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수프 깡통으로 연통을 만든, 다 쓰러져 가는 집까지 물건을 가지고 올라가 불을 피우고 등을 켰다. 다람쥐들이 매트리스 안까지 들어왔던 흔적이 있었다. 쥐와 호저도 이곳을 들락거린 모양이었다. 모지스는 저 아래쪽에서 노인이 어린백조호에 시동을 걸고 우체국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저녁놀의 잔광, 배가 점점 멀어져 가는 소리, 난로에서 나는 냄새, 이 모든 것이 세인트보톨프스에서 맞이했던 그날 아침과 너무 달라서 세상이 두 조각으로 나뉜 것 같았다.(p.92)
'블릿파크'를 통해 알게 된 작가 존 치버, 나는 그의 문체가 참 맘에 든다. 무심하게 마침표와 마침표 사이를 짧은 호흡으로 불러오다 툭 내뱉는 절제된 묘사에 가슴이 순간 철컹 내려앉게 만드는 그 여운이 마치 표현하지 않아도 속정이 깊은 아버지 품처럼 멋스럽진 않지만 그 투박함에 괜스레 더 감동받게 된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그 여인들의 부재가 똑똑히 느껴지는 곳에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이 이 야영지를 어떻게 공격했을지, 그들이 이곳의 가구들을 어떻게 태워버릴지, 양철 깡통들을 어떻게 파묻어 버릴지, 바닥을 어떻게 닦을지, 등불의 등피를 어떻게 청소할지, 유리로 된 슬리퍼에 제비꽃과 둥글레 꽃다발을 어떻게 꽂을지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이곳으르 다스린다면, 잔디밭이 야영지에서 호수까지 뻗을 것이고, 양초와 샐러드용 채소가 뒷문에 만발할 것이며, 커튼과 융단과 화학 약품을 쓰는 화장실과 종을 울리는 시계가 생각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화덕이 뜨거워지자 그는 햄버거를 몇 개 꺼내서 화덕 뚜껑에 올려놓고 녹슨 숟가락으로 뒤집어 가며 익혔다. 마치 위생과 질서에 관한 아내의 훌륭한 생각들을 무시해 버리는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p.93)
이 번득이는 묘사들이 정감가고 편안한 느낌, 이것이 나를 그의 이야기 세계로 이끈 힘이기도 했지만 모순으로 가득 찬 우리의 삶과 인간에 관한 존 치버의 날카로운 지적이 은근히 묘하게 슬프면서 웃겨서 이야기가 시작되면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치 나의 휴식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쉼표와 쉼표 사이에 끝도 없이 단어들을 쏟아내는 것 같다. 물론 집중되는 사건이 없이 각자의 삶들이 산만하게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그 삶들을 외면하긴 힘들다. 어디까지 이 불안한 지층 위에 켜켜이 쌓인 삶들이 생명력을 유지할지 알고 싶어진다.
왑샷 가의 두 아들(모지스와 코벌리)이 부모와 함께 유년기를 보내던 세인트보톨프스를 떠나 도시에서 진짜 그들의 삶을 살기 시작한 시점, 모두가 겉으로 보기에 부유하고 평안해 보이는 중산층의 삶을 희망하는 그 시점, 아들들이 결혼을 통해서 맛보는 불안한 신세계 그리고 그 삶을 영위해 가는 보통 사람들과의 만남 등이 여전히 별반 달라진 것 없는 우리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진실이란 이렇게 한 차원 거리를 두어야만 직면할 용기가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모지스와 코벌리의 교외와 도심을 오가는 삶에 대한 모험들은 술술 읽힌다. 그들을 둘러싼 여러 삶들은 언제나 회색 미소를 머금을 듯 씁쓸하건만 블랙 유머가 가득하고, 삶이 평탄하지 않았던 존 치버 그가 표현하고 싶은 모순 가득한 미국 중산층의 삶들은 언제나 의문투성이지만 그 당시의 미국인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신선하면서 재미있다.
|
|
서둘러 차를 몰던 그는 산 닭을 싣고 좁은 도로에서 천천히 달리는 화물차 뒤에서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모지스가 경적을 울렸지만, 화물차 운전자는 그 소리에 오히려 더 오기를 부릴 뿐이다. 그의 양보심에 한 여자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어떻게 전달 할 수 있을까? -Page 286 한 가문의 연대기를 만든다는 일은 아마도 그 사람의 생활 곳곳에 파고드는 희망의 싹과 고통 그리고 사랑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 될지 모르겠다. 존 치버가 말하는 왑샷 가문은 아마도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시점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그리고 가문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행해야 하는 일에 대한 의무감 그리고 가족간의 사랑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을 할 수 있겠다. 읽고난 후에는 가족간의 사랑 보다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니 유산을 받기위한 의무감 혹은 욕망으로 수동적 행동으로 일관된 부자의 모습이 강조 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말이다. 왑샷 가문 연대기는 왑샷 리엔더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 둘 모지스와 코벌리의 성장과정과 그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로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주요 인물로는 성격 묘사를 정확히 할 수 없는 오노라 왑샷으로 모지스와 코벌리의 고모가 된다. 리엔더 가족은 변변한 벌이가 없이 세인트보톨프스라는 지방에서 상속받은 재산으로 살아가는 오노라의 도움을 받아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가는 그런 가족이다. 오노라 왑샷은 그 들에게 상속할 권리를 얻으려면 두 아들들이 왑샷 가문의 대를 이어 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상속을 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이에 모지스와 코벌리는 대도시로 나아가 자신의 역량과 사랑을 만들어 오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주로 담고 있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리앤더와 그의 가족은 자신들의 어려움과 힘든 사정을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 힘들게 공유하려하여도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리앤더의 생업이었던 배가 난파 되었을 때에도 모지스는 그의 아버지의 도움 요청을 받지 못하고, 도움을 청하는 말도 아이러니 하게 익숙한 말이 되지 못한다. 소설은 특별한 사건과 사고를 동반하지는 않는다. 단락별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물이 등장 하였다가 사라지고 한 사람의 성장과 일들이 연속적이지 못하고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의 일로 전환되기도 하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로 세 명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같은 시점에 벌어진 일들을 조합하면서 시점 조합을 요구 하는 듯하다. 존 치버의 삶은 생각 보다 많은 시련과 고통이었던 것 같다. 분명 한 가문의 아들들의 성장과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가지기에는 조금씩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작품해설에서 대강 이해를 할 수는 있었지만 전반적인 에피소드는 그렇게 환한 이미지를 가지지 못하고 쇠퇴해가는 그들의 고향의 모습처럼 어두운 모습을 보인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야 할 두 아들의 사랑에 있어서도 두 여인은 그렇게 밝은 모습이 아닌 우중충한 아니 어딘가 그늘이 드린 듯한 모습으로 그 들과 만나며 그런 그와 사랑을 하게 되는 두 아들의 모습도 썩 밝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마지막 장면역시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가 남긴 한 마디는 치명적 이면서도 섬뜻한 느낌의 당부가 아닐 수 없다. 공포는 녹슨 칼날 같은 맛이 난다. 그 것을 절대 집 안에 들여 놓지 마라 -Page 462 |
|
존 치버의 가정환경은 불우했다. 학교생활 역시 순탄하지 못하고 퇴학당한다. 대신에 폭넒은 독서를 통해 작가 수업을 받는다. 러시아 문학과 프랑스 문학 그리고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섭렵한다. 특히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스물다섯 번이나 읽을 만큼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어릴 때 부터 이야기를 지어내기 좋아하는 그는 단편소설에 재능이 있었다. '교외의 체호프'라고 불렸던 그는 단편소설에서 벗어나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그 첫 작품이 바로 <왑샷 가문 연대기>다.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