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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선배 언니의 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왔다. 상가는 자식들이 많아서인지 고인이 살아 생전에 덕을 많이 쌓아서 그런지 문상객이 엄청 많았다. 고인은 올해 여든 두살로 자손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하셨다고 한다. 다들 호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천주교 집안이라 가톨릭식으로 장례가 진행 되었고 성당에서 나온 신자들이 연이어 연도를 드리고 있어서 엄청 붐볐다. 상주들은 하나도 슬퍼보이지 않았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리고 문상을 마치고 나오는 우리를 밖에 까지 따라나와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지난 몇년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가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친정 아버지는 22년전에 돌아가셨다. 한학을 하시던 분이라 우리집은 유교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시간에 맞춰서 곡을 해야했고 상주는 죄인이라 감히 말을 해서도 안되었다. 문상객들이 오면 곡을 해야 했고, 문상을 오신 손님들이 위로의 말을 하면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까"라고 답해야했다. 그리고 빈소를 벗어나서도 안되었다. 그야말로 숙연한 자세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 하는 자리였다. 고인의 죽음이 어떠했고, 천명을 다하시고 돌아가시는 것이냐 불의의 사고사냐에 따라서도 장례식장의 풍경은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지난번 선배의 장례식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서 가슴아프다는 인상은 조금도 없고 좀 심하게 말해서 어떤 일을 잘 마무리 해서 시원하다는 느낌이었다. [죽음,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영혼의 영행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자신의 철학을 시민들에게 펼치다 정적의 모함으로 죽음에 임하게 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엮어놓았다.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은 감옥의 옥리를 매수해서 탈출해서 도망갈 길을 마련해 놓고 소크라테스에게 멀리 피해서 죽음을 면하자고 권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 법을 어겨서 목숨을 구걸하기 싫으며, 차라리 정의롭게 죽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아름다워서 후세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일까? 그렇다기보다 그의 삶의 아름다워서 일것이다. 그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귀울였으며 정의로웠고,겸손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언행이 일치한 사람이었다. 그가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에 정의롭고 아름다웠기때문이었을 것이다. [죽음,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영혼의 영행 "소크라테스"]는 그림과 함께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소크라테스가 재판 받는 장면부터 시작하면서 쉽게 재미있게 잘 풀어놓아 초등학생이라도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나도 따분해 하지않고 재미있게 잘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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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죽는 문제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일세. 말하자면 정의롭게 사는 것이지.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친구들이 탈옥을 권하자, 소크라테스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도피하고 나서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에게 말하란 말인가? 그 사람들에게 미덕과 정의, 법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란 말인가?"
세상에는 죽음보다 더 중요한 신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익을 쫓아 신념을 바꿔가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다. 신념 자체가 없는 사람도 있다.
위대하다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죽음 이상의 신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 한가지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반대할 것을 알면서도 탈옥을 권할 수 밖에 없는 소크라테스의 친구입장이 이해가 간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나는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되고 싶지도 않다. 신념과 함께 독주를 마시고 세상을 바이바이할래? 아니면 신념을 저버리고 밍밍한 물같은 삶을 살래? 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두번째 답을 할 것 같다.
아니다. 그래도 망설이는 척을 할 것이다. 그래야 내 신념이 소중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리는거야.. 라는 계산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신념이라면서, 새로운 신념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의 내게 신념이란 그 정도의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다. 신념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을 마음에서부터 응원하고 우러러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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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씩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한다. 처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던 것 같다. 화장되어 나온 할아버지의 유골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영혼은 어디쯤 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서 우리 집으로 놀러오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죽은 사람의 영혼은 꿈이라는 다른 차원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서는, 생각의 끝이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착한 영혼, 악한 영혼, 한 맺힌 영혼 등,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느냐에 따라 영혼의 성격도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사람이 하는 '생각'이 끊어짐과 동시에 생과 사가 결정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면 뇌사 상태에서 깨어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생각이 끊어진다.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사라진는 것. 잠을 자도 잠자는 상태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조금씩 무서워졌다. 생각 끝의 결론은 언제나 죽음은 무서운 것이라는 것과, 누구에게나 한번씩 찾아오는 죽음이기에 이왕 사는 거 좀 더 보람있게 살자는 것이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난 소크라테스에 관심이 없다. 철학가들의 사상을 배우는 고등학교 윤리 시간은 참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단순히 본 것을 받아들이기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내 것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알아보기로 한 것은, 참 단순한 생각의 결과였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테마를 소크라테스와 연결한 이 책은 무거운 소재를 귀여운 삽화와 동시에 보여주어 동화책 같은 가벼운 느낌을 준다. 내 자아를 소크라테스의 상황에 대입시켜본다면, 정말 최근 말대로 멘붕상태에 이르렀을 터. 하지만 이 책의 분위기는 책 제목 그대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느낌을 그대로 가져간다. 익살스러운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죽음으로 치닫지만, 결코 슬프거나 잔인하다 느껴지지 않는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삽화와 본문의 내용은, 상상을 뛰어 넘어 정말 절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소크라테스는 영혼불멸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형이라는 벌이 내려진 억울한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가 가진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까지도 남길 수 있게 했던 것이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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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 고 이야기 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단 한가지 밖에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리스 아폴론 신전 기둥에 새겨져 있다는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 이는 소크라테스가 즐겨 사용하던 말로써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라 라는 뜻이였다. 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길 좋아하는 소크라테스는 신을 섬기지 않고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아테네 법정에 서게 된다.
그는 진리보다 돈을 쫓는 시민들을 비난하였다. 겉치레보다 진리를 사랑하도록 이끄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질문을 할 것이라고 한다. 설사 그 때문에 수없이 유죄 선고를 받을지라도 말이다.
내 생각에는, 정의를 지키면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오래 부지하기를 바라서는 안될 것입니다. 결국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진리를 위해 죽음을 택하게 된다. 그의 사형집행일은 아테네의 축제가 끝나는 한달 후...
친구 크리톤은 탈옥을 권유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보게 크리톤, 나는 언제나 아테네의 법을 따르며 살고자 했네. 그래서 재판 때 추방형을 제안하는 것 조차 거부했지. 지금에 와서 그 법을 어기라고? 노예로 변장하여 내 아이들과 도망쳐 그들을 이방인으로 만들란 말인가? 그게 아니면 아이들을 이곳에 버려두란 말인가? 그러고 나서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에게 말하란 말인가? 그 사람들에게 미덕과 정의, 법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란 말인가?
이 책은 끊임없는 소크라테스의 질문과 대화를 중심으로 이뤄진 그림책이다. 얇은 책이지만, 대화의 내용을 읽고 또 읽고 해도 다 읽지 못하였다.
진리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고 친구의 불의(?)를 보고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라 말하던 소크라테스 무릇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한 듯 보이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자신의 신념이나 진리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사후세계는 결국 기독교의 구원, 불교의 윤회사상과 비슷한 것으로 느껴진다. 살아 생전 책하나 내지 않았던 소크라테스는 제자 플라톤이 남긴 책으로 인해 오늘날 까지 세계4대 성인으로 알려지게 된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지혜의 길을 추구하던 그의 철학세계를 그린 이 책은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을 토대로 재구성하였다.
정의롭게 잘 살고 있는 건 어떤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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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철학 그리다' 시리즈인 이 책은 철학을 어렵게만 생각해 온 많은 독자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철학자의 생활 속을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이해를 돕고 있다. 큰 책자에 당시 시대상황을 설명하는 그림과 짧은 글이 있는데, 글은 주로 대화 형식이며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훌륭한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궤변론자로 여겨지기도 한 소크라테스, 그는 70년을 살았지만 아무런 글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제자였던 플라톤을 비롯하여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파네스의 글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 중,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을 재구성한 것이다.
- 역사는 소크라테스를 성인으로 만들었고, 죽음에 초월한 사람으로,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는 철학자로 기록했다. (p.90)
소크라테스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생각을 끌어낸다. 자신은 지혜롭고 잘난 사람이 아니라 아는 것이 없는 무지한 사람이지만, 타인을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깨닫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말과 행동은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들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하여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감옥에 갇혀서도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악법도 법이다'란 말이 나왔다고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하루 앞 둔 날에도 제자들에게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죽은 후,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언급하는 장면은 철학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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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성인이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번뿐인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을 앞두고 오랜 친구와 제자들 앞에서 서로 토론하며 죽음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림과 함께 엮어진 책 <죽음,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영혼의 여행-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청년들을 타락의 길로 인도하며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선 그곳에서 소크라테스가 벌인 죄목에 대한 변명이며 크리톤 파이돈에서 친구와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근간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까지 죽음을 사색의 대상으로 여기고 진정한 죽음의 길이 무엇인지 서로 토론하는 가운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알수도 없었던 죽음이라고 하는 난해한 문제를 철학으로 풀어낸 내용을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바라던 결과라고 해석한다. 소크라테스를 사고하게 했고 수많은 지적인 선인들을 만나게 되는 그런 길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수있었기에 살길을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고야만다. 그 과정에서 벌인 토론은 어찌보면 살길을 찾는것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하고야마는 그 토론을 괴변이라고 치부할수도 있지만 지자라고 추앙받던 소크라테스의 사색깊이를 가늠해볼수 있게 만든 내용이 들어있는 내용을 그림과 핵심적인 글들을 만나볼수 있는 그림책 철학하는 소크라테스를 만나볼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마져도 사고의 대상으로 여기고 찾아들어간다. 그의 사고의 폭은 넓고 이해하기 어렵기도 애매모호하기도 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생각의 틀에는 한계를 볼 수 없었다. 죽음 앞에서 대부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범인들과는 달리 죽음마져도 기대를 가지고 남은 시간을 사색하며 보낼수 있었던 소크라테스를 향해 성인이란 칭호를 받기에 이르게 한 삶의 여정이 아니었을까. 소크라테스는 3가지로 인간군을 분류하고 자신처럼 철학자들이 진정으로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설명하고 있으며 또 한부류는 보통사람으로 분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환생을 말하고 있고 악한중에도 영원히 돌아올수 없는 곳에 처하게 되지만 치유가능한 영혼들은 다시 돌아올길을 제시하고 있다. 일명 환생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대부분 그런 소크라테스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수 있을법도 한데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만나 대화했다면 그의 말대로 인정하지 않았을까. 이를 볼때 소크라테스는 철학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지적 완성을 추구하는 것 같고 평범한 범인들을 철학자의 길로 인도하는 걸 사명으로 여긴듯하다. 하지만 죄질이 나쁜 악인에게는 단호하게 죽음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언젠가 한번은 맞이하게 될 죽음의 본질 앞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하나를 질문하고 있는듯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죽음을 맞이해 왔다. 유명한 이들의 부고 소식에서부터 어렸을때부터 함께 어울리고 자랐던 주변인물들의 죽음을 보면서 점점 세상과 결별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때론 준비되어진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저세상으로 가는 걸 보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안내하는 죽음에 대한 여행은 완벽한 철학자가 되기까지 기회가 계속 주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처럼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제목처럼 아름다울 것만 같다.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건 완벽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여기는 소크라테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그 논리대로라면 이세상에는 여전히 기회를 받은 불완전한 존재들이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는 사회일뿐이다. 그렇다면 죽은자만큼 다시 태어나야하는데 지구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철학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니 이세상에서 완변한 사회를 만드는 건 물건너 간 것이고 여전히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필요한건 결국 그게 아니라고 하는 철학자들의 외침이다. 생각하며 살아가기보다 생각안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가 던지는 진지한 질문에 답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책이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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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그림 동화. 큼직한 그림과 여백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책의 여백과 같이 글도 빡빡하게 쓰여있지는 않지만 글의 내용도 여백처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하는 그런 책이다. 내용은 신을 섬기지 않고 청년들을 현혹한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선도받고 독약을 마시는 그 기간 동안의 이야기이다. 두려운 죽음의 순간에서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당대 가장 현명한 사람인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이라며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는 평범한 나 같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 아닌 것은 아니라 말하고 고치고 변화시키고, 안되더라도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평범한 사람인건가? 여튼 죽어가면서도 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게 중요한가 라는 그의 말에는 동감한다. "내게 죽는 문제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일세. 말하자면 정의롭게 사는 것이지. 자네는 그 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고 책에 나오는 말 중에서 " 내 생각에는, 정의를 지키면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오래 부지하기를 바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라는 말을 보면서, 우리 나라 정치인들이 그래서 오래 사는건가? 라는 생각을 해봤다. ㅋㅋㅋ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을 해보시길 바라고. 그 만큼 정치가가 정의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치가들이 정의를 지키지 않고 산다는 말이 아 닌가 싶다. 그러면 그 정치가들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특히나 올해처럼 선거가 많은 해에는 어떠한 정치가가 필요한지 잘 생각해봐야할듯하다. 그리고 그에 맞게 꼭 필요한 사람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도... 옆길로 한참 셌는데,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순간을 보면서 그 말들 하나하나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갖고 다 시 봐야할 책이다. 그림과 간단히 읽는 책이 아닌 진지하게 하나하나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고 고전에 대해서도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해본다. 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