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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막연하게 예루살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꿈이련가 싶다. 삶이 팍팍해서 잊은 이유도 있지만, 조금씩 식어간 종교의 열정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신의 축복과 인간의 탐욕이 공존하는 도시” 라는 수식어는 예루살렘에 대한 더 이상의 수식어는 없을 듯하다. 솔직히 읽는 내내 너무 충격적이다. 예루살렘의 어떤 마력이 그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을까. 인간의 잔혹함이 서려있는 그곳은 성지가 아니라 광기가 서려있는 저주받은 땅으로서 역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
매일 해가 뜰 때마다 세 종교의 세 성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명을 얻는다. ( 848쪽)
예루살렘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사랑스럽지만, 어떤 면에서는 증오와 공허함과 무모함이 가득하다. 하나의 신이 사는 집, 두 민족의 수도, 세 종교의 사원. 하늘과 땅에서 두 번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이다. 그 땅은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단 한순간도 지속적인 평화를 가진 적이 없으며 파괴되고 건설되고, 약탈과 소유되기를 번복하며 성장해왔다. 예루살렘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사람들과 싸워야 했으며, 뺏고 빼앗는 싸움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신성의 이미지를 더 굳혀갔다. [예루살렘 전기](Jerusalem : The Biography) 는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이다. 그 땅의 장대하고 성스러운 역사를 비롯하여 예루살렘에 살고 배회하며 소유하려 들었던 수많은 개인과 민족의 역사를 담았다. 따라서 , 단순히 종교이야기만이 아닌 예루살렘을 형성해 온 수많은 민족들의 역사를 다루었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ag Montefiore는 유대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루살렘을 배회해오면서 가장 사실로서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또한 예루살렘과 유대인을 위해 힘쓴 시온주의의 선구자 모지스 몬티피오리 경의 후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는 어쩌면 예루살렘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가장 적합하고 유일한 서술자일 것이다.
<제1부 유대교>의 역사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이다. 히브리어 문자로 기록한 역사의 기록이 모세5경 (구약 성서 맨 앞의〈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말함)으로 종합되었으며, 유대인의 경전《타나크Tanakh》의 첫 번째 부분이 되었다. 독특한 것은 성경에 충실하기보다는 역사의 기록에 충실하기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더 객관화하였다. 텍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속속들이 펼쳐지는 역사의 한 장면들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다. 권력의 쟁점에서 로마황제들이 예루살렘에 가지는 집착과 알 수 없는 광기, 유대인들의 중심에 있는 도시 예루살렘에서 펼쳐지는 피의 향연들. 더군다나 신의 도시 예루살렘에는 단 1세기도 평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실 충격적이고도 경악스럽기까지 하였다. 예수의 죽음까지 밝히는 유대교의 역사는 종교적 관점을 떠나 예루살렘이 유대민족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짐작케 한다. 이어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국교화 되면서 그리스도교는 번영하게 되는데 ,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성지로 존재하게 된다. 이어 이슬람에게도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거룩한 성지로 비춰지게 되는 역사를 말한다.
이슬람의 《쿠란》은 “오로지 신만이 아시는 심판이 가까웠음을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하리오?”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문헌은 그것이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슬람이 성지를 탈환하자, 유럽에서 십자군을 결성하고 역사상 가장 오래 한 전쟁으로서의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다. 오로지 예루살렘의 탈환을 위하여..
수천 년을 지속해온 예루살렘에 대한 열망과 집착. 저자는 그것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 것이며 사그라지지 않는 욕망으로 국제 사회를 지배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동전쟁의 불꽃은 꺼지지 않은 채 흘러왔다. 60~70년대 중동전쟁, 현 팔레스타인 분쟁까지 계속된 분쟁지역의 한 중심지로서의 예루살렘의 역사는 방대하지만 첫 시작에서부터 몰입되어 눈을 뗼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처럼, 성스러운 도시지만, 소유하기에는 너무도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도시,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예루살렘의 쟁탈전은 잔혹하리만치 매혹적이다. 종교의 첫 시작과 아포칼립스로서 존재하기에 더 신성시 되는 도시이다.
예루살렘 도시 곳곳에 세운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는 매일 아침 자신들의 예루살렘에서 자기들만의 성전을 본다. 세 종교의 선택된 도시 예루살렘에는 그러한 종말론적이고 정치적인 강렬함이 그 모든 갈등과 환상의 십자로에 놓여 있다.(842P) 그것만으로도 예루살렘의 존재는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긴장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속되고 있다. 1900년 초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중동전쟁과 인티파다가 발생했다. 1993년 이후로는 길고 긴 협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예루살렘을 공유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 예루살렘의 현재는 과거 헤롯 시대, 십자군 시대, 이슬람시대처럼 똑같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이제껏 이렇게 잔혹하고도 무서운 역사이야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로마제국과 비잔틴 제국, 이슬람제국의 역사가 혼동되어 인식되어 왔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어서 기쁜 마음도 들고 , 이렇게 중동의 모든 역사가 들어있는 역사서는 처음 접해 본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기존에 이렇게 세세하게 예루살렘을 다룬 역사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과 이란>의 저자가 이란의 역사를 다른 책은 단 두권 뿐이라고 했듯이 대부분이 미국의 역사나 유럽의 역사에 익숙한 반면에 중동의 역사에는 무관심하다. 예루살렘 역사를 보는 것은 현 국제 사회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생생하게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복원하기란 쉽지 않을 듯 한데 너무도 방대한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생생하게 역사이야기를 풀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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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다윗이 시온 요새를 점령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그곳은 도시가 아니라, 자그마한 산악 요새에 불과했다. 그 땅은 훗날 가나안, 유다, 유다왕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성지, 유대인들의 약속의 땅과 같은 수많은 이름을 갖게 된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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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 페이지의 리뷰로 옮기는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책은 예루살렘의 기록 아닌가. 예루살렘에는 종교와 문명, 역사와 인종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것을 하나씩 풀어 헤쳐 온전히 날것의 예루살렘을 꺼내보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을 딱 한 번 읽고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번역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예루살렘의 역사는 현기증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복잡하다. 수 천년의 역사 동안 그 땅에는 얼마나 많은 예수와 요한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무하마드와 알리가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성전과 요새와 왕조가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인종과 종교가 있었는지! 어느 순간 독자는 홍수처럼 밀려 오는 지명과 이름의 압도적 물결에 휩쓸려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된다. 불과 1분 전에 읽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페이지를 뒤로 돌리는 건 예삿일이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미궁 속을 헤매는 운명을 겪기 마련이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한 권의 책에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넣을 작정을 한 것 같다. 이 책엔 아브라함에서 부터 네타냐후(2009년 부터 재직 중인 이스라엘 총리)에 이르는 유대인들의 기록이 있으며 이는 거의 4,000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400년이 아니다. 4,000년 이다. 앞에서 나는 이 책을 딱 한 번 보고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말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딱 한 번 읽는 것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지. 하지만 이 책 딱 한 권만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 있는 것도 사실이네. 여기 예루살렘이 있다. 그곳에 처음 뿌리를 내린 사람은 아마도 아브라함으로 보인다. 그에겐 이삭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이삭은 야곱과 에서라는 아들이 있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야곱은 에서에게 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가로챘다. 나중에 야곱은 낯선 자와 씨름을 벌이는데, 그 사람은 나중에 신으로 밝혀지고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그는 열 두 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것이 바로 유대의 12지파가 되었다. 그들의 역사처럼 파라오의 호의를 입은 건지 아니면 노예로 끌려 갔던지 그 사실 여부를 따질 수는 없지만 그들이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이 대탈출의 기적이 바로 모세 5경 중, 출애굽기(이집트=애굽)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 후 예루살렘엔 다윗과 솔로몬이 있었다. 성전과 요새가 지어졌고 역사상 유래없는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번영은 길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다윗 왕가)로 갈라선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의해 멸망하고 만다. 디아스포라의(유대인들이 세계 각지로 뿔뿔히 흩어지게 된 것) 시작이었다.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 보낸 것은 중동의 새로운 강자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멸망 시키고 유대인을 해방 시켰다. 해방된 유대인은 또 다시 페르시아를 꺽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 점령 당했다. 아시다시피 알렉산더는 이민족의 문화에 관대한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명은 길지 않았다. 유럽에선 그리스 문명을 이어 받은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었다. 로마는 자기가 정복한 나라의 속국들을 이어 받았고 거기엔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로마인 총독은, 폰티우스 필라테(본디오 빌라도)였다. 폰티우스 필라테는 성난 유대 군중들을 향해 강도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풀어줄 것이냐고 물어봤다.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원했다. 폰티우스 필라테는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그러자 군중이 대답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p. 197) 오늘날까지도 많은 천박한 기독교인들이 이를 근거로 유대인의 박해를 정당화 한다(저자에 따르면 이 마태복음의 구절이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 한다. 저자는 폰티우스 필라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완곡, 부드러움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피를 보기 전에 손을 씻을 필요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p.197).) 이후 세계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도교였지만, 그게 그리스도교의 우월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변덕쟁이에 야심가였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중요한 내전을 치르기 전날 밤(312년) '하늘에 빛으로 된 십자가'가 '이 신호와 함께 너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겹쳐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군인들의 방패에 크리스투스의(Christos. 영어로는 Christ) 첫 두 글자인 키로(Chi-ro)를 그렸다. 그는 승리했고 로마를 차지했다. 당시 로마는 곧 세계였으며, 이로인해 그리스도교가 세계의 종교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300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적수가 없었다.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이슬람교는 많은 무지한 기독교인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 예수, 성경, 마리아 등의 개념을 공유하는, 기독교와 아주 유사한 종교다. 실제로 이슬람교가 등장한 초창기엔 종교간 충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슬람교가 마호메트를 선지자로 규정하자 상황은 달라졌고 수 백년이 흐르는 동안 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이제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성지가 되었고 역사상 유례없는 핫 플레이스가 되버렸다. 여름에는 작렬하는 태양이,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존재하는, 전략적, 경제적 가치도 없는 바위 투성이의 쓸모없는 땅이 말이다. 이 각축전에서 먼저 승기를 잡은 건 이슬람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과 군사력을 앞세운 이슬람은 유럽의 스페인과 중동의 대다수 지역을 정복했고 예루살렘은 보너스였다. 그런데 이슬람은 많은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자비하고(칼이냐 코란이냐) 문란한(할렘 문화)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매우 관대했고 이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과 이슬람 교도들이 사이 좋게까지는 아니었지만 '공존'하는게 가능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종교적 광신에 빠진 중세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성지를 이교도의 손에서 빼앗고자 피의 축제를 벌였고 이게 바로 4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다. 그러나 이 대혼란 속에서 유대인은 단 한 번도 승기를 잡아본 적이 없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 마다 심한 박해를 받았고(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박해) 그저 더 관용적인 침략자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길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들이 이 땅을 다시 차지하게 된 건 1948년이 되어서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유대인 유력자들 사이에서 '시온 주의'가 발흥하게 된다. '시온 주의'란 뿔뿔히 흩어진 유대인들, 세계 각지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는 모든 형제들을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모아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었다. 유럽의 왕들 중 일부는 '기생충 같은 유대인들을 내 땅에서 없앨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또 일부는 '유대교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으로 또 일부는 '불가사의한 예언의 광신'에 휩싸여(예언에 따르면 유대인이 다시 예루살렘이 돌아왔을 때 메시아가 강림한다) 이 운동에 참여했다. 유대인들의 땅으로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우간다 등이 제시됐다. 그러나 그 무엇도 예루살렘이 가진 거대하고 위대한 상징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유대인의 지지를 얻고 싶었던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시온 주의자들은 드디어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영국을 도왔다. 마침내 영국은 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인들은 영국이 프랑스와 아랍인들에게도 똑같이 팔레스타인을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온 주의는 물거품이 됐고 예루살렘은 영국의 통치하에 그리스도인과 유대인과 이슬람인이 공존하는, 유대인들로서는 예전과 전혀 다를게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유대인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때 까지도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없었는데, 영국인의 배신에 실망한 일부 유대인들은 히틀러가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음에도 영국이 아닌 독일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유대인들은 결국 무력 항쟁을 통해 영국군을 몰아 내고 마침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옛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망한지 2,700년이 지나서였다. 이 후 이스라엘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이들은 호시탐탐 예루살렘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고 각지에서 폭탄 테러와 유대인 살인이 벌어졌다. 2,700년 만에 되찾은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멸망의 위기로 몰아 넣은 것은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였다. 단 하나의 아랍 국가를 원했던 민족주의자 나세르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고 싶었다. 그는 주변 아랍국을 선동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게 현대 전쟁사의 최고 드라마 6일 전쟁이다. 아랍 연합군은 50만의 병력, 5,000대의 탱크, 900대의 비행기를 확보했다. 이스라엘은 27만 5,000명, 1,100대의 탱크, 200대의 비행기를 확보했다.(p. 814)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심지어 이스라엘인 조차도 자국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과감한 선제 기습 공격으로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1967년 6월 5일 오전 7시 10분, 이집트로 날아간 이스라엘 조종사들이 그들의 공군을 궤멸시켰다. 이스라엘은 불가사의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것은 마치 2,700년 간 유보해왔던 축복이 한 순간에 내려진 것 같았다. 이제 그 누구도 유대인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빼앗을 수 없었다. 역사는 언제나 가해자의 잔인함을 고발하지만 동시에 복수심에 불타는 피해자 어떻게 가해자로 변신하는지를 주목하기도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겪어온 폭력과 멸시의 고통을 이슬람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가자 지구를 폭격해 수 많은 민간인을 사살하고 폭탄 테러의 위협으로 부터 유대인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비인간적인 격리를 실행하고 있다. 끔찍한 게토의 추억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이 말이다. 아브라함에서 시작한 예루살렘의 전기가 2000년대 이스라엘의 모습에 이르러 마무리 지어지면,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세계의 역사를 단숨에 들이킨 듯한 자신감이 충만해 온다. 이 책은 유대인들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예루살렘에 대한 책이다. 예루살렘에는 수 많은 종교와 민족과 국가가 존재해왔다. 저자는 그 모든 것들을 어느 일방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어쩌면 그의 의도가 예루살렘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것을 두고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의도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종교 때문에 폭탄 테러와 비인간적인 학살이 자행되는 곳이다. 아이러니한건 그 곳에 사는 사람 모두가 정의와 평화를 꿈꾼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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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몬 시백 몬티피오리의 '예루살렘 전기'는 서양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 예루살렘의 그 탄생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보통 지명을 중심으로한 역사서에는 붙지 않는 'THE BIOGRAPHY'라는 말을 일부러 제목으로 쓴 것에서 부터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는 지은이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듯 하다.
예루살렘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이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타자의 역사를 읽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근대화'라는 19세기에 서양에 의해 주도된 보편화를 이미 겪었고 바로 그 보편의 핵심엔 서양 정신의 많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기독교'가 자리잡고 있는데 예루살렘의 역사란 바로 그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예루살렘이란 공간은 특정한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지금에 있어서는 하나의 보편으로 자리잡은 공간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리잡은 '보편'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알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일본의 식민지와 그에 뒤이은 미군정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우리 내면속에 자리잡게 된, 그리하여 이제는 거의 '아비투스'가 되어버려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버린 '서양 근대'를 마치 산란기가 되면 자신의 고향으로 강을 거슬러 돌아가는 연어들과도 같이 그 근원에서부터 되짚어 보는 여정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루살렘 전기'를 읽는다는 것이 마치 오래된 앨범의 옛 사진을 뒤적이듯 과거만을 회고하는 여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2000년 세계무역 박람회가 테러로 무너졌던 9.11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이 예루살렘이라는 공간 자체가 여전히 지금 세계의 가장 커다란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의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대부분 일어나고 있는 테러들에게 그 근원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에 일어난 가장 큰 전쟁인 이라크 전쟁만 보아도 예루살렘이 촉발시킨 갈등이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불러올 수 있는가는 쉽게 짐작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을 더욱 잘 이해함과 동시에 '평화'를 가져오는 사전 정지작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갈등의 물줄기를 근원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주욱 훑어볼 수 있음으로 그 갈등이 진정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하고 그것이 이리도 커다란 비극을 낳으며 자꾸만 반복되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고찰할 수 있게 만들며 그를 통해 갈등의 연쇄를 끊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제대로 된 해답을 찾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지은이 몬티피오리가 856 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역사를 쓴 이유이며( 놀라운 것은 참고문헌 목록만 거의 80여 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문헌을 한 번 읽어보면 지은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고를 들였는지 저절로 느껴진다. 사실 이 정도로 방대하게 저술한다는 것이 웬만한 열정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이라는 건 쉬이 짐작이 가는 바이지만 참고문헌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해 저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임했는지 더 크게 깨달았다.) 이를 통해 예루살렘을 늘 우리의 뇌리 속에 생생히 되살려야 할 까닭이다.
예루살렘은 한 때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졌고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 도시는 아브라함의 종교들이 충돌하는 각축장이자 점차 인기를 얻은 그리스도교, 유대교 및 이슬람 근본주의의 성지이며 문명들이 충돌하는 전략적인 전장이자 무신론과 신앙이 부딪히는 최전선이고, 세속적 매혹의 대상이며 인터넷 시대의 현기증 나는 음모론과 신화 만들기의 대상이자 24시간 뉴스 시대에 전 세계 카메라들의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미디어의 관심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p. 9)
크리스마스 때 어쩌다 이름이나 한 번 듣는 예루살렘. 그렇게 누군가에겐 전설 속의 옛 지명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순례해야할 성지로만 남아있던 예루살렘. 그렇게 단일한 공간으로만 여겨지던 예루살렘. 하지만 몬티피오리는 처음부터 그러한 예루살렘의 이미지를 깨뜨린다. 그는 단적으로 말한다.
예루살렘은 '전선(FRONT LINE)'이라고...!
그것도 몇 백년이상이나 해묵은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아직도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며 과장되고 부풀려진 인위적인 거짓들과 허위와 왜곡으로 부터 덜 오염된 사실이 총탄처럼 오고가며 교전을 치뤄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전선인 것이다. 몬티피오리는 그 열기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려 한다. 그 불길이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었으며 왜 아직도 불타고 있는 유전처럼 여전히 거세게 타오르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예루살렘에 대한 역사서들과 다르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담고자 하는 열기는 어디까지나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이들이 빚어내는 갈등들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그 갈등들을 표현하자면 아무래도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와 또한 무신론까지 다 대등하게 존중하여 각 자의 목소리들을 온전히 들려주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예루살렘의 역사서는 모두 하나의 목소리만을 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기독교 중심으로 예루살렘 역사를 살펴보는 책들은 기독교라는 하나의 목소리만을, 유대교 중심으로 보는 책은 또 유대교라는 하나의 목소리만을 그리고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보는 책은 이슬람교의 목소리만 들려줄 뿐이었다. 하지만 몬티피오리의 이 책은 다르다. 우리는 여기서 예루살렘에 운집한 가지각색의 아우성들을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마치 내가 어떤 재판에 배심원으로 불려와 각 피고인들의 변론을 차례로 듣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모든 목소리를 차례로 들었는데 처음엔 예루살렘을 만들고 다졌던 그리고 한 때 추방되었으나 이제는 피의 살육을 통하여 터줏대감이 되어버린 유대교의 목소리를, 그리고 다음엔 유대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다질 때마다 핍박받고 저항했던 이교도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다음엔 동로마 제국과 함께 건너온 그리스도교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다음엔 그들에게도 성지였던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십자군 전쟁을 불러일으킨 이슬람교의 목소리를 들었고 제국주의의 확장과 더불어 그들의 손발 역할을 했던 '선교'를 통해 들어왔던 개신교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는데 그건 이 재판에서 판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지은이 몬티피오리가 그 어느 종교적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가치중립적으로 그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역사적 정황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배심원들에게 사건의 정황을 제대로 인식시키는 것이 판사에게 요구되는 정말 중요한 자질이라고 미국의 연방대법관을 지냈던 Oliver Wendell Holmes는 말한 바 있는데 그렇다면 몬티피오리야 말로 제대로 된 판사가 아닌가 싶다.
예루살렘은 예수로 인해 '평화'의 상징 같은 곳이 되었지만 사실은 내내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지금 이스라엘이 세워지게 된 것 역시도 시온주의자들이 벌인 무시무시한 살육 덕분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또한 타자를 존중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이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반복적으로 잉태하게 하는지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을 위해서일까? 그의 체계적이면서 객관적인 서술은 그러한 사태를 냉정하게 관찰하게 하고 많은 인용들과 평이한 서술은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마치 판사가 마지막 평결을 내리듯이 그는 하나의 진실을 대면하게 한다. 우리가 왜 타자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그에 대한 진실을...
어쩌면 뻔한 결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전혀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그 수많은 역사적 경험들에서, 비록 상상을 매개로 한 것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마음으로 부터 납득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몬티피오리는 진심으로 납득시킨다. 정말 저 예루살렘을 갈가리 찢어놓는 철조망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것은 바로 타자를 나만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눈과 머리 속에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그 한 문장을 당신 마음에 깊이 새겨두기 위해 '예루살렘의 역사' 전체를 놓고 재판이 벌어지는 법정과 같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그랬듯이 배심원으로 호출된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당신이 우리 의식에 있어 근원적인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존재를 제대로 알고 싶고 오늘의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길 원한다면 당장 그 호출에 응할것을 정말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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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 - 신의 약속과 인간의 타락의 땅
청동기에서 21세기의 어느 아침까지
야곱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돌아왔을 때 처음 교전을 했던 지방의 부족들은 블레셋 같은 페니키아 족들과는 달리 모세가 이끄는 유대민족과는 혈통적으로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지만 이미 종교적 성숙을 이룬 이집트 출신 유대민족들과 여러 신을 믿는 토착민들과는 공존을 할 수 없었다. 야곱의 가족들이 이집트로 들어갔던 때만 해도 이들은 신앙은 체계적이지 않았고 그들 역시 이교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그 지역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를 갖추 이집트에서의 400여년의 동안 그들 은 이집트의 체계화된 종교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종교를 체계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은 이미 팔레스타인의 옛 이웃들과는 공존할 수 없었다.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면서 몇 천년 걸친 아이러니의 역사가 시작된다. 성경의 관점에서 지적했듯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면서 남겨둔 토착민들의 종교와 문화는 평화시기에 유대국가의 타락(혼란, 여호와 하나를 믿고 율법적으로 매우 엄격했던 유대민족들 사이에 기복적이고 쾌락적인 토착민들의 종교가 쉽게 퍼지면서 그들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을 부추겼다. 한때 중동지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솔로몬 시대) 유대 가 약해지고 이집트의 영향력도 약해지자 주변에 새로 생겨나는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자주 유린하는데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가 그들이며 이집트 역시 유대민족의 구원자를 자처하면서도 약탈로 돌변하기도 했다. 역사시대로 넘어와서도 그들은 알렉산더제국과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의 지배는 유대의 역사상 가장 길고도 가장 굴욕적(유대인 입장에서는)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예수가 등장한다. 현재의 인류는 개인의 종교관과 상관없이 예수탄생과 죽음에 포괄적인 영향을 받을 만큼 이 사건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다. 예수를 따르던 초기 그리스도인이 로마 장군 티투스의 예루살렘 함락과 그 전후의 박해를 피해를 아시아와 유럽을 흩어진 유대(디아스포라) 출신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 곳에 소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써 그리스도교가 생성된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우리가 현재 보고 겪고 있는 세상의 분란은 크게 3가지 정도의 원인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 민족, 종교 가 그것이다. 국가 영토의 확장에 기인한 이권분쟁, 민족간의 해묵은 싸움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분쟁이다. 종교분쟁은 크게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의 분쟁이 주류를 이루면 그 규모는 작지만 파급효과가 큰 것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간의 분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3종교는 그 기원을 하나에 두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모세가 활동하던 시기를 공유하고 여호와라 부르는 신을 섬기며 이슬람은 알라라 불리는 신을 섬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점을 인정 하느냐 여부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유대교는 예수를 선지자 중 하나로 보고 지금도 메시아(그리스도)를 기다린다. 이슬람은 그 한참 후에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모하메트를 선지자로 발생한다. 이슬람도 그 믿음의 기원을 아브라함으로 보고 있고 유대교와 다르게 이삭이 아닌 아브라함의 첫 아들(신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몸종에게서 얻은) 이스마엘이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이스마엘을 유대교에서는 이삭을 신께 희생 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하는 곳 모리아산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그래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모두에게 공통적인 성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경우에는 예루살렘의 중요성은 크지 않았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던 지상의 성전보다는 다시 올 성전 즉 천상의 예루살렘과 예수의 승천 이후 각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자리잡은 성전(성령)을 더 중시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에 위협받게 되자 정치 목적의 ‘성지회복’이라는 명분론이 주장되면서 그리스도교 사이에도 예루살렘은 중요한 도시가 된다. 이런 분위기에 바로 자극 받아 일어난 사건이 ‘십자군 전쟁’이다.
뒤섞인 민족, 뒤엉킨 종교, 구분 없는 영과 속 서로마의 붕괴이후 예루살렘의 행정적인 지배는 투르크계가 주로 맡아왔다. 이들은 굳이 구분하자면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이었지만 혈통적으로 혼혈적이었고 소위 말하는 노예 왕조이면서 실용적인(세속적인) 것을 중시해서 왕조의 정통성과 종교적 색채도 약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일어난 성지순례 붐은 예루살렘과 주변에는 유럽혈통의 그리스도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퇴각한 후에도 항구도시 ‘자파’는 오랫동안 유럽의 원거리 식민지로 남아있었고 자파를 통해 유럽과 러시아(‘로마노프 왕조’는 동로마 제국의 왕위를 계승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원했고 정부주도의 이민과 성지순례를 지원했다.) 순례자들과 이민자(주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이 유입되었다. 맘루크 왕조는 중부 아프리카인과 동유럽의 아르메니아 그리스도인들을 용병으로 사용하면서 현재까지 예루살렘에는 아르메니아 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예루살렘은 한때는 유대인 도시였고 잠시 유럽의 도시였고 그리고 오랫동안 이슬람의 도시였지만 어느 때이고 각 종교나 민족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지는 못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예루살렘에는 로만 카톨릭, 그리스정교회, 유대교회당, 이슬람사원이 존재해 왔으며 그 안에서는 그들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신에 대한 경배가 늘 있어왔다.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 각자에게 가해진 박해나 호해는 달랐지만 어느 시기도 명분 따위는 없었다. 매우 세속적인 방법으로 각자의 문제를 해결해 갔다. 각 사원(교회)들은 정세에 따라 그리스도 교회가 되었다가 모스크로 바뀌기도 했고 심지어 칸을 나누어 각기 다르게 신을 섬기기도 한다. 성전(교회) 안에서는 가지각색의 예배와 찬양을 하며 신비스럽고 위험한 의식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사제나 신도들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도 종종 일어났다. 신 보다는 주먹과 돈이 먼저였다.
예수가 성전 문 앞에서 대속재물을 팔던 장사치들을 좆았던 옛날부터 예루살렘은 순례자들이나 명절 시기에 몰려둔 방문객들을 상대로 장사가 번창했다. 이전 투구에는 관리, 성직자 할 것 없이 달려들었고 타 종교도 간의 잦은 싸움들도 세속의 이전투구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지각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런 성지의 모집은 역겨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늘 사람들이 들끓었다. 그들에게는 이세상이 끝나고 찾아갈 세상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고 사는 동안 지은 셀 수 없는 죄를 용서받고 다른 누구보다 먼저 부활할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의 가난한 농부나 게르만 왕이나 죽음 앞에서는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런 필요가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낳고 그것은 더욱 과장이 되어 더 많은 욕심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든다.
21세기 예루살렘 결국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독립국가를 세웠다. 현재 예루살렘은 동서를 나누어져 있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도 예루살렘에는 민족 별로 거주 구역이 확실했다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가거나 통행이 금지된 구역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에는 타 종교, 타 민족간의 묵인 하에 공존(그것이 지극히 세속적이라고 해도…)이 존재했다. 21세기 어느 아침 예루살렘의 동과 서는 두꺼운 벽과 철책으로 분리되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공격을 막자는 의도이지만 이 벽은 돌이킬 수 없이 너무 나가버린 잘못된 것의 상징물 같다.
한편 예루살렘의 다른 한 쪽에서는 천년 넘게 이어진 어색하지 않은 어색한 일들이 지속된다. 이른 새벽부터 그리스정교회, 로만 카톨릭 그리고 이슬람의 예배가 이루어지고 같은 교회의 다른 방에서는 콥트교와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방법과 언어로 예배를 드린다. 몇 십대를 세습(맘루크 왕조 때부터)한 교회 관리인은 전통(?)을 이어 각 종파의 예배시간에 맞추어 교회 문을 연다.
현대의 예루살렘은 신을 믿지 않거나 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방문객들이 더 많다. 이 거룩한(?) 도시의 정체성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인간의 나약함과 역겨움으로 읽어 나가기 힘들다 생각하게 하지만 쓰레기 더미 사이를 헤집어 돌아 다니다가 집에 돌아와 따스한 물에 샤위를 하고 안정을 찾은 듯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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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서울: 시공사, 2012)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동경35°13′ 북위31°47′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합니다. 그곳은 하나의 신이 사는 집이며 두 민족의 수도이자 세 종교의 사원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단순히 지구 반대편 먼 나라의 수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지역, 종교의 중심지로 이해하고 있다면 <예루살렘 전기>는 독자가 될 여러분의 인식과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을 줄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루살렘의 역사를 통해 세계의 중심과 국제사회에 대한 식견을 제공받을 것입니다. ![]()
<신을 만나기 위한 그들의 기다림은 끊임없는 소유욕과 함께 타락으로 물들었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1965년생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릴 시절부터 필연적으로 가지게 된 예루살렘에 대한 관심을 오랜 세월을 걸쳐 연구한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예루살렘 이야기를 쓰면서 저자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여 역사가의 특정한 사관에 구애받지 않는 예루살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전기>는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정치, 문화,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한 세력과 지도자 혹은 정복자를 연대순으로 나열하면서 각각의 시대에 특정한 키워드를 제목으로 부여하고 있습니다. 1부 유대교: 하늘과 땅, 예루살렘과 성전, 지성소와 선택받은 백성들의 이야기 그들은 예루살렘 이미지의 시작이자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대교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의 탄생과 종교의 기원을 본다. 2부 이교: 예루살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제국 로마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는 새로운 정신적 가치가 태동하고 그리스도교의 두각이 돋보인다. 3부 그리스도교: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면서 예루살렘은 더이상 유대교만의 성지가 아니게 되었다. 정통그리스도교의 의식과 문화는 새로운 예루살렘의 지배코드가 된다. 개종을 둘러싼 박해와 갈등은 분쟁의 씨앗이 된다. 4부 이슬람: 시대가 그를 원했고 그가 등장했다. 신의 사자 혹은 사도로 불린 정복왕의 탄생과 쿠란의 쓰여짐은 세대를 넘어 오늘까지 예루살렘을 세 종교의 장소로 만들었다. 5부 십자군: 동서양의 과격한 만남, 회복과 수호를 대의로 내세운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충돌은 문화의 교류 뿐만이 아니라 종교의 교류이며 예루살렘이 동서양의 정신적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6부 맘루크조: 피폐해져버린 예루살렘은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고 문화적 중심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이었던 맘루크조는 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가? 7부 오토만 제국: 예루살렘 재건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 새로운 수호자가 되어 예루살렘을 회복시킨다. 힘의 논리에 의해 색을 달리 하는 예루살렘의 현장은 피와 복수 그리고 소유욕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8부 제국: '예루살렘 신드롬'을 앓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간다.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해 때로는 환상을 좇아 모여드는 정복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9부 시온주의: 축복과 저주의 그날 시온주의는 종말의 때를 위한 마지막을 준비한다. 모두를 적으로 삼을 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기다린다. 종말의 날은 새로운 시작이며 재건된 그곳은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새로운 제사가 이뤄질 것이다.
신학생으로서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본 <예루살렘 전기>는 역사의 묘사에 대한 중립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였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립의 입장이 언제나 중요한 사실을 모두 기술하거나 들여다 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염두하여 보아야 한다는 것을 단서로 책의 유익함을 논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예로 그리스도교의 중심에선 예수에 관한 저자의 진술은 역사성에 기초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의 병고침과 죽은자를 되살리는 행위 그리고 수난과 죽음을 언급하면서 복음서를 인용하거나 요세푸스의 진술을 가져오지만 그를 인간 그이상의 존재는 아니다라는 견해를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중심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어떻게 분리되는지를 간과하는 오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무함마드에 대한 정복자로서의 이미지 해석에도 비슷하게 적용되기도 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각자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상대가 모두 만족할 만한 기사의 내용만을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보다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역사를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펙트에 손상이 간 이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립적 기준을 가진 상태에서 예루살렘을 초기부터 현대에 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의 집합이라는 점과 세계의 모습과 예루살렘의 모습을 비교하여 오늘날 예루살렘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독자마다 판단할 수 있는 식견을 제공해준다는 점입니다. 정치, 사회, 문화는 과학과 경제의 시대로 넘어선 오늘날에도 종교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시대로부터 시작되고 탄생된 인류의 문화의 발전사에 새겨진 또 다른 코드가 아닐까요? 예루살렘 전기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그 또 다른 코드의 해석의 관점을 제시해주는 유용한 책이기에 국제사회의 흐름 및 분쟁과 종교의 기원과 인문학을 위한 도서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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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입니다. 역사의 입장에서 볼 때 천년 만년 태평성대를 누렸던 왕국은 단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재미없는 역사가 되겠지만, 계속해서 치고 박고 싸워서 며칠사이에 땅주인이 여러번 뒤바뀌었다면 그것은 재미있는 역사가 될 것이고 할 이야기가 많은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시로 뒤바뀌었던 이야기들이 여러가지 형태의 기록으로 잘 남겨져 있다면 그것은 더욱 생동감 넘치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너무 생생해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절한 이야기가 될 지라도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의 신이 사는 집이자 두 민족의 수도이며 세 종교의 사원이고, 하늘과 땅에서 두 번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라고 합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뭔가 굉장히 복잡한 구성을 이루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예루살렘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니 이렇게 알차고 다양한 구성을 이룰 수밖에 없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구성은 근본적으로 조화를 이룰래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예루살렘을 이야기할 때 서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예로들며 그들이 서로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하고 있나 봅니다.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면서 만약에 전세계가 다시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는 그날이 온다면 아마도 예루살렘이 그 중심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루살렘 전기』는 한 인물이 아닌, 한 도시와 지역 전체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은 전기傳記가 아니라 전기戰記에 가깝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이 책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예루살렘이 평화로웠던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말하는 예루살렘의 모든 기록은 전쟁의 기록입니다. 서로 미워하고 그래서 싸우고 또 죽이고, 그 죽음을 복수하고, 또 그 복수를 복수하고. 신의 도시이고 하늘과 가장 가까이 닿아있다던 예루살렘이 정말로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그 천상의 도시가 맞긴 한 것인가 묻고 싶습니다. 만약 지구상에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 있다면 그 문은 분명 예루살렘에 있을 것입니다. 처음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었을 때 현재의 예루살렘이 왜 이런 골치아픈 동네가 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쪽저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본 후 개인적으로 무언가 결론을 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하질 못하겠습니다. 예루살렘의 주인이 태초부터 누구였다고 단정지어 말한다는 것이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예루살렘의 위치가 지정학적으로 제국이 생겨날 때마다 주인이 바뀔 수밖에 없는 위치이고, 또 큰 전쟁이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민족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거쳐갔던 민족과 종교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지금까지도 약간의 경계를 허물지 않고 서로 절대로 섞이지 않은 상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기합니다. 한편 예루살렘이 도대체 어떤 마력과 같은 힘을 지닌 장소이기에 그토록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인가 하는 괜한 궁금증이 생겨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출구가 없는 이 좁은 지역으로 이방인들이 몰려들다보니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런 잦은 사고들이 큰 전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외모가 다른데다 언어까지 다르니 분명히 서로가 서로를 다른 생명체 보듯 했을 겁니다. 애초에 서로가 다름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루살렘을 가운데 두고 싸우는 여러 민족과 종교에 대한 천 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이야기를 보고있으니 모래탑 가운데 깃발 하나를 꽂아두고 누가 모래탑을 무너트리는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중앙에 꽂혀있는 깃발 주위에 모래가 얼마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보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위태롭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이 끝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예루살렘에 속해있는 종교와 민족은 서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또 세계가 나서서 예루살렘의 일에 간섭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현재 모습에 대한 책임은 세계의 역사에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도시가 외부의 사고방식이 들어오는 창구이지만 예루살렘은 외부세계를 비추어 내부의 삶으로 드러내는 양면거울이었다. 절대적인 신앙의 시대든, 정의로운 제국의 건설이든, 복음의 계시든, 세속적인 민족주의든 간에 예루살렘은 그 상징이자 지렛대가 되었다. 그러나 서커스의 거울이 그러하듯, 거울에 비친 모습은 언제나 왜곡되고 기형인 경우가 많았다. (16쪽)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197쪽) 리처드는 살라딘에게 "무슬림과 프랑크 양쪽 모두에 의해 예루살렘 땅이 파괴되었으므로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 우리가 할 얘기는 예루살렘, 십자가, 그리고 이 땅에 관한 것이 전부이다. 예루살렘은 우리 예배의 중심이며 우리는 결코 예배를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살라딘은 알 쿠드스가 무슬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했다. "예루살렘은 우리의 것인 동시에 당신들의 것이다. 예루살렘은 당신들에게보다 우리들에게 더 위대하다. 예루살렘은 우리의 예언자께서 밤의 여정을 온 곳이며 천사들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434쪽)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이 흔히 그러하듯, 유럽인들은 동양인들이 자신들의 선한 의도에 의한 정복을 감사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518쪽) 그리스도교 복음주의자들과 유대인 랍비들 모두가 유대인의 귀환을 꿈꾸었다. 그것은 몬티피오리의 업적이었다. 새로운 유대인 부호들, 특히 로스차일드 가문의 엄청난 부는 바로 그 당시에 디즈레일리가 말했던 것처럼 히브리 자본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사들인다는 개념에 힘을 불어넣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국제 정치와 금융의 결정권자로서 그 힘이 최전성기에 올라 있었으며 런던은 물론 파리와 비엔나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몬티피오리에게 돈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몬티피오리의 변치 않는 꿈은 "예루살렘이 유대인 제국의 수도가 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585쪽)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 이상의 것을 공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신이 관여하는 자유'라는 이상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새로운 시온, 즉 '언덕 위의 도시'이며 이스라엘은 회복된 옛 시온이다. (825쪽) 평화의 씨앗은 단순히 자갈밭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독에 물들게 했다. 평화가 평화를 만든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예루살렘은 오늘날 정신분열적 두려움 속에 존재하고 있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감시 서로의 동네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세속적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쉬지 않고 불경한 옷을 입는다는 이유로 돌을 던지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을 회피한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은 성전산 기도를 시도함으로써 경찰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무슬림들의 불안을 자극한다. 그리스도교 종파들은 여전히 서로 으르렁거린다. 예루살렘 시민들의 얼굴은 긴장돼 있고, 목소리는 화가 나 있다. 그리고 누구든 심지어 자신이 신성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세 종교의 종교인들조차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8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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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종교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위한 바티칸 콘클라베를 주목하고 있다. 의학의 힘으로 치유가 어려운 난치병의 완쾌를 기원하기 위해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으며, 삶을, 제 신앙을 되돌아보기 위한 순례길에 오르는 이들 역시 상당히 많다. 모든 종교는 평화를 갈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개별 종교들은 만나면 아웅다웅하다.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급기야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키도 한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또한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이 믿는다는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현재도 이 곳은 정체성이 복잡하다. 세계를 호령(?)하는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맞닿은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결과다. 때때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이에 맞선 무장군인들의 폭력도 일어난다. 세상은 제 편의에 따라 어느 한쪽의 뜻만을 받든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서, 서방의, 특히 미국의 시선에 길들여진 나머지 아랍인들은 모두가 테러리스트라는 다소 위험한 시선을 견지할 때가 많다.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를 내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 현재의 시점에 고착되어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였으니,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의 모든 것을 훑는 이 책을 통해 나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예루살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1,000년간 예루살렘은 배타적인 유대교 지역이었다.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이었다. 1,300년간은 이슬람 지역이었다. 그 세 종교들 중 어느 것도 칼, 투석기, 또는 곡사포 없이는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서술이 사실임은 목차에서부터 명정하게 드러난다. 유대교에서 출발한 책은 이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온주의도 일종의 믿음으로 간주한다면 종교의 개수는 더 늘어난다고 볼 수 있겠다. 실체가 존재치 않는 믿음으로 인해 인간이 다툰다? 어찌 보면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모두가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이기에, 이들 종교 중 어느 하나를 믿는다는 것은 곧 다른 종교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이교는 좀 다르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섬기는 신이 많다 하여 그 종교의 관용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지배적인 종교가 갈릴 때마다 이전 종교가 만들었던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는데, 이는 이교 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종교와 정치가 결합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오늘날 저와 같은 독재 정권이 견고히 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 국가에 속한 사람들을 보면 의구심은 곧 해결된다. 정권에 대한 광적인 믿음 덕에 외부에서는 ‘악의 축’ 취급을 받는 정권일지라도 굳건히 유지되고는 한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기강을 다지는 데 종교만한 수단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 종교들이 한 사회를 풍미했던 시절은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고치 않았을 때다. 종교가 지닌 순기능과 종교적으로 신실한 이들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나 종교가 이러한 차원에서 번성할 수도 있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십자군 전쟁과, 오늘날에도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 등도 이와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조금은 쉬워진다. 어찌 보면 서글프지만, 종교 역시 결국에는 세속의 일인 것이다. 저자는 예루살렘을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라 하였다. 너무나도 위험해 보이는 그 땅을 꿈꾸다 마침내 어떠한 연줄도 없는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아무 일 없이 어제까지 거주하던 땅을 빼앗긴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 그 땅을 선점했는지를 따져가며 그 땅의 주인이 누군가를 논하는 것은, 왠지 지금의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지 싶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를지라도 서로를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태도다. 아플지라도 서로를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땅으로, 진정한 축복의 공간으로 예루살렘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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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 인구 78만 명, 면적 125.1 ㎢, 인구수로 보나 면적으로 보았을 때 예수살렘은 특별한 점이 별로 없는 도시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신이 사는 집이고 또 두 민족의 수도이며. 세 종교의 성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로 인해 이 도시는 지난 3,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피가 뿌려졌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예루살렘 전기>는 그 이유를 900여 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해주고 있다. 전기는 영미권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문학 장르로 평가되고 있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전기는 보통 그 주인공에 대한 외적인 평가보다는 인간적인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이 책 <예루살렘 전기>처럼 사람이 아닌 도시를 대상으로 전기가 나온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무언가 매력이 있는 도시일터. 이 책은 예루살렘의 속살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해준다. “1,000년간 예루살렘은 배타적인 유대교 지역이었다.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이었다. 1,300년간은 이슬람지역이었다. 그 세 종교들 중 어느 것도 칼, 투석기 또는 곡사포 없이는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했다.“ (p.847) 그렇다! 이 도시의 매력은 바로 종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예루살렘은 바로 아브라함의 세 종교가 태어난 장소다. 세 종교는 또한 심판의 날 세계가 종말을 맞이할 곳도 예루살렘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세 종교는 저마다 이곳을 자신들만의 성지로 만들기 원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 모두 배타적인 유일신교가 아니던가. 그렇지만 역사는 한 종교가 예루살렘을 독점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이곳은 역사 속에서 항상 피가 흥건했다. 이 책의 저자인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장소를 가장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종교와의 경쟁이다.”(p.12) 유일신교는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다. 항상 자신의 종교만이 신의 부름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모두 이단이라는 이름하에 그 가치를 무시해버렸다.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도 기독교 신자들이 예루살렘까지 성지 순례를 쉽게 하기 위해서 시작한 전쟁이 아니었던가. 신이 원한다는 이름하에 비극적인 전쟁을 시작한 것이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분쟁도 그 연장선에 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8년 지난 1,900년간 나라 없이 지내던 유대인들에게 나라가 생겼다. 그 주인공은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그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그들 나름대로 편안히 잘 지내고 있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난데없이 사람들이 나타나 원래 이곳이 우리집이었으니 딴 곳으로 가라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또 비극이 생겼다. 앞으로 예루살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과연 뿌리가 같은 세 개의 종교가 그곳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예측이지만, 앞으로도 예루살렘은 종교적인 축복과 저주가 공존할 것이다.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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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땅 예루살렘, 그 장대한 역사를 펼쳐내다 - 예루살렘 전기 _ 스토리매니악 나는 무신론자다. 때문에, 소위 말하는 종교의 '성지'라는 곳에 대한 감흥은 종교인들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모든 종교인들의 혼이 바라보는 곳으로서의 성지에 대해서는 경외심과 더불어 막연한 동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파랗게 젊었을 때는 각 종교의 성지를 모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건만, 무모함이 사라진 지금에서는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는 게 먼저이기도 하다.
많은 성지 중에서 '예루살렘'만큼 장대한 이야기와 수많은 영욕의 역사가 깃든 곳이 있을까 싶다. 신이 선택한 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피가 가장 많이 뿌려진 곳이기도 한 곳, 지금도 종교의 대립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를 이야기한다. 성스러운 역사, 분쟁의 역사, 종교의 역사까지, 저 먼 다윗의 땅이었던 시절부터 유대가 독립한 시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그 이야기에는 땅에 깃든 종교적 성스러움은 물론 많은 개인과 민족들의 역사 또한 담겨 있다. 단지 종교의 분쟁만 다룬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시대순으로 더듬어 가며 예루살렘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지금의 정치적 문제와는 상관없이 무신론자, 신자, 그리스도인, 무슬림, 유대인을 망하라는 일반 독자들을 위한 넓은 의미의 예루살렘의 역사를 서술하려 했다고 한다. 그 땅을 거쳐간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연대기적 이야기를 펼치고, 예루살렘의 역사가 어떻게 지금의 복잡한 양상을 나았는지를 들려준다.
저자는 왜 이토록 예루살렘의 역사를 세세히 파헤치려 했을까? 잘 알다시피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한 순간도 평화가 지속된 적이 없다. 늘 누군가의 종교가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종교가 와서 파괴하고 다시 자신들의 성을 건설하고, 다시 또 다른 종교가 침입해 파괴하고 하는 역사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예루살렘을 원했던 이유, 또 그곳을 수많은 피를 뿌리며 지키려 했던 이유를 저자는 들려준다. 단편적인 고찰이 아닌 다양한 시점에서 보는 통찰을 통해 '어째서 예루살렘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고 있다.
솔직히 저자가 그 답을 정리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명확히 저자의 말을 알아들었다고는 못하겠다. 이는 종교에 대한 무지와 지식에 대한 부족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는 예루살렘과 종교인들이 혹은 실제 그 혼란의 현장에 있는 민족들이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예루살렘의 속살을 한 꺼풀 벗겨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나 느낄법한 감정이다. 편향적이 아닌 입체적인 예루살렘의 이야기는 그만큼 생생하다.
책을 읽으면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도 큰 수확이다. 책에는 이 종교들의 기원, 탄생, 그리고 흥망이 담겨 있다. 하나의 신을 모시면서 그들이 왜 다른 종교관을 내세우는지, 왜 서로를 피로 물들이는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뺏고 빼앗기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보여지는 복잡한 양상의 모습들과, 종교라는 믿음의 정체가 역사에 어떤 그림을 그려왔는지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내용이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장면도 많다. 신의 축복으로 융성해야 할 곳이, 인간의 탐욕과 종교적 맹신을 통해 진한 피의 강을 이루고 있다니 답답하기도 하다. 이러한 종교적 욕망은 지금까지도 그 암운을 짙게 드리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찌 보면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그 어떤 종교의 땅도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이 책의 한가지 특이한 점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인문서의 딱딱함을 조금은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 밝혔듯, 이야기체로 서술함으로써 읽는 흥미를 돋우고 있다. 물론 상당히 만만찮은 분량이지만, 읽어 나가는데 이러한 이야기체 구성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마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책을 한 편 보는 느낌이랄까? 비록 내용은 마음을 답답하게 해도, 무거운 주제를 아주 친근하게 풀어 놓았다고 생각된다.
툭 터놓고 말해서, 이 책은 이런 책이다 저런 책이다 말하기가 상당히 버겁다. 적어도 내 지식의 한계로는 설명하기가 참 힘들다. 그만큼 대단한 이야기, 대단한 역사를 담아 놓았다. 예루살렘이라는 땅에 담긴 역사의 모든 페이지를 짚어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되짚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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