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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수비의 기술』(전2권) 서로의 영혼을 채워주는 이들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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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야구란 나와는 먼 스포츠다. 제대로 본 적은 올림픽 국가 대항전 할 때였다. 야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오로지 우리 나라를 응원한다는 명목하에 야구 경기를 TV로 관람했다. 솔직히 말하면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할 줄도 모른다. 그 차이가 뭐냐고 물어본 것도 작년쯤이나 될까. 스트라이크는 배트를 휘두를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공을 못쳤을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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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야구란 나와는 먼 스포츠다.

제대로 본 적은 올림픽 국가 대항전 할 때였다. 야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오로지 우리 나라를 응원한다는 명목하에 야구 경기를 TV로 관람했다. 솔직히 말하면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할 줄도 모른다. 그 차이가 뭐냐고 물어본 것도 작년쯤이나 될까. 스트라이크는 배트를 휘두를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공을 못쳤을때 나는 거고, 볼은 볼을 칠수 없는 위치에 있는 걸 말한다는 것. 그런데 TV의 경기를 봐도 나는 잘 모르겠다. 1회초부터 9회말까지 제대로 본적도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지루한 스포츠. 그 시간에 책을 읽고 말지 하는 생각이 더 강한 사람이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우승을 하고 야구 붐이 일어난 것 같다. 주변에 있는 여자 친구들도 야구장에 꽤 가는 걸 알았다.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정도다. 다른 집도 그런 줄 알았더니 야구 경기만 있으면 경기장에 간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게 책에서의 펠라처럼 지루하기만 한 스포츠인 야구. 『수비의 기술』을 읽으면 야구에 해서 지식이 쑥쑥 올라갈 수 있을까?

 

 

서로의 영혼을 채워주는 청춘들의 우정과 야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이크 슈워츠, 웨스티시 대학교 1학년. 풋볼 선수이자 야구부의 포수인 그는 어느 날 세상이 천재라고 입을 모을 고유하고 빼어난 재능이 있는 시골뜨기 헨리를 만난다. 대학에 진학을 안한다는 그를 슈워츠는 그의 모든 재능을 눈여겨 보겠금 만들어 웨스티시 대학교에 입학하게 만들어준다. 그의 허약한 체격을 강하게 만드는 단련을 시키며 그의 전담 체력단련겸 야구 코칭 스태프가 된다. 그가 바랬던 바처럼 그는 한 번의 실책이 없는 유격수를 만들어낸다.

 

 

헨리 스크림섄더, 왜소한 몸을 하고 있는 그는 마이크 슈워츠의 노력으로 웨스티시 대학교에 들어와 룸메이트인 오웬 던을 만난다. 그가 가져온 유일한 책,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의 『수비의 기술』은 너덜너덜하다. 새벽부터 토가 나올 정도로 운동하는 헨리는 점점 체격이 좋아지고 있다. 야구부에서 또한 유격수 자리에서 실책하나 없는 실적을 거두고 있다. 에이전트에서는 그를 스카웃하기 위해 눈여겨보고 있다. 자신의 찬란한 미래가 보이는 듯 하다.

 

 

오웬 던, 마리아 웨스티시 상 수상자로 장학금의 수혜자. 혼자 지내려고 했지만 어펜라이트 총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룸메이트를 맞아들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야구의 천재라는 헨리였다. 오웬은 동성애자 물라토(백인과 흑인의 혼혈 인종)였다. 역시 야구를 하며, 책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펠라 어펜라이트, 예일대학에 합격증을 받아 놓고 있었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삼십대의 교사 데이비드와 눈이 맞아 너무 일찍 결혼을 하고, 삶의 실패를 한 듯 보이는 그녀는 아버지가 총장으로 있는 웨스티시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나이 육 십에 진정한 사랑을 만난 거트 어펜라이트 총장이 있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설레고 떨림이 이는 사랑을 만났다. 

 

 

이들 다섯 명의 사랑, 열정, 희망, 절망, 상처, 성장, 좌절, 우정 등 모든 삶이 담겨져 있다.

야구 소설인 듯 하면서 또한 캠퍼스 소설인 듯도 하다. 또한 남자들의 진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청춘이라는 배에 올라 탄 선원들의 모습 같기도 하다. 모든 화려한 삶과 화려한 미래가 펼쳐진 듯 하지만 청춘들의 삶은 어느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헨리가 잘못된 송구로 오웬의 머리를 맞췄던 것처럼. 삶의 모습은 알수가 없는 것이다. 단 한 점의 실책도 내지 않아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의 실적과 같아지지만 한 번의 실수로 그는 점점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며 실책의 늪으로 빠져든다. 헨리의 모든 실적이 자신의 기쁨인양 느껴졌던 마이크도 왠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오직 지금 손에 쥔 것에 매달리고 싶었다. 그 소망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사는 동안 인생에서 스쳐 지나간 모든 것이 가슴을 저몄다.  (1권, 399페이지 중에서)

 

 

영혼이란 사람이 처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노력과 실수, 학습과 사랑을 통해 만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라고. 당신은 그 일, 영혼을 만드는 일을 최고의 헌신으로 해내셨어요. 당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요. (2권, 418~419페이지 중에서)

 

 

청춘들은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통을 겪는다.

헨리가 슈워츠에게 의지하고 속해 있다가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들은 격렬한 성장통을 겪어야만 홀로 일어설 수 있는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 처럼. 저마다의 상처와 고민들을 서로의 영혼을 채워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성큼 성장할 수 있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들. 그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야구와 캠퍼스, 그리고 남자들의 우정을 다룬 『수비의 기술』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에릭 시걸의 『닥터스』를 닮았다. 청춘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염원이 생기기도 했다. 그 시절의 풋풋한 느낌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처절한 고민들까지도 이제는 그립기만 한 추억이 되었다. 아픈 성장통이 있었기에, 곁에서 지켜봐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처럼. 그들도 한 뼘 더 성장해 있겠지.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06.14. 신고 공감 11 댓글 21
리뷰 총점 종이책
[수비의 기술]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수비의 기술]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내용보기
1. 서설[1Q84]를 제치고 아마존 올해의 책(Best Books of 2011) 1위 선정. 이 카피를 보고 어떻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키치(Kitsch)성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의 문학적 세계관은 충분히 인정하고 공감하는데 이런 작품을 제치다니! 당연히 관심 증폭이다. 그런데 막상 2권 중 1권을 읽고 나니 미국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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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설
[1Q84]를 제치고 아마존 올해의 책(Best Books of 2011) 1위 선정
. 이 카피를 보고 어떻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키치(Kitsch)성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의 문학적 세계관은 충분히 인정하고 공감하는데 이런 작품을 제치다니! 당연히 관심 증폭이다. 그런데 막상 2권 중 1권을 읽고 나니 미국스럽다(개방과 자유)는 생각과 함께, 저급한 그들 문화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는 듯하여 '허탈'과 '불쾌함'이 치솟았다.
이 정도 수준의 책이 1위라는 것이 얼른 이해도 안 되고, 번역 또한 서걱거리고 촌스러운 게 영판 속았다는 느낌이었다. 어찌어찌하여 출판사의 이 책 편집관계자와 인연이 닿아 불만어린 항의(?)성 의견을 전했더니,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자신은 지금까지 읽어본 문학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품이란다. 으응? 이거 이상하다. 개인적 속성과 취향이 다르다한들 이렇게 다를 수가! 혹시 내 눈과 마음을 가리는 불편이 너무 커서 작품성을 간과해 버린 걸까? 어쨌든 내 감정의 고리에 너무 맞지 않는다고 했더니 2편을 마저 읽어보라고 보내주셨다. 그래서 읽었다. 결론은? 미국적 감각으로 읽으면 확실히 베스트 북이 될 만한 책이라 인정한다. 짜임도 훌륭하고 미묘한 마음의 흐름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문장력도 탁월하다. 그럼 1권에서 나를 흔든 불편은 무얼까? 냉정하게 생각을 한번 해보자.

 

2. 나의 불편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2-1)
잠시 이야기를 돌려 최근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자. 6월 2일 신문기사 한편에 올해로 13회째라는 퀴어문화축제가 소개되어 있었다. 퀴어(Queer)는 성적 소수자를 나타내는 단어이며, 이 행사에 동성애자뿐 아니라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2,500여명이 청계천로를 행진하였다고 한다. 사실 성 정체성(sexual identity)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분야이다. 성적으로 동성에 끌린다하여 개인이나 사회가 비난할 근거는 없으며, 그들 또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추구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커밍아웃 이후에도 TV에서 계속 활동하는 모 연예인을 보면 우리 사회도 사고가 많이 개방되었지 않나 싶다. 그런데 평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책에서 갓 대학생이 된 오웰과 대학총장인 어펜라이트의 리얼한 동성애 과정을 읽어나가려니 온 몸에 두드러기 일어나는 듯이 거부 반응 작렬이다. 이성애자인 나의 마음 이면에 실제로는 그들의 성적 유희에 공감하지 못하는 자연스런 본능이 숨어있음을 깨달았다. 이 불편함이 나의 눈과 마음을 가린 주요 원인이려니 생각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냥 이 정도에서 끝내자.

2-2) 작중 여주인공 펠라의 캐릭터도 씁쓰레한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TV나 영화에서 보게 되는 전형적 미국청소년의 일탈을 보는 듯한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총장의 딸인 펠라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열아홉 살에 수업하려 왔던 서른한 살의 건축가와 눈이 맞아 졸업도 하지 않고 대학마저 포기한 채 로마로 날아가 버린다. 좋은 시절은 금방 지나가고 어느 즈음인가 결혼이 실수였다는 걸 깨닫지만, 이런 경우 미국적인 필연은 약물을 가까이 하고 육신이 망가져 가는 거다.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가? 그러니까 무얼 하기를 원하는가?". 그녀는 아버지가 있는 또래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길 원했고 다시 출발할 수 있길 기대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다. 하지만 그녀의 성적 분방함에 살짝 짜증이 났다. 난 이런 제멋대로인 여성이 싫다. 슈워츠(야구팀 포수)와 너무나 쉽게 잠자리를 하고 동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게 싫다. 미국문화에서는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그저 속물스럽기만 하다. (2권에서도 펠라는 슈워츠와 떨어져 헨리(유격수)와 함께 지낸다). 아버지의 직위에 기대어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대학수업을 들으려고 하는 그런 것도 싫었나 보다.

2-3) 그런데 이 책의 번역마저 짜증을 유발한다. 문맥은 분명 잘 통하지만, 문학적 표현과는 거리가 한참 먼, 다듬어지지 않은 구어체가 많이 서걱거리고 거슬렸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글을 쓸 때 '~한 것이'를 습관적으로 '~게'로 적는다. 바로 이런, 경상도나 제주도의 사람들이 구사하는 축약형 서술(casual style)과 친밀형 번역(intimate style)이 난무하다보니 매끄럽게 와닿지 않았다. 혹시 역자의 고향이 이쪽일까? 솔직히 마음에 안든다. 이런 마음도 편집자에게 전했더니 '원서는 이 번역보다도 훨씬 더 슬랭이 심하다. 이 정도는 순화한 거다. 원서에 맞춰 표현한 거다'라며 극구 역자를 변호 하였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초보번역가라서 그런가싶어 찾아보니 번역한 책이 엄청난 베테랑 번역가였다. 난 그래서 마음이 더 불편했다. 저자의 경력을 고려해 볼 때 혹시 출판사에 번역원고를 넘기는 시간에 쫓겨 자신의 생활언어 그대로 번역했던 게 아닐까 지레짐작해 본다. 어느 부분이 그러한지 가르쳐 달라는데 1권에서 체크한 게 100개를 넘어가는데 무얼 어떻게 지적한단 말인가. 이 책이 정녕 '올해의 책'에 뽑힐 정도의 문제작이라면 역자는 두서너 번 더 문장을 매끄럽게 가다듬어 고객(독자)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노고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권 말미를 달릴수록 익숙해져 그런지 이런 생각은 차츰 희미해졌다.)


3. 이 책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나에겐 버겁은 동성애 코드가 미국에서는 대통령마저 옹호하는 판이니 일단 개인적 불편한 감정으로 치부해 버리고, 문학적 가치 즉, 감정과 이성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에 초점을 맞추면 정말 최근에 나온 책 중 수작(秀作)에 꼽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1권에서는 다섯 캐릭터들의 만남과 위기를 그리면서 마무리 되고, 2권에서는 각 캐릭터간의 미묘한 감정흐름을 교차시키면서 독자를 끌어당긴다. 각 캐릭터를 통해 저자가 그려내고 싶은 메시지는 무언지 잠깐 생각해 보자.
3-1) 전설적 유격수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를 롤모델로 삼고, 그의 책 <수비의 기술>을 금과옥조로 삼아 메이저 리그 스카우터들로부터 주목받는 무결점 유격수 헨리 스크림섄드. 실수를 모르던 그가 던진 공이 잘못 날아가 오웬을 맞히는 실책이 일어난다. 그 이후에 찾아온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Steve Blass Syndrome, 투수가 갑자기, 육체적인 이유 없이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못 던지는 현상)으로 그는 야구를 포기할 정도로 방황하게 된다. 헨리의 좌절과 극복은 여러 캐릭터와 엮히면서 이 책의 큰 줄거리가 되고 카타르시스가 된다. 
3-2) 헨리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발굴하여 코치처럼 조련시키는 마이크 슈워츠. 그는 헨리를 도우고 싶지만 그 자신의 문제 즉, 진학하고 싶은 로스쿨에 모두 떨어진 일과 지독한 무릎통증으로 운동선수로서의 미래마저 불투명한 암울함에 고민한다. 이런 그 앞에 나타난 펠라. 그와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엮일 것인가.
3-3) 학문적으로나 인품으로 존경받는 예순 살의 웨스티시 대학교 총장 거트 어펜라이트. 그는 늘그막에 오웬을 사랑하게 되는 성정체성과, 방황하는 딸 펠라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연민으로 고뇌한다. <모비 딕>으로 유명한 멜빌의 연구로 성공한 그의 행적과 암시는 모비 딕의 늙은 애이해브 선장처럼 무게감 있게 소설을 이끌어간다. 1권에서 혐오스럽게 다가왔던 그의 이미지가 2권에서는 상당히 의미있게 존재의 나타낸다. 2권에서 일어난 그의 죽음은 자살일까 지병사일까? 읽는 자의 몫이다.
3-4) 펠라! 이 돌아온 탕아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씩 앓는 잘못된 사랑의 홍역. 정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돌아오려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에 그녀의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된 판단일까? 나는 아직도 헬라의 캐릭터가 불편하다. 어쩌면 저자는 이런 불편함을 유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비평가들이 크게 의미를 부여했을 장면, 관에서 아버지를 꺼내어 물에 띄우는 그녀의 마지막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할련지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물론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일단 판단유보다.   
3-5) 약방의 감초같은 동성애자 오웬. 아마도 편집자와 나의 견해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나의 입장에서 이성인 레즈비언의 성적 구애는 별 부담이 없었는데, 동성인 게이의 성적 행위에 매우 거북한 마음이었음을 그녀는 이해를 못할 것이다. 이 부분은 생략이다.


실수들의 끈이란, 매듭이 시작되는 그 끝 부분이 아예 없이 완벽하게 묶여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왜'란 없다. '어떻게'는 아주 조금밖에 없다. 소용이 닿는 지혜를 탐색하다 보면, 종국에는 다정함과 절제, 무한한 인내와 같이 더없이 닳아빠진 개념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솔로몬과 링컨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빌어먹을, 당연히 지나가겠지. 혹은 체호프의 "지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 똑같이 지당하다. -2권 296쪽 -

 

4. 마무리.
야구의 본고장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야구를 주제로 한 소설은 일단 열광적 테마가 될 것 같다. 거기에 대학의 젊음이 있고 우정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이성적 사랑과 동성적 사랑이 교차되면서 그 미묘한 절망과 희망의 감정을 교묘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정말로 '백열의 정열 상태' _ 이 책에 나오는 문장 한토막을 그대로 인용해 보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는건 아니나 이런 번역이 싫었다 _ 에 휩싸인다. 완벽함을 추구하던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씩 겪게 되는 역경과 좌절, 그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담담하게 다시 일어나게 하는 줄거리는 정말 인정할 만하다. 1권의 불편한 실망은 2권에서 많이 희석되었다. 혹시 1권에서 내처럼 실망한 독자들은 2권까지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의 진가는 반드시 2권을 읽어야만 알아챌 수 있다. 정리해 보면, 이 소설은 야구를 주제로 남자들의 진한 우정이 그려지는 브로맨스(Bromance) 스포츠 소설이면서, 대학을 무대로한 젊은이 취향의 캠퍼스 소설이며, 조금은 낯설은 게이 소설이라고 하겠다. 어떤 캐릭터에 감정이입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는 거트 총장의 펠라에 대한 부성애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보았으며, 펠라의 마지막 퍼포먼스에 대해 어떻게 의미와 무게를 두어야할 지 고민하고 있다. 전반적 밑바탕 흐름에 깊이 관여하는 모비 딕의 정서나 성적 소수자의 미묘한 감정흐름을 생각한다면 이쪽에 관심있는 이들에겐 아주 좋은 느낌의 책이 되겠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문학적 의미부여와 잘 짜인 플롯, 섬세한 필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개방적 정서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마음은 어쩔 수 없으니 별점은 네 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정도에서 이 책에 대한 정리를 마쳐야겠다.



리뷰 총점 종이책
수비의 기술 1권이 이야기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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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드 하바크의 소설 '수비의 기술'은 일단 독특했다.  지금까지 야구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를 많이 보아왔지만 유격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또 오랜만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근래에는 보기 힘들었던 미국 대학생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독서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에릭 시걸의 '닥터스' 이후로 온전히 대학 생활 그 자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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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드 하바크의 소설 '수비의 기술'은 일단 독특했다.

 지금까지 야구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를 많이 보아왔지만 유격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또 오랜만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근래에는 보기 힘들었던 미국 대학생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독서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에릭 시걸의 '닥터스' 이후로 온전히 대학 생활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소설은 처음 만나는 것 같다.(그 에릭 시걸 또한 이미 타계했으니 세월이 얼마나 흐른 것인가.) 그렇게 독특했고 또 오랜만에 재회하는 세계인지라 솔직히 열광적으로 읽었다. 정말 유격수를 뜻하는 영어 'shortstop'처럼 짧은 보폭으로 진행되는 그렇게 빠르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문체라서 더욱 그럴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수비의 기술'은 무슨 이야기인가?

 

 야구 이야기인가? 주요한 소재이긴 하지만 아니다. 사랑 이야기인가? 그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이 소설은 뭔가 하나가 부족한 자들의 이야기이다. 주요한 등장인물 헨리, 그를 웨스티시 대학으로 데려와 정말 하고 싶은 야구를 마음껏 하게 해주는 슈워츠, 그 웨스티시 대학의 총장 어펜라이트 그리고 그녀의 딸 펠라 그 모두가 똑같이 뭔가가 부족한 그래서 결국엔 충족되지 못한 것 때문에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헨리는 그 자신이 동경하는 최고의 유격수 아파리치오(이 사람은 헨리가 거의 성경처럼 여기는 '수비의 기술'을 쓴 전설의 유격수이기도 하다. 헨리는 이 책을 읽으며 최고의 유격수가 되기를 꿈꾸었으며 지금은 거의 근접한 상태다. 물론 아파리치오는 실제 인물은 아니며 당연히 '수비의 기술' 또한 가공의 책이다.)와 타이 기록을 이루려는 직전에 어이없는 실책을 범한다. 슈워츠는 헨리를 끌어와 야구로 성공시켜 준 장본인이지만 정작 그의 미래는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사랑 역시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 어펜라이트는 진짜 소망은 멜빌 같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논문을 쓸 때는 그리도 자주 찾아오는 '백열 상태'가 정작 소설을 쓸 때는 찾아오지 않아 포기하고 만다. 그 뒤 그는 학문적으로 성공해서 지금처럼 대학 총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여전히 되지 못한 작가에 대해서는 미련을 안고 있다. 그의 딸 펠라는 십대 때 이미 자신의 학교 강사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바로 실패를 하고 그에게서 달아나 웨스티시로 돌아온다. 그녀가 그 어린 나이에 결혼한 진짜 이유는 그녀가 어펜라이트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펠라의 사랑은 정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존재를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결국 그녀의 전남편 데이비스와 현재의 남자 친구 슈워츠를 거치지만 '털보에서 털보로 옮겼을 뿐' 여전히 그녀가 바라는 사랑을 얻지는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들 모두는 각자가 바라마지 않았으나 결국엔 채워지지 못했던 것들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부족함이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헨리의 경우가 그렇다. 헨리는 슈워츠의 미래를 위한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라 여겼던 슈워츠가 그렇다면 자신 역시도 그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계속 실책을 범한다. 그 첫 실책은 아파리치오의 기록에 가장 접근하던 날 자신의 룸메이트이기도 한 오웬의 얼굴에 잘못하여 공을 던져 버린 일이다. 결국 오웬은 그 공을 맞고 병원에 실려 입원하게 되는데 여기서 채드는 아파리치오와 오웬을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사실 이 '접합'의 묘미가 바로 채드 하바트의 소설이 가진 가장 커다란 매력이기도 한데 아무튼 채드는 여기서 왜 아파리치오와 오웬을 헨리의 송구로 묶어두는 것일까? 그것도 좌절의 시초가 되는 송구로 말이다. 그것은 아라파치오와 오웬이 이 소설에서 사실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모두 다다르고 싶으나 오히려 그 남은 거리로 인해 더욱 불안감을 부채질할 뿐인 존재인 '이상(이를테면 플라톤의 '이데아'와도 같은)'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헨리와 아파리치오의 관계는 어펜라이트와 오웬의 관계와 같다. 때문에 어펜라이트와 오웬의 동성애는 사실 다르게 보아야 한다.

 

  즉 아파리치오가 되기 위해 헨리가 야구에 기울이는 온갖 노력과 마찬가지로 어펜라이트의 오웬에 대한 사랑을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왜 채드가 헨리가 결정적으로 아파리치오의 기록에 접근하려던 그 때 어펜라이트 역시 자신이 동경하는 오웬을 보려고 같은 구장에 있도록(그것도 어펜라이트 자신의 치부라 할만한 딸 펠라가 달아나 집으로 오는 그 시간에) 공들여 설계하는지 이유가 드러난다. 채드는 드러낸다. 헨리가 자신의 이상에 근접할 때 어펜라이트 역시 자신의 이상에 똑같이 근접하고 있음을. 결정적으로 헨리의 잘못된 송구는 어펜라이트가 자신의 이상, 오웬과 직접적으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이를테면 헨리가 어펜라이트로 하여금 오웬에게로 데려다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헨리의 그와 같은 실책은 좌절의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가 지금 서 있는 웨스티시 자체가 사실은 좌절의 땅이었다. 그 대학이 숭배하는 멜빌이 작가로서 한창 좌절을 겪다가 떠난 절망의 순례 가운데 찾아 온 곳이 바로 웨스티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망의 순례 여정을 발견한 것은 바로 어펜라이트였다. 그리고 그 발견으로 어펜라이트는 성공한 학자가 된다. 말하자면 멜빌의 좌절이 어펜라이트를 키웠듯이 이제는 헨리의 좌절이 어펜라이트를 키우는 것이다. 결국 멜빌이 어펜라이트가 다가가고자 했던 대상이었음을 볼 때 그 멜빌과 헨리가 어펜라이트에게 똑같은 경로로 기회를 준다는 것은 곧 어펜라이트가 염원하는 오웬이 헨리가 염원하는 아파리치오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아파리치오와 오웬은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헨리의 야구도 어펜라이트의 동성애도 사실은  이상과 현실이 가지고 있는 차이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을 말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동성애적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오웬과 어펜라이트가 처음으로 신체적 접촉을 했을 때 어펜라이트가 보여주는 반응일 것이다. 오웬을 만나기 전까지 평생을 이성애자로 살아온 어펜라이트는 그 자신 열망하긴 하였으나 처음으로 동성과 깊은 신체적 접촉을 나누게 되자 그 낯선 이질감에 당혹스러워한다. 바로 이 당혹감이 오웬과 어펜라이트의 관계가 정말을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은 그렇게 모자람 그리고 거기로 부터 비롯되는 두려움을 그리지만 섣둘리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안고 사는 용기라고 말한다. 1부 밖에는 읽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더 길게 말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그래서 채드 하바크는 첫 머리에다 웨스티시 대학의 응원가를 삽입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 기운을 북돋아요. 나의 친구들이여

용기를 잃지 마요

용감한 우리 하푸너스가

공을 쳐내고 있으니

 

- 웨스티시 대학교 응원가 -

 

 

 

 

 다른 얘기로,

 아파리치오와 오웬이 이렇게 '이데아'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여기의 등장인물 또한 일련의 과정으로 재배치 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이를테면 헨리가 이제 막 필드로 뛰어드는 초심자라고 한다면 슈워츠는 거기서 좀 더 나아간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며 펠라는 슈워츠가 원했던 미래를 한 번 얻었으나 그것이 가짜의 것임을 깨달았다는 의미에서 그 슈워츠 보다 더 나아간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어펜라이트는 예순이라는 나이나 그의 학문적 성과나 총장이라는 직위로 보아 직선의 가장 끝자리에 온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일직선상의 성장과정과도 같다.

 

 무리하게 이렇게 일직선상에 놓아두는 것은 이 소설에 은연중 드리워진 한 가지 맥락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 맥락이란 다름아닌 이것은 바로 작가로서의 채드 하바크 자신에 관한 얘기라는 것이다.

 

 

 채드 하바크는 이 소설 '수비의 기술'을 쓰기 위해서 자그만치 1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문제는 이 소설이 그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작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셈인데 그렇다면 그 10년의 세월은 그대로 그가 이 첫 소설을 세상에 출산하여 진정한 작가가 되기까지 겪은 산통의 과정이라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정말 채드 자신이 이러한 산통의 과정 자체를 소설에 담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 근거를 나는 일련적으로 배열 가능한 등장인물들에게서 찾는다. 즉 이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연속적 흐름이 그대로 채드 하바크가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가 아닐까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이 소설의 주된 얘기가 되는 헨리의 아파리치오 되기는 사실 채드 하바크의 작가 되기의 얘기인 것이다 라고 나는 의심한다.

 

 근거가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그가 할 줄 아는 것이란 수비였다. 그는 짧은 평생 내내 배트에 맞은 공이 튀어 나가는 모양, 각도와 회전을 연구했다. 오른쪽으로 꺾어야 할지, 왼쪽으로 꺾어야 할지, 날아오는 공이 앞에서 높게 솟아오를 것인지, 땅을 쏜살같이 강타하며 굴러갈지 미리 알아내려는 노력이었다. 그는 깔끔하게 공을 잡아냈다. 예외 없이. 그리고 언제나 완벽한 송구를 해냈다. 예외 없이. 그럼에도 감독들이 그를 2루에 세우겠다는 뜻을 거두지 않거나, 아니면 벤치에 버려둘 때가 있었다. 그 지경일 만큼 피골이 상접하고 못 봐주게 처량한 몰골이었다.(p. 19 ~ 20)

 

 이걸 채드가 하버드 재학 시절부터 꾸준히 글을 썼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으면 이 문장을 써 내려갈 때의 채드의 심정이 어땠는지 마치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것 같다. 즉 (물론 전적으로 내 느낌일 뿐이지만) 그는 스스로 자기는 이미 작가로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는 어쩌면 그걸 쓸 때 진짜 했을지도 모를 투정 아닌 투정을 여기다 슬며서 버무려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더하여, 소설가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작가로서 성공한 어펜라이트가 새삼 오웬이라는 남자에게 끌리게 된 계기도 여기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어펜라이트가 오웬에게 끌렸던 것은 그의 에세이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젊은 청년의 에세이에 녹아든 우아함과 광범위한 독서에 감탄했다.(p.142)

 

 채드는 오웬에 대한 어펜라이트의 매혹이 무엇보다 텍스트적이었음을 강조한다. 이렇게 보면 소설에서 내내 보여지는 오웬의 묘사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채드는 오웬을 그 누구보다 박학다식하며 책벌레로 묘사한다. 그는 야구 경기를 할 때 조차 비글호 항해기에 빠져있다. 그의 말투 역시도 구어체 보다는 문어체에 가깝다. 헨리와 처음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가 사귀고 있는 애인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보라. 그는 마치 논문을 쓰듯이 대화를 한다. 채드가 이렇게까지 묘사하고 있으니 여기엔 분명 의도가 있다. 난 그 의도가 바로 오웬이 하나의 텍스트적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독자들이 그를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종의 살아있는 텍스트, 의인화된 텍스트로 봐 주길 원해서 말이다. 왜 채드는 구태여 오웬을 일종의 의인화된 텍스트로 만드는 것일까? 그 오웬이 가장 작가적 정점에 이른 어펜라이트의 애정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그 이유는 드러난다. 오웬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베아트리체라는 것을. 베아트리체는 파우스트의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어 줄 마지막 남은 이상적인 퍼즐 조각이었다. 어펜라이트에게 그 퍼즐 조각은 쓰지 못했던 소설이다.

 

   그는 왜 오웬에게 휘트먼을 읽어주려 했던 것일까? 휘트먼은 살아 생전 거의 평가를 받지 못했던 시인이다. 즉 그 휘트먼은 소설가가 되지 못했던 어펜라이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웨스티시라는 그 좌절의 땅에서 오웬은 그러니까 어펜라이트가 정말은 쓰고 싶었던 바로 그 소설, 그 완성된 이상적인 텍스트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펜라이트는 자기도 그 이유를 모른 채 마구잡이로 빠져드는 것이다. 즉 어펜라이트가 오웬에게 끌리는 이유는 동성애적 욕망 때문이 아니다. 사실은 멜빌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기에 가져버린 소설가에로의 미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베아트리체를 욕망했던 파우스트도 그 바탕엔 결국 미련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어펜라이트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오웬을 통해 미처 쓰지 못했던 소설을 다시금 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채드는 예리하게도 오웬과 어펜라이트가 첫 깊은 신체적 접촉을 하는 순간 19세기 빅토리아 소설처럼 그것을 묘사한다. 소설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 시기를 말이다. 거기다. 어펜라이트와 오웬의 만남 또한 텍스트 읽어주기로 채워나간다.

 

  그렇게 채드는 어펜라이트의 사랑을 작가가 완벽한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빗대어 얘기하고 있으며 바로 그 욕망은 작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수비의 기술'을 썼던 그 자신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수비의 기술'은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모노로그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헨리가 웨스티시 대학에서 처음 보게 된 멜빌 동상의 묘사가 흥미롭기 그지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멜빌은 작가인 채드 자신이 가장 도달하고 싶은 이상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동상이 서 있는 웨스티시가 사실은 멜빌이 작가로서 좌절하고 있을 때 방문한 곳이며 그래서 멜빌의 글로 넘치는 웨스티시 자체는 좌절의 글쓰기 현장이라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이제 초심자 작가로서 온 헨리는 멜빌 동상에게서 이상한 친근함을 느끼는데 그런데 그 동상의 실상은 이랬다.

 

 동상은 교정을 등지고 서 있는 바람에 몸 뒤에 채찍질 자국처럼 나 있는 균열과 균열 안에 가득 찬 이끼를 행인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 때문에 헨리는 처음부터 뒤죽박죽인 제 머릿속 고민까지 겹쳐서 이 동상이 몹시 고독한 인물로 느껴졌다.(p. 47)

 

 이 멜빌의 동상 자체가 채드 하바크가 글을 쓰면서 느낀 작가의 모습 자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게 늘 도달하려고 헨리처럼 어마어마하게 노력하지만 균열은 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터지고 또 그 균열이 주는 한계 때문에 두려움에 젖어들어 결국은 고독하게 빈 페이지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작가의 운명을 그는 바로 여기에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채울 수 없는 모자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채드 자신이 작가가 되기위해 나아갈 때 마다 느꼈던 균열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말하자면 '수비의 기술'은 이렇게 작가 자신의 내면과 맨 위에서 말했던 외면의 얘기가 절묘하게 접합된 소설이다.

 

 앞서도 이 소설의 가장 커다란 매력은 '접합'이라고 말했다. '접합'이란 바깥의 세상과 내면의 움직임을 절묘하게 배합시키는 것을 말한다. 채드 하바크는 그것을 자주 보여주는데 이를테면 어펜라이트가 오웬을 보려 야구장으로 갔을 때 거기 헨리를 스카우트하려고 살펴보고 있던 스카우터와의 얘기가 그렇다. 스카우터는 헨리를 스카우트 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그건  또 어펜라이트가 오웬을 유혹 그렇게 스카우트 하는 것과 접합되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접합'은 교착된 평행세계를 드러낸다. 이 소설은 두려움을 지우는 소설이 아니라 그것을 안고 가는 가운데 용기를 주는 소설이라 했다. 바로 그 용기가 접합을 통해 결부되어진 이면의 세계를 바라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이 접합에 대한 수수께끼는 2부를 다 훑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 그럼, 2권에서 또... -

 

 



l****1 2012.06.19. 신고 공감 4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수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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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야구에 비유한다면 ...그렇다면 인생은 공격인가 수비인가 세상이 아름답고 자신만만하게 뜻대로 되고 있다면 5회초 10 대 2로 리드하는 절정의 공격이겠고 반면 취직도 안되고 돈도 없고 여친에게서마저 버림받았다면 아마도 8회말 5점차로 뒤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인생이란 길게 가는 마라톤이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라서 어느 지점에서 뒤집어질지 또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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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야구에 비유한다면 ...그렇다면 인생은 공격인가 수비인가

세상이 아름답고 자신만만하게 뜻대로 되고 있다면 5회초 10 대 2로 리드하는 절정의 공격이겠고 반면 취직도 안되고 돈도 없고 여친에게서마저 버림받았다면 아마도 8회말 5점차로 뒤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인생이란 길게 가는 마라톤이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라서 어느 지점에서 뒤집어질지 또는 언제 무너질지 알 수가 없는 경기란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삶이 왕왕 쫓기는 지고 있는 경기의 수비같다는 그래서 허겁 지겁 현재를 방어하기도 급급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만 그런 걸까)

 

인생이 처한 위기의 상황 그 수비의 입장에서 삶을 바라 본 이 책에는 야구가 배경이자 소재로 그리고 나가서 인생에 대한 심오한 교훈을 주는 주제로 다각도로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과 그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 인생에 있어서 수비적인 처지에 놓여 있다

천재 유격수로 창공으로 막 솟아오를 듯한 엄청난 활약을 보이다가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는 플레이에 자신감을 상실하는 악성심리증세에 빠지는 헨리에서부터 마성의 게이인 오웬에 대한 생전 처음의 동성애로 고전하는 60대 이성애자 대학총장 어펜라이트 까지 모든 사람들은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공세를 막는 수세의 국면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펜라이트를 반하게 만든 오웬도 후반부에선 운명에게 주도권을 상실한다

어디 인생이 만사여의하게 뜻대로 풀리는 일이던가

그러므로 이런 등장인물들의 삶의 고난들은 그 자체가 리얼리티를 갖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삶이란 무겁고 벅차며 그리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이런 공감의 전제를 하고 책을 읽으니 등장인물들의 행보와 그들이 가는 감정의 노선이 보다 쉽게 이해되고 몰입이 되며 동화될 수 있었다 비록 게이 코드가 나오고 그것도 60대 할아버지와 21세 소년의 러브 스토리인 것이 몰입에 부담이 되었지만

우리 솔직해지자 인생이 즐거워 사는 사람이 전체의 인구중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그런 사람을 길가다 만나게 될 확률은 핏자헛에 치즈크러스트 피자를 시켰는데 잘못 배달된 하와이안 콤비 피자를 먹다가 5억짜리 다이아몬드를 피자도우에서 씹을 확률과 같지 않을까

모두들 삶이 고통스럽고 불쾌해도 감수하고 그럭저럭 메우며 사는 것이 아닐까

모두들에게 삶이란 어쩔 수 없어도 그냥 억지로 참고 넘기며 겨우 겨우 넘기는 달력이 아닐까

시간이 점 점 더 흐를수록 나는 삶이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이와 비례해서 점 점 삶에 대한 희망과 개선 가능성을 버리는 길로 접어 들고 있다

어디 나만 그럴까 물론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어디까지나 소수이고 대다수는 수시 1차 응시가 아니라 5차 응시로 들어간 대학처럼 차차차선으로 살고 있다는 불편한 관찰이 나의 요즘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도 그리 낙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경제적으로 불우한 사람은 그것 때문에 그리고  잘 사는 부모를 둔 사람은 다른 문제로 그리고 사랑에 휩쓸려 자아의 결단을 상실한 사람까지

모두 고민과 결함을 지니고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 수비에 그리고 공격에 힘을 교대로 쓰며 고군분투 하고 있다

그 자체로 야구는 메타포의 성공적인 예가 되어 이 소설의 테마를 함축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대학 생활을 하는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의 주고 받는 그 어떤 것들

그 화학적인 주고 받음의 반응들의 흐름 속에서 영혼을 깎고 자아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상처를 타인에게 주기도 하며 9회말을 향애 끊임없이 구보하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그림들

모두들 자신만의 문제라는 인생의 공격 앞에 취약하면서도 최선의 수비 기술로 자신들의 생을 살고 있는 이 소설의 관점은 그러나 그리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인생은 파울이 허용되는 야구가 아니며 야구보다 더 가열차고 엄혹한 것이라고 인생의 험난한 장애앞에 좌절하는 인물들의 생활을 보여 주며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삶의 터프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생은 수비가 계속되는 것만이 아니라 공격으로 전환되어 득점을 올리는 일도 분명히 기다리고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작가는 버리지 않늗다

마침내 주인공 헨리의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는 무거운 짐이 부서지고 사라지는 결말을 암시하며 영혼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훈련과 교육과 수고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감동적인 주제로 인생의 한 단계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삶을 무언 속에 축하한다

어펜라이트의 죽음이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는지 그것이 의아했으나 실제 삶은 어떤가 그보다 더한 갑작스러운 퇴장이 비일비재한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어펜라이트의 삶도 주인공들의 삶을 이루는 한 조각으로 그들의 성장과 전진에 분명 기여한 바가 있으리라

 

분명 야구는 매혹적인 스포츠이다 그리고 인생은 야구만큼 승부가 힘들게 겨루어지는 경기이다

그 인생이라는 야구에서 스스로 패하여 물러서는 사람이 아닌 도전하고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이 소설은 암묵적인 찬사를 헌정한다

싸워 싸우라고 인생이란 힘든 거야 하지만 힘들기에 참아낼 가치가 있잖아

비록 선택받은 그리고 자유의사에 의한 삶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삶이란 승부를 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그리고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명심하고 싶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인생의 4번타자이고 선발 투수니까

9회말 투아웃에서 신음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어 내가 소설가인 것 같잖아)

리뷰 총점 종이책
'영혼을 만드는 기술' 문학을 사랑하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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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만 보면 그냥 야구소설이었다. 야구팬인데도 야구소설이 어떻게 880페이지나 되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런 궁금증으로 <수비의 기술> 2권까지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호기심'. 이 책은 나에게 호기심을 유혹했으며 나는 어여쁜 여대생에게 홀린 듯이 읽어나갔다.   야구에서 소설이 나온다면 몇 가지 예상되는 스토리가 있다. 야구 못하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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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만 보면 그냥 야구소설이었다. 야구팬인데도 야구소설이 어떻게 880페이지나 되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런 궁금증으로 <수비의 기술> 2권까지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호기심'. 이 책은 나에게 호기심을 유혹했으며 나는 어여쁜 여대생에게 홀린 듯이 읽어나갔다.

 

야구에서 소설이 나온다면 몇 가지 예상되는 스토리가 있다. 야구 못하는 선수가 점점 발전하여 나중에 메이저리그에서 이름을 날린다는 스토리. 불운의 선수가 나중에 코치 혹은 감독이 되어 최하위 팀을 몇 년 안에 우승시키는 스토리. 예상했던 전자와 비슷하게 스토리는 흘러갔다. 초반에 든 생각은 '역시 뭐 그런 내용이었군.'이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중독되고 있었다. 소설 캐릭터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저마다 안고 있는 불안적인 요소들과 간단하지 않은 미묘하게 흘러가는 스토리가 단번에 빠져들게 했다. 오랜만에 '장'편소설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어버렸다.

 

야구선수라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키와 마른 몸을 가진 헨리. 그런 몸으로 휘두르는 방망이에 공이 맞을리는 없었지만 유격수 수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우아했다'. 헨리가 버티는 수비 공간에 굴러오는 공은 모조리 아웃이 됐다. 하지만 수비만 잘한다고 해서 눈여겨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런 팀에서 그냥 수비만을 열심히 했을 뿐이니까. 우연히 웨스티시 대학 야구부 포스 슈워츠에 눈에 띄었다. 수비 모습에 반한 그는 헨리에게 멋진 제안을 하나 한다. 자신의 야구부에 들어오라는 것. 대학 진학에 상상도 못한 그에게 로또 같은 제안이 온 것이다. 그것도 돈 한 푼 내지 않고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헨리는 웨스티시 대학 야구부에 들어가고 슈워츠는 진정한 야구선수로 만들기 위해 정신적 지주이자 트레이너가 된다.

 

<수비의 기술>의 시작은 깔끔하다. 마치 선수 입장이라도 하는 듯이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소개한다. 과연 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펼쳐나갈지는 모르지만 이것으로만 두 권의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등장인물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헨리의 룸메이트이자 같은 야구부 오웬. 내성적인 헨리의 둘도 없는 친구다. 항상 정리하는 걸 좋아하고 독서가 취미다. 야구 경기 중 덕아웃에서도 책을 본다. 한 가지 특별한 게 있다면 게이라는 것.

 

그리고 <수비의 기술>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단 하나의 인물이 있다. 이 학교, 웨스티시 대학의 총장 어펜라이트. 사려 깊은 매너와 편안한 성격, 누구든 그와 얘기를 나누게 되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총장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총장의 딸. 도무지 알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 펠라. 이른 나이에 유부남과 눈이 맞아 아빠를 떠난다. 엄마는 병으로 죽었고. 그런 딸을 총장은 항상 그리워했다. 그러나 어느 날에 그녀는 아빠에게 되돌아온다.

 

흠.....어차피 이 리뷰를 읽고 이 책에 호기심을 가질지 그렇지 않을지는 내가 판단할 순 없다. 다만 내 솔직한 감성을 이렇게 쓰는 것이기에 <수비의 기술>에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건드려야겠다. 뭐 그렇다고 이 글을 읽고 그 책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면 그건 100% 장담컨대 오만한 것이리라. 어쨌든 이 소설 내용 중에 어펜라이트라는 인물을 다루지 않을 수 없어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모비 딕>에 매료되어 당시 별 인기도 없던 멜빌에 대한 연구를 한다. 연구에 대한 논문도 썼고 자신이 총장에 있는 대학교에 <모비 딕> 동상도 세울 정도였다. 총장이란 지위를 이용하여 목에 힘주고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그런 바보 같은 총장은 아니라 그 반대였다. 학생들의 의견을 항상 귀 기울였고 집도 소유하지 않는 검소하고 욕심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가족이라고는 딸 하나가 있었다. (그의 부인은 딸이 어릴 적에 병에 걸려 죽었다.) 아빠의 동의도 없이 시집간 딸이 다시 아빠를 찾아왔다. 그렇게 그에게 행복이 피기 시작한다.

동시에 헨리는 야구 선수로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 타율도 4할이 넘어섰고 수비에서는 더욱 완벽했다. 메이저리그 스타우트들이 그의 경기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악송구 하나가 덕아웃에 있던 룸메이트 오웬의 얼굴을 강타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몇 년 동안 단 한 번의 수비 실수를 하지 않아 기록을 달성한 그에게 엄청난 사건이자 시련이 시작된 것이다. 오웬은 입원했고 점점 나아져갔다. 어펜라이트는 오웬에게 지극정성을 쏟으며 그를 보살폈다. 한 대학 총장이 평범한 남학생에게 그렇게 친절히 대한다니. 총장이 너무 친절해서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차..총장은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딸까지 있는 총장이 어떻게?라고 생각했는데 총장은 동성애자였던 것이다.(오웬은 원래 동성애자) 그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이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총장은 갈등한다. 자신이 진정 오웬을 좋아하는 것인지 자신이 동성애자가 맞는 것인지 말이다. 그 망설임을 눈치 챈 오웬은 떠나려하자 총장은 진정으로 그를 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총장으로서의 지위적 갈등, 딸의 아버지로서의 갈등, 세상에의 시선으로서의 갈등이 그에겐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그가 쌓아온 업적이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한 학부모로부터 제보를 받고 조사에 착수, 학교측에서는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압박을 받는다. 갈등을 하다 물러나기로 결정했지만 그는.....그는 갑작스런 심장 마비로 인해 죽고 만다.

 

 

<수비의 기술>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헨리다. 그는 점점 발전하고 팀은 승승장구하여 지역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헨리의 수비는 대기록으로 남고 여러 메이저리그 팀들에게 구애를 받는다. 그런데 악송구 하나, 그 송구 하나 때문에 야구 인생에 위기를 맞게 된다. 친구 오웬의 얼굴에 맞힌 것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밸런스를 잃은 것인지는 몰라도 그 다음부터 제대로 송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좀처럼 극복하지 못한 그는 결국 야구를 포기하고 만다. 그 사이 웨스티시 대학 야구팀은 결승까지 오르고 우승까지 단 한 경기만을 남겨두게 된다. 말없이 팀을 떠난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야구를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전체적 큰 줄거리다. 그런데 난 헨리보다 어펜라이트가 마음을 끌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그가 내 가슴을 울렸다. 물론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순 있었다. 야구소설에 이런 총장을 넣는 것 자체가 어딘가 맞지 않지만 작가는 보란 듯이 넣었고 독자인 나는 보란 듯이 감동했다. 맞지 않는 내용에 알 수 없는 감동. 이런 게 바로 소설을 읽는 맛이 아닐까?

 

 

요며칠 시간이 허락하면 <수비의 기술>을 미친 듯이 탐닉했다. 어제 기차에서 다 읽어버렸고 혼자 눈물을 찔금 흘렸다. 마지막 장면을 읽는 독자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이 책을 대충 읽었거나 이해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어펜라이트 총장이 죽었는데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을쏘냐?

 

 

참 주절주절 말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내 블로그라 할지라도 리뷰를 이렇게 두서없이 쓰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수비의 기술>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많은 영감과 감성을 불러 일으켰고 당분간은 이런 책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싶다. 긴 여운을 곱씹으며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리고 이 말을 하고 싶다.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한 번 읽어보라고.'

 

 

마지막 나를 울렸던 문구를 적어본다.(오웬이 어펜라이트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

 

 

 

"당신이 한번은 말했지요. 영혼이란 사람이 처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노력과 실수, 학습과 사랑을 통해 만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라고. 당신은 그 일, 영혼을 만드는 일을 최고의 헌신으로 해내셨어요. 당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요. 그것이, 당신의 죽음이 우리에게 그토록 힘겨운 이유예요. 평생 걸려 만들어진 당신 같은 영혼이 존재하기를 멈추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에요. 당신과 이곳에서 함께하지 못한다니, 우주에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요.

하지만 거트, 당신의 영혼은 여기 물론 존재하고 있어요. 당신께서 당신의 영혼을 너무나 아낌없이 남겨주신 까닭이지요. 당신의 책에, 이 학교에,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에 당신의 영혼을 존재하고 있어요. 그 점에 우리는 언제까지나 감사를 드릴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영혼만큼 근사했던 당신의 육신도 그리워할 거랍니다."

 

d*****1 2013.03.0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수비의 기술』-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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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니 지금껏 나는 완전무결함을 꿈꾸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해내든 완벽해야하고, 작은 흠집하나 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실제로 나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노력은 그저 노력일 뿐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으니… 결국에는 흠집 나고, 상처받고, 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삶을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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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니 지금껏 나는 완전무결함을 꿈꾸며 살아왔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해내든 완벽해야하고, 작은 흠집하나 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실제로 나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노력은 그저 노력일 뿐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으니… 결국에는 흠집 나고, 상처받고, 또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이름의 존재들이 겪어가는 삶인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완전하지 못함에, 그리고 무결하지 못함에 다시 -받아서는 안 될, 그럴 필요조차 없는- 상처를 받으며, 결국에는 조금씩 지쳐가며 잡을 수도 있었던 것들을 손에서 하나씩 놓아 버리고는 말았다. 이런 허무한 과정들은 전반적인 삶 속에서는 물론이고 사소한 물건에게까지 그대로 반영되고는 했다. 새로운 물건이 나에게 들어올 때면 새것이라는 사실 하나로 처음에는 조심히 다루었지만, 결국에는 흠집이 나고 헌것이 되어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그 물건을 점점 나의 관심에서 내려놓는 것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실수도 할 수 있고, 흠집이 날수도(혹은 낼 수도)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인데 그 자체를 부정만하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상과 나를 그리며 그런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분명 아니다. 삶이라는 불완전, 그 자체를 부정하며 살아왔던 나 자신을 『수비의 기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만나게 된 것이다. 거창하게 삶과 완전무결함, 그리고 불완전 등의 말들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수비의 기술』이라는 소설 그 자체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삶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그려냈으니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즐거움 후에 다가올 많은 생각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비의 기술』은 제목에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듯이 야구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야구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를 섞어놓았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고, 그 시작만큼이나 즐거운 마음, 신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시작부터 야구를 하는 모습들이 그대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단순한 야구 이야기만 담은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야구 소설이었다. 야구 이야기로 시작되고, 계속해서 야구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펼쳐지고, 마지막 장면까지도 야구를 하는 모습들이 펼쳐지니, 야구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미 이 작품을 읽어본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이 작품을 그냥 그렇고 단순한 야구 소설이라고만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단순한 야구 소설을 뛰어넘는다고 해야 할까?! 그 사실이 그저 야구에만 집착했던 나를 살짝 당황스럽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 결코 신나는 야구이야기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처음 이 작품에 가장 많이 끌렸던 이유가 야구를 소재로 했다는 사실에 있었지만, ‘채드 하바크’라는 이 작가가 야구를 소재로 사용했다는 그 이유 또한 그에 못지않게 나를 끌어당겼던 것이다. 여럿이 함께 하지만 그러면서 외롭기도한 스포츠가 야구이며, 뛰어난 선수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슬럼프에 빠지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 작가가 야구를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였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그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해 봤다면, 작가의 이런 이유로 채택된 야구와 이 소설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말이다. 잊고 있었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되니 잠깐 느꼈던 당황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이 책이 가진 진짜 매력에 깊이 빠질 수 있었다.

 

 볼품없는 체격의 유격수 ‘헨리 스크림섄더’-.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수비하나만큼은 끝내주게 한다. 타구의 방향을 예측해서 미리 수비위치를 선정하고, 그 누구보다도 강한 송구로 아웃을 잡아낸다. 그럼에도 그의 왜소한 체격 때문에 특별히 누군가의 시선을 끌어당기지는 못한다. 대학진로 또한 야구와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마이크 슈워츠’ 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헨리의 재능을 간파하고 자신의 학교, 웨스티지 대학으로 그를 스카우트를 하게 된다. 헨리는 슈워츠와 함께 야구를 하면서, 그의 도움으로 이제는 타격까지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여기까지만보면 그저 재능은 있지만 평범하게만 보이던 한 선수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상당한 실력의 선수로 거듭나게 되는 평범한 야구소설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그저 올라가는 길만 보이던 헨리가 어느 날 갑자기 제대로된 송구를 할 수 없게 되고, 슈워츠는 지원한 로스쿨에 하나씩 떨어지게 되면서 꿈꾸던 미래가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헨리와 슈워츠 외에도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웨스시티 대학교 총장 ‘거트 어펜라이트’와 그의 딸 ‘펠라’, 헨리의 룸메이트이자 거트와 사랑을 나누는 ‘오웬 던’이 그들이다. 그들 역시 헨리와 슈워츠가 그렇듯 자신들만의 상처로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다섯 사람들의 삶-삶 전체로 보면 아주 짧은 순간들일 것이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수비의 기술』이다.

 

 야구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보면서 투수가 아닌 ‘유격수’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처음 접해보는 것 같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투수가 그 중심에 서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유격수라니… 분명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 물론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야구에서 투수를 중심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그를 뒷받침해주는 수비의 힘이다. 그리고 그 수비를 모두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유격수이다. 헨리가 그랬던 것처럼, 유격수라는 위치에서 그의 뜻대로 내야-때론 외야까지-를 지휘할 수 있다면, 그 자신감은 야구를 지배하듯, 인생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나 청춘-혹은 젊음?!-이라는 이름의 유격수라는 위치에 있다면 더더욱… 하지만 소설에서 그렇듯, 현실에서도 뭔가를 지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나 그렇게 믿었기에 그가 맞닥들이는 실패(혹은 현실)는 크나큰 좌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비의 기술』의 그들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격수에게 다가오는 불규칙바운드처럼, 우리들의 삶에 다가오는 불규칙바운드를 어떻게 수비하느냐는 것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우리는 바로 『수비의 기술』에서 그런 수비의 기술 중 하나를 만나볼 수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개인의 삶 모두에게 해당되는  정답-어쩌면 삶에 해답을 찾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자신의 삶을 풀어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몫일 것이다.

 

 흔히 야구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더라도 언제 뒤집을지 모르는 것-9회 말 투아웃에 역전타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이 야구이고, 반대로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더라도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것이 야구이다. 사람들은 그런 극적인 경기를 보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론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다고도 한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야구, 그리고 그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어쨌든 경기는 끝나봐야 아는 것이고, 우리들의 삶도 결국에는 끝나봐야 아는 것이다. 또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또 언제 어떻게든 될 수 있기에 더 흥미진진한 것이 우리 삶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는 의미들은 저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한 가지만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헨리, 슈워츠, 펠라, 오웬, 그리고 거트가 그랬고 또 앞으로 그러하듯이, 우리 역시도 아직은 삶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서 충분히 드라마적인 요소를 찾아내며 그 자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누구든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그 어떤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 어떤 모습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이 전해주는, 그 누구도 얻어낼 수 있는 의미 중 확실한 하나가 아닐지…

 

 역동적인 젊음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수비의 기술』은 솔직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하는 그런 마음까지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핵심이 되는 말을 콕 집어 전달한다. 누군가의 첫 소설이라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게 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심각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쉽게 술술 풀리게 하면서도, 그 기본적인 사실들은 결코 잊지 않게 만든다고 할까. 이정도 힘이라면 ‘존경받는 세계 작가 23인의 여름휴가 추천 도서’라는 문구나 ‘2011 아마존 올해의 책 1위’라는 문구도 필요 없을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세상에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정말 괜찮다 싶은 책에는 많은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저, 추천하니까 꼭 읽어보라는 말 외에 그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삶이라는 불확실 속에서 감동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이 소설이라고 한다면, 그 감동 속에서 나를 찾아가며 내 삶의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소설이 『수비의 기술』이 아닐까?! 그 멋진 시간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b****j 2012.06.1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유격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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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는 인생과 드라마가 없겠냐마는, 빼어난 기술과 노력이 한 명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팀스포츠는 유난히 성장과 감동 코드에 더 잘 맞아들어간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약팀이 너무 강한 팀을 만나, 하지만 그들이 똘똘 뭉쳐 불가능해 보이는 승부의 향방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등의 이야기는 사실 익숙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 정도다. 그럼에도 또 보게 되는 것이 스포츠이고,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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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는 인생과 드라마가 없겠냐마는, 빼어난 기술과 노력이 한 명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팀스포츠는 유난히 성장과 감동 코드에 더 잘 맞아들어간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약팀이 너무 강한 팀을 만나, 하지만 그들이 똘똘 뭉쳐 불가능해 보이는 승부의 향방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등의 이야기는 사실 익숙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 정도다. 그럼에도 또 보게 되는 것이 스포츠이고, 스포츠를 통한 등장인물들의 성장에 감동을 받게 되지만.


  뭐, 이건 시즌이 시작되면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혹은 비가 오지 않는 이상 매일매일 치러지는 야구 경기를 끊임없이 챙겨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심정이다. 언제나 9회말까지 공수교대를 하며 이닝을 이어가고, 선발 투수는 로테이션을 따라 일정하게 나오며, 또 타자들 역시 매일매일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되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서 또 치고 달리고 홈플레이트를 밟아 점수를 내거나 혹은 그 전에 기회를 모두 날려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이 각본없는 드라마처럼 승리의 순간도 패배의 순간도, 짜릿한 역전승의 기쁨도 혹은 허탈한 역전패를 당하기도 하는 등 예측을 할 수 없는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수비의 기술'일까? 작가 채드 하바크는 왜 투수 대신 유격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세 개의 스트라이크(Strike)와 네 개의 볼(Ball)로 승부를 그려내야 하는 투수, 하다못해 그 투수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포수가 아닌, 유격수였을까? 문득 '유격수' 헨리 스크림섄더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소설은 아무리 야구란 투수 놀음이라 한들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새삼 혼자가 아닌 아홉 명이 서 있는 필드를 바라보게 된다. 투수의 뒤를 지켜부는 수비수들을 한 명 한 명 뜯어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실책이 경기의 흐름을 확 뒤바뀔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역시 한 명 한 명 모두가 소중한 법이니까.




  유격수는, 딕슨의 야구사전에 따르면 애초 Short fielder라고 했으나 외야와의 중계플레이가 이뤄졌을 때 짧은 중계플레이를 뜻하는 Short라는 단어와 잡고 멈춘다는 Stop이 합쳐져 Short stop이라 했는데 1860년대 부터 그렇게 불렸으며 그 위치에서 행해지는 것을 잘 표현하기 위해 Short stop이라고 했다.

  유격수는 느린 땅볼을 대시하며 들어와 잡아내기도 하고, 외야와 내야의 경계까지 깊은 수비를 한 다음 강한 어깨를 이용해 송구를 한다. 수비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관이 되어 수비 위치를 이동시키는 것도 주로 유격수의 역할이다. 6-4-3으로 연결되는 더블 플레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려한 수비 중 하나다. 불규칙적인 바운드로 인해 공이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튀어오르는 것까지 대비를 해야 한다. 여기서 종종 발생하는 실책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점수를 내느냐 내지 못하느냐, 홈에서의 격전에서 빠르고 정확한 송구로 이어지는 중계 플레이는 필수적이다. 이 모든 것을 유격수만 하는 건 아니지만, 유격수만 중요한 포지션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쯤되면 유격수를 주인공으로 할 만하지 않을까?─하고 헨리 스크림섄더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꼬맹이는 공을 쫓아 달려갔다. 슈워츠가 보기에 슬라이딩이나 다이빙을 해야 할 자리에, 아니면 그냥 죽어도 닿지 못할 곳에 공이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꼬맹이는 심지어 숨 돌릴 틈까지 약간 남기는 여유를 부리며, 공을 모조리 잡아냈다. 그렇다고 여느 쓸 만한 유격수들보다 딱히 더 빨리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공이 있는 곳에 곧바로, 완벽하게 도착하는 것이, 꼭 공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미리 알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시간이 그에게만 느리게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_p.13~14





  자, 드디어 소설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마이크 슈워츠는 한 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야구 경기를 하던 중에는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작고 비쩍 마른 체구에 "계집애 같은 자식."이라고 조롱까지 했던 헨리 스크림섄더의 움직임을 다시 발견한다. 유려하게 공의 움직임을 좇아 공 샐 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잡아내는 그의 동작과, 그럼에도 땡볕에서 묵묵히 연습을 계속하는 헨리는 슈워츠가 애타게 갈망하는 바로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날부터, 마이크 슈워츠는 헨리 스크림섄더의 한결같은 멘토가 된다. 헨리는 그 길로 웨스티시 대학교에 입학해 '하푸너스'의 일원이 된 것이다.






리틀리그 경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으레 그에게 실책을 몇 개나 범했느냐고 물었다. "제로!" 그는 공 모양으로 말아 쥔 주먹으로 사랑스러운 글러브의 포켓을 팡팡 두들기며 우쭐해했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썼다. "헨리, 제로 좀 저리 갖다 치우지 못 하겠니, 응!" 어머니가 글러브를 그 이름으로 부를 때마다 그는 흠칫하면서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자기만 아는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그로서도 달리 부를 만한 이름이 영 떠오르지 않았다._p.18






  헨리는 선물로 글러브를 받게 된 순간부터 오로지 야구 경기가 열리면 언제나 유격수 자리에 서서 배짱을 부리곤 했다. 처음에는 비실비실한 몸을 본 감독들이 그를 전혀 기용하려 하지 않았지만,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그 공이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 것인지, 헨리는 그걸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공과 자신이 한 몸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슬쩍 글러브에 넣었다 1루수를 향해 송구를 한다. 감독들은 바보가 아니다. 헨리는 곧 유격수 자리에 '제로'와 함께 서 있다.






  3. 세 단계가 있다. 생각이 없는 존재. 생각하는 존재. 생각이 없는 존재로 되돌아가는 존재.

33. 첫째와 셋째 단계를 혼동하지 말라. 생각이 없는 존재가 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생각이 없는 존재로 되돌아가는 사람은 극소수다._p.34,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 《수비의 기술》 중에서



입학하기 전에는 웨스티시에서 누릴 생활이 당당하고 장엄하며 엄숙하고 중요할 줄로 알았다. 딱 마이크 슈워츠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우스꽝스러운 데다가 한가했으며, 예전과 다르지 않고 결함투성이었다. 말하자면 마이크 슈워츠보다는 헨리 스크림섄더에 더 가까웠다._p.46






  마이크 슈워츠의 제안에 따라 웨스티시 대학교에 입학한 헨리는, 자신의 우상이자 최고의 유격수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의 《수비의 기술》을 닳도록 읽는다. 굉장히 뛰어나 유일하게 독방을 쓰던 신입생 오웬 던에게 총장이 친히 전화를 해 헨리는 오웬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대학 생활은 자기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당혹감이 헨리를 뒤덮는다. 대학에 가기만 하면 만년 패배만 하던 웨스티시 하푸너스 야구부 역시 승승장구 할 줄 알았는데, 그러한 야구 선수들의 눈물과 땀을 예상했던 나 역시 예상을 빗나가 슬쩍 웃었다. 그래, 그렇게 또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는구나, 하고.






오늘은 헨리가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의 NCAA 유격수 연속 무실책 기록과 동률을 이루는 날입니다. 51경기 연속, 그리고 앞으로도 더 갈 거예요._p.124






  그러나 헨리는 야구를 하러 웨스티시 대학교를 간 것이니, 뭐 야구를 안 할 수는 없다. 그의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몸놀림은 단 하나의 실책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그의 우상인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의 대학 시절의 기록과 동률에 이른다. 실책 없는 유격수.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그날, 스카우트들이 떠나고 난 9회 초 수비에서 헨리는 실책을 저지른다. 별 다른 건 없었다. 언제나와 똑같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미끄러진 것과 바람이 조합하면서 무언가 배가가 되는 효과가 일어났을 것이다. 술을 마시며 마리화나를 함께 태울 때처럼 말이다. 헨리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고, 마리화나를 피운 적은 더더구나 전혀 없었다.(p.129)

  그리고 그 날 부터, 헨리와 그를 둘러싼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곳 생활이 정말 좋았다. 그러나 야구는 야구였고, 그와 슈워츠가 같이 학교를 떠난다는 것은 알맞은 일이었다. 슈워츠가 없이는 웨스티시 대학교도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슈워츠가 없이는 심지어 그 어떤 헨리 스크림섄더도 없는 것이었다._p.185






  어마어마한 연습량과 본능적인 움직임을 따라 처리해야 하는 공은 실수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타자주자를 아웃시키기에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헨리의 손에서는 어김없이 갈 곳을 잃은 공이 흘러나온다. 로스쿨 입학을 목표로 공부했던 마이크 슈워츠는 번번히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여야 했고, 웨스티시 야구부나 다름없는 마이크의 행방이 헨리에게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마이크는 마이크대로 헨리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죄책감과 자신과는 달리 프로 무대에 나아가는 것 같은 헨리에게 질투와 섭섭한 감정이 밀려온다. 아버지를 만나러 웨스티시에 온 어펜라이트 총장의 딸 펠라는 그런 마이크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헨리가 던진 빗나간 악송구를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오웬은 그 사건을 기점으로 어펜라이트 총장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가 된다.

 

 

 

 

 

  이쯤되면 고백하고 말고도 없이 눈치챘겠지만,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실 <수비의 기술>은 야구 소설이 아니다. 인생을, 청춘을 야구라는 문법으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수비의 기술>이란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글러브로 받아내야 하는 방법이다.

  헨리의 삶은 지금까지는 공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낼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실책 따위는 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록 한 번의 실책은 충격이 크다. 거기에 자신의 든든한 길잡이라 생각했던 존재가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은 그저 조력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이란 나는 실컷 도와줬고 그 도움을 받은 상대는 승승장구하는데 자신의 일은 꼬여가기만 하면 괜시리 마음이 좋지 않다.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이크 슈워츠가 그렇다.

  그런 두 명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펠라가 있다. 펠라는 마이크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또 자기를 봐 주길 바라는데 그의 정신은 온통 헨리에게만 쏠려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매일매일 개인 훈련을 반복하는 헨리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묘하다.

  뭐 겉보기에는 40대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20대가 바라보는 자신은 너무나도 늙었기에 괜시리 스스로 움츠러드는 어펜라이트 총장이 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오웬 던이 있다. 도대체 이 사람들 이야기 불편하면서도 또 풋풋한데 여기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나 무지 궁금하다.

 

 

 

 

 

  하나의 실수는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다. 팽팽한 경기에서 터진 하나의 실책은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버린다. 그러나 그 실책을 털어버리고 다시 경기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또 필드 위에 서 있는 선수들이 할 일이다. 삶도 그렇다. 뻔하지만 그렇다. 너무너무 뻔해 지금 여기에 쓰고 보니 무지하게 평범한 소설 같지만 이 <수비의 기술> 에서 이런 뻔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첫 문장에서부터 날 설레게 했던 이 소설, 뒷 이야기가 무지하게 궁금하다.



  1권에서는 왜 유격수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헨리 스크림섄더와 마이크 슈워츠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하나 더 질문이 있다. 왜 하필 허먼 멜빌인가? 왜 하필 하푸너스인가? 왜 하필 오웬 던과 어펜라이트 총장인가?



  그건 2권에서 다시 답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허먼 멜빌을, 모비딕을 모르는 나는 웨스티시 대학교의 교정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 있는 멜빌의 동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직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지 않아서, 여전히 이 궁금증을 풀 실마리가 남아있으리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행복하다.







*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시겠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웬 때 아닌 의식의 흐름 기법도 아니고 뭐래니.-_-;

그래서 요약 들어갑니다. 읽는 내내 참 행복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p********9 2012.06.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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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의 기술 1 (The Art of Fielding) - 채드 하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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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레전드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물론, 가상의 인물임에 분명하다.)가 쓴 야구교본의 제목인 동시에 채트 하바크가 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수비의 기술 : The Art of Fielding>에서 수비로 번역한 Fielding은 단순히 야구수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채드 하바크의 Fielding은 삶의 그라운드에서 각자에게 닥쳐오는 타구를 막아야 한다는 인생의 메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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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레전드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물론, 가상의 인물임에 분명하다.)가 쓴 야구교본의 제목인 동시에 채트 하바크가 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수비의 기술 : The Art of Fielding>에서 수비로 번역한 Fielding은 단순히 야구수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다채드 하바크의 Fielding은 삶의 그라운드에서 각자에게 닥쳐오는 타구를 막아야 한다는 인생의 메타포가 내포되어 있었다.

 

핸리 스크림섄더의 무결점 수비를 보면서 오랜만에 언더독이 이뤄내는 낭만주의의 찬가를 듣게 되나 싶었는데이후에 차례차례 등장하는 마이크 슈워츠오웬 던거트 어펜라이트펠라 어펜라이트로의 시점전환은 인물설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작가의 섬세함에 먼저 눈길이 가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아마존에서 올해의 책’ 1위를 한 이 소설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예전 하루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대체 어떤 까닭일까? "하루키는 필요 없어미국에도 하루키 못지않은 작가가 있으니까?" 라는 미국인들의 환청이 들리는 듯도 하다

 

청춘들의 방황과 사랑을 연주한 상실의 시대와 수비의 기술은 청춘을 주제로 한 다른 작가의 작품이지만, 여운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야기를 그려가는 사이드 메뉴에서도 비슷한 점은 발견된다. 청춘을 말하기 위해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위대한 개츠비와 마의 산을 사용했다면채드 하바크의 수비의 기술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외 그의 전작들(그리고 메모해두지 못한 여러 작가)을 사용한다이전에도 상실의 시대> 때문에 두 작품을 읽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수비의 기술> 때문에 허먼 멜빌의 작품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한편, 두 작품에서 다른 점을 꼽아본다면 <수비의 기술>이 <상실의 시대>보다 더 다각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일 테다. 물론, 다각적이라고 해서 <기술>이 비교우위에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기본적으로 <수비의 기술>이 다섯 인물을 교차시키며 돌아가는 형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수비의 기술>의 연애가 훨씬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힌트를 주자면 <상실의 시대>에서 성별이 바뀐 롤리타적 사랑이 <수비의 기술>에서도 비슷한 류의 상태로 설정되는데 이게 반전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만큼 속도감이 빠른 책은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고백을 해야겠다. 이 작품은 순문학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고문장이 상당히 세밀하고 더디게 이어지는 편이라 빨리 읽고 싶어도 빨리 읽고 싶지 않게 되는 반발심이 생겨난다이 기분은 아마도 웨스터시 대학교의 배경포함그 밖의 모든 것을 친숙하게 만들어내기 위한 사전 작업의 치밀함과 그에 맞서는 내면의 저항일 것이다.

 

내면의 저항이라는 것은 괴리감의 일종이다. 한국에서 수비의 기술의 인물과 동일시할만한 대학 캠퍼스 내의 롤 모델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절망스런 감정이다. 학원스포츠가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상황입시지옥과 수능이라는 좁은 길 뒤에 있는 한국의 대학모습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의 절반은 난관에 봉착한 다섯 인물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면서 마무리된다목표했던 다섯 군데의 로스쿨에서 고배를 마신 마이크는 잘 나갈 헨리를 바라보며 멘붕에 빠지고무결점 수비를 하면서 메이저리그 상위 픽을 노리던 헨리가 실책을 연발하고오웬과 거트 총장의 수상한 동침은 답이 나오지 않는 답답함을 만들어내고마이크와 전남편 데이비스그리고 아버지 거트 모든 남자와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펠라의 상황도 가엾다.



k*******7 2012.06.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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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가 주인공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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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도 야구를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운동경기를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플레이오프전과 한국시리즈는 반드시 보는 편이다. 야구에 관한 추억이라면 야구경기를 봤던 것 이외에 어릴적 OB베어스 구단 어린이 서포터즈에 가입한 기억이 있다. 그때는 야구모자와 야구잠퍼가 갖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서 가입했던 기억이 있다. 야구는 즐겨보던 스포츠 중에 하나였기에
"수비가 주인공인 이유" 내용보기
나는 한번도 야구를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운동경기를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플레이오프전과 한국시리즈는 반드시 보는 편이다. 
야구에 관한 추억이라면 야구경기를 봤던 것 이외에 어릴적 OB베어스 구단 어린이 서포터즈에 가입한 기억이 있다. 
그때는 야구모자와 야구잠퍼가 갖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서 가입했던 기억이 있다. 
야구는 즐겨보던 스포츠 중에 하나였기에 야구 관련 소설에 부담감은 없었다. 

이 책은 사실 입소문으로 먼저 알고 있었다. 
아는 친구를 통해 꽤 유명한 책이고 출간되면 읽어보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이벤트를 보자마자 멈출수 없었다. 
책 제목이 매우 독특하다. 
"The art of fielding", 수비의 기술.
사실 야구 경기를 보면 다이아몬드의 정 가운데에 위치한 투수와 투수가 던진 공을 치는 타자가 중심이 된다.
타율과 방어율, 이것이 주된 야구 선수들에 대한 관심사이다. 
타자들이 보통 수비를 보는데, 수비율이 각광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수비의 기술이다.
9명의 선수들이 뛰는 경기에서 경기를 이끌어 가는 공을 던지는 투수도 그 공을 쳐내는 타자도 아닌 유격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야구 수비에서의 핵심은 투수와 포수이다. 
유격수는 가장 힘들지만 타자가 공을 쳤을 경우 수비를 할 때 핵심적 위치이다. 
대부분 타자가 친 공이 유격수 쪽으로 가고, 1~3루까지의 수비를 책임져야 한다. 
이처럼 수비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이기에 대부분의 유격수는 타율이 좀 낮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유격수이다. 
바로 헨리 스크림샌더이다. 
그는 아파라치오의 "수비의 기슬"을 거의 외우다시피 애독하며, 제로라는 글러브를 끼고 수비를 펼쳤다. 
랭턴 출신으로 고등학교에서 훌륭한 유격수로 활약했음에도 변변한 대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다. 
그래도 헨리안의 열정은 그를 꾸준하개 연습하게 하였고, 결국 그 결실로 마이크 슈워츠라는 웨스티시 대학 야구선수를 만나게 된다. 
결국 그는 웨스티시 대학에서 훌륭한 유격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은 핸리이다. 
하지만, 인간이 홀로 살수 없듯이 그의 주변에는 또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우선 헨리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마이크 슈워츠, 헨리의 기숙사 룸메이트이먄서 동성애자인 오웬 던, 웨스티시 대학위 총장인 거트 어펜라이트, 그리고 그의 딸 펠라.
럭비와 야구에서 소질을 보였던 마이크 슈워츠는 그가 지원한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지 못하고, 그가 전에 야구팀 주장이자 주전 유격수였던 레트 테넌트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움추려진다. 
거트 어팬라이트는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소설을 완성해내지 못한 상처를 갖고 있었다.
그라고 동성애자인 오웬 던과의 미묘한 관계가 역시 그에게 위로이면서 상처가 된다. 
펠라 역시 상처많은 여성이었다. 
다들 나름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누구나 소망하고 바라는 모습이 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거나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 때 잘 대처하고 극복해낸다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낼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이는 마치 야구에서의 수비를 1선에서 책임지는 유격수의 역할과 유사하다. 
원하는 것은 완벽한 호투로 한점도 내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축구와 달리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고, 점수를 얻기도 잃기도 쉬운 경기이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로 점수를 잃는 좌절도 올수 있고, 점수를 얻는 성공도 있을수 있다. 
한방이 큰 만루홈런에도 9회말 역전시킬수 있는 경기가 야구인 것처럼 인생 역시 그러하다. 
작가 채드 하바크는 야구라는 소재에서 인생을 이야기 했고, 야구를 중심으로 인물을 모아놓고 독자들에게 9회말 대 역전극을 이루기를 소망하며 좌절하지 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어느 스포츠보다 여름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사람둘이 야구에 열광하고 시준의 오픈을 기다리는 것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이 이 책을 더 좋아할거 같다.
m*******i 2012.06.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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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다이빙 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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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달 넘게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바쁘게 살았던 데다가 컨디션 난조까지 겹쳐 난독증 비슷하게 된 상태에서 '채드 하바크'의 <수비의 기술>을 간신히 끝마쳤다. <수비의 기술>로 말할 것 같으면 뉴욕타임즈나 미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초 화제작중 하나였다.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기본 축은 단순 명쾌한 청춘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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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달 넘게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바쁘게 살았던 데다가 컨디션 난조까지 겹쳐 난독증 비슷하게 된 상태에서 '채드 하바크'의 <수비의 기술>을 간신히 끝마쳤다. <수비의 기술>로 말할 것 같으면 뉴욕타임즈나 미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초 화제작중 하나였다.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기본 축은 단순 명쾌한 청춘 스포츠 소설인데, 여기에 부모자식 간의 애정과 마찰, 남녀 사이의 연애, 혹은 동성애 관계등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 이 각각의 요소들을 다루는 방법이 이책의 제목처럼 상당히 기교있고 기술적이라 어느 부분을 읽더라도 금새 빨려들고 만다.

 

수비에서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웨스티시 대학의 약소 야구부에 들어가게 된 헨리는, 끊임 없는 노력이 결실을 맺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끌 정도로 성장하지만, 시합중의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극도의 슬럼프에 빠진다. 그런 와중에 팀은 보기 드물게 연승 행진.

긴박한 시합 장면이나 헨리의 글러브를 다루는 기술에서는 스포츠 세계의 승부와 기술이 가져오는 감동이 느껴지지만, 절망의 늪에 가라앉은 헨리의 모습은 확실히 청춘의 수비실책 그 자체다. 피를 토할 듯한 괴로움으로 부풀어 터져 버릴 것 같은 심장. 지나가 버린 방황의 시기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극도의 슬럼프에 빠진 헨리에게 부활의 날은 찾아올까? 만약 찾아온다면 어떤 방식으로 헨리는 회복하게 될 것인가? 이것이 이 이야기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가 된다. 절망에 늪에 가라앉은 헨리에게는 상당히 감정이입했다. 그리고 이후의 전개는 깔끔하다. 헨리의 수비 재능으로부터 시작된 서두의 장면과 잘 어울리고, 전체적으로도 기승전결이 선명해서, 그야말로 기술적인 전개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세하게 쓸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이러한 헨리의 인생에 더해서, 팀메이트나, 동성애자까지 포함한 그 연인들의 인생도 차분히 그려진다. 장래의 꿈, 연애, 우정, 부모 자식 간의 사랑등이 테마가 되기 때문에, 부부싸움, 사소한 사랑 싸움등 언뜻 멜로드라마의 색채도 강하지만, 별로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의 갈래들이 점점 결합되고, 마침내 주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클라이막스로 수렴 해 나가는 전개는 그야말로 작가의 기술이다. 단순한 이야기의 매력을 기술적으로 최대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하기만 하다면 더할 나위없지만 이 세상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절망과 마주할 때도 있다. 그러한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이책이 해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에서만큼은 그저 호수비에 그치지 않고 9회말 역전 만루홈런과 같은 통쾌함이 있는 소설이다.

p********a 2012.06.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