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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하게 짝이 없는 미래를 감정적으로 평가한 뒤 거기에 매달리는 삶이나 다름 없다.
에픽테토스 - 소피스트 에픽테토스 - 엥케리디온 도덕에 관한 작은 책 - 세네카 인생이 왜 짧은 가 세네카 -행복론 아우엘리우스 명상록 헬레니즘 지성사 - 조남진
나의 몫과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내가 현재 위치한 자리가 어디인지 안타깝게도 잘 모르고 있다. 우려할 점은 사회의 기둥이자 미래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취업란 때문에 각종 스펙을 채우기 위해 이 것을 외면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위해 고대 그리스 시대로 돌아간다.
소크라테스의 비밀 ,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의 비밀 (박규철), 드로미이 왜 그리스 인가(자클린), 덕과 지식과 행복( 월리엄 프라이어), 플라톤의 대화편 - 프로타고라스 - 테아이토스
소크라테스의 변론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은가?
칸트의 계몽사상
철학자 가운데서도 이만큼 영향을 주고 유명한 자도 적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해서 스스로 판단해서 철저하게 따져본 뒤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몽이란 자초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용기를 내서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을 알면서도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따져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 즉 자신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참고도서는 현자 나탄/ 가이어 - 칸트 평전/ 독일계몽주의 - 김수용/ 칸트의 역사철학 - 이한구 /
스마트 시대의 현명한 인식
우리는 이제 스마트 폰이 당연한 세대가 되어 버렸다.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낄 정도이니까 아내나 친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아무도 부인못할 것이다. 이 파트에서는 데카트르의 코키토의 관념 즉 관념적 인식과 감각적 인식을 잘 구분해야 함을 알아본다.
참고도서는 데카르트의 성찰과 방법 서설/ 30분에 읽는 데카르트 - 이영아 / 뉴턴과 데카르트 - 박민아 /
몸짱이 되고 싶은가? - 아도르노
이 파트부터는 현대 철학가의 등장이다. 몸짱이라 즉 우리는 이제 왠만큼 운동해서 여자는 s라인 남자는 복근이 마치 당연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라는 점이 지적대상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진정한 근육은 쓰임이 있는 것 즉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이라고 한다. 즉 우리는 쓸데없는 근육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수치의 합리화
사실 아도르노의 해석에 따르면 이미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합리화는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오뒷세우스의 항해에서 사이렌의 (자연의 힘)소리에 저항하기 위해 노를 젓는 사람(인간)으로 부터 밀랍으로 귀를 막고(자연에 저항) 그곳을 빠져나간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미 고대 신화 작품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연봉 1억인 인간이 연봉 5000인 인간 둘을 대신한다. 사실 이 말에서 틀린 점을 찾기 어렵다 얼핏보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되어 있는 것은 고유성이다. 인간 a와 인간 b가 똑같이 연봉 5000이라고 해서 과연 a와 b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이 둘을 뭉개버리고 c가 1억으로 ab를 대신할 수 있다. 그러면 a와 b의 고유성이 소멸된다.
문화산업과 파시즘
문화산업을 파시즘으로 치부한다면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귀에는 지금도 대중음악이 울려버지고 눈에는 미디어가 예능프로그램을 쉴새없이 방송한다. 뉴스나 신문등은 당연히 구독자와 시청자 증가를 위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보도를 위선으로 하고 정보는 범람한다. 그리고 이를 통제하며 인간은 수동적으로 이용당한다.
데리다의 차연 -차이와 불화를 인정하라
즉 모든 말은 기본적으로 다의적이다. 이것을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문화적으로 결정된다고 표현하는 데 쉽게 얘기하면 소주한 잔 하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과연 이 말은 표면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소주를 한 잔 마시자 이지만 단순한 음식물 섭취가 아니라 만남, 혹은 굳이 소주가 아니더라도 맥주, 식사 등을 포함해서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다른 해석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상태를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데리다는 이것을 말소하에 두기라고 표현하다. 즉 소멸하지 말고 보류하는 행위이다. 말 그대로 차이와 불화를 인정하는 것이다.
추천도서는 / 하우투리드 데리다/ 데리다의 해체 / 데리다 읽기 - 이성원/
이고 이 책을 읽을 때 어떤 절망도 감내해내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루소의 동정심
루소의 동정심 - 소유에서 불행이 싹트다. 루소는 자연에서 왠만하면 크게 벗어나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은 참교육 통해서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참교육이란 자연에 준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루소 - 인간 불평등론의 기원 / 루소 에밀 / 이용철 -루소 분열된 영혼 / 신엘로이즈 - 사회계약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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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산행을 떠나자!> 다들 인문학이 대세라고 말한다. 실제로 2010년 출간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100만부가 팔렸고, 2011년에 타계한 스티브 잡스 또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애플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문학이 대세인만큼 필자 또한 서점에 가면 인문학 서적들을 찬찬히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는 책을 펴들었다 그 내용의 심오함에 놀라고, 책을 덮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그러면서 이솝우화의 포도를 먹지 못한 여우처럼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분명히 읽어봤자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면서... 그러던 어느날 '마이너리거를 위한 철학여행'을 펼쳐보게 되었다. 심드렁한 기분으로 펼친 서문은 순간 나를 정지상태에 빠지게 했다. 서문에서 저자는 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문제점을 바라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행로를 만들었다고 했다. 바로 철학의 산행로-그것도 8개씩이나-를 말이다. 초심자를 위해 쉼터까지 꾸며놓았다는 말에 이정도면 나도 산에 올라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궁금했다. 과연 어떻게 철학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말이다. 산행을 거치면서 철학은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가 만들어 놓은 8개 산행로 중 스토아학파가 주장하는 무정념은 비상약품처럼 바로바로 써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툭 치고 아무말 없이 지나갔을 때 보통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스토아학파는 툭 치고 지나간 객관적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감정에 오래 빠져 있는 상태를 정념이라 하고 그 정념에 빠지지 말라고 주문한다. 마찬가지로 취업에 대한 사회적, 객관적인 지표가 낮아지는 객관적 상황과, 젊은이들의 진로에 대한 불안감은 다른 것이고, 그 불안감에 오랫동안 빠져살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산행로에서 저자는 데리다의 얘기를 빌어 우리가 왜 소통하기 어려운지를 알려준다. 말의 의미가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는데 우리는 종종 그걸 잊고 다른 사람의 말의 의미를 한가지로 고정시켜 이해하곤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착각아닌 착각에 빠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절친의 의미를 떠올려보자. 정말 친한 친구라는 의미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절친의 의미는 그것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TV프로그램에 나와 폭로를 하는 게 절친일 수도 있고, 친구의 범죄행위도 감싸주는 것이 절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 데리다는 말의 의미가 한가지로 고정되지 않고 맥락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니 또 다른 의미가 없는지 잘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보자면 말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맥락에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 대화할 때, 훨씬 더 소통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얘기 역시 대단히 유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산행로를 마치고 돌아와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음 속에서 차오르는 희열을 느꼈다. 철학에 대한 의구심, 철학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철학의 효용성, 철학에 대한 믿음이 마음에 새로이 자리잡았다. 아직도 수많은 산이 남아 있고, 보기만 해도 질리는 기암괴석과 가파른 절벽들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다시 철학산행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이 남아있다. 이번 산행에서는 오로지 올라가기에만 벅찼지만 다음 산행에서는 산 속에 숨겨진 여러가지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보련다. 다음은 어떤 산을 올라가볼까. 다시금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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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서는 누구나, 아니 요즘은 2, 3학년만 돼도 전부 갖추고 있다는 '고스펙'을 갖추지 못한 나로서는 아무리 한량과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적잖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가 '스펙'에 매달려, 마침내 누구나 부러워하는 곳에 취업했다는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행복'이라는 단어를 좀체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들 힘들다, 지루하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등등 '죽는 소리'만 해댄다. 아니, 현재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직장엔 다니지 못할 내 앞에서 말이다.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그럼, 뭘 해야 행복한 걸까? 사실 생각해 보면 대학에 들어가는게 인생의 전부를 좌우할 것처럼 떠들었던 것들이 내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가끔 학벌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가끔씩 속으로 발끈하곤 하지만), 고스펙이니 고액 연봉이니 하는 것들도 결국 행복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닐까? 진짜 중요한 건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행복하냐는 것이 아닐까?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면 인생이 그냥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이후에 이어질 40년, 50년의 삶에서 뭘 해야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한번은 이 젊은 날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무책임하게도 잠시 더 고민을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살 때 행복한지.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이런 고민들을 해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