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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와 오타쿠를 가르는 길 중의 하나가 묻지마 수집인데 최근 정도가 너무 심했던 거 같다. 새해를 맞이하여 장 정리를 하니 안들은 음반이며 안 본 dvd가 왜 이리 많은 지 모르겠다. 샀는 지조차 까먹었던 것들도 보이고 이런게 출시되었었나 싶은 것들도 있고.... 고전이 된 것들은 상자에 넣어 치우고 최근 몇 년 새 수집한 것들만 가지런히 놓았는데 당분간은 이것들 예뻐해 주는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호두 시즌은 지났지만 작년에 호두를 딱 2번만 깐 관계로 아쉬웠는지 지난 주말에는 호두까기가 손에 잡혀서 틀어보았는데 매우 신선했다. 보통 영상물 틀어 놓으면 잠깐씩 보며 서핑하거나 빨래를 개거나 나름 멀티태스킹을 시도하는데 이 작품은 그냥 앉아서 전막을 집중해서 보았다. 좀 별다르게 느껴지는 연출은 다시 돌려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투르 판 샤익과 웨인 이글링의 안무로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이 공연한 호두까기는 지역색을 강하게 드러냈다. 호프만의 동화를 그대로 가져오기는 했지만 배경을 19세기 초 네덜란드로 옮기면서 여러 가지 것이 달라졌다.
일단 크리스마스 전통이 없는 네덜란드이기에 성니콜라스 축일 전야를 시간적인 배경으로 설정했다. 파티씬에서 성니콜라스와 그의 하인 루프레히트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입은 엠파이어 드레스와 테일코트, 중산모는 19세기 초라는 것도 확연하게 드러낸다.
스탈바움네 집도 운하 옆의 네덜란드식 좁고 세로로 긴 건축물이다. 집 앞의 운하가 얼어 만들어진 스케이트 장에서 사람들이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는 모습이 1막 초반에 등장한다. 멀리 보이는 운하의 다리와 물 속에서 반쯤 잠긴 조각배도 이채롭다.
막이 내려진 채 서곡이 연주되는 러시아식 버전들과 달리 서곡 동안 클라라가 언니, 오빠와 함께 욕실에서 파티를 준비하며 벌이는 작은 소동이 맛보기로 제공되는데 클라라의 10대 큰 언니가 제대로 캐릭터를 갖고 등장하는 버전은 처음이다. 물론 제목에서 처럼 쥐왕도 아주 오래도록 살아남는 비중있는 역할로 바뀌었다.
클라라의 꿈으로 이루어진 호두까기 왕자와의 만남은 1막에 등장한 프로젝터의 랜턴 속에서 벌어진다. 19세기 과학이 꽃을 피운 네덜란드의 모습을 상징하면서도 좀 더 현실감이 갖춰진 꿈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각국 인형들의 춤 역시 나름 고증을 거친 것들이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포장한 것에 그치지 않고 마법 랜턴 속의 국가 배경에서 튀어 나온 인형들이 간단하게 스토리를 전개한다. 랜턴 속 프로젝트의 일부인 성인 클라라와 호두까기 왕자가 이들의 이야기에 적극 개입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풍차를 배경으로 거리의 댄서들과 함께 드로셀마이어. 왕자, 클라라가 군무를 추고, 무자비한 인도 상인으로부터 쇠사슬을 끊어 노예가 된 프릿츠를 구출하기도 하며, 중국춤은 경극 배우가 등장하고, 화려한 러시아 군무에도 참여하고, 풀피리 춤은 그리스를 배경으로 판의 신화가 주를 이룬다.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은 버전이지만 다른 버전에서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스노우왈츠나 로즈왈츠는 색감이나 안무 면에서 아쉽다. 작품 전반이 그렇듯이 실용적인 시대를 반영하듯 환상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눈 결정을 머리에 쓰고 나오는 눈송이들, 네덜란드 전통 복식을 변형한 로브와 튜튜들에게서 동화적인 낭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주역 안나 치간코바와 매튜 골딩의 춤은 안정적이다. 이 영상물을 촬영할 때 둘이 처음으로 이 역할로 호흡을 맞춘 것이라는데 그런 느낌 전혀 없이 편안하다. 치간코바는 클라라를 하기에 지나치게 우아해져 버린 것이 흠이긴 하지만 깔끔한 기본기가 돋보인다. 매튜 골딩의 테크닉은 정확함 그 자체다. 뚜를 앙 레르의 정확한 발 포지션이나 쏘떼할 때의 근육의 탄성은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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