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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의 민낯을 마주하는.. -《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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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하면, 내가 음흉한지 몰라도 왜 그녀들의 성이 더 궁금한 걸까? 왕하나만 바라보며 독수공방, 절해고도의 섬에 외롭게 늙다간 궁녀를 떠올려보면 , 그네들의 삶이 참 가엽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리 권력의 정점이라 해도 왕(남자)하나에 여자 수백명은 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남자면 다야? 하는, 하지만 궁녀에 대한 책을 읽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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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하면, 내가 음흉한지 몰라도 왜 그녀들의 성이 더 궁금한 걸까? 왕하나만 바라보며 독수공방, 절해고도의 섬에 외롭게 늙다간 궁녀를 떠올려보면 , 그네들의 삶이 참 가엽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리 권력의 정점이라 해도 왕(남자)하나에 여자 수백명은 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남자면 다야? 하는, 하지만 궁녀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내가 상상하고 있던 궁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한다. ( 좀 덜 억울하다는 ㅋ~)...  기존에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임금의 애정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하고 표독스러운 궁녀의 이미지였다면, 이 책의 《궁녀》에서는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당당하게 조선왕조라는 문화를 형성한 일등공신으로서의 궁녀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조선의 궁녀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부족함을 학문적 탐구로서 사료를 바탕으로 저술하였다. 기존의 흥미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의 궁녀로서 조선의 역사를 보려 하는 것은 조선의 역사를 상상의 영역에 편입시켜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의한 연구이다.

 

책의 구성은 총 6개의 장이며 1장- '역사의 파편에서 찾아내는 궁녀의 진실'에서는 삼천궁녀라는 표현이 주는 문학적 표현으로 인해 부정적 의미가 중첩되어진 궁녀의 이미지를 말하며, 2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그녀들'에서는 조선시대 궁녀중 신데렐라와 같은 삶은 산 신빈김씨와 광해군을 쥐락펴락하며 권력의 중심속에서 악녀를 자처한 장녹수의 삶을, 김옥균을 도와 갑신정변의 중심에 있었던 최초의 혁명가로 불리워지는 여인 궁녀 고대수, 게다가 명나라에 공녀로 갔다가 궁녀가 되어 황제 영락제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나 순장당한  청주 한씨,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넘어가  도구카와 이에야스의 궁녀가 된 오따 줄리에, 소현세자를 따라 온 명나라출신의 궁녀 굴씨의 생애를 통해서 그녀들의 파란만장하고도 녹록치 않았던 삶을 말한다.

 

이어 궁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했던 자격요건과 출신성분, 궁녀라는 조직체계까지 기존의 역사서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면모까지 살펴본다. 또한  대부분이 궁녀를 왕의 여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왕이 모든 궁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곤 했는데 저자는 왕이라 해도 실제로는 자신에게 소속된 궁녀들만 관할할 뿐 관할을 벗어나는 왕비, 대비, 후궁, 세자궁에 소속된 궁녀에 대해서는 선발권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흥미로왔던 것은 궁녀의 입궁나이인데 빠르면 네살에서 여섯 살,  늦어도 열두 살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에 나와있는 어린 궁녀의 사진에 실소가 터진다. ( 울 막둥이보다 더 어려보여서^^;;;)


5장의 '궁녀의 일과 삶' 에서는 궁녀의 월급, 재산, 심지어 부동산 투기로 부동산 재벌로 불리우던 상궁 박씨의 존재를 보며 대체적으로 궁녀들이 그다지 가난하게 살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 어떤 궁녀는 궁궐내에 있는 식재료(후추같은..)를 되팔기도 하며 재산을 일구기도 하였다.  


6장 '궁녀의 성과 사랑'은 가장 흥미롭게 (^^;관심분야인지라 ㅋㅋ) 읽었는데 식욕과 성욕 , 두가지는 모두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이지만, 구중궁궐에서는 당연히 성욕은 절대금지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통 사건도 있었고 동성애도 있었고 내시와의 사랑도 있었다. 세조의 후궁이었다가 평생 짝사랑만 하다가 능지처참된 덕중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애처로움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궁녀를 통해 보는 조선의 궁중문화는 무척 색다른 역사의 이면을 보여주는데, 모름지기 역사는 단면만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엄연히 조선은 궁중문화를 형성한 왕조이다. 그런 왕조를 지탱해주며 오백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임금을 위시한 궁궐이라는 하나의 잘 짜여진 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으리라 본다. 조선시대의 궁중은 그만큼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공과사를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중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좌나 우에 집착하지 않고 위아래의 편견에서 벗어나야하는 중심에는 왕의 침전이 있었으며 그 내면에 궁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녀의 진면목을 살피는 책은 거의 전무하다. 그것은 궁녀가 비밀스럽고도 임금의 역린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이유도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중용이 필요하듯이 역사 또한 중용이 필요하다. 사회,경제,문화가 서로 어우러진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역사를 형성하듯이 우리의 역사를 보는 시각은 한 쪽에 치우치거나, 편견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되면 역사의 진정성과는 멀어진다. 따라서 궁녀를 기존의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생생한 민낯으로서의  궁녀이야기는 조선 역사의 진정성에 한발  더 다가간 느낌이다. 이제껏 단편적으로 궁녀를 '왕의 여자'로만 인식해왔으나, 조선 '궁중문화를 이끈 주인공'으로서의 궁녀는 흥미로울 뿐아니라 역사를 총체적이고도 거시적인 안목을 선사해주는데 의의가 있는 책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2.06.09. 신고 공감 21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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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는 궁녀란 없다? (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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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는 궁녀란 없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궁녀의 개념은 뭘까? 사극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궁녀의 모습은 고증된 것이 아닌 왜곡이 혼재된 모습일까? 조선을 기록의 나라라고 부르지만 의외로 궁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왜 그럴까? 일단 궁녀는 왕에 있어 일종의 프라이버시 영역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왕조시대에 왕의 이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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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는 궁녀란 없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궁녀의 개념은 뭘까? 사극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궁녀의 모습은 고증된 것이 아닌 왜곡이 혼재된 모습일까? 조선을 기록의 나라라고 부르지만 의외로 궁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왜 그럴까? 일단 궁녀는 왕에 있어 일종의 프라이버시 영역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왕조시대에 왕의 이미지는 절대자의 권위이다. 하지만 왕 또한 빛과 그늘을 가진 인간임에, 왕을 가까이에서 보필해야하는 궁녀는 필연적으로 왕의 내밀한 사생활을 알 수밖에 없다. 만약 궁녀 문제를 언급하여 왕의 절대 권력과 신성한 이미지에 흠이라도 생긴다면? 왕권의 존립과 연결되기에 이는 바로 왕의 역린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잘못하다가는 바로 역심을 품은 의도로 간주될 판이니 누가 함부로 나서 공개적으로 궁녀와 관련하여 상소하고 거론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궁녀에 관한 한 공식적인 역사의 기억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을 거란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높이 오르는 이무기는 안개에 노닌다. 그러나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걷히면 용이나 이무기는 지렁이와 다를 것이 없다. 왜 그런가? 타고 노는 구름과 안개를 잃었기 때문이다. - 한비자 권17,난세-. <궁녀> 28쪽


시공사에서 출간한 <궁녀, 궁궐에 핀 비밀의 꽃>을 읽었다. 이 책은 2004년에 나온 <궁궐의 꽃, 궁녀>의 개정증보판으로, 머리말이 추가되었고 편집을 새롭게 하였다고 한다. 얼마 전 역사전문 브랜드 '역사의 아침'에서 펴낸 김종성의 <왕의 여자>를 읽은 적이 있어 이 책은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은근히 비교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왕의 여자>는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궁녀-후궁-왕후를 다루었다면, 이 책 <궁녀>는 말 그대로 '궁녀'에 국한하여 그 조직과 체제, 일과 삶, 성과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왕의 여자>가 학구적 내음이 강했다면 <궁녀>는 대중적 역사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겠다. 같은 역사적 사료를 원천으로 하여 비슷한 내용들을 다루면서도 두 책은 의외로 다른 느낌을 준다. 편하게 읽으려면 <궁녀>가 나아보이고, 조금 타이트하게 읽으려면 <왕의 여자>가 나아 보인다.

 


평소의 상식에서 크게 나아간 내용이 그닥 없어 뭔가 깔끔하게 정리할 마음이 일지 않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내용 몇 가지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흔히 궁녀 하면 왕이 모두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왕의 여자들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완전 착각이라는 거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실제로는 자신에게 소속된 궁녀들만 관할할 뿐 자신의 관할을 벗어나는 궁녀에 대해서는 선발권조차 없었다는 내용이다(95쪽. 누가, 어떻게 궁녀를 뽑았을까). 궁녀의 충성 대상은 왕이 아닌 자신의 주인(왕비, 대비, 후궁, 세자)이었기에 궁녀와 각 처소의 주인들은 공식적, 심정적으로 주인과 종의 관계 유지했으며, 삶과 죽음까지도 함께하는 운명공동체의 관계라는 대목이 기억할 만 했다.

둘째, 궁녀들은 어떤 이들이 될까? 이 점도 흥미로운데, 궁녀들이 사실상 노비출신의 여성이라는 거다. 영조 당시 궁녀의 자격을 내수사(궁중에서 쓰는 미곡·포목·잡화·노비 등 왕실 재정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청)의 여자 종으로 한정(110쪽)하였다는 내용인데, 요컨대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궁녀는 다소의 예외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양인 여성이 아니라 공노비와 사노비 등 노비 출신이라는 거다. 이는 왕비, 후궁, 궁녀의 관계설정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

셋째, 조선시대 500~600여 명의 궁녀들은 왕 한 사람을 위한 성노리개가 아니라 궁중 생활 문화의 진수를 담당, 전승한 주역으로서 존재(170쪽)했다는 거다. 왕궁은 일종의 폐쇄공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일하고 자려면 철저한 분업과 전문화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에 궁녀들 역시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 일평생을 보낸 노련한 선배 궁녀들에게 궁중 생활 문화의 진수를 직접 전수받은 전문직 여성이라는 관점이다.

넷째, 궁녀의 머리 스타일이 얼른 그려지지가 않아 고전했다. 사양머리(생머리, 새앙머리)는 사극에서 간간히 보기는 하나 쌍상투같이 가름하게 나란히 하여 붙인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전문가가 볼때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몰라도 아마추어의 입장에선 궁녀들의 다양한 머리 모양을 보여주는 이미지 정보가 있었으면 했다. 그림 하나가 많은 설명을 대신할 수 있다.

 

이런 내용 말고도 궁녀 신분이면서 궁녀를 돌봐주던 하녀를 따로 뒀다는 이야기나, 조선시대 역모 사건에는 대부분 궁녀들이 연루되었다(추안급국안)는 내용, 몇몇 특출했던 궁녀( 장녹수, 김개시, 고대수, 중국의 조선 출신 궁녀_ 청주 한씨 등)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가볍게 궁녀들의 은밀한 사생활과 체제가 궁금한 사람은 읽어볼 만 할 거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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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궁녀의 모습에서 조선 역사의 속살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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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예전에 보았던 영화 '궁녀'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책을 영화화한 영화를 많이 보았던 탓에 이 책도 그런게 아닐까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한 밤에 보았던 '궁녀'라는 영화를 보면서 어찌나 섬찟하던지. 미스테리 공포영화였던데다 친구랑 한밤중에 본거라 굉장히 무서워 하며 궁녀의 세계를 경험했었다. 왕 외에 함부로 죽일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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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예전에 보았던 영화 '궁녀'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책을 영화화한 영화를 많이 보았던 탓에 이 책도 그런게 아닐까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한 밤에 보았던 '궁녀'라는 영화를 보면서 어찌나 섬찟하던지. 미스테리 공포영화였던데다 친구랑 한밤중에 본거라 굉장히 무서워 하며 궁녀의 세계를 경험했었다. 왕 외에 함부로 죽일수 없는 궁녀. 차마 신하들조차 궁녀에 대해서 함부로 입을 뗄수 없는 그 궁녀 말이다. 궁녀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궁중의 비밀 뿐만 아니라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왕의 비밀을 누설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곧 역모이기도 하기 때문.

 

 

우리가 만난 궁녀들은 영화에서보다 역사 드라마에서 궁녀들의 역할이다.

왕의 여자라고 불리어 그 어느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고, 아이를 낳을수도 없는 여자. 궁녀. 왕의 눈에 띄어 왕의 후궁에 오르려는 궁녀들의 유혹적인 모습. 또한 드라마 '대장금'에서의 수랏간에서 음식을 만들던 궁녀, 그리고 왕비나 세자빈, 공주 등 여성을 진찰했던 의녀 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왕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궁녀들만 있을줄 알았지만, 궁중의 음식을 책임지는 궁중 음식과 복식, 양육, 궁중 자수를 발전 시켰던 궁중 생활 문화를 계승, 창조한 사람들이 바로 궁녀란 사실이다. 

 

 

여인의 삶을 포기했던 그들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궁녀의 신분으로서 왕의 후궁이 되기도 했고, 또한 왕비에 까지 올랐던 장희빈을 포함해 중국 출신의 궁녀와 조선 출신의 중국, 일본 궁녀들의 모습도 다루었다. 높은 월급을 받은 터라 생계를 위해 궁녀가 되었고, 세자의 유모로 들어가 세자가 왕이 되었을때의 유모에 대한 특전이 남달랐던 점도 알 수 있었다. 예술을 사랑했던 연산군과 예술적 교감을 했던 장녹수를 포함해 세종의 큰며느리인 봉씨와 동성애에 빠졌던 지밀 나인 소쌍의 사랑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또한 어떤 이들이 궁녀가 되었는지, 어떤 체제로 궁녀들이 움직였는지, 궁녀들의 일과 삶, 궁녀의 성과 사랑을 6장에 걸쳐서 설명한다. 이는 마치 드라마 한 장면을 보는 듯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궁녀들의 생활과 그들의 삶을 보며 조선의 역사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게 되었다.

궁중의 암투와 함께 궁녀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했다. 왕의 주변인물로만 보였던 드라마속 궁녀들에게서 그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고 외로운 여자였다는 점을 자세히 알게 되었달까. 궁녀들의 이야기로 인한 조선시대의 궁중 문화와 정사와 야사가 재미있게 읽혀졌다. 마치 한편의 소설처럼.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06.04. 신고 공감 8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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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꽃은 아닌 것 같은데 [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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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든 실록에서든 늘 뒤에서 저만치 떨어져 주인공을 보좌해야하는 역할, 궁녀. 주인공이 눈에 띄어야 하기에 궁녀로 등장하는 사람은 예쁘지도 않다. 궁녀들의 시시콜콜한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은 더더욱 없을 수밖에. 늘 그들은 조연도 아닌 등장인물 1,2,3 등에 불과했다. 5년 전인가 '궁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제목은 궁녀인데 궁녀들 삶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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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든 실록에서든 늘 뒤에서 저만치 떨어져 주인공을 보좌해야하는 역할, 궁녀. 주인공이 눈에 띄어야 하기에 궁녀로 등장하는 사람은 예쁘지도 않다. 궁녀들의 시시콜콜한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은 더더욱 없을 수밖에. 늘 그들은 조연도 아닌 등장인물 1,2,3 등에 불과했다. 5년 전인가 '궁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제목은 궁녀인데 궁녀들 삶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관객들 시원한 여름 보내시라고 만든 공포 스릴러물이었다. 그래도 나름 궁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보기 드문 영상물이었다.


 


 

(네이버에서)


저자 신명호 교수는 '주로 왕과 왕실에서 소외되었던 계층들의 인물과 역사를 발굴'(책날개에서 발췌)하는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역사는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때문에 왕조실록이나 사대부의 문학작품들이 그 시대를 예측하는 주된 자료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그런 기록물을 남기는 사람들이 주로 지배계층인 양반들이다보니 기록의 중심은 왕족들 또는 지배계층들 관련 기록이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궁중 사회는 실록 위주의 사료들에 많이 의존하니 궁궐 내부의 배경인물로 등장하는 궁녀나 내시에 대한 기록은 산발적으로 조금씩 남아있는 형국이다. 다행히 한중록 같은 궁중 문학 작품을 통해, 또는 그나마 궁녀에 대한 기록이 좀  남아있는  모반 대역 죄인과 관련한 법정 기록물에 궁녀들의 심문 내용들 등을 통해 궁녀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다. 신명호 교수는 흩어져 있는 궁녀들의 기록들을 모아서 입궁부터 내명부 조직 체계, 운영, 궁녀들의 사랑 그리고 유명한 궁녀 출신 인물들의 사례들을 쉽게 정리했다.


일반적으로 궁녀는 공노비에서 차출되며, 입궁하게 되는 세자빈 등의 몸종으로 따라오든지 아니면 아주 드물게 양민들 중에서 부모나 친척에 의해 들어왔다. 궁녀도 상궁이나 나인이 되어야 실세가 있지 그 외에 무수리, 방자, 파지 등은 별볼일 없는 궁녀들이다. 그러나 상궁, 나인 등은 그만큼 제재도 많다. 그들은 자신의 주인(왕, 왕비, 대비, 세자, 세자빈 등)에게 평생 종속되어 있으니 수행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하는 점이 그것이다. 상궁 중에서는 정치권력뿐만아니라 경제적 부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월급이라고 할 수 있는 녹봉이 양반 관리들보다 많은 경우도 있었다. 궐내의 운명이라할지라도 돈을 모으는 재미로 답답한 궁궐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궁녀들의 심리적 탈출구였으리라. 그 중 어떤 상궁의 부동산 거래 내용이 남아있는 기록이 있었는데 부동산 계약에서 그치지 않고 공증까지 받아 놓은 문서가 인상적이었다.


궁녀들의 기록이 세세하게 남아있지 않아 더 내밀한 모습까지 알 수 없고 추측만 하는 정도다. 궁궐 내부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최측근들이다보니 기록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던 누군가의 종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을 그들의 운명이 측은하다. 그들을 과연 '궁궐의 꽃'이라 불릴만큼 꽃다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도 없고 꽃같은 취급을 받았다고도 볼 수 없으니 이런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임.

이 책의 내용과 상관없는 사진들이 게재되어 있는 것이 좀 많았다. 핵심 내용과 별 상관없는 사진들이라서 지면을 채우기 위함인가, 아니면 인문학 책을 읽는데 눈이라도 좀 쉬어가라고 사진을 삽입했는지 모르겠지만,책 내용에 등장하는 단어 하나 이런 걸 가지고 사진으로 집어 넣거나 하는 것 같아 오히려 읽기 흐름에 방해되는 감이 있었다.





YES마니아 : 로얄 g********s 2012.06.28. 신고 공감 4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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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이념과 개인의 원초적 욕망 사이의 궁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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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이제 기록이 아니라 발굴이 되었다.  더 이상 왕조 같은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하거나 전쟁이나 혁명 같은 거대한 사건 중심이 아니라 그들에게 관심의 스포트라이트를 갖다대느라 상대적으로 가리워졌던 그래서 더 왜곡되기도 했었던 역사적으로 무시되어졌던 존재들에게 다시금 빛을 찾아주고 목소리를 가져다 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대낮의 환한 광장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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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이제 기록이 아니라 발굴이 되었다.

 더 이상 왕조 같은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하거나 전쟁이나 혁명 같은 거대한 사건 중심이 아니라 그들에게 관심의 스포트라이트를 갖다대느라 상대적으로 가리워졌던 그래서 더 왜곡되기도 했었던 역사적으로 무시되어졌던 존재들에게 다시금 빛을 찾아주고 목소리를 가져다 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대낮의 환한 광장으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역사의 소명이 된 것이다. 지배계급이 존재했었던 곳엔 어디에서나 그렇게 역사의 관심에서 소외된 자들이 존재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서양의 역사 못지않게 공식적 기록에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고 지금 역시도 온전히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한 존재들이 상당한 것이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궁녀가 아닐까 한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임중인 신명호의 '궁녀'는 오래도록 빛을 받지 못하여 무지의 베일에 가리워져 있었던 궁녀들의 삶을 제대로 복원해보려 한 저작이다. 그가 새삼 잊혀진 궁녀들의 삶에 주목했었던 것은 여성들의 급속한 사회적 지위 향상과 더불어 조선시대 내내 억압받았던 여성상을 새롭게 조명해보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재조명의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대비, 왕비, 후궁, 궁녀등 궁중 여성들이 될 것이라 한다. 왜냐햐면 조선은 그 무엇보다 왕조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중 여성들의 경우 지금도 그것을 재현한 사극들에서 잘 드러나듯 자칫 그 권력의 추구와 흥미본위의 선정성에만 집착해 그 삶의 진정한 모습이 왜곡될 위험을 많이 안고 있다. 신명호는 그래서 역사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 의해 왜곡될 위험을 우려해 학문적 탐구가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궁녀'는 바로 그러한 신명호의 문제의식에서 태어난 산물인 것이다.

 

 책은 총 6장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째 장은 오래도록 역사의 관심을 받지 못해 공식적인 사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궁녀들의 삶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 그 방법론을 논하고 둘째 장은 궁궐에서 그저 그림자들로만 존재하는 궁녀이기에 혹 우리의 선입견은 그녀들의 삶이 그대로 단일한 무채색의 삶이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장은 궁녀들의 삶이 전혀 그렇지 않음을 그러니까 파란만장한 다채로운 빛으로 가득한 것이었음을 특기할만한 궁녀들 개인의 삶을 통해 드러내는 장이다. 신명호가 하필이면 두번째 장에서 이러한 개개 궁녀들의 삶을 통해 다채로운 궁녀의 삶을 보여주는 이유는 이러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독자의 흥미를 일으킨다는 점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아무리 궁녀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오로지 왕조에 대한 충성이라는 보편적 이념으로만 움직였던 존재들이 아니라 그 이전에 보다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욕망을 성실히 추구했던 존재들임을  밝히기 위해서다. 조선 왕조가 건국 당시 부터 개인들의 욕망을 억누르고 보편적인 이념만을 추구하려 했던 나라임은 조선의 기틀이 되는 근본 사상을 다졌던 정도전이 경복궁의 침전을 '강녕전'이라 이름붙인 연유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 강녕전의 의미는 바로

 

  왕이 밤에 조용히 황극을 닦으며 식욕, 색욕, 권력욕 등 인간의 원초적 욕망들을 잠재워야 한다는 의미였다.(p. 9)

  (여기서 '황극'이란 인간의 원초적 욕망들이 생겨나기 전의 중용 상태를 말하는데 즉 황극을 닦음이란 어디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공평무사한 중립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렇게 조선은 처음부터 개인의 원초적 욕망을 무화(無化)시키는 것을 이념으로 출발한 나라였다. 그렇게 모든 존재들을 보편이라는 광막한 장막으로 덮으려 한 나라였다. 하지만 신명호는 그 왕조의 중심에 있어서 누구보다 그 보편적 이념에 봉사했어야 할 궁중 여성들조차 무엇보다 개인의 원초적 욕망을 추구했던 존재들임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궁중 여성들의 존재 자체가 보편적 이념과 개인적 욕망 사이의 투쟁을 의미하는 상징이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동안 궁녀의 실제 삶이 그동안 역사적으로 전혀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의 환유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그 궁녀들의 삶이 그토록 조명받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개인의 욕망 보다는 어디까지나 보편적 이념을 중시했던 조선 때문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가리워졌던 궁녀들의 삶을 복원하는 것은 그렇게 보편적인 이념의 그늘아래 웅크리고 있어야 했을 개인의 욕망들을 복원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그래서 신명호는 자신의 저서 '궁녀'를 욕망을 비롯하며 개인적인 삶의 실현을 밑그림 삼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3장과 4장 그리고 5장은 그 개인으로서의 '궁녀'의 삶에 있어서 바탕을 이루는 조건들을 그려낸다. 즉 3장에서는 궁녀의 선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4장에서는 궁녀들의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움직이는지 그리고 5장에서는 그들의 업무와 라이프 스타일을 밝히는 것이다. 이 모든 궁녀들의 삶의 조건들을 다 그려내고 난 뒤 드디어 마지막 6장에서 가장 개인의 원초적 본능이라 할만한 궁녀들의 성과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순서는 그냥 무심히 배열된 것이 아니라 지금 궁녀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와 관련하여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보편적 이념의 정수라 할만한 정도전의 강녕전에서 그 중심에서 오히려 개인의 원초적 욕망 충족에 충실하는 궁녀들의 삶까지 이르는 여정은 그야말로 보편적 이념이 결국은 개인의 원초적 욕망에 의해 패배하는 여정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궁녀들의 삶을 통하여 궁녀들 삶 자체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이념이 아무리 강고하게 억누른다고 해도 개인의 원초적 욕망은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로써 역사가 다시금 보편이란 이름아래 지워진 개인들의 삶을 발굴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개인은 그 자체 삶으로서 완전한 것이며 그 개인을 자꾸만 부족한 존재로 만들어서 길들이려 드는 보편적 이념은 그야말로 억압적 가설이거나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궁녀'의 역사란 그저 지나간 역사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의 생생한 역사로 다시금 음미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즉 궁녀들의 삶이란 사회라면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보편적 이념과 개인의 원초적 욕망 사이의 대립을 제대로 되새겨 볼 수 있는 현장이니까 말이다.

 

 

 

 



l****1 2012.06.10. 신고 공감 3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의 기록에 숨어있던 조선왕조 궁녀들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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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 박종화선생님의 <금삼의 피>를 흥미롭게 읽었던 것이 중학교 때이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복위를 둘러싼 음모를 중심으로 한 줄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왕조시절부터 궁궐의 이야기는 세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범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세계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전통(?)은 지금 세상에까지도 면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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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 박종화선생님의 <금삼의 피>를 흥미롭게 읽었던 것이 중학교 때이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복위를 둘러싼 음모를 중심으로 한 줄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왕조시절부터 궁궐의 이야기는 세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범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세계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전통(?)은 지금 세상에까지도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면 과거에는 왕을 중심으로 신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고 한다면 최근에는 궁궐의 주변인물 가운데 권력의 핵심에 가까이 이동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루어지곤 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이야기가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다보니 소재가 고갈된 탓도 있을 것 같고, 또 새로운 화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경향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퓨전사극이라고 해서 시대성이 애매한 작품이 등장하는가 하면 팩션이라 해서 가상사극까지 등장하는 마당입니다.

 

최근 재미있게 보는 주말드라마에 등장하는 학생이 사극에 등장하는 내용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웃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만, 어쩌면 그런 상황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부경대학교 사학과 신명호교수님은 바로 그런 상황을 우려한다는 말씀을 신작 <궁녀>의 머리말에 적고 있습니다. “어느 것보다 더한 흥미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궁중여성이라는 소재를 오로지 흥미와 상상력에만 맡길 경우 조선시대 역사 자체까지도 상상의 영역으로 빠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것이다. 때문에 역사소설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를 통해 조선시대의 궁중 여성들이 조명되는 것 그 이상으로 조선 시대 궁중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깊어져야 한다고 믿는다.(7쪽)”

 

<궁녀>는 왕과 그 주변인물의 생활을 지원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을 통해서 복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왕과 왕을 둘러싼 신하들의 이야기 혹은 그들의 시각으로 걸러진 백성들의 삶의 기록입니다만, 그 속에서조차 제대로 기록된 바 없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바로 궁녀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기록에서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궁녀에 대한 기록과 조선조가 끝난 이후 생존해있던 궁녀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된 자료 등을 통하여 과거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궁녀들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은 그녀들이 왕의 사적공간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왕이 아닌 자가 언급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즉 왕의 사생활을 지원하는 궁녀에 대한 언급은 조심한다고 해도 왕의 사적생활을 지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록에 남겨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극비사항이 될 수 있는 왕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로 발전하여 역모로 해석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명호교수님은 <궁녀>에서 그녀들의 실체를 뒤쫓고 있습니다. 누가 무슨 사정으로 궁녀가 되었던 것인가? 그녀들은 어떻게 조직되어 있었고, 어떤 일을 맡고 있었던 것인지. 그녀들의 성과 사랑을 포함한 삶은 어땠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기록에 남겨진 궁녀들의 사례들을 재구성하여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궁녀들은 처소에서 독자적으로 선발하여 운영하였기 때문에 그녀들이 모시는 분을 중심으로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간혹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이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때로는 그녀들이 주인을 배신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던 이유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녀들의 업무와 보수체계를 드려다 보면 요즘의 전문직 여성에 해당되었다고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우 역시 지금의 전문직 여성을 뛰어넘어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조정신료보다 더 한 위치에 있었음을 볼 수도 있습니다. 미혼인 상황에서 당연히 고소득이었는데다가 요즘으로 치면 입주근무라 할 수 있어 먹고, 입고, 일용하는 물품까지도 지원받았기 때문에 보수로 받는 금전을 쓸 시간도 없었지만, 나름대로는 재테크를 하는 궁녀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리해보면 이제까지 베일에 가려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왕조의 궁녀들의 실체에 어느 정도 접근하고 있는 학술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딱딱하지 않게 서술하고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y*****2 2012.06.06. 신고 공감 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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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진지한 궁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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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왕조 시대의 산물인 궁녀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것은 궁녀란 지극히 내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록’에 궁녀들이 등장하는 일 자체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기에 왕이 먼저 말하기 전에는 등장할 까닭이 없었고 왕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궁녀 문제를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왕이 만부득이 궁녀 문제를 언급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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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왕조 시대의 산물인 궁녀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것은 궁녀란 지극히 내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록에 궁녀들이 등장하는 일 자체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기에 왕이 먼저 말하기 전에는 등장할 까닭이 없었고 왕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궁녀 문제를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왕이 만부득이 궁녀 문제를 언급해야 할 때는 궁녀들이 모반, 저주, 간통 등의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다. 이런 가운데 계축일기’, ‘한중록’, ‘인현왕후전등 조선 시대 궁중 여성들이 남긴 기록과 모반 대역죄인들을 조사한 법정 기록인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등을 참고로 궁녀들에 대해 쓴 책이 신명호 교수의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궁녀.

 

추안급국안에는 궁녀들이 대거 등장한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궁녀 충원이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 원경왕후가 살아 있었고 양녕의 폐세자로 인해 세종과 왕비는 새 궁녀들로 하여금 모시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신빈 김씨는 사이가 참 좋았다. 공노비 출신의 신빈 김씨는 세종에게서 아들 여섯(딸 둘은 일찍 사망)을 낳았다.

 

연산군의 궁녀로 후대 왕을 낳지 못한 장녹수(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가비였던)와 광해군의 궁녀로 역시 후대 왕을 낳지 못한 김개시(노비의 딸)는 나쁜 궁녀의 대명사다. 연산군은 눈에 확 띄는 미녀도 아니고 아이까지 낳은 유부녀로 연상이기까지 한 장녹수를 딱 한 번 보고 바로 입궁시켰다. 김개시는 뛰어난 판단력과 두뇌로 광해군의 신임을 얻었다. 김개시는 어릴 적 입궁하여 상궁이 되었으나 후궁이 되지는 못했다.

 

광해군의 궁녀로 있다가 선조의 궁녀가 된 뒤 다시 광해군에게로 간 김개시는 광해군의 제조상궁으로서 당대의 실력자 이이첨과 함께 당시의 정치판을 좌지우지했던 실세였다. 김개시는 광해군의 걸림돌이었던 인목대비를 무력화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스스로 알아서 했다. 갑신정변 5년 전인 1879년 김옥균의 동조자로 입궁한 이우석은 체격도 크고 힘도 세 양산박의 수호지의 여장부 이름인 고대수로 불렸다.

 

37세의 그녀는 기운이 세고 용모는 단정하지 못하였기에 무수리를 맡았다. 무수리는 출퇴근이 가능했다. 궁중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첩자로서는 무수리가 제격이다. 조선시대에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은 추존 왕 덕종 비 소혜왕후, 예종 비 장순왕후, 안순왕후, 성종 비 공혜왕후, 인조 비 인열왕후 등을 배출한 청주 한씨 가문이다.

 

세조 비 정희왕후, 폐비된 성종 비 제헌왕후, 성종 비 정현왕후, 중종 비 장경왕후, 중종 비 문정왕후를 배출한 파평 윤씨 가문도 다섯 명이지만 폐비된 제헌왕후를 제외해서 그런지 2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태종 비 원경왕후, 숙종 비 인현왕후, 고종 비 명성왕후, 순종 비 순명효왕후를 배출한 여흥 민씨 가문이 3등이다.

 

소혜왕후의 고모(한확의 여동생) 청주 한씨가 명나라 영락제의 궁녀 생활을 하다가 영락제가 죽자 순장되었다. 명나라에 보내는 공녀는 사대부 가문에서 골랐고 청나라에 보내는 공녀는 공노비 가운데서 골랐다. 청주 한씨가 영락제의 사랑을 받았던 까닭에 오빠 한확은 승승장구했다.

 

오따 줄리에는 임진왜란 중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간 여성이다. 오따 줄리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그의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추종하는 파를 이기고 패권을 차지한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총애를 받았다. 히데요리를 추종하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패배한 사무라이들이 할복하는 관행을 깨고 항복하지 않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고니시는 공개처형된 후 효수되었다.

 

오따 줄리에가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은 고니시 부인을 시중들 때였을 것이다. 도쿠가와가 천주교 금지령을 내렸는데도 줄리에는 신앙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발각되어 체포된 뒤 외딴 섬으로 유배를 갔다. 줄리에를 사랑한 도쿠가와도 그녀의 신앙을 버리게 하지 못했다. 오따 줄리에와 반대의 경우가 굴씨(屈氏).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명나라가 멸망한 후 귀국할 수 있었다.

 

이때 소현세자는 명나라 궁녀와 환관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청나라에서 소현세자에게 준 선물이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의 황녀였던 굴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자성의 반란으로 숭정제가 자살하자 굴씨도 따라 죽으려 했고 이에 주황후가 말려 자살하지 않고 민가에 숨었다가 청나라 군사들에게 붙잡혔다. 주황후는 자살했다. 굴씨는 인렬왕후 조씨(자의대비)의 궁녀가 되었다.

 

70의 나이에 굴씨는 조선에서 숨을 거두었다. 굴씨는 자신을 서쪽 근교의 길에 묻어달라고 했다. 굴씨는 그곳에 자신을 묻어주면 왕의 군대가 청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최회저도 소현세자를 따라와 궁녀가 되었다. 80 넘어서까지 살았다. 조선의 숭명반청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숙종 25년에 정식 상궁 교지를 받았다. 왕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소속된 궁녀들만 관할했을 뿐 관할 밖의 궁녀에 대해서는 선발권조차 없었다. 긍녀의 충원도 각 처소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왕의 대전, 왕비전, 대비전, 세자전 궁녀들이 각각 독립적이었다는 의미다. 궁녀들이 충성을 바치는 1차 대상도 왕이 아니라 자신들을 거느린 주인이었다. 그들은 운명공동체의 관계를 맺었다.

 

세자가 왕이 되면 세자궁의 궁녀들이 대전 궁녀가 되고 왕이 죽으면 궁녀들은 왕의 장레를 치른 후에 여승이 되거나 대궐 밖으로 나가 여생을 보냈다. 각 처소별로 궁녀 수를 명시한 것은 성종 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궁녀 수가 늘어났다. 이는 왕실 구성원이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각 처소의 궁녀 조직이 점차 비대해지고 업무량도 늘어난 까닭이다.

 

즉 왕족들이 각 처소별로 독립 생활을 하며 음식, 바느질, 자수, 빨래, 청소, 양육 등 궁중의 실생활에서 요구하는 각종 여성 노동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궁녀는 왕의 개인 종이기도 하고 동시에 경국대전에 규정된 공적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궁녀는 왕의 개인 노비인 내수사(內需司: 조선시대 왕실 재정의 관리를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궁중에서 쓰는 미곡·포목·잡화·노비 등을 관리했다.)의 여자 중에서 충당할 수도 있었고 공노비나 일반 국민 중에서 충당할 수도 있었다.(112 페이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헸던 10년 동안 광해군 측의 궁녀들은 인목대비를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고 모함했다. 인조 반정 직후 인목대비를 괴롭힌 원흉으로 지목된 상궁 김개시는 목이 잘렸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다소의 예외를 제외하면 궁녀는 기본적으로 공노비와 사노비 등 노비 출신의 여성들이었다. 지밀 상궁의 경우 네 살에 입궁했다. 침방 상궁은 여섯 살에 입궁했다.

 

네 살 입궁 사례는 자식 없는 대비의 어린 수양딸을 하기 위해 입궁한 것이었다. 물론 조선 시대 17세기 궁녀들의 입궁 나이와 고종, 순종 대의 궁녀들의 증언은 일치하지 않는다. 미혼 궁녀들은 각 처소 주인들의 시중과 의식주 관련 노동을 위해 입궁했고 기혼 궁녀는 유모나 보모 등 아이의 양육과 관련된 일로 입궁했다. 예비 궁녀로 입궁하는 아이들은 적어도 일곱 살 이상이었고 아이 양육을 위한 기혼 궁녀들의 입궁은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132 페이지)

 

왕의 유모는 봉보부인이라 불렸다. 1품이었다. 봉보부인은 매년 쌀과 콩 60석을 받았다. 영의정이 받는 양보다 많은 것이었다. 유모는 궁녀들처럼 내수사나 각사의 여자 종에서 선발되었으므로 공노비 신분인데 봉보 부인이 되면 자연 면천(免賤)되었다. 심지어 예종은 봉보부인의 친족 27명을 면천해주었다. 연산군은 이것을 빌미로 봉보부인의 친족을 전부 다 면천시켜 주려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139 페이지) 정식 유모 외에 어쩌다가 왕에게 한번 젖을 먹인 여성들도 면천되었다.

 

원자(元子) 이외의 왕실 아이들 즉 왕자와 공주, 옹주 등이 혼인으로 궁궐을 나가면 보모 상궁은 으레 따라서 출궁하곤 했다. 출궁한다고 해서 궁녀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왕자와 공주의 궁방(宮房)에 소속된 궁녀로 바뀔 뿐이었다.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이 틀어진 시초가 바로 보모 상궁들이 잘못 가르친 데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궁녀는 5품 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4품 이상은 후궁이다.

 

조선 시대 양반 관료 조직이 크게 9품에서 5품까지의 사()4품에서 1품까지의 대부(大夫)로 구성되었듯 내명부의 조직도 9품에서 5품에 이르는 궁녀와 4품에서 1품에 이르는 후궁으로 양분되었다.(155 페이지) 5품에서 6품은 상궁, 상의 등 상()이라는 말 다음에 구체적 업무 내용이 들어갔다. 7품에서 8품까지는 전빈, 전의 등 전()이라는 말과 함께 담당 업무가 들어갔다. 9품은 음악을 연주한다는 의미의 주() 다음에 긍상각치우의 5음이 들어갔다.

 

상궁은 마마님이라 불렸고 나인들은 항아(姮娥)라 불렸다. 왕의 승은(承恩)을 입고도 후궁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특별 상궁, 승은 상궁 등으로 뷸렸다. 각 처소에는 궁녀 전체를 통솔하는 제조(提調) 상궁이 있었다. 제조 상궁과 부제조 상궁은 각 처소의 지밀(至密)에 소속되었다. 대전(大殿) 궁녀 대부분은 전문직 여성이었다. 대전의 긍녀 중에서 왕의 잠자리 상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궁녀는 사실상 지밀의 젊은 궁녀들로 한정되었다.

 

반면 대전 궁녀들 중의 대다수는 평생 자기 업무 분야에 종사한 철저한 전문가로 존재했다.(169 페이지) 궁중 생활 문화의 진수를 담담, 전승한 주역이었던 것이다. 상궁과 나인 이외의 여성들이 있었다. 방자, 취반비, 무수리, 파지 등이다. 방자는 방에 딸린 사람이다. 밥하는 취반인을 취반비라 했다. 궁중에서 물 긷는 사람은 무수리라 불렀다. 세숫물을 담당하는 사람을 수모(水母)라 했다. 파지(巴只)는 청소를 맡은 사람이다.

 

상궁이나 나인은 평생 주인을 위해 수절했다. 방자, 취반비, 무수리, 파지 등은 그런 억압에서 자유로웠다. 내의원에 속한 의녀들은 출퇴근을 했고 혼인도 할 수 있었다. 궁중에 일이 없을 때는 여성 범죄자를 조사하는 수사관 역할을 하기도 했고 궁중 연회에서 가무를 보여주는 기생 역할도 담당했다.(188 페이지)

 

낮은 물론 은밀한 왕의 잠자리까지 함께 한 지밀 나인들은 최고의 측근이 되었다. 침방, 수방, 소주방, 생과방, 세수간, 세답방 등의 나인들은 굳이 밤까지 일할 필요가 없었다. 왕과 왕비의 침실에 관심을 가지면 대역죄로 내몰렸다. 왕이나 왕비가 어느 방에서 잠을 자는지, 누가 침실을 지키는지, 몇 명이나 지키는지 등은 국가 최고의 기밀이었다. 긍궐의 특성상 수완이 좋은 궁녀는 각종 이권에 개입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궁녀들은 재산 증식에 열심이었다. 궁녀는 긍정적으로 보면 혼인을 포기한 전문직 여성들이라 할 수 있다. 궁녀들이 꽃놀이나 뱃놀이를 갈 때 기생은 물론 액정서(掖庭署)의 별감이나 궁의 남자 종들도 여보란 듯이 거느리고 다녔다.(214 페이지) 인조, 효종, 현종 3대에 걸쳐 상궁으로 있었던 박씨는 대궐 밖에 자기 소유의 가옥과 토지를 매입해 국가의 공증을 받기도 했다. 액정(掖庭)은 궁궐 영역을 뜻한다.

 

박씨는 당연히 소작인이나 노비에게 토지를 경작시켰다. 많은 소작료를 거두었다. 박씨는 양손자에게 재산을 전부 물려주었는데 양손자는 이를 곧바로 팔아버렸다. 비녀를 꽂고 어른 복장인 배자를 입고 하는 계례(?禮)가 있다. 긍녀들도 계례를 치렀다. 성인식과 혼례식을 결합한 의례다. 궁녀들은 혼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실제는 신랑 없이 혼례식을 치렀다.

 

어려서 입궁한 궁녀가 자신의 상전과 맺는 관계는 주인과 여종의 관계였지만 그들은 형식적인 주종관계를 넘어 심정적 의리 관계를 맺곤 했다.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열세 살에 궁녀가 된 계환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궁녀가 된 지 7년만에 인조 반정을 만나 유배를 갔다가 다시 소현세자의 나인이 되어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궁까지 되었다. 더욱 원손의 보모 상궁이 되어 인조 이후 2대까지의 영화를 보장받았다.

 

그녀는 30여년 궁녀 생활의 마지막을 자신의 주인인 강빈에 대한 의리와 충성을 지킴으로써 마감했다. 상궁과 나인 등 정식 궁녀는 기본적으로 왕이나 세자 등 주인의 여자로 간주되었다. 그들의 간통은 무거운 처벌로 처리되었다. 일반적으로 조선은 사형수들을 가을에 처형했다. 그 기간에 국가에 경사라도 생기면 사면되었다.

 

반면 모반대역(謀反大逆) 죄인은 부대시형(不待時刑)을 받았다. 곧바로 처형된 것이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처벌한 것이다. 상궁이나 나인의 간통은 부대시형으로 처리되었다. 절대 살려주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궁녀는 목숨을 걸지 않는 한 성을 단념해야 했다. 상대 남자도 목을 베었으니 남자도 궁녀와 사랑을 나누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간통하여 임신한 경우에는 출산 후 바로 죽였다.

 

그럼에도 궁녀들의 간통은 근절되지 않았다. 출궁한 궁녀들의 성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곤장 100대에 처했다. 출궁한 궁녀들의 성을 금지한 결정적 이유는 비밀 유지 차원이었다. 남자들의 온전한 혈통을 지키기 위한 차원이기도 했다. 그들은 출궁 전에는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출궁 이후에는 여승이 되어 죽을 때까지 정절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사도세자의 지밀 상궁인 수칙 이씨도 궁에서 나갔다.

 

그 전에 궁에서 나온 이모를 찾아가 몸을 의탁했다. 궁에서 나온 수칙 이씨는 스스로 죽을 작정을 한 듯 보였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했다. 수칙 이씨는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되었다. 정조가 궁녀를 보내 조사를 명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수십 년 동안 수절하며 어렵게 사는 궁녀 소식에 얼마나 감동했겠는가.

 

정조는 수칙 이씨에게 종 2품을 내렸다. 궁녀들은 한 방에서 2, 3명씩 생활했다. 궁궐이라는 한정된 공간 때문이었다. 상호 감시를 위해서였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 이유로 동성애가 생겼다. 세종의 큰 며느리 순빈 봉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밀 상궁인 소쌍이 파트너였다. 세종은 궁녀 내은이와 내시 손생이 정이 깊어져 미래를 언약하며 청옥관자를 주고 받은 사건을 참형으로 다스렸다.

 

세조는 나에게는 문()에는 귀성군(龜城君)이 있고 무()에는 홍윤성이 있으니 족히 근심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귀성군은 세종의 손자이자 세조의 조카였다. 귀성군 이준은 18세에 병조판서, 28세에 영의정이 되었다. 귀성군에게 덕중이라는 궁녀가 편지를 보냈다. 사모하는 감정을 절절히 쓴 편지였다. 죽음을 무릅쓴 편지였다. 수양대군의 아이를 낳은 덕중은 후에 소용(昭容)이 되었다.

 

세조의 부름을 받지 못해 외로워진 덕중은 내시 송중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이에 경악한 송중은 이를 세조에게 알렸다. 세조는 덕중을 살려주었다. 다만 덕중을 특별 상궁으로 강등시켰고 내시 송중도 그대로 궁중에서 일하게 했다. 그런 덕중이 귀성군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갈피를 잡지 못한 귀성군은 아버지(임영대군)에게 고백했고 아버지는 다시 형 세조에게 고했다.

 

이번에도 세조는 대범하게 처신했다. 덮어두었으나 다만 덕중을 방자로 강등시켰다. 덕중은 그 이후에도 귀성군에게 편지를 보내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귀성군에게 죄는 저들(편지를 전해준 내시 포함)에게 있다는 말을 했다. 내시 후보자를 화자(火者)라 한다. 효자동은 내시들이 모여살던 화자동이 바뀐 것이다. 은평구 갈현동의 궁말이란 마을은 출궁한 궁녀들이 모여살던 곳이다.

이달의 사락 m******1 2020.03.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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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야사를 기대했다면 시공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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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참 은밀하다.  문고리의 걸린 술 너머에 앉아있는 여인의 실루엣.  어째, 요염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지 모르겠다.   조신하다 보다는 요염하다는 표현이 생각난것은 부제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궁궐에 핀 비밀의 꽃 - 궁녀'. 궁녀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책을 보자 마자 생각났던 것은 '후궁-제왕의 첩'이라는 이슈가 되
"궁녀 - 야사를 기대했다면 시공사가 아니다." 내용보기

 책 표지가 참 은밀하다.  문고리의 걸린 술 너머에 앉아있는 여인의 실루엣.  어째, 요염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지 모르겠다.   조신하다 보다는 요염하다는 표현이 생각난것은 부제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궁궐에 핀 비밀의 꽃 - 궁녀'. 궁녀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책을 보자 마자 생각났던 것은 '후궁-제왕의 첩'이라는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저 이웃들에게 들려오는 소문이 꽤나 야하단다.  그런데, 왜 나는 궁녀라는 글을 읽으면서 후궁을 생각했을까?  궁에 살고 있는 여인네들이니 궁녀라고 해도 될까?  처음은 그랬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궁으로 들어오는 여인들은 모두 '왕의 여자'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말이다.  궁녀는 왕의 여자이기 때문에, 왕 이외의 남자로 궁에서 지내는 사내들은 모두 거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진실인지 알았다.  모두는 아니라도... 그래서 궁에 있는 모든 여인들, 궁녀가 왕의 여자라고 생각 했었다.  드라마에서, 인터넷에서 듣고 본 내용들.  결국은 카더라 통신이다.  내가 알고 있는 궁녀에 대한 이야기는, 야사 속 한 토막 정도가 너무나 크게 부풀어 올라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백제 의자왕의 삼천 궁녀처럼 말이다.  낙화암에 3000명이 빠지면 산을 이루어 절대 죽을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 야사를 궁녀에 대한 진실인 것처럼 알고 있었을까?  그 어느 이야기보다 더한 흥미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궁중 여성이라는 소재.  상상의 영역으로 빠져 오로지 흥미와 상상력에만 맡겨져 버린 역사. 역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가 아닌 제대로 그녀들의 삶이 조명되어진것을 찾을 수가 없다.  어째서 조선왕조 500년 뿐 아니라, 삼국시대 부터 있었던 궁녀들에 관한 기록이 이렇게 전무할 수 있다 말인가?  작가는 이야기 한다.  궁녀는 왕의 신성한 이미지를 사수하기 위한 역린(逆鱗)이라고 말이다. '거꾸로 박힌 비늘' 곧,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금기 사항.  '왕의 역린'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제정신이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왕의 집안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조선의 마지막 궁녀였던 성옥염 상궁이 2001년에 세상을 떠나고, 궁녀에 대한 기록이 전무후무한 지금 신명호 작가는 어떻게 궁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겠다는 말인가?  그것도 다 시들어가던 시절의 궁녀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규태 학자와 김용숙 학자의<개화백경>과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만을 들여다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건 내 생각일 뿐이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궁녀의 실체가 들어난 책,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승정원 일기>, <의궤>를 시작으로 살아있는 궁녀의 이야기를 찾기위해 <계축 일기>,<인현왕후전>, <한중록>등의 궁중 문학 작품과, 역모 사건마다 빠지지 안않던 단골인 궁녀들의 이야기가 실린 <추안급국안>을 통해서 그녀들의 실상을 파헤치고 시작한다.

 

 연산군과 광해군하면 떠오르는 두 여인, 장녹수와 김개시를 시작으로 귀성군을 사모한 세조의 여인, 덕중까지 작가는 궁녀의 자격요건과 출신 성분, 몇살때부터 입궐을 할수 있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뿐 아니라 궁녀와 하녀의 인간관계와 결혼을 했던 유모와 보모 상궁 및 궁녀의 성까지 다루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궁녀에 대한 모든것을 사료로 만들어 내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외국인은 있었지만, 궁녀 중에도 중국과 일본 출신의 궁녀들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수를 잘 놓았던 그녀들로 인해서 조선의 명나라 자수가 전래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하니, 문화 교류의 시작은 그녀들부터 시작이었을 듯 하다.  우리만 그러했을까?  중국에 공녀로 가서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의 사랑을 받아 황제의 궁녀가 되었다 황제의 죽음과 함께 순장되어진 청주 한씨의 이야기는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궁녀는 정말 모두 왕의 여자 였을까?  작가의 의도대로 이야기 한다면 '아니다'다.  우선 궁녀의 충원은 왕이 아닌 각 부서에서 한다는 것이다.  왕의 대전 궁녀는 왕이, 왕비의 궁녀는 왕비가, 후궁의 궁녀는 후궁이, 대비의 궁녀는 대비가, 세자의 궁녀는 세자가 각각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곧, 궁녀의 충성 대상은 왕이 아니라 자신이 소속된 곳의 주인이었고,  궁녀를 뽑았던 이들 역시, 자신들에게 충성을 할 이들을 뽑았다.  어떻게 돌아갈지 알수 없는 역사의 중심의 살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주인에게 등을 돌렸던 궁녀는 철저하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실례로 인목왕후에 궁녀였던 난이는 살길을 찾아 광혜군에게 갔다가, 인조 반정이후 역적의 몸이 되어 사약을 받는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야사'를 생각했었다.  시공사에서 '야사'를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많은 '야사'들이 꿈틀거리면서 흘러 나오리라 생각 했었다.   그런데 그런 '야사'는 그냥 이야기다.  침묵을 강요 받았던 이야기들.  작가는 그녀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출신 성분부터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조직 구조,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았던 성에 관련된 스캔들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서 사라져 갈 뻔했던 이야기들.  심지어 궁녀들의 월급과 재산, 궁녀들의 지위체재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니 내가 알수조차 없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흔한 이야기가 아니라 쉽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이야기.  결코 묻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 <궁녀>. 그녀들은 역린도 궁궐에 핀 비밀의 꽃도 아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던 사람이었다.



d****2 2012.06.13.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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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최초의 커리어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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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는 궁녀는 없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정말 흔히 알고 있는 궁녀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궁녀의 모습'은 자못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과할지도 모를 정도로 이 책 속에 나오는 궁녀는 낯설게 보인다.     그 까닭은 '궁녀'에 대한 사료가 너무 없기 때문이란다. 꽤나 의아스런 대목인데도 사실이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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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알고 있는 궁녀는 없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정말 흔히 알고 있는 궁녀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궁녀의 모습'은 자못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과할지도 모를 정도로 이 책 속에 나오는 궁녀는 낯설게 보인다.

 

  그 까닭은 '궁녀'에 대한 사료가 너무 없기 때문이란다. 꽤나 의아스런 대목인데도 사실이 그렇단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료도 궁녀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이 강조되기 일쑤였단다. 이를 테면, 백제 의자왕 때 '삼천궁녀'도 의롭고 자애로운 왕의 이미지에 먹칠하기 위해 고의로 숫자가 부풀려지고 망국의 마지막 왕이었기에 나쁜 왕으로 그려놓기 위해 악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단다.

 

  허나 삼국시대의 궁녀에 대한 기록은 이것이 전부일 정도고, 고려시대에는 거의 없다시피하단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와서 <계축일기>, <인현왕후전>, <한중록>과 같은 궁중 문학작품과 <추안급국안>이라는 법정기록,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 아주 조금 기록된 것이 있단다. 여기에 고종과 순종 때 실제로 궁궐에서 궁녀생활을 했던 실제 궁녀들이 증언하듯 밝힌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우리가 '궁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모두란다.

 

  그런데 '마지막 궁녀들'을 통해서 알아낸 궁녀의 모습을 곧이 곧대로 '궁녀의 모든 것'이라고 믿기에는 참으로 조심스럽단다. 왜냐면 그녀들의 증언이 직접 경험에서 나온 기록이긴 하지만 그 내용만으로 조선시대 궁녀의 모습을 일반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란다. 500년 역사에 일부분인 끝자락일 따름이지 않느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고, 또 직접 비교하기에도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아주 큰.

 

  그렇다고 앞에 열거한 기록물 등으로 '궁녀의 모습'을 엿보기에는 곤란하단다. 그 까닭이 또 어이없는 것이 그 기록물에 남겨진 궁녀의 기록이 긍정적인 기록은 거의 없고, 부정적인 기록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궁녀는 궁궐 안에서 사는 여자이고, 궁궐의 주인인 '왕의 여자'이기에 궁녀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왕의 여자', 아니 '왕의 사생활'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것도 남들 앞에 자랑스레 내놓기 껄끄러운...그런 내용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한 사정이기에 '왕의 여자에 대한 사생활'을 밝히기에는 사대부들의 체면이 용납치 않았을 테고, 꼭 체면 때문이 아니더라도 '왕의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히, 것도 '왕의 성생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거의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니 아무리 감출 것 없이 몽땅 기록으로 남긴 <조선왕조실록>일지라도 차마 '그것'만큼은 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올려야 한다면, 굵직한 사건인 '역모'에 관련된 일이나 '왕족, 종친 들'에 얽힌 이야기일 것이고, 그것도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대해서만 남겨놓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이 책은 '궁녀'를 다룬 최초의 대중서임에도 '궁녀'에 대해 속속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도 꽤나 '최초'인 것을 인식하여 집대성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긴 하였으나, 애초에 독자들이 기대하는 '친숙한 궁녀'의 이미지는 온데 간데 없고, 매우 낯선 궁녀만을 엿보는 책이 되었다. 그렇다고 허섭한 책이란 것은 아니나 <궁녀에 대한 비밀스런 이야기>가 담기기보다 <통계나 도표> 따위만 잔뜩 늘어놓아 그닥 재미가 없는 책이 되어버린 탓에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든 책이 되고 말았던 듯 싶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라는 사실을 확실히 밝혀두는 바다.

 

  한편 '궁녀의 삶'이 화려한 궁궐에서 살고 있는 것에 비해 그닥 화려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아침부터 밤까지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임금'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매우 전문적인 일까지 처리하여야 했으므로 오늘날로 치면 '커리어우먼(직업정신이 투철한 여성)'이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커리어우먼, '궁녀'. 그녀들의 생생한 궁궐생활 모습이 담기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흔히 알고 있는 궁녀가 아니라 색다르고 낯선 궁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에 뜻 깊은 책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2.06.24.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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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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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저자들이 쓴 서양사 읽다보면, 서양 궁정의 시녀(Ladies in Waiting )를 동양의 궁녀 개념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 우리나라 궁녀에 대한 책을 한번 읽어 보았다.  여성 관련한 역사를 흥미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궁녀에 대해서도 왕의 잠자리 상대,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궁녀 관련한 역사 에세이 류를 보면 저자가 음란서생인가 싶을 정도다.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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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저자들이 쓴 서양사 읽다보면, 서양 궁정의 시녀(Ladies in Waiting )를 동양의 궁녀 개념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 우리나라 궁녀에 대한 책을 한번 읽어 보았다.

 

여성 관련한 역사를 흥미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궁녀에 대해서도 왕의 잠자리 상대,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궁녀 관련한 역사 에세이 류를 보면 저자가 음란서생인가 싶을 정도다. 이 책은 그런 오류 없이 왜곡된 궁녀 이미지를 바로 잡고 궁녀 선출 방법과 등급, 업부 분장, 월급 체계,,, 등등 국가 공무원이자 조선의 전문직 여성이었던 궁녀의 모습을 서술한다. 뭐 마지막 장에 궁녀의 성과 사랑을 다룬 챕터가 있긴 있다만, 저질스럽지 않아 좋다. 확실히 이 책은 궁녀에 대한 허접한 야사담이 아니다. 참고 자료로 공부삼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왜냐하면,

 

이는 곧 영조 이후의 궁녀는 각사의 공노비나 본방의 사노비 출신이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다가 순조 대 이후 공노비가 혁파되면서 양인 출신의 여성들이 충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요컨대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궁녀는 다소의 예외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공노비와 사노비 등 노비 출신의 여성들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112쪽(2005년 구판으로 읽었기에 페이지 수는 다를 수도 있음)  

 

위와 같은 결론을, 저자는 통계 도표 분석을 한 후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눈에 거슬린 부분이 있다. 세종의 후궁이 된 공노비 출신 신빈 김씨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신데렐라 운운한다든가, 왕비인 소혜왕후 심씨가 질투하지 않아서 사랑을 받았다던가,,, 하는 식으로 글의 흐름 상 그리 필요하지 않은 여성혐오(misogyny)적 편견으로 볼 수 있는 논평이 종종 끼어든다. 이 부분이 의아해서 저자 약력을 살펴보았는데 1965년생이셨다. 11년전 이 책을 쓰실 때는 40세 전후였다. 전쟁 이전에 태어난 꼰대도 아니고,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일베도 아닌데 왜 이러시는지 내 입장에서는 심히 의아하다. 나름 재미있고 친숙하게 서술하시려 하신 것 같은데,,, 이런 점은 원고 완성 후 주위에서 피드백 받으면서 걸러낼 수 있는 부분인데, 안타깝다. 

 

본문 42쪽에서 '숙종의 무수리로 들어갔다가 훗날의 영조를 출산한 최숙빈'은 오류다. 최숙빈은 무수리 출신이 아니라 궁녀의 하녀인 '각심이'출신이다. 무수리는 급료를 받기 위해 궁에 출퇴근하여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을 하는 가난한 여성이다. 대개 결혼 경험도 있다.

 

m******n 2016.05.31. 신고 공감 2 댓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