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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내더라도 적당히 해야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혼을 내더라도 적당히 해야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내용보기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나도 사전을 꽤 자주 본다. 전공이 국어니까 사람들이 많이 묻기도 하고 종종 친구들이 불쑥 전화와서 이 말이 맞냐, 저 말이 맞냐 물을 때도 있다. 글을 쓸 때도 이 맥락에 이 말이 적절한지, 이 단어가 정확한 표준어인지 나도 잘 모르겠을 땐 주저없이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한다. 아직 국어 실력이 일천하다보니 나는 사전에서 그렇다면 아 그런가보다 하지 이
"혼을 내더라도 적당히 해야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내용보기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나도 사전을 꽤 자주 본다. 전공이 국어니까 사람들이 많이 묻기도 하고 종종 친구들이 불쑥 전화와서 이 말이 맞냐, 저 말이 맞냐 물을 때도 있다. 글을 쓸 때도 이 맥락에 이 말이 적절한지, 이 단어가 정확한 표준어인지 나도 잘 모르겠을 땐 주저없이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한다. 아직 국어 실력이 일천하다보니 나는 사전에서 그렇다면 아 그런가보다 하지 이 사전에 무슨 문제가 그렇게 많은지 잘은 모르겠다. 다만 말글에 별 관심없는 이들이 읽기에는-특히 학생들- 뜻풀이가 좀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한다. <국어사전 혼내는 책>을 쓰신 전직 국어교사이자 시인, 소설가인 박일환 씨는 이 표준국어대사전의 단점이 무지하게 많이 보이시는가보다. 그래서 진짜 일부러 찾아보지(물론 일부러 찾아보셨겠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뿐더러 이렇게 생각조차 못했던 부분들을 세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깨달음을 주지만 너무 지나치다 싶은 부분도 있다. 몇 가지 살펴보자.

 

윤락

1. 세력이나 살림이 보잘것없어져 다른 고장으로 떠돌아다님

2.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짐

 

실제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보면 되게 화날 것 같긴 하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을 텐데(영자의 전성시대 시절에는 그렇게 번 돈으로 집안 건사하고 동생들 공부시키는 모습도 많이 나왔었다던데) '타락'했다는 딱지를 붙이니 말이다. 이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돈을 받고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풀이되어 있으니 그나마 좀 낫다.

 

난민

1. 전쟁이나 재난 따위를 당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

2.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운 사람

 

이 뜻풀이는 '백성'이라는 단어 때문에 혼이 났다. 조선시대 사전도 아닌데 백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여전히 사전 곳곳에 전근대적인 인식이 잔존해있다는 근거라고 비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표준국어대사전의 모체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으니 그 당시의 의식이 아직 사전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시대와 흐름에 맞게 적절히 수정되지 못했을 뿐.

 

이 책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초반에는 표준국어대사전을 주로 혼내고 그 비교 대상인 한국어대사전에 우호적인 듯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그렇지도 않다. 학교에서 서로 싸운 두 학생을 혼내는 모습이 연상된다. 더 잘못한 녀석을 먼저 혼내다 보니 결국 너도 똑같은 놈이라고 같이 혼내는 모습 말이다. 더 잘못한 녀석 표준국어대사전이 특히 많이 혼나는 부분은 유의어의 순환 풀이, 성의없는 풀이다. 또, 지나친 번역투 문체와 접사 '-하다'가 남용되는 모습, '덕진호'는 있으나 '충주호'나 '소양호'는 뜻풀이가 없는 표제어 선정 기준의 문제 등 우와 어떻게 이걸 다 알았지? 싶은 다양한 문제들을 단어의 의미 범주를 거칠게 나누고 사례들을 묶어서 제시한다.

 

현재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을 관리하는 곳은 국립국어원이다. 제한된 예산, 몇 없는 연구원들이 이 사이트를 관리하고,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에 답변도 하고 그런다. 이 정도로는 많이 부족했던지 위키백과처럼 사용자들이 내용을 직접 추가할 수 있는 우리말샘이라는 코너도 만들었다. 워낙 책 한권이 통째로 사전을 혼내다보니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측은지심이 들었다. 한다고 하는데 몇 십만 개는 되는 수많은 표제어들을 매일같이 검토하고 수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본인이 오류나 개선 방안을 찾았으면 단행본으로 내는 것도 좋지만 직접 사전 관리자들에게 자료를 주고 수정하도록 건의하면 실질적인 효과가 더 크지 않겠나.

 

달걀부침

달걀을 씌워서 번철이나 프라이팬 따위에 지진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명절에 많이 보는 음식이다. 특정한 요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계란을 풀고 속재료를 거기에 담갔다가 기름에다 지지는 요리법을 통해 만들어진 음식을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음식을 계란프라이하고 혼동하고 있다.

''달걀을 씌워서'라는 말이 이상하다. 다른 재료에 달걀을 씌운다는 뜻이니, 우리가 아는 달걀프라이하고는 다른 음식인 모양이다. 그런데 달걀부침과 달걀프라이는 정말 다른 음식일까? 그렇게 이해하고 쓰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저요. 그리고 분명히, 저자는 명절에 직접 앉아서 전을 부쳐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달걀부침은 속재료가 있고 달걀프라이는 달걀 자체가 재료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다른 음식이다. 지적을 위한 지적이거나, 저자의 언어 사용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 비판이라는 점에서 책 전체의 신뢰도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에게 특별히 피해를 주지 않으면 취향이라고 존중해줄 수도 있다. 조금만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선비니, 진지충이니 하며 비꼬는 세태 속에서 누가 뭐래도 언어의 본질, 사전의 소명에 충실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어도 아이들에게 바른 삶을 살라고 변함없이 이야기하는, 평생을 충직한 교사로 살아왔을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분이 교장이나 교감 같은 관리자였으면 아랫사람들이 보고 문서 하나 작성하는 것도 참 어려웠을 것만 같다. 사전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 작업을 인생 2막에서 하시는 게 참 적성을 잘 찾으셨나 싶기도 하다. 책을 읽고 한겨레 신문에서 진행한 저자 인터뷰를 찾아 읽어보니 앞으로는 사전 혼내기보다 다양한 박물관을 다니시면서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되살리는 일을 하실 거라고 한다. 잘됐다. 아이들도 혼내기만 하기보단 잘하는 면이나 잘 몰랐던 면을 발견해서 칭찬해주면 더 잘 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를 응원한다.

s*************k 2019.09.16. 신고 공감 4 댓글 0