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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리히와 함께 3대 SF 소설가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역작 <영원의 끝>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했다. 그의 이름에 거는 기대도 컸을 뿐 아니라, '영원'이라는 소재에서 오는 인간 본연의 동경심과 '영원의 끝'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흥미를 자극했다. '시간 여행'을 다룬다는 점은 이 책을 읽게 하는 가장 큰 동기였고, 우주와 시공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는 점은 제일 매력적인 요소였을 뿐 아니라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이 소설을 아끼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SF 소설의 거장으로 기록된 데에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이 소설 하나로도 단번에 이해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영향을 받은 작가로 꼽는 세 명에 필립 K 딕과 프랭크 허버트와 함께 아이작 아시모프가 있으며, 그중에서 제일 먼저 언급하는 작가가 아이작 아시모프인 만큼 아이작 아시모프의 의미는 각별하다. 개인적으로는 <영원의 끝>을 덮을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 떠올랐는데, 우주의 스케일에서 인류의 전 생을 다루는 시각이 분명 아이작 아시모프로부터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파피용의 메시지가 굉장히 고무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던 만큼, 영원의 끝 역시 음울한 분위기를 품고 전개되는데도 희망적인 결말을 보여주어 만족스러웠다.
시간 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영원'의 사람들은 어느 시간대의 '현실'에 거주하지 않고 '영원인'으로서 '영원'에 산다. 영원을 건설할 수 있게 된 것은 24세기의 시간장을 발명한 이후, 27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영원 건설 이전의 세기는 원시 세기로 분류되어 이후의 어느 세기에서 현실을 변경해도 원시 세기의 역사는 변경되지 않는다. 영원인은 현실을 변경하여 전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영원을 관리하는 하위 관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실 변경을 실행하는 '기교가'가 있고, 기교가 외에 현실을 조사하고 관리하는 '관찰가'와 현실 변경의 다양한 가능성과 운용을 설계하는 '계산가'가 있다.
최소한의 손실을 일으키는 현실 변경을 수행한다고 해도 전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 배제된 철저한 계산과 수행은 필수적이며 이 때문에 모든 영원인들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함을 교육 받았다. 현실 변경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교가의 이성적인 면모는 더욱 중요한데, 주인공 앤드류는 원시 역사에 특별한 관심을 지닌 기교가로 등장한다. 이성적인 기교가로서 시간인 여성 노위스를 사랑하게 되는 앤드류는 현실 변경 후 노위스가 현실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점을 발견한다. 노위스를 지키기 위해 허용되지 않은 일들을 감행하던 앤드류는 영원의 숨겨진 진실과 어느 영원인도 알지 못했던 인류의 가능성을 알게 된다.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들려준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영원의 끝>은 우리가 줄곧 상상하곤 하는 시간 여행에 대한 여러 모습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시간 여행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이유인 현실의 오류를 정정하고 싶은 마음을 최대의 선으로 보이는 인류의 복지를 목표로 하여 묘사했다. '영원'은 인류에게 최선의 장치로 보이며, 인류가 스스로 구한 선물이자 해답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앤드류가 알아내는 진실을 통해 그대로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며, 고난의 극복이 우리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나 위대한 것일 수 있는지 극적으로 보여준다. 안전하다고 믿고, 무탈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장은 이로울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았을 때에도 달콤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을 통해 영원이 아닌 무한을 꿈꾸도록 아이작 아시모프는 권한다. 희망적인 결말은 아마도 소설이 출간된 1955년 당시의 분위기 상, 1945년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더불어 2차대전에 대한 잘못을 교정하고 싶은 인류의 절망적인 심정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해봐야 60년이 지난 지금으로서는 정말 희망적인 것이 맞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지만,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암울한 현실이 그래도 긍정적인 것이라는 안도감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SF 소설은 허무맹랑한 것일 수도 있지만, 미처 모르고 있는 현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여느 소설들이 공통으로 지닌 존재 가치는 현실적 가능성이다. 그럴 수 있기에 의미 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준다.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의미로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앤드류는 여느 영원인과 마찬가지로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신비로움에 신경을 쓰는 것은 견습생이나 '영원'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하는 짓이었다. (11쪽)
"알겠어. 여하튼 네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배웠던 역사를 잊는 거야.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어. 시간인들이 알고 있는 역사는 현실 변경이 일어날 때마다 바뀌지. 시간인들이야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그리고 각각의 현실에는 고유한 역사가 있는 거야. 원시 역사는 바로 그런 점에서 볼 때 완전히 달라. 그래서 아름답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원시 역사는 원래 존재하던 그대로 남아 있거든. 콜럼보스와 워싱턴, 그리고 무솔리니와 헤러포드는 계속 존재하는 거야." (50쪽)
"우리는 시간 전반에 걸쳐서 그 사회를 연구했어요. 하지만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못 구하더라고요. 그렇게 실패하면 그 사회만이 아니라 후대의 사회 전부가 영향을 받아요. 사실 물질 복제기의 문제에는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없어요. 핵전쟁이나 용납할 수 없는 망상들과 마찬가지예요. 개발에는 충분함이란 것이 없으니까요."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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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는 작가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SF 소설이 특히 유명한데 영원의 끝은 SF 장르에 낯선 입문자라도 거부감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학 드라마면 병원 로맨스물로 밀리터리 드라마면 전투 중에 싹 트는 로맨스물로 만드는 한국 드라마마냥 SF 소설의 탈을 쓴 로맨스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SF 소설과 로맨스 소설 중 SF 소설 쪽에 치우쳐 있는 게 사실이나 내가 본 SF 소설 중에서는 가장 로맨스 비중이 높았다. 노인의 전쟁과 더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던 SF 소설이다. SF 입문자는 물론 매니아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SF 소설 중 하나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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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325페이지, 24줄, 25자.
영원이라는 기관(장치)의 '계산가' 라반 트위셀의 전속 '기교가' 앤드류 할런(95세기 출신)은 482세기에서 노위스 램번트를 만난 다음 그녀에게 빠져서 482세기 담당 계산가인 호브 핀지의 방해를 무릅쓰고 그녀를 빼와서 111,394세기의 대기실에 숨겨둡니다. 대략 70,000세기부터 115,000세기까지는 이상하게도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78세기 출신의 브린슬리 셰리던 쿠퍼를 교육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앤드류는 사고를 치고, 라반이 고백한 내용은 놀랄 만한 것입니다. 즉, 브린슬리가 24세기에 가서 영원의 시간장을 처음으로 발생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영원이 소멸되지 않았으므로, 잘못을 수정할 시간은 있는 셈입니다. 앤드류는 노위스를 데리고 자기가 브린슬리를 보낸 1932년에 도착합니다.
'영원'에서는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즉, 시간과 공간이 따로 관리되기 때문이지요. 영원인이라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영원에 근무한다는 점만 다르고요.
미래에 의해 과거가 조절된다. (영원이라는 걸 만들기 위하여 하는) 조절을 (115,000세기 이후의 사람이) 조절한다. 가능성은 무한의 무한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앤드류는 왜 영원을 소멸시켰을 때 소멸되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121201-121201/12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