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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Depression,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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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울증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개인이 나약해서 생기는 정신질환? 오답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이 겪는다? 그렇게 알려져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것이 오답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테리 리얼은 이 책에서 ‘숨은 우울증(Covert Depression)’이라는 새로운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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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울증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개인이 나약해서 생기는 정신질환? 오답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이 겪는다? 그렇게 알려져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것이 오답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테리 리얼은 이 책에서 숨은 우울증(Covert Depression)’이라는 새로운 진단(?)을 만들어낸다. DSM-IV에 따르면 우울한 기분, 쾌감 상실, 체중이나 식욕의 상당한 저하, 불면증 혹은 과수면증, 집중력 저하, 활력 저하, 부적절한 죄의식이나 무가치함, 정신적 동요나 지연, 자살 충동 중에서 다섯 가지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된 경우 우울증(주요우울장애) 진단을 내린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기준에는 부합되지 않지만 많은 남성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여러 증상들을 숨은 우울증(covert depress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우울증을 명백한 우울증(overt depression)이라고 할 때, 숨은 우울증은 그외 다른 것들로 설명되곤 하는 증상이나 질환들의 근본원인으로 제시되는 새로운 진단이다. 저자에 따르면 남성들이 주로 숨은 우울증을 겪는 것은 그들이 여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울증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경험한 상담사례들이 약간의 가공을 거쳐 매 챕터마다 소개된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탈선하는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변호사 아빠는 상담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받았던 폭언과 폭력을 고통스럽게 기억해내고는 올바른상황극을 재연하며 스스로 치유를 얻는다. 거대 다국적 기업 재정담당자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가정을 소홀히하고 일과 여자에 빠진 남자는 어느 순간 우울증에 빠져 본인이 자식과 아내로부터 배척을 당한다고 느끼지만, 그의 우울증은 아내와 자식들이 아니라 어렸을 때 그를 방치한 부모에게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진다. 아내가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격한 행동을 보인 남편은 어렸을 적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라나 아내가 자기를 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아내에게 지나치게 자주 섹스를 요구하고 아내를 사사건건 통제하려는 행동 때문에 파경 직전까지 이른 건축가 남편은 어렸을 적 친형과 동네형으로부터 섹스를 강요받았었음이 드러난다. 아내를 통제하고 아내와 섹스를 함으로써 편치 않았던 어렸을 적 섹스를 재연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아들이 살찌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아들의 음식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아빠는 어렸을 적 비만 때문에 왕따를 당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밖에도 아이들의 사회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 자신의 경험이 군데군데 소개된다. 

 

아버지의 우울증이 아들에게 전이된다. 아내와 아들을 학대하는 아버지에 대해 어린 아들이 느끼는 감정은 흔히 가엾은 어머니와의 동일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와 동시에 어린 아들은 학대하는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학대하는 아버지가 가진 분노(rage), 몰염치(shamelessness)는 어린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흔히 우리는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가 커서 자신도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아버지가 된다 말하곤 하는데, 그 이론적 근거는 충분히 존재한다.

 

그런데 학대라는 것이 물리적인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비단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화 과정에서 남자 아이에 대해 기대하는 남성성(masculinity)이 기실 아이를 심리적으로 학대하는 것과 다름 없다. 남자 아이에게 남성성을 강요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감정적 단절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여자 아이는 자라면서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성(connection)을 배양하도록 독려받는 반면 공적, 적극적 자아를 형성하는 일은 금지된다. 남자 아이는 이와 정반대로 자라나도록 강요받는다. 남자 아이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여자 아이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엄마에게 의존해서도 안 되고(저자는 이것을 프로이트만큼 크게 강조하지는 않는다), 울어서도 안 되고, 약한 감정을 쉽게 드러내서도 안 된다. 넘어지면 얼른 일어나야 한다. 관계보다는 독립을 추구해야 하며, 경쟁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 여자애처럼 굴거나 약해 보이는 남자 아이는 왕따를 당한다. 게이는 혐오를 받는다. 사회화 과정에서 남자 아이에게 강요되는 감정의 단절(disconnection)은 공공연한 심리적 학대이다.

 

거의 모든 남성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훈육되고 자라나기 때문에 저자의 관점에서는 거의 모든 남성들이 적어도 숨은 우울증을 갖고 있게 된다. 비록 이 책은 남성 우울증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입장을 좀더 확장해보면 여성 우울증도 일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맏이로 자라난 장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아이처럼 키워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감정과 관계성의 단절이 맏이 컴플렉스, 우울증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남성성의 핵심에는 지배와 복종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남자에게 정신적으로 우울증을 초래할 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무책임함과 학대, 나아가 타인종에 대한 경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전통적인 남성성이 지닌 파괴적인 효과에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의 저자인 테리 리얼의 접근법은 미국식 정신치료법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은 (만약 그런 게 존재한다면) 지금 당장 클라이언트가 겪는 증상에 집중하고 그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것을 치료 목적으로 삼는다. 그 이상 깊이 파고드는 것은 금지된다. 이는 유럽의 정신분석학이 프로이트에 영향을 받아서 증상의 깊은 근원을 탐색하는 것에 대비된다. 저자는 남성 클라이언트들의 어린 시절에서 숨은/드러난 우울증의 원인을 찾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럽식이다.

 

저자는 상담사례들을 가공해서 제시했다고 밝힌다. 과연 그것들이 얼마나 가공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여러 세션에서 상담사(저자)와 클라이언트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감정이 전환되는 장면이 상당히 극적이다. ‘과연 저렇게 대화를 유도한다고 클라이언트 태도가 저렇게까지 확 바뀔까?’, ‘역할극 한 번이 사람을 저렇게 무너지게 만들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저자가 경험한 클라이언트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너무 한쪽에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미국에서는 DSM-IV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우울증 진단을 받을 수 없다. 우울증 진단을 받지 못하면 상담치료에 대해서 보험사가 비용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진단 없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담치료 비용을 고스란히 클라이언트가 지불해야 하므로, 상당히 부유한 남성이 아니라면 진단 없는 우울증을 치료받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소개되는 클라이언트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당히 높다.

 

저자가 고안한 숨은 우울증개념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이용될 위험성도 보인다. DSM-IV에 따르면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Obsessive Compulsive Perfectionist Personality Disorder, Alcohol Abuse, 각종 Sexual Dysfunctions 등으로 불릴 질환들뿐 아니라 심지어 아동 학대, 가정폭력 같은 병리현상을 가리켜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바보야, 그건 우울증이야.”

그런데 이것은 지나친 환원주의는 아닐까?

 

게다가 트라우마를 겪은 어린 시절(클라이언트가 기억해낼 정도니까 6-7세 이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적어도 10여년 간의 시기에 대한 해석의 단절도 존재한다.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감정적 단절도 중요한 트라우마라면 일정한 사회화 과정을 거친 남성들 거의 모두가 숨은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 소개하는 클라이언트들은 모두 어렸을 적 좀 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 뿐이다. 그런 심각한 트라우마가 없는 남성 독자들은 자신이 증상적으로는 이 책에서 말하는 우울증에 해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다가도 난 저런 심한 트라우마도 없는데 왜 우울증인 거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감정적 단절 같은 약한트라우마가 숨은 우울증으로 연결되는 사례를 더 확실하게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들이 이 책의 가치를 크게 손상하지는 않는다. 남성과 여성,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는 오랫동안 인문사회학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흔히 남성은 사고가 직선적이고 단순하며 감정 표현에 서툴다고들 한다. 그런 남성들이 대부분 우울증에 걸려 있다고 보고 그 원인을 어릴 적 트라우마에서 찾는 것은 획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주장을 100% 검증할 수는 없지만 남성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중요한 가이드가 될 것은 분명하다.

 

 

 

[덧붙임]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동성애자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저자에 따르면 아주 어렸을 적에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간에 정서나 취향에 차이가 없다. 그러다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남자 아이는 단절 과정을 거치면서 남성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는 그러한 사회화 과정에 저항하고 자연스런인간의 상태 그대로 남는 데 성공한 사람들일까? 동성애자야말로 부자연스럽고,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사회화과정에 대한 전복자인 걸까?

 

 

* 리뷰의 제목은 지젝의처음에는 비극으로, 나중에는 희극으로 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의 첫 파트 제목인 “Its Ideology, Stupid!”에서 따왔다.

 




c*****g 2014.03.01. 신고 공감 4 댓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