈벼락, 변호사의 도움 같은 똑같은 코드가 계속 등장한다는 점은 자기복제 같은 감이 없지 않다. 뭐 또 그게 그의 팬들이 그의 작품을 계속 찾게 만드는 매력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까지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들 중 이 소설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읽은 케네디의 소설들은 대부분 현대 중산층의 생활을 그린 무난한 것들이었는데 반해, 이 작품은 배경도 과거인 데다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어지러운 상황과 홀로코스트, 매카시즘 광풍 같은 시대적인 요소들을 곳곳에 잘 배치했다. 특히 새러의 운명의 남자 잭이 그녀와 결별할 때 한 말이 두 사람의 첫만남을 넘어 홀로코스트 문제로 연결되는 대목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저 대중 작가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훨씬 역량있는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저자는 매 소설에서 성공 또는 행복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며, 실패나 불행의 뒷면에는 예상밖의 행운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행복의 추구>야말로 그의 생각 내지는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내가 이래서 더글라스 케네디를 막장이라고 욕하면서도 계속 읽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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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시간.. 장례식은 망자보다는 산자들을 위로하기위한, 혹은 슬픔을 쏟아내고 마음을 추스르기위한 절차일런지도 모른다. 망자를 보내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갈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무리속에낯선 노부인의 모습이 케이트의 눈에 띈다.
[빅픽처]를 시작으로 더글라스케네디의 전작품들을 읽어가고 있는 중이다. 신분을 세탁하고 사는 남자의 이야기였던 [빅픽처], 부부란 가장 가까운 동시에 등을 돌리면 가장 위험한 적이 될수 있다는것을 일깨워준 [위험한관계] 냉전시대의 슬픔을 다룬 [모멘토]와 판타지가 섞인 [파리5구의 여인]까지, 이번 [행복의추구]에서 말하려고 하는것은 무엇인지 읽으면서 점점 궁금해진다.
장례식이 끝나고 케이트는 혼자 있고 싶었다. 엄마를 떠나보낸 시간,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속을 헤매는 이 감정들로부터 천천히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를 느꼈고 그런 케이트에게 걸려와서 말없이 끊기는 전화. 그리고 케이트에게 배달된 편지.자동응답기에서 들려오는 낯선 여인의 목소리.
새러가 잭을 만난것을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첫눈에 빠져 마음을 뺏긴다는 느낌을 설명한다면 새러와 잭이 만났던 그 순간의 기억들이 떠오를것 같은데..1945년 새러는 추수감사절 파티에 갔다가 그곳에서 잭을 만나게된다. 지금도 생생한 그 느낌, 만약 몸을 돌려 그를 보지않았더라면, 새러의 삶은 조금은 달라졌을까..그들에게 주어진 얼마되지않은 시간. 그들은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고 기다림이라는 시간앞에 던져졌다. 새러는 마음을 다해 잭에게 편지를 쓰지만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잭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고 새로는 그만 큰 실수를 하게된다. 호시탐탐 새러의 잘못을 잡아 새러를 내치려던 편집자는 새러에게 재택근무를 제안하고 새러는 오빠의 호의를 받아들여 별장으로 휴식을 취하러가게된다. 그곳에서 새러는 마음을 잡고 글을 쓰게되는데.
드디어 잭에게서 연락이 왔다. 짧은 한줄의 글 '미안해요" 시작이 있으면 마지막도 있는 법이다. 이제서야 잭을 기다려왔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다른 삶을 시작하는 새러는 약간은 우유부단하지만 착한 남자 조지와 결혼을 하게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결혼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는것을. 편안한 마음에 끌려 결혼을 선택하려고 했지만 조지의 집안식구들을 만나고 조지의엄마 그레이부인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면서 그저 조지에게 연민이 생겼을뿐인데. 하룻밤의 결실로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를 볼모로 삼아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그레이부인의 요구를 거절하기에는 새러는 겁이 너무도 많았다. 모든것이 그레이부인의 생각대로 움직이는것을 감당하기에는 새러는 자기주장이 강했고 엄마의 요구를 거절하기에는 조지는 많이도 여렸다. 식사부터 세탁까지 사사건건 의견들이 상반되는 조지와의 결혼생활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고 거기에 불을 붙이는것은 끝도없이 이어지는 그레이부인의 참견과 잔소리였다. 벗어나고싶지만 아이를 빼앗길것이 두려워 그곳을 벗어날수없었던 새러는 안타깝게 아이를 잃으면서야 그 지옥같은 곳에서 빠져나오게된다. 아이를 잃은 댓가로 얻게된것이 자유와 경제적독립이라니..
새러는 [새터데이나이트/선데이모닝]에 글을 기고하게되고 새러의 글이 인기를 얻으면서 새러는 점점 더 영향력있는 인물이 되어간다. 그런 새러와 마찬가지로 오빠 에릭도 승승장구하고 있는데,그때 새러의 눈앞에 나타난 행복한 가족. 오랜 기억속에 잊고 있던 그이름, 첫눈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그남자 잭이었다. 잭은 끊임없이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었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잭을 밀어내려애쓰던 새러는 그만 잭을 끌어안고만다.잭과 새러의 위험한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것으로 1권이 끝났다.
새러가 케이트에게 보여준 앨범에는 새러와 에릭의 어린시절부터 많은 시간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있었다.불행한 결혼생활과 유산으로 인해 다시는 출산을 할수없게된 새러가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지켜보았던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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