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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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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 그리스도교는 기독교 신앙을 교리 체계나 도덕 규범의 집합으로 설명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응답의 삶으로 풀어내는 신학적 입문서로서 제격이다.저자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을 삼위일체적 관계성 안에서 설명하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초대받는지를 사유하며, 교회를 단순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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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 그리스도교는 기독교 신앙을 교리 체계나 도덕 규범의 집합으로 설명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응답의 삶으로 풀어내는 신학적 입문서로서 제격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을 삼위일체적 관계성 안에서 설명하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초대받는지를 사유하며, 교회를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공동체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책은 신앙을 쉽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도 지적으로 정직하고 영적으로 깊은 언어로 기독교의 중심을 안내하며, 믿음이란 확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현대 신학적 성찰서이다.
h******4 2026.03.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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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억해야할 본질, 종교인가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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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내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의 행동에 이것이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모독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하는 누군가의 욕심으로 살아내야할 터전을 잃었다 생각하는 분노였을지 모른다. ‘신’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몇가지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첫째로는 내가 믿고있는 ‘신’에 대한 확신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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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내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의 행동에 이것이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모독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하는 누군가의 욕심으로 살아내야할 터전을 잃었다 생각하는 분노였을지 모른다. ‘신’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몇가지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첫째로는 내가 믿고있는 ‘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믿고있는 ‘신’의 이름은 같지만 그 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너무 다른 것이다. 둘째로는 ‘신’에 대해 가르치며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듣게되는 살아내야하는 삶이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합리적이지 않은 분명한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 말하는 저들이 삯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셋째로는 같은 이름의 다른’신’을 내새우며 싸우는 모습에 차라리 ‘신’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랬다. 넷째로 정말 나를 구원한 존재라면 이 모든 상황에 ‘신’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이 이유들을 결국 한대 묶으면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여전히 나의 연약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가운데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와서 보라”는 말씀에 나라는 사람또한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마음 안에는 앞뒤가 맞지않는 모든 사태에 그저 남 탓만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다.


“와서 보라”


예수님은 어떤 이념을 따르지도 않으셨다. 사회를 군림하고 있는 왕의 통치에 어떠한 태클을 걸지도 않는다. 되려 말씀하고 계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말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우라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저 본인은 세상의 것과 끊어버리기 위한 완전한 방법을 선택하신다. 십자가위에서 흠없는 제물이 되어 죽으시는 것. 거기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보여주시려고 말이다.


“와서 보라”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말씀하신다.


“와서 보라”


자신을 세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와서 보라”


‘하나님’이라는 이름에 한국 교회는, 그리고 나는 세상의 악한 모습보다 더 추악한 무언가를 가리우고 숨겨둔채 큰 소리를 내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와서 보라”


자신을 보라는 초청 외에는 다른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저 그분은 우리가 그로인해 자유함을 얻었다면 이 땅위에서 어떻게 살아내야하는지 보여주신다. 교회가 얼마나 커야하는지 말씀하지 않으신다. 교회에 성도가 얼마나 많아야 하는지 말씀하지 않으신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회복되는데 예수님이 원하셨던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살아내는 것. 그저 그 사랑에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는 단순히 ‘신’이 이 땅에 현현한 사건이 아닙니다. 어느 한때, 영광이 드러났으니 그것으로 그만인 사건, 하늘에서 어떤 계명이나 교훈이 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의 탄생, 삶, 죽음, 부활은 찬란한 빛이, 그 아름다움이 이 세계에 내려온 사건이며 우리 세상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뒤흔들고 도전한 사건입니다.


예수를 통해 두려움을 녹이는 사랑, 그 무엇보다도 생생한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계시는 변화를 향한 초대를 담고 있으며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복음도 그러한 뜻을 품고 있지만, 복음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에서 계시는 사랑 그 자체가 드러난 사건입니다. 사랑의 활동 자체가 계시입니다. 이 계시는 드러난 사랑으로 나오라고, 이 사랑에 참여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와서 보라.”


이 찬란한 빛, 그 아름다운 빛이 건네는 약속을 마주하십시오. 이 빛이 우리 안에 있는 불안하고 파괴적인 자아를 어떻게 버리도록 해주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해주는지, 어떻게 진실로 이 일이 가능해지는지를 보십시오.


[그리스도교 p.68, 69 / 로완 윌리엄스]


우리의 본질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돌아보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w*****1 2020.08.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