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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차분하게 흘러가지만, 인물들의 기억과 상처가 깊이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히 과거를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화려한 사건보다는 기억, 상실, 외로움 같은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 준다. 사진이 함께 실려 있어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점도 특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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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버는 용암이 흐르다 멈춘 듯한 그 물감덩어리야말로 자신의 부단한 노력의 진정한 결과이자 명백한 실패의 증거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작업실 안의 물건들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자기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지나가듯 말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이전처럼, 그가 정리해놓은 그대로, 지금 그대로 있어야 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생기는 찌꺼기와 끊임없이 내려앉는 먼지 외에는 어떤 것도 더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먼지야말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임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고 했다. 먼지는 빛이나 공기나 물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집보다 더 참기 힘든 곳은 없으며, 사물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집, 사물의 얇은 막들이 한꺼풀씩 미세하게 분해되어갈 때 생기는 회색 벨벳 같은 침전물 아래에 모든 것이 가만히 놓여 있을 수 있는 집보다 더 편안한 곳은 없다고 했다. 실제로 페르버가 몇주 동안 한점의 인물화 앞에 서서 작업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의 의도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먼지를 늘려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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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뿌리 내리고자 했던 인물들의 삶을 통해 경계인으로서 느끼는 근원적인 고독과 상실감을 정교하고 깊이 있게 포착해 낸다. 시간의 흐름 속에 마모되어 가는 정체성과 기억의 조각들을 덤덤하면서도 묵직한 문체로 이끌어내며, 이주와 방랑 뒤에 숨겨진 인간의 아픔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을 차분한 시선으로 조명함으로써 타자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잊히기 쉬운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존재들의 서사를 통해 진정한 보금자리와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