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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1편이 2차 세계대전 전후 상황의 미국을 조명한 것이라면, 2편에서는 1950년대의 미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잭은 새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도로시로부터 승낙받아 이중생활을 맘껏 향유하게 되고, 새러 남매와 잭의 사회적인 위상 또한 날로 발전하고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사건이 발생한다. 에릭이 반미활동가로 지목되어 정부로부터 사회활동이 일체 금지당하고 마는 가파른 시대의 조류에 휩싸이게 되고, 새러 또한 그 운명의 역류를 맞는다.
1950년대의 미국은, 반국가활동에 대한 조사가 철저히 규명되던 시대였다. 공산당에 가입했던 이력이 있는 저명한 인물들을 한명씩 불러들여, 또다른 인물을 지목하게 하고 색출하는 방식으로, 선동적인 정치가들로 인해 정부가 FBI와 언론에게 권력을 이양하던 시대였다. 양심과 밥 그릇 사이를 갈등하게 하는 게임의 법칙에서 양심을 택했던 최고의 코미디작가 에릭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더욱 놀라운 건 그의 비극적인 전초전에 잭이 합류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할리우드 배우 막스 먼로의 권총 자살 내용이 본문에 실렸는데 이 역시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조사로 인해 배역 제의를 받지 못했던 이유로 전한다. 독창성을 두려워하며, 형편없는 기회주의자이자 철저한 속물들의 국가였던 미국,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 시대였다. 마치 대한민국의 가장 암울했던 시절, 제5공화국의 삼청교육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 경찰들은, 수사 실적을 쌓기 위해 평소 그들에게 밉보였던 자들이 대거 끌려갔다. 인상이 험악하다는 이유로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음모자가 된 셈이었던 것이다.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정권 초기의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통한다. 하지만, 1954년 정치적 선동주의자 매카시 의원이 견책당하면서 미국은 잘못을 수정한다. 대한민국이라면? 궁색한 변명을 하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인간의 속성과 본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잭은 사랑이라는 허울 속에 주변사람들을 배신의 늪으로 밀어넣은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연인인 새러를 배신했고, 아내 도로시를 배신했고, 에릭을 배신했고, 자기 자신을 배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러의 용서와 마지막 남은 사랑이 그가 떠나던 순간을 행복하게 했을 걸로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잭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아무도 비난할 수 없었고, 양쪽 모두 이해받을 만한 상황이었다. 인간의 본능이란 늘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잔혹한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던 잭의 마음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순간에 양심에 따르고 이타적인 선택을 했던 에릭의 선택은, 매우 어렵고도 숭고하며 소중한 가치였다. 하지만 나라면?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이유로 다른 인물을 지목하면서 발을 빼는 형태의 선택만이 가능했으리라. 또한, 새러처럼 잭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자기 합리화와 악어의 눈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자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배신감과 증오심으로 생을 마쳤을 게 뻔하다. 또다시 아이를 잃고, 고통과 결별하기 위해 자살까지 결심했던 비극의 순간에도 새러는 잭의 아이에게 유산을 물려줄 생각을 한다. 나 같으면 차라리 사회에 환원하고 말았을 것이다.
죽음은 다툼을 멈추게 한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문득 사사로운 갈등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게 된다. 갈등은 지나친 감정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시간의 무상함을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언쟁을 벌이고, 원한을 품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후회한다. 세상에서 분출되는 온갖 갈등이 인간 존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결국 모든 게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될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싸우며 살아간다. 모든 일에 마지막이 있는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포기할 줄 모른다. 우리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에 분노한다. 분노는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분노는 우리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잊게 한다. -P168
사람들은 비극을 두려워하면 산다. 비극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비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성벽을 쌓으며 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비극의 침입을 막아낼 수는 없다. 비극은 뚜렷한 목표도 없고, 우발적이며, 무차별적이다. 비극이 밀어닥치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는다. 왜 자신이 끔찍한 비극을 겪어야만 하는지 따져본다. 비극에 담긴 신의 메시지가 뭔지 궁금해 한다. -P261
용서에서 언어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아. 단지 약간의 제스처만이 필요할 뿐이야. 제스처는 다른 제스처로 연결되면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지. 즉 다시 말해 누군가를 용서하면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게 되는 거야. -P401
사랑하는 사람들을 세상과 마음에서 밀어낸 새러는, 마녀사냥을 피해온 미국사람들의 북적이는 파리6구의 틈새에 살면서도, 칼럼은 여전히 부각되고 진가를 발휘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 어떤 남자도 잭 말론처럼 그녀를 욕망과 흥분이라는 완벽한 몰입의 세계로 이끌지 못하고, 잭을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하는 날은 오지 않는다. 올바른 선택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심하게 눈을 가리고 제멋대로 구는 자존심이라는 감정은 인간만이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선택은 우리를 정의한다. 그로 인해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선택은 결과를 낳는다. 누구나 그 결과를 떠안고 살아간다. 이 책에 묘사된 인물들 모두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랑과 용서를 실천한 새러에게, 죽는 날까지 산화하는 뜨거움을 지닌 잭에게, 시대의 광풍에도 굴하지 않고 유머를 발산한 에릭에게, 가족을 위해 절제와 비밀을 지킨 도로시에게, 그리고 훗날 이 방대한 원고를 읽은 케이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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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히 하베 니히츠 다폰 게부쓰트. '나는 몰랐다' (p.204)
나만 행복하면 괜찮은걸까? 그렇다면 새러는 분명 행복이라 이야기 할수 있을 것이다. 잘 나가는 오빠를 미소 띠면서 바라 보는 것도, 자신의 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것도. 그가 유부남일지라도 그의 아내가 눈 감아준다고 하니, 결혼이라는 의무가 없는 사랑만 하면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으니 행복했다. 가끔, 잭의 아내 도로시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라고 생각을 했다. 잭은 도로시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잭의 사랑은 오직 새러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맘이 편하려면 말이다. 일주일에 두번씩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찾는 잭. 점점 더 그가 그녀에게 들어오고 있다. 사상이 맞지 않는 오빠로 인해서 불화가 있을 것도 같았지만, 새러는 자신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다.
이 평화가 계속 될 수 있다 생각했는데, 평화의 부식이 오빠에게서 부터 일어날 지는 몰랐다. 대학시절 사회주의 운동에 동참했던 에릭. 한때 공산당원에 가입했었던 그 오래전 일이 에릭을 공산당 부역자로 몰아가면서 에릭에 모든것이 허물어 지기 시작한다. 새러는 충분히 에릭을 도울 수 있다 생각했지만 자존심 강한 에릭은 동생의 도움을 거부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래도 오빠가 자랑스러웠다. '슬리피, 그럼피, 도피, 배시플, 해피, 스니지, 닥터 그리고 SW'(p.109) 오빠가 알고 있다는 유일한 공산당원들의 이름.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이 자랑스러운 오빠가 터무니 없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빠의 모든것이 물거품 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전업 방랑자가 되려고 했어. 난 하루 종일 거닐기로 했어. 극장에서 극장으로의 방랑이랄까? 걷고 또 걷고 계속 걷는 거야.'(p.138). 오빠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들이 가슴을 저민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오빠가 다시 재개하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오빠의 죽음으로 그녀에게 남은 사람은 잭 뿐이었다. 오빠를 위해 애써주던 사람. 오빠를 위해 함께 슬퍼해주고 애통해하던 사람.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오빠에 보험금이 새러에게 남겨졌단다. 어마어마한 돈이. 돈만 남겨졌다면, 조엘 에버츠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이 바꼈을까? 조엘 에버츠가 이야기하는 밀고자. 이제는 당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오래전에 탈퇴한 인물이지만,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 그 사람이 오빠였단다. 그래서 오빠를 이야기 했단다. 그녀의 사랑이. "밀고자는 잭 말론이었어요."(p.188). 책을 읽으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야기되어 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이야기가 만들어 지려면 잭이 어딘가에서 나와야 하니까. 스포가 되어 버렸나? 분명 1권은 새러와 잭의 사랑이야기라고만 생각을 했었으니까. 전후 미국 사회에 이념논쟁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죽지 않기위해서 누군가에 이름을 말해야만 했던,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새러는 잭을 떠난다. "이히 하베 니히츠 다폰 게부쓰트. '나는 몰랐다'" (p.204)는 잭이 사용해서는 안되는 말이었으니까. 그렇게 잭은 새러에게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제 통속적인 이야기를 끌어낼 준비는 다 된것처럼 보인다. 임신을 하지 못할 거라는 새러는 임신을 할테고, 옛사랑이었던 이들은 아이로 인해서 화해를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만들어 버리면 더글라스 케네디가 아니다. 그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이 남자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인간의 심리를 이야기한다. 여자이든 남자이든, 성별은 중요치가 않다. 그가 이야기를 만들면 통속적일 수 밖에 없는 모든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말처럼 <행복의 추구>는 케네디의 다른 작품들의 비해서 방대한 분량으로 1940년대부터 스마이스가와 말론가의 이야기를,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살아서 움직이는 인물들, 새러, 에릭, 잭, 도로시, 케이트와 찰리까지. 통속적으로 끝나버릴 것 같은 인물들은 다른 이야기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새러의 만남, 사랑, 이별, 재회, 화해, 용서로 움직이는 삶의 수레바퀴를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나만 행복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풀어버렸다면 먹먹했을 것이다. 이 방대한 책을 덮은 후, '이게 더글라스 케네디지'라고 씽끗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나의 행복만큼 내가 아닌 타인의 행복까지 바라보려 노력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숨결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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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향해 가는 사람들 중에는 흔히들 이런 말을 사용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얘기하자면 책으로 써도 될 정도야" "지금껏 내가 살아온 얘기를 시작하면 2박3일을 꼬박 세우고도 다 못할 거야"
이 소설 속에 주인공인 새러의 인생만 봐도 책으로 두권의 분량이다. ^^ 한 사람의 인생 속에는 기쁨, 슬픔, 고통, 끝없는 기다림, 시련도... 하나의 종합선물세트처럼 따라온다. 좋은 일만 계속 될 리도 없고, 고통 속에서만 계속 허우적 대지도 않는다. 사람의 한 생에 어쩜 이렇게 골고루, 다양하게 겪도록 계획해 놨는지 모르겠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고. 태양이 환하게 비추는 밝은 면 뒤에는 그림자도 있고, 환한 대낮이 지나면 어두운 밤도 찾아온다.
첫 사랑의 배신,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서둘러 한 결혼식, 스트레스로 시작해서 스트레스로 끝난 결혼생활, 만삭이 다 되서 아기를 잃어버린 일, 그리고 이혼. 이제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을 것 같은 새러지만,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더 있다.
남들은 '불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수근대지만, 새러는 운명같은 남자 '잭'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너무 행복하다. 새러도 오빠인 에릭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명성도 날리며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시절이다. 일과 사랑,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었다.
그런 새러의 형제를 누군가 질투하는 건지, 예전에 공산당조직에 가담했던 에릭의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미국에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그들에게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산주의는 퇴출하고, 뽑아 내야 하는 이물질 이었나 보다. 정부의 막강한 권력아래 공산주의자들을 찾아내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거부하면 철저하게 망가뜨린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까지도 사회에서 매장시킬 수 있는게 그들이 가진 힘이었다.
새러에게 닥친 또 다른 시련의 시기였다.
소설속 이야기는 '끝인가 보다~' 생각할 때 쯤 또 다른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터진다.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도 예측불허의 사건들이 지루할 틈 없이 튀어나와 읽는내내 흥미진진 하게 했다. 중간에 반전도 있고, 흡인력도 아주 제대로다.
아직 더글라스 작품을 접하지 못한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재미나니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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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소설 출간소식에 어김없이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재미있겠다'라는 흥분된 기대감이었는데, 장편소설 <행복의 추구>는 시대를 달리한 두명의 여자 '케이트'와 '새러'를 화자로 등장시키고 있어서 그런지 잔잔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며, 과연 남자 작가의 손길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섬세한 감성이 남달랐다.
1. 케이트 - 현재 이혼한 싱글맘이 되어 있었다."
뉴욕 퀸스의 공원묘지. 싱글맘 케이트.
한편, 엄마의 장례식 이후 아직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는 케이트에게 기다렸다는듯 편지 한통이 배달되고, 발신인 '새러 스마이스'는 케이트의 부모와 알고 지냈으며, 어릴적 케이트의 모습도 기억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끊임없이 케이트에게 접근을 시도하는데, '새러'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2. 새러 - 1945년
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상처에 휩싸인 새러는 몇년 뒤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내게는 당시의 인습에 맞서 싸울 용기가 없었다.
이것은 결혼에 실패한 케이트의 자책과 흡사한 부분이 있는데, 새러의 결혼전후의 세밀한 묘사들은 가히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떠올리게 할만큼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소설속에서 두여자의 서로 다른 삶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케이트의 어머니 도로시, 스토리는 당시의 시대상을 깊이 있게 반영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고야 만다. 행복을 짓밟을 수도 있는 것임을 너무나 처절하게 깨닫게 되는 소설 <행복의 추구>는 진정한 사랑과 행복 그리고 가족에 대해 곱씹어 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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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전개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에서 2권을 집어 들었다.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저지르는 그들의 행동들이 자못 불편스러웠다. 일주일에 며칠을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그걸 알면서도 용인하는 아내,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 주변 사람들까지, 이해하기 참 힘들었다. 웬만한 막장 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이야기 전개에 솔직히 질렸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모든 게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될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싸우며 살아간다. 모든 일에 마지막이 있는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포기할 줄 모른다. 우리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에 분노한다. 분노는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분노는 우리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잊게 한다.(-p168)
한창 사랑의 기쁨에 빠져 있는 도중, 맨해튼에서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새러와 에릭 남매에게 큰 위기가 닥친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에릭의 과거를 정부에서 알아챈 것. 현재와는 관련없는 예전의 잘못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삶을 무너뜨리는, 당시 미국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이 생생히 묘사된다.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시각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내가 지금껏 저지른 실수만으로도 책 한 권은 너끈히 쓰고도 남을 거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누구에게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 삶이란 게 기본적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내가 지금 행복해 보이니? 나 역시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아. 하지만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아."(-p363)
언제까지고 이어지지 않는 행복과 사랑의 단점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삶을 향해 나아가는 새러의 모습에서 또한 많은 걸 느끼게 해준다. 바람에 노출된 평균대 위를 불안정하게 걷는 것과 같은 새러의 삶이 비단 그녀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못마땅했었다. 주인공 남녀의 사랑 방식에서부터 돈을 물 쓰듯이 다루는 에릭, 되돌릴 수 없는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잭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새러의 모습 등등. 하지만 막바지에 와서야 겨우 깨달았다. 불완전하고 미련해 보이지만 그게 '인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못인 줄 알면서도 바로 잡을 수 없는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올바른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게 작가의 의도였음을 나중에 가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대단원에 와서 나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삶의 '본보기'와도 마주할 수 있었다. 행복을 추구하는 열쇠는 다루기 힘들지만 언제나 손 안에 쥐고 있음을 알려준다. 잠시 동안 더글라스 케네디가 내 취향이랑 안 맞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감동과 마주한 뒤 끝마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더불어 내가 끼고 있는 색안경에 대한 고찰도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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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더글라스 케네디 출판사 : 밝은 세상 / 공경희 소장 / 독서완료
아!!! 과연 사랑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몇명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걸까? ㅠㅠ
사랑이란 감정을 두고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논하는 건 모순일까?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축은 배신이라 말할 수 있을듯하다. 하룻밤 풋사랑에 아기가 생겨 사랑하는 여자에게로 달려갈 수 없었던..잭은..운명의 배신이라 말 할 수 있을것이며..
역사의 광풍에 휩쓸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아야 했던 에릭은 역사의 배신을 맞았으며..
사랑하는 연인의 배신에 인생이 무너져 내리는 비극을 겪어야 했던 새러는 사랑의 배신을 당해야 했으니까..
책을 읽는 내내.. '아!!' '어머..' '와우~~' '악~~' 등.. 요런 감탄사를 내뱉었던 나는.. 작가가..'배신'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참 기대되고 궁금했었다..
결국..결말부분에서.. 작가는 삶의 본질에 대해.. 배신을 감싸안는 사랑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새러는 잭에게 배신당하지만...결국..그의 가족을 끌어안았고..
케이트는 엄마를 배신한 아빠와 새러를 못마땅해 여기면서도 결국 성숙하게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고 말이다.
행복이란게..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달콤하고 설렘만을 주는 감정이 아니란 사실 또한 깨닫게 됐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면서..한층 성장한 내 모습도 본다.
아픔을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이껴낸 후 느끼는 희망을 작가는 행복이라고 표현하고 있구나..
잭도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S를 향해..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어찌보면..S는 나랑 참 많이 닮아있다..
결론부분에서 S는..싸이의 '어땠을까' 가사만 묵상하는 듯 해 보인다..ㅋㅋ 난..S처럼..책임감 있는 여성이 될 수 있을까?
아..이 작품은..인간의 본성 그리고 사람들간의 관계..정치, 역사, 사회, 관습 등..인생의 많은 요소가 녹아 들어있는 서서시같다.
숨막히게 재미있는 서사시를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강강강강추 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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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에 들어서서 내 인생을 돌아보며 그 삶의 궤적을 글로 표현해 본다면 어떤 이야기일까..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읽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게 할 수 없는 극적인 이야기가 될지.. 아니면 그저 평범하고 밋밋한 이야기가 될지... 케이트가 읽게 된 새러 스마미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자신의 아버지인 잭 말론과의 첫 만남,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랑을 했던 그 이야기.. 배신과 원망 그리고 화해와 용서등등... 이 모든 것들이 녹아있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인생의 이야기였다. 새러가 그 글을 쓴 이유는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그녀의 삶과 무관할 수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 잭과 오빠인 에릭을 이야기하며 모든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 중심에 바로 잭말론의 딸 케이트가 있었고 케이트의 어머니인 도로시는 이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을 통해서가 아닌 새러를 통해서 케이트가 알게되었으면 하는 맘에 죽을때까지 그녀의 존재를 케이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진실앞에 서게 된 케이트는 충격을 받지만 결국 그녀 또한 그녀의 윗 세대 사람들인 잭,새러. 도로시가 행했던 용서와 화해의 손을 잡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1권에서 잭과의 재회로 이야기가 끝이나서 2권에서는 그들의 본격적인 러브라인을 기대했었다. 물론 그들의 사랑이 표현되기는 한다. 이미 결혼을 하고 아들 찰스까지 있는 잭은 아내인 도로시에게 새러에 대해 모두 이야기한다. 도로시는 잭이 떠나고 아들과 남게 되는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어 그들의 관계를 인정해준다.. 이해가 되지 않은 구도이지만 그 시절이었기 때문에,.. 라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새러는 그야말로 만족한 생활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잭과의 적당한 거리에서의 관계, 칼럼리스트로서의 성공 그리고 방황하던 오빠 에렉의 성공 (코메디프로의 작가).. 그 전에 겪었던 결혼의 실패를 잊고 새 출발을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녀를 그렇게 놓아두지 않았다. 새러가 이렇듯 행복을 느끼던 그 시절 미국내에서는 매카시에 의한 매카시즘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과거 공산당에 입당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던 오빠 에릭은 그 열품을 피해갈 수 없었고 무고한 누군가를 자신과 같은 처지로 만들 수 없었기에 에릭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고난을 선택한다. 그러한 에릭의 불행에 잭이 연루가 되고 이렇듯 이들의 관계는 다시 얽히고 얽히는 배신의 관계로 치닫는다. 에릭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새러는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의 귀로에 놓이게 된다. 그 선택을 했을 경우 초래하게 되는 좋은 점 그리고 감수해야하는 것들을 감안하여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한 번의 선택은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에 신중해야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최선의 선택만을 하면서 살아지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후회를 하고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고 화해를 하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랑 아니면 미움.. 이렇듯 흑백으로 갈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것이고 그러는 와중에 시간이 흘러 결국에는 그랬던 사람...이렇게 결론을 짓게 된다. 또한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새러의 러브스토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야기는 그것을 포함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을 인물들을 통해 대변하고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인물들의 삶을 통해 비판하는 광범위한 인생의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극적인 재미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새러의 삶을 쫒으며 정말이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수 많은 감정들을 다 겪는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다양한 감정들이 녹아있는 그녀의 삶.. 그리 순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극적인 삶이 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행복하다, 불행하다라는 말을 순간순간 그 당시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쉽게 말을 한다. 하지만 행복이라고 하는 것의 기준은 수학공식처럼 명확한 것이 아니기에 내가 추구하고 있는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그 행로 자체가 행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그 행복은 그저 나로 인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감정들과 함께 느낄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마지막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케이트.. 케이트와 그의 아들 에단과 함께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떠나는 새러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들의 새로운 행복에 함께 흐뭇한 미소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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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권을 읽고나서, 색다른 결말을 봤으면 했는데...아주 닳고 닳은 뻔한 결말과 군더더기로 책이 끝난다.
물론, 여전히 흡입력이 있어서 잘 읽히고, 메세지도 좋고, 줄 그을 부분도 더러 보이긴 하지만.... 드라마든 소설이든 피했으면 하는 것이, 불륜/불치의 병/화해...뭐 그런 것들이다. 마지막 부분까지 가서는...나는 정말 솔직히 책을 집어 던져 버리고 싶었다.
잭말론, 도로시, 케이트...심지어는 새러까지 '지.랄.하.네.요' 하는 분위기.
2. 앞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새러의 사랑과 섹스에는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았는데, 책을 덮고 나니..그녀 자체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고 몰입을 할 수가 없다.
차라리, 그녀의 오빠의 사건에 대해서,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겠고.
그런데 그것 빼곤 뭐가 있나.
얼마나 잘났는지 저 여주인 공은 가는 곳마다 가는 곳 마다 반겨주고, 첫남자와 오빠와 첫남편과 얽힌 시츄에이션도..그다지 안타까움이 느껴지지 않는다.(얼마나 쉽게 극복하고 잘 돌아다니던지원...) 잭 말론의 사망 방법과 막판에 도로시와의 협의 케이트와 찰리에 대한 caring service(??)는 정말 유치뽕뽕뽕이였고.
3. 썅, 그럼에도 불구하고... 뭘 건져먹었나 생각해 봤다.
일단, 이 책은 다른 책으로 가기 위한 entrée 정도는 된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글빨에 휘둘리다보면...독서가 익숙해져, 다시금 다른 책들을 들춰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에서도...그가 전하고자 하는 이런 저런 메세지, 나름대로 정리하는 느낌까지는 좋았는데...이런 저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플롯이 구질구질하고, 개연성이 부족하여 깊은 고민없이 써내려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은 비극을 두려워하며 산다. 비극으로부터 멀찍이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비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성벽을 쌓으며 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비극의 침입을 막아낼 수 없다....260쪽
내가 죽으면 내 과거는 나와 함께 사라지겠지. 내가 늙어서 깨달은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그거야. 아무리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더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다 사라지게 돼...36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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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 이것은 광풍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성질이다. 소설 속의 FBI. 그리고 반미활동조사위원회는 홍위병과 하는 짓거리는 좌우만 다를 뿐 완벽하게 같은 모양새를 띄고 있다. 결국, 인간은 좌나 우나 할 것 없이 똑같다. 87. 이번 게임에서 인간적인 윤리 따위는 없어. 저마다 혼자 책임지고 싸우는 게임이야. 매카시와 멍청이들이 날뛰는 건 그들이 유리한 패를 쥐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힘들게 이룬 모든 걸 하루아침에 잃게 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있을까? 그들은 어른들의 두려움이 뭔지 아는 거야. 생계를 포기해야 할지 친구를 밀고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면 누구든 친구를 저버리게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이 매카시즘이 100년. 200년 이전의 작품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토마스 만이나 발자크. 그들뿐 아니라 1700년 1800년 그리고 1900년대 초에 살았던 무수하게 많은 소설가가 지금 아니 1950년대에 살았다면 그들의 소설이 <행복의 추구>같은 이야기로서 풀어나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 303. 시간은 아픔을 무디게 하는 마취제일 뿐이다. 마취제가 대개 그렇듯 고통을 잠시 잊게 할 뿐 상처를 완전히 아물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과거의 수많은 고전과 <행복의 추구>를 열망하는 이 고전스러운 작품과의 또 하나의 차이점은 수면제가 가득 든 약병을 벽난로에다 집어던지는 주인공의 강인한 정신력에서 기인한다. <인간실격>의 요조처럼 사람들이 쓴 가면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그런 나약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했던 선택들이 실수투성이고, 그런 선택들의 결과 때문에 죽을 듯이 아파하지만, 그런 선택부터가 인생의 시작점이고, 그러므로 실수투성이의 선택이 반복되는 삶은 어떻게 생각하면 근본적으로는 재앙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원형에서 훨씬 더 나아가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부터 비집고 나오는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적절하면서도 세밀하게 잘 버무려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더글라스 케네디라는 작가를 좋은 작가로 인정하게 되었다. 선입견이 보기 좋게 깨지는 순간이다. 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은 희한하게도 남성작가가 1인칭 여성을 화자로 삼고 있는 특이한 소설이다. 남자인 내가 봤을 때 그가 표현해 놓은 여성상에 큰 문제점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반대로 <행복의 추구>에서는 남성상에 결핍이 느껴진다. 전남편의 마마보이 기질. 그리고 그녀의 사랑 잭 말론의 우유부단함이 그것을 나타낸다. 그런 결핍들이 결정적인 실수를 만들어내고 또한 그 실수를 제때 쓸어 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적으로 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의 실수가 새러에게 번지고도 다시 실수가 반복되고……. 그리고 이런 결핍을 바라보면서 나 역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으로 생각되어 한편으로 죄송스런 마음이 생길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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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은 가독성, 하나는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1권에 이어 2권 또한 빠른 템포로 읽힙니다.
4년이라는 공백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새러와 잭은 다시금 붙타는 사랑에 휩싸입니다. 유부남과의 사랑, 그 당시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엔 용서받지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저의 상식으로는 전혀 예상밖의 일이 또 일어납니다. 바로 잭의 부인인 도로시가 이들의 관계를 묵인해 주기로 한거지요. 일주일에 이틀만은 당신이 출장 갔다고 생각하겠다는 도로시. 제가 그녀였다면 절대, 자식이 있는 상태라도 용인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의 사랑이 정당화 될 수는 없겠지만, 운명같다고 믿는 그들의 사랑을 조심스레 들여다 보게 됩니다.
어려운 시기들을 지나고 새러의 남매는 성공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그런 행복도 잠시, 오빠 에릭이 정부요원들로부터 예전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행위로 인해 같이 운동했던 이들의 이름을 대도록 강요, 협박? 받게 됩니다. 그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들의 권력에 점차 삶 자체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 일로 새러는 오빠를 잃게 되고, 그녀의 슬픔에 잭은 조금이나면 그녀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새러는 오빠의 죽음 배후에 잭이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되고,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무던한 애를 씁니다. 사랑한 사람이 한순간에 배신자가 되었을 때, 그녀가 감내해야 할 슬픔과 배신감은 얼마나 크게 다가올까요?! 그렇게 그를 잊기 위해 미국이라는 나라까지 떠난 그녀는 유럽에서도 기자 생활을 하며 지내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새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우연찮게 잭을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 야위었고,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잭. 그는 이미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새러에게 용서를 받은 잭은 결국 목숨을 잃게 되고, 새러는 그가 떠난 뒤 그의 부인 도로시를 만나서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이라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복을 찾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복과 사랑을 찾기 위해,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 같은 모습으로 살아온 새러. 그녀의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은 희망을 뿌리내릴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랑과 행복을 추구해 나가는 우리의 삶이 잘 투영된 이 책. 역시 더글라스 케네디의 매력을 한껏 뽐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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