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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려진 대륙, 바다가 품은 섬
"바다에 가려진 대륙, 바다가 품은 섬" 내용보기
문이 닫히려는 찰나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가 무사히 지하철 안에 들어가 안도의 숨을 내뱉게 될 때, 귓속을 파고드는 거리의 음악을 외면하고 발걸음을 서둘러야 할 때, 맞은 편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척하며 머릿속으로는 내일 일정을 걱정할 때, 명백히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윗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할 때, 그것도 모자라 거짓웃음을 가면처럼 써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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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닫히려는 찰나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가 무사히 지하철 안에 들어가 안도의 숨을 내뱉게 될 때, 귓속을 파고드는 거리의 음악을 외면하고 발걸음을 서둘러야 할 때, 맞은 편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척하며 머릿속으로는 내일 일정을 걱정할 때, 명백히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윗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할 때, 그것도 모자라 거짓웃음을 가면처럼 써야할 때…… 외딴 섬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지난 8월, 40여 일 동안 오세아니아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지인의 문자를 수차례 읽어보며 한참을 부러워했다.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아래 자연을 만끽하며 시간을 잊을 수 있다면. 오세아니아 어느 섬에 가든 찬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르 클레지오의 <라가 - 보이지 않는 대륙에 가까이 다가가기>를 읽기 전에는.

 

  이 책은 작가가 우연찮게 남태평양 바누아투공화국의 작은 섬 라가에 발을 내딛으며 시작한다. 제임스 쿡에 의해 뉴헤브리디스 제도라 불리다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바누아투는 이제 30년쯤 되는 어린 나라이다. 물 위의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정복의 폭력이 난무한 상처를 수풀로 감추고 있는 숨죽인 곳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드넓은 바다가 가려주었으나 서양 문물의 발달은 고유한 문명을 이룩한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훼손되지 않은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고 자연과 친화를 이루던 가치는 하루아침에 무가 되었다. 그러나 섬은 정복자들의 노예무역의 비극적인 역사를 굳이 드러내지 않고 고요하다. 다만 자연이 가르쳐준 원주민의 양식, 이를테면 지진이나 해일에도 끄떡없는 전통가옥이나(서양인이 세운 콘크리트 건물은 맥없이 무너졌다) 식물 섬유로 짠 직물이 화폐가 되는 시장경제는 문명을 어떠한 기준으로 가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200페이지 남짓한 인류 탐방 색을 띈 에세이를 여러 날 걸쳐 천천히 읽게 하는 마력은 작가가 선사한 상념의 시간이다. 바다가 품고 있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대륙은 이렇게 활자의 조합으로 다가온다.

 

 



YES마니아 : 골드 a*****4 2012.09.29.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